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조 웨스트민스트신앙고백에 대하여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

 

1. 웨스트민스터 총회

 

(1) 회의의 중요성

 

이 회의는 16세기의 영국 교회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장을 이루었다. 그리고 이 회의는 회의가 만들어 내 놓은 결정들의 범위나 능력에서 보든지 또는 후대에 끼친 영향면에서 보든지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회의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최대 약점은 국교개념을 가지고 교리, 예배, 권징을 통일화시켜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준수하도록 한 점이다.

 

그러나 이는 그 시대가 지닌 약점이었다. 영국에서 종교의 자유사상이 뿌리를 내린 것은 많은 실패와 박해를 거친 이후부터이었다.

 

 

(2) 총회소집

 

1642 10 15일에 신학자 회의를 소집시키려 했으나 무산되고 말았다. 1643 71일 웨스트민스트 사원에서 신학자를 중심으로 하여 소집된 총회에는 151명이 참석했다. 30명은 평신도 사정관이었다. 나머지 121명은 각 지역서 선출된 성직자들이었고 대부분 장로교 소속이었다.

 

(3) 대표들의 구성

 

대표들은 회의의 주동역할을 하면서 장로교 사상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교회정치와 권징 면에서는 스코틀랜드의 장로 정치가 채택되었다. 가장 빈번하게 열띤 토론이 벌어진것은 교리나 예배에 관한 내용이 아니라 교회정치에 관한 것이었다.

 

웨스트민스터 총회 대표들은 네 분파로 나누어 정리해 볼수 있다.

 

감독교회파

 

의회는 4명의 고위 성직자, 즉 제임스, 웃서, 브라유리그, 프라디욱스와 5명의 신학박사, 즉, 파트리 박사, 함몬드, 홀스워즈, 세더슨, 몰리를 대표로 선출했다. 그들은, 절대다수가 청교들이라는 점, 대표들이 목사들에 의하여 선출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평신도들이 섞이지 않았다는 점을 공격했다.

 

장로교회파

 

절대 다수의 수자로 총회를 주도해나간 것은 장로교회파였다. 장로교회 정치의 2대원리는 목회자들의 지위를 모두 동등하게 여기는 것과 목사와 평신도로 혼성된 당회에 의한 교회의 자립행정에 기초를 두고 있다.

 

독립교회파

 

장로교회파에서는 이들을 '불만에 가득한 다섯 형제들'이라고 불렀다. 주동 인물은 토마스 궁원 박사와 필립 나이 목사였다. 이들은 숫자에서 적었지만 영향력이 크고 학문이 깊었으며 성격이 준엄했다.

 

에라스티안파

 

에라스티안파는 교회의 권징에 대해서 국가가 최종 통치권을 행사할 것과 교회를 국가의 한 부속 기관으로 만들 것을 주장했다.

 

 

(4) 주요인물

 

월리암 트위스 박사. - 학식과 사색이 깊은 타락전 예정론 학파의 고위 칼빈주의자로 인정을 받았다.

 

토마스 풀러 - 그의 평이한 설교는 매우 훌륭했고 그의 강한 논변은 다른 사람들을 능가했으며 매우 경건한 삶을 영위했다.

 

찰스 헐 - 그는 온건주의 칼빈주의자였는데 토마스 플러는 그를 평하길, 그는 매우 훌륭한 그리스도인이요, 학자요, 신사이었기 때문에 자기의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들과도 사랑으로 하나 되게 할 수 있었다라고 말한다.

 

요한 화이트 - 의견이 분분하여 다툼이 생기려 할 때 농담으로 분위기를 화해시키는데 크게 공헌한사람이다.

 

알로우스미스 - 소요리문답의 주요 작성자여서 빼놓을수 없다.

 

에드문드 카라이 - 대중적인 설교자였고 장로교회파의 지도자였다.

