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마음이 하나님 보시기에 바르지 아니함이라

 

존 라일

 

 

 "네 마음(thine heart)을 내게 주며"(잠 23:26)

 "네 마음(thy heart)이 하나님 보시기에 바르지 아니함이라"(행 8:21)

 

이 시간은 여러분에게 마음에 대해 나누려고 합니다. 신앙생활에서 마음의 문제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제가 이 문제에 대해 말하는 것을 유의해서 들으십시오.

 

우선 지식이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당신은 예수님과 구원의 교리에 대한 모든 사실들을 알며 동의할 수 있습니다. 또 분명하고 정확하며 건전한 영적 가치관을 지니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지금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을 걷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마음은 하나님 보시기에 바른 마음입니까?" 지식이 아니라면 어떤 이는 삶을 얘기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다운 삶 말입니다. 당신은 겉으로 별 흠잡을 데가 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성실하고, 예절 바르고, 경우 있고, 과격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소위 헌신된 당신은 교회의 장로들이나 주위 형제들로부터 "신실한 형제"라는 칭찬을 얻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에도 내내 당신은 영원한 멸망의 길에 놓여 있는지도 모릅니다. 타고난 좋은 기질과 가정 교육은 그리스도인다운 모습을 갖추게 할지는 모르나 당신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의 마음입니다. 당신은 과연 하나님 보시기에 바른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또 소원이나 의욕이 있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당신은 영적인 문제에 대해서 훌륭한 감정을 품을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가령 대언자 발람처럼 의롭게 죽기를 원할 수도 있습니다(민 23:10). 다가올 심판을 생각하여 떨 수도 있으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생각하며 마음이 녹아져 눈물을 흘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는 동안에도 당신은 내내 지옥을 향해 치닫고 있을지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마음은 하나님 보시기에 바른 마음입니까? 저는 이제 오늘 이 말씀을 세 가지 측면에서 제시하고자 합니다.

 

 1. 신앙생활에 있어서 마음이 아주 중요한 것이라는 것과

 2. 둘째로, 하나님 보시기에 불의한 마음이란 어떤 것이고

 3. 끝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바른 마음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지각을 여사 이 모든 진리를 깨닫게 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 말씀이 우리 안에 역사하여 열매를 맺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1. 무엇보다도 신앙생활에 있어서 마음의 문제는 아주 중요합니다.

 

저는 이 사실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 입증하겠습니다. 진리의 시금석은 오직 성경 기록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선 성경은 마음이야말로 우리의 영적 상태를 좌우한다고 가르칩니다.  

 

"모든 열심을 다해 마음을 지키라 이는 삶의 제반문제가 여기서 나옴이니라"(잠 4:23).

 

사실 이성이니 양심이니 감정이니 하는 것들은 마음에 비하면 모두 이차적인 문제들입니다. 마음은 곧 그 사람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생명이 시작되고 힘과 건강을 얻고 성장하는 것도 다 마음에서 일어납니다. 마음이야말로 영적인 삶의 중심점이자 전환점이 되기도 합니다. 만약 그 마음이 하나님께 대해 살아있고 성령의 일깨움을 받는다면, 그 사람은 진정 살아있는 신앙인입니다. 그런데 만약 마음이 죽어있어 성령이 거하시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는 죽은 사람입니다. 마음이 곧 그 사람입니다! 전 모임에 참석하고 몇몇 사역에 동참하고 뭐 그런 것들을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그 마음이 어떠한가 인데 이로써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the spirits, 마음)을 저울질하시는 분이시며(잠 16:2), 또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나 주는 마음을 살피며"라고 하셨습니다(렘 17:10).  

 

그런가 하면 성경은 마음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최우선적으로 바칠 것을 요구하시는 것임을 가르칩니다. 그는 "네 마음을 내게 주며"라고 말씀하십니다(잠 23:26). 우리는 그분 앞에 고개 숙여 경배할 수도 있고 소리 높여 찬양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소위 영적인 일에 시간과 열정을 드릴 수 있으며 진리를 수호하는데 앞장 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 가치 있는 것은 우리가 그 분께 마음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사야 시대의 유대인들은 많은 값비싼 헌물들을 바쳤습니다. 그들은 입술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나아왔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빠뜨렸기에 그 나머지 모든 것은 헛된 것이었습니다(마 15:8). 그리고 열왕기하에 나오는 예후의 경우를 살펴봅시다. 그는 우상숭배에대해 의분을 느꼈고 손수 우상들을 제거함으로써 일시적으로 많은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최종적인 하나님의 평가는 그가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의 법대로 행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왕하 10:31).

