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주어야만 돌아오는 마음의 메아리  

 





마음은 자신의 가장 소중한 재산입니다
생각은 우물을 파는 것과 닮았습니다
처음에는 흐려져 있지만 차차 맑아지니까요

살다 보면 진정 우리가 미워해야 할 사람이
이 세상에 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원수는 맞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 마음속에 있을 때가 많았습니다

병은 육체의 병이지 마음의 병은 아닙니다
성한 다리가 절룩거리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다리에 생긴 이상이지
마음에 생긴 이상은 아니니까요

그러나 주변을 살펴보면 육체의 병 때문에
마음까지 고통받는 분이 더러 있습니다

이해가 되고도 남을 일이지만
그렇다고 마음까지 병들면 무척 곤란한 일입니다

마음은 우리 몸의 뿌리같은 것이라서
뿌리마저 병들면 희생은 어려운 일이 되고 맙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은 다이아몬드처럼
순수할수록 더 무게가 나갑니다

마음은 팔고 사지 못하지만
줄 수 있는 것이 자신의 가장 소중한 재산입니다


"생각은 우물을 파는 것과 닮았다고 하내요
처음에는 흐려져 있지만 차차 맑아지니까요"
참좋은 글귀 입니다

요즘 돈이면 무엇이든지 다 해결된다고 믿는      
황금만능주의 생각으로 사시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먼저 저세상으로 가신 돈부자들 ...
저세상 갈때 가져간것 아무것도 없습니다
세상 살기야 돈좀 있으면 편하게 살겠지요

세종대왕께서 무더운 여름에 에어컨 틀었겠습니까 ?
명성황후께서 맨션 아파트에 살았겠습니까 ?

우리는 지금 넘치는 행복속에서도 상대적 빈곤감과
상대적 박탈감에 빠져 힘들게 살지는 안는지 ?

가난한 자들이 행복지수가 높다내요
그렇다고 일부러 가난하게 살면 안됩니다

열심히 노력하여 많이 벌고 많이 나누며
주어진것에 감사하고 행복을 나누어 가지는
아름다운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순수!  그것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
공존의 질서 이며  아름다운 세상의 꽃 입니다
양심에 비추어 투명한 삶이 내모습이길 바래 봅니다


퍼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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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벌써 어둠이 걷히고 동녂이 밝아 온다
30분 후 우리 일행 7명은 그랜드 캐년 계곡을 항하여 아래로...
우~와~하는 탄성과 함께...밑으로...

3 시간여, 거의 8 마일(12km) 의 내리막 경사 길을 내려가는 동안
이어지는 절경...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아침 햇살을 받은 기암괴석들, 형용색색의 갖가지 색깔들의 바위,
계곡, 산들의 모양이 시시각각 다른 모양으로 변한다

연휴라서인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을 앞 질러 내려가며
드는 생각은 미안함이다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이런 장관, 숨이 넘어 갈듯 한 비경, 
벌어진 입을 닫을 수 없는 신비함의 절경을
혼자만 누린다는 아쉬움과 미안함이 앞선다

부모님을 모시지 못했고, 이제는 30살 전후의 아들,딸에게 
이런 세상을 보여 주지 못한 안타까움이 내내...

비행기에서 실 핏줄로 처럼 보이던 콜로라도  강이
하얀 물보라와 함께 보기에도 시원하게
파란 물줄기를 그리며 흘러 내린다

저 멀리 록키 산맥에 내린 눈이 녹아 흘러 내리는 물...
얼음처럼 차겁다
강 바닥에 앉아 내려 온 길을 올려다 보니 구름 한점 없는 하늘...
그 하늘을 찌를 듯이 솓아 있는 산 봉우리들...

한 시간 여,콜로라도 강을 따라, 계곡, 절벽 사이를 걸어
뒤쳐진 일행들과 합류...
7명이 휴게소에 앉아 주일예배를 드렸다

찬양과 기도...에스겔서 14장을 함께 읽고, 말씀...
주기도문으로 예배를 마치니 11시....
다시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말을 타고 오르 내리는 사람들,
콜로라도 강가 캠핑장에서 야영을 하고 올라가는 무리들...
사람들 틈에 섞여 계곡을 돌고, 절벽을 끼고 올라 간다

숨은 차 오르고 다리에 힘은 빠진다

두고 온 가족, 교회, 친구, 특히 인간의 한계라는 마라톤을 뛰며
나를 위해, 우리 가정을 위해 기도하는 친구들을
한 사람씩 머리에 떠 올리며 기도를 한다.

30분 마다 쉬던 것이 20분, 10분...한 모퉁이를 돌고 주저 앉는다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눈 앞의 이 바위 산 하나만
내가 태어난 한국 땅에 있었으면...
굽이 굽이 올라 온 길, 멀리 보이는 산 아래에서
올라 오는 사람들을 내려다 보며...
그리고 산 정상을 행해 앞서 가는 사람들를 보며...
내 인생, 삶의 위치는 어디일까...

일찌감치 앞장 선 선발대 뒤를 따라 드디어 산 정상에...
몇 년전 마라톤 골인 지점을 통과할 때의 성취감보다
더한 기쁨, 만족, 감격이...

더 없이 아름다운 날씨에...마음을 함께한 친구들...
돌아 갈 본향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신 주님,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주님을 찬양하면서....
오늘도 기쁘고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승리!!

글/ 김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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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쉽던 

예전에는 쉽던 일들이  힘들게 느껴지거나
만사가 귀찮고 하잖은 일에 짜증이 난다면
슬럼프(slump)에 빠진 것일 지 모른다.
슬름프는 늪과  같아서 발버둥 칠수록
  깊이
빠져 들지만 잘 극복하면  오히려 붐을 일으킬 수 있다.



1. 불평하기 전에 셋을 세라

슬럼프에 자주 빠지는  사람은 대개 불평불만이 많다.
그러나 엄청나게 불행하다면 불편할 여유조차 없다.
어떤 처지든 새상에서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이 있기 마련.
 부정적인 면에만  얽매여 불평을 키우다가
결국 자기 인생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지 말자.



2. 사소한 걱정을  버려라.

사소한 일에 걱정이 잦으면  자신감을 갖지 못하고
외부 환경에 대한 저항력을  떨어뜨려 슬럼프에 빠지게 된다.
이 정도면, 충분해' '지난 일은 생각지 말자' 등 자신에게
자신감을 불어 넣으며. 미련을 갖자 말고
기분을 반전 시키기 위해 노력하자.



3. 자신을 통제하라.

감정에 이끌리면  쉽게 마음의 안정을 잃고
난관에 부딪쳐 슬럼프에 빠진다.
그러나 자신을 통제할 수 있다면  몸과 마음이 편해 진다.
스스로를 냉정하게 바라보고  심호흡을 조절하거나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거야' 같은
말들을 되뇌며 자신을 안정시키도록 훈련하자.



4. 자신에게 만족하라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없는 것을 슬퍼하지 않고
가진 것을 기뻐하는 사람이 지혜롭다'고 했다.
사람은 자신의 부족함을  먼저 생각하고  남과 비교 하지만
필요 이상의 질투나 적대심은 스스로를 괴롭게 한다.
'지금의 나로 만족한다'라고 자신을 긍정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5. 황금률을 유지해라.

밥그릇이 10분의 8 만 먹으면  과식하지 않고
소화도 잘 되는 것처럼  일과 인간관계에서  느끼는 욕망도
필요한 만큼만 받아들이면  심신에 이롭다.
약간의 여유를 남기고  욕망의  10분의 8 만  채우는 것이
자기 폐이스를 가지는 지혜다.



6. 지기만의 생활리듬을  챙겨라.

좋은 밤을 찾다가 좋은 낮을 잃는  사람들이 많다'는
네델란드 격언처럼  최근 낮잠을 뒤바꿔 사는 사람들이
늘면서 스트레스가 커지고 슬럼프에도 쉽게 빠진다.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건강은 필수. 자기 몸이 보내는
경고를 무시하지 말고  스트레스에 제때 대처하면서
자기만의 생활리듬으로 살자





--좋은 생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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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난해도 마음이 풍요로운 사람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모든 것을 소유하는 사람입니다.

    남이 보기 부러워 할 정도의 여유있는 사람은
    모든 것이 행복해 보일 듯 하나
    실제로는 마음이 추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려움을 아는 사람은 행복의 조건을 알지만
    모든 것이 갖추어진 사람은 만족을 모를 터이니
    마음은 추운 겨울일지도 모르겠네요. 

    몸이 추운 것은 옷으로 감쌀 수 있지만
    마음이 추운 것은 어떻게 해결 할 수 있을까요. 


    사는 기준이 다 같을 수는 없지요.
    행복의 조건이 하나일 수는 없답니다.
    생긴 모양새가 다르면 성격도 다른 법
    가진 것은 적지만 행복을 아는 당신이면 좋겠습니다.


    비록 부유하지는 않지만
    남과 비교하지 않는 당신이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행복의 조건이기 때문이지요.
    남과 비교할 때 행복은 멀어집니다.
    그저 감사한 마음 하나만으로도
    당신은 행복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좋은생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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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수 와 순진*♡ 깨끗하고 투명한 유리잔 두 개가 있습니다. 한 잔에는 맑은 물이 가득 채워져 있고 다른 한 잔은 비워져 있습니다. 전자는"순수"라는 것이요 후자는"순진"이라는 것이죠. 순수라는 놈은 물이 가득 채워져 있어 더 이상 들어갈 틈이 없으니,깨끗함 그 자체이고요. 순진은 비어 있으므로, 그 안에 순수처럼 깨끗한 물이 담길 수도있고, 더러운 물이 들어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어떤 누군가가"순수"와"순진"의 차이를 묻더군요. 순수의 사전적 의미는"잡것의 섞임이 없는 것" 사사로운 욕심이나 못된 생각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순진"의 사전적 의미는 "마음이 꾸밈이 없이 순박하고 참되다" 세상 물정에 어두워 어수룩함 입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 삶의 의미를 되새겨 보게 됩니다. 살아가면서"순진하다"라는 말은 어리석다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반면 "순수하다" 라는 말은 세상을 살면서 자신의 소신이 있고, 주관이 뚜렷하다는 것에 물들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는 것 같습니다. "순진"이란 말은 어릴 때만 간직할 수 있는 말입니다. 어른이 되어도 순진하다면 세상을 모르는 무지한 사람입니다. 반면 순수는 누구나 가질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순수한 사람이 있습니다. 순수한 사람은 거짓이 없습니다. 순수한 사람은 자기 말에 책임을 집니다. 순수한 사람은 주관이 뚜렷합니다. 순수한 사람은 어떤 상황이든 흔들리지 않습니다 순수한 사람은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순수한 사람은 겸손의 미덕을 갖고 있습니다. 순수한 사람은 남의 잘못은 용서하지만 자신에게는 엄격합니다. 순수하게 살아간다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좋은 습관을 가지려 노력하면 순수해질 수 있습니다. 진정 순수해 누가 봐도 아름다워서 순수한 사람 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누가 봐도 아름답고,누가 봐도 부담이 없는, 순수를 사랑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좋은글 중에서]
        01. How deep the Father (우리를 향한 주의 사랑) 02. You Raise Me Up/소향 03. We want to see Jes (주 예수의 이름 높이세) 04. He is the Lord (그는 주님) 05. You laid aside Your (온맘다해 주를 찬양해) 06. 하나되게 하소서 07. Father God I wonder (놀라우신 주 하나님) 08. Come on and celebrate (와서 찬양하라) 09. Great is the darkness (주님 오소서) 10. As the deer (목마른 사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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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지도자의 조찬기도문

기독교인으로서 나의 감정은 나의 주님과 구세주를 위해서 전투사로서 내 자신을 모두 바치기로 작정 했습니다. 한때 외롭고, 고독하던 저에게 주님은 주님을 떠받지 않는 모든 주님의 적을 무찌르고 주님의 진실을 이 땅에게 여러분 동지들과 주님의 세상을 이루고자 여기 모였습니다.

우리의 주님이 마지막에 승천 하시며 그 악된 자들을 이세상에서 몰아낼수 있는 힘이 우리가 될 것을 한 기독교인으로서 사랑과 열정을 가지고, 우리들의 성경에서 읽었습니다. 우리의 주 예수님을 거부하는 그 악한 자들의 독소를 이세상에서 완전 퇴치하기 위한 전투를 우리는 해야 합니다.

2,000년후 바로 오늘, 심오하고 북받히는 감정으로 우리의 주님은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그사실을 되새겨 봅니다. 크리스찬으로서, 더 이상 내 자신이 그들로부터 속임을 더 이상 당하지 말고 진실과 정의를 위해 투쟁할 의무를 여러분과 다짐합니다.

또한 크리스찬으로서, 우리 크리스찬 자매와 형제가 고통스럽고 일그러진 얼굴로 그들로 부터 비난과 조소를 당할 때 분노를 느끼며, 우리 기독교 형제 자매님을 더 우월하게 주님 앞으로 선택된 자로서 당당히 몸과 영혼을 받치며 투쟁할 것을 맹세합니다.

그러하지 않는다면 2,000년전 바로 그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고 우리 구하신 주님을 욕보인 그들과 다를 게 없기 때문입니다.

아돌프 히틀러, 뮌헨 1932년 7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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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 앞에서 내가 교회를 어렵게 해서 되겠느냐"며 2년간 개척 금지 및 수도권에서 목회를 하지 않겠다고 삼일교회에 약속했던 전병욱 목사. 그가 17개월 만에 홍대에 '새교회'를 개척했다. ('전병욱 목사 중보 기도 모임' 블로그 영상 갈무리)

 
 
"전병욱 목사가 약속을 저버렸다."

여신도 성추행으로 삼일교회 담임에서 물러난 전병욱 목사가 지난 5월 21일 서울 마포구 홍익대 정문 인근에 교회를 개척한 가운데, 전 목사가 삼일교회와 약속한 사항들을 위반한 점 때문에 논란이 일고 있다. 전 목사는 2010년 사임 당시 2년간 개척 금지와 수도권 목회 금지를 약속하고 거액의 성 중독 치료비와 생활비를 보조받은 바 있다.

삼일교회 나원주 장로는 5월 22일 <뉴스앤조이>와의 전화 통화에서 "전 목사가 '하나님 앞에서 내가 교회를 어렵게 해서 되겠냐'며 2년간 개척을 금하며 수도권에서 목회하지 않기로 약속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약속을 지키지 않은 모습을 보면서 나 장로는 "지금은 (전 목사가) 말을 들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며 "바른 생각이 있으면 해서는 안 되는 일(개척)을 했다"고 개탄했다.

지난해 4월 11일 열린 평양노회 정기노회에서 이광영 수석장로는, 전 목사와 구두 약속이라며 △2년간 회개와 치료를 거치기 전에 개척 교회를 포함한 모든 목회 활동을 중단 △회개와 치료 후에는 삼일교회에 영향을 주지 않게 수도권을 벗어난 곳에서 목회한다는 내용의 청원을 노회 정치부에 제출했다.

하지만 노회는 절차상의 문제가 있다며 이를 부결했다. 평양노회 관계자는 "전 목사가 (청원 내용은) 구두로 이야기한 것이고 자신이 (정식 문서로) 사인한 것도 아니라며 취소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전했다. 결국 전 목사는 17개월 만에 목회 활동을 재개했고 서울 시내 중심지인 홍대에서 교회를 개척한 상태다.

사임 당시 성 중독 치료비와 생활비 명목으로 받았던 돈도 문제다. 올해 4월 9일 당회가 제직회에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전 목사는 치료비 1억 원과 생활비 1억 3천만 원을 받았다. 생활비는 향후 몇 년간 목회 활동이 어렵다며 전 목사가 직접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회 관계자는 "당회가 퇴직금을 주면서 내년(2013년) 4월까지 계산하여 생활비를 더 준 것"이었다며 전 목사가 약속한 기간을 어겼다고 지적했다.

치료비가 실제 사용되었는지는 불투명하다. 전 목사의 측근인 남동성 변호사는 4월 13일 전병욱목사중보기도모임(전중모)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교회 내 어떤 장로님께서 지속해서 (전 목사를) 중독자다, 치료가 필요하다는 식의 주장을 하였고, 급기야 전별금 중 1억 원을 치료비로 주었다고 주장한" 것이라며 "만일, 전 목사에게 1억 원은 치료비라고 얘기했다면 이를 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전 목사가 성 중독이 아니었다는 취지의 말이어서 1억 원의 명목이 묘연하다. 이에 대해 삼일교회 한 교인은 "(성추행 범죄가) 단순한 실수였다면 치료비를 받을 이유가 없다"며 전 목사가 교회에 돈을 돌려줘야 한다고 반박했다.

삼일교회 교인들은 전 목사의 개척 소식에 큰 요동이 없이 조용한 분위기다. 복수의 교회 관계자들은 장년부 등 이미 교회를 옮긴 사람 외에 추가로 몇몇이 나갈 수는 있지만 대거 이탈할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전망했다. 복수의 관계자들은 진(camp)별로 구성원에 대한 간사의 장악력이 강한 상황에서 교인들 각자가 교회를 빠져나갈 가능성은 드물다고 했다. 또 후임 목사 청빙이 원만하게 진행되는 것이 안도감을 주는 요인 중 하나라고 진단했다.

한편, 전 목사 사건의 실체 공개를 주장했던 공동 요청문 작성자들은 노회에 제출할 전 목사 면직 청원서를 준비 중이다. 이들은 청원서에 포함할 자료들을 수집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노회도 전 목사 개척 건으로 조만간 회의를 소집할 것으로 전해져 큰 논란이 예상된다.

정재원 / 한국 <뉴스앤조이> 기자



    퍼낼수록 맑고도 그득하게 고여 오는 샘물 사랑은 어쩌면 그런 것이다. 사랑의 샘물은 우리 가슴속에 마르지 않는 근원을 가지고 있어 퍼내면 퍼낼수록 많이 솟아나는 것이다. 사랑의 감정을 항상 가슴에 가득 담고 살아갈 때 우리는 행복을 느낀다. 사랑의 감정이 가슴에 넘칠 때 우리는 진실해진다. 사랑은 결코 큰일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주변에 있는 작은 것에게 따스한 시선을 보내는 것으로 사랑은 시작된다. 사실 우리는 거창하게 사랑을 찾으면서도 말로만 그칠 때가 잦다. 입으로는 사랑을 외치면서도 정작 마음의 문은 꼭꼭 닫아 두기도 한다. 주변의 작은 일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되어 훌륭한 결실을 맺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사랑이란 관심을 갖지 않으면 결코 솟아나는 것은 아니다. 당신의 가슴속에 있는 사랑이라는 샘물을 부지런히 퍼 올리도록 하라. 그럼으로써 메말라 가는 당신의 가슴이 더욱 윤택해질 것이다.
    행복을 담는 지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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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부모의 손님 아이들은 부모의 손님입니다 아이들은 그들을 위하여 마련된 공간으로 들어와 잠시ㅡ15년, 20년 혹은 25년간ㅡ 머문 후, 그들 자신의 공간을 만들기 위하여 다시 떠나 버립니다 부모들이 '우리 아들' '우리 딸' 이라고 부르지만 아이들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여러 면에서 아이들은 타인입니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알아야 하며, 그들의 강점과 약점을 발견하고, 아이들이 성숙하도록 인도하고, 그리고 아이들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합니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부부간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통해서 부모는 아이들이 불안해 하지 않고 자랄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 주어, 아이들이 자신감을 키우고 자기 자신의 인생의 길을 선택하는 자유를 발견하도록 격려하게 됩니다 -옮긴 글




부모가 주는 최고의 선물(The Great Gift of Parenthoot)

아이들은 부모의 손님입니다
아이들은 그들을 위하여 마련된 공간으로 들어와
잠시ㅡ15년, 20년 혹은 25년간ㅡ 머문 후,
그들 자신의 공간을 만들기 위하여 다시 떠나 버립니다

부모들이 '우리 아들' '우리 딸' 이라고 부르지만
아이들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여러 면에서 아이들은 타인입니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알아야 하며,
그들의 강점과 약점을 발견하고,
아이들이 성숙하도록 인도하고,
그리고 아이들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합니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부부간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통해서 부모는 아이들이 불안해 하지 않고
자랄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 주어,
아이들이 자신감을 키우고 자기 자신의 인생의 길을
선택하는 자유를 발견하도록 격려하게 됩니다


-옮긴 글


1. 능력 콤플렉스
능력있는 남자가 예쁜 여자를 얻는다라고 믿는 남자들이 이런 경우이다. 의외로 열등감이 심하며 자격증이나 학력 따위에 목을 맨다. 하지만 이런 남자가 능력이라고 믿는 것은 친한 친구마저도 경쟁자로 여기며 요령껏 출세하는 일을 뜻한다. 남자들은 남들보다 능력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수단을 갖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야 한다. 남성들은 자본가들에 의해 선택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능력 그 자체보다 학력 콤플렉스, 각종 연줄 콤플렉스,금전 콤플렉스 등이 연관되어 있다.

2. 마더 콤플렉스 결혼을 앞둔 남자로서 결혼 생활에서 만약 고부간의 갈등 상황이 생긴다면 나는 제3자의 입장으로 지켜볼 거야 라고 말하는 남자가 있다면 십중팔구는 이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있다. 이런 인물은 진로 선택에 있어 어머니의 영향을 입은 바 크고 어머니가 어디 놀러 가면 웬지 불안하기만 하다. 어머니가 좋아할만한 여자를 보면 바로 이 여자다라고 믿기 때문에 이 남자의 말은 잘 지켜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남성은 자기중심적이어서 연인이나 아내를 어머니의 대리자, 성의 도구, 허전할 때 위안을 주는 존재로,오로지 자신을 위한 사람으로만 여긴다. 구조적으로 보면 가부장제 사회에서 부자 중심의 가족관계가 유지되었고, 여성들은 낮은 지위를 아들을 해 보상받으려는 심리를 갖게 되었기 때문에 남아선호 사상은 여성의 삶에 나쁜 영향을 미쳐 왔을 뿐만 아니라 남성의 생애에도 부담을 주어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편 약한 정도의 마더 콤플렉스는 긍정적인 측면도 가진다. 어머니의 듯에 다라 바람직한 아들이 되고자 노력하면서 자신의 삶을 발전시킬 수 있다.
 
3. 차남 콤플렉스무거운 의무 대신에 재산 상의 보호를 받는 장남과는 달리 아무런 보장없이 사회에 던져지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고난과 개척 끝에 성장해나가는 경우가 많다. 진취적이고 모험적인 사고와 행동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장남에 비해 큰 일을 이뤄내는 경향이 많다는 사실이 역사적으로도 증명된다.
 
4. 카인 콤플렉스아우나 후배에 성공을 도저히 참아낼 수 없는 경우의 사람을 말한다. 윗 사람으로서의 권위와 위계 질서를 지나차게 강조한다. 후배를 경쟁 상대로 보기 때문에 항상 경계하고 두려워한다
 
5. 사내대장부 콤플렉스거물이 되어 사회적 인정을 받아야 한다 힘이 세고 강해 다른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아야 한다. 대장부는 대범해야 한다 등 강박관념에 쫓기며 인생의 목적은 성공과 권력을 쥐는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남자는 강하고 대범하며, 가족을 먹여 살려야하고, 성공해야 한다는, 즉 사내 대장부가 될 것을 강요받는 콤플렉스. "사내 대장부가 그래서 쓰나? "무섭긴 뭐가 무서워." "계집애처럼 울긴 왜 울어?" "남자애가 이렇게 까불 어?"등의 표현은, 주먹 센 학생이 우상이 된다든지, 학년에 따른 서열이 중시되어 선배에게 맞는 일들을 빚어낼 수가 있다.
 
6. 온달 콤플렉스재력이나 능력이 뛰어난 여성을 배필로 만나 신분상승 하려는 열망을 온달 콤플렉스라고 한다. 남자로서의 우월감을 내세우고 싶은데, 지신의 능력이 따르지 못할 때 발생하는 콤플렉스이기도 하다.가족 위에 군림하려는 모습 뒤에 아내의 재산이나 지혜를 바탕으로 발돋움하고픈 의존심을 갖고 있다. 경제력으로 집안을 일으키고, 현명함으로 남편을 훌륭하게 만든 평강공주를 부인으로 맞고 싶어한다. 재력이나 능력이 뛰어난 여성을 배필로 만나 신분상승 하려는 열망을 온달 콤플렉스라고 한다. 신데렐라가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듯 이 온달은 학벌과 능력으로 자신을 포장한다.
 
