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 얼룩진 그 길,

 

    비아돌로로사 /최송연

    캄캄한 하늘이 찢어 질 듯

    흑암을 갈라 번득이며

    달리는 번갯불

    천지를 뒤흔드는 천둥소리는...

     

    희생제물로 내어준

    사랑하는 외아들에게서

    고개 돌려야만 하는

    성부 하나님의 신음소리요,

    피맺힌 절규임을 아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으라

     

    “포기하겠노라.”

    선언하시면 한순간에라도

    그 치욕의 십자가를 박살 내고

    성자 하나님을 구해 내고파 

     

    하늘에서는

    열 두 영 더 되는 

    충성스런 천군 천사들 

    눈물 흘리며 대기하고 있었네

     

    험한 갈보리 산 그 십자가에

    존귀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그렇게 벌거벗기운 채

     

    양손과 양발에 박힌 대못이

    부드러운 살점을 찢으며

    뼛속 깊이 쪼개었는데…

     

    상처에서 흘러나온 검붉은 핏덩이엔

    사막의 파리떼가

    윙윙대며 들러붙는 괴로움

     

    ‘네가 그리스도여든 십자가에서 내려와

    너도 구하고 우리도 구하라!’(눅23:39)

     

    비루한 행악자의 조롱과 야유

    유대인들의 침 뱉음과 멸시도

    참아내셔야만 하셨네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불볕 태양과

    사정없이 몰아치는 사막의 모랫바람은

    갈증을 더욱 부채질하는데…

     

    ‘목마르다!’

    절규하시는 메마른 입술에는

    쓰디쓴 신 포도주가 물을 대신하였고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소서.’

     

    가시로 엮은 면류관 사이로

    흐르는 선혈은 피눈물 되어

    창백한 두 뺨을 적셔 흐르는데

     

    많은 황소들과 바산의 힘센 소들과(시 22: 12)

    개들이 둘러 진 쳤으며(시 22: 16)

    악한 무리가 수족을 찌르고

    그분의 겉옷과 속옷마저

    찢어 나누며 낄낄거리는구나(시 22: 18)

     

    ‘아바,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세상의 모든 죄악을

    한몸에 걸머지신 어린 양,

     

    영혼과 육이 분리되는 고통보다

    십자가에서 찢기는 그 고통보다

     

    성부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는 그 순간이…

    가장 큰 고통의 순간이요,

    모진 형벌의 순간이었음을 그 누가 알랴

     

    “다 이루었다.”

     

    그리스도의 마지막 그 한 마디는

    사탄의 머리를 박살내어버리는 포효,

    사탄에게 속박되어 끌려가는 너와 나의 죄,

    억겁의 쇠사슬 끊어내고

    죽음의 형벌에서 해방 시켜주시는

    승리의 노래였으라

     

    피로 얼룩진 그 길

    비아 돌로로사...


    그 눈물의 길을 걸으신


    나의 주여,

     

    당신의 그 거룩한 희생을…

    당신의 그 아픔을…

    당신의 그 수난을…

    당신의 그 큰 사랑을…

     

    성령님께서

    내 가슴에 깊이 각인시켜 주시는 이 밤,

    나는 울며…통곡하며…,

    온 밤을 하얗게 지새웁니다.







     

     왕께 바치는 내 노래/최송연

     










 

<


 

후기:
구약에서 신약에 이르도록,
메시야의 고난 예언, 성취,
성부, 성자, 성령님의 사역까지...
보이지는 않으나, 영의 세계, 저너머
천군천사들의 충성심과 눈물까지...

부족하지만, 저로서는 일생일대의
대작을 꿈꾸며 기도하며 밤을 지새우며
눈물로 정리해 본 것입니다.
벌레보다 못한 인간,
나의 구원을 위해서,
성삼위 하나님께서 함께 일하고 계심을 찬양합니다!!
주께서 영광받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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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보다 귀한 사랑 
                 최송연    

당신을 사랑하는
그 마음 하나로
오늘까지 버틸 수 있었노라
당당히 말하지 말게 하소서

당신께 받은 사랑 너무 커
모진 세월마저도
진정 행복했었노라
눈물로 고백할 수 있게 하소서
당신 오시는 날 내어 드릴 수 있는 것은 오직, 눈물보다 귀한 사랑, 당신의 그 선홍빛 사랑 하나뿐이오니...
 