 

요셈 카알리일, 토마스 콩만, 토마스 궁원 박사, 요수아 호일 박사, 죤라이프푸트,스테반 마샬, 필립나이, 허버트 필머,에드워드 레이놀드스, 프렌시스 루스경, 라자루스사만, 요한셀든, 리챠드 신스, 토마스 영

 

 

(5) 총회의 개회

 

1643 7 1일 토요일 웨스트민스터 대교회에서 상하 양 의원들과 많은 회중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회되었다. 모든 대표들은 다음과 같은 서약을 했다.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분명하게 서약하고 맹세하노니 나는 내가 대표로 참석한 이 총회에서 교리적인 문제에 관한 한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가장 일치되는 교리만을 주장하겠으나, 권징에관한 문제에 대해서는 가장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교회의 평화와 유익에 도움이 된다고 믿어지는 것을 주장할 것이다."

 

 

(6) 예루살렘 회관에서의 총회

 

9월말 혹독한 추위가 밀려오자 총회는 웨스트민스터의 부감독 관할 지역에 있는"예루살렘 회관"으로 그 장소를 옮겼다.

 

 

(7) 헌신을 위한 집회

 

웨스트민스터 총회는 신학적인 논의를 할 때마다 준비 집회를 먼저 가졌고 정기적으로 또는 필요시마다 의회와 공통으로 당시의 청교도적 경건의 특색을 지닌 집회를 가졌다.

 

우리는 청교도 성직자들이 헌신을 위한 집회에서 보여주었던 열심과 인내를 볼 때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3세기까지의 초대교회 역시 카타콤의 어둠속을 지날 때 이방의 마술과 이방의 아름다움을 혐오했었다. 그들은 주님께서 비하하셨을 때의 모습을 강조하였다. 이점에서는 청교도보다 터툴리안이 더 심했다.

 

 

(8) 회의 기간과 폐회

 

1643 7 1일부터 1649 222일까지 약 5 6개월에 걸쳐 1163회 이상의 정규 모임을 가졌다. 1652 325일 마지막으로 해산될 때까지 매주 목요일에 모임을 가졌고, 마지막 모임때 웨스트민스터 총회를 소집하여 장기 의회의 해산과 함께 끝을 맺었다.

 

 

 

2. 웨스트 민스트 신앙고백

 

 

(1) 39개 신조의 개정

 

10주간 동안을 39개조 신조의 개정작업에 착수했다. 39개 신조 중에서 15개 조항이 개정되거나 성경적 증거들이 보충되었다. 스코틀랜드의 영향을 받아가며 웨스트 민스터 신앙고백이 제정되어 solemn, league,covenont파의 공인을 받았다.

 

(2) 신조의 제정

 

최초로 위원회가 소집된 것은 16448 20일이었다. 164612 4일의 제 752차 회의에서 신앙고백서가 완성되었다. 최초로 인쇄된 것은 1646 12월 또는 1647 1월이었다. 2판은 1647 5월 교회의 권위를 부여받은 내용이 첨가되어 출판되었다.

 

(3) 의회의 역할

 

하원은 '겸손한 충고'의 권고의 글을 1647 5 19일에 시작하여 1648 3 22일에 끝을 맺었다.

 

 

(4) 스코트랜드 총회의 역할

 

이 고백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가장 잘 어울리며 우리 교회의 공인된 교리, 예배, 권징, 정치와 전혀 위배됨이 없다'고 선포했다. 스코틀랜드 의회는 1649 2 7일에 이를 승인했다.

 

 

3.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분석

 

 

(1) 시상적 배경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화란에서 알마니안주의와 날카로운 대립을 거친 이후의 칼빈주의체계를 성숙한 학문적 형식으로 나타낸다. 그리고 그 제정 시기도 고 교회의 감독제도가 시행되던 때의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와 영국 청교도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아일랜드 장로교회의 신조와 매우 흡사하다.

 

 

(2) 의견의 일치

 

그들의 의견일치의 배후에는 세 나라 (영국,스코트랜드, 아일랜드)의 교리적 일치를 추구하려는 기대감도 작용하였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창조에서 최후심판에 이르는 기독교 신앙의 모든 주요 내용을 33개 장으로 나누어 자연스럽게 취급하고 있다.