7. 지적 콤플렉스여성보다 남성은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여자가 감정적이고 비논리적인데 비해 남성은 이성적·합리적이란 그릇된 통념에 갇혀 있다. 여성이 상사로 부임하면 견디지 못하고, 여성을 대하는 태도가 비하적이다. 남성의 지적인 우월성이 중시되므로, 남성들은 자신의 지적 우월감이 손상될 때 자신의 남성다움에 불안을 느끼며, 같은 남성끼리 또는 여성과 겨뤄서라도 꼭 이겨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게 된다.
 
8. 외모 콤플렉스 외모에 대한 관심을 여성 전유물로 여기면 착각이다. 추남이어도 능력과 재담, 돈이 있으면 그만이란 건 옛말. 잘 생긴 외모가 이성 교제는 물론 사회생활에도 득을 가져다 준다는 의식이 강해지면서 현대 남성의 외모에 대한 갈등이 더욱 심화하고 있다. 남성다움을 나타내기 위해 남성은 키가 커야하고, 근육이 발달한 건장한 체격을 가져야 하며, 좋은 인상에 세련되지만 여자 같지않은 외모를 가져야한다는 생각이 이런 콤플렉스를 일으킨다
 
9. 장남 콤플렉스 "한번도 가족에게 어려운 사정을 털어놓은 적이 없다" "나를 믿고 의지하는 가족의 기대를 꺾는 게 두렵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다. 가족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자질과 욕구대로 살아가는 가족에 둘러싸여 힘겨운 장남 노릇을 하든 대부분의 장남은 모든 면에서 "장남 노릇을 잘해야 한다"거나 "장남노릇을 잘 못한다"는 콤플렉스에 빠져 있다. 부모를 모셔야 하며, 경제적인 책임을 져야하고, 동생들에게는 너그럽고 모범을 보이며 그들의 앞길까지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등 또는 "첫째가 잘 되야 동생들도 잘된다"는 등의 압력으로 진로 선택에 있어서도 자신의 적성보다는 가족의 기대에 부응하게 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10. 카사노바 콤플렉스 카사노바 컴플렉스라는 심리 상태는 모든 여성을 자신의 성적 대상 범주에 놓고 실제로 수많은 여성과 쉽게 관계를 맺었다가 끊는 행동을 말한다고 볼 수있다.

퍼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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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아름다운 시간은 
 
가장 아름다운 시간은 
사랑하는 시간이다.
 
우리에게 정말 소중한 것은 
정녕 중요한 것은 
당신이 어떤 차를 모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태워 주느냐는 것이다. 
 
정녕 중요한 것은 
당신이 사는 집의 크기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하느냐는 것이다. 
 
정녕 중요한 것은 
당신의 사회적 지위가 아니라 
당신의 삶을 어떤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느냐는 것이다. 
 
정녕 중요한 것은 
당신이 무엇을 가졌는가가 아니라 
남에게 무엇을 베푸느냐는 것이다. 
 
정녕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친구를 가졌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당신을 
친구로 생각하느냐는 것이다. 
 
정녕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느냐가 아니라 
당신의 가족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보낸 시간이 얼마나 되느냐는 것이다. 
 
정녕 중요한 것은 
당신이 좋은 동네에 사느냐가 아니라 
당신이 이웃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느냐는 것이다.
 
- 좋은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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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은 깊어야 고요합니다♡   
      
      홀로 우뚝 서기는 쉬워도 
      낮추어 굽히기는 어렵습니다.
      
      뜻이 있어도 세상이 그 뜻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그 좌절의 역경 앞에서 
      묵묵히 자신을 가르며 기다릴 일입니다.
      
      길고 짧은 것은 한 생각에 달려있고
      넓고 좁은 것은 한 마음에 달려있습니다.
      
      마음이 한가로우면 하루가 천년보다 더 길고 
      뜻이 넓은 사람은 
      좁은 방도 하늘과 땅 사이 만큼 넓습니다.
      
      벼도 익어야 고개가 숙여지고, 
      물이 깊어야 고요한 법입니다. 
      
      여유 있는 사람은 
      그것이 재주이든, 돈이든, 능력이든 
      내 세우지 않습니다. 
      
      커다란 재주가 있는 사람은
      자신의 재주를 의식조차 하지 않습니다.
       
      어리석은 자가 
      자신의 조그만한 잔재주를 드러냅니다. 
      
      큰 재주는 가만히 있어도 
      그 후광이 빛을 내뿜기 때문이고,
      잔 재주는 소리를 질러야 
      남들이 알까말까 하기 때문입니다.
      
      대인관계에 있어 외부적인 현상들을 보면 
      상대의 깊이를 알 수 있습니다. 
      자연적인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사기꾼의 특징은, 
      말이 많고 아는 게 많아 보이지만, 
      가만히 들어보면 
      빈 깡통의 요란한 소리뿐인 것을 알게 됩니다.
      
      
      -좋은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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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회 (Jesuit)

     

    예수회는 16세기 로욜라가 창립한 카톨릭 내의 결사 단체로 각 국에서 몰락해가는 로마 카톨릭의 권위를
    다시 세우고, 카톨릭 내에서 교황청의 권력을 옹호하며, 기독교를 핍박·견제하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예수회는 각 국에서 로마 교황청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정치, 사회, 종교, 사회조직 등에 침투하였고,
    목적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음모, 암살 등을 자행해 왔기 때문에 여러 나라에서 추방된
    경험이 있습니다.

    예수회는 종교개혁 이 후 종교재판을 주도하며 수 많은 기독교인을 학살하였고, 많은 나라에서 카톨릭을
    유지시키기 위해 정부와 협력해 기독교인이나 그리스 정교인을 고문하거나 강제 개종시켰습니다.

    예수회는 파시스트와 나치당을 지원하여 2차 대전을 일으켰는데, 2차 세계대전은 카톨릭 신자인 히틀러와
    교황청이 협력하여 세계를 정복하려고 했던 전쟁입니다.
    이 과정 중에 교황청은 히틀러의 대량 학살을 교사
    (敎唆) 내지는 방조하였고, 한 번도 비난한 적이 없으며,
    물심양면으로 나치를 지원하였습니다.

    예수회와 교황청 사이에도 권력 타툼이 있었고, 교황청의 권력을 장악한 예수회를 축출하기 위한 시도는
    교황의 암살 등으로 좌절 되었습니다.
    예수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프리메이슨의 사상과 조직을 흡수하여 창립되었고, 프리메이슨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가지고 있고, 많은 예수회 사제가 프리메이슨이라는 점입니다.

    유대인 일루미나티는 시온 의정서에서 일반 민중과 정치인은 머리 나쁜 소 같은 사람들이라며 경멸하지만,
    엘리트 결사 조직인 예수회는 존중하며 경쟁자로 여기고 있습니다.
    예수회와 프리메이슨은 공동의 이익을 위해서 때로는 협력하지만 서로 다른 사상과 기반을 가진 권력집단이며,
    언젠가는 제거해야할 적으로 교황청은 말세 때 프리메이슨에 의해 파멸될 것입니다.(계시록 17/16)

     

    * 목차

    1. 예수회의 실체

    2. 유럽의 예수회

    3. 예수회의 동양 선교

    4. 예수회의 기독교 박해

    5. 교황청과 예수회

    6. 2차 세계대전과 예수회

     

     

    1. 예수회의 실체

    a) 이그나티우스 로욜라 (Ignatius Loyla)

    예수회의 창설자인 로욜라(본명:이니고 로페즈 드 레깔데)는 1492년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로욜라 성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한 때 십자군에 참여한 적이 있으며, 신앙을 갖지 않은 방탕하고 잔인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스페인에서 정부 관리와 친위병으로 생활했습니다.

    그러던 중 스페인이 프랑스로부터 침략 당했을 때 팜펠루나 전투에서 다리에 총상을 입고
    로욜라 성으로 이송되었습니다.
    그는 마취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여러 차례 수술을 받으면서 극심한 고통을 경험합니다.
    결국 그는 다리를 절게 되었고, 그의 정신 상태는 극도로 예민해지게 됩니다.

    고통스러운 병상에서 그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성인들의 순교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진한 감동을 느꼈고, 사제의 길을
    걷기로 결심합니다.
    그는 당시 유행하던 영적 체험을 위한 신비주의적인 영성훈련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이를 위해 그는 오랜 금식과 갖은 육체적 고행을 시도했습니다.

    그는 철저한 신앙생활을 위해 무려 3일간이나 고해성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를 통해 그는 소위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의 경지에 이르러 성모 마리아 등의 환상을 보고, 각종 계시를 받음으로써
    선교의 발판을 마련합니다.
    로욜라가 가지고 있던 성격인 경건함과 처세술, 금욕주의와 세속적 지식, 신비주의와 냉정한 계산성 등은 그대로
    예수회의 특징으로 이어집니다.

     

    b) 예수회의 창설

    예수회는 1534년 'Assumption Day'(성모 몽소 승천 축일, 8월 15일)에 몽마르트의 노틀담 사원에서 조직되었습니다.
    당시 44세의 로욜라는 동지들과 함께 베니스에서 선교활동을 하였으나 종교 재판소의 제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회가 로마 교황청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을 맹세하자 1540년 로마 교황 바오로 3세의 승인을 얻게 됩니다.

    이로써 예수회는 교황의 관리 하에 선교, 고해성사, 설교, 자선사업 등의 권한을 받게 됩니다.
    1546는 예수회 사제가 교황청 신학자 자격으로 트랜트 종교회의에 참석함으로써 정치적인 색채도 띠게 됩니다.
    교황청은 예수회를 정치적인 도구로 이용하려고 했고, 예수회는 이에 부응하여 맡은 소임을 열성적으로 완수했기
    때문에 교황청의 신임을 얻어 점차 세력을 넓히게 됩니다.

    예수회 회원인 라네즈와 모론 추기경은 트랜트 종교회의에서 교황의 무오성을 주장하여 교황청의 권위를 높혔고,
    사제들의 결혼과 자국어 예배, 교황제도의 개선을 요구하는 개혁파의 주장을 교묘한 책략과 논법으로 일축시켜
    바오로 3세로부터 '교회의 수호자'라는 칭호를 받게 됩니다.
    예수회는 해외 선교에도 힘을 써 정신적 지도자로 성장합니다.

    예수회는 교황이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서 각국의 지도자를 포섭하는 정치조직으로 발전합니다.
    이를 위해 지도층에 대한 권위 있는 고해성사를 주관하고, 고위층 자녀에 대한 교육을 담당합니다.
    무섭게 성장하는 예수회의 세력에 당황한 교황청은 예수회 회원수를 60명으로 제한하기도 했지만,
    이러한 조치는 금세 풀렸고, 1556년 로욜라가 사망할 당시에는 전 세계에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c) 영성훈련

    로욜라는 알칼라(Alcala) 대학교에 머물면서 추종자들을 모아 혼의 치료를 하였습니다.
    사람이 기절할만큼 격렬했던 종교의식(신비주의적 영적 체험)은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많은 사람이
    모여 들었습니다.
    카톨릭 종교재판소는 1527년 4월 로욜라를 구속했고, 고문을 실시했지만 그는 자신이 큰 죄를 짓지 않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로욜라는 일체의 종교집회를 금지 당한 채 석방되었고, 파리의 몽떼이그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는 그 곳에서 영적 수련(Spiritual Exercises)에 관한 소책자를 배포하였고, 라네즈(Lainez)나 살메론(Salmeron)과
    같은 추종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한번 영적인 힘에 매혹된 사람들은 마약 중독자처럼 이를 지속하기 위해 로욜라를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련자들은 1달 동안 로욜라의 지도로 호흡법, 주문, 명상, 울부짖고 고함치는 행동 등을 교육 받고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행위는 자아의 의식을 잃게 해 불교에서 강조하는 무아지경에 이르게 하지만, 최면 상태에 빠져 쉽게
    마귀들림 현상을 겪게 됩니다.

    신비주의 의식을 하는 사람 가운데는 귀에 속삭이는 마귀의 음성을 듣는 사람이 많으며, 결국 살인이나 음란한 행동
    등을 하라는 음성을 듣게 됩니다.
    끔찍한 살인을 저지르는 연쇄 살인범은 대개 어릴 때 부모로부터 학대 받은 경험이 있으며 극심한 고통과 현실도피
    의식은 자아를 잃게 해 쉽게 마귀를 불러드립니다.

    제가 어릴 때 가족이 모두 성당에 다녔는데 어느 날 아버지가 성당에서 카셋트 테이프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마인드 콘트롤에 대한 테이프에 녹음된 내용은 심장박동 소리나 기관총 소리 같은 규칙적인 음이었습니다.
    그걸 듣고 있으면 알파파 상태가 유도되 정신집중이 잘 된다고 하는데, 요즘 나오는 엠씨스쿼어도 비슷한 원리입니다.

    뇌파란 뇌의 활동에 따라 일어나는 전류로 '활동상태의 베타파', '학습상태의 알파파', '명상상태의 세타파', '수면상태의
    델타파'로 나뉩니다.
    세타파는 의식 상태와 무의식 상태의 중간단계로 최면, 세뇌, 빙의가 가능한 상태이고, 정신세계의 상위구조이며,
    자기암시로 인한 행동조절이 가능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빛과 소리로 심신을 안정시키는 것은 정신병원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방식이고, 잘못하면 간질발작을 일으킬
    수 있으며, 자율적인 심신의 조절을 방해하고, 담배를 피듯이 감정조절을 기계에 의존하게 합니다.
    명상이나 기 수련, 참선도 비슷한데 주로 강조되는 것이 '규칙적인 호흡', '규칙적인 주문', '정해진 생각', '차분한 음악',
    '규칙적인 행위', '규칙적인 걸음걸이', '규칙적으로 반짝이는 불빛', '한 곳만 응시함' 등입니다.

    이를 통해 세타파 상태에 들어감으로써 무아지경에 빠지게 되고, 쉽게 접신하거나 유체이탈 등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귀신이 들리거나, 악령의 소리를 듣거나, 악령의 모습을 볾으로써 더욱 더 불안하고 힘든 삶을 살 수 있습니다.
    TV에서 나오는 최면상태에서 전생을 대답하는 주체는 내 영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악령입니다.
    우리 육신이 태어나면서 영은 하나님에 의해 새롭게 창조되며, 죽은 혼령은 절대로 다시 태어날 수 없습니다.

    오순절 계열의 교회에서도 이러한 신비주의적인 의식을 그대로 받아드려 성령체험 한다고 권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체험하는 현상은 '몸이 부들부들 떨림', '정신을 잃음', '울부 짖음', '황홀함', '큰 충격', '데굴데굴 구름',
    '개 처럼 짖음', '계속 웃음', '머리를 흔듦', '계속 춤을 춤' 등 이상한 육체적 표현입니다.
    이러한 것은 전형적인 마귀들림 현상으로 심할 경우 마귀의 집적주관도 받을 수 있습니다.

    인간은 원래 신비적인 체험을 좋아하며 마귀는 이를 이용해 자신에게 끌어들여 말 잘 듣는 노예로 만듭니다.
    물론 마귀가 수호령이 되어 그 사람의 앞날을 지켜주고 각종 재능과 능력을 선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고 마귀에게 의지함은 구원은 커녕 저주받을 행동이고, 영원한 불지옥행이
    보장되며, 결국 마귀의 지시에 따라 사회를 타락시키고 오염시키는데 앞장 서게 됩니다.

    서양의 마법사들은 정기적으로 여자를 납치해 피를 흘림으로써 사탄에게 인신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고, 그 외의 길은 모두 사탄과 마귀에게 나아가는 길입니다. (요한 14/6)
    또한 하나님은 인간이 자기 능력이나 마귀의 능력을 의지하기보다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면 솔로몬과 같은 지혜를 받을 것이요, 모세나 엘리야와 같은 능력을 받을 것입니다.

     

    d) 예수회의 사상

    예수회는 로마 카톨릭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도록 모든 활동을 전개하는 정치조직입니다.
    이를 위해 카톨릭 내에서 교황의 강력한 독제체제를 추구하고, 에큐메니컬 운동을 통해 기독교를 교황권 아래로
    편입시키려 하며, 각 국의 정치가가 교황에게 충성을 다할 수 있도록 노력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데 포섭, 음모, 선전, 선동, 교육, 선교, 반역 등이 동원됩니다.

    예수회 회원은 세뇌적 교육에 의해 상부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도록 훈련됩니다.
    그들은 이성과 도덕적 양심마저도 버리고 상부의 명령에 따라 살인도 자행할 태세를 갖추게 됩니다.
    로욜라는 "총재가 지시하는 것이라면 그 모든 것은 정의로운 것이며 온당한 처사임을 모든 회원은 명심해야 한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예수회의 수련은 군대의 훈련과 비슷하며 자기의 판단을 배제한 무조건적인 복종을 교육받습니다.
    로욜라가 포르투갈의 회원에게 보낸 서신에는 "교회가 검은 것을 흰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대로 받아드려야
    합니다." 라고 적혀 있습니다.

    어떠한 의심이나 가치관마저도 죄악시 되는 예수회 회원에게 절대적인 복종은 "자기 굴레로부터의 해방" 이라고
    칭송되어집니다.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이러한 예수회의 태도는 유럽의 거의 모든 국가로부터 추방당하는
    사태로 이어집니다.

     

    e) 예수회의 조직

    카톨릭 예수회는 6계급으로 이루어지는데 novices(초신자), scholastics(수학생), coadjustors(보좌주교),
    temporal(교구주교), professed of the three vows(세가지 맹세를 한 자), professed of the four vows
    (네가지 맹세를 한 자)가 있습니다.
    이 중에 상위 두 계급은 예수회의 운영과 간부 임명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네 번째 맹세는 로마 카톨릭 교황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한다는 특별한 충성의 표시이며 교황이 명령하는
    때는 어떤 일이든지, 어느 장소든지 가야 하며 의문을 제기해서도 안됩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이 명령들은 막강한 권한을 가진 예수회 수장에 의해 실행됩니다.

    예수회의 우두머리는 실질적인 총사령관으로서 수장(General)이라 불립니다.
    예수회 총재인 라네즈와 살메론은 예수회 총칙을 만들었는데 '예수회 총재는 독재체제로 한번 부임하면 죽을 때까지
    재임
    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예수회 수장에게 주어진 권력중의 하나는 지원자를 비밀리에 받아들여 입회식을 거행하는 것입니다.
    예수회의 법규에 의하면 수장은 죽을 때까지 로마에 거주해야 하며, 간부들도 직접 임명합니다.
    그의 임용권과 그가 제시한 의견은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됩니다.


    예수회 총재는 로마 교황청의 훈계자요 대리자며 보좌역으로 불리웠고, 이태리, 독일, 프랑스, 스페인, 영국,
    미국 등에 지회가 설치되었습니다.

    지회에는 총재가 임명한 감독관이 파견되고, 예수회의 재산은 총재가 직접하며, 그 책임은 교황만이 물을 수
    있습니다.

    모든 지부의 상관이나 수도원장은 예수회 회원에 관련된 모든 일과 회원들이 다루는 모든 사건을 자신의 상관에게
    매주 정기적으로 보고해야만 합니다.
    그러면 지부장들은 자신이 수집한 자료를 종합하여 수장에게 매월 문서로 보고합니다.
    또한 예수회의 모든 지부장들은 3개월에 한번씩 수장에게 직접 보고해야 합니다.

    이 뿐만 아니라 예수회의 감시와 고발체제는 매우 정교하게 짜여져 있어서 과거 수도원에서 공개적으로 잘못을
    고발하던 것과는 달리 모든 회원들은 비밀리에 자신의 상관에게 동료들을 고발해야 하며, 그 상관도 지부장이나
    수장에게 같은 방법으로 동료들의 잘못을 고발해야 합니다.

    심지어 수장의 잘못으로 예수회의 목적에 금이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수장도 조직의 감독을 받습니다.
    여섯 명으로 구성된 심의회가 수장의 행동을 감시하는데, 심의회는 네명의 보좌관과 수장의 잘못을 충고하는
    충고자, 고해신부로 이루어집니다.
    이들 중 한 사람은 항상 수장과 함께 회의에 참석해야 하며 수장은 예수회의 허락없이는 수장직을 그만두거나
    다른 성직, 관직을 받아들일 수 없고, 자격정지 당하거나 면직당할 수도 없습니다.

    예수회 사제는 주교의 통제를 받지 않으며, 1545년 교황 바오로 3세는 그들에게 사목권, 고해 청취권, 성례식 집행권,
    미사 집례권 등을 부여하였습니다.
    그들에게 허용되지 않은 것은 결혼식 주례 뿐입니다.

    예수회 총재는 강력한 사면권을 가지고 있는데 예수회 회원이 가입하기 전 후에 지은 모든 죄, 이단 죄 등을
    사면할 수 있고, 파문당한 자나 성무 금지조치를 받은 자도 충성을 맹세한 자는 사면할 수 있습니다.
    그레고리 13세는 예수회에 교역과 은행거래의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경제적 활동도 보장하였습니다.
    교황들은 이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국왕조차 파문하였습니다.

    1574년 피오 5세는 칙서를 내려 훗일 교황이 칙서를 내려 예수회의 권한을 축소한다 하더라도 예수회 총재가
    이를 회복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였습니다.
    교황이 이렇게 예수회에 엄청난 특권을 부여한 것은 예수회가 자신에게 절대 충성해 교황권을 옹호할 세력이기
    때문입니다.

    교회 권력이 상당 부분 예수회에 넘어감으로써 교황체제는 예수회에 의존하게 되었으며, 예수회 또한 절대적
    교황 권력의 비호 아래 성장함으로써 두 세력은 상호 의존적인 공생관계를 형성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흔히 교황을 'White Pope'(흰 교황), 예수회 수장은 'Black Pope'(검은 교황)이라고 불렀습니다.
    예수회는 겉으로는 교황에게 순종하나, 자신의 이익과 뜻에 맞지 않을 경우에는 언제든지 교황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예수회는 교황의 전위부대로서 사회 일선에서 활동하기 위해 정치가, 장성, 판사, 의사, 교수 등 사회 저명 인사들을
    포섭하였습니다.
    여러 국가의 황제와 귀족 성직자등도 예수회의 회원으로 활동하였고, 기독교 내에도 침투하여 기독교를 사분오열
    시킨 다음에 다시 통합해 교황권 아래로 편입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만약 카톨릭을 비판하는 개신교 목사가 있다면 그 교회에 침투해 각종 음해와 공작으로 그 목사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결국 교회에서 쫓겨나게 만들었습니다.
    오늘날에는 33,000명의 예수회 공식 회원이 공식 활동 중이며 이들은 교황권의 세계 지배를 위하여 불철주야 분주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f) 예수회 입단식

    후보자는 길고 엄격한 금식을 통해 육체적으로 쇠약하게 되고, 환각을 증강시키기 위해 입회식 전에 환각제를
    먹습니다.
    그 후에 신비적인 장치가 된 장소를 지나가게 되는데 이곳에는 사악한 환영들이 나타나게 하고 죽은 자를 부르는
    초혼, 지옥의 불꽃을 나타내는 화염, 해골, 움직이는 뼈, 인공천둥과 번개들이 장치되어 있는데 이 모든 것은 고대
    신비종교의 유산이고 프리메이슨 의식입니다.

    만일 세심하고 관찰당하고 있는 입후보자가 조금이라도 공포의 무서움을 나타내면 그는 영원히 하층계급에
    머물러 있게 됩니다.
    그러나 이 시험을 잘 통과하면 그는 더 높은 계급으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두 번째 계급의 입회식 때에는 오랫 동안 금식을 한 이후 눈을 가리운 채 울부짖는 소리와 끔찍한 소리가 들리는
    큰 동굴을 통과해야 하는데 이 때 그는 이러한 경우를 위해 준비된 기도문을 암송합니다.
    동굴의 끝에 가까이 가면 좁은 입구를 기어나와야 하는데 입후보자가 기어나오는 동안 묶인 헝겊을 누군가
    풀어줍니다.

    그가 동굴을 빠져나오면 자신이 사각형의 지하감옥에 있는 것을 알게되는데 그 바닥에는 매장할 때 쓰는 천이
    깔려있고 세 개의 램프가 움직이도록 장치된 해골과 뼈 주위에 희미한 빛을 비추어주고 있습니다.
    이 동굴은 죽은 자의 영혼을 불러내는 초혼의 동굴이며 '검은 방'(The Black Chamber)이라 불립니다.
    입후보자는 여기서 기도문을 외우는데 그의 모든 행동은 하나하나 감시됩니다.

