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제 3 성전의 한 장면 중에서

 

 

 

 

유대인들이 쓴 시온의정서를 보면 이 시대의 마지막 적그리스도는 아마도 유대교에서 나올 확률이 높다
그들은 아직도 메시아를 기다리는 입장이며 그들이 메시아가 왔다고 떠들 때 그가 바로 적그리스도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덕수궁 뒤에 있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몇년 째 공산국가의 화가들이 그린 그림을 자주 전시한다
이유는 박원순시장이 친북성향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조총련들의 그림이 주류를 이룰 때도 많다)
몇 년 전엔 이스라엘인들이 독일을 저주하며 앞으로 독일로 진출하여 그들의 원한을 풀겠다는 각오가 담긴 그림과 동영상을 보여 주는 전시회가 있었다
보기에도 너무너무 음산하고 무시무시한 내용들이어서 별관심없이 보긴 했는데 마치 이스라엘이 공산국가라는 느낌을 받게 했다
그 각오와 결의가 가이 대단했다

그들은 앞으로 예루살렘에 제3성전을 지으려고 한다
신사도운동권들은 여기저기 아직도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이 그들의 땅으로 돌아가는데 물심양면으로 돕는다고 한다
그것은 마치 과거 한국의 운동권들이 현재 햇볕정책을 지지하며 물심양면으로 열심히 도와서 북한이 핵을 만드는데 일조하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신사도운동권들이 하는 짓을 보면 적그리스도를 빨리빨리 불러들이는데 협조하는 상황이 아니고 무엇인가
앞으로 제3성전에 앉아 경배를 받을 적그리스도에게 그들은 절을 할 것이다

유대인들은 부자다 세계적인 부자다
그들이 예수를 믿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앞으로 제3성전을 세우는데도 신사도들은 물질적인 도움을 줄 게 뻔하다

앞으로 신세계정부가 나온다면 그것은 유대인들이 세우는 정부다
프리메이슨이나 일루미나티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유대인들이 만든 것이다
미국이 아닌 것이다
돈많고 머리좋은 유대인들은 못할게 없다

서울시립미술관에 전시됐던 이스라엘인들의 유럽을 향한 저주와

위협은 이미 시온의정서에 나와 있던 계획이고 작정이었다
그들의 인간에 대한 분노와 분개는 이미 루비콘강을 건넌지 오래였다
그들에겐 오로지 세계인들에 대한 복수의 신념 뿐이다
아울러 앞으로 모든 종교는 유대교 밑에서 울어야 할 것이다
특히
흔히 말하는 7년 대환난이 있다면 그것은 유대교가 기독교를 박해하는
양상이 될 것이다
유대인들이 이를 갈며 없애려고 하는 상대가 바로 크리스찬들이기 때문 ㆍㆍㆍ
666표가 있다면
그것은 세계금융권을 지배하고 있는 유대금융권들의 기독교인들을 향한
횡포가 될 것이다
ㆍㆍ이러고보니 내가 대예언을 해버렸네 ㆍㆍㆍ^^
휴우웃ㆍㆍㆍ^^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글/ 채

괴담,악성루머라고? 한국이슬람측 '익산 할랄단지에 무슬림 가족 30만명 거주한다' 보도자료 뿌려


괴담이나 악성 루머가 아니었다.


정부에서는 익산에 할랄단지가 조성되어도 무슬림이 대거 유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었지만, 한국이슬람측에서는 "익산에 (할랄단지가 조성되면) 무슬림 가족 30만 명이 거주할 예정"이라고 실제로 기대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이슬람중앙회는 이것을 단순히 기대만 한 것이 아니라, 보도자료로까지 버젓이 올려 놓았다(사진 참조).



익산 할랄단지와 관련해 무슬림 가족 30만명이 들어올 수 있다고 우려한 기독교계와 시민단체에 대해 괴담이라고, 악성 루머를 퍼뜨린다고 매도하고 공격한 이들은 이에 대해 어떻게 답할 것인가?


