5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성령 세례에 대하여 많은 주장들이 있습니다. 사실 성령 세례에 대한 많은 오해와 인식의 부족때문에 심각한 부작용도 만만찮은게 현실입니다. 여러 신학자들의 견해에 따라서 성령의 본질이 왜곡되었고 심지어는 지금까지도 교회사를 통해서 그 영향력이 이어져 왔고 신비주의와 이단 사이비들의 오용으로 인한 피해가 심각합니다.

저는 신학적으로 논할 수준이 못되어서 다만 성경에서는 성령 세례에 대하여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신앙의 기준은 오직 성경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그리스도 예수의 말씀이 기본입니다.  그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했던 사도들의 증언이 중요한 해답을 제시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의문에 대한 것을 알고자 할때는 당연하게도 사복음서 가운데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는것 이외에는 더 좋은 길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성령 세례와 중생은 어떻게 다른가?

질문을 잘해야 좋은 답을 찾을수 있다 했는데 정말 그런것 같습니다. 질문이 어떠함에 따라서 답이 다르게 나올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너무 염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의 염려를 한번에 해결해주는 좋은 모범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은 성령에 대한 훌륭한 보고입니다. 성령으로 시작해서 성령으로 갑니다. 특히 니고데모와 같은 걸출한 유대의 학자요 랍비요 공의회 의원이며 바리새파의 사람으로서 모든것을 구비한 사람이 예수앞에 나와서 질문을 합니다.

우리는 니고데모에게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궁금해 하는 문제를 속 시원하게 들을 수 있도록 수고를 아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니고데모가 누굽니까? 성경에 대하여라면 박사입니다. 말하자면 구약학자라는 뜻입니다. 구약 성경의 전문가가 밤중에 찾아왔습니다. 그것도 당시에 바리새인들이 미워하고 시기하고 죽이고자 모의를 하는 적대적인 관계인 예수께말입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를 기이하게 보았습니다. 단지 시기하고 배척하려는 동료들과는 분명 달랐습니다. 우리 주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시고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하나님의 성품이 마음을 감찰 하신다는것이 얼마나 우리에게 복된소식인지요. 우리의 속을 보시는 하나님 때문에 우리가 희망이 있는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살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가 그동안 듣고 배워온 것은 자꾸만 구별하거나 분리하거나 따로 따로 신앙과 믿음에 대하여 들었습니다. 학자들에 의하여 구원의 서정을 나누고 분석해서 첫째,둘째,셋째식으로 나눕니다. 순서와 시간의 차이를 구별하다 보니 좋은 점도 있지만 단점은 자꾸만 헷갈린다는 것입니다. 마치 십계명을 세세히 적어서 이것은 지켰나 혹 저것은 어겼나 확인하듯이 말입니다.

세부적인 규례들을 만들어서 실생활에서 적용하고 비교하고 살피다보니 무엇을 하기도 겁이나는 지경까지 온것입니다.  무슨 법칙들이 그리도 많은지요? 특히나 샤머니즘적인 신앙관이나 철학적으로 사주와 관상이나 점을 보는 문화에 노출된 우리나라의 정서는 이사하는 날까지도 무엇인가를 봐야만 합니다. 이날은 안되고 저날은 뭐가 끼었고 어쩌고 저쩌고해서 사람이 무엇인가에 의하여 꼼짝 마라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향이 기독교 신앙에 까지 떡하니 자리 잡아서 성도들의 삶을 복잡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간단한 진리를 선언합니다.

구원이 뭐냐, 구원을 어떻게 받느냐 라는 물음에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이 이미 알고 있는 유명한 말씀입니다. 어린아이들도 줄줄 외웁니다. 비기독교인들도 압니다.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을 것이다.

이 말씀에 모든 해답이 들어 있답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에서 무엇을 찾았습니까? 이 말씀에 우리의 의문이 모두 풀리는것을 발견하셨습니까? 제가 미리 답을 제시해 보겠습니다. 성령 세례와 구원과 영생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모든것은 우리가 무엇을 행하는 것으로는 안되고 오직 믿음으로만 주어지는 선물이라는 사실입니다.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성령을 받는다 혹은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다는것을 자꾸만 어떤 현상적이나 체험을 느껴야 한다고 단정을 지어버립니다. 간증자들의 경험을 듣고 대부분 그렇게 오해를 합니다. 또다른 오해는 방언을 하는것을 마치 성령세례라고 생각을 해버리는 경우 입니다. 여기서 성령 세례나 성령을 받는다는 것을 구분할 필요는 없습니다. 또 한가지 오해는 물 세례를 받는것처럼 누군가에 의하여 안수를 받아야 성령 세례를 받는다고 생각을 하는 경우입니다.