    만일 그의 행동이 만족스러운 것이면 대천사를 나타내는 두명이 그 앞에 나타나서 피가 적셔진 흰천을 그의 이마에
    묶어 줍니다.
    이 천에는 비밀스러운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고, 목에 작은 십자가 형태를 걸어주며, 순교자들의 유골이 든 가방을
    그에게 줍니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입후보자의 옷을 모두 벗기어 동굴 구석에 쌓인 장작더미에 던져 놓고 칼로 자기 몸에 작은
    십자가를 그어 피가 나오게 합니다.
    이 때에 신비의식을 도울 동료들이 들어와 입후보자 몸 주위에 붉은 천을 둘러줍니다.
    이 천에 피가 베이면 자신들의 단도를 그의 머리 위에 둥근원의 형태로 빼어듭니다.

    바닥에 카페트가 깔리고 모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약 한시간 정도 기도를 드린 후 장작더미에 불을 붙힙니다.
    그러면 동굴의 안쪽 벽이 열리면서 천사와 유령으로 가장한 사람들이 판토마임처럼 줄지어 지나 갑니다.
    이 광대극이 진행되는 동안 입후보자는 다음과 같은 맹세를 합니다.

    "나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교황)의 이름으로 아직 나와 연관이 있었던 아버지, 어머니, 형제, 자매, 친구들과의
    모든 관계를 끊겠다고 맹세합니다. 나는 전에 내가 충성을 맹세한 왕이나 행정장관 혹은 다른 어떤 기관과의 관계도
    끊겠습니다. 이순간 나는 다시 태어났습니다. 나는 새로운 상관이 내가 행하고, 생각하고, 읽고, 배우고, 보는
    모든 일을 알기 원합니다. 나는 생명과 의지가 없는 죽은 시체임으로 모든 것을 나의 상관에게 양보합니다.
    마지막으로 나는 모든 유혹을 물리칠 것을 맹세하며 내가 어디에 있든지 이 조직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명심하겠습니다."

    이 맹세한 한 새로운 회원은 옆방으로 인도되고 목욕을 한 후, 흰 천으로 된 옷을 입고 축하연회에 참석합니다.
    그리고 그가 겪은 오랜 금식과 공포, 피로를 보상하기 위한 음식과 포도주를 마실 수 있습니다.

     

    g) 예수회 수장의 명령과 선서

    하부조직 예수회 회원이 지휘부로 승진할 때 수장은 동시에 그에게 단도를 주는데, 그는 칼날을 쥐고 그의 심장을
    향하여 칼끝을 겨누고 수장은 여전히 단도의 손잡이를 잡고 있으며 다음과 같이 지원자에게 말합니다.


    "내 아들아, 너는 이제까지 위선자로 행동하라고 훈련을 받아왔다. 로마 카톨릭 내에선 로마 카톨릭 신자로,
    그리고 심지어 네 자신의 형제들 사이에서도 스파이가 되어라. 누구도 믿지 말고 누구도 신뢰하지 말아라.
    개혁교도 사이에서는 개혁교도가 되어라. 위그노파 사이에서는 위그노파가 되고, 칼빈주의자들 사이에서는
    칼빈주의자가 되고, 프로테스탄트 안에서는 일반적인 프로테스탄트가 되어라.
    그리고 그들의 신뢰를 얻어내어 심지어 그들의 강단에서 설교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전적으로 열정적으로 우리의
    거룩한 종교와 교황을 비난하려 하는 것처럼 하라. 그리고 심지어 유태인 사이에서는 한명의 유태인이 되기까지
    변신하라. 그리하면 너는 교황의 충실한 군사로서 너의 예수회 조직에 이로운 모든 정보를 수집할 수 있을 것이다."


    "너는 스파이로서의 너의 활동을 명령받았다. 네가 가진 권력 안에서 가능한 모든 정보처로부터 통계자료, 사실들
    그리고 정보를 수집하고, 프로테스탄트 회원 그룹들과 모든 계급과 특정한 이교도들의 환심을 얻도록 행동하라.
    뿐만아니라 상인, 은행가, 법률가, 학교들과 대학교들 사이에서, 의회와 입법부, 법원과 주법원 안에서 또한 그렇게
    행동하라.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모든 방법들"로 행동을 같이 하라. 교황의 종으로서 우리가 죽을 때까지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 예수회의 회원의 최종적 선서(The Extreme Oath of the Jesuits)는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현재,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로우신 처녀 마리아, 은혜로우신 대천사 미가엘, 은혜로우신 성 세례 요한,
    거룩한 사도 성 베드로와 성 바울 그리고 모든 성인과 하늘의 신성한 성체들, 그리고 당신, 나의 영적 아버지,
    교황 바오로3세의 재임 중, 이그나티우스 로욜라에의해 조직되어 현재까지 이르는 예수회의 수장이 참석하신
    곳에서, 처녀의 태, 하나님의 어머니,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징벌의 이름으로 다음과 같이 선서하고 서약한다.

    거룩한 교황은 그리스도의 대자리이며 진실한 자요 지구상에서 카톨릭 혹은 우주적 교회의 유일한 머리이다.
    그리고 나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에의해, 거룩한 자, 교황에게 주어진 매고 푸는 열쇠들로 인해 그(교항)는 이교도
    왕들과 왕자들 국가들, 연방, 그리고 정부들, 모든 불법적인 것들을 그(예수 그리스도)의 신성한 허락없이도
    파멸시킬 힘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을 완전히 멸망 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할 수있는한, 나는 이교의 모든 침입자, 혹은 프로테스탄트 당국이든 무엇이든, 특히 독일,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루터 교회와 영국, 스코틀랜드의 현재의 과장된 권위들과 교회들, 그리고 아일랜드와
    미대륙과 다른 곳들에 현재 동일하게 세워진 조직들을 대적하는 로마카톨릭 교황의 교리와 그의 거룩한 권리
    그리고 유전을 지켜야만 하며, 지킬 것이다.

    또한 신성한 로마의 성모교회를 반대하며, 자신들이 침해되었다고 주장하는 모든 이들과 이교도들에 대해서도
    대항할 것이다. 나는 지금 프로테스탄트 혹은 자유주의자들의 이름을 딴 나라들, 왕들, 왕자들에대한 충성 혹은
    그들의 법령들, 행정관들, 혹은 사령관들에 대한 복종을 거부하고 그것들을 인정하지 않는다.

    나는 더 나아가 선서하기를, 영국, 스코틀랜드의 교회들, 칼빈주의자들, 위그노파들 그리고 프로테스탄트 혹은
    자유주의자들이라는 이름의 교리들은 비난받아야 마땅하며 그것들은 스스로 파멸된 것들이며, 그것들을 버리지
    않는 자들도 동일하게 비난받아야 한다.

    나는 더 나아가 선서한다. 나는 스위스, 독일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영국, 아일랜드, 혹은 미국, 혹은
    내가 가게되는 어느 나라나 아무 영토 안에서, 내가 있는 어느 곳에서든 거룩하신 분 모두, 혹은 그 대리인중 누구라도
    협조하고, 협력하며, 조언할 것이며 이교 프로테스탄트들 혹은 자유주의자들의 교리들을 근절시키고, 모든 그들의
    위선적 세력들과 왕권들을 파괴하기 위해 전력을 다할 것이다.

    나는 더 나아가 서약하고 선서하기를, 내가 제거됨을 무릅쓰고, 어떤 종교가 이교라고 판단될 때, 어머니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서, 이교도들이 나를 신뢰하도록, 때때로 비밀을 유지하고, 어머니 교회의 대리인들의 충고들을
    은밀하게 간직하며, 상황에따라, 직접적으로든 혹은 간접적으로든, 대화상으로나, 서면으로나 누설되지 않도록
    비밀을 유지하면서 당신, 영적 아버지 혹은 이 신성한 수도회의 누군가가 나에게 지시하거나 명령하거나 제언하는
    모든 것들을 실행한다.

    나는 더 나아가 서약하고 선언한다. 나는 어떤 나 자신의 의견이나 혹은 어떤 의지도 갖지 않고 혹은 어떠한 심리적
    두려움도 품지 않으며, 심지어 시체나 시신처럼, 그리고 주저하지 않고 내가 교황과 예수 그리스도의 군대
    상급자들로부터 받은 모든 개개의 명령들을 복종할 것이다.

    나는 내가 파송되는 세계의 어느곳, 북극의 빙하 지역, 아프리카 사막의 불타오르는 모래지역, 혹은 인도의 정글,
    유럽 문명지역의 심장부, 혹은 아메리카 야만스런 미개인들의 야생 소굴이라도 갈 것이다. 불평하거나 투덜거림 없이,
    그리고 나에게 하달되는 모든 명령들에 복종할 것이다.

    나는 더 나아가 서약하고 선서하기를, 나는 기회가 되면 비밀리에 혹은 공개적으로 모든 이교도들, 프로테스탄트들,
    자유주의자들과 무자비한 전쟁을 일으키고 싸울 것이다. 지구상에서 그들을 전멸시키고 근절시키라고 지령받은
    것들을 실행함에 있어 나이, 성별 혹은 조건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악명높은 이교도들을 목메달고
    불태우고, 쇠약하게하며, 끓여죽이고, 채찍으로 치고, 가죽을 벗기고, 산 채로 매장해 죽일 것이다. 그 여자들의 창자와
    자궁을 끄집어 내고, 그들의 신생아들의 머리를 벽에 처박아 죽일 것이며, 영원히 혐오스런 그 종족들을 전멸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할 것이다. 공개적으로 이와 같이 할 수 없을 상황에서는 나는 비밀리에 독이 든 컵으로, 목졸라 죽이는
    끈으로, 강철 단검으로 혹은 납총으로, 이교도들의 사회적 조건이 어떻든, 이교도 개인 혹은 개인들의 명예, 계급, 위엄,
    혹은 권위를 고려하지 않고 공개적이나 비밀리에 교황 혹은 거룩한 교회 예수회의 상급자들의 대리인들로부터 명령을
    하달받을 때는 어떤 때에도 즉시 암살해 버릴 것이다.

    나는 이 자리에서 나의 생명과, 나의 혼과, 모든 나의 힘을 바칠 것을 서약하며, 그 증거로써 내가 지금 받은 이 단도를
    가지고 나의 피로써 여기 내 이름을 쓸 것이다. 그리고 내가 거짓이었거나 결정을 내림에 있어서 연약해질 경우 교황
    군대의 내 형제들과 동료 군사들은 내 손과, 내 발과, 그리고 귀에서 귀까지 찢어지도록 내입을 찢으며, 내 목과,
    내 배를 째고 그 안에 염산을 넣어 태우고, 지상에서 내릴수 있는 모든 징벌을 내린다. 그리고 내 영혼은 영원히
    지옥에서 사탄에의해 고통 받으리라!

    나는 은혜로우신 성삼위일체와 내가 지금 받아, 실행하고, 신성불가침으로 내 신체의 일부분으로 지켜야할 은혜로우신
    성체로 맹세하며, 내가 이 서약을 지킬 것을 진정으로 원한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모든 하늘과 영광스러운 하늘의 성체를
    이 자리로 초청한다.

    여기 증거로 나는 이 거룩하고 은혜로우신 성체를 받고, 나아가 내 자신의 피로써 이 단도의 끝으로 나의 이름을 쓰며
    거룩한 수도회의 표면에 봉인한다."

    (그는 수장으로부터 성체용 빵을 받고 그의 이름을 단도의 끝으로 그 가슴 상처에서 흘러나온 그 피를 적셔 쓴다.)

     

    h 예수회의 교육

    예수회는 회원들에게 성경도 못 읽게 하고 주입식으로 교리와 사상을 교육합니다.
    또한 원활한 사회생활을 위해 다양한 학문을 공부하고, 예의범절이나 친절한 에티겟, 화법까지도 교육받습니다.
    예를 들어 여인들에게 칭찬을 하거나, 생일 선물을 하고, 관심을 표명함으로써 환심을 사는 방법도 교육받습니다.
    예수회가 돈 많은 미망인에게 접근하는 이유는 정신적으로 제압하거나 수녀원에 보내 재산을 빼앗기 위함입니다.

    *
    예수회에서 배우는 항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예수회의 새로운 지부를 세우는 방법

    2. 예수회 회원들이 국왕이나 왕자 혹은 유명한 인물들과 친분관계를 갖고 유지하는 방법.

    3. 정부에 큰 영향력을 가진 인물들과 예수회를 연결시키는 방법

    4. 왕이나 유명한 인물의 고해신부에 대한 정보.

    5. 다른 종교 단체나 성직자들을 관찰하는 방법

    6. 부유한 과부들을 회유하는 방법

    7. 과부의 자녀들을 종교적으로 교육시키는 방법

    8. 예수회가 운영하는 대학 수입의 증가방법

    9. 예수회 회원이 지켜야할 개인 사생활에서의 기준.

    10. 예수회 회원들을 계속 예수회에 남아있게 하고 회원들 사이의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방법

    11. 젊은이를 예수회에 입소시키는 방법

    12. 수녀들이나 종교적으로 신실한 여자들에게 대하는 행동이나 규범.

    13. 예수회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일반적인 방법들.

     

      h) 예수회에 대한 명사들의 경고

    "나는 죽는다...제수이트를 공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교황 끌레망 13세-

    "매우 위험한 자들! 그들은 절대로 제국에서 용납되지 아니할 것이다." -나폴레옹 1세-

    "진리의 우물에 독약을 탄 자들"  -토마스 칼라일-

    "제수이트들은 영원히 박멸되어야 한다." -교황 끌레망 14세-

    옥스퍼드 대학 토론회는 "로마 카톨릭교회는 서방 세계의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크게 위협하는 종교"라는
    동의를구하는 가부투표에서 387명중 220명이 이에 동의하였다.
    -The Times"1960.1.29.

    "제수이트들은 피의 행동에는 명수들이다."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

    "제수이트...흑암, 잔인, 배반, 전재독재제, 죽음"  -존 아담스 대통령-

    "만약 미국이 자유를 박탈당하는 날이 온다면 그것은 로마 카톨릭 체제를 통하여 올 것이다." -죠지 워싱턴 대통령-

    "우리를 압도하는 한 역사적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것이니 당신의 자녀들을 카톨릭교 사제들로부터 피신시켜라.
    그렇지 않는다면 그들은 당신의 자녀들을 인류의 적으로 만들 것이다."
    -W.K.클리포드 교수

     

     

    2) 유럽의 예수회

    a) 16.17 세기의 예수회

    이탈리아에서 예수회는 남부의 나폴리와 북부의 파르마에서 번성하였지만 많은 물의를 일으킨 끝에 1606년
    추방당했습니다.
    포르투갈에서 예수회는 정치적인 권력을 장악하고 국정을 좌우하였습니다.

    스페인에서는 나잇하르트(Neidhart)라는 예수회 신부가 수상인 동시에 수석 종교 재판장으로 국가의 전권을
    행사했습니다.
    국권을 장악한 예수회가 국고를 탕진하자 스페인은 점차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개신교도와의 갈등이 심했던 독일에서 예수회는 독일 남부의 바바리아 정부의 권력을 쥐고 개신교도를
    핍박하였습니다.
    재침례교도들에게는 추호의 관용도 베풀지 않고 수천명을 쇠사슬로 묶어 익사시키거나 화형시켰습니다.

    오스트리아에서도 예수회는 페르디난드 국왕을 통해 끔찍한 방법으로 개신교도를 처형하였습니다.
    헝가리에서는 예수회가 레오폴드 1세를 위시해 개신교도를 핍박하였으나 헝가리인이 반기를 들어 물러 섰습니다.

    예수회의 활동이 독일지역에서 초래한 것은 종교전쟁으로 인한 깊은 상처, 무력한 정치, 정신의 타락, 도덕의 부패,
    인구의 대량 감소와 독일의 황폐화 뿐입니다.

    스위스에서 예수회는 17세기에 무리하게 정치적 지배력을 확대하다가 18세기에는 경고를 받고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예수회는 사회 고위층의 고해신부를 장악했고, 정치인들과 친분을 쌓아나갔습니다.
    1620년 예수회는 카톨릭   교도들을 선동하여 개신교도 600명을 학살하였습니다.
    오늘날 스위스 헌법 51조에는 스위스 연방 공화국 내에서 예수회의 어떠한 교육적 문화적 활동을 금지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폴란드의 경우가 가장 심각한데 온건한 역사가조차 폴란드 멸망의 직접적인 원인이 예수회에 있다고 할 정도입니다.
    폴란드 내에는 수백만의 기독교인이 있었는데 예수회는 이를 허용하지 않고 카톨릭의 충성을 다 바쳐야 하는 정치의
    틀 속에 국민들을 묶어 놓았습니다.

    1558년 엘리자베스 여왕이 왕위에 올랐을 때 영국은 반수가 카톨릭 교도였고, 아일랜드는 완전한 카톨릭 국가였습니다.
    예수회 회원들은 엘리자베스 여왕을 몰아내기 위해 아일랜드에서 반란을 일으켰으나 진압되었습니다.
    그들은 낮에는 설교를 하거나 성찬식을 베풀고, 밤에는 고해성사를 하면서 전국적인 활동을 벌였으나 결국 엘리자베스
    여왕에 의해 추방됩니다.

    예수회는 여왕과 성공회에 대한 악성 팜플렛을 비밀리에 제작·배포하다가 발각되었고, 캠피온 신부가 국가 반란죄로
    교수형에 처해지게 됩니다.
    또한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국왕을 끌어들여 에딘버러에서 모종의 음모를 꾸몄으나 실패합니다.
    스페인 무적 함대를 통하여 영국을 위협하였으나 영국은 엘리자베스 여왕을 중심으로 단결하여 이를 극복했습니다.

    영국에서의 예수회 세력은 크롬웰(Cromwell)의 등장으로 더 큰 힘을 가지게 된 유대세력에 밀리게 되었습니다.
    예수회는 찰스 2세를 통해 부흥을 꾀하다 민중의 분노로 오히려 5명의 신부가 처형당했습니다.
    그러나 예수회는 전에 영국에서 휘두르던 권력을 다시 장악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제임스(James) 2세의 치하에서 예수회는 저메인(Germain) 신부(주2), 후계자인 콜롬비에르(Columbiere) 신부를
    통해 끊임없이 음모를 꾸몄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회는 제임스 2세를 통해 발판을 마련하려 했으나 이 역시 실패로 돌아 가고, 모든 예수회 회원은
    투옥되거나 추방되었습니다.
    영국 왕위는 프로테스탄트에게만 물려준다는 법률이 제정된 후에 예수회 외교관들의 행동은 많은 제약을 받게
    되었습니다. 

    프랑스에서 예수회는 국민의 1/7을 카톨릭으로 개종시키고, 상류층에 파고 들었으나 많은 사람들이 이들에 대해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회는 귀족 가문의 힘을 빌어 1572년 성 바돌로매의 개신교도 대 학살을 주동하였습니다.
    예수회는 종교전쟁을 피하기 위해 노력한 앙리 3세를 암살하였지만, 주동자인 예수회 회원 귀나르(Guignard)는
    교수형에 처해지게 되었습니다.

    예수회는 1592년 앙리 4세와 1594년 쟝 샤뗄 국왕의 암살 시도를 하였으나 결국 국왕으로부터 프랑스에서
    추방되게 됩니다.
    예수회는 루이 14세 때 국왕을 포섭하여 재기하여 권력을 장악했고, 개신교도를 핍박하였습니다.
    예수회는 군인들을 동원하여 개신교도를 고문하여 개종시켰고 수 많은 사람들이 순교하였습니다.

    예수회가 개신교도를 핍박하자 수십만명의 고급인력이 프랑스를 빠져 나갔고, 프랑스는 쇠퇴하게 됩니다.
    예수회는 18세기가 되서야 프랑스에서 추방되었습니다.

     

    b) 예수회의 교육

    예수회는 신비주의를 바탕으로 한 주입식 교육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카톨릭 신학대학 후버 교수에 의하면 "로욜라에게 성모 마리아는 가장 중요한 존재이자 종교적 헌신의
    근원이었으며, 예수회에 대대로 전수되었다. 예수회의 진정한 종교는 성모 마리아 숭배다."라고 하였습니다.
    로욜라는 자신이 영성훈련에 돌입할 때 성모 마리아가 영감을 불어 넣어 준다고 확신하였습니다.

    많은 예수회 회원들이 성모 마리아의 환상을 보고, 그녀의 아름다움에 매혹되고, 그녀의 도움을 받으며,
    그녀의 품에 안깁니다.
    천주교 주보에는 '원죄 없이 잉태하신 성모 마리아'란 구호가 적혀 있는데 이는 1845년 피오 9세에 의해
    교리로 채택되었으며 예수님의 신성을 성경에 근거 없이 마리아에게까지 확대한 것입니다.

    예수회는 성모 마리아의 다양한 유품을 만들어 내었는데 미카엘 성당에는 마리아의 옷자락, 머리카락,
    머리빗 등이 성물로 숭배되고 있습니다.
    자끄 뽕따뉘 신부는 성모마리아의 육체적 아름다움을 시적으로 표현하기도 하였습니다.

    배리(Barri) 신부는 '성모 마리아에 대한 일백가지 헌신으로 천국의 문이 열린다.' 라는 제목의 책에서
    조석으로 성모 마리아를 묵상하고, 천사들로 하여금 그녀를 찬양하게 하고, 마리아의 상징인 묵주를
    항상 갖고 다닐 것 등을 권장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구원을 보장하고, 악마로부터 영혼을 지켜줄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회의 주입적인 교육은 학문의 자율적인 발전을 간과시킴으로 경직되 형식화 되게 됩니다.
    따라서 시대의 따른 학문적 발전에 부응하지 못함으로 점차 도퇴되게 됩니다.
    16세기의 예수회의 사상은 진보적인 면이 많았으나 18세기부터는 시대에 뒤쳐지게 됩니다.

     

    c) 예수회의 정치 참여

    예수회 회원들은 고해신부로 각 국의 상류층에 접근해 정치에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17세기에 신부 나잇하르트(Neidhart)는 스페인의 수상이자 종교재판소장으로 정권을 장악했고,
    페르난데스(Fernandez) 신부는 평의회 의원이었습니다.
    라 셰즈(La Chaise) 신부와 그의 후계자들은 프랑스에서 각료직을 맡아 수행하였고, 페트르 신부는 영국의
    장관이었습니다.

    그들은 세속적인 것을 좋아하는 대중의 기호에 부응하기 위해 고해소도 편법으로 운영했습니다.
    원래 예수회는 명백한 위선과 범죄를 각종 변명과 억지로 넘기는 궤변으로 유명합니다.
    그들은 고해성사에서 죄를 고백한 여자는 죄가 사해졌기 때문에 간통죄를 범하여도 법정에서 당당히
    '아니오!'라고 대답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신부들은 중죄로부터 보호 받기 위해 '모호한 용어 사용', '자기 변명', '상대적 진리' 등을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그들은 '수도사나 성직자가 예수회를 비방한다면 살해해도 무방하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고,
    국왕을 암살하는 일도 경미한 죄로 여깁니다.

    예수회는 적대자나 탈퇴자를 거리낌 없이 제거할 정당성을 확립해 놓고 있습니다.
    그들의 궤변 중 하나를 보면 '만일 신부가 여인을 범하였고, 그 여인이 그 사실을 공개한다면 그 신부의
    명예는 더럽혀질 것이다. 그렇다면 그 신부는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하여 그 여인을 살해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예수회는 궤변을 통해 자신들의 악행을 선한 행실로 포장하고 있습니다.

     

    d) 예수회의 붕괴

    예수회는 유럽 여러 국가에서 번성하였으나 과학, 학문의 발전과 자유사상의 보급은 예수회의 지배를 거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회의 활동은 국익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했고, 예수회 신부들은 환전, 섬유산업, 식민지 교역, 흑인 노예를
    이용한 대규모 농장 경영 등 종교와 무관한 경제활동에 적극적이었습니다.

    해외 선교에 힘을 기울인 예수회는 피 정복민을 수탈하는 각종 경제활동에 참여하였고, 지금도 북 아프리카의
    가장 부유한 지주는 예수회 신부입니다.
    멕시코에서 그들은 은광과 설탕공장을 운영하였고, 파라과이에서는 차와 코코아 농장과 카페트 공장을
    소유하였고, 소를 키워 매년 8만두씩 수출하였습니다.