 
                                                  
눈물보다 귀한 사랑  
                최송연   

당신을 사랑하는
그 마음 하나로
오늘까지 버틸 수 있었노라
당당히 말하지 말게 하소서

당신께 받은 사랑 너무 커
모진 세월마저도
진정 행복했었노라
눈물로 고백할 수 있게 하소서

당신 오시는 날
내어 드릴 수 있는 것은, 오직,
눈물보다 귀한 당신의 사랑,
그 선홍빛 사랑 하나뿐이오니...


  최송연의 목양연가 "왕께 바치는 내 노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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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특별한 영적인 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다. 세상이 시작된 이래로 오늘날과 같이 그렇게 단순한 외적인 신앙고백이 엄청나게 많이 행해진 적은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이 땅에 있는 모든 집회들의 참으로 많은 자리를 회심하지 않은 회중들이 점유하고 있으며, 그들은 또한 참다운 신앙에 대해 아는 바가 없는 자들이다.

 

그들은 결코 성찬식에 참여하지도 않고 매일의 생활에서 그리스도를 드러내지도 않는다. 언제나 성직자들을 쫓아다니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특별성회에 설교를 듣기 위해 모여드는 무수한 무리들- 가정에서는 진정으로 살아 있는 기독교 정신을 조금도 행하고 있지 못하는- 은 빈 통이나 울리는 꽹과리보다 전혀 나을 바가 없다. 씨뿌리는 비유는 언제나 생생하고 고통스러운 예화이다. 길가에 뿌려진 씨앗, 돌밭에 뿌려진 씨앗, 가시덤불 속에 뿌려진 씨앗들인 청중들은 항상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많은 신앙고백자들의 생활이 영적으로 단지 한 모금의 맛만을 보았을 뿐인 상태에 계속하여 멈추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언제나 육체들의 자극을 병적으로 갈망한다. 모든 설교들이 그들에게는 다 비슷한 것일 뿐이다. 단지 똑똑하고 빈틈없는 처세술에 대해 들을 때만 기뻐하며 귀를 쫑긋 세우고 무리 가운데 앉아 있다. 무엇보다 걱정인 것은 그런 자극을 추구하는 태도에 감염된 사람들이 아직 믿음이 확고하게 서지 못한 수많은 나이 어린 젊은이들이라는 점이다.

 

스스로 거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들은 일종의 흥분적이며, 선동적이고, 감정적으로 기독교를 따르는 것이다. 그들은 전통적 신앙에 결코 만족해하지 못하며 아테네 사람들처럼 언제나 새로운 것을 추구할 것이다. 평정된 마음을 소유한 젊은 신자, 자기 확신과 자부심에 부서지고 배우려는 마음보다도 언제나 가르치려고만 하는 마음이 깨어진 사람, 그러면서도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기 위해 매일의 꾸준한 노력에 만족하며, 가정에서 그리스도의 일을 조용하면서도 순종적인 태도로 행하는 그러한 젊은이를 보는 일은 진정 드물게 되었다.

 

야단 법석한 소란과 섣부르고 주제넘은 의욕, 그리고 신앙의 연조가 깊은 그리스도인들을 성급하게 반박하며 규정하려는 태도, 또한 자신들은 건전하고 지혜롭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만만한 태도를 그들에게서 볼 수 있다.

 

확실히 이와 같은 시대에는 자기 자신에 대해 검토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면서 이렇게 물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자신들의 영혼에 대하여 어떻게 행하고 있는가?”

 

우리가 죄 사함을 받은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회심하는 체험을 통해 무엇인가를 깨달은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우리가 실천적인 그리스도인의 거룩함에 대해 알고 있는지 묻고 싶다.

우리가 은혜의 수단들을 활용하는 것에 대해서 알고 있는지 묻고 싶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선을 행하고자 노력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언제나 교제를 나누고 있는 생활을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재림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묻고 싶다.

 

오늘 주어지는 권고를 취하라. 여러분 자신의 마음을 살피라. 그리고 그 잘못이 전적으로 여러분 자신에게 있지 않은지 살펴 보라. 여러분은 적은 믿음, 부족한 회개, 적은 은혜, 불충분한 성화에 만족하며 편안히 앉아 있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극단에 까지 이르게 되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무의식 중에 몸을 움츠리고 있을 것이다.

 

여러분의 기독교 정신에 있어 철저하게, 아주 철두철미하게 되어야 한다. 그리고 여러분의 얼굴이 온전히 태양을 향하게 하라. 모든 무거운 짐들과 여러분을 너무도 쉽사리 공략하며 괴롭히던 죄들을 던져버리라. 그리스도께로 보다 가까이 나아가고자, 그분 안에서 거하고자, 그분게 붙어 있고자, 그리고 마리아와 같이 그의 발 앞에 앉아 있고자, 생명의 원천을 마시고자 노력하라.