아마도 사도행전의 오순절 성령감림 사건 기록때문에 그런 생각이 드는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날의 성령 강림 사건은 역사적으로 한번 나타났었던 것이며 그 이후의 성령의 행하심은 새로운 방향으로 이어져 왔다는것을 간과 하였기에 오는 오해의 결과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충만을 받았던 사도들의 전하는 복음의 소리를 자세히 주의하여 듣게 된다면 성령의 본질에 대하여 쉽게 알수 있다는것을 기억하여야 할것입니다.

성령세례나 중생이나 구원이나 영생은 순서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납니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를 구주로 믿는 순간에 이미 발생하는 것입니다. 간단한 증거의 말씀이 요한사도의 증언입니다.

10    그는 세상에 계셨다. 세상이 그로 말미암아 생겨났는데도, 세상은 그를 알지 못하였다.
11    그가 자기 땅에 오셨으나, 그의 백성은 그를 맞아들이지 않았다. 12    그러나 그를 맞아들인 사람들, 곧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13    그들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욕망으로 나지 않고, 하나님께로부터 났다.

그러나 그를 맞아들인 사람들, 곧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는 놀라운 증언입니다. 믿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됨은 곧 성령 받음이고 결과이며 보증입니다. 이것이 중생이며 니고데모에게 하신 거듭남의 결과입니다. 거듭남이란 위로부터 나는것이며 하나님의로 부터 나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제가 니고데모에게 감사해야 한다는 의미를 설명해 보겠습니다. 질문을 잘해야 한다고 했지요? 그러나 사실 우리는 질문을 잘하지 못합니다. 특히나 한국사람의 전형적인 문화에 오랫동안 세뇌를 당했기에 말입니다. 동방 예의 지국의 후손들은 남에게 실례되는 질문을 하면 예의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또한 체면을 중시 하기 때문이며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베려하는 성품이 좋은 민족입니다.

어떤 예화를 잠간 들었는데 초기에 선교사들이 구원 초청시간에 영접하기를 원하는 사람을 부릅니다. 그러면 어제 나온 사람들이 또 나온다는것을 선교사들이 이해를 못했답니다. 맘좋은 우리네 사람들은 아무도 안나가면 선교사님이 실망할까봐서 나가줬다는 것입니다. 서구 유럽처럼 대화와 토론문화에 익숙하지 못하기 때문에 서툴다는 의미입니다. 저도 마찬 가지로 토론이나 질문을 잘 못합니다.

니고데모와 주님의 대화를 보십시오.

니고데모는 주님께 이렇다할 질문다운 질문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다만 주님에 대하여 다른 동료들과같이 나사렛의 예수로만 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를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이며 하나님이 보냄으로오신 선지자라고 고백한 것이 전부입니다. 확인해봅니다.

1    바리새파 사람 가운데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유대 의회원이었다. 2    이 사람이 밤에 예수께 와서 "랍비님, 우리는, 선생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임을 압니다. 하나님께서 같이하지 않으시면, 선생님께서 하시는 그런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구약성경의 전문가인 니고데모는 예수께서 행하신 표적들을 보고서 단번에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그리스도요 메시아라고 생각을 한것이고 그것을 확인하고자 온것입니다. 귀로 듣기만 했었기에 직접 보고자 온것입니다. 아니라면 뭐하러 동료들의 비방을 예견하면서까지 무리하게 밤중에 찾아 왔겠습니까? 또한 그는 유대 바리새파의 공의회원으로서 이미 많은 것을 성취한 사람입니다. 인기와 부와 명예까지 두루 갗춘 당대에 성공한 사람중의 한명입니다. 그런 그였지만 단 한가지 영생에 대하여 확신을 갖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갈증을 느끼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인류역사상 생과 사의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인류역사적으로 뛰어난 지혜자들이 있었습니다. 공자,맹자,석가, 소크라테스등등 이루 해아릴수 없을 정도로 큰 업적과 영향을 끼친 성인들이 있었지만 역시 생과사의 문제에서는 아무도 답을 찾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람으로서 가히 이를수 없는 경지에 오른 사람이라 해도 만족함이 없었다는 인간의 실존적인 문제 앞에서 니고데모라는 걸출한 인물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니고데모가 무슨 목적으로 왔는지 알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정확하게 우리에게 밝히 드러내십니다. 니고데모는 질문다운 질문을 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주님께서는 미리 아셨습니다. 이미 니고데모의 마음을 아신 주님께서 즉각적으로 대신 질문하시며 대신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3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그렇습니다. 니고데모는 사실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것을 아시는 주님께서 질문하기도 전에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시기를 다시나기 전에는 하나님 나라를 볼수 없다고 하십니다. 다시 나기전에는 하나님 나라를 들어가는것도 불가능하지만 알수도 없다는 선언입니다. 볼수도 없고 알 수도 없고 꿈도 꿀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주님의 말씀에 니고데모는 당황합니다. 사실은 우리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어떻게 다시 태어납니까? 죽고나면 살수 없는 인생인줄 아는데 말입니다.

