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춤
기독교인은 사교춤을 추거나 혹은 심지어 춤추는 것에 참가해도 괜찮는가?
성경은 이 주제에 대해서 무엇이라 말하는가?
춤에 대한 관심사는 무엇이며 그것이 영적 서약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열 세 번째 질문
춤을 출 것인가 추지 않을 것인가 하는 것은 오랜 세대를 걸쳐서 기독교인들을 난처 하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최근에 교회 지도자들이 언급하기를 무시했었던 문제점이다. 춤을 추는 것이 아무런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해 서 몇 가지 주장을 합니다.

(1) 춤은 자세를 바르게 만들어 주며 사회적 품위를 얻도록 도와준다.
(2) 성경은 춤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3) 몇몇 비 오순절적 교회들은 젊은 사람들을 위해서 춤을 주선하고 후원한다.
(4) 춤은 친교를 위한 즐거운 활동이다.
(5) 거의 모든 사람들이 춤을 추며,

그러기 때문에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그것에 동참해야 한다. 교회는 정신적, 육체적, 그리고 영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면에서도 교인 들이 발전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러나 그 네 가지 분야에서 개인이 발전하기 위해 ‘춤’이 제일 최고의 방법인가요? 개인이 춤을 추는 것을 허락함으로 말미암아 교회는 어떤 사람이 비극적으로 뒷걸음질치며 결국에는 구원을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그의 영적 복지에 위험한 기회를 주는 것일까요? 

사교춤을 추는 것을 받아들이는 교회는 파괴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진 세상의 모양을 받아들임으로서 영적 쇠퇴의 위기를 맞게 될까 요? 춤에 대하여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 우리들은 매번 그 말이 사용될 때의 문맥을 살펴보아야만 합니다. 


24번 정도 춤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들 중에서 성경은 그 어느 하나도 남자와 여자 사이의 사교춤을 언급하지는 않았습니다. 긍정적으로 사용되었을 때, 그 말은 (예배로서) 하나님께 대하여, 혹은 (다윗과 같이) 승리하고 돌아오는 영웅에 대하여 즐겁고 넘쳐흐르는 축하를 표현하였습니다. 모세가 십계명을 가지고 시내 산으로부터 내려왔을 때 무슨 종류의 춤이 추어지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러나 우리는 모세가 그 부적절한 축하와 술 마시고 떠드는 것에 대해서 노(怒)를 발하였었다는 것을 압니다 (출애굽기 32:19). 우리는 또한 마가복음 6:22-29의 내용으로부터 헤로디아의 딸 이 헤롯과 그와 함께 한 술에 취한 사람들 앞에서 추었던 춤이 매우 강한 흥미를 돋우게 하거나 감각적인 것이어서 왕이 적절한 판단을 못하고 세례요한의 머리를 달라는 요구를 들어주었는데 --- 그 명령은 그가 내리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오늘날 우리가 아는 것과 같은 사교춤을 지지해주는 성경말씀이 없습니다. 

신약성경에서 기독교인들이 삼가해야 하는 악과 죄악스러운 행위의 목록에 춤이 특별히 명시되어 있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이것은 아마도 춤이 초대 신약 교회가 세속적인 사회로부터의 구별됨을 표시하기 위해서 애를 써야 했던 그 무엇이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은 이성 사이에 어떤 육체적 접촉으로 인한 감정과 정욕에 대한 주의로 채워져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들이 구체적으로 유혹, 특별히 정욕과 성적 유혹을 피할 것 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6:18; 디모데전서 6:9-11; 디모데후서 2:22). 비록 사교춤을 추는 많은 부부들이 부도덕적인 행위를 결코 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데살로니가전서 5:22은 우리들이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릴 것을 권합니다" 

악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쉽게 악에 이를 수 있는 그러한 유혹을 피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공중에서 가지는 사교춤이 외딴 곳에서 애무와 다른 육체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갖는 부부들보다는 훨씬 더 낳은 대안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사교춤은 육체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갖는 것을 단념하게 만들기보다는 오히려 육체적 친밀함을 더 매력적이고 유혹적인 것으로 만듭니다. 

하나님의 성회는 사교춤이 순진한 사람을 유혹과 죄악의 길로 이끌어갈 수 있는 잠재력이 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사교춤을 추는 것을 반대해 왔습니다. 그러나 춤을 사절하는 것 그 자체가 비도덕적인 행동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주는 것 은 아닙니다. 만일 마음이 어떤 잘못된 것에 머문다면 어떠한 주의나 법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젊은이들은 남녀사이의 관계에 대하여 위에 기술한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해당 될지 모르지만, 그러나 자신들은 개인적으로 순수한 동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 단순히 춤이 제공하는 우정과 교제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춤을 추는 일에 참여하는 것이 모험할 가치가 있는 것입니까? 분명히 우리의 사회 --- 우리들이 부름을 받은 세상 --- 의 상태는 중요한 다른 무엇이 더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도덕적 표준과 순결과 거룩함에 대한 확신이 구식이 되어버렸고, 사람들이 율법주의로부터 해방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말을 우리들은 너무나도 오랫동안 들어왔습니다. 