 

 

 

(3) 성경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교회의 전통을 성경과 똑같은 신앙의 규범으로 높이는 로마교회사상이나 자연인이 이성의 충족성을 가르치는 합리주의와 맞서서 맨 먼저 성경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바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

 

 

 

(4) 신론과 기독론

 

모든 정통교회들은 제2장의 '삼위일체에 대하여'와 제 18장의 '중보자 그리스도에 대하여'를 니케아 회의의 삼위일체론과 칼케톤 회의의 기독론에 대한 최고의 해설이라고 본다.

 

 

 

(5) 예정론

 

칼빈주의 예정론은 제한 속죄와 일정한 관계가 있다. 문제는 주로 논리적인 통일성에 있다. 제한 속죄는 속죄의 효과 즉 그 실제 적용범위를 말한것이다. 속죄의 절대적 충족성과 무한한 가치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6) 인간론

 

6장부터 제 9장까지는 보편화된 복음적인 개혁교회의 인간론을 새로운 언약론의 형식으로 나타내고 있다. 언약론에서는 언약을 행위언약과 은혜언약으로 구분하다.

 

 

 

(7) 구원론

 

10장부터 제 18장까지 복음적인 신앙고백서들 중에서 칭의, 양자됨, 성화 구원적 신앙, 선행, 구원의 확신에 관한 내용을 가장 세련되게 설명하고있다.

 

 

 

(8) 교회론

 

25장과 제 26장의 교회론 부분에서는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에 대한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구분방식이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다. 교회의 유일한 머리는 그리스도라고 선언되었다.

 

 

 

(9) 성례관

 

성례의 일반론특히 제27-29장은 세례와 성찬을 다루는데 있어서 칼빈주의적 사상을 표현하고 있다. 이 사상은 대륙이나 영국 또는 스코트랜드에 있는 모든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서들이 가르치는 것과 똑같다.

 

 

 

(10) 주일관

 

21장의 "예배와 안식일"에 관한 내용은 청교도의 주일관이 최초로 신조에 삽입된 것이었다. 1595년 니콜라스 보운드에 의해 체계화시켰다.

 

 

 

4. 웨스트민스터 요리문답

 

 

 

(1) 준비 작업과 채택

 

웨스트민스터 총회는 신앙고백서와 함께 두 개의 요리문답서도 제정했다. 1647년 가을에 심사와 승인을 받기위해 의회로 보내졌다. 에딘버러 총회는 1648 7 20일 대요리문답을, 7 28일에는 소요리 문답을 각각 승인하면서 두 요리문답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며 공인된 교리, 예배, 권징, 교회정치에 위배된 것이 전혀 없다'고 선언했다.

 

 

 

(2) 일반적 특징

 

두 요리문답은 모두 종래 요리문답의 전통을 탈피했다. 소요리문답에는 '사도들이 제정한 것도 아니요 정경처럼 여길 것도 아니지만 기독교 신앙의 요약이란 점에서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고 있고 초대교회 때부터 수집되어 왔다는 점에서'라는 말이 첨부되어 있다.

 

 

 

(3) 대요리 문답

 

1647년 한해 동안 내내 총회의 큰 관심거리로 등장하여 문답형식으로 토론되었다.

 

어떤 부분에서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주석과 보충적인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고 있다. 그러나 십계명에서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과 금하신 것의 종류에만 과도한 주의를 기울이고 그것의 구체적인 설명을 간과해버린 약점을 지니고 있다.

 

(4) 소요리 문답

 

소요리 문답 작성 위원회는 소집책임도 역시 터크니 박사가 맡고 있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은 가장 최근까지 전해 내려오는 프로테스탄트의 전형적인 세 요리문답서들 중 하나이다. 소요리문답은 사도신경의 역사적인 순서를 논리적인 구조로 바꾸었다

 

이 소요리문답은 장로교회, 회중교회,침례교회에서 사용되고 있다.


아름답고 신비한 궁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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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의 징조

 


 

 

 

                                              마24:3-14절, 162.167.177장. 말씀연구소 박봉웅 목사. 

