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내면은 영(靈)인가 혼(魂)인가? (Q&A) / 박신 목사


[질문]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2:7, 개역본) “주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명의 숨을 그의 콧구멍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살아 있는 혼이 되니라.”(킹제임스 흠정역) 각기 다르게 표현되어 있는데 ‘생령’과 ‘혼’의 차이가 무엇인지요?

[답변]

모든 성경은 번역본이다.


먼저 아셔야 할 것은 지금 우리가 매일 읽고 있는 성경은 원어본이 아니라 번역본이라는 사실입니다. 번역자(기관)에 따라서 그 용어나 표현이 조금씩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반드시 전제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개역본에서 ‘생령’으로, 흠정역에서 ‘혼’이라고 번역된 히브리 원어는 “네페쉬”인데 여러 의미를 지닙니다. 한 단어인데도 문장과 문맥에 따라 다양한 용례(用例)가 있습니다. 대개의 경우 각각의 문장과 앞뒤 문맥에 따라 실제로 유대인들이 이해하고 있었고 사용했던 의미로 바꿔서 번역합니다. 개역본이 취한 번역 방법입니다. 반면에 흠정역의 경우는 주로 원어와 의미가 가장 근접하는 단어를 선정하여 성경전체에서 그 원어가 나올 때마다 동일한 단어로 번역하는 방식을 따랐습니다.    

이 두 번역방식은 각기 장단점이 있는데, 한 쪽의 장점은 다른 쪽의 단점이 되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선 다양한 의미의 단어로 바꾼 경우는 이해하기 쉽고 문맥 안에서의 뜻과도 대체로 일치하는 장점이 있습니다. 반면에 의미가 다른 여러 원어들이 사용되었다고 지레 짐작하게 됩니다. 원어의 뜻을 알려면 일일이 대조해봐야 합니다. 반면에 흠정역처럼 원어 하나에 동일한 단어로만 번역되면 그 일관성은 유지됩니다. 원어와 대조해볼 필요도 없습니다. 한마디로 원어에 충실한 번역입니다. 그러나 문맥 안에서의 활용되는 의미는 독자가 스스로 추정해봐야만 된다는 단점이 생깁니다.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아브람이 자기 아내 사래와 자기 조카 롯과 하란에서 그들이 모은 그들의 모든 소유와 또 그들이 얻은 혼들을 데리고 가니라. 그들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려고 나아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니라.”(창12:5-흠정역) “얻은 혼들”로 번역된 단어의 문장과 문맥 안에서의 뜻은 “얻은 사람들”(개역본)입니다. 히브리 원어는 동일하게 ‘네페쉬’이고 KJV 영어판도 일관되게 ‘souls’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한국어 흠정역은 당연히 영어판 KJV와 동일하게 ‘혼들’이라고 번역했습니다. 다른 영어번역본들, 대표적으로 NASV는 persons, NIV는 people로 번역했습니다.

“야곱이 자기 아버지에게 이르되,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내가 하였사오니 원하건대 일어나 앉으셔서 내가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아버지의 혼이 나를 축복하소서, 하매”(창27:19- 흠정역) 아버지의 혼을 개정역은 “아버지의 마음껏”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영어본들을 다시 살피면, KJV ? soul, NASV와 NIV ?단순히 you라고 번역했습니다.

참고로 이 네페쉬는 구약성경에 751회 사용되었는데 영어로는 soul 475, life 117, person 29, mind 15, heart 15, creature 9, body 8, himself 8, yourselves 6, dead 5, will 4, desire 4, man 3, themselves 3, any 3, appetite 2, 기타 45회입니다.

그리고 개역본은 원래 영어번역본과 한자번역본을 중심으로 번역했기에 영어번역본의 방식대로 따랐습니다. 또 KJV가 어렵다는 독자들의 반응이 많아 새로 개정된 영어 NKJV는 상기 창12:5에서 soul 대신에 people로 번역했습니다. 최신판 영어흠정역도 다른 영어번역본처럼 문장과 문맥의 뜻에 따라 적절한 용어로 대체하는 융통성을 발휘했다는 뜻입니다.
    
영과 혼의 차이

다시 강조하지만 모든 성경은 번역본이라 용어와 표현이 다를 수 있음부터 인식하고 대해야 합니다. 그럼 다음으로 원어에서 영과 혼의 구별이 있는지 여부도 살펴야 할 것입니다.