이슬람교 한국 총본산인 한국이슬람중앙회가 익산 할랄단지 반대 운동이 거세지기 전인 지난해 1월 21일 홈페이지에 "무슬림 가족 30만 명이 거주할 익산단지 전경"이라는 보도자료를 올렸던 것이 국민일보에 의해 확인됐다.


이 보도자료는 한국이슬람중앙회가 자체적으로 내놓은 것이 아니라, 대한지방자치뉴스의 보도였다. 한국이슬람중앙회는 이 신문의 익산시 국가 할랄식품 클러스터 조감도와 관련 기사를 공식 보도자료로 그대로 올려놓았다.


이 기사는 '한-UAE 간 <할랄식품> 투자 협약'으로 보도됐는데, "박근혜 대통령의 아랍에미리트(UAE) 방문을 계기로 양국 정부가 할랄식품 분야 협력 증진을 위한 업무협약(MOU)를 체결함에 따라 익산 국가식품클러스터 국내외 투자 유치가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이번 MOU는 농업 및 할랄식품 분야에서 UAE 정부와 우리나라 정부의 첫 번째 MOU 체결 사례로, 주요 내용에 국가식품클러스터 내 할랄푸드파크 개발을 위한 정보 및 기술을 포함하는 내용이 포함됐다"고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기사에는 없는 내용인, '익산 할랄단지에 30만명의 이슬람 가족이 거주한다'는 내용이 보도자료의 제목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는 한국이슬람중앙회에서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추진 중인 국가식품 클러스터 단지에 할랄식품 전용단지가 설립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으며, 이로 인해 최소 30만명의 무슬림이 들어올 것으로 자체적으로 예상했다는 뜻이다.


국민일보에 이 사실을 제보한 한 시민은 "이와 관련해 한국이슬람교 할랄 인증 담당자와 통화했는데, 이 같은 자료를 찾을 수도 없고 알지 못한다며 즉답을 피했다"고 전했다.


현재 한국이슬람교 사이트는 해당 내용을 삭제한 상태다. 한국이슬람중앙회 관계자는 언론들의 취재가 시작되자 해당 글을 내리고 "글은 인터넷 블로그 다양한 곳에서 있던 것들을 모아 올린 것"이라며 '개인적인 글'이란 사실을 강조하면서 삭제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국이슬람중앙회 홈페이지에 버젓이 올라와 있는 글이 어떻게 개인적인 글이 될 수 있는가? 이는 한국이슬람중앙회의 공식적인 입장이었다고 해도 틀린 것이 아니다.


한편, 한국이슬람중앙회는 서울, 부산, 경기도 광주·안양·부평·안산·파주·포천·김포, 전북 전주, 광주, 대구, 대전, 경남 창원, 제주 등 전국 15개 이슬람 사원을 총괄하는 기구로, 서울 용산구 우사단로에 있다.



출처: 재경일보 USA


여러분은 아마도 애플페이나 또 다른 모바일 결제에 대해 소개하는 성가신 광고들을 보았을 것이다. 이런 것들은 말그대로 종이화폐의 존재를 부인하는 기술들이다.


현금없는 사회는 “더 이상 망상이 아니라 조만간 완벽히 구현될 비전이다”라고 덴마크 은행조합의 총무인 Michael Busk-Jepsen는 말하고 있다.


몇몇 나라에서는 전자상거래가 물건을 사고팔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되고 있다. The Economic Collapse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Michael Snyder는 이것이 앞으로 실현될 ‘짐승의 표’의 청사진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 육십 륙이니라.”(요한계시록 13장 16-18절)라고 요한계시록은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현금 없는 사회가 적그리스도의 통치 수단이 된다는 것인가? 아래 비디오를 보자.



기사원문 >> Are These Countries Pushing for the Mark of the Beast?



