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천사가 소녀에게 알려준 행복의 비결

 

한 소녀가 산길을 걷다가 나비 한 마리가 거미 줄에 걸려

버둥대는 것을 발견하고는 가시덤불을 제치고 들어가

거미줄에 걸려있던 나비를 구해 주었습니다.


나비는 춤을 추듯 훨훨 날아갔지만

소녀의 팔과 다리는 가시에 찔려 붉은 피가

흘러 내렸습니다.

 

그 때 멀리 날아간 줄 알았던 나비가

순식간에 천사로 변하더니 소녀에게 다가왔습니다.


천사는 자기를 구해준 은혜에 감사하면서

무슨 소원이든 한 가지를 들어 주겠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그 때 천사는 소녀의 귀에 무슨 말인가

소근거리고 사라져 버렸습니다.

 

소녀는 자라서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해서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되도록

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의 곁에는 언제나 좋은 사람들이 있었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그녀를 사람들은

부러운 눈빛으로 우러러 보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예쁜 소녀가 백발의 할머니가 되어

임종을 눈앞에 두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입을 모아 할머니가 죽기 전에

평생 행복하게 살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인지를 물었습니다.


할머니는 웃으시며 입을 열었습니다.

"내가 소녀였을 때 나비 천사를 구해 준 적이 있었지,

그 대가(代價)로 천사는 나를 평생 행복한 사람이 되게 해 주었어~

그때 천사가 내게 다가오더니 내 귀에 이렇게 속삭이는 거야.


 

"무슨 일을 당하든지 감사하다고 말하면

 평생 행복하게 될 거에요."
그 때부터 무슨 일이든지 감사하다고 중얼거렸더니

정말 평생 행복했던 거야.


사실 천사가 내 소원을 들어준 게 아니야,
누구든지 만족한 줄 알고 매사에 감사하면,

 세상은 우리에게 행복을 주지 "


이 말을 끝으로 눈을 감은 할머니의 얼굴에는

말 할 수 없는 평온함이 가득했습니다.

 

- 할렐루야! 샬롬! -

 

 

 

"범사에 감사하라"(데살로니가전서5:18)

 


 

 

-


 

 

좋은글 중에서/ 달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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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난다는 것

 

니고데모가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니고데모는 나중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셨을 때 몰약과 침향을 100근쯤 가지고 와서 아리마대 요셉과 함께 예수님의 장례를 치르는 바로 그 사람입니다. 바리새인이고 유대인 관원 (a member of the Jewish ruling council)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바리새인이라면 어려서부터 성경을 달달 외우면서 배웠을 것이고 관원이라면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표적을 행하시는 걸 보니까 그렇다는 것입니다. (요3: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니고데모가 메시아의 예언을 믿었거나 인생의 문제와 구원에 관하여 심각하고 고민하다가 가르침을 얻기 위해 왔는지, 아니면 예수님이 굉장한 사람임이 틀림없다. 꼭 한 번 찾아서 만나야지 생각하고 찾아 왔는지, 혹은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실 분일지 모르니까 미리 눈도장을 받아두고 한 자리 얻어걸릴 심산으로 왔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세베대의 아내는 주님을 찾아와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을 예수님의 오른편, 왼편에 앉게 해달라고 치맛바람 청탁을 했고 사도행전 1장을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 제자들은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니고데모에게 느닷없이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니고데모는 화들짝 놀랐을 것입니다. 순간적으로 별별 생각 다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다시 태어나라고? 그럼 나는 늙어서 안 된단 말인가? 한 자리 얻어볼 요량으로 찾아왔는데 면접시험에서 불합격이란 말인가? 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묻는 게 아니겠습니까? 다음절을 보면 (요3:4)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그런데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더 어려운 말씀을 던지십니다. (요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 요3:6 )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니고데모에겐 참 어려운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단 말입니까? 이것이 무슨 뜻이란 말입니까?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란 말씀은 또 무슨 뜻이란 말입니까?