 

요즘 지구가 온실화 되어 이상 기온이 빈번하고 지각의 불균형으로 지진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까지도 비인간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를 일컬어 말세라고 부릅니다. 주의 재림에 대해서 우리는 정확한 해, 달, 시간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께서 크게 어지러운 때에 오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께 다시 돌아가기에 앞서 재림 시에 있을 이러한 어지러움의 징조들을 말씀하심으로써 "늘 깨어서 준비된 마음을 가지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알려 주십시오.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님이 임하심과 세상 끝날에는 무슨 징조가 있겠습니까?"하고 물었던 것입니다. 이는 마24:3절 이하의 말씀이 종말에 대한 대답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 끝에 보여지는 징조를 예언하신 말씀인데 여기서 말하는 주의 임하심은 헬라어로 “파루시아”를 번역한 것인데, 이 말은 영주가 자기 땅에 올 때나 왕이 자기 백성에게 오는 경우에 쓰이는 말로 권위와 능력으로 오심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1.거짓 그리스도가 많은 사람을 미혹합니다.

 4-5절에 보니 미혹하는 일이 많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는 것입니다. 11절은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23-26절에 "거짓 그리스도,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나타나 이적과 기사를 보이면서 택한 자라도 미혹할 수만 있으면 미혹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요2:18절에 "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 그리스도가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 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 이렇듯 마지막 때는 거짓 그리스도, 거짓 선지자 즉 거짓 스승, 거짓 영적 지도자들이 많이 나타나서 영적 세계를 혼란시키겠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과거 초기에도 많은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나타나서 기독사상을 혼란시키고 영적 세계를 혼미시키겠지만 근래에 와서 미혹하는 자들이 더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2.국제적인 전쟁의 징조가 일어납니다.

 예수님의 두 번째 대답은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대적하여 일어날 것이다."(7절) 도처에서 내란과 전쟁이 일어나 국지전은 물론 잿더미가 될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사방은 화염에 싸이게 되고 사람들은 무더기로 죽어가게 될 것입니다.

 

물론 인류 역사 이래로 전쟁은 끊임없이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끝 날이 가까워 올수록 그 강도는 더욱 격화되어 마침내 그것이 심판의 불덩어리가 되고 말 것입니다. 과거 전쟁을 벌여온 괴수들마다 우리는 평화를 위하여 싸운다고 서로 크게 나팔을 불어댔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많이 죽인 자 일수록 더욱 금빛 나는 훈장을 어깨가 무겁도록 달아 주면서 그를 평화의 사도라고 크게 찬양하는 참혹한 연극을 벌여 왔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전쟁은 끝 날이 가까워올수록 더욱 가열되어 마침내는 이 땅을 불바다로 만들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한시도 전쟁의 위협과 공포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습니다. 전쟁은 가까이서, 멀리서 늘 되풀이되어 전개되고, 그때마다 인류를 공포와 전율의 도가니로 몰아넣곤 합니다. 역사가 시작되고 지금까지 하루도 멈춘 적 없이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쟁은 세상의 종말에는 더욱 심하여 나라와 나라, 민족과 민족이 피 흘리는 전쟁이 곳곳에서 일어날 것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난리는 전쟁, 전투, 다툼, 충돌, 알력을 뜻하는 것으로 세상 끝 날에는 곳곳에서 싸움과 전쟁이 있을 것을 의미합니다.

 

수 년 전에 걸프 전쟁의 원인이 이란이 쿠웨이트를 침공한 것이었던 것입니다. 이제는 민족을 대적하고 이념 전쟁보다는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국부 전쟁이 일어날 것입니다. 미국과 영국이 이라크를 공격하여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있습니다.

 

3.자연계에 고갈의 징조가 나타납니다.

 7절에 "처처에 기근"이라고 했습니다. 마지막 때에는 기근이 많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기후의 이상 현상으로 곡식이 잘 안 되어 기근이 올 것을 말했습니다.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기후에 이상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겨울에 홍수가 나기도 하고 더위가 심하여 인명과 동식물이 많이 죽기도 하고 도처에 재난이 심하기도 합니다. 여름에 푹설이 내려 인명피해도 많았습니다. 지금 세계인구 중에 매년 1500만 명이 기근으로 기아들이 생겨 죽어가고 있고, 아프리카․인도 남부 지역 500만이 영양실조에 걸려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앞으로 더욱 기근으로 인하여 식량 부족이 오리라고 예상합니다. 왜냐하면 대기 오염과, 기후의 이변과, 원자무기 실험의 영향과, 인구 폭발과 전쟁 때문입니다. 이는 다 말세의 징조입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경제 불황으로 대학을 나온 젊은이들이 일자리가 없어서 길거리를 방황합니다.

