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량 사역을 경험한 이유

몇 년 전, 담임목회직을 내려놓고 지금까지 자비량 사역을 하고 있다. 목회를 할 때는 매달 생활비가 통장으로 들어왔지만, 통장은 있지만 그것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이제 어떤 누구도 내 통장에 매달 생활비를 보내주는 이가 없다. 또한, 한국교회 성도들은 목회자를 지극정성으로 섬기기 때문에 절기마다 교인들이 챙겨주기도 하였지만 그 모든 것이 이제는 없다. 그야말로 백의종군으로 목회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족을 굶기시지 않으시는 주님의 손길을 체험하고 있다.

어떤 이가 목회자를 세 부류로 규정한 바 있다. 첫째는 삯군형 목회자, 둘째는 생계형 목회자, 셋째는 참된 목회자. 사실, 목회를 하면서 가장 아쉬울 때는 가족의 생계 때문에 당당하게 목회를 하지 못할 때이다. 소위 생계형 목회라고 해야 하나, 교인들을 바르게 성경적으로 지도해야 할 때도 소극적인 태도를 보일 때도 있다. 때로는 듣기 좋은 설교만을 골라 해야 할 때도 있으니 참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가 삯군은 아니지만 본이 아니게 그런 때도 있었음을 부인할 순 없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러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양상이 다르다. 교회로부터 생활비를 받아가며 사역하지 않기에 목회자로서 좀 더 성경적인 지도와 설교를 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다시 생활비를 받는다면 어찌 될지는 주님만 아시리라. 바울은 자비량 사역을 했던 성경에 대표적인 목회자 가운데 한 분이다. 그가 개 교회로부터 녹을 받지 않고 사역을 하였는데, 그는 언제나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당당한 모습으로 말씀을 가르쳤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행20;19-21). 그럼에도 그는 눈물로 목회했던 목회자였다.

사실, 목회자가 목회일이 아닌 세상 직업을 갖고 일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미국적 상황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한국적 상황에서는 더욱 더 그렇다. 하지만 목회자도 가정이 있고, 가정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일하지 않을 순 없다. 그래서 한 교회에서 목회자 청빙을 하면 기백통 이상의 서류가 들어오는가. 어떤 믿음 좋은 목회자는 주의 일만 하면 까마귀 은혜가 임하기 때문에 일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필자는 그런 믿음이 없기에 그런 은혜가 지금껏 없었는가.

지금까지 필자는 주님의 은혜로 먹는 문제로 걱정해 본적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언젠가 가족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해야 할 필요를 느꼈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니 별로 없었다. 목회자들 가운데는 택시운전을 비롯하여 대리운전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었지만, 실제로 그런 이들을 본 적은 없었다. 다만 내가 아는 목회자 가운데 생수 배달하는 이를 본적은 있었지만, 그가 왜 그런 일을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따라서 필자가 생계를 위해 무슨 일을 찾는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우선, 인터넷을 통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니 몇 가지로 분류되었다. 첫째, 단순 노동일이다. 예컨대 공사장에서 노가다 하는 것, 운전, 배송하는 일 등. 둘째, 정신 노동하는 것으로서 번역, 저술, 가르침 등이 있었으며, 셋째,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도원에 입산하여 기도하면서 주님을 통해 주시는 까마귀 은혜를 구하는 것. 그런데 필자는 첫 번째 것을 하기로 마음먹고, 인터넷 서핑을 통해 알아보니 배송일이 마침 있어 그곳에 지원하였다.

그 일을 하려면 일단, 나의 신분을 감추어야 했다. 그래서 이력서의 내용을 적당하게 생략하였고, 둘째는 정식 직원이 아닌 알바로 일해야 했다. 셋째는 운전을 잘하고, 정확한 곳에 물건을 배송해야만 했다. 필자는 회사와 일단의 계약을 맺고 일을 시작하였다. 먼저, 3일은 인수인계를 받아야 하며, 이후로는 홀로 그 일을 해야 한다. 하루에 약 300키로가 넘는 거리를 매일 트럭으로 오가야 하며, 물건을 창고에 입고하려면 등짐을 져야 한다. 이 일을 하고나면 온 몸이 땀으로 뒤범벅이 되며, 귀가하면 몸이 녹초가 되어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두어 달을 일했다. 한 달에 받는 보수는 150만원. 이것은 정말 큰돈이다. 그런데 필자는 잇몸이 약한지라 치야 치료에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점심을 사먹어야 하고, 이것저것 떼면 남는 것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이 일을 시작한 것은 몇 가지 이유에서였다. 첫째, 사람들의 삶을 배우고 싶었다. 필자가 일을 하면서 비로소 안 것은 왜 그들이 교회 나오는 것을 힘들어 하는가 였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전투적인 삶을 산다고 해야 맞는 표현이다. 일하지 않으면 굶기 때문에, 자식교육을 시킬 수 없기에 그들은 죽도록 일하며 산다.

둘째는 그 일을 하면서 불신자들의 심리를 알게 되었다. 그들의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매우 다르다. 그들은 그런 피곤을 술로서, 담배로 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입에는 온갖 욕설로 가득 찼다. 그리고 지금의 교회적 병폐를 보면서 더욱 교회에 반대적이 되었다. 그들은 교회에 나오진 않지만 교회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그런 그들에게 교회는 너무 많은 실망을 안겨 주었으니 우리는 모두 회개해야 할 것이다. 목회자는 성경만 알아서는 안 됨도 알게 되었다. 세상이 너무 악하기에 그 속에서 속고 사는 이들을 구원하려면 세상을 알아야 함을 깨달은 것이다.

셋째는 내 자신을 훈련하기 위해서였다. 그간 공부하랴, 목회하랴 내성이 너무 약해 있었다. 앞으로 20년은 목회할 수 있는 나이인데, 세상을 향해 도전하기 위해선 야성이 있어야하겠기에 일을 시작한 것이다. 필자는 감히 권면하고 싶다. 목회자들이여, 만일 안식년을 교회로부터 얻거든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을 해보라. 그리하면 목회가 다시 보이고, 교인들이 달리 보이고, 새로운 목회 아이디어를 얻을 것이다. 세상 직업을 가졌던 이들이 목회자가 되면 목회를 효율적으로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젠, 주님이 새로운 목회지로 날 부르시고 있는 중이다. 아마 그곳에서는 매달 생활비가 통장에 들어올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기대하지는 않지만 목회자로서 교인들의 섬김을 받으며, 말씀을 가르치고, 목회할 것이다. 그러나 나의 목회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이루어지며, 교인들을 대하며, 예배를 인도하며, 설교할 것이다. 왜냐하면 내게 세상에 도전할 수 있는 야성, 면역이 생겼기 때문이리라. 목회자는 안정감이 아니라 사명감이 있어야 하며, 목회자는 적성이 아니라 야성이 필요하리라. 목회자는 세상을 향해 과감하게 도전하는 자여야 하리라. 비록 우리가 어떤 사역지에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13 6 17(월) 도현:조경현 목사
출처:USA아멘넷 독자공간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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