 

진정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주지 않습니까? 남편이 아내에게, 부모가 자녀에게 요구하는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은 하나님께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의 신체에 있어 심장(마음)은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 그것은 온 몸에서 가장 중요한 기관입니다. 사람은 열병에 걸리거나, 부상을 입거나 팔다리가 절단되어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심장을 다치면 살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마음(심장)은 영적인 생명의 근원이 됩니다. 증기 기관차에 있어서 불은 어떤 역할을 합니까? 불은 기관차를 움직이는 원동력입니다. 스크루, 밸브, 조인트, 크랭크, 로드 등 모든 부속품들이 잘 만들어져서 제자리에 놓여있어도, 화로가 썰렁하고 물이 끓지 않아 수증기가 되지 않는다면 기관차는 조금도 움직일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우리의 마음이 하늘에서 내린 불로 타오르지 않는다면 우리 영혼은 살아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당신 주위의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신앙에 대해 조금도 관심이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그리스도, 성경, 천국, 지옥, 심판, 영원 등에는 전혀 관심을 두고 있지 않으며 오로지 먹고, 마시고, 입고, 돈벌며 쾌락을 추구하는 데에나 신경쓸 뿐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속한 일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관심도 없는 사람들로 새로운 마음이 필요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해마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들으면서도 마음이 변하지 않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그들의 마음은 존 번연이 천로역정에서 표현한 "절망의 수렁"과 같습니다. 그들은 아무리 좋은 교훈들을 많이 받아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때로 지적으로는 설득되어 진리에 대해 지적으로 동의합니다. 혹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거나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왜 그리 완고하며 대체 무엇 때문에 머뭇거리고 있습니까? 그것은 그들의 마음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 마음속에는 어떤 우상 같은 것이 숨어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을 세속적인 것에 얽매이게 하고, 그들의 손과 발을 묶어서 꼼짝 못하게 합니다. 그들에게는 새로운 마음이 필요합니다. 에스겔은 그들의 상태를 다음과 같이 잘 나타내었습니다.  

 

"백성이 오는 것같이 네게 오며 내 백성같이 네 앞에 앉아 네 말들을 들으나 그것들을 행하려 하지는 아니하나니 이는 그들이 자기들의 입으로는 많은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으로는 자기들의 탐욕을 따름이니라"(겔33:31).

 

왜 그토록 많은 소위 기독교인들이라는 사람들이 결국에는 버림을 당하여 지옥에서 비참하게 멸망합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지 않으려 하셨습니까?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부르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상 그들을 위해 "모든 것이 준비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들 자신의 마음은 준비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마음이 준비되어 않았기에 그들은 멸망하고 맙니다. 마치 난파당한 사람이 지나가는 구명선을 보고도 거기에 오르려 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기꺼이" 그들을 모아들이려 하셨지만, 그들은 "기꺼이" 거절 한 것입니다(마 23:37). 그리스도는 구원할 능력을 갖고 계셨지만 그들은 구원받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했습니다. 마음이 잘못되었기에 "영생을 얻기 위하여 그리스도에게로 오지" 않는 것입니다(요 3:19; 5:40). 이제까지 신앙생활에서 마음이 지니는 막대한 중요성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니 이제 여러분의 마음을 살펴보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은 과연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습니까?

 

2. 둘째로, 하나님 보시기에 불의한 마음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의로운 마음과 불의한 마음 이 두 가지만이 있습니다. 그러면 불의한 마음이란 어떤 것입니까? 불의한 마음이란 사람이 타고난 본래의 마음입니다. 세상에는 본래부터 의로운 것이라고는 없습니다. 비록 일부 무지한 사람들이 "본성적으로 선한 마음을 지녔다"고 말하기를 좋아한다 해도 본래부터 "선한 마음"같은 것은 없습니다. 인간이 타락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온 이후로 모든 사람은 악으로 기울려는 경향을 타고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본래부터 모든 마음은 불의합니다. 만약 당신이 태어난 뒤 당신의 마음이 성령에 의해 변화되지 않았다면, 당신의 마음도 지금도 불의합니다. 성경은 인간이 본래부터 타고난 마음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모든 것보다 거짓되고 심히 사악한 것은 마음이라"(렘 17:9).