    팔라폭스(Palafox) 주교는 1647년 교황 이노센트 8세에게 "남 아메리카의 모든 부는 예수회가 장악하고 있습니다."
    라고 보고하였습니다.
    중국에서 예수회 신부들은 50%, 100%의 고리로 상인들에게 돈을 빌려 주었습니다.

    이러한 예수회의 탐욕과 부정, 음모와 권력장악은 어느 곳에서나 적의와 증오를 유발시켰습니다.
    그 결과 예수회는 18세기 중반까지 30여 차례의 추방을 당했습니다.
    예수회를 가장 먼저 추방한 곳은 전통적인 카톨릭 국가인
    포르투갈이었습니다.
    예수회와 포르투갈은 남아메리카에서 영토 분쟁을 하였고, 1757년 폼발 수상은 예수회 고해신부를 쫓아내고,
    예수회의 전도를 금지시켰습니다.

    프랑스에서는 1762년 4월 6일 예수회에 대해 다음과 같은 영장을 발부하였습니다.
    "위 단체는 문명국가에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단체이다. 그것은 위 단체의 본질이 종교적으로나 세속적으로나
    모든 권위에 적대적이기 때문이다. 위 단체는 종교라는 가면을 쓰고, 복음 완성이라는 진정한 목적을 외면하고,
    부정하며, 은밀하고 사악한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권력을 추구해 온 단체이다."

    결론적으로 예수회의 교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합니다.
    "그리스도의 정신을 모독하고, 시민사회에 유해하며, 국민의 권리와 왕권을 무시했고, 통치질서를 위협하였고,
    국가적 소요를 조장하였으며, 종교적이며 기본적인 모든 윤리를 파괴한 조직으로서 그들 가슴 속에는 극악한
    부패를 담고 있다."

    프랑스에서 예수회의 재산은 몰수되어 국고에 귀속되었으며, 예수회 회원들은 예수회 서약을 철회하고, 프랑스
    목사의 일반적인 규칙을 따를 것을 맹세함으로써 겨우 추방만은 면할 수 있었습니다.

    파라과이의 예수회 통치도 막을 내리게 되었고, 나폴리를 비롯한 이탈리아 도시에서도 쫓겨났습니다.

    스페인 부르봉 왕가마저도 식민지 뿐만 아니라 대도시에서 모든 예수회의 조직과 활동을 금지시켰습니다.
    스페인에 있던 6000명의 예수회 회원들은 감옥에 수감되어 있다가 교황의 판단에 맡긴다는 친서와 함께 교황에게
    보내졌는데 그들이 상륙하려 하자 대포 세례를 받았고, 그들은 여러 곳을 떠돌다가 결국 코르시카 섬에 정착했습니다.

    교황 클레멘트 13세는 예수회의 처벌을 요구하는 여러 국가의 탄원을 받아드려 예수회를 개혁하려 했으나
    독살 당합니다.
    클레멘트 14세는 결국 여러 국가의 압력에 굴복해 1773년 예수회의 해산 교서에 서명하였습니다.
    예수회 총재 리키 신부는 앙게 성에 감금되었습니다.

    예수회의 재산이 몰수되자 예수회는 이에 반항하여 교황을 비난하는 홍보 책자를 발간하는 등 반역을 도모했습니다.
    예수회를 탄압한 교황 클레멘트 14세는 결국 1774년 9월 22일 독살 당했습니다.

    여러 곳에서 추방당한 예수회 회원은 호의적인 러시아로 몰려들어 군대와 귀족 사회를 선동하고 러시아 정교회를
    위협하였습니다.
    급기야 짜아르가 직접 나서 1815년 12월 20일 예수회를 추방하였습니다.

    그러나 정치적인 이유로 예수회는 1814년 교황 피오 7세에 의해 재창립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다시 서방 세계에 발을 붙힐 수 있게 되었습니다.

     

    e) 예수회의 재기 (19세기)

    클레멘트 14세는 예수회가 해산되고 나서 "나는 나의 오른 팔을 잘라 버렸다."고 하였습니다.
    교황은 세계를 지배하는데 있어 필요한 정치적인 조직인 예수회가 없으면 힘을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피오 6세와 피오 7세는 예수회의 권한을 점차 회복시켰습니다.

    프랑스에서 나폴레옹은 예수회를 매우 위험한 존재로 보고 그들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왕정이 복구된 후 예수회는급성장 하였고, 전국 곳곳에 개신교도와 맞서 싸우자는 기념물을 세웠습니다.
    예수회 회원들은 또 다시 가는 곳곳마다 분란을 일으켰습니다.

    19세기에 예수회는 자유주의자들과 충돌을 빚어 1834년에 포르투갈에서, 1868년에 스페인에서, 1848년에
    스위스에서, 1872년에 독일에서 , 1901년에 프랑스에서 또다시 추방당했습니다.

     

     

    3. 예수회의 동양 선교

    인도에서 로마 카톨릭 포교는 하층민 사이에서 많은 성과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로버트 드노빌리(Robert de Nobili)가 1605년 바라문(Brahmon; 인도의 사성중 최고위의 승려계급)을
    포교하기 위해 그들의 기장(記章)과 생활방식을 받아들이고 1623년 그레고리 14세에 의해 인가된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그의 선례를 따르는 신부들은 바라문 개종자들을 실족시키지 않기 위하여 바라문들이 하층민에 대한 포교와
    성례전을 절대적으로 거부하는 한 새로운 카스트 제도를 지지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로잘리아(Rosalia)의 주교와 노베르트(Norbert)에 의해 로마 교황청에 보고된 이 시도는 1645년 이노센트
    (Innocent) 10세의 교서에서 성공하지 못하리라고 비난당했으며, 1669년에는 클레망(Clement) 9세, 1734년과
    1739년에는 클레망 12세, 1745년 베네딕트(Benedict) 14에게 거부당했습니다.

    똑같이 9명의 교황들에게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거부당한 중국식 선교방법은 1744년 베네딕트 14세의 교서에
    의해 마침내 허락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예수회 포교사들이 새로 만든 미사의식들은 결국 카톨릭에 힌두이즘을 융합시키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1700년 교황의 교서에 반대하던 예수회 포교사들은 중국황제로부터 예수회 포교사들이 행하는 의식은 우상숭배가
    아니라는 칙령을 얻어냈습니다.

     

     


    4. 예수회의 기독교 박해

    도미니크 수도회(Dominicans)가 지휘한 종교재판소(Inquisition)는 원래 예수회가 만들었으며 그들이 종교재판
    때 사용하던 악명높은 고문 방법도 예수회가 고안한 것들입니다.
    1545~1546년 사이에 포르투갈에 종교재판소를 설치한 사람은 로욜라 자신이였으며, 1655년 포루투갈
    종교재판소의 소장은 예수회 회원이였던 니타르드(F. Lithard) 추기경이었습니다.
    이 밖에도 곳곳의 종교 재판소와 개신교도의 탄압, 학살, 고문, 개종은 거의 예수회가 담당했습니다.

     

     

    5. 교황청과 예수회

    예수회는 교황청의 정치적인 기반이 되었고, 교황청은 예수회의 보호막이 됨으로써 상호 의존적이고 공생적인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그러나 예수회가 각 국에서 물의를 일으켜 쫓겨나자 교황청은 이들을 탄압했고, 예수회는 교황청을 음해하고,
    교황을 암살하면서 이에 맞섰습니다.
    교황청과 예수회 자신의 이익을 최 우선시 하는 권력집단이고 협력하면서도 때로는 견제할 수밖에 없습니다.

    19세기 들어서 예수회는 '하나님의 여인들'이라는 여성단체를 만들어 많은 교사와 기숙사를 설립함으로써
    세력확장에 나섰습니다.
    예수회는 성모 마리아 숭배에도 심혈을 기울여 예수회의 제안으로 1854년에 성모 마리아의 '무염 잉태설'
    (원죄 없이 잉태)이 교리로 발표되었고, 프랑스 등의 성모 마리아 출현 사건을 대대적으로 홍보하였습니다.

    1870년 바타칸 공회를 통해 믿음과 도덕적인 모든 문제에 '교황의 절대무오류성'이 선언됨으로써 교황의
    위상과 권위도 높아졌습니다.
    교황을지지하는 예수회는 점차 교황청을 장악했고, 마침내 지배하기까지 되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의 유행어 가운데 '교황의 펜대는 예수회의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예수회 회원 중 상당수가 프리메이슨이라는 점입니다.
    예수회 자체가 프리메이슨의 신비주의적인 영성훈련과 사상, 조직을 모방해 만들었기 때문에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회와 프레메이슨은 서로 다른 사상과 기반을 지닌 권력집단으로 때로는 협력하지만 언젠가는
    굴복시켜야 할 적입니다.

    한편 요한 바오로 1세의 급작스런 죽음도 프리메이슨과 관계가 있다고 합니다. 
    1984년 6월 영국에서 출간된 신의 이름으로라는 책에서는 요한 바오로 1세가 독살당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요한 바오로1세는 즉위한 후 교회 사상 유례없는 대개혁을 결단하려고 했습니다. 

    1978년 9월 28일 오후 5시 30분 바티칸 교황청의 국무장관인 잔 비로 추기경은 요한 바오로 1세로부터 호출을 
    받았습니다. 
    거기서 바로 추기경은 교황 자신이 조목조목 쓴 인사 이동 목록을 전해받았고, 교회사상 없었던 많은 해직
    대상자의 이름이 열거되어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명단에 실렸던 사람들은 바티칸 국무장관 아고스티노 카사롤리 추기경, 로마 부주교 우고 볼렛티 추기경, 
    바조 추기경, 바티칸은행 총재 폴 마칭쿠스 주교(현재 대주교), 조반니 베네리 추기경 등이었는데 이들 전원에겐 
    한가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들 모두가 프리메이슨의 단원이라는 것입니다. 

    인사이동 명단을 본 비로 추기경도 바티칸 내부의 프리메이슨 중 중심인물이었습니다. 
    요한 바오로 1세는 바티칸 내에 침투되어 세계통일을 꿈꾸는 프리메이슨을 일거에 제거하려고 했으나 완강한 
    저항에 봉착, 결국 교황 즉위 33일만에 의문의 죽음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6. 2차 세계대전과 예수회

    a) 1차 세계 대전

    20세기 초 유럽의 강대국들은 로마 교황청의 영향력을 벗어나 서로 연합하였습니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정교회) 등이 연합하였고, 교황청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곳은 오스트리아, 헝가리, 스페인
    정도였습니다.

    동 로마제국에서 발현한 그리스 정교는 발칸반도에서 번성하였고, 슬라브 민족을 기반으로 한 정교회를 믿는
    세르비아는 교황청과 오스트리아의 적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정교회는 러시아 짜르의 후원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세르비아를 응징하기 위해서 스페인의 부르봉 왕가와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의 합스부르크 왕가는 연합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 왕가)의 황태자 프랑소아 패르디난트(Francois-Ferdinand)가
    사라예보에서 마케도니아의 학생에 의해 암살당했습니다.
    이 일은 세르비아 정부와 아무 관련이 없었으나 오스트리아의 황제 프랑소와 조셉에게 충분한 전쟁 명분을
    제공했습니다.

    예수회 회원인 오스트리아 각료들과 교황청은 조셉 황제에게 전쟁의 불가피성을 강조했습니다.
    로마 교황청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독일을 이용하여 유럽을 정복함으로써 유럽에서의 옛 권력을 회복하려
    하였습니다.

    교황청은 우선 프랑스를 멸망시키기 위해 독일 연합 군대를 동원했습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은 수 많은 사상자를 낸 채 독일이 패배했고, 이로 인해 교황청의 위신은 크게 추락하였습니다.
    따라서 1919년 6월 연합국이 베르사이유 조약을 조인할 때 1차 대전을 조장한 바티칸은 협상 테이블에서 배제되었습니다.

     

    b) 예수회의 파시즘과 나치즘 지원

    1차대전의 실패로 교황청은 큰 손실을 입었는데 친 로마적 합스부르크 왕가는 무너졌고, 유고의 정교인들은
    로마의 속박에서 벗어났고, 러시아는 공산화되어 무신론자가 되었고, 독일은 완전히 파멸했습니다.
    예수회는 권세를 회복하기 위해 각 국에서 활동을 재개하였는데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에서는 샤를 황제를
    지지하였고, 이탈리아에서는 무솔리니를 후원하여 정권을 잡게 하였습니다.

    무솔리니는 전체주의자로 1차대전 제대군인들을 모아 파시스트당을 창립하였고, 1922년 10월 로마진군이라는
    쿠테타로 정권을 잡고 정치, 문화, 경제를 개혁해 독재정부를 수립했습니다.
    타키 벤추리 신부는 예수회 회원으로 당시 무솔리니의 고해신부였습니다.
    당시 교황청은 7억 5천만리라를 무솔리니에게 주고 바티칸에 대한 정치적 지배권을 확보하였습니다.

    히틀러는 무솔리니로부터 자극을 받았으며 나치즘은 파시즘의 전체주의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히틀러가 전체주의적 나치즘으로 강력한 군사력을 회복하자 바티칸은 또 다시 독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나치즘은 반 민주주의, 우생학적 인종 우월주의, 독일민족 지상주의, 전체주의, 군국주의, 반공주의 등을 바탕으로 한
    독재적 정치이념입니다.

    1차 대전 이 후 예수회 총재가 된 할케 폰레도코브스키는 오스트리아, 체코, 보헤미아, 폴란드, 헝가리, 크로아티아,
    바이에른(독일 남부) 등을 포함하는 중부와 동부 유럽의 카톨릭 국가 연맹을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습니다.
    이 새로운 중앙 제국은 두 개의 전선을 형성하는데 동부는 공산주의로 무장한 소련이고, 서부로는 개신교 국가인
    영국과 혁명사상으로 뭉친 공화국 프랑스입니다.

    바이에른(독일 남부)은 카톨릭 국가이고 히틀러는 카톨릭 신자였기 때문에 교황청은 나치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히틀러는 중대사안에 대해 교황청과 상의하거나 인가를 받았습니다.
    1924년 교황청과 바이에른은 협정을 맺었고, 베를린 주재 교황 대사인 파셀리는 1932년 7월 20일 반정부 시위를
    주동하고 군의 개입을 막음으로써 바이마르 공화국(당시 독일의 중심)을 붕괴시킵니다.

    예수회는 주로 오스트리아에서 활동하였고, 1933년 풀다(Fulda) 회합에서 독일 주교들은 히틀러가 발표한 선언
    (독일 사회주의 운동은 신성한 카톨릭 교리에 의거하고, 교회의 사명과 권리를 보장)을 받아드렸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카톨릭 정당을 이끄는 스투르조가 무솔리니에게 권력을 이양하였고, 독일에서는 카톨릭
    중앙당(Zentrum)의 대표인 폰 파펜의 지원으로 히틀러는 1933년 1월 30일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교황청의 외무대신 파셀리 추기경은 히틀러에게 반 카톨릭 종파를 척결하도록 건의했습니다.
    히틀러는 1933년에 유대인과 자유주의자 4만명을 45개 수용소에 분산 수감하였습니다.
    한편 교황청은 무솔리니의 이디오피아 침공을 비난하지 않았고 오히려 전쟁지지 발언을 하였습니다.
    파시스트는 1939년 알바니아도 침공했는데 이는 카톨릭 세력을 넓히려는 교황청의 계획에 부합하는 일이었습니다.

    한편 스페인에는 공화국이 들어서면서 교황에게 반기를 들었습니다.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스페인의 혁명군에게 군자금, 전쟁물자, 항공기 등을 지원하였습니다.
    교황은 스페인 공화국의 수반을 파문하고, 교황청과 마드리드 간의 영적 전쟁을 선포하였습니다.
    바티칸은 내란이 끝나기 20개월 전인 1937년 8월 3일 혁명군 프랑코 정부를 인정하였습니다.

     

    c) 2차 대전의 발발과 유럽의 카톨릭화

    독일 뮌헨에서 퍼레이드 하는
    오른쪽의 히틀러와 왼쪽의 무솔리니

    1938년 3월 히틀러가 베를린에서
    열린 독일의회에서 오스트리아의
    합병을 공표하여 지지를 받는 모습.

    왼쪽부터 히틀러(A. Hitler),
    괴링(R. Goering), 괴벨스
    (P. Goebbels), 헤스(R. Hess).

    1930년대의 경제 공황과 자본주의 열강의 경제 블록화는 식민지가 부족한 독일을 곤경에 빠뜨렸습니다.
    1937년 독일과 이탈리아와 일본은 3국동맹을 맺고 영국, 프랑스, 소련에 대항하였습니다.
    1937년 독일은 오스트리아와 체코를 병합함으로써 중부 유럽의 세를 넓혔습니다.
    히틀러는 산업을 발전시켜 전 후 보상금 등으로 피폐한 경제를 일으켰고 군사력을 대폭 증강하였습니다.

    1939년 독일은 소련과 불가침 조약을 맺음으로써 서부전선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독일은 폴란드와의 영토 협상이 결렬되자 1939년 9월 1일 폴란드를 침공하였고,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에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2차 세계대전은 발발합니다.
    히틀러, 괴벨스, 히믈러 등은 카톨릭 신자였고, 중대사를 결정할 때는 항상 교황청과 협의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은 나치와 교황청이 힘을 모아 유럽을 정복하려 했던 전쟁입니다.
    교황청은 2차 대전을 전후해서 독일의 무력을 이용해 비 카톨릭 교도를 제거하고, 세력을 넓힐 수 있었습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병합 때 비엔나의 대주교인 이니찌(Initzer) 추기경은 "히틀러 총통은 하나님의 섭리를
    따르고 있으므로 신도들은 독일 제국을 받아드려야 한다."는 선언문을 발표해 독일군을 환영했습니다.

    독일과 병합된 체코 의원 중 일부는 카톨릭 사제였고, 그들은 교황청의 허가로 공직을 겸할 수 있었으며,
    그들 중 한명은 국가 원수로 임명이 되었고, 최고 영예인 철십자 훈장을 받았습니다.

    1941년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유고슬라비아를 침공하여 '크로아티아 독립국'이란 위성국을 만들었고 루이 바소
    (Louis Barthou)라는 테러리스트를 수상으로 앉혔으며, 크로아티아는 이에 대한 보답으로 그리스 정교인들을
    학살하였습니다.

    이 결과 30만명의 세르비아인과 유대인이 추방되었고, 50만명이 학살되었으며, 24만명의 정교회 신자가
    고문과 협박으로 개종되었습니다.
    이를 주도한 경찰총장 등 공직은 카톨릭 사제들이 차지했으며, 가장 끔찍한 수용소인 자세노바크(Jasenovac)의
    소장인 미로슬라프 필리포비치(Miroslav Filipovitch) 또한 사제 출신입니다.

    슬로바키아 공화국의 수상이 된 예수회 회원 티소(Tiso) 경은 "카톨릭 정신과나치주의는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함께 세계를 개조하는데 힘을 모았다."고 선언했습니다.
    1940년 6월 바티칸은 라디오로 티소의 선언문이 교황의 승인을 얻었다고 발표하였고, 티소 정권은 국민의 20%에
    해당하는 개신교도에 대해 탄압을 가했고, 정교회 신자들을 카톨릭으로 개종시켰습니다.

    프랑스에서는 F.N.C.(카톨릭 국민 연합회)가 조직되어 드 카스텔노(de Castelnau) 장군이 선임되었고,
    3백만명의 지지자가 참여하였습니다.
    78세의 이 군 장성은 파시스트적인 교회 선전 전략의 기수가 되었습니다.
    F.N.C.는 카톨릭의 행동대원으로 예수회 신부들이 창설에 일조하였습니다.

    예수회는 '예수 성심회'를 통하여 F.N.C.를 결성, 조직하였습니다.
    교황 피오 11세는 "카톨릭 행동대는 신념에 찬 사도들이다."라고 하며 F.N.C.를 지지하였습니다.
    또한 프랑스 파리의 카톨릭회 회장 보드릴라르 추기경은 "히틀러의 전쟁은 유럽 문화를 수호하고자 착수한
    숭고한 사업이다." 라고 언급하였습니다.

     

    d) 히틀러 측근과 예수회

    대주교 세자르 오르세니고(Cesare Orsenigo)
    주독 교황청 대사가 1936년 1월 베를린에서 열린
    공식 만찬에서 히틀러와 담소하고 있다.

    1934년 새로운 성직자-파시스트 정관 선언 입회한,
    작은 돌푸스(Dollfuss-오스트리아 독재자)와
    오른편의 인니체르 추기경(Cardinal Innitzer)

    스페인 카톨릭 성직자들이 1937년 산티아고
    드 콤포스텔라에서 파시스트들(독재자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다.

    스페인 시민 전쟁동안 카톨릭 “개종작업”
    (신부들이 대포와 총을 들고 시민을 사살하고 있다).

    히틀러는 교황청과 반 카톨릭주의자들을 섬멸하기로 조약을 체결하고, 자유주의자와 유대인을 가둘 수용소를
    건립했습니다.
    그 곳에 수용된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강제 노동에 시달리거나 학살당했습니다.

    히틀러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예수회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지금까지 세상에서 카톨릭 교회의 성직자 제도보다 더 위대한 것을 보지
    못했다. 나는 이 조직을 대대적으로 수용하고자 한다. 비밀리에 사람들을 유도해 갈 기관을 설립할 것이며,
    그 기관을 이용해 젊은이들을 선동하며 세계를 진동시킬 것이다."

    SS(독일 친위대)는 예수회의 영성훈련과 규칙을 본받아 히믈러가 조직하였습니다.
    SS의 조직은 카톨릭 교회의 성직제와 거의 유사하며, 베벨스보르크(Webelsbourg)라는 SS의 본부는
    'SS 수도원'이라고 불리웠습니다.

    독일에서 활동한 교황의 밀사 폰 파펜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제 3제국은 교황의 숭고한 정신을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이를 실천으로 옮긴 첫 번째 세계적 권력이다."
    여기서 '실천으로 옮긴다'란 말의 의미는 반 카톨릭교인을 척결한 것을 의미하며 UN의 공식 집계로 무려
    2천 5백만명이 수용소에서 희생되었습니다.
    폰 파펜은 나치와 교황청의 연결 고리 역할을 했으며, 교황이 제시한 안을 나치 수뇌부가 받아드리도록
    설득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나치 정권의 열렬한 선전장관이었던 조셉 괴벨스는 예수회 대학에서 신학을 교육을 받았고, 로욜라가 주장한
    도덕적 상대주의를 주장하였습니다.

    유대인 학살의 주범이자 나치 독일의 2인자인
    히믈러 역시 예수회 출신입니다.
    히틀러는 "나는 히믈러가 이그나티우스 로욜라로 보인다네!" 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는 친위대와 게슈타포와 독일 경찰의 사령관인 히믈러가 가장 성직자다운 면모를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히믈러의 부친은 카톨릭 학교 교장이있고, 형은 수도사이며, 삼촌은 예수회 회원이었습니다.

    예수회의 총재 폰 레도코브스키 백작은 예수회와 독일 사이에 작전을 수행할 첩보기관을 기획합니다.
    그 결과 친위대의 중앙 안전부 안에 한 기관이 창설되었는데 대부분의 요직은 검은 제복을 입은 성직자들이 차지했고,
    최고 요원 중 한 사람은 예수회 신부 히믈러였습니다.
    히믈러는 전쟁이 끝난 후 도망다니다가 1960년 이스라엘 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교수형 당했습니다.

     

    e) 죽음의 강제수용소와 바티칸

    아유슈비츠 수용소

    독일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

    독일 예나의 수용소

    독일 바이마르의 시체소각장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설치한 강제수용소를 KZ(Konzentrationslager)라고 합니다.
    KZ는 A.히틀러의 나치스 독일이 구금·강제노동·살육을 위하여 국내외에 설치한 감옥으로 1933년 2월 제정된 ‘국민과
    국가의 방위령(防衛令)’에 의하여 그 해 수십개 지역에 설치되었습니다.

    공산당원·사회주의자·민주주의자 등 모든 반(反) 파쇼주의자와 나치스체제에 순응하지 않은 자들을 일반국민으로부터
    고립시켜 말살하고, 나아가서는 전국민에게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목적에서, 반대파나 교도소에서 만기석방된
    반 파시스트의 대부분이 아무런 재판절차도 거치지 않고 SA(나치스돌격대), SS(나치스친위대) 등에 의하여 수용소로
    끌려가 기한도 없이 구금되었습니다.