엄밀하게 구분하자면 혼(魂)은 인간의 지정의 측면 즉, 인간 혼자로만 따져서 육체와 구분되는 내면의 정신세계를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어 ‘네페쉬’이고 헬라어로는 구약성경을 번역할 경우와 신약성경에서 ‘푸쉬케’(예: 살전5:23, 히4:12)를 사용했습니다. 이미 살펴본 대로 영어로는 용례에 따라 다양하게 번역되었습니다. 반면에 영(靈)은 히브리어로 ‘루아흐’(왕상22:21), 헬라어로 ‘프뉴마’(눅8:55)인데 영어로는 ‘spirit’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살펴본 인간 정신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특별히 구약성경)로 볼 때는 이 둘의 의미를 혼동해서 즉, 두 단어가 동일한 의미로 함께 사용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그 대표적 예가 바로 질의하신 창2:7입니다. 히브리어로는 네페쉬(영어 soul, 한글 혼)인데 실제 의미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인간(의 내면)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제가 “인간(의 내면)”이라고 표현한 까닭이 있습니다. 성경은,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은 결코 인간을 이분법(육체와 정신, 육신과 혼) 혹은 삼분법(영과 혼과 육)으로 구분해서 다루지 않습니다. 하나의 온전한 한 인격체로만 대하며 한 사람 한 사람과 일대일의 친밀한 관계를 맺습니다. 인간도 하나님 앞에 올바르게 서고 안 서고는 한 인간 전체로서 행할 바이자 책임입니다. 내 정신은 하나님을 찾는데 내 육체는 반대라는 법은 없습니다. 정신이 멀어졌기에 육체도 멀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도  한 인간 안에서 육체에만 혹은 정신에만 은혜나 벌을 구분해서 주시지는 않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육신이 정신보다 또는 혼이 영보다 열등하다거나, 육체가 죄의 근거 내지 원인이 될 수는 결코 없습니다. 따라서 육체는 악하고 추한 것이라 죽으면 완전히 없어지고 영만 천국으로 간다는 헬라식 이분법은 성경이 말하는 바가 아닙니다. 예수 믿는 신자에게는 마지막 날의 육체를 포함한 전 인격체의 완전한 부활이 궁극적 소망이자 목적지입니다.  

그러나 위에서 설명한 대로 하나님과 신자의 믿음의 관계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편의상 삼분법적 구분을 사용합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5:23 흠정역도 영혼몸으로 번역) 하나님께서 신자의 육체, 정신, 영 전부를 주님 오시는 날까지 거룩하게 보존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4:12, 흠정역도 동일한 번역)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영만 아니라 정신과 육체까지 심대한 영향력을 끼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신자로 하여금 그 영으로는 하나님을 알고 따르게 하며, 혼으로는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게 하며, 육신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아름답고 강건하게 가꾸도록 바꾸어준다는 것입니다.

상기 두 구절에서 영혼육으로 인간을 셋을 구별했어도 결국은 그 셋 전부에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영만 따로 거룩하게 보존하고 성장시키지 않음을 강조한 것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하나님은 한 인간을 영혼육이 합일(合一)이 된 하나의 인격체 전체로 보시고 그에 맞게 대우합니다.  

창세기 2:7의 뜻은?

창세기 2:7의 원어 네페쉬에는 영, 혼만이 아니라 인간 존재 전체의 뜻도 있습니다. 그래서 영어 NASV NIV 등에선 “living spirit”이 아니라 “living being”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원어에 충실하게 번역한 흠정역의 “living soul”도 동일한 의미이긴 하지만 자칫 ‘soul’ 만 살아있는 듯 오해될 수 있는 것보다 더 적합한 번역 같습니다.

또 비록 주로 혼으로 번역되는 히브리 원어가 사용되었지만 앞뒤 관계로 봐선 우리말로는 영으로 번역되는 편이 더 합당한 것 같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영혼육으로 구분시킨 의도와도 일치합니다. 하나님이 무엇보다 당신의 영을 인간에게 부어넣어 주셨다는 뜻이 강조되었기에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인간의 내면을 말하는 영이 더 적합하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한글 개역판이 생영(生靈)으로 번역했다고 해서 영만 살아있다거나, 하나님이 영을 특별히 우월하고도 인간 중에서 별개로 구분될 수 있는 부분이라는 의미로 해석해선 안 됩니다. 영혼육이 합일된 하나의 인격체 아담을 만드신 것입니다. 그보다 창2:7에서 더 주목할 부분은 두 가지입니다.