"그 마음에서 생각하여 상상하는 모든 것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 6:5).

"참으로 사람들의 아들들의 마음에는 악이 가득하며"(전 9:3).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간음, 행음, 살인, 도둑질, 탐욕, 사악함, 속임, 색욕, 악한 눈, 신성모독, 교만, 어리석음 등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막 7:21-23).

 

이 얼마나 보기에 추한 모습입니까! 이러한 일들은 모든 사람이 타고난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분명히 말하거니와 본래 타고난 마음은 불의합니다.

 

그럼 이제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 받지 못한 불의한 마음들 가운데 어떤 공통된 특징들이 있는지 알아봅시다. 성령님께서 인간의 타고난 마음을 아주 적절하게 표현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돌같이 굳은 마음"입니다(겔 11:19). 타고난 본래의 마음을 돌같이 굳은 마음이라고 한 것은 더할 나위없이 적합한 표현입니다. 그러면 이 돌같이 굳은 마음의 특징을 몇 가지로 말해보겠습니다. 부디 주님께서 우리로 깨닫게 해주시기를 원합니다.

 

(1) 돌은 단단한 것입니다.

 

이는 누구나 다 아는 사실로서, 돌은 굽혀지지도, 구부러지지도, 눌려지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돌같이 굳은"이라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타고난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난을 겪거나 남의 덕을 봐도, 혹은 말씀을 듣거나 상담을 해도 사람의 마음은 도무지 부드러워지지 않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오셔서 변화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본래의 마음을 돌같이 굳은 마음이라고 부르는 것이 당연합니다.

 

(2) 돌은 차가운 것입니다.

 

우리는 돌을 만질 때 오싹하고 얼음장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그건 사람의 살이나 나무, 심지어 흙과도 다른 느낌입니다. 그래서 "돌같이 차가운"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성당에 있는 대리석 조각이 수천 번의 설교를 듣는다 해서, 그것들이 어떤 느낌을 갖겠습니까? 그 돌로 된 얼굴들은 근육 하나 움츠리거나 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 본래의 마음도 마찬가지여서 영적인 것에 대한 감각이 없습니다. 그래서 복음의 말씀을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정치·경제 뉴스나 각종 사고 소식보다 더 하찮게 여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은 하나님께서 신령한 불을 내려 녹여 주셔야만 신앙에 대해 관심을 갖습니다. 그러니 돌같이 굳은 마음이라고 불리는 것도 당연합니다.

 

(3) 그리고 돌은 생산력이 없습니다.

 

어떠한 형체를 띤 바위에서라도 도무지 가꾸어 거둘 것이 없습니다. 석회암이나 화강암, 사암 또는 부싯돌이나 백묵 위에서 밀을 가꾸어 낼 수야 없지 않겠습니까? 혹 모래땅이나 습지대 같은 곳에서는 참고 애쓰면서 돈과 기술을 투자하면 훌륭한 수확을 거둘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돌에서는 동전 한 푼 어치도 거둘 수 없습니다. 본래 타고난 마음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마음에서는 회개, 믿음, 사랑, 거룩함, 겸손들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손수 깨뜨리셔서 그 속에 새로운 성품을 심어주셔야 하나님께 칭찬 받을 만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돌같이 굳은 마음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도 당연합니다.

 

(4) 돌은 죽은 것입니다.

 

돌은 볼 수도, 들을 수도, 움직일 수도, 성장할 수도 없습니다. 돌에게 지옥불에 대해 말해준다고 해서 놀라지 않습니다. 싸늘하게 식은 시체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본래 마음도 꼭 마찬가지입니다. 이 마음은 그 자체로 도무지 영적인 면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속에 성령을 보내주시기 전에는 영적으로 죽어있는 마음입니다. 그러니 돌같이 굳은 마음이라 불리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제까지 불의한 마음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이것들을 생각하며 당신 자신을 살펴보십시오. 혹 당신의 마음이 아직 변화되지 않았다면, 당신의 마음은 하나님 보시기에 불의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선을 행하기가 그토록 어려운 것도, 또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복음을 믿고 성도다운 삶을 사는 것도 다 우리의 타고난 마음이 완악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기에게 진정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이런 것들을 살펴볼 때 우리 가운데 회심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사실입니다. 저는 대부분의 사람이 믿지 않고 또 소위 기독교인이라 불리는 많은 사람이 변절하는 것을 들어도 크게 놀라지 않습니다. 인간의 본성이 불의한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쯤해서, 이 두 번째 요지에 대한 얘기를 마칠까 합니다.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되물으시기 바랍니다.  