    1934년부터 히틀러를 총사령관으로 하는 SS가 수용소의 관리를 맡아, 정치적 반대자에 이어 인종적·종교적 이유에서
    유대인과 불복종하는 그리스도인을 구금하고, 나중에는 일반범죄자·변절자 등도 수용하였습니다.
    개전(開戰) 후, 파시스트와 그 배후의 융커들은 폴란드와 소련의 일부를 독일인의 이주지역으로 만들기 위하여 그
    지역의 원주민을 전멸시키려고 그들을 점령지구에 설치한 절멸(絶滅)수용소에 구금하는 등, KZ는 타국민 특히
    슬라브인·유대인의 조직적 근절시설로서의 기능을 발휘하였습니다.

    그 실례로서 폴란드에 설치되었던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루블린 근교 마이다네크의 가스실(室), 시체소각장 등을
    들 수 있습니다.
    KZ는 처음 수용인원 1,000명 안팎의 소규모 시설로서 수십 개소에 산재해 있었으나, 그 뒤 세계여론이 두려워
    작센하우젠을 비롯한 5~6개소의 대수용소로 통합하였고, 1938년 H.W.괴링이 유대인의 절멸을 제의한 이래,
    1100만명의 유럽거주 유대인 중 약 600만 명이 학살되었고 그 중 180만명이 어린이였습니다.

    아우슈비츠(Auschwitz)는 폴란드 남부 비엘스코주(州)의 도시로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건립되었습니다.

    1940년 4월 27일 유대인 절멸(絶滅)을 위해 광분하였던 H.히믈러의 명령 아래 나치 친위대(SS)가 이곳에 첫번째
    수용소를 세웠으며, 그해 6월 이 아우슈비츠 1호에 최초로 폴란드 정치범들이 수용되었습니다.
    그 뒤 A.히틀러의 명령으로 1941년 대량살해시설로 확대되어 아우슈비츠 2호와 3호가 세워졌고, 1945년 1월까지
    나치스 이곳에서 250만∼400만 명의 유대인을 살해한 것으로 추산됩니다.

    이로 인해 ‘아우슈비츠’는 나치스의 유대인 대량학살을 상징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수용소를 40개의 캠프로 나누었는데, 피수용자는 강제노동과 영양실조·전염병으로 죽거나 또는 ‘욕실·청결·건강’이라는
    등 거짓 푯말이 붙은 독가스실로 연행되어 학살되었으며, 일부는 의학실험 대상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학살된 자의 금니·모발 등은 자원으로서 회수되었습니다.

    이러한 학살은 히믈러가 지휘하는 SS와 게슈타포에 의해 자행되었습니다.
    1942년 프랑스에서 유대인을 탄압하는 조치가 내려지자 프랑스의 카톨릭과 개신 교회가 이의를 제기했으나 카톨릭
    당국자에 의해 거부되었습니다.
    히틀러는 카톨릭 람바흐 학교를 다녔고, 수도원 성가대원이었으며, 나치의 기장인 철 십자가는 수도원 원장
    하겐(Hagen) 신부의 전령관의 표지에서 따 온 것입니다.

     

    "나는 죽는다...제수이트를 공격하는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교황 끌레망13세-


    "매우 위험한 자들!그들은 절대로 제국에서 용납되지 않을것이다" -나폴레옹 1세-


    "진리의 우물에 독약을 탄 자들" -토마스 칼라일-


    "제수이트들은 영원히 박멸되어야 한다" -교황 끌레망14세-
     
    옥스퍼드 대학 토론회는"로마 카톨릭교회는 서방세계의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크게 위협하는 종교"라는 동의를 구하는
    가부투표에서 387명중220명이 이에 동의하였다.The Times"1960.1.29.
     
    "제수이트들은 피의 행동에는 명수들이다."
    "포교하겠다는 미명 하에 날마다 우리 영토로 상륙한 로마 카톨릭 사제와 성직자들이 학교와 병원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남북의 프로테스탄트들이 안다면 힘을 합쳐 그들의 손아귀에서 권력을 박탈할 것이다. 그들은 교황이나 유럽
    전제군주의 대사로서 질서를 해치고 우리 국민의 마음을 헌법과 법률에서 멀어지게 하며, 아일랜드·멕시코·스페인 등
    자유를 사랑하는 국민들이 있는 곳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곳에서도 무정부 상태를 도모하고 있다."
    -아브라함 링컨-

    "마피아와 여러 비밀단체들이나 정보기관이 한 통 속이 되고, 거대 기업들이 바티칸과 손을 잡고, 비밀스러운 목적을
    위해서 거액의 돈이 뿌려지고, 정치와 종교와 첩보와 금융과 조직범죄 사이의 경계선이 희미해져서, 마침내 무엇이
    무엇인지도 모를 지경에 이르렀다."
    -아브라함 링컨-

    "내 목숨을 노리는 그토록 많은 음모들이 꾸며졌었기에, 그 모든 것이 실패했다는 것은 정말 기적이다. 특히 거의 대부분이
    숙련된 로마 카톨릭의 살해자들, 명확하게 예수회에의해 훈련된 자들의 손에서 꾸며졌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예수회는
    피를 흘리는 임무에 매우 전문적이어서, 헨리 4세는, 그들을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고, 그리고비록 그가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들에게 희생되었다. 그들의 손아귀에서 내가 벗어나는 것은,
    제퍼슨에게 쓴 교황의 편지가 나의 가슴을 찌르는 백만 비수를 갈게하였기에, 기적을 훨씬 뛰어넘는 일일 것이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스라엘 민족들의 죄들로 인해, 그가 요단강을 건너가기 전에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모세의 입술에서
    나오는 어떤 불평도 듣지 않으셨던 것처럼; 그렇게, 내가 내 나라를 위해 쓰러질 때, 그분께서 나의 불평을 듣지 않으시길,
    다만, 나는 소망하고 기도드린다."

    -아브라함 링컨-
     

    "제수이트...흑암,잔인,배반,전재독재제,죽음" -존 아담스 대통령- 


    "만약 미국이 자유를 박탈하는 날이 온다면  그것은 로마 카톨릭체제를 통하여 올것이다." -죠지 워싱턴 대통령-


    "우리를 압도하는 한 역사적 교훈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이것이니 당신의 자녀들을 카톨릭교 사제들로부터 피신시켜라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당신의 자녀들을 인류의 적으로 만들것이다."
     -W.K.클리포드 교수

     

    "나는 제수이트의 부활을 기뻐하지 않는다. 대다수는 더욱 가장을 하게 될 것이므로 인쇄업자, 작가, 출판업자,
    학교 교사 등과 마찬가지로 보헤미아의 수장도 받아들일 것이다. 영원한 저주를 받아야 할 사람들의 모임이 있다면
    바로 이 로올라 협회이다." (John Adams, 1816)

    "나는 예수회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지금까지 세상에서 카톨릭 교회의 성직자 제도보다 더 위대한 것을 보지 못했다.
    나는 이 조직을 대대적으로 수용하고자 한다. 비밀리에 사람들을 유도해 갈 기관을 설립할 것이며, 그 기관을 이용해
    젊은이들을 선동하며 세계를 진동시킬 것이다."
    -히틀러-

    '나폴레옹의 세인트 헬레나섬 포로 생활에 대한 기억'(제 2권)이라는 책에서, 프랑스 장군 Montholon은 예수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예수회는 종교 단체(order-질서)가 아니라 군대 조직이다. 그들의 우두머리는 군대의
    장군이지, 단순히 수도원의 대수도원장이 아니다. 그리고 이 조직의 목적은 권력이다. 가장 전제적으로 행사되는 권력
    절대권력, 우주적 권력, 한 사람의 의사에 따라 전세계를 통치하는 권력. 예수회 사상은 최고로 절대적이고 전제적이다;
    그리고 동시에 가장 거대하고 가장 엄청난 폐단이다.'

     

    '우리가 카톨릭 교회와 일치되어 한마음으로 함께 하기위해서는, 만일 카톨릭 교회가 어떤 사물을 검다라고
    확정한다면, 우리의 육안으로 희게보이는 것도, 그것은 검다라고 단언하는 그런 자세를 지녀야 한다.'
    -로욜라-

     

    * 참고 서적: 예수회의 비밀역사 (에드몽 파리, 말씀보존학회)

     

      * 관련자료: 오늘날의 예수회



    출처: 빛과 흑암의 역사/등대지기

     

    
     
      하나님의 충실, 우리의 충실 (God's Faithfulness and Ours) 하나님이 우리들과 계약을 맺으실 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영원한 사랑으로 너희를 사랑할 것이다 너희가 내게서 떠나가고, 나를 버리고, 심지어 나를 배반한다 하더라도 나는 너희에게 충실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하나님과의 계약(covenants)보다는 상업상의 계약(contracts)에 관하여 더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과 상업상의 계약을 맺을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당신의 약속을이행하면 나도 나의 약속을 이행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 나도 나의 약속을 그 이상 이행할 의무가 없습니다" 상업상의 계약은 계약 당사자들이 자신들의 약속한 사항을 이행할 의사가 없거나, 또는 이행할 능력이 없을 때 파기되기 입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들과 상업상의 계약을 맺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신과 인간 사이의 계약을 우리와 맺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신과 인간 사이의 계약이 우리의 인간 상호간의 관계에도 반영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혼, 우정,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의 생활을 통하여 하나로 뭉쳐진 우리의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믿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옮기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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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혜와평강이 넘치는 커피브레이크-

     

     

     

     

     

    동방 예의지국이라는 나라에

    아주 고약한 우울증에 빠진 임금이 있었습니다.

    이웃 나라들하고는 평화로웠고 매년 풍년도 들었으며

    왕자 공주들도 잘 자라주었고
    신하들도 부정비리 없이 임금에게 순명했습니다.

    그야말로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었으며
    무엇 하나 아쉬울 게 없던 임금인데...,

     

    하지만 실상 임금은 마음이 편치를 않았으니

    임금 자신도 그 원인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임금은 지독한 우울증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어의도 속수무책이였습니다

    소문에 듣자하니 어느 고을에 명인이 있다하여

    특사를 보내어 쥐도 새도 모르게 그를 불러들였습니다.

     

    명인은 임금의 마음 상태를 소상히 먼저 들었습니다.

    그런 후에 그는 처방전 하나를 임금님께 올렸습니다.

    "임금님의 병세에는 이것이 특효이옵니다

    만일 임금님 병세가 호전되지 않으면 소인에게 엄벌을 내리소서."

    명인이 물러간 뒤 임금은 그의 처방전을 보았습니다

    임금은 그 처방전을 읽는 순간 순식간에 얼굴이 일그러졌습니다.

    하마터면 옆에 있는 이조 백자기를 깨부술 뻔 했습니다.

     

    가까스로 흥분을 가라앉힌 임금은 바닥에 떨어진

    그 명인의 처방전을 다시 주워들고 다시 천천히 읽었습니다.

    그로부터 한 두달이 자나갔습니다

     

    그토록 지독했던 우울증이 임금의 얼굴에서 차차로 줄어들고

    오히려 기쁨이 넘쳐났습니다.

    임금님의 달라진 병세에 놀란 신하들은

    과연 명인의 처방전은 대단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명인을 시기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궁궐에서 오랫동안 임금을 치료해온 어의였습니다.

    보약 한 번 쓰지 않고 별다른 치료없이 어떻게 임금님의 우울증을

    고쳤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어의는 임금님의 동태를 살펴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자정이 지나자 궁궐 안은 쥐 죽은 듯 고요했습니다.

    임금님은 평민의 옷으로 갈아 입고

    비밀통로를 통해 성 밖으로 빠져 나갔습니다

    임금님은 1주일에 서 너번씩 같은 일을 반복했고

    날이 갈수록 임금님의 병세는 눈에 띄게 호전되어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밤 어의는 임금님이 궁궐밖으로 나간 뒤

    임금님의 서재에 몰래 들어가 책장 위에 놓여 있는

    명인의 그 처방전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잔뜩 기대에 부풀어 처방전을 열어 본 어의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었습니다.

    "하루에 한 가지씩

    백성을 위해 임금인 내가 무엇을 해 줄 수 있는가를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그들에게 구체적인 도움을 주십시오.

    그것이 임금님의 병세를 다스리는 '우울증의 특효약'이옵니다."

     

    할 일이 없고 게으르고 태만한 사람들만을 골라서

    찾아 드는 게 바로 우울증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정신없이 바쁘게 열정을 쏟아 보십시오.

    서양 속담에 '바쁜 벌은 슬퍼할 시간이 없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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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서 가장 행복할 때는
        친구를 사랑하는 맘이 남아 있을 때이고

        세상에서 가장 울고 싶을 때는
        친구가 내 곁을 떠나갈 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미워하고 싶을 때는
        친구가 점점 변해 갈 때이고
        세상에서 가장 두려울 때는
        친구가 갑자기 차가워 질 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비참할 때는
        친구가 나의 존재를 잊으려 할 때이고
        세상에서 가장 웃고 싶을 때는
        친구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볼 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고마울 때는
        친구가 나의 마음을 알아 줄 때이고
        세상에서 가장 편안할 때는
        친구가 내 곁에 머물러 있을 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다정스러울 때는
        친구가 나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믿고 싶은 것은
        친구가 날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친근하게 느낄 때는
        친구의 손을 꼭 잡고 마주 앉아 있을 때이고
        세상에서 가장 외롭다고 느껴질 때는
        친구가 내 곁에 없다고 생각 될 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바라고 싶은 것은
        친구의 맘속에 내가 영원히 간직되는 것이며,
        마지막으로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것은
        바로 내가 사랑하는 나의 친구
        이 글을 읽는 바로 당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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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비주의


    신비주의는 영적인 체험이나 영적인 능력을 강조하는 종교나 철학이나 문화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무당에게 굿을 해서 병을 고치는 것이나, 점을 보아서 미래를 예측하거나, 마법이나 마술이 가득한
    문학이나 롤플레이밍 게임에 심취하거나, 초능력이나 투시 능력을 개발하려는 것도 신비주의라 할 수 있습니다.
    신비주의는 또한 모든 고대 종교의 공통적인 특성이고, 프리메이슨의 사상적 기반입니다.

    바빌론, 이집트 등 고대 문명에서는 영성술, 강신술, 점성술, 주문, 마법, 부적, 예언, 저주 등이 있었고,
    모세의 출애굽 때도 이집트의 신비주의가 소개되었는데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영이 있기 때문에 영적인 능력을 개발하면 악령이나 마귀와 접신한다거나, 시공을 초월해 미래를
    본다거나 초능력을 이용해 사물을 조종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신명기 18/9~12 네가 주 너의 하나님께서 네게 주시는 땅으로 들어가거든 너는 그들 민족들의 가증함을 따라
    행하는 것을 배우지 말 것이요, 자기 아들이나 자기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는 자나 점치는 자나 때를 살피는
    자나 마법사나 무당이나 마술사나 부리는 영들에게 묻는 자나 마법사나 강신술사를 너희 가운데서 보이지 않게 할지니라.
    이는 이러한 일들을 행하는 모든 자들이 주께 가증함이 되나니, 이러한 가증한 것들 때문에 주 너의 하나님께서 네
    앞에서부터 그들을 쫓아내시느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다음과 같은 이방인의 풍습을 본 받지 말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자녀를 불 가운데 지나가게 한다는 것은 고대 신앙의 특징인 유아 인신제사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점을 치는 자나(
    useth divination), 때를 살피는 자나(observer of times), 마법사나(enchanter),
    무당이나(마녀,
    witch), 마술사나(charmer), 부리는 영(귀신, 마귀)에게 묻는 자나(a consulter with familiar spirits),
    마법사나(wizard), 강신술사(necromancer)들이 이스라엘 민족과 함께 하지 말 것을 명하셨습니다.
    여기에는 거의 모든 신비주의 관련 직종이 망라되어 있습니다.

    계시록 22/15 그러나 개들과 마술사들과 음행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누구든지 거짓말을 즐겨 행하는 자는 모두 다 성 밖에 있으리라.

    예수님은 계시록에서 마법사(Sorcerer)나 우상 숭배자는 천국에 들어 갈 수 없다고 하십니다.

     

    * 그러면 왜 하나님은 인간의 마법, 예언, 접신 등을 금하셨을까요?

    첫째로 하나님은 인간이 오직 하나님만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영적인 능력을 개발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귀신이나 마귀와 통하게 되고, 서로 돕는 공생관계가 형성됩니다.
    무당을 예로 들면 무당은 귀신을 섬겨주는 대신 귀신은 미래를 알려줍니다.
    그러다 보면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고 결국 더러운 마귀나 귀신을 섬기게 됩니다.

    마법에서는 실제로 '소환'이란 방법을 통해 강제, 협박, 저주 등으로 데몬이나 악마를 불러들여 도움을 받습니다.
    그런데 마귀나 귀신은 자신도 구원하지 못하고 떠 돌다가 결국 마직막 심판 때 불 못에 쳐 박힐 존재이므로, 마귀를
    아무리 잘 섬겨 봤자 지옥 갈 때 길 동무밖에 못 해줍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인간이 교만해지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초능력이나 예언하는 능력 등을 기르게 되면 자신이 신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되고, 하나님을 믿는 것은
    우습게 보입니다.
    어릴 때부터 마법과 관련된 만화, 게임, 문학 등에 심취하면 사람을 죽일수록 마법이 세진다거나, 남을 괴롭히면서
    희열을 느낀다거나, 노력하지 않아도 마법으로 무엇이든 해결할 수 있다는 등의 잘못된 가치관이 형성됩니다.
    교만은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죄로 인간은 겸손한 마음을 가질 때에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셋째로 하나님은 인간이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한계와 어려움에 부딪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답답한 마음에 용한 보살이나 도사, 무당 등에게 점을 보러 갑니다.
    그러나 그들이 설령 미래를 맞춘다고 할지라도 내 인생에서 도움이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무당이 행복을 예언했다면 오히려 다가올 행복이 반감될 것이고, 불행을 예언했다면 불행이 다가
    오기도 전에 근심 걱정에 휩싸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당은 미래를 예언할 수는 있어도 미래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불행한 미래까지도 밝게 바꾸어 주십니다.

     

    * 목차

    1. 신비주의

    2. 신지학 협회

    3. 블라바츠키

    4. 베전트

    5. 크로울리

    6. 오컬티즘

    7. 수피즘

    8. 카발라

    9. 장미십자회

    10. 해리포터와 사타니즘

     

     

    1. 신비주의 (神秘主義, mysticism)

    신(神)이나 절대자 등 궁극적 실재와의 직접적이고 내면적인 일치의 체험을 중시하는 철학 또는 종교사상.

    신비(mystic)라는 말은 눈이나 입을 닫는다는 뜻의 그리스어 mystikos에서 유래한 것으로, 그리스도교에서는
    이성적(理性的) 인식에 의하지 않고, 자연적 능력을 초월한 어떤 형태로 직접 신에 접촉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내적 경험에 의하여 신과의 일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다른 종교와 공통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으나,
    신과 일치하는 경험이 금욕 등의 인간적 활동의 결과가 아니라 신의 특별한 간섭에 의한 것이며, 또한 경험되는
    신이 우주적인 것이 아니라 지성(知性) ·의지 ·사랑을 갖춘 존재라는 점에서 다른 종교에서의 신비체험과는 다르다.

    그리스도교 신앙에서는 선인(善人)은 죽어서 신을 직시(直視)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현세(現世)에서 그러한
    경험을 선취(先取)하려고 하는 노력이 예로부터 수도자(修道者)들에 의해 행해져 왔다.
    기도와 수도를 통하여 신으로부터 주어지는 이같은 신비적 체험을 말로써 표현하고 체계화하려고 하는 것이
    신비주의 ·신비신학이라는 것이다.

    신비신학의 역사는 그리스 교부(敎父)로까지 거슬러 올라가거니와, 아우구스티누스도 마음속의 신의 현존(現存)에
    대해서 말한 바가 있다.
    5세기경 ‘위(僞)디오니시우스 문서(文書)’는 프로티노스의 신비사상과 그리스도교의 융합을 시도하여 후세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그는 《신비신학》이라는 책 속에서 초자연적 명상에 관해서 말하고, 일치에 의한 초경험적 신인식(神認識)이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도입하였다.
    중세에 와서는 주로 아우구스티누스의 계통을 잇는 신학자나 사상가, 이를테면 안셀무스, 베르나르두스,
    보난벤투라나 빅토르 학파 등이 신비신학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14세기에는 특히 사변적(思辨的)인 신비주의가 개화(開花)하여 M.에크하르트, 조이제, J.타울러, 로이스부르크
    등이 신비체험을 철학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하였다.
    또한 16세기의 에스파냐에서는 자신의 신비체험에 관한 저서를 남긴 텔레지아와 십자가의 요한 등이 유명하다.
    근세의 신비주의 운동으로는 경건주의가 있는데, 이 운동은 칸트나 괴테를 낳은 근세 독일문화의 한 계기가 되었다.

    신비주의는 백악관에도 침투해 낸시 레이건 여사에게는 전속 점성가가 있었으며, 힐러리 클린턴에게는
    힌두교 스승이 있습니다.
    많은 미국 저명인사들이 점성술과 점괘를 보고, 요가나 명상 등에 심취해 있습니다.

    중세 시대에 기도나 의식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영통을 시도하는 것도 신비주의에 해당합니다.
    이를 위해 수도원에서 금식, 자학을 통해 육신을 약화시키고 이교도적인 의식과 주문까지도 도입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식으로 만날 수 있는 분이 아니고, 이런 시도는 오히려 마귀를 불러들입니다.
    하나님께는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나갈 수 있고, 진리로 알아가는 것이며, 영적 체험보다는 영적 성숙을 추구하는 것이
    더 차원 높은 신앙입니다.

     2. 신지학 협회 (神智學協會, Theosophical Society)

    1875년에 미국에서 신비주의적 종교관을 바탕으로 창설되어 주로 인도에서 활동하는 국제적 종교단체.

    신지학(
    神智學,Theosophy)이란 보통의 신앙이나 추론(推論)으로는 알 수 없는 신의 심오한 본질이나 행위에
    관한 지식을, 신비적(神秘的)인 체험이나 특별한 계시에 의하여 알게 되는 철학적 ·종교적 지혜 및 지식을 말합니다.
    즉 영적 체험에 의해 진리에 도달할 수 있고, 이를 추구해야 한다는 이론으로 힌두교나 불교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신비주의 종교철학인 신지학(神智學)은 고대부터 있어 왔는데, 근대에 들어 신지학이 융성해진 것은 러시아 귀족
    출신 여성인 헬레나 페트로브나 블라바츠키(Helena Petrovna Blavatsky)에 의해서였다.
    블라바츠키는 1875년에 미국에서 헨리 스틸 올콧(Henry Steel Olcott) 대령과 함께 신지학 교리에 바탕을 두고
    모든 종교의 융합과 통일을 목표로, 신지학회를 창설했다.

    인종·성·피부색의 구별없이 인류의 보편적 형제애를 형성하며, 종교·철학·과학에 대한 비교 연구를 권장하고,
    설명되지 않은 자연법칙과 인간의 잠재력을 탐구하는 것을 목표로 내세운 이 학회는 스스로를 완성하여 인류의
    영적인 진화를 지도하는 위대한 스승들(Great Masters)의 존재를 강조했다.

    1878년 이 학회는 인도의 마드라스 교외에 있는 아디아르로 근거지를 옮겨 활동했으며, 19세기 말에는 인도의
    여러 지방과 유럽에까지 이 학회의 지부가 설립되었다.
    한편 블라바츠키와 올콧이 떠난 뒤 쇠잔했던 미국의 신지학회는 윌리엄 Q. 저지(William Q. Judge)에 의해서
    다시 활성화했으며, 그는 미국지부를 신지학 국제운동의 가장 활발한 단체로 만들었다.

    1896년 창설자 블라바츠키가 죽자, 올콧과 저지 사이의 긴장감이 고조되면서 미국의 신지학은 독자적인 노선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1896년에 저지가 죽은 뒤, 미국 신지학회는 캐서린 팅리(Katherine Tingley)에게 이어졌으며 1951년에
    미국본부를 캘리포니아 주 패서디나로 옮겼다.

    인도의 신지학회는 1889년에 영국의 여성운동가인 애니 베전트(Annie Besant)가 입회하면서 더욱 발전하는
    계기를 맞았으며, 1907년에 국제운동을 지휘하던 올콧이 죽은 뒤, 지도자의 자리는 베전트에게 물려졌다.
    그녀는 고대 인도의 문화와 전통을 재인식시키고 고전교육에도 힘을 기울였으며, 바라나시에 학교(바라나시 힌두
    대학의 전신)를 설립했다.

