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가 끝났을 때 난 처음으로 전 학생이 일어나며 기립박수를 받았다. 어떤 학생은 눈물을 흘리기 까지... 내가 처음 이순신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을 때 그 감정을 나의 제자들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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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중국학자에 장웨이린 교수가 있습니다.

조선의 역사에 관심이 없었다.
일본 교수들의 말만 듣고 학술연구회에서 거북선을 처음 보았다.

저런 배가 400여년 전에 있었단 말인가?
나의 놀라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학술연구회의 이름은 '이순신'이었다.
일본교수진의 도움으로 책 7권을 하루만에 다 읽고 책을 놓은 뒤. 가느다란 한숨과 함께 어디선가 느껴지는 심장소리...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서양과 일본에게 전쟁에서 패한 청나라를 구할 수 있는 위인이 있다면 누구일까 물었다.

항우, 제갈공명, 손자, 관우...

나는 한참 동안이나 창문 너머를 바라보다 말했다.

여러분들이 말한 영웅이 나타난다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 일거라고...

그리고 학생들에게 거북선 사진을 보여주었다. 모두들 의아해 했다.

400여년 전 조선과 일본의 전쟁 시 조선을 구한 이순신 장군이야 말로 중국을 구할 유일한 영웅이라고 나는 여러분께 말한다.

여기저기서 웅성웅성 소리가 들렸다.








조선 수군장수 이순신은 5천 명도 안되는 군사와 50척도 안되는 함대를 이끌고 40만 대군의 왜군과 1300대의 일본함대와 맞서 싸워 단 한번의 패배도 없이 모두 승리하여 조선을 구할수 있었다.

일본군은 100년의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싸움의 고수들이었고 동아시아 최강의 전력이었다.

당시 조선 수군은 물고기나 잡고 농사나 짓던 나약한 병사들이었으나 단 1년 만에 훈련시켜 40만 대군과 1300척을 거느린 일본군과 맞서 이길 수 있는 군대를 만들었기 때문에 그는 위대하다.

만일 이순신 장군이 일본 장수였다면 당시 명나라는 물론이고 태국과 베트남. 인도네시아까지 일본군에 점령되었을 것이다.

세계 어느 국가도 한 인물의 존재에 따라서 이렇게 역사가 뒤바뀌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 거북선을 보라. 누가 이 배가 400 여년 전에 만들어졌다고 믿겠는가?







여러분들은 눈을 떠야한다. 나는 1시간 정도 더 이순신 장군에 대한 삶과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고 강의를 끝마칠 수 있었다.

강의가 끝났을 때 난 처음으로 전 학생이 일어나며 기립박수를 받았다. 어떤 학생은 눈물을 흘리기 까지... 내가 처음 이순신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을 때 그 감정을 나의 제자들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 장웨이린 교수는

동북공정의 일환인 고구려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는 일을 맡았다가 이순신 학술회를 시작으로 고구려 역사 편입 작업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그는 말한다.

역사학자가 후세 사람들에게 해서는 안되는 두가지 부끄러움이 있다.

한가지는 히틀러가 몇백만 유태인을 죽인 것보다 그 역사를 감추며 숨기는 것,

또 한가지는 진정한 위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찾지 못하는 것이다.


성공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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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신종은 진린 장수로부터 긴급 서신을 받는다.



황제폐하 이곳 조선에서 전란이 끝나면 조선의 왕에게 명을 내리시어 조선국 통제사 이순신을 요동으로 오라 하게 하소서.


신이 본 이순신은 그 지략이 매우 뛰어날뿐만 아니라 그 성품과 또한 장수로 지녀야할 품덕을 고루 지닌 바 만일 조선수군통제사 이순신을 황제 폐하께서 귀히 여기신다면은 우리 명나라국의 화근인 저 오랑케를 견제할수 있을뿐 아니라 저 오랑케의 땅 모두를 우리의 명나라국으로 귀속 시킬 수 있을 것이옵니다.


혹여 황제페하께서 통제사 이순신의 장수됨을 걱정하신다면은 신이 간청하옵건데 통제사 이순신은 전란이 일어나고 수 년간 수십차례의 전투에서 단 한번도 폐하지 않았음에도 조선의 국왕은 통제사의 업신여기며 또한 조정 대신들 또한 이순신의 공적에 질투를 하여 수 없이 이간질과 모함을 하였으며. 급기야는 통제사의 충의를 의심하여 결국에는 그를 조선 수군통제사 지위를 빼앗아 백의종군에 임하게 하였나이다.


허나 통제사 이순신은 그러한 모험과 멸시에도 굴하지 않고 국왕에게 충의를 보였으니 이 어찌 장수가 지녀야할 가장 큰 덕목이라 하지 않을수 있겠나이까 .


조선국왕은 원균에게 조선통제사 지위권을 주었으나 그 원균이 자만심으로 인하여 수 백척에 달한 함대를 전멸케 하였고 단 10 여 척만이 남았으매 당황한 조선 국왕은 이순신을 다시 불러 조선 수군통제사에게 봉했으나. 이순신은 단 한번의 불평없이 충의를 보여 10 여 척의 함대로 수 백척의 왜선을 통쾌하게도 격파하였나이다. 하지만 조선의 국왕과 조정 대신들은 아직도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또 다시 통제사 이순신을 업신여기고 있나이다.