 

'나의 마음은 과연 하나님 보시기에 바른가?'

 

3. 끝으로 의로운 마음에 대해서 말하고자 합니다.

 

성경은 이 마음에 대해 여러 가지로 설명합니다. 나는 그 가운데서 몇 가지를 말하고자 합니다. 여기서도 우리는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이제 의로운 마음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봅시다.

 

(1) 의로운 마음은 "새 마음"입니다(겔 36:26).

 

이는 사람의 타고난 마음이 아니라, 성령님에 의해 새로이 주어지는 마음이며, 기뻐하는 것과 슬퍼하는 것, 바라는 것과 두려워하는 것,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의 대상이 모두 새롭게 바뀐 마음입니다. 또한 의로운 마음은 영혼, 죄, 하나님, 그리스도, 구원, 성경, 기도, 하나님의 왕국, 이 세상, 속된 것, 거룩함 등에 대해서도 전혀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된 마음으로서, 마치 새로이 훌륭한 주인을 두게 된 사람과 같은 것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2) 의로운 마음은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입니다(시 51:17).

 

교만이나 자기 기만, 자기 의 같은 것을 버린 마음입니다. 전에 스스로를 대단하게 생각하던 것이 산산조각이 나버리고 이제는 스스로를 죄많고, 가치없고, 부패한 사람으로 여기는 마음입니다. 더 이상 전처럼 완고하거나 무감각하지 않고, 하나님을 거스려 죄짓는 것을 두렵게 여기며, 온유하고 지각있게 그리고 죄악에 잠기는 것을 두려워하며 살려는 마음입니다(왕하 2:19). 이 마음은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면서 자신 속에는 아무 선한 것도 없음을 자각합니다.

 

(3) 의로운 마음이란 구원을 얻기 위해

 

오직  그리스도만을 믿고 그 안에 거하는 마음입니다(롬 10:10; 엡 3:17). 이 마음을 지닌 사람은 그리스도의 희생과 중보의 사역에 죄용서와 영생의 모든 희망을 겁니다. 본래 악한 마음은 그리스도의 보혈의 뿌림을 받고(히 10:22), 나침반의 바늘이 방향을 전환하듯 전혀 새롭게 됩니다. 이렇게 의로운 마음이 되면, 해바라기가 태양을 바라보듯,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매일의 평화와 긍휼과 은혜를 구하게 됩니다. 의로운 마음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 살았듯이, 그리스도를 일용할 양식으로 삼습니다. 또한 이 마음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필요한 것을 공급받으며, 그분을 의사요, 인도자요, 신랑이요, 친구로 삼고 의지하는 마음입니다.

 

(4) 의로운 마음이란 정결한 마음입니다(행 15:9; 마 5:8).

 

이 마음을 지닌 사람은 거룩함을 사랑하고 죄를 미워하게 되며, 날마다 스스로를 영육 간의 더러움에서 지키고자 노력합니다(고후 7:1). 또 이 마음을 지니게 되면 악한 것을 싫어하고 선한 것을 찾게 되며,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합니다. 또한 그 법을 마음에 새겨 잊어버리지 않으려 하고(시 119:11), 그 법을 더욱 온전히 지키고자 하며, 그 법을 사랑하는 성도들을 보고 기뻐합니다. 특히 의로운 마음을 지닌 사람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게 되고, 위에 있는 것을 사랑합니다. 거룩하게 되면 될수록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게 되며, 궁극적으로 온전한 거룩함을 누릴 수 있는 하늘을 기쁨으로 갈망하게 됩니다.

 

(5) 의로운 마음은 기도하는 마음입니다.

 

이 마음은 지닌 사람은 그 속에 "양자 삼으시는 영을 받았으므로 이로써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으며"(롬 8:15), 날마다 "주의 얼굴을 찾습니다"(시 27:8). 비록 연약하고 불완전하지만 신령한 일들에 대해 하나님께 말하고자 합니다. 또 이 마음을 지닌 사람은 마치 친구 앞에서처럼 자기 마음을 하나님 앞에 쏟아놓습니다. 그분에게 자기가 부족한 것을 아뢰고, 아무 것도 숨기지 않고 자기의 비밀까지 아룁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에게 기도하지 말고 살라고 말하는 것은 숨쉬지 말고 살라는 말과 같습니다.