우리말 성경은 “거듭 난다”라고 쓰고 있습니다만, 영어성경을 보면 “Born Again" 다시 난다는 뜻입니다. 즉 “거듭”이 아니고 “다시”가 맞는 말입니다.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태어나서 여태 살아온 것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무효! 싹 지우고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태어나서 자라온 너는 육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은 영이요, 그 다시 태어난 영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너도 성령으로 다시 영으로 태어나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육신인 인간이 어떻게 영으로 다시 난단 말입니까? 그런데 7절을 보면 주님께서 “네가 다시 나야 한다.”는 말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요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바람이 붑니다. 나무가 흔들리고 소리가 들립니다. 그런데 안 보입니다. 바람이 어디서 오는지, 어디로 가는지 알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바람이 붑니다.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다시 태어납니다. Born Again합니다. 성령으로 영으로 다시 납니다. 그런데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우리는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거듭, 아니 다시 태어납니다.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 우리를 대신해서 니고데모가 묻습니다. “(요3:9)니고데모가 대답하여 가로되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그렇게 질문하는 니고데모를 예수님은 너는 이스라엘 선생이면서도 이러한 일을 모르느냐고 책망하십니다. 무슨 뜻입니까? 무슨 굉장한 새로운 사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이미 나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슨 새롭고 기이한 방법으로 죽어가는 사람을 다시 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광야에서 불뱀에 물려 죽게 된 이스라엘 백성이 장대에 매달린 놋뱀을 쳐다보면 살았던 것이 바로 죽어가던 자가 다시 난, 생명을 얻은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쳐다보기만 하면, 믿기만 하면 다시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안 보이고 아무것도 안 느껴져도 말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이며 성령으로 다시 났으니 영인 것입니다.

니고데모에게 하신 주님의 결론적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보세요. 끝부분이 똑같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광야의 장대에 달린 놋뱀을 쳐다보기만 하면 살듯이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믿음으로 바라보기만 하면 새 생명, 영생을 얻습니다. 다시 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믿는 당신은 다시 났습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고 아무 표도 없어도 말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무슨 굉장한 체험이 있어야 성령을 받아 거듭 나는 것으로 오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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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부란 부부는 항상 서로 마주보는 거울과 같은 거래요. 그래서 상대방의 얼굴이 나의 또 다른 얼굴이래요. 내가 웃고 있으면 상대방도 웃고 있고요. 내가 찡그리면 상대방도 찡그린데요. 그러니 예쁜 거울 속의 나를 보려면, 내가 예쁜 얼굴을 해야겠지요. 부부는 평행선과 같아야 한데요. 그래야 평생 같이 갈 수 있으니까요. 조금만 각도가 좁혀져도 그것이 엇갈리어 결국 빗나가게 된데요. 부부의 도를 지키고(부부유별) 평생을 반려자로 살아가야한데요. 부부는 무촌이래요. 너무 가까와서 촌수로 헤아릴 수 없어서 그렇데요. 한몸이니까요. 그런데 또 반대래요. 등 돌리면 남이래요. 그래서 촌수가 없데요. 이 지구상에 60억이 살고 있는데 그중의 한 사람이래요. 얼마나 소중한... 이 세상에 딱 한 사람... 둘도 아니고 딱 한사람... 나에게 가장 귀한 사람이래요. 부부는 반쪽과 반쪽의 만남이래요. 한 쪽과 한 쪽의 만남인 둘이 아니라. 반쪽과 반쪽의 만남 하나래요. 그러니 외눈박이 물고기와 같이 항상 같이 있어야 양쪽을 다 볼 수 있데요. 부부는 마음에 들었다 안 들었다하는 사이래요. 어찌 다 마음에 들겠어요. 다른 것이 너무 많은데요. 그래도 서로의 마음에 들도록 애써야 한데요. 부부는 벽에 걸린 두 꽃장식과 같이, 편안하게 각자의 색채와 모양을 하고 조화롭게 걸려있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편안함과 아름다움을 선사한데요. 부부는 한쪽 발묶고 같이 걷는데요 같이 하나 둘 하나 둘하며... 같이 걷는데요. 아니면 넘어지고 자빠진데요. 그래서, 부부는 발자국을 같이 찍어간데요 흔적을 같이 남긴데요. 자식이라는 흔적을 이 세상에 남기고 간데요. 사랑스런 흔적을 남기고 간데요. 부부는 닮아간데요. 같이 늘 바라보니 닮아간데요. 그래서 결국 까만 머리가 하얗게 같이 된데요. 그래서 서로 서로 염색해 주면서 부부는 늘 아쉬워 한데요. 이 세상 떠날 때 혼자 남을 반쪽을 보며 아쉬워한데요. 같이 가지 못해 아쉬워한데요. 요단강 같이 건너지 못해서 아쉬워한데요. 부부는 늘 감사한데요...
출처: 사모님사모님/달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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