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통과한 사명

 

                                       김지철

 

이 세상을 살피시는 하나님,

눈이 있어도 이 시대의 위협이

얼마나 크고 위험한 것인지를 보지 못했습니다,

귀가 있어도 이 시대의 탄식과 신음을 듣지 못했고,

들어도 그냥 무심히 넘겨 버렸습니다.

세상의 부패와 타락을 보면서도

마음에 거룩한 분노를 느끼지 못하고,

그냥 될 대로 되라는 무관심이 우리 생각과 삶을 지배했습니다.

 

 

우리의 눈을 여시는 하나님,

오늘 우리가 격는 위기가 우리 자신의 위기임을 깨닫습니다,

자식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사랑을 잃어버린

지도자들이 넘쳐 나고 있습니다,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가 있고, 여기에 나 자신이 있습니다,

 

 

성령님이시여,

우리의 못되고 완악한 마음을 용서하여 주소서

주님처럼 안타까워하며

눈물로 기도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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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럴지라도


어느 기독교 웹사이트에서 읽은⌈미안하다, 죄인이다⌋라는 제목의 글입니다.
“나는 살인하지 않았습니다. 미안합니다. 힘이 없었을 뿐이었습니다.
나는 순결을 지켰습니다. 미안합니다. 용기가 없었을 뿐이었습니다.
나는 공평과 정직을 행했습니다. 미안합니다. 처벌이 두려웠을 뿐이었습니다.
나는 남을 도우며 살았습니다. 미안합니다. 보답이 돌아오길 기대했을 뿐입니다.
나는 세상쾌락을 멀리 했습니다. 미안합니다. 돈이 없었을 뿐이었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과 화목하게 지냈습니다. 미안합니다. 그저 그게 속 편히 사는 길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었습니다.”

인간이 죄인이라는 것은 그 본성과 본질이 죄인이라는 뜻입니다.
돼지도 수세식 우리에 계속 목욕시키고 닦아주면 얼마든지 오물 속에 뒹굴지 않은 깨끗한 동물로 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돼지는 돼지일 뿐입니다.
인간도 죄를 지을 수 없는 환경 속에 두고 24시간 감시하고 지키면 죄 안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죄인일 뿐입니다.

사과에 칼질을 하면 사과즙이, 복숭아에 흠집을 내면 복숭아즙이 나와야 합니다.
인간의 본성이 선(善)이라면 오른 뺨을 치면 왼뺨도 돌려대어야 하고, 원수도 사랑하여야 하며, 찔러서 상처를 입히고 설사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다 해도 그 말과 행동과 마음에서는 악(惡)이 아닌 선(善)과 축복이이 나와야 할 것입니다.
금이나 보석은 오물 속에 넣어도 금이요 보석입니다.
인간의 본질이 거룩하다면 어떤 환경 속에서도 변함없고 변질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이런 인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인간의 죄악 된 본성은 예수 믿어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예수는 믿지만, 크리스천이라고는 하지만,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지만, 예수 믿기 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인 이 마음, 여전한 죄성은 어찌해야 하는 것입니까?
“나는 진짜 크리스천인가, 가짜 크리스천인가?” 이런 고민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사도바울조차도 바로 이 문제 때문에 몸부림을 친 흔적이 로마서에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롬7:18-19)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롬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가 존경하는 사도바울이 이럴진대 저와 여러분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인간이 죄의 본질을 가졌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예수 믿고서도 도무지 변화되지 않았다 해서 낙망하거나 구원을 의심하지는 마십시오.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홍해를 건넜지만 그들은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애굽에서 벽돌 굽던 노예의 성품 그대로였습니다. 그들의 발걸음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약속의 땅으로 행군해 가고 있었지만 그들의 마음은 애굽의 고기가마 곁에 머물고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마늘을 먹던 때를 그리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들을 하나님의 군대라고 불러 주셨습니다.
우리도 그러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서 여전히 변화되지 못 하여도 하나님은 우리를 십자가의 군병으로 불러주시고, 하나님의 자녀요,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이것은 도무지 구원 받을 자격이 없는 죄인을 구원하시는 것이 우리에게 있지 아니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에 있단 말입니다. 구원받은 자격이나 능력이 전혀 없는데도 애굽으로부터 이끌어내어 구원하시고, 가나안을 정복할 능력이 전혀 없는데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도움으로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하신단 말입니다.
만일 인간의 본질이 바뀔 수 있다면 바꾼 다음 구원하면 될 것입니다.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도무지 바꾸어지지 않는 죄악의 본질을 가진 죄인을 구원하는 것,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신 것, 이것이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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