 

(6) 의로운 마음이란 내적인 갈등을 느끼는 마음입니다(갈 5:17).

 

이 마음을 지닌 사람은 자기 속에서 서로 대적하는 두 세력이 서로 주인노릇을 하려고 다투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즉 육신은 성령을 거슬러 욕심을 부리고, 성령은 육신을 거스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내 지체 속에서 또 하나의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롬 7:23)라고 한 말을 몸소 체험합니다. 불의한 마음을 지닌 사람은 이런 갈등을 느끼지 못합니다. 힘센 사람이 무장하고 자기 저택을 지키고 있을 때에는 그의 재산이 안전한 법입니다(눅 11:21). 그러나 의로운 왕되신 주님께서 오셔서 마음이라는 소유를 차지하고자 하시게 되면, 그 때부터 죽기까지 끊임없는 싸움이 시작됩니다. 이와 같이 의로운 마음은 평온할 때 뿐만 아니라 싸움할 때에도 드러납니다.

 

(7) 끝으로, 의로운 마음이란 정직하고,

 

일편단심이며 진실한 마음입니다(눅 8:15; 대상 12:33; 히 10:22). 여기에 허위나 위선, 기회주의적 행동 따위는 전혀 섞여있지 않으며, 이중적인 성격을 띠거나 분열되어 있는 마음도 아닙니다. 의로운 마음은 '예면 예, 아니면 아니요' 라고 말합니다. 물론 이 마음을 지녔어도

믿음이 약할 수도 있고 순종이 불완전할 수도 있지만, 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믿음은 언제나 진실되며 철저하고 진지한 특성을 갖습니다.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여 모든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제가 말한 이 의로운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었습니다. 비록 그들은 여러 면에서 서로 차이가 있었지만, 한결같이 "의로운 마음"을 지녔던 것입니다. 때로는 다윗이나 베드로처럼 그들 가운데는 잠시 실족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아예 멀어지는 경우는 전혀 없었습니다. 때로는 연약한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보시기에 의로웠던 것입니다. 그들은 다른 지역의 성도들도 자기와 같은 체험 가운데 지내고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장차 하늘에서는 서로를 더욱 잘 알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의로운 마음을 지니고 살던 사람들은 하늘에서도 동일한 의로운 마음을 가진 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제 결론적으로 저는 우리 스스로 생각해 볼 질문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내 마음은 어떤 마음인가? 의로운 마음인가? 아니면 불의한 마음인가?" 만약 당신의 마음이 의롭다는 것을 알게 되면 당신은 평안을 얻을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우리를 정죄치 아니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담대함을 얻는다"(요일 3:21)고 하였습니다.

 

만약 당신의 마음이 불의하다면 지금 곧 변화 받도록 하십시오.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은 짧습니다. 밤이 되면 아무도 일할 수 없습니다. 지금 당신 스스로에게 물어 보십시오. "내 마음은 과연 의로운가? 불의한가?" 여러분 중에 혹 속으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왜 자꾸 이런 질문을 던지는 걸까? 난 성실히 교회 생활하고 있다고 생각해. 예수님을 영접한 후로 신앙생활 잘 해왔어. 그러니 굳이 이런 것 같고 내 마음을 뒤집어 놓을 필요가 있을까? 그래 틀림없이 이 말씀은 나말고 다른 어떤 사람에게 필요한 말씀일꺼야."  

 

이것이 과연 하나님보시기에 바른 마음일까요?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성경적인 교회에 다니며, 세상에서 가장 성경적인 말씀을 듣고, 그 교회의 가장 헌신된 자라 할지라도 그러나 당신의 마음이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지 못하다면 당신은 지금 지옥을 향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당신에게 던진 이 질문을 고요히 묵상해 보십시오. 당신의 마음은 과연 의롭습니까? 불의합니까? 이 질문을 회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받아들이기 바랍니다. 또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어찌 본인 스스로가 알 수 있겠어? 그러니 어쨌듯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자."  