    1911년 베전트는 신원이 알려지지 않았던 청년 크리슈나무르티(Krishnamurti)를 인류를 지도할 ‘위대한 스승’으로
    선포함으로써 논란이 일었다.
    그러나 크리슈나무르티는 스스로 그 주장을 철회했으며, 20세기 전반을 미국과 유럽에 머물다가 다시 인도로
    돌아가 신지학에 바탕을 둔 글을 쓰고 제자들을 가르치는 일에 몰두했다.

    인간을 해탈시켜 신에게 향하게 하는 길을 추구하며, 힌두교를 비롯하여 불교·자이나교·그리스도교·이슬람교의
    전통을 받아들인 이 학회는 20세기 초반 이후 쇠퇴 기미를 보여오다가, 최근 밀교(密敎)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면서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본부는 인도의 아디아르에 있다.

     3. 블라바츠키 (Helena Petrovna Blavatsky 1831.8.12~1891.5.8)

    러시아의 신비사상가

    남러시아의 예카테리노슬라프(지금의 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 출생. 독일계 러시아 귀족 P.A.von 한 대령과 저명한
    여성 작가 H.A.판데예프의 딸로서 어릴 때부터 초자연현상을 영시(靈視)하였던 그녀는 20세 무렵 당시 최고의
    영매(靈媒)로서 유럽 ·미국 ·이집트에서 활약하는 한편, 세계 각지를 여행하면서 비교종교학 ·민족학 ·박물학을
    연구하고, 또 티베트밀교, 카발라, 이집트 마술의 행법을 통하여 타고난 올코트 능력을 더 한층 개발하는 데 힘썼다.
    그 후 1875년에 H.S.올코트의 협력을 얻어 뉴욕에 신지협회(神智協會)를 설립하였다.


    1831년 8월 12일 우크라이나의 에카테리노슬라브에서 태어난 그녀의 아버지는 귀족출신으로 육군장교였으며
    어머니는 9세기 어느 대공의 피를 이어받은 매우 지혜롭고 자주적인 여성이자 저명한 작가이기도 했다.
    그녀 역시 독립심이 강하고 히스테리컬한 성격을 지닌 여성으로 16세에 미남인 황제의 아들 알렉산드로
    가리스텐과 사랑에 빠졌다가 결국은 좌절이 되자 분을 못이겨 한참 연상인 니키폴 블라바츠키 장군과 결혼하여서
    그 때에 평생의 '성(姓)'을 결정짓게 되었다.

    그녀는 결국 3개월도 못되어서 남편을 몰래 떠나 25년 동안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전전긍긍하였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그녀는 이집트 종교의 지식을 습득한다든지 티벳의 승려들을 만나고 신비주의적인 비법을
    전수받고 또한 그러한 신비주의적인 그녀의 지식을 강습하면서 여러번의 남성편력의 스캔들을 가지기도 하였다.
    또한 그녀는 이집트에서는 무당(영매)으로 활약하기도 하였다.

    1873년 3월 6일 홀홀단신으로 미국 뉴욕에 도착하여 심령술사 그룹에 가담하여 헨리 올코트 라는 군인(대령)과
    만나게 된다.
    그녀는 여러 강습회 등을 가지면서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켰는데 특히 그녀는 일종의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최면술사적인 흡입력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1875년 베타네리라는 러시아의 시인과 재혼을 하는 등 평생 7번 정도 결혼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것도
    정확한 수치는 아니다.
    그녀의 저서로는 '벧을 함락시킨 이시스', 큰 반형을 일으킨 '비밀교의' 등의 저서가 있다.
    그녀는 결국 그녀의 모든 지식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신지학회의 창립을 통해서 확립이 된다.

    그녀는 그 당시의 지식인들로부터 '사기꾼'이라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위험한 사상을 가진 인물로 평가되었는데
    이는 영국의 자연학협회의 '호지슨의 보고서' 등을 통해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그녀는 특히 프리메이슨들을 지지하던 강력한 후원자였으며(물론 당시 프리메이슨들은 여성의 지위 계급을
    인정하지 않았으므로 아마 그녀는 프리메이슨에 단독으로 참여할 수 없었을 것이다.)

    1891년 5월 8일, 이 날은 그녀의 사망일로서 뉴에이저들은 이날을 '화이트 로터스 데이(White Lotus Day)'라고
    하여 기념하고 있는데 지금도 이 날은 세계의 신지학회의 회원들이 기념하고 있다.
    그녀의 오늘날 뉴에이지계에 끼친 영향력은 독일 일루미나티의 창시자 바이샤우트의 영향력 만큼 지대하였고,
    반 기독교적인 뉴에이지 운동에 열성적으로 가담하였다.

    유명한 발명가 '토마스 에디슨'도 이 신지학회의 회원이었다.
    블라바스키는 "창세기의 사탄이야말로 진짜 창조주요, 인류의 은인이자 장차 등장할 영적 인류의 아버지"라고
    공공연히 말하였다.

     4. 베전트 (Annie Besant,1847.10.1 ~ 1933.9.20 )

    영국의 여성 사회개혁가, 런던 출생

    1873년 이혼한 후 여성해방운동에 참가하면서 버너드 쇼의 영향을 받아 페이비언 사회주의자가 되었으며,
    사회개혁가 C.브래들로와 함께 맬서스 인구론을 선전, 신맬서스주의자로 유명해졌다.
    1889년 종교적 신비주의자인 H.블라바츠키의 학설에 심취하여 신지학(神智學)협회에 가입하고 신지학과 관련된
    연설과 저술활동을 하였다.

    1893년 인도로 가서 1907년부터 국제신지학협회 종신 회장으로 재직하면서 바널러스 힌두대학을 설립하였으며,
    인도의 사회개혁과 교육향상을 위해 힘을 기울였다.
    인도의 여성운동가 S.나이두도 그녀를 도와 활약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직전부터 인도의 정치운동에 등장하여 B.G.틸라크 등과 인도의 자치운동을 추진하였다.
    1916년 회의파 대회에서 회의파의 재통일과 모슬렘연맹과의 제휴를 실현하는 데 노력하여 다음해 의장이 되었다.
    그 뒤 간디 등과 의견이 대립되어 정치운동 일선에서 물러섰다.

     5. 알리스터 크로울리 (Alister Crowley)

    위 사진의 인물은 마법의 대가이며, 유명한 사탄주의자고, '요기('요가'의 달인)'였고, '비틀즈(Beatles)'의 멤버들이
    존경한다는, 프리메이슨(Freemason) 33도이자 일루미나티의 회원인 '알리스터 크로울리(Alister Crowley)'라는
    이미 죽은 인물입니다.
    그는 20세기 최고의 악마주의자라는 자타의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또한 많은 헤비메탈(Heavy Metal) 및 블루스(Blues) 연주자 및 보컬(Vocal)들이 그를 숭배하고 있습니다.
    가령 '레드 제플린'의 '지미 페이지(Jimmy Page)' 라든가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검은안식일)'의
    보컬(Vocal)이었던 '오지 오스본(Ozzy Osborne)' 등은 노골적 으로 그에게 대한 존경의 표시를 하고 있습니다.
    오지 오스본은 그의 노래 '미스터 크로우리(Mr.Crowley)'를 통해 그에 대한 존경심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특히 잘 보게 되면 그의 모자에 있는 '제3의 눈'의 징표가 바로 '프리메이슨'의 상징이자 '일루미나티(Illuminati)'의
    상징인 '호루스의 눈'(전시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크로울리는 "
    마법은 인간의 의지에 따라 원하는 변화를 일으키는 과학이자 예술이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는 180여건의 살인 제사의식에 참여했다고 스스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가 말한 자유의지(텔레마)는 신으로부터의 자유, 곧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 관련 자료 :

    사탄 숭배자, 알레이스터 크로울리

    사탄숭배자 알리스터 크로울리 (서프라이즈)

    '사탄의 교회'의 간부인 Vincent Crowley와의 인터뷰 내용

     

     

    6. 오컬티즘 (Occultism)

    자연 또는 인간의 숨어 있는 힘이나 현상을 연구하는 비학(occult arts or sciences)의 총칭 및 그것을
    실용화하려는 태도.

    은비학(隱秘學) 또는 은비론(隱秘論) 등으로 번역된다.
    라틴어의 occultus(감추어진 것)가 그 어원이다. 비학이란, 과학적 연구방법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초경험적(超經驗的)
    여러 원리를 믿고 그것을 탐구하려고 하는 학문이다.
    이것은 비전에 의해 한정된 사람들에게만 전수(傳授)되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는다는 것이
    그 특색이다.
    여기에는 주로 마술 ·점성술 ·연금술 ·점복술 ·신지학(神知學) ·강신술(降神術) ·심령술 등이 포함된다.

     

     

    7. 수피즘 (Sufism)

    이슬람교도의 일부가 신봉하는 일종의 신비주의 신념 또는 사상.

    원어인 아랍어로는 타사우프(Tasawwuf)라고 한다.
    그 어원은 수프(양모)를 몸에 걸친 것을 가리키는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여겨지며, 이 말에서 수피(이 주의를
    신봉하는) 및 영어의 수피즘이 파생하였다.
    신(神)과의 직접적인 교류를 요구하는 신비주의는 《코란》 속에 이미 나와 있다는 설도 있으나, 본래의 수피즘은
    8세기 이후 이슬람교가 수니파(派)와 시아파(派)로 분열된 후 시아파 속에 나타난 것이다.

    초기의 신도 중에는 금욕주의적인 독신자(篤信者)가 있어서 수프 등을 몸에 걸치고 고행이나 유행(遊行)을 한 것이
    그 시초로서, 거기에는 인도·이란의 종교 또는 초기 그리스도교의 영향이 엿보인다.
    수피즘의 특징은 일종의 도취 상태에서 지상(至上)의 경지를 감득하는 데 있는데, 타와클[信賴], 마리파[恩寵],
    파나[忘我]와 같은 특유의 용어가 그런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이 사상은 특히 시(詩) 형식을 취하여 아랍어로는 알아라비, 이븐, 파리도 등, 페르시아어로는 루미, 하피즈, 자미 등,
    터키어로는 네시미, 니자지 등의 시작(詩作)으로서 표현되었다.
    수피즘을 신봉하는 많은 교단(敎團:타리카)이 형성되었는데, 특히 터키계(系) 데르비시는 자가도취의 수단으로서의
    회전춤으로 알려져 있다.
    또 지크르(염불의 일종)도 많이 쓰인다. 수니파는 수피즘을 비아랍적, 비정통적이라 하여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8. 카발라 (Kabbalah)

    중세 유대교의 신비주의.

    헤브라이어로 ‘전승(傳承)’을 뜻한다. 구약성서 《창세기》의 천지창조 이야기나 《에제키엘》의 하나님이 나타나신
    이야기를 둘러싼 《탈무드》의 신비주의적 교리로 말미암아 실천적 내용은 박해가 심했던 13세기의 독일에서, 이론적
    내용은 14세기의 에스파냐에서 성행하였다.
    그 교리는 다음과 같다.

    창조 과정에서 악이 세계에 혼입되었는데, 그 악으로부터의 구제, 질서의 회복은 하나님 나라의 수립이라는 형태로
    종말론적으로 실현된다.

    사람은 하나님의 협력자로서 창조되어 천상계(天上界)와 지상계(地上界)의 접점(接點)을 이루고, 신비가는 금욕 및
    신과 천사의 이름을 외는 것을 통해 황홀경에 들어가며, 천상계의 비의에 관여하는 신비적 경험을 얻는다.
    그때 다른 신비주의가 주장하는 것처럼 사람이 신적 존재에 흡수 ·동화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사람이
    찬양해야 할 ‘영광’이라고 한다.

     

     

    9. 장미십자회(Rosicrucians)  

    장미십자회(薔薇十字會, Rosicrucians)는 중세유럽, 독일을 중심으로 활동한 비밀결사단체이다. 카발라(Cabbalah, 유대교신비주의)와 연금술 등 여러 종교의 신비적 요소를 수용, 발전시킨 기독교적 신비주의단체로서, 17~18세기를 지나 19, 20세기에 생긴 서양 신비주의단체의 뿌리가 되었다. 


    장미십자의 비밀

     

    Rosicrucian Fellowship의 상징, 장미십자

    단체의 이름은 그들이 사용한 깃발에 그려졌던 장미십자가 상징에서 유래한다. 십자가와 장미는 각각 예수그리스도의 부활과 구속을 의미한다. 이 둘이 결합된 장미십자상징은 진리를 꿰뚫는 명상의 상징이 되어, 후대 신비주의 단체의 중요한 상징으로 사용되게 된다. 장미십자회의 종교적 추구는 고대로부터 전승된 태초의 지혜, 혹은 비의(秘儀)에 기초한다. 이들은 장미십자가를 통한 명상으로 인간의 깊은 내면과 직관, 무의식과 만날 수 있고, 나아가 절대적 신성과 접하는 신비체험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장미는 장미십자는 진리의 신비체험을 위한 핵심상징이다. 

    익명의 문서, 장미십자회의 정체를 밝히다
    이 단체의 존재는 1614년과 1616년 사이에 독일 카셀에서 익명으로 출판된 세 개의 소책자 Fama Fraternitatis(1614), Confessio Fraternitatis(1615), The Third Chemical Wedding of Christian Rosencreutz(1616)을 통해 알려졌다. 이 자료에서는 독실한 독일인 귀족으로 알려진 크리스티안 로젠크로이츠(Christian Rosenkreutz)를 장미십자회의 창설자로 언급하며 그를 소개한다. 자료에 따르면 그는 이집트, 모로코 등지와 다마스커스(Damascus)등의 근동지방을 다니며 비학의 지혜, 수학과 자연과학, 연금술 등에 통달했으며, 특히 고대 이집트의 영적이고 연금술적인 신비를 전수받았다. 독일로 돌아온 그는 1407년 수도원을 만들고 세 명의 수도사들과 함께 장미십자회 활동을 시작한다. 1409년 성령의 집(House of the Holy Spirit, Spiritus Sanctum)을 건립했고, 마법과 연금술 등에 대한 비법을 가르쳤다. 그에게서 비의를 전수받은 후계자들은 비밀엄수를 서약하고 사명을 위해 떠났다고 한다. 1484년 106세에 사망한 크리스티안 로젠크로이츠의 시신은 성령의 집에 안치되었고, 한동안 잊혀졌다가 120년만인 1604년에 전혀 훼손되지 않은 채 재발견되었는데, 그의 무덤이 열린 이 사건이 교단의 새로운 전파를 촉발시켰다고 기록되어 있다. 장미십자회의 역사를 증명하는 이 유일한 기록의 사실성 여부에 대해 상이한 견해가 존재해왔다. 현대 장미십자계열의 단체들도 조금씩 다른 시각에서 이 기록을 해석한다. 한편에서는 이런 초기 문헌에서 말한대로 로젠크로이츠가 실제인물이라고 믿지만, 또 다른 단체들은 한명 혹은 그 이상의 역사적 인물(프란시스 베이컨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의 필명이라고 본다. 나아가 그를 우화적인 인물로 보고, 그를 둘러싼 이야기를 보다 심오한 진리를 가리키는 오컬트 전설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들 자료와 교단의 아이디어가 독일의 루터파 목사인 요한 발렌틴 안드레(Johan Valentin Andreae, 1586-1654)에 의해 쓰여졌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장미십자회의 신비사상자체를 완전한 장난으로 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드레가 이들 자료에서 권장하고 있는 비의와 사회개혁에 대한 그의 관심을 결합한 하나의 교단을 만들었거나 혹은 다른 사람들이 장미십자회의 일을 시작하도록 독려하는 문서를 원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특히 이런 견해는 이들 자료가 로마 교황에 반대하고 프로테스탄트 윤리를 장려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고 있다. 실제 로젠크로이츠에게서 배웠던 사람들의 모임은 반가톨릭의 성향을 띄었던 기독교적 비밀단체의 성격을 띄었다. 당시 가톨릭교의 교리를 부정했던 이들은 가톨릭으로부터 경계대상이 되기도 했다. 장미십자회가 이후 오컬트세계에 끼친 지대한 영향에도 불구하고 이 교단의 회원, 체계와 사상에 관한 자료는 더 이상 발견되지 않았다. 


    17~18C 장미십자열풍의 역사

    「비밀의식으로부터 우리는 초감각세계에 대한 인식과 지혜의 보고(寶庫)를 가지게 되었다. 만약 우리가 이것을 고수한다면, 과거에 행했던 일, 즉 우리 학파에서 훈련받은 영혼들이 태초의 지혜에 관한 비밀을 배우고 식별하게 되었을 때 다른 이들을 지도하기 위해 그들을 보내는 일이 미래에도 요구될 것이다……태초의 지혜를 동경하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아마도 우리는 현재 우리가 지니고 있는 형태로 그들에게 지혜를 전할 수 있을 것이다. 단지 그것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권위를 높이 신뢰하고 인지할 필요성이 있다. 하지만 그러한 태도는 빠르게 인류로부터 사라지고 있다. 사람들의 판단력이 증가할수록 가르지는 자에 대한 신뢰도 얕아질 것이다. 믿음과 신뢰는 과거 전달수단의 전제조건인 것이다.」루돌프 슈타이너, 장미십자의 비교 제 1강 중에서

     

    현대의 장미십자단 - 국제조직 AMORC와 그 밖의 단체들

     

    AMORC의 로고

    현재까지 활발하게 활동중인 가장 눈에 띄는 장미십자회 계열의 단체는 AMORC(Ancient and Mystical Order Rosac Crucis)이다. 이들은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의 산호세(San Jose)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조직으로, 비공산권 나라를 중심으로 세계 전역에 퍼져있다. 1909년 이 단체를 창설한 것은 하비 스펜서(Harvey Spencer, 1883-1939)로서, 프랑스의 조합(the Brotherhood)에 입문했었다고 전한다. AMORC는 인류가 가진 최상의 잠재력과 영적 능력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장미십자회의 철학을 발전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회원들은 지부에 입문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완성을 위해, 그리고 진정한 지식 혹은 우주적 의식의 성취를 목표로 연구와 수행을 병행한다.

     

    AMORC가 발행하는 계간잡지 Rosicrucian Digest 표지

    이 교단은 로지(lodge지부) 시스템으로 운영되며, 회원명단은 공개되지 않는다. 서신왕래를 통해 조직 구성원들 사이에서만 은밀한 방식으로 비의를 전파하고 있다고 한다. The Rosicrucian Digest(신비주의, 철학, 과학, 예술에 관한 기사)와 The Rosicrucian Forum 를 출판하는데, 하지만 일부는 정기구독자에 한해 일반인들에게도 공개된다. AMORC 회원들은 12개의 마스터단계를 거치게 된다. 특히 10계급에서 12계급은 동양에 위치한 사원에서 영적인 방식으로 주어진다고 알려져있다. 신지학에서 처럼 그러한 완성에 이르려면 여러차례의 환생을 거쳐야 한다. 환생의 각 단계는 Supreme Being(최고의 존재자)와 보다 완전한 합일에 이르는데 바쳐진다. 이외에도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Fraternitas Rosae Crucis, 신지학회와 긴밀하게 연관된 The Rosicrucian Fellowship을 비롯해 Societas Rosicruciana in America (S.R.I.A.), Societas Rosicruciana in Civitatibus Foederatis (S.R.I.C.F.), Ausar Auset Society, Lectorium Rosicrucianum, Rosicrucian Anthroposophic League 등의 단체들이 활동하고 있다. 

     

    10. 해리 포터와 사타니즘(Satanism)

     

    "해리 포터(Harry Potter)" 시리즈처럼 어린 아이들을
    마법의 기교에 꼭 끼워 맞추는 데 있어 뛰어난 조절 수단이
    되는 책이 가공할 인기를 누린다는 데에 나는 깜짝 놀라
    버렸다.

    '구름떼 같은 해리 포터의 팬들'이라는 말을 주목하라.
    또한 대박을 올리려고 혈안이 된 서점가에서는 그 '구름떼
    같은 해리 포터의 팬들'을 한 명이라도 더 끌어들일 속셈으로
    테마 파티들과 심혈을 기울인 여타 홍보전략들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도 놓치지 마라.

    신세계 질서 구상자들 중에서도 최고위급에 속하는 빌
    램버트(Bill Lambert)의 말에 따르면, 상당수의 일반 대중이
    자신을 수용할 태세가 돼 있지 않으면, 적그리스도는 지구상에
    모습을 나타낼 수가 없다고 한다.

    우리는 이 사실을 염두해 둘 때, 해리 포터 시리즈가 뻔뻔스럽게
    선보이는 마법이 일반 대중들에게서 그토록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은 미국과 다른 영어권 나라들에 살고 있는 일반
    대중이 장차 적그리스도가 일어나면서 펼쳐 보일 마법과
    고난도의 비술을 수용할 수 있도록 조건이 너무도 잘 갖춰지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램버트는 교황이 예루살렘으로 갈 때, 로드 마이트레야(Lord Maitreya)가 모습을 드러낼 것인데, 그때 세 가지
    유형의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이전에 언급한 적이 있다.

    즉, 첫째가 적그리스도를 기꺼이 영접할 수 있도록 의식이 적절히 자라난 사람들이고, 그 다음은 의식이 어느 정도까진
    자랐어도 그것이 그리 높지 않기에, 좀더 계몽된 뒤에야 비로소 그를 영접할 수 있는 사람들이며, 그 마지막은 그를
    결단코 영접하지 않을 사람들이다.
    그는 적그리스도가 나타나기 전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위의 첫 두 부류 안으로 들어가서, 기독교 신앙에 그 기초를 둔
    미국의 문화가 극적으로 변질되어야 한다고 분명하게 못박고 있다.

    해리 포터로 말하자면, 그것은 부정할 수 없이 명백한 실효성 마법이고, 또 그것이 부모들에 의해 자식들에게 적절한
    읽을 거리를 제공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따라서 이를 통해 우리가 내릴 수 있는 유일한 결론은,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적그리스도를 받아들일 수 있는 적절한
    지점까지 이미 이르렀다는 것이고, 수많은 종말 예언들이 열매를 맺고 있고, 또 다른 수많은 예언들도 성취될 수 있는
    발판들이 속속들이 마련되고 있는 지금, 미국민들이 "적절하게 의식이 깨어 있는 수용자들"이 되어 적그리스도를
    맞아들일 수 있는 지점까지 매우 빠른 속도로 다가가고 있다는 것이다.

    해리 포터는 피리부는 사나이가 되어 그 길을 앞장 서서 걸어가고 있다.
    사탄은 피리를 불고 있고, 미국인들은 춤을 추며 그 뒤를 바짝 좇아가고 있는 것이다.
    꼬마 교수(Little Professor)의 공동 소유주인 아이린 앨런(Irene Allen) 왈, 자기는 그 시리즈의 매력은 바로 패배자였던
    주인공이 '능수능란한 마법사'로 변모되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해리 포터하면 우리의 머리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바로 그가 마술을 부리는 11살박이 "능수능란한 마법사"라는
    사실이다.
    그러니 당신은 이 책들을 자녀들에게 읽어주기를 원치 않을 뿐만 아니라, 분명 당신은 공립학교 교사들이 이 책들을
    필수 교양 도서로 선정하는 것 또한 원치 않을지 모르지만, 분명 사탄은 당신이 애지중지하는 자녀들을 개조해서 그의
    가치들과 그의 종교 그리고 그의 세계관을 받아들이게 하려 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우리는 해리 포터가 자신의 기술을 더 갈고 닦기 위해 마법의 학교에 출석하는 것을 본다.
    만약 그 책이 해리 포터가 특히나 신비주의에 관한 자신의 지식을 계발하기 위해 학교에서 수업받는 걸 그리고 있다면,
    그 책을 읽는 당신의 자녀 또한 그 어떤 마녀 집회에 참석하는 여느 마녀 부럽지 않게 마법에 관한 지식을 잘 터득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신세계 질서 조절 계획(the New World Order Conditioning Plan)이라는 것을 아는가!
    바로 적그리스도의 마법을 배우는 당신의 자녀들이 희생양이 되어 적그리스도의 출현을 초래하고 있다는 걸 말이다.