우선 다른 모든 동식물은 하나님이 말씀으로 ‘있으라’는 명령 한마디로 이 땅에 존재케 되었습니다. 인간만은 하나님이 최종적으로 직접 빚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었습니다. 당신께 아주 특별한 존재이자 창조의 궁극적 묵적이 인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모든 피조세계를 인간이 생존 번성하기에 가장 적합한 상태로 완벽하게 조성한 후에 인간을 만드신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이 불어넣으신 생기 가운데는 단순히 육체적 생명과 지정의를 망라하는 정신(본 주제에선 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영도 함께 불어넣었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으로 당신 대신에 이 땅을 거룩하고 아름답게 다스릴 소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창1:28) 그래서 하나님과 교통이 가능하도록 영을 불어넣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닮게 만드셨다는 중요한 뜻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과 교통이 가능해야만 그분 대신에 그분의 뜻대로 다스릴 수 있을 것 아닙니까?  한글 개역판 ‘생영’의 의미입니다.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전2:11 개역, 흠정역도 영으로 번역, 헬-프뉴마, 영어-spirit) 그러나 아담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자신을 자기는 물론 이 세상의 주인으로 세움으로써 그 영(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이 전적으로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아담의 이런 원죄 하에 태어난 인간 중에는 스스로 기꺼이 순전한 감사와 경배로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자는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택하여서 은혜를 주셔야만 하나님을 순전히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12:3- 개역, 흠정역도 동일한 번역) 한 죄인의 영에 그리스도 십자가 복음의 광채가 비취는 것을 막고 있는 사탄의 견고한 진을 성령이 오셔서 깨트리고 임재 내주해주셔야 비로소 예수를 믿게 되고 그분을 구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가(성령이)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예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주님이 천국 보좌의 본래 위치로 되돌아가심)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사탄)이 심판을 받았음이라.”(요16:8-11) 예수를 믿지 아니하는 것이 죄인데 성령이 오셔서 그 죄에서 구원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즉 타락한 인간의 영(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인간의 내면, 물리적으로 혼과 구분되는 것은 아님)을 새롭게 거듭나게 해주시어 예수를 주라 시인하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창세기2:7에서 두 성경이 영과 혼으로 갈리는 것은 번역상의 차이일 뿐이지 의미는 동일합니다. 또 단순히 인간의 정신이나 영혼으로 구분하지 마시고 최초인간 아담을 완전한 한 인격체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이해해야 합니다. 단 그를 특별한 방식으로 만드셨는데 동물과 달리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드셨고 그 이유는 하나님이 인간을 이 땅에 존재케 하신 목적, 하나님 대신에 거룩하게 다스리라는 소명을 달성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만 첨언하자면 성경에서 서로 모순 상충되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을 종종 접할 수 있습니다. 신학적 혹은 교리적 공부를 체계적으로 하지 못했던 혹은 할 수 없는 신자로선 당혹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 때마다 주변 목회자에게 질문하시어 일일이 해답을 얻어야 합니다. 그것은 믿음이 떨어진 상태의 의심이 아니라 온전하고 성숙한 믿음으로 가기 위한 구도(求道)입니다. 만약에 그럴 기회나 여유가 없다면 성경 전체를 반복해서 통독하셔야 합니다. 앞뒤 문맥을 관통하고 나면 그런 지엽적인 차이가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으며 또 정확한 의미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9/25/2014

 

출처: 박신 목사님 홈페이지

가져온 곳 : 
블로그 >생명나무 쉼터
|
글쓴이 : 한아름| 원글보기

부디 행복하길 바래요.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좋은 분들 만나서 행복했었는데
이렇게....
먼저 떠납니다.

너무 미안합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인연이었지만
함께했던 기쁨과 정을
가슴에 품고 떠납니다.
이렇게...
이제는...
가야 할 것 같네요...

올 여름 까지만 해도 많이 행복했었는데...
누군가의 미운 기억 조차도 이제는 그리움이 되었습니다.
제겐 모두 소중한 추억입니다.
다가오는 겨울....
힘들어도 어떻게든 버텨보려 했는데 용기가 나질 않네요. ㅠㅠ

저로 인해 마음 다치고 괴로워했던 분들,
저로 인해 아픔을 느끼셨던 분들
정말정말 죄송합니다.
그러나 그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날이 서늘해져서 그런가요.
주위 모든 것이 서먹하게 느껴지네요.
당신 곁에서 오래 머물고 싶었는데,
몸도 마음도 이젠 견디기가 너무 힘들어요.

잘 지내시구요.
머지않아 절 잊겠지요.
내년쯤에나 또 제 생각이 나겠지요.
무엇보다도 사랑할기운도 밥먹을 힘조차 없습니다.

바람이 부네요.
오늘 9월 마지막날 이네요.
이젠 떠나야겠습니다.

진정...
그동안 죄송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정말 고마웠습니다.
특히 몸으로 보신 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안녕히계세요.
내년 여름에 다시 뵙겠습니다.



♡인간들의 사랑(?) 듬푹 받은 가녀린
여름모기 올림♡

모기의 작별 인사였습니다..ㅎ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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