 

이 얼마나 위험한 생각입니까? 자기 마음은 본인 스스로가 알 수 있습니다. 스스로에게 정직하십시오. 당신의 마음상태에 대해 일종의 재판을 열어보십시오. 성경을 재판관으로 삼고,

당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소중히 여기고, 무엇을 가장 싫어하고, 무엇을 가장 즐겁게 여기고, 무엇을 가장 슬퍼하는지 따위를 증인들로 삼으십시오. 그리고 이 모든 요소들을 공정하게 살펴보면 해답이 드러날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21).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알 수 있듯이, 평소 습관이나 취미, 애착의 대상 등을 보면 사람의 마음 상태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그런가 하면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도 위험합니다.  

 

"나는 당신이 하는 말에 다 동의합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겠어요. 하지만 지금은 도무지 여유가 나지 않는군요. 좀 더 적절한 때를 기다려 보기로 하지요."  

 

정말 위험한 생각입니다. 인생이란 불확실한 것인데 어떻게 "적절한 때"가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행 24:25) 영원한 심판이 코 앞에 닥쳐 왔는데 하나님 만날 준비를 미루고 있다니요. 그렇게 "적절한 때"를 찾으며 이리 저리 미루다가 멸망한 사람이 허다합니다. 바울이 의와 절제와 다가 오는 심판으로 벨릭스의 마음을 휘저 놓았을 때 벨릭스는 그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벨릭스가 떨며 대답하되, 이번에는 그만 가라. 적절한 시기에 그대를 청하리라" 이런 경우를 저는 주위에서 수없이 봅니다. 그 적절한 시기는 영원히 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때가 와도 또다시 미룰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그 마음은 더욱 완악해지고 어떤 말씀을 들어도 아무런 느낌을 갖지 못할 것입니다. 그 저주스런 미루는 버릇을 버려야 하는데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면 당신은 참으로 어리석고 불쌍한 사람입니다. 어서 깨어나 당신을 묶고 있는 교만과 게으름과 세상에 대한 사랑이라는 사슬을 떨쳐버리고, 당신 앞에 놓인 문제를 직시하기 바랍니다. 저는 당신이 소위 말하는 기독교인이냐 아니냐를 묻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당신의 마음에 대해 묻고 있습니다.  

 

저는 자기의 마음이 불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변화 받고자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엄중한 경고를 하고 싶습니다. 물론 경고를 하되 쓸데없이 공포감을 조장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전 다만 현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당신과 죽음 사이는 단 한 발짝의 거리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당신의 짐이 당신을 무덤보다 더 깊은 곳에 떨어지게 할 것입니다. 그 누구도 의로운 마음을 지니지 못하고서는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왕국을 볼 수 없느니라"(요 3:3).

"너희가 회심하여 어린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하늘의 왕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18:3)

"거룩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님을 보지 못하리라"(히 12:14).

 

참으로 하나님께서 한 영혼에게 역사하실 때에는 죄를 사할 실 뿐 아니라 그 마음을 새롭게 하십니다. 그런데 마법사 시몬처럼 믿고 침례를 받고 상당기간 그리스도인의 무리에 속해 있더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전혀 의롭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에겐 아무런 분깃이 없습니다. 의로움 마음을 지니지 않은 채 하늘에 가서 행복을 누릴 수 있으리라 생각하십니까? 성도들의 상속에 참여하려면 그것을 얻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골 1:12). 즉, 앞서간 성도들 그리고 천사들과 더불어 기쁨을 누리려면 당신의 마음이 그들의 마음과 조화를 이루도록 변화되어야 합니다. 양이나 염소를 물 속에 집어 넣으면 살 수 없고, 물고기를 육지에 내어 놓으면 살 수 없듯, 의로운 마음을 지니지 못한 사람은 하늘에서 기쁨을 누리며 살 수 없습니다. 오히려 못 올 곳에 왔다고 생각하겠지요. 당신 앞에 놓인 이 경고를 완고하게 거절하지 말고 믿음으로 받아들이기 바랍니다. 당신이 이 경고를 듣든 듣지 않든,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어김없이 실행하시리라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믿지 아니한다 할지라도 그분께서는 변함없이 신실하시니, 자신을 부인하실 수 없느니라"(딤후 2:13).  

 

자신의 마음이 불의한 것을 알고 돌이켜 의로운 마음을 갖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즉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성령을 선물로 주시도록 구하십시오. 길 잃고 파탄한 죄인으로서 그에게 나아가 당신을 받아주시고 당신 영혼의 부족한 것들을 채워주시도록 간구하십시오. 당신 스스로가 자신의 마음을 의롭게 만들 수야 없겠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실 수 있으니 지체 말고 그분을 의지하기 바랍니다.