4    니고데모가 예수께 말하였다. "사람이 늙은 뒤에,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야 없지 않습니까?"

니고데모의 반문은 우리의 반문이기도 합니다. 나름대로 진리를 추구하는 구도자들치고 이러한 번민을 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지식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우리의 실체적인 물음은 이것입니다. 인간존재의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생명에 관한 문제입니다.

5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없다는 말씀입니다. 쉽게 말해서 성령으로 나야만 구원도 영생도 주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사람은 한번 태어난다고 합니다. 한번 나고 두번 죽는다는 것입니다. 한번 나는 것은 육신으로 나는 출생을 말합니다. 물에서 나는것을 육으로 난다고합니다. 그러면 육으로난 사람은 반드시 죽습니다. 그 죽음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단지 죽고나면 끝나버리면 간단한데 성경은 또 죽음 이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심판이 둘째 사망을 말하고 있습니다.

육의 몸이 죽고난 후에 육신 안에 있던 영이 죽는 죽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성령으로 나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육으로 나서 다시 성령으로 나야합니다. 니고데모에게 오늘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시기를 성령으로 나야한다는 것입니다.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다. 7    너희가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내가 말한 것을, 너희는 이상히 여기지 말아라. 8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너는 그 소리는 듣지만,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모른다.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은 다 이와 같다."

영으로 난 것이 영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성령으로 다시 나는것은 사람으로는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출생은 사람이 노력해서 학습하고 연구하고 수행을 하고 배워서는 도무지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무엇을 행하여서 성령으로 날수가 전혀 없다는 선언입니다. 한마디로 꿈을깨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우린 모두 꿈을 깨야하는것인가요?
전혀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쉽고도 간단한 해결이 있습니다.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을 것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합니다.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십니까? 니고데모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요?

10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네가 이스라엘의 선생이면서, 이런 것도 알지 못하느냐? 11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말하고, 우리가 본 것을 증언하는데, 너희는 우리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13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인자 밖에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과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한다. 15    그것은 그를 믿는 사람마다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제 최종적으로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너무 내용이 길어서 부담스럽겠지만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최선을 다해볼랍니다. 아래 인용한 문서는 비교적 간단하지만 잘 정리가 되어서 옮겼습니다.

원문참고: http://biblenara.org/q&a/Q225.htm

1. 중생, 성령 세례, 성령 충만에 대해서는 사람들마다 약간 다르게 정의하고 있기 때문에 명확하게 정의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그 차이점만 간단하게 비교해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2. 중생
  신약 성경에서 "중생"(regeneration)이란 말은 2번 사용되었습니다(마 19:28, 딛 3:5). 우리 말로 "중생"이라고 번역된 말은 헬라어 "팔린게네시아스"란 말을 번역한 말입니다. 이 말은 "팔린"(다시)이라는 말과 "게네시아스"(출생)란 말이 합쳐진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재출생", 또는 "새로운 출생"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유대인 학자 니고데모를 보고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요 3:3). 여기에서 "거듭난다"는 말은 "재출생", 또는 "위로부터의 출생"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거듭난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이 어떻게 모태에 들어갔다가 다시 태어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때에 "주님은 육신을 통해 난 것은 육신이고, 성령을 통해 난 것은 영이라"고 하셨습니다(요 3:4-6). 주님은 "물과 성령으로 다시 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주님의 말을 통해서 세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1) 사람은 육신의 출생 외에 성령을 통한 제2의 영적인 출생이 가능하다. 2) 성령을 통한 제 2의 출생을 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볼 수도 없으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도 없다. 3) 성령을 통한 제 2의 출생은 모든 신자들에게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이다.