만일 전란이 끝이 난다면은 통제사 이순신의 그 목숨은 풍전등화가 될것이 뻔하며. 조정 대신들과 국왕은 반드시 통제사 이순신을 해하려고 할 것입니다.


황제폐하께 바라옵건데 통제사 이순신의 목숨을 구명해 주소서. 통제사 이순신을 황제페하의 신하로 두소서. 황제페하께서 통제사 이순신에게 덕을 베푸신다면은 통제사 이순신은 분명히 목숨을 다하는 날까지 황제폐하께 충을 다할것이옵니다.

부디 통제사 이순신을 거두시어 저 북쪽 오랑케를 켠제케 하소서. [ 명나라 장수 진린 ]



이순신 장군님의 마지막 전투였던 1597년 9월 16일 명량해전에서 모두가 깜짝 놀라고 당황하게 하는 일이 벌어진다. 이순신장군님의 지휘함대가 제일 앞서 나가 왜적과 싸우면서 스스로 죽음을 택하신 것이다.






명나라 진린장수는 중국 광동출신으로 1597년 (선조30년) 정유재란에 어위도총관 전군 도둑으로 수군 5천 명을 거느리고 조선에 들어와 강진군 고금도에서 이순신과 더블어 일본 왜적과 싸워서 전공을 세워서 광동백을 하사 받는다.


명나라 장수 진린은 그 후 고향으로 돌아 가지만 명나라가 망하자 진린의 후손은 한국 남해 장승포에 옮겨 살면서 광동 진씨의 뿌리가 된다.



명나라 장수 진린을 통해서 본 옛날 조선(대한민국)의 역사는 정말 슬프고 만감이 교차한다. 나라가 절대적인 위기인데도 장수를 모함해서 나라를 더 망치는 못난 일이 오늘날에는 없는지 살펴 보고 깨달아야 할것이다.



진린이 본 조선시대의 부끄러운 역사가 오늘날 대한민국 사람들에게도 분명 의미 있는 교훈이 되어 슬푼 역사를 더이상 만들지 말아야 할것이며 특히 지난 역사를 통해서 본 훌륭한 인물들은 왜 대한민국에서는 살기가 힘든 것일까 ?



http://www.youtube.com/watch?v=6qq1XYz5JAk < ----- 클릭 하시겠습니까 ?



2014년 6월 18일 애국우파








이등병과 선임 부사관



군에 갓 입대한 한 이등병이
몹시 추운 겨울날 밖에서
언 손을 녹여 가며 찬물로 빨래를 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그곳을 지나던 소대장이 그것을 보고
안쓰러워하며 한 마디를 건넸습니다.



“김 이병! 
저기 취사장에 가서 뜨거운 물 좀 얻어다가 하지.”

그 이등병은 소대장의 말을 듣고 취사장에

뜨거운 물을 얻으러 갔지만,
고참에게 군기가 빠졌다는 핀잔과 함께

한바탕 고된 얼차려만 받아야 했습니다.  
빈 손으로 돌아와 찬물로 빨래를 다시 계속하고 있을 때

중대장이 지나가면서 그 광경을 보았습니다. 



“김 이병!  그러다 동상 걸리겠다. 
저기 취사장에 가서 뜨거운 물 좀 얻어서 해라!”

신병은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은 했지만,
이번에는 취사장에 가지 않았습니다.
 
가 봤자 뜨거운 물은 고사하고, 
혼만 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계속 빨래를 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중년의 인사계(선임부사관)가
그 곁을 지나다가 찬물로 빨래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걸음을 멈추고 말했습니다.



“어이~!  김 이병!
내가 세수를 좀 하려고 하니까 지금 취사장에 가서

그 대야에 더운 물 좀 받아 와라!.” 

명령을 받은 이등병은 취사장으로 뛰어가서 
취사병에게 보고했고,
금방 뜨거운 물을 한 가득 받아 왔습니다.

그러자 인사계가 다시 말했습니다. 



“김 이병!
그 물로 언 손을 녹여가며 해라!
양이 충분하지는 않겠지만
동상은 피할 수 있을 거야.”

소대장과 중대장, 그리고 인사계(선임부사관)
3명의 상급자 모두
부하를 배려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상대방의 입장에서 상황을 파악하고
정말로 부하에게 도움이 된 것은
단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나의 관점에서 일방적인 태도로 상대를 배려하고,
상대에게 도움을 줬다고 혼자 착각하는
그런 어리석음을 우리는 범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 보게 됩니다.
 
누군가가...
'배고픈 소에게 고기를 주거나,
배고픈 사자에게 풀을 주는 배려'는
나의 입장에서 단지 내 만족감으로 하는
허상의 배려입니다.



배려와 성공은 
배타적인 모순이 아니라 하나의 조화입니다. 

사소한 배려가 쌓여서
인생을 바꾸어가고 자신의
일과 삶이 안전하고 즐거워집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배려하는 사람들의 힘으로 
유지되고 발전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상 '배려' 이야기였습니다.

좋은 글 이라 퍼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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