 

4.지진이 일어납니다.

 지금 날이 갈수록 점점 지진의 빈도가 자주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진 지역이 아닌데도 지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하 핵폭탄 실험의 영향으로 지진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여하간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것도 말세의 징조입니다.


이 지진이 일어나는 것에 대하여 성경은 여러 면으로 증거하고 있는데,

 1)하나님의 현존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시68:7-8절에서 "하나님이 주의 백성 앞에서 앞서 나가사 광야에 행진하셨을 때에 “셀라“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하나님 앞에서 떨어지며 저 시내산도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서 진동하였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시내산은 모세가 기도하던 산으로 여호와가 임재한 산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같은 은혜와도 관계없이 주의 진노가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이제 이 땅에는 하나님의 진노가 내려지면 피할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와 같은 진노를 피하려면 날마다 거룩한 생활로써 주와 더불어 생활을 하는 것이 바로 구원의 길인 것입니다.

 

  2)말세에 되어질 심판입니다.

 

계16:19절에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했습니다. 지진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상징한 것처럼 번개와 음성과 뇌성 이 세 가지는 항상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의 상징입니다.

 

죄악이 관영한 노아 때에는 하늘의 창문을 열고 비를 내리고 땅이 터져 샘이 나오게 하여 전 세계를 심판하셨는데, 말세에는 하늘에서 불(번개와 뇌성)이 내려오고 땅에는 지진이 나와 죄악의 세계를 이렇게 심판하실 것을 시위(侍衛)한 것입니다.

 

5.사회는 쾌락을 사랑합니다.

 

 딤후3:4-5절에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 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와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고 했습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돈을 사랑하고 나아가 결국 쾌락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1)사람들이 돈을 사랑합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의 반대 개념입니다. 자만과 물질, 사랑 이 두 가지는 모든 악의 근본이요 뿌리입니다. 왜 자긍하며 교만해집니까? 그것은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자긍은 자기 자랑이요, 호언장담하는 것입니다.

 

교만은 남을 멸시하고 자기를 스스로 높이는, 자기 우월감에서 나옵니다.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죄는 남의 인격을 무시하는 교만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멸시하고 전능자를 비웃는 것입니다. 앗수르의 교만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멸시하였고, 슥10:11절의 교만이 바벨론의 패망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또한 모압의 교만이 하나님을 진노케 했고(렘 48:29), 애굽의 교만이 패망을 가져왔습니다(렘 30:6). 이스라엘의 죄가 무엇입니까? 그의 교만입니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서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의 간섭을 싫어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16:18)고 했고, "메시야는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눅1:51),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벧전 5:5) "교만한 자를 물리치신다"(약 4:6)고 하신 것입니다. 2)말세에는 사람들이 감사치 아니하며 절제치 못하는 것입니다.

  

말세에는 사람들이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한다는 것이 현실로 나타난 지가 이미 오래입니다. 소위 핵가족 시대라고 하여 현대 부부들은 부모를 모시지 않고 독립해 살기를 원하여 자식이 있는 부모들도 홀로 외롭게 살아가는 현실이 사회 문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부모를 거역하는 것은 최대의 배은 망덕이며, 이런 자는 하나님의 은혜나 사람의 후의도 감사치 아니하고 배반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충신을 효자 가운데서 찾았던 것입니다. 절제하지 못하는 것도 말세의 한 징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와 같은 것을 말세가 되어서 그런다고 체념하지 말고 나의 처신,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음을 자각하여 바른 생활을 하여 세상에서 빛 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6.불법이 성하며 사랑이 식어집니다.

 

12절에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고 했습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이 타락하여 하나님의 법을 따르지 않을 때 그 결과는 즉시 이웃에 대한 사랑의 냉각으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다툼과 미움만이 있는 인간 공동체에 그 어찌 사랑의 싹이 트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우리는 분명 종말의 시대에 살고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기보다는 서로가 서로를 헐뜯기를 좋아하며, 나누어주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더 가지려 한다면 그것은 종말의 징조임에 분명합니다.