  우리가 어머니를 통해서 아기가 태어나는 것을 제 1의 출생이라고 한다면, 성령에 의해 천국 백성으로 다시 태어나는 영적인 출생을 "중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일은 구원과 동시에 일어나며, 성령께서 주관하시는 일로서, 모든 성도들에게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3. 성령 세례
  구약 시대에는 특별한 사역자들에게만 성령이 주어졌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성령은 거룩한 일을 맡은 사람들에게 임하셨으며, 그들이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특별한 힘과 능력을 부여했습니다. 그러나 요엘 선지자는 말세가 되면 하나님께서 "모든 육체"에 성령을 부어주실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습니다(욜 2:28). 그리고 사도 베드로는 오순절에 성령이 임했을 때 이러한 요엘의 예언이 이루어졌다고 말했습니다(행 2:17). 사도 베드로는 "자기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믿기만 하면 누구든지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행 2:39). 그 후에 이방인인 고넬료의 가족 역시 주님을 믿을 때에 성령이 임했습니다. 주님께서 오신 신약 시대는 요엘의 예언과 같이 "누구든지 예수를 믿기만 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수 있는 축복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성령의 세례"는 예수를 믿을 때에 "성령을 선물로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받는 물세례는 성령 세례를 받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예수님은 믿는 자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셨습니다. 성령 세례는 다음과 같은 4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1) 구원과 성령 세례는 동시에 일어난다.
  성령 세례는 몇몇 특별한 그리스도인만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받는 사람은 누구나 성령을 선물로 받습니다(행 2:38-39). 구원 받는일과 성령세례를 받는 일은 동시에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2)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다 성령 세례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여기에는 그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고전 12:13)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3) 성령 세례는 일생에 단 한 번만 받는다.
  우리가 물 세례를 한 번 받는 것처럼, 성령 세례도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에 단 한 번만 받습니다. 성령 세례는 한 번 받은 후에는 반복될 수 없으며, 또한 상실되지도 않습니다. 성령 세례는 요엘이 말한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을 알리는 징표입니다(엡 4:5).

4) 성령 세례는 사람이 받으려고 노력해서 받는 것이 아니다.
  성령 세례는 성령 세례를 받으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에, 그리고 중생하게 될 때에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구원과 중생, 그리고 성령 세례는 거의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의 의지와는 관계 없이 주님을 믿을 때에 저절로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4. 성령 세례와 성령 충만의 차이
1) 성령 세례는 예수를 믿을 때에 받게 되지만, 성령 충만은 예수를 믿은 후에 일생에 걸쳐서 받게됩니다.

2) 성령 세례는 예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받게 되지만, 성령 충만은 헌신된 사람들만이 받을 수 있습니다(행 6:3,5).

3) 성령 세례는 예수 믿을 때에 단 한 번만 받게 되지만, 성령 충만은 일생에 걸쳐서 계속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4) 성령 세례는 한 번 받으면 소실되는 일이 없지만, 성령 충만은 성령을 근심케 할 때에 소멸(성령의 감동을 불을 끄듯이 막음)될 수 있습니다.

5) 성령 세례는 믿을 때에 일어나지만, 성령 충만은 이미 믿은 성도들에게 죄를 이길수 있는 힘을 주고, 복음을 전할 능력을 주며, 삶 속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도록 만들어 줍니다.

6) 일부 사람들은 성령 충만하면 귀신을 쫓거나 방언을 하고, 또 능력을 행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성령 충만보다는 "성령이 주시는 은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고전 12장,14장). 성령 충만은 성령의 열매(사랑, 기쁨,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등)로 나타납니다.

7) 성령 충만은 죄를 이기게 하고 자원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만들어 줍니다. 사람들은 자기 힘으로 강력한 죄의 세력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성도들이 죄를 이길 수 있도록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성도들은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죄에 대해 승리하거나 자원해서 하나님께 순종할 수 없습니다. 신약 시대의 성도들의 승리의 비결은 성령 충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성도들에게 술 취하지 말고 "계속해서 성령 충만을 받으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니고데모와 예수 그리스도의 만남을 통해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거듭남에 대하여 구원에 대하여 영생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핵심은 그를 믿는자들의 결과입니다. 믿음으로 구원얻는다는 성경의 일관된 가르침입니다. 이러한 믿음 마져도 사실은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가 깨끗하게 씻겨졌으며 그의 다시 살아나심으로 우리가 그 안에서 살리심을 받아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 옮겨졌다는 것이 우리의 구원이며 영생이며 성령으로 남이라는 것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감정이나 느낌이나 체험이나 심리적인 만족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미 주어진 약속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입니다.

말씀을 아는것과 믿음으로 믿는것은 다른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른다고 합니다.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반응하는 자에게 누구든지 성령을 선물로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아멘.

글/빈의자

'은혜의 단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배우며, 행하며...  (0) 2009.02.09
성경에서 말하는 10가지 대화법  (1) 2009.02.09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0) 2009.02.07
지혜를 구하는 기도/이해인  (0) 2009.02.05
조건 없는 존재  (0) 2009.02.05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