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기이한 빛 / 최송연
                                     
지난  날,
귀는 있으나 들리지 않고
눈이 있어도 보이지 않아
흑암의 길 헤매며
비둘기처럼 슬피 울더니

홀연히,
주의 기이한 빛 비취이니
감겼던 눈 뜨여
그 사랑 밝히 보이고
닫혔던 귀 열려
하늘 노랫소리 들리니
이 어찌 놀라운 일 아니런가

주님의 
크신 은총이네
사랑이네, 축복이네
찬양하라 내 영혼아 영원토록! 

주의 기이한 빛 / 최송연

지난  날,
귀는 있으나 들리지 않고
눈이 있어도 보이지 않아
흑암의 길 헤매며
비둘기처럼 슬피 울더니

홀연히,
주의 기이한 빛 비취이니
감겼던 눈 뜨여
그 사랑 밝히 보이고
닫혔던 귀 열려
하늘 노랫소리 들리니
이 어찌 놀라운 일 아니런가

주님의
크신 은총이네
사랑이네, 축복이네
찬양하라 내 영혼아 영원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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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받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압니까? / 로이드존스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요한일서4:13)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받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압니까?


1. 여러분의 관심을 어디다 두고 사십니까?

자기 영혼의 생명에 관심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아는 일에 관심이 있습니까? 영원에 대해 흥미를 가집니까? 이것들이 여러분을 흥미롭게 합니까? 확신하건대, 만일 그렇다면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 계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땅의 일을 생각”(빌립보 3:19)하기 때문입니다. 땅의 일이란 육욕적이고 육신적인 일을 가리킵니다. 그것이 신문에 나는 살인 사건만을 가리키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왕실가족이나 소위 상류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과 화려한 허식 그리고 인생의 각종 구경거리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동일합니다. 결국 그것은 동일한 관심사입니다.

여러분의 관심이 거기서 그칩니까? 아니면 여러분의 관심은 영적입니까? 여러분은 영혼불멸과 보이지 않고 영원한 것들에 관심을 가집니까? 만일 여러분이 이것들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2. 두 번째는 죄의식입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여러분이 자신 속에 악한 생각이 있음을 자각한다는 뜻입니다. 단지 여러분이 하지 말아야 하며 그것으로 인해 괴로움을 느끼는 특정한 일들을 행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여러분이 악한 본성을 가지고 있고, 여러분의 마음속에 죄와 악한 생각이 있으며 또한 무가치하고 추하고 더러운 것을 발하게 하는 근원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여러분이 스스로를 혐오스러워한다는 뜻입니다.

우리 주님은 이르시기를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매우 위험한 상태에 있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가리켜,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로마서 7:18-24)라고 말했던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에 관해 그런 느낌을 가져본 적이 있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내가 제시한 방법에 근거하여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 누구도 성령 하나님께서 그 안에 들어오시기 전까지는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자신을 죄인이라고 느끼고 또 만일 여러분 안에 존재하면서 여러분을 무너뜨리는 그것을 미워한다면, 이는 여러분이 성령의 선물을 받았다는 증거입니다.


3.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르기를, 그분이 오셨을 때 이 세상의 관원들이 그분을 알지 못했다고 합니다.

왜일까요? 그들이 성령을 지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을 받았으므로 믿습니다.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추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다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지 아니하였으리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고린도전서 2:7-8,10)


이 세상의 관원들, 세상의 위인들, 힘 있고 지혜로우며 귀족에 속하는 자들마저도 나사렛 예수를 보고서 한 사람, 목수, 그리고 기술자로만 알았을 뿐입니다. 그들은 그를 일종의 특출한 종교적 천재로 간주하였을 수도 있지만, 그가 영광의 주이심을 알지는 못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바울은 이르기를 그들이 성령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린도전서 2:13)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거하노니”(요한일서 4:14)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한복음 3:16)


우리로 하여금 진정으로 믿게 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성령뿐이시며,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우리가 믿을 수 없습니다.

지성과 이해력과 큰 지혜와 지식을 가진 사람들에게, 곧 건전하고 균형 잡힌 사고를 하는 것으로 유명한 사람들에게 제시된 메시지가 여기 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들었지만 그 속에서 아무 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가장 비천하고 무지하며 교육을 받지 못한 문맹인들이 그것을 듣고서 그 안에서 기뻐함과 아울러 그것으로 인해 변화받아 하나님의 교회의 성도들이 된 경우도 있습니다. 그 차이는 무엇입니까? 이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성경은 설명하기를, 성령께서 이들로 하여금 보고 또 믿게 하셨다고 합니다.


4. 여러분은 자기 안에서 육신과 성령간의 투쟁과 싸움이 진행됨을 자각합니까?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에서 그 점을 다루고 있습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갈라디아서 5:17)


그의 말은 이런 뜻입니다. 여러분 안에 대조적인 두 가지 성품이 있음을 자각합니까? 그것은 단지 여러분이 때때로 나쁜 일을 저지르기 원하며 그래서 마음속으로 갈등을 겪어야 한다는 의미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보다 더 깊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의미에서 자신이 두 사람이라는 사실을 실제로 자각합니까? 여러분 안에는 거룩하고 영적인 것들을 원하는 새로운 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을 무너뜨리려는 또 다른 사람이 있으며, 이 두 세력 간에 다툼과 싸움이 일어납니다. 성경에 의하면 그것이 바로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는 지를 시험하는 최선의 시금석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처럼 대조적인 세력들과 싸우고 있다면 여러분은 성령께서 자기 안에 계심을 분명히 확신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계시지 않다면 그러한 다툼도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에는 ‘옛 사람’만 존재할 뿐입니다. 하지만 만일 여러분이 새 사람과 옛 사람간의 투쟁에 직면해 있다면, 성령께서 사실상 여러분 안에 계신 것입니다.