    여기 해리 포터 시리즈를 통해 아이들에게 가르쳐지고 있는 신비주의 교리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1. 혼이 없는 몸-Astral Travel  

    "두뇌와 심장이 작동하는 한, 당신은 혼이 없이도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은 더 이상 자아를 느낄 수 없으며, 어떤 것도 기억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일단 그렇게 되면, 회복할 기회는 아예 꿈도 꾸지 말라.
    당신은 그저 존재할 뿐이다. 빈 소라 껍질처럼 말이다."
    (The Prisoner of Azkaban, p.247)
     
     

    2. 환생과 네크로먼시(죽은 자와의 영적 교감을 통한 점술)

     "너는 우리가 사랑했던 죽은 자가 정말로 우리를 떠난다고 생각하니?
    너는 우리가 극심한 고난의 때보다도 그들을 더 선명하게 떠올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니?...해리, 너도 알잖니.
    넌 지난 밤에 너의 아버지를 정말로 본 거야...넌 그를 네 속에서 찾아낸 거라구."(The Prisoner of Azkaban, p.427-428)
    이것은 아무도 죽지 않고 단지 또 다른 차원으로 변화되는 것이며, 그 차원에서는 살아있는 자가 죽은 자와 교통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기존의 마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또한 마법은 특히 죽은 영들과의 교통을 가르치는데, 우리는 그것을 '네크로먼시(necromancy)'라고 부른다.
    "Witchcraft for Tomorrow"에서 도리인 밸리언트(Doreen Valiente)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헬로윈 기간은 특히 죽은 자들의 영들과 교통하는 데 제격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죽은 자들과, 우리보다 먼저 간
    가족들이 즐기던 고대부터 내려오는 축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해리 포터 시리즈의 저자 라울링(J.K. Rowling)이 연중 행사 중에서 헬로윈을 '아주
    좋아하는' 명절로 꼽는다는 것이다.
    그녀가 헬로윈을 사랑한다는 것은 라울링이 오컬트에 깊숙히 빠져 있다는 분명하기 짝없는 증거들 중 하나인데,
    그녀의 책들의 내용만으로는 불충분한 증거를 보충해 주는 듯하다.
     
     

    3. 기존의 권위에 대한 경멸

    '마법사의 돌(The Sorcerer's Stone)'에서, 해리는 자신의 스승의 명령을 무시해 버리는데, 후에 그는 그 일로 인해
    추앙을 받게 된다.
    명령과 기존의 권위에 대한 순종은 하나님과 관련된 가치들이기에, 사탄 숭배자들은 기회 닿는대로 그것을 공격해
    들어오는데, 마법은 사탄의 참된 본성을 반영하듯 허무주의와 무정부주의의 영역에서 작용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라. 감수성이 예민한 어린 아이들이 스승을 경멸한 후 추앙을 받는 해리를 보고서 과연 무엇을 배우겠는가!  


    4. 자신만의 현실 세계 창조

     날아다니는 자동차들, 용들 그리고 마법과 요술 같은 해리의 환상 세계는
    그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현실'이 되어 버린다.
    모든 시대의 모든 아이들은 지금껏 자신들만의 상상의 나래를 펴 왔는데,
    해리 포터는 바로 이 누구에게나 있는 상상력을 한 발짝 앞으로 확고히
    전진시킨다.
    즉 마법을 통해서 말이다.
    다시 말해, 해리는 상상의 세계를 현실로 만들 뿐만 아니라, 실제 세계보다
    더 흥미롭게 전개시켜 나가는 것이다.
     

     

    5. 절대적인 선이나 악 같은 건 없다

    '마법사의 돌'을 보면, 해리는 "절대적인 선이나 악 같은 건 없단다."라는 말을 듣는다.
    이것이 바로 표준적인 마법이 주장하는 바이며, 그것은 1960년대 중반 이후로 대다수 우리의 아이들을 매료시켜 버렸다.
    마법사들은 아무도 절대적인 진리를 알 수 없으므로 아무도 절대적인 가치들을 깨달을 수 없다고 믿는다. "
    감이 좋으면 그것을 해라(If it feels good, do it)."가 사탄이 즐겨 사용하는 말인 것이다.
     


    6. 힘이야말로 참된 현실이다

    역시 '마법사의 돌'을 보면, 절대적인 선과 악 대신, 해리는 힘이야말로 참된 현실이라는 자신의 믿음을 주장한다.
    그런데 이것는 사탄의 성경이 내는 소리처럼 들린다.
    "병약자에겐 죽음을, 강한 자에겐 부를!"(p.30)
    자, 그럼 해리의 대사를 사탄의 성경과 비교해 보자.

    "강한 자들은 복이 있나니, 땅이 그들의 것임이요, 약한 자들은 저주받았나니, 그들이 멍에를 유업으로 받을 것임이라!
    강력한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사람들 가운데서 존경을 받을 것임이요, 연약한 자들은 저주받았나니, 그들이 흔적도
    없이 지워질 것임이라. 담대한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세상의 주인들이 될 것임이요, 청렴하고 겸손한 자들은
    저주받았나니, 그들이 갈라진 굽들 아래서 짓밟힐 것임이라...압제자들은 복이 있나니, 사회 부적격자들이 그들 앞에서
    달아날 것임이요, 영이 가난한 자들은 저주받았나니, 그들이 침뱉음을 당할 것임이라!"(The Satanic Bible, p.34)

    비록 "힘"을 참된 현실로 주장하는 데 있어서 해리 포터가 이 정도까진 가지 않았을지라도, 포터가 한 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이 길은 결국 사탄의 성경이 외쳐대고 있는 곳에서 끝날 것이다.
     


    7. 신비주의적 능력들을 악용하는 이들과 전투를 치르며 그것들을 선을 위해
    사용하라.

    해리는 마법사이며, 수정 구슬과 차 이파리들을 이용한 점술과 다른
    신비주의적 수법들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그는 영웅이며, 자신이 가진 흑암의 능력들을 가지고 암흑 세계의 더 큰 권세,
    즉 역시나 마법사와 마녀였던 부모를 죽인 그 권세와 싸움을 벌인다.

    해리 포터의 저자는 대담하게도 해리를 호그와트 마법과 마술 학교라 불리는
    마법을 전수하는 학교에 출석하게 한다.
    여기서, 해리는 오컬트의 능력을 인류의 '선'을 위해서 사용하는가 하면,
    그것을 가지고 그와 동일한 능력들을 가지고 '악'의 편에 서려는 자들을
    적극적으로 대항하기도 한다.

    이것은 보통 '백색 마술(White Magic)'과 '흑색 마술(Black Magic)'으로
    알려져 있는데, 해리 포터는 하얀 마법을 사용하는 자이다.
    그러나, 비록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이 백색 마술과 흑색 마술 사이의 전투를
    그대로 수용한다 할지라도, 진짜배기 사탄 숭배자들은 이렇게 말하며 그런
    발상에 콧방귀를 뀌어댄다는 것을 알라.

    "사탄 숭배 사상(satanism)에 경계선이란 없다. 다시 말해, 그것을 돕기 위해 사용하든 문제를 일으키는 데 사용하든
    마법은 마법일 뿐이다...그러한 모든 것은 모두 사탄이 관장하는 것이다."(사탄의 성경, p.51-52)

    따라서, 만일 해리 포터를 읽는 아이들이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사용되는 백색 마술을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그 아이들은 자신들이 사탄을 곧장 섬길 수 있는 길을 따라 끌려내려가고 있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종말이 되면, 너무도 선하게 보이는 초자연적인 속임수가 등장해서 가능하다면 하나님께서 택하신 이들도 속이려 들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것에는 하나 거짓을 찾아볼 수 없다(마 24:4,11,24).

    속임수는 말세를 특징짓는 "순도 우량 증명서"이고, 해리 포터와 같은 책들은 아이들을 영원한 파멸로 이끌고 가는
    피리부는 사나이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가 관심을 둬야 할 것은 해리 포터에 등장하는 S자 모양의 '번개' 표시인데, 나는 이 번개 표시가 정확히
    위치한 곳이 그의 두 눈 사이에 있는 세 번째 눈의 자리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왜냐하면, 흥미롭게도 이것은 성경이 거짓 선지자가 사람들로 하여금 신체 부위 중 어디에 짐승의 표를 받도록 할
    것이라고 말씀하는 두 위치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계 13:16-18).

    사탄주의는 온통 번개 표시로 가득 차 있으며, 그것은 아돌프 히틀러의 SS(Schutzstaffel; 나치스 독일의 친위대)에 의해
    2차 세계 대전 중에 강력하게 사용되었을 정도다.
    Dr. 캐씨 번즈(Cathy Burns)는 자신의 책 "프리메이슨과 오컬트의 상징들(Masonic and Occult Symbols Illustrated)"
    에서 말하기를, 번개 표시는 마법계에서도 "사탄의 S"라고 알려져 있다고 하면서, 이 번개 표시를 사용하는 겁도 없이
    사탄을 숭배하는 록 그룹들(Kiss, Black Sabbath, AD-DC, Raven, Metallica, Krokus, Judas Priest, Keel, Bowie)을
    리스트에 올려 놓는다.

    그러나, 번즈 박사가 잊지 않고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그 번개 표시의 진짜 기원이다.
    "이 들쭉날쭉한 표시는 또한 자신들의 사탄적 테러를 나타내려는 나치 S.S.에 의해 사용되었습니다. 그 표시는 하늘에서
    쫓겨나 땅으로 번개처럼 떨어지는 사탄의 능력을 나타내지요. 아시다시피, 사탄 숭배자들은 아마겟돈 전쟁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성도들을 진멸시켜 하나님의 보좌를 성공적으로 공격함으로써 루시퍼/사탄과 그의 군대가 처음의 패배를 뒤엎을 것이니 이제 두고 보라며 승승장구 맹세를 해대고 있습니다."   

    * 참고 사이트: http://www.cuttingedge.org/fmcorner.html

    * 관련 사이트: http://home.postech.ac.kr/%7Ewitch/witch/witch_main.html

    http://blog.naver.com/rnfkwowls?Redirect=Log&logNo=100020063486

     출처: 빛과 흑암의 역사/ 등대지기님





    3초의 여유속에 담긴 사랑
      엘리베이트를 탔을 때 "닫기"를 누르기전 3초만 기다리세요 정말 누군가 급하게 오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출발신호가 떨어져 앞차가 서 있어도
      경적을 울리지말고 3초만 기다려 주세요 그사람은 인생의 중요한 기로에서 갈등하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내 차 앞으로 끼어드는 차가 있으면
      3초만 서서 기다려요 그사람 아내가 정말 아플지도 모르니까요 친구와 헤어질 때 그의 뒷모습을 3초만 보고 있어 주세요 혹시 그놈이 가다가 뒤돌아 봤을 때 웃어줄 수 있도록 길을 가다가 아니면 뉴스에서 불행을 맞은 사람을 보면 잠시 눈을 감고 3초만 그들을 위해 기도하세요 언젠가는 그들이 나를 위해 기꺼이 그리할 것이니까요 정말 화가 나서 참을 수 없을 때라도 3초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세요 내가 화낼 일이 보잘 것 없지는 않은가 차창으로 고개를 내밀다 한 아이와 눈이 마주 쳤을 때 3초만 그 아이에게 손을 흔들어 주세요 그 아이가 크면 분명 내 아이에게도 그리 할 것이니까요.

      옮기는 글



      -● ●-





      



      아멘넷 게시판/김성훈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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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길 동행자 인생길에 동행하는 이웃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입니다. 힘들 때 서로 기댈 수 있고 아플 때 위로하고 어려울때 곁에 힘이 되어줄 수 있으니 서로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여행을 떠나도 홀로면 고독할 터인데 서로의 눈 맞추어 웃으며 동행하는 이 있으니 참으로 기쁜 일 입니다. 사랑은 홀로는 할 수가 없고, 맛있는 음식도 홀로는 맛없고, 좋은 영화도 홀로는 재미없고, 아름다운 옷도 보여줄 사람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아무리 재미있는 이야기도 들어줄 사람이 없다면 독백이 되고 맙니다. 인생 길에 동행하는 사람이 있다면 더 깊이 사랑해야 합니다. 그 사랑으로 인하여 오늘도 내일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좋은 글

      그 누구보다도 주님께서 가장 가까이, 세상 끝날까지

      동행해 주심을 믿으며 오늘 하르도 행복하시기를!!^^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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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직장인의 기도*
      
       
      매일 아침 
      기대와 설레임을 안고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하소서.
       
      하루의 한 번쯤은 
      하늘을 쳐다보고
      넓은 바다를 상상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주시고
       
      일주일에 몇 시간쯤은
      한권의 책과,친구와 가족과
      더불어 보낼 수 있는 
      오붓한 시간을 갖게 하소서.
       
      한달에 하루쯤은
      지나온 나날들을 반성하고
      미래와 인생을 설계할 수 있는
      소박한 철학자가 되게 하옵소서.
       
      작은일에도 감동할 수 있는 순수함과
      큰일에도 두려워하지 않는
      대범함을 지니게 하시고
      자기의 실수를 
      솔직히 시인할 수 있는 용기와,
      남의 허물을 
      따뜻이 감싸 줄 수 있는 포용력과
      고난을 끈기 있게 참아낼 수 있는
      인내를 길러 주옵소서.
       
      그리하여
      이 직장을 그만두는 날
      또는 생을 마감하는 날
      내가 거기서 만나고 헤어지고
      혹은 다투고 이야기 나눈
      모든 사람들을 
      떠올리며 
      미소지을 수 있게 하소서.
       
      -옮겨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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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롱기누스 창의 존재보다 더더욱 사람들을 의문에 몰아넣는 것이 있으니 바로 토리노의 수의, 혹은 성의이다. 세마포로 이루어진 이 천은 그 위에 어떤 화학적 반응에 의해 한 남자의 형상이 나타나 있는데 손에 있는 상처와 머리에 쓴 관 형태로 인해 예수를 쌌던 천이라고 알려져 있다.
      정확한 연원은 알수가 없으나 1세기 때 부터 유대와 유럽의 교회와 왕가에 때로는 공개 전시 되며 보관 되어오다 1460년에서 1983년까지 성의를 보관해 오던 사보이 왕가에서 교황청에 기증을 하게 되어 현재 로마 토리노의 성당에 보관되어 있다.
      그런데 이 성의에 대한 진위 여부에 대한 논란이 많다.

      1988년에 방사선 동위원소 측정법에 의하여 나타난 제작시기는 1300년경으로 예수가 살던 시대와는 엄청나게 동떨어져 있다. 그래서 그때 당시 토리노의 성의는 가짜라고 판명이 났었다. 그러나 올해 초 그때의 실험 결과를 뒤엎는 논문이 발표되었다.

      `토리노성의' 예수 당대 진품 가능성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linkid=42&newssetid=495&articleid=2005012714403230101

      "예수 시신 감싼 수의, 진짜 가능성 높다"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linkid=57&newssetid=511&articleid=2005012809043056270

      이와 같은 기사를 보신 분이 있을까? 이 기사에 따르면 성의에 묻어 있는 어떤 화학물질, 바닐린이라는 성분이 시간이 지날 수록 떨어지게 되는데 1988년경에 조사한 조각에서는 그 성분이 많이 나타나 있었고 실제 다른 부분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1300년경에 화재로 손상을 입은 부분을 복원하는 과정속에서 들어간 천을 조사하게 되었을 것이다라는 말이다. 따라서 원래 온전한 부분의 화학적 성분을 조사하면 제작 시가를 예수 생존시기에서 3000전 전으로까지로 추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또 재미난 것은 1월의 발표를 뒤엎고

      예수 ‘토리노 수의’는 역시 가짜…중세기술 실험통해 재확인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linkid=57&newssetid=511&articleid=2005062303022564110

      라는 기사가 실린다. 6월경의 기사로서 기사의 요점은 중세기술로 충분히 토리노 수의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중세기술로 만들 수 있다고 해서 토리노 성의가 가짜라는 증거는 될 수 없는데 그렇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니 어쩌면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위한 기사가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몇 백년전 기술로도 하늘을 날 수 있다라고 하며 증명을 하더라도 실제 날았는지는 알 수 없는일이지 않은가).

      일각에서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않고 프랑스로 망명해 살았다는 주장도 있으며 그에 대한 근거로 수의가 죽은 사람을 감싼 것이 아닌 산사람을 감쌌었던 것이라고 말함으로 예수가 죽은 척하고 아내 막달라 마리아와 함께 망명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판결이 영국재판정에서 있었다고 하니 참으로 재미있는 일이다.

      이웃 블로그에서 펌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을 반영하기

      (Reflecting God's Perfect Love )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도 존재하였으며 우리가

      죽은 후에도 존재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우리를 끌어안는 영원한 사랑입니다 영적인 생활을 한다는 것은 우리가

      이 영원한 사랑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의 부모, 형제자매, 스승, 친구, 배우자, 그리고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세속적인 사랑이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의 반영물이거나, 그 사랑이 굴절된 것이라는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어느 부모도 그 자식을 완전히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부자라도 서로를 무제한적으로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의 사랑은 반드시 어딘가 깨어져 있습니다 깨어진 사랑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사랑일 때, 우리들은 쉽게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깨어진 사랑이 하나님의 완전하고 조건 없는 사랑을 일부분적이나마 반영할 것이라는 믿음 속에서 우리가 살아갈 때, 우리는 서로의 부족함을 용서할 수 있으며, 우리가 제공할 수밖에 없는 그 사랑을 다 함께 즐길 수 있습니다 태어나기 전에도 있었고 죽은 후에도 존재하는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이 우리와 함께함을 믿으며...옮긴 글 ...



       


      출처: 아멘넷 게시판/Apostle

      출생과 어린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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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희가 태어난 1917년엔 유럽에서 터진 제1차 세계대전이 3년째 계속되고 있었다. 과학 기술의 발달은 전장을 하늘과 물밑으로 확장 시켜 영국 상공에서는 공중전이 벌어지고 있었고 대서양은 잠수함작 전의 무대가 되고 있었다. 1916년 9월에는 영국이 솜 전투에서 최초 로 탱크를 사용해 독일군의 방어선을 돌파했다. 박정희의 생일보다 한달 빠른 1917년 10월17일, 조선을 강점한 일제는 한강에서 인도교 준공식을 가졌다. 이 다리는 그로부터 43년 7개월 뒤 혁명군을 이끌 고 서울로 진격하는 박정희의 주요 기동로가 된다. 박정희가 태어나 기 1주일 전인 11월 7일(러시아력으로 10월25일)엔 레닌이 볼셰비키 혁명을 성공시켰다. 전쟁과 혁명이 세계를 진동시키는 가운데 어렵게 태어난 한 생명이 한반도와 한민족의 운명을 바꾸는 주인공이 될지를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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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희가 1917년에 태어났을 때, 가난한 가족의 구성원은 부모와 5남2녀였다. 아버지 박성빈(당시 만46세), 어머니 백남의(45세), 장남 박동희(22 세), 차남 박무희(19세), 장녀 박귀희(15세), 3남 박상희(11세), 4남 박한생(7세), 차녀 박재희 (5세), 5남 박정희. 동희,무희 두 형은 장 가를 간 뒤였고 귀희(진실누님 또는 수희)도 옆 동네로 시집을 가서 살고 있었다.

      박정희대통령의 출생과 죽음을 다 목격했던 박재희(1996년에 84세로 작 고, 박대통령보다 다섯살 위)씨는 1987년 10월6일 (당시 67세), 서울시 서대문 구 창천동의 2층 주택에서 월간조선 조갑제 기자에게 박대통령의 출생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며느리 둘을 보신 어머님이 동생을 임신하셨을 때는 귀희언니가 형부 은용표씨와 결혼한 뒤였습니다. 언니는 정희가 태어나던 해에 딸을 낳았지요. 그러므로 마흔 다섯에 임신한 어머니는 딸과 함께 아 기를 밴 것을 퍽 부끄럽게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때는 또 집안이 원 체 가난하여 식구가 하나 더 느는 것이 큰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어 머니는 아기를 지우려고 백방으로 애를 쓰셨습니다. 시골사람들이 흔 히 쓰는 방식대로 간장을 한 사발이나 마시고 앓아 누우시고, 밀기울 을 끓여서 마셨다가 까무라치기도 했답니다. 섬돌에서 뛰어내려 보기 도 하고, 장작 더미위에서 곤두박질 쳐보기도 했더랍니다. 아무리 해 도 안되니까 수양버들 강아지의 뿌리를 달여 마시고는 정신을 잃어버 렸肉�. 정신을 다시 차리고보니 뱃속의 아기가 놀지 않더랍니다. 이 제 됐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며칠 지나니까 또 놀더래요. 그 뒤 어머 니는 일부러 디딜방아의 머리를 배에다 대고 뒤로 자빠져 버렸어요.

      낙태를 시키려고 스스로 방아에 깔려버린 것이지요. 그때 나는 다섯 살이었는데 그 광경을 보고 어머니가 죽는다고 울고불고 했답니다. 어머니는 허리를 못 쓸 정도로 다치셨는데 뱃속 아기는 여전히 놀고 있더랍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할 수 없다. 아기가 태어나면 솜이불 에 돌돌 싸서 아궁이에 던져버리리라'고 작심하고 아기 지우는 일을 포기했더랍니다.".

      박재희의 증언에 등장하는, 어머니와 같은 시기에 임신한 딸은 박 정희의 큰 누님 박귀희(1974년에 작고)를 가리킨다. 박귀희의 아들 은희만이 어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이러했다.

      "한번은 내(귀희)가 친정에 다니러 갔는데 어머니께서 누구한테도 말을 못하시겠다면서 임신한 사실을 나에게 털어놓으시는 거야. 어머 니와 나는 뒷동산에 올라갔단다. 나는 어머니가 다치실 때 대비하기 위하여 낮은 데 서 있었다. 어머니는 높은 데서 몇번이나 뛰어내렸다. 한번은 내가 어머니를 부축하다가 함께 엉켜서 뒹굴기도 했단다. 정 희가 태어나기 열흘 전에 나는 큰 딸 봉남(1995년에 작고)이를 낳았다.".

      다시 박재희의 추억은 계속된다.

      "동생 정희가 태어나던 날의 기억은 어제 일처럼 생생합니다. 그 날 저는 혼자 마당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어머니 생각이 나서 '엄마야'하고 찾아 보아도 안 보여요. 방문을 열어보니까 어머니는 이불을 덮어쓴 채 끙끙 앓고 계셨습니다. 나는 어머니가 또 아기 지 우는 약을 먹고 그러시는 줄 알고 겁이 나서 아버지를 찾으러 논으로 뛰었습니다.

      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꽃신을 신고 달렸습니다. 돌밭에 넘어져 발등에서 피가 솟구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 오리는 뛰 었을 거예요. 숨이 차서 헐떡거리니 나락을 베고 계시던 아버지가 보 시고 얼른 논에서 나오시더니 대님을 풀어서 저의 상처를 동여맨 뒤 나를 업고서 집으로 오셨습니다.".

      태어날 수 없는 생명이 될 뻔한 아기가 세상의 빛을 본 것은 1917 년 11월 14일(음력 9월30일) 오전 11시경이었다.

      "삽작문을 들어서는 데 울음소리가 들리더군요. 아버지와 함께 방 으로 뛰어들어갔습니다. 어머니는 혼자 아기를 씻어 옆에 뉘어 놓고 당신도 기진맥진해 있었습니다. 아기가 새빨갛고 꼬물꼬물 하던 것이 예쁘게 보였다고 기억이 납니다.".

      경상북도 선산군 구미면 상모리의 금오산 자락 맨 끝에 자리한 허름한 초가집 삽작문에는 그 날 붉은 고추와 숯을 끼운 새끼줄이 내 걸렸다. 박정희가 배냇생명을 마감하고 태어난 이후에도 난관은 이어 졌다.

      "어머니는 젖꼭지가 말라붙어서 정희는 모유 맛을 모르고 자라났 습니다. 밥물에 곶감을 넣어 끓인 멀건 죽 같은 것을 숟가락으로 떠 먹였습니다. 그게 우유 대용이었지요. 변비가 생겨 혼이 난 적도 있 었지요.".

      박재희의 이 말을 뒷받침하는 것은 아들 은희만에게 한 박귀희의 생전 술회이다.

      "딸을 낳은 뒤에 산후조리를 하고 친정에 갔더니 정희가 태어났더구나. 어머니는 젖이 나오지 않아 내가 정희에게 젖을 물려주었단다. 시집에서 나와 낙동강을 배로 건너서 30분만 걸으면 친정에 도착할 수가 있어 나는 젖을 먹여주려고 자주 상모리에 갔었지.".

      다시 박재희의 증언.