 

여러분 중에 정말 그런 이가 있다면 이 어찌 놀라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리스도를 찾고 그분께 부르짖을 수 있는 자는 복된 자입니다. 만약 당신이 예수님 시대의 팔레스틴에서 살았더라면, 병에 걸렸을 때 그분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가령 가버나움 지방의 후미진 골목지대에 살다가 심장병에 걸렸다거나, 갈릴리 호수 부근에서 살다가 암에 걸렸을 경우에 예수님께 치료받으러 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또는 길옆에 앉아서 기다리다가 그분이 지나가시기를 기다릴 수도 있고, 그러다 그분이 오시지 않으면 조바심을 내며 그를 찾아 나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왜 바로 오늘 당신 영혼의 병을 고치기 위하여 하늘에서 오신 그 위대한 의사를 찾아 "돌같이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같이 연한 마음을 주시기를"구하려 하지 않습니까?(겔 11:19) 다시 한번 말하거니와, 당신이 "의로운 마음"을 갖고자 한다면, 이것을 당신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려고 애쓰며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당신 능력 밖의 일입니다. 어서 빨리 영혼의 위대한 의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오십시오.

 

끝으로, 이미 의로운 마음을 가진 사람, 즉 하나님 보시기에 그 마음이 바른 사람에게는 찬사를 보내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믿음의 형제 자매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당신이 의로운 마음을 지닌 사람이라면, 먼저 하나님께 감사드리십시오. 여러분을 "어두움에서 불러내어 자신의 놀라운 빛으로 들어가게 하신"분의 크신 은혜를 찬양하십시오. 당신이 본래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생각해보고, 당신이 은혜 받을 자격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은혜 받았음을 되새겨 보십시오. 물론 당신의 현재 상태가 부족하고 당신이 원하는 바에 미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당신의 마음은 이미 이전의 완고한 마음이 아닙니다. 마음이 변화된 사람은 찬양하고 싶은 소원으로 가득차 있는 법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의로운 마음을 지닌 사람이라면 겸허한 자세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당신은 아직 경주를 마치지 않았으며 하늘에 와있지도 않으며, 여전히 육신을 입은 채 이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마귀는 당신 가까이에 있으며, 결코 졸거나 잠들지 않습니다. 그러니 부지런히 깨어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 마음 가운데 거하시면서 당신을 다스려 주시고, 모든 원수들을 그 발아래 물리쳐 당신을 보호해 주시도록 기도하십시오. 이 마음이라는 성채(城砦)의 열쇠를 왕되신 주님의 손에 넘겨드리십시오.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통해 하신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자기의 마음을 신뢰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잠 28:26)입니다. 또, 당신이 의로운 마음을 지닌 자라면, 다른 사람들의 마음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과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당신만이 특별히 변화 받은 존재가 아닙니다. 당신이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었듯이, 다른 사람들 또한 변화될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기도해주고, 전도하고, 편지를 보내면서, 그들의 영혼을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기울이십시오. 그 누구에 대해서도 그가 살아있는 한 아직 구원을 받을 수 있으니 결코 절망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치료하시지 못할 심령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의로운 마음을 지닌 사람이라면, 그 마음 자체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해서는 안됩니다. 당신의 마음이 의롭다 인정받은 후에도 약하고 흔들리며, 의심과 두려움에 쌓이기 쉽습니다. 이에 대해 놀라지 마십시오. 당신의 구속은 구주께서 재림하실 때에야 완성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당신의 구원이 미래에야 다 이루어지는 것임을 강조합니다(눅 21:28; 벧전 1:5). 당신의 마음이 변화되고, 새로워지고, 정결해졌다 해도, 그것은 결국 악한 세상 가운데 있는 사람의 마음일 뿐 세상 자체가 그렇게 된 것이 아님을 기억하십시오. 끝으로 장차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그날을 바라보십시오. 사탄은 결박되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도들은 영화롭게 변화되며, 죄가 더 이상 우리를 괴롭히지 못하게 될 그 날, 탄식이 그치고  성도들이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게 될 바로 그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날을 기다리며 깨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 날은 멀지 않았습니다. 이제 밤은 거의 지났고 낮이 가까웠습니다. 진정 우리가 의로운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라면, 우리는 자주 이렇게 외쳐야 합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