5. 여러분은 하나님이 여러분 안에 역사하고 계심을 자각합니까?

바울은 이르기를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빌립보 2:12-13)라고 합니다. 이는 크고 놀라운 사실입니다. 이는 우리가 어떤 일들을 행하려고 결심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주지하다시피, 도덕가들과 종교적 의무를 복종하는 자들은 그 모든 일을 행하며, 그 때문에 스스로 큰 자부심을 갖습니다. 그들은 주일 아침에 침대에서 시간을 허비하는 대신 일어나 교회로 갑니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마음이 움직여서가 아니라 다만 그렇게 하고자 결심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모든 시간을 조절하며, 그런 후에는 자신의 근사하고 고상한 이상들을 내세우고 의기양양해 합니다. 얼마나 근사해 보입니까!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바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립보서 2:13)


달리 말해서 여러분은 하나님의 능력이 여러분 안에서 일어나 여러분을 감동시키며 인도하고 있음을 자각하며, 자기 자신에 대해 감탄하고 놀라워합니다. 자만하는 것과는 달리, 여러분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런 일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다. 나는 이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이 무엇인가를 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것은 내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시며 내 안에 계신 성령이시다. 나는 나의 한계 너머로 이끌어 올려졌으며, 이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하나님이 여러분 안에서 역사하고 계십니까? 여러분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자각합니까?

여러분은 자신 안에서 활동하며 감동시키고, 변화를 일으키며, 인도하고 설득하며, 또한 고무시키는 놀라운 능력을 자각합니까?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하나님께로부터 그분 자신의 영을 선물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안에 거하시며, 여러분 안에서 그런 식으로 그분 자신의 위대한 목적을 이루고 계십니다.


6. 성령은 생명이시며, 생명은 항상 어떤 형태의 열매로 나타납니다. 살아 있는 나무는 열매를 맺지만, 죽은 나무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갈라디아서 5:22-23)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는지를 시험하는 방법은 여러분 자신과 여러분의 삶을 점검하는 것이며, 그리하여 그러한 열매가 나타나는지 혹은 그런 증거가 있는지를 찾아보는 것입니다.

그러한 열매가 나타나지 않으면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 계실 수 없음을 알고 있습니까?

우리 안에 이런 것들이 있습니까? 우리의 삶 속에서 이것들이 입증됩니까? 만일 그러하다면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시며 우리는 점점 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세 개씩 짝을 이룬 9개의 열매들은- 여러분이 성경 어디에서나 발견하게 될 그분에 관한 가장 완벽한 묘사라 하겠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묘사입니다. 사랑은 그분의 삶 속에서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성육신 하신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희락은 모든 상황에도 아량곳하지 않는 거룩한 기쁨입니다. 화평은 그분을 결코 저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자비, 양선, 온유...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사 이러한 열매를 맺게 하심으로써, 우리는 점점 더 그리스도를 닮아갑니다. 이것이 성령의 열매입니다.


7. 우리는 성령을 받았으며, “양자의 양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습니다”(로마서 8:15)

하나님은 더 이상 영원 가운데 멀리 계시는 어떤 막연한 주권자가 아니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셨습니다. 그분께로 갈 때 우리는 우리 아버지 곧 탕자의 아버지께로 가는 느낌을 받습니다. 또한 우리는 두려움 없이 그분께로 갑니다. 이 점을 가리켜 요한은 본장 마지막 부분에서 “사랑은 두려움이 없고”라고 설명합니다. 우리는 그분께로 나아갈 것입니다. 하지만 과연 여러분은 하나님을 알되,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바 아버지’를 봅니까? 여러분 자신이 그분의 자녀임을 알고 있습니까?

만일 여러분이 이 모든 이야기를 듣고서 하나님의 성령의 은사를 받지 못했다는 결론에 이른다면, 내가 여러분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밖에 없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누가복음 11:·13)


만일 여러분이 이 은사를 갖지 않았다고 생각하여 이 값 없는 선물을 얻기를 바란다면, 지체 없이 하나님께로 나아가십시오. 자신의 파탄 상태를 인정하며 자신의 공허함을 자백하고서, 은총을 내려달라고 그분께 간구하며 그분 자신의 역속에 호소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이 그것을 받을 때까지 계속 간구하십시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약속들은 너무도 확실하며, 우리는 그분의 은혜롭고 복된 말씀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지 아니하리라”(요한복음 6:37)


그분께 간구하십시오. 만일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여러분은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풍성함을 얻을 것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마태복음 5:6)


그런 자들은 하나님의 충만하심으로 채워질 것입니다.

 

 

- D. M. 로이드존스, ‘요한일서 강해’중에서.

 

 

 

출처: 개혁주의마을

가져온 곳 : 
블로그 >생명나무 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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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한아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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