 

장래에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23:18)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간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10:36-37)

 

- 존 라일, 곧은 길, pp 19-51

청교도의 길

출처:생명나무 쉼터/한아름

통일교 7남 문형진 “내가 후계자, 현재 통일교는 이단”

2015/04/02 (목) 07:34 ㆍ추천: 0      

 
▲사진은 월간 현대종교 갈무리

문선명 사후 통일교가 혼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어머니 한학자 총재의 집권 이후 재야로 물러났던 통일교 7남 문형진 전 세계회장이 반기를 들고 나섰다.

월간 현대종교는 4월호에 통일교의 현 상황을 보도했다. 한씨에 밀려 독자적인 목회활동을 선언했던 문씨가 최근 본인의 후계적 정통성을 주장하면서 통일교 공직자들의 파면을 선언했다는 것.

현대종교에 따르면 7남 문형진씨는 지난 2월 8일, 미국 생츄어리처치 설교에서 모든 국가 교회지도자의 천일국의 모든 공적직분에서 면하고, 문선명이 지목한 후계자로서 자신의 정통성을 강조하면서 충성을 맹세할 것을 명령하고 나섰다.

그는 현재 통일교의 가르침을 ‘이단교리’로 치부하면서 아버지 문선명의 가르침에서 벗어났다고 비판했다. 문씨는 “공직자들이 새로 간행한 통일교 경전, 천일국 국가, 합동결혼식 문답 등의 내용을 변경하여 선친의 가르침으로부터 벗어났다”고 말했다.

또 어머니 한학자에 대한 ‘신격화’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문씨는 “그들이 한씨를 ‘메시아’,‘ 하나님’이라고 부르며 신격화하고 있다”며 유일신에서 한번 멀어지면 그 이후로는 두 명의 신으로, 그 후는 나락”이라고 강조했다.

어머니에 대해 문씨는 “참어머님(한학자)께서는 가장 위에 계시지 않는다. 이것은 식구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지만, 간신그룹은 여왕의 자리에 계시는 참어머님의 시간을 독점하고 있다”며 “참어머님을 해방시켜드리고, 참어머님의 주변에 있는 모든 정치적 구조로부터 여왕님을 구해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러한 문씨의 설교와 선언은 통일교의 판을 전반적으로 흔들어버리는 것이라는 것이 월간 현대종교의 분석이다.

이러한 문씨의 행보에 대해 통일교는 지난달 2일 ‘세계회장의 직권남용 및 교리 위반’을 이유로 권한을 정지하는 공문을 내리고, 6일에는 문씨를 세계회장 직에서 면직하고 통일가 5녀 문선진씨를 임명했다.

2012년 9월 문선명씨가 사망하고, 통일교의 후계문제는 어머니 대후계자, 후계자 대 후계자, 교권자 대 후계자 등 다각적으로 진행됐다. 기본적으로는 한씨 중심의 통일교가 정착된 것으로 보지만, 통일가 가정 문제나 소송 등의 크고 작은 논란들이 있어 왔다.

현대종교는 “통일교에는 한씨 사후, 법통이냐 혈통이냐를 놓고 갈등이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다”며 “한씨는 문선진씨를 중용하여 후계를 아들이 아니라 딸로 선회할 가능성도 비췄고, 통일교 내부 그룹 간 갈등도 보이는 상황”이라고 전망했다.

기사 전문은 월간 현대종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동희 ⓒ 뉴스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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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허락하시고 심지어 일부러 주실 때도 있지만 도움을 요청할 때 기꺼이 들으시고 응답하신다. 가끔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스스로 숨기도 하신다. 그렇지만 곧 스스로 나타내시고 드러내실 것을 약속하셨다. 이사야는 두 가지 진실에 대하여 확언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환난과 고생을 주신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분이 정하신 때에 우리의 부르짖는 소리에 응답하신다는 것이다. 슬픔은 가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이 든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자비로우셔서 슬픔을 한꺼번에 쏟아 붓지 않으시고 조금씩 나누어서 감당케 하신다. 마치 어린 아이에게 젖을 주는 어머니 같다. 현명한 어머니는 아이가 소화할 수 있을 만큼 조금씩 젖을 먹인다. 너무 빨리 주거나 너무 많이 주면 아기는 그 양을 감당하지 못하고 엄마 무릎에 젖을 토해 버리고 말 것이다. #상한 심령/예후 토마스 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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