      "정희가 두 살때, 아직 기어다닐 적인데 어머니가 정희를 큰 형님 (장남 동희의 아내)에게 맡겨 놓고 출타를 하셨어요. 형님은 바느질 을 하고 계셨던 것 같은데 정희가 기어다니다가 문지방 아래로 굴러 떨어졌어요. 그 아래로는 화로가 놓여 있었는데 정희는 벌건 화로에 처 박히면서 한 바퀴 굴렀어요.

      시뻘건 숯을 온 몸에 뒤집어 쓰고 말았지요. 머리카락과 눈썹이 다 탔어요. 형님과 나는 정희의 얼굴에서 숯을 털어내고 입 속에 들 어간 숯을 끄집어 내는 데 정신이 팔려 양쪽 저고리의 소매에 불이 붙어 타 들어가는 것을 뒤늦게 알았어요. 저고리를 찢다시피 하여 불 을 껐는데 양쪽 팔뚝에 심한 화상을 입었습니다. 아버지는 황토를 물 에 짓이겨 상처에다 바르고는 베 조각으로 감아 놓았어요. 화기가 빠 지고 한 달만에 겨우 딱지가 앉았는데, 그때의 화상 흉터는 정희가 죽을 때까지 남아 있어 소매가 짧은 옷을 잘 입지 않았지요. 이 사건 뒤에 보얗던 정희가 까무잡잡하게 되더군요."

       

      젊은 날의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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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경의 하숙생활

      박정희 교사는 학교 바로 밑에 있는 김순아(金順牙)라고 하는 아주머니 집에서 하숙을 했다. 그는 남편을 잃고 임창발(林昌發)이라는 아들하나를 데리고 하숙을 치며 사는 여인인데 인정이 많고 성격은 남자처럼 호탕한 편이었다. 박 교사가 하숙에 든 다음 달에 문경군청의 농회(農會)기사인 허동식(許東植)이 하숙생으로 들어왔다. 두 사람은 한 집에서 하숙을 하다보니 친하게 지냈고 퇴근 후면 술친구가 되었다. 당시의 생활에 대하여 허동식의 말을 들어보자.
      「나는 대구농림학교를 졸업하고 왔다. 박 교사의 첫인상은 꾀죄죄했는데 눈빛만은 빛나고 다부진 느낌을 주었다. 우리는 곧 친숙한 사이가 되었고 매일 집에서 술을 마신 것 같다. 술마신 것이 기억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막걸리를 동이로 받아와서 쪽박을 띄워놓고 허연 배추속과 된장을 안주 삼아 밤새도록 마셔댔다. 하숙집 주인도 가끔 끼어들고 했는데 박정희는 평소에 말이 없다가 술만 한 잔 들어가면<왜놈들><왜놈들>하면서 일본인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그리하여 이순신(李舜臣)이나 나폴레옹에 대한 이야기도 하면서 호탕하게 웃기도 했다. 노래는<황성옛터>가 십팔번이고 방학 때도 집에는 가지 않았기 때문에 결혼한 줄은 전혀 몰랐다. 집안 이야기는 도통 꺼내지 않았다.
      그는 늘 스파이크를 갖고 다니며 애지중지했고 아침 6시에는 학교 운동장에 올라가 어김없이 나팔을 불었다. 시계가 없던 시절에 이 나팔소리가 들리면 문경사람들은 "야! 박 선생 나팔소리다. 이제 일어날 시간이다"하고 일어날 정도였다. 그때 박 교사가 특별히 책을 많이 읽는 것 같지는 않았고 그저 술만퍼마시는 것 같았다. 그런데 하숙집 아주머니는 박 교사한테는 꼼짝 못하고 생선을 사면 그에게 몸통을 주고 나한테는 꼬리만 준다고 내가 핀잔을 주기도 했다. 당시 문경군청 서기로 있던 이동년(李東寧)도 가끔 어울려 우리는 함께 술을 마시기도 했다.

      박 교사는 누구보다도 대일감정(對日感情)이 좋지 않았다. 말끝마다<왜놈들>이 튀어나왔으며 의식적으로 일본말을 회피하는 눈치가 역연했기 때문이다. 한 번은 무슨 일 때문인지는 몰라도"그 새끼 때려 죽이려다가 놔주었다. 왜놈이면 다여!"하면서 아리마(有馬)교장을 패주고 와서는 씩씩거리는 것을 보았다. 임창발(林昌發)은 박 교사보다 한 살 아래였다. 그러나 때로는 눈에서 눈물이 핑 돌도록 호되게 꾸짖는 경우도 있었지만 지극히 사랑하였다. 그리하여 친동기간이나 다름없이 허물없이 지냈다. 그래서 박 교사는 만주군관학교 시절에도 휴가 때는 문경하숙집에 들려 오래도록 묵어갔다. 그러므로 1969년에 옛 하숙집 아주머니였던 김순아가 죽었을 때 박대통령은 임창발에게 친필 위로편지를 다음과 같이 써 보냈다. 「30년 전 문경 재직시에 피몽(被蒙)한 갖가지 후의를 다시 추억하게 됩니다. 문경선(聞慶線)개통식에 참석하려다가 급한 용무가 있어서 불참했는데, 모친께서도 오래간 만에 나를 만났으면 하고 기다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더욱 가슴 아프게 생각합니다.」 이것이 편지의 내용이다. 그리고 그는 언제나 공(公)과 사(私)를 분명히 하는 사람이었다. 옛날의 은인을 잊지 않으면서도 쓸데없는 은혜를 베풀지는 않았고, 아무리 바쁜 중이라도 정중한 인사만은 빠뜨리지 않았던 것이다.


      20세의 젊은교사 박정희

      1937년 3월 25일, 박정희는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했다. 그리하여 4월 1일 문경공립보통학교의 교사로 부임하여 4학년을 맡았다. 갓스무살의 젊은 나이에 월급45원을 받는 선생님이 되어 사회의 첫출발을 하게 되었으니 집안에서는 무엇보다도 가난을 좀 면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적지 않았고 구미 일대에서는<개천에서 용났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교육은 인격을 완성해 가는 수단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사람답기 위해서는 ①튼튼한 몸 ②밝은 지식 ③아름다운 마음씨를 길러 줘야 한다는 것은 박정희가<교육학>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박정희 교사는 본래 운동하기를 좋아했다. 체조에는 남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체육시간에는 더욱 흥미 났다. 달리기, 철봉, 뜀틀, 멀리뛰기, 맨손체조 등을 위주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씨름, 기마전, 축구 등 시합도 시키고 체육훈련에 남다른 열성을 보였다. 그가 학교에 부임하고 나서 몇 달 뒤부터는 가끔 아버지가 찾아왔다. 늙고 병든 아버지로서 첫째 자식이 보고 싶기도 했고 둘째 술좋아 하는분이므로 용돈이 궁하기도 하였으며 셋째 장가를 가고도 제 처를 돌보지 않는 자식을 타이르기 위해서였다. 박 교사는 그때 월급 45원을 받으면 하숙비8원, 가난한 집 아이들의 월사금으로 2~3원(1인당1원씩 2~3명)을 지출했다. 그리고 본인의 용돈으로 약10원을 쓰고 나머지는 상모리 집으로 송금을 했다. 그러므로 그의 아버지가 아들을 찾아온 데는 세 번째가 가장 큰 이유이다. 하기 싫다는 결혼을 억지로 시켜 놓았더니 제 식구를 데리고 가서 살림할 생각은 꿈에도 없는 것 같고, 하숙집에만 틀어박혀 집에도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가끔 아들을 나무라기도 하였다. 그럴수록 박정희는 아내가 더욱 싫어지기만하여 여름방학 때나 겨울방학 때도 아내가 있는 상모리 집에는 가지 않고 밖에서만 얼씬거렸다. 그러다가 교사로 부임한 지 1년 만인 1938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 당시 아버지의 병은 깊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따로 살림을 내어 오손도손 살기를 바랬지만 그 소망은 이룩되지 않았다. 한 번은 아버지로부터 송금(送金)은 필요 없으니 너의 처와 동거(同居)하기를 바란다는 간곡한 편지가 온 적도 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하여 박정희의 마음도 착잡하였으나 당시로서는 아버지의 마음을 다 헤아리지는 못했다. 젊고 패기 만만했으며 반골정신이 농후했던 박정희 교사는 나날이 울분을 참지 못했다. 그리하여 학생들에게 사범학교에서 배운 대로 은근히 민족혼을 일깨워주는 말을 자주했다. "학생 여러분! 전세계를 얻는다 할지라도 민족이 제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죽는 길밖에 없다. 앞으로 10년이 지나면 20세기의 후반기가 된다. 우리는 남을 이길수 있는 실력을 쌓아야 한다. 아는 것이 힘이다. 알기 위해서는 노력해야 한다." 하면서 학생들의 분발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것은 그의 제자 이영태(李永泰)의 증언이다. 그는 사범학교에서 배운 것을 그의 제자들에게 그대로 가르쳤던 것이다.


       

      수석 졸업


      박정희가 군인이 되려고 했던 기본적 동기는 무엇보다도 '긴 칼을 차고 말을 달리며 천하를 호령하는 대장이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군 인이 되어 독립운동과 국가건설의 힘을 비축하겠다는 정도의 생각을 처음부터 갖고 있었다는 증거는 없다. 총구의 힘을 이용하여 독립이 나 국가개조를 하려는 생각의 씨앗은 아마도 만주군관학교의 연병장 에서 그 최초의 싹을 틔웠을 것이다. 군대를 단순히 전쟁수단으로 보 지 않고 정치의 수단으로 보게되는 쪽으로의 시각 변화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가 딛고 있었던 만주국이 우선 일제 관동군의 작품이 아니었던가. 관동군 작전참모로서 만주사변을 기획하였던 이 시하라간지 같은 청년장교들에 대한 이야기가 신화처럼 전해지고 있 던 때였다. 박정희가 대구사범 5학년 때 일어났던 1936년의 2·26사 건은 그에게 중요한 화두를 제공해 주었다.

      이소베, 안도, 다케시마 같은 30대 초반의 가난한 농촌출신 대위 들이 주동이 되었던 이 거사는 그 동기가 군국주의적 책동과는 성격 을 달리 하는 것이었다. 대륙 침략정책에 희생되고 있던 농촌의 현실 을 농민 출신 부하 사병들의 비참한 경험담을 통하여 알게 된 이 청 년장교들은 천황에 직접 호소하여 이른바 '소화유신'을 단행함으로써 관료화된 군상층부를 숙청하고 사회적 모순을 일거에 해결한다는 구 상을 갖고 있었다. 이들은 군 내외의 상당한 지지를 받고 도쿄의 요 충지를 점거하였으나 거사 초반에 사이토 내무대신(조선총독 역임), 와타나베 육군교육총감, 다카하시 대장대신 등 요인들을 죽이고 스즈 키 시종무관을 중상에 빠뜨림으로써 천황의 노여움을 샀다. 그들은 도쿄 근방의 부대에서 동원한 1천5백명의 병력을 지휘하고 있었지만 천황이 '반도'라고 규정하자 자살하거나 투항해버렸다.

      2·26사건을 주동한 장교들은 만주사변을 주동한 엘리트 참모들과 는 달리 농민출신 사병들과 생활을 같이 하면서 그들의 애환을 동감 했던 일선부대의 장교들이었다. 이런 사건의 성격은 가난한 농민출신 의 장교후보생인 박정희의 주의를 끌 만한 것이었다. 더구나 만주군 관학교에는 2·26사건에 연루되었다가 밀려나서 온 장교들이 교관이 나 구대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이들은 침략적 군국주의와는 성격이 다소 다른 아시아주의자의 성향을 갖고 있어 민족차별 의식이 덜했다 (2·26주모자들은 만주사변의 주모자 이시하라 간지를 암살 대상자 명단에 넣어놓고 있었다). 박정희가 좋아했던 만주군관학교의 중대장 간노히로시와 일본 육사의 사카키 구대장이 그런 장교들이었다. 이런 장교들과의 접촉을 통해서도 박정희는 '국가개조의 수단으로서 총구 의 역할'에 대한 생각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을 것이다.

      군대, 권력, 개혁이 하나의 화두로서 그의 가슴 속 깊숙이 자리잡 으면서 그는 더욱 과묵해졌다.

      간노히로시 소교(소령)는 2·26사건에 가담했다가 파면된 뒤 만주 군 장교로 넘어온 사람이었다. 그는 조선인 생도들에게 관심이 많았 다. 어느날 1기생 방원철 최창윤 강재순을 자신의 관사로 초청했다. 점심을 대접하더니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너희들 조선독립을 원하지? 앞으로 독립운동을 열심으로 하게. 그러나 지금은 적당한 시기가 아니야. 일본이 승승장구하고 있는 이 때 독립운동을 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해.".

      박정희의 동기생 이한림(1군사령관과 건설부장관 역임)은 '또렷한 특색을 지닌 박정희 생도'에 대해서 이런 요지의 증언을 남겼다(회고 록 '세기의 격랑').

      '조그마한 체구이지만 어깨를 딱 벌리고 당당하게 걷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가끔 둘이 만나면 조국의 비통한 현실을 개탄하면서 같이 울기도 하고 결심을 밝히기도 했다. 우리 사이는 혈우라고 할 만했다. 특히 나에게 감명을 준 것은 누구에게도 지기 싫어하는 그 불굴의 정신이었다.

      동기생 이병주는 만날 때마다 나를 혼돈시켰다. 자신은 무신론자 라고 하다가 끝에 가면 공산주의에 대한 찬양이었다. 그는 체질적으 로 공산주의에 젖어 있었다. 나는 이병주에 대해서 좋지 않은 생각을 갖게되었다. 그런데 박정희가 가끔 그와 어울리며 그의 말을 반박하 지 않는 태도를 보고 이상하게 여겼다.'.

      만계와 일계의 교관이었던 오다카 가쓰에(뒤에 일본 사관전자센 터 사무장)는 1941년 가을 종합연습 때의 박정희로부터 깊은 인상을 받았다. 오다카 교관은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계속되는 행군훈 련때 소대장이었고 박정희는 그 아래 분대장이었다. 오다카 교관은 박정희에게 진지공격 명령을 내리곤 했는데 명령을 받아 실천하는 자 세에 기력이 넘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성실함이 느껴졌다. 투지 를 가슴 속 깊이 묻어둔 사나이란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1941년 12월 7일 진주만을 기습한 일본은 그 여세를 몰아 동남아 시아로 쾌속의 질주를 계속하고 있었다. 석유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남방작전이었다.

      이미지 전체보기1942년 3월 23일 박정희 등 2기생은 만주군관학교 예과를 졸업했다. 이날의 졸업식 기사는 우등상을 받는 박정희의 사진과 함께 만주 일보에 실려 있다. 이날 군관학교 연병장에서 열린 졸업식에 부의황 제는 참석하지 않았다. 국방부장관에 해당하는 우치안부대신과 우시 종무관이 참석했다. 만주군관학교 교장 나구모(남운) 중장의 상황보고에 이어 열병식과 생도대표의 강연이 있었다. 일계 우등생인 오카미 고야마 두 학생이 강연을 했다.

      우 시종무관이 전달한 우등상장을 받은 5명의 명단에 오카미, 고 야마 두 일본생도와 함께 다카키 마사오, 즉 박정희(선계)와 유장 두 만주계 생도의 이름이 들어 있다. 누가 1등인지 이 기사는 밝히지 않고 있다. 박정희의 동기생들 중 생존해 있는 두 사람 이한림과 김 묵은 "박정희가 2백40명 만계 전체에서 수석을 했다"고 말하고 있다. 박정희의 이름이 두 만주계 생도보다도 먼저 나오고 수상자 사진도 박정희가 대표로 받는 모습이라 두 동기생의 증언이 사실로 보여진다. 일본계의 수석은 아마도 강연을 한 두 사람이었을 것이다. 박정희는 몇달뒤 고향에 들러 누님 박재희에게 "금시계를 상으로 받았는데 나 를 축하해주는 가족이 곁에 없어 눈물이 날뻔 했다"고 말했다. 구미 보통학교를 1등으로 졸업한 뒤 대구사범에서 꼴찌로 떨어졌던 박정희 는 다소 늦은 나이에 다시 1등으로 복귀했다.

      수년의 방황 끝에 정열을 쏟아부을 천직을 확실하게 붙들었다는 징표였다

       

       

      첫 아내 김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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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희는 봄방학 때 선산으로 내려가 4월1일에 세 살 아래인 열일 곱 처녀 김호남과 결혼식을 올렸다. 김호남은 선산군 도개면에 사는 선 산 김씨 김세호-이말렬부부 사이에서 난 4남매 가운데 큰딸이었다. 김 씨의 외가가 상모리 아랫 동네에서 살았는데 박성빈에게 김호남을 중매 했던 것이다. 김호남은 초등학교 과정을 가르치던 2년제 간이학교를 졸 업한, 키가 훤칠하고 잘 생긴 처녀였다. 박성빈이 막내 정희의 결혼 이 야기를 꺼냈을 때 장남 동희와 상희는 반대했다.

      앓고 있던 박성빈은 생전에 막내가 결혼하는 것을 꼭 보아야겠다고 우겼다. 박상희는 동생 이 졸업하여 교사로 취직을 했을 때 결혼을 시켜도 늦지 않다고 아버지 를 달랬으나 황소고집인 박성빈은 듣지 않고 화만 냈다. 일방적으로 혼인날짜까지 받아버렸다. 박정희는 펄펄 뛰었다. 혼인날짜는 다가오는 데 박정희가 집에 오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박상희가 대구로 올라가서 박정희를 달랬다. 상희형에게 잡혀오다시피하여 내려온 박정 희는 친구들과 만난 자리에서 '결혼식 날에 달아날 궁리'까지 했다('이 락선비망록'). 5학년 신학기가 시작되는 날 내키지 않은 결혼식을 올린 박정희는 아내를 상모리 오막살이에 데려다 놓고는 달아나다시피 대구로 올라왔다.

      1937년11월24일(음력10월22일) 김호남은 큰 딸 재옥을 낳았다. 박정희는 딸을 본 뒤에도 아내에게 냉정했다. 아버지가 강권하여 시킨 결혼이었던 데다가 역시 2년제 간이학교 출신인 아내와는 문 화적인 격차가 있었다. 박정희는 방학 때 고향에 들러도 아내와 같은 방을 쓰지 않으려고 했다. 보통학교 동기인 이준상(작고),장 월상의 집에 자는 일이 많았다. 이준상의 어머니와 박정희의 어머 니는 친한 사이였다. 이준상의 동생 이일상(67)에 따르면 두 어머 니들이 박정희 부부 문제로 걱정을 하다가 하루는 박정희를 강제 로 아내의 방에 밀어넣었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두 어머니가 밤새도록 문앞 섬돌에 앉아 보초를 섰다 고 한다.

      박정희의 둘째 형 박무희의 큰 아들 재석은 작은 삼촌이 큰 삼 촌에게 혼이 나는 것을 보았다. 여름방학 때 문경에서 구미로 온 박정희는 친구들과 놀러다니기만 했다. 박상희는 구미역전 뒤에 있던 자신의 집으로 동생을 불렀다. 손에는 몽둥이가 들려 있었다. 6척장신인 그는 작은 동생을 달랑 들어 방안으로 끌고 들어가더니 문고리를 잠그어버리는 것이었다. 박재석은 겁이 나서 마당에 서 있었다. 김호남도 달려 왔다. 방안에서 노성과 매질소리가 동시에 들려 왔다.

      "니는 임마 뭐하는 놈이고. 재수씨가 재옥이를 혼자서 키우면 서 저 고생하고 있는데 모처럼 와서는 한 방에도 안자고 어디로 돌아다니노. 월급을 45원이나 받는다는데 그건 다 어디에 썼노.".

      김호남은 남편이 맞아죽는 줄 알고는 문에 매달려 울면서 사정 을 하고 있었다. 이 일이 있은 다음날 박정희는 사라져버렸다. 문 경으로 돌아가버린 것이었다. 이즈음 박상희는 지방언론인의 신분 으로 사업에도 성공을 하여 집을 세 채 샀다. 그 중 한 채를 어머 니에게 주어 며느리 김호남과 함께 살도록 했다. 박정희의 아버지 박성빈이 1938년9월4일에 68세로 사망했기 때문에 백남의는 외로 운 며느리와 함께 따로 살기를 원했던 것이다.

      박정희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하여 특별한 감상을 남긴 적이 없 다.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정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아버지에 대 하여는 평소에 좀 차게 느껴 졌다고한다.



      

       

      예수님은 우리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 즉 임마누엘이십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것은 커다란 신비입니다
      이 신비는 그분이 우리 인간들로부터

      사랑받기를 원했다는 사실로 증명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분 자신이 다치기 쉬운 어린아이가 되어,

      전적으로 인간들의 보살핌에 의존함으로써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거리를 없애기 원하십니다


      먹여 주어야 하고, 돌봐 주어야 하며, 가르치고 인도해야 할

      꼬마를 누가 두려워 하겠습니까?
      우리는 흔히 하나님을 얘기할 때,

      하나님은 전지 전능하시며 우리가 전적으로 의지하는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분은 전적으로 무력하고 연약한 하나님이 되기를 원하시며,

      또 우리 인간들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들과 함께 계시는 하나님' 이 되기를 원하시고

      또 '하나님과 함께 있는 우리' 가 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어떻게 두려워할 수 있을까요?

      

      옮긴 글

       

      
       
      

          "44송이 장미꽃"
        주님, 주님께서는 제가 늙어가고 있고, 언젠가는 정말로 늙어 버릴 것을 저보다도 잘 알고 계십니다. 저로 하여금 말 많은 늙은이가 되지 않게 하시고 특히 아무 때나 무엇에나 한마디 해야 한다고 나서는 치명적인 버릇에 걸리지 않게 하소서. 모든 사람의 삶을 바로 잡고자 하는 열망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소서. 저를 사려 깊으나 시무룩한 사람이 되지 않게 하시고 남에게 도움을 주되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게 하소서. 제가 가진 크나큰 지혜의 창고를 다 이용하지 못하는건 참으로 애석한 일이지만, 저도 결국엔 친구가 몇 명이 남아 있어야 하겠지요. 끝없이 이 얘기 저 얘기 떠들지 않고 곧장 요점으로 날아가는 날개를 주소서. 내 팔다리 머리, 허리의 고통에 대해서는 아예 입을 막아 주소서 내 신체의 고통은 해마다 늘어나고 그것들에 대해 위로받고 싶은 마음은 나날이 커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아픔에 대한 얘기를 기꺼이 들어줄 은혜야 어찌 바라겠습니까만 적어도 인내심을 갖고 참아 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제 기억력을 좋게 해 주십사 고 감히 청할 순 없사오나 제게 겸손한 마음을 주시어. 제 기억이 다른 사람의 기억과 부딪칠 때 혹시나 하는 마음이 조금이나마 들게 하소서 나도 가끔 틀릴 수 있다는 영광된 가르침 주소서. 적당히 착하게 해주소서. 저는 성인까지 되고 싶진 않습니다만...... 어떤 성인들은 더불어 살기가 너무 어려우니까요...... 그렇더라도 심술궃은 늙은이는 그저 마귀의 자랑거리가 될 뿐입니다. 제가 눈이 점점 어두워지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저로 하여금 뜻하지 않은 곳에서 선한 것을 보고 뜻밖의 사람에게서 좋은 재능을 발견하는 능력을 주소서. 그리고 그들에게 그것을 선뜻 말해 줄 수 있는 아름다운 마음을 주소서,

        17세기 어느 수녀의 기도  
      
      아멘넷/ 김성훈님의 댓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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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을 돕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친숙함, 가까움, 서로의 연약함,
      그리고 안전에 대한 깊은 인식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두려움이 있으면 불가능합니다

      두려움은 의심, 거리감, 방어적인 태도,
      그리고 불안감을 조성합니다 영적 생활에 있어서
      가장 큰 장애는 두려움입니다

      두려움에서는 기도와 명상, 그리고 교육이 나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완전한 사랑이십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쫒습니다'(요1 4:18)라고 썼습니다

      예수님의 전하신 메시지의 핵심은, 하나님은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우리들을 사랑하시며, 그런 사랑에 대한 응답으로
      모든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난  우리의 사랑을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옮긴 글

      ♧송순복1집♣-04여호와우리주여.mp3

       

      <br/>

      <iframe width="640" height="360" src="http://www.youtube.com/embed/7ek0HPQDl8Y?feature=player_embedded"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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