사회는 음행, 단절된 관계, 이혼, 혼외 임신, 성병, 그리고 가까운 친구나 가족들에 대한 감정적인 폭력, 등의 형태로 나타나 는 도덕적 표준에 대한 이러한 방탕한 태도에 대하여 지금 무거운 값을 치루고 있습니다. 낮아진 도덕적 표준때문에 일어나는 이러한 비극적인 결과는 우리들의 교회에서 그 수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도덕적 타락에 직면하여서, 교회는 그들의 백성이 구별되고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을 원하시는 하나님의 원하심에 비추어, 자신들과 그들의 자녀들이 사교춤을 추는 것을 절제할 것을 모든 기독교 성인과 부모들에게 요구합니다 (고린도후서 6:16-18; 디도서 2:11-14; 디모데전서 2:21-22). 


관심사: 우리나라 어떤 지역에서 상당히 많은 부분의 기독교 청년들이 고등학교의 댄스 파티와 무도회에 참가하고 있다고 추정됩니다. 청년들을 “진실된 사랑은 기다린다”는 운동에 참여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는 동시에 그러한 부모들의 일부는 또한 사교춤이 그들 자녀들의 발달에 똑같이 도움이 된다고 느끼는 것은 모순되는 일입니다. 춤에 참가함을 통하여 유혹을 받게 될 때에 성적 순결에 대해 주의를 주는 것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성경적 도덕성에 대한 자유로운 해석 때문에 단 한 생명이라도 영원히 상실 된다면 그것은 결코 어떤 개인, 부모, 혹은 교회라도 허락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어느 누구도 멸망 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교회도 그러한 일이 일어나게 만들지도 모르 는 그러한 행위에 대해서 경고하는 것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부모들과 교회 지도자들은 또한 춤을 추는 곳 대부분의 환경이 유혹적이고 꾀는 분위기 인 것을 인식해야만 합니다. 음악, 불륜한 가사, 희미한 불빛, 그곳에 참석하는 어떤 사 람들의 정숙하지 못한 옷차림 --- 모든 것들이 더 큰 유혹으로 이끄는 육체의 접촉의 밀도를 증가시켜줍니다. 어떤 사람들은 공립학교의 춤에 대해서는 이러한 묘사가 적합한 것이 아니라고 옹호하지만, 춤을 통하여 이루어진 사귐은, 나중에는 기독교인의 생활 형태에 전적으로 위협을 주는, 술을 마시고 술에 취한 행동이 허용되는, 그러한 환경에서 춤에 휩쓸 려들도록 발전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여러 곳에서 어떤 기독교인들은, 흔히 건전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죄악 된 환경에서 춤을 춘다는 이유 때문에 춤추는 것을 반대하는 의견을 없애기 위한 방법으로서 기독교 현대 음악을 이용하여 “기독교인 춤 클럽”을 조직합니다. 춤이 흔히 다른 악과 연 결된다는 바로 그러한 생각만으로도 아무리 좋게 생각한다 할지라도 도덕적으로 커다란 위험을 주는 그러한 활동을 위험하지 않은 것으로 만들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에게 경종이 되어야만 합니다. 


* 위에 기술한 것들은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이해에 근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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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름지기 살아간다는 것은
가득 채워져 더 들어갈 수 없는 상태가 아니라
비워가며 닦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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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워 내지도 않고 담으려 하는 욕심,
내 안엔 그 욕심이 너무 많아
이리 고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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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면 내 가슴 속에
이웃에게 열어 보여도 부끄럽지 않은
수수한 마음이 들어와 앉아 둥지를 틀구
바싹 마른 참깨를 거꾸로 들고 털때
소소소소 쏟아지는 그런 소리 같은 가벼움이
자릴 잡아 평화로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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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내 강물엔 파문이 일고
눈자국엔 물끼 어린 축축함으로
풀잎에 빗물 떨어지듯 초라하니
그 위에  바스러지는 가녀린 상념은
지져대는 산새의 목청으로도
어루만지고 달래주질 못하니
한입 베어 먹었을때
소리 맑고 단맛 깊은 한겨울 무우,
그 아삭거림 같은 맑음이
너무도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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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맺히게 울어대는 뻐꾹이 목청처럼
피 맺히게 토해내는 내 언어들은
죽은 에미의 젖꽂지를 물고 빨아내는
철없는 어린 것의 울음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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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수 있는 것과
볼 수 없는 것이,
곧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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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 속에
영혼 속에
수줍은 듯 숨어 있는 것도
역시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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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다스리는 주인도
나를 구박하는 하인도
변함없는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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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금을 울리는 하나의 목소리
하나의 외침, 외침들
그것도 역시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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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채찍질 하는 것도 나요,
나를 헹구어 주는 것도 나다.

-좋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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