 

우리 안에 사랑이 있는가 살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끝까지 이웃을, 형제를 뜨겁게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의 특징은 따뜻함과 열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성도간의 사랑이 식어지고 왜곡된다면 그것은 도리어 미움이 될 것입니다.

 

7.신자들이 환난을 당하게 됩니다.

 

마24:9절에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    으며 너희를 죽이게 될 것이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진리대로 사는 사람은 시대를 막론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박해를 받게 마련입니다. 딤후3:12절에 참된 진리는 언제나 세상과 야합하지 않고,  그들을 고발한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끝 날이 가까워 올수록 이런 일이 더욱 격화될 것이라 하였습니다. 점차 거짓과 온갖 술수가 만연하게 되면서 상대적으로 진리는 버림을 받고 그것을 순종하는 자 또한 같은 취급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그들은, 세인들의 박해를 피해 다닐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컨대 진리의 사람들은 예외 없이 어느 시대에나 그렇게 살다가 갔습니다. 그들은 광야와 산과 동굴과 땅굴로 헤매며 다녔으며 그러다가 붙잡혀 결박을 당한 채 마침내 돌에 맞아 죽고 톱질을 당하고 칼에 잘려 죽어갔습니다.(히11:36-39). 아니 과거 뿐 아니라 장차 미래에도 이렇듯 진리의 사람들은 또 ,그렇게 죽어갈 것이며, 끝 날이 가까워 올수록 그런 일이 더욱 격심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조금도 두려워 말고 그런 핍박과 심지어 죽음까지도 달게 받아야 합니다. 사실상 진리를 위한 순교자들의 죽음이야말로, 죄 많은 이 세상을 구원하는 첩경이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세계 도처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많은 환난을 당하고 있고 또 회교도 국가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은 핍박을 당하고 있습니다. 기타 자유주의 진영에서도 독재자들에게 그리스도인들이 미움과 핍박을 당하고 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교회 내부에서도 배교자들이 일어나 형제를 잡아넣고,

 

형제를 미워하고 교회를 크게 시험 들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오늘날 교회 내부에서 배교자들에 의해서 교회가 비판당하고, 난도질당하고, 사실이 아닌 것을 자기 나름대로 왜곡되게 생각하고, 추측하고, 상상하고, 세상에 교회를 나쁜 모습으로 부각시켜 놓는 일이 비일비재입니다.

 

사회 신문에 교회를 비판 조로 쓴 것은 교회 안에 있는 배교자들의 제공에 의한 것입니다. 이것이 다 말세의 징조인 것입니다. 우리 중에는 배교자 노릇하는 사람들이 한 사람도 없기를 바랍니다. 밖에서 들어오는 핍박도 잘 참고 견디어야 하겠지만 안에서 배교자 노릇을 하여 교회를 스스로 허는 일을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기를 바랍니다.

 

8.말씀을 정리합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을 선고하신 대로 주후 70년에 멸망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민족은 세계 각국에 산산히 흩어져 오랜 세월(근 2000년간)이 흐르는 기간에 고국에 돌아와 국권을 회복하며 독립하리라는 것을 도무지 상상도 못했던 막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제 2차 세계 대전을 전후하여 이스라엘의 독립 운동인 시온주의 운동이 전개되어 오더니, 1945년 영국의 위임 통치를 벗고, 1948년 5월 15일 대통령 와이즈만 박사 영솔하에 옛 왕 다윗을 상징하는 별기(星旗)를 휘날리며 당당히 독립을 선포하고 지금은 유엔의 한 멤버로, 활약하고 있으니,

 

이는 곧 무화과나무의 비유가 들어맞았습니다. 이제 다만 우리는 임박해 오는 주님의 재림에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평상시 신앙생활을 할 때에 주님이 언제 어느 시에 재림하시더라도, 오 주여 ! 어서오시옵소서! 하고 기도할 수 있는 자신 있는 성도의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빛과 흑암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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