* 몸 안에 새겨 넣어 결제수단으로 사용하게 될 베리칩이 ‘짐승의 표’로 쓰여지기 위해 먼저 구현되어야 할 것이 바로 ‘현금 없는 사회’이다.


현재 전자화폐와 함께 사용되고 있는 모든 종이 화폐들이 사라지고, 스마트폰까지 구현된 결제수단이 베리칩으로 통합될 때, 성경에 묘사된 것처럼 이 ‘표’가 없으면 매매를 못하는 666 짐승의 정부가 완성되는 것이다.



적그리스도의 세력들이 의식을 하던 하지 않던, 현금 없는 사회를 통해 베리칩 시스템을 완성하려는 저들의 의도가 정확히 성경의 예언과 맞닿아 있다.


미국의 유력 기독교 언론 가운데 하나인 Charisma Media까지 나서서 공개적으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을 보면 적어도 미국에 있는 교회들은 현재 구현되고 있는 현금 없는 사회와, 현금 없는 사회의 최종적 결제 수단인 생체이식칩이 바로 ‘짐승의 표’가 될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 대부분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베리칩”에 대한 공개적인 논의 한번 없이 “베리칩이 짐승의 표로 쓰여질 것”이라는 말만해도 이단으로 몰아가려는 한국교회의 상황과는 너무나 비교되는 모습이다.


세상은 성경이 예언한 종말의 때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이런 시대의 징조들에 눈을 감아버린 한국교회의 상황이 안타깝다. 



출처: 이 세대가 가기 전에 / 예레미야





"주님, 이 아픔을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그래도 견뎌야 한다면 저를 위해서 역사해 주세요"



내 아들 제임스가 세상을 떠나고 남편과 나를 보살피며

슬픔을 나누던 사람들의 발길도 차츰 줄어들었다.

우리집은 이전처럼 조용하고 정리된 상태를 되찾았다.

그러나 내 내면은 조용하거나 정리된 느낌이 들지 않았다.


어느날 밤, 배가 뒤틀리고 아프고 어지러워 침대에 누워 있을 때였다.

심장의 빛이 속도를 뛰기 시작했고, 불안감과 공포심이 나를 압도했다.

무언가 불쾌한 일이 일어나기 직전이었기 때문에

나는 곧바로 일어나서 집 안 반대편으로 갔다.


그러자 내 존재 가장 깊숙한 곳 미지의 동굴에서 내 목소리인지

아닌지 모를 거친 신음과 통곡이 솟구쳐 올라왔다. 나는 이 감정의

깊이와 슬픔의 위력을 깨닫자 더럭 겁이 났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깊고 어두운 구덩이로 미끄러지기 시작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추락하는 것만 같았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지 알지 못했다.


얼마 동안 나는 슬픔의 고통에 흠뻑 젖어 있었고,

집에 마련한 작은 사무실로 가서 내가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 일을 했다.

나는 성경을 집어들고 울부짖었다


"주님, 이 아픔을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그래도 견여야 한다면 저를 위해 역사해주세요"


여호수아서를 펴자 다음과 같은 말씀에 시선이 쏠렸다.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하느니라"(수1:9)


앞에 무엇이 있는지,

슬픔의 여정가운데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전혀 알지 못했다.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여호수아처럼 나 역시 한번도

그런길을 가본적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 길에 파괴와 우울과 절망의 잔해가

가득 묻혀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견디기 어려운 슬픔과 비통의 발작이

언제 또 겉으로 드러날 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제임스가 세상을 떠난 날부터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정상적인 것이

 하나도 없는 삶을 살게 되면 어쩌지? 제임스를 잃은 일만 생각나면 어쩌지?

 평정심을 회복하지 못하면 어쩌지?"


나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덜덜 떨면서 말씀을 읽었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나님께서 매우 조용하게 내 영에 말씀하셨다.

"나는 이 여정의 모든 단계들을 안다.

 모든 복병들이 어디에 매복해 있는지 알고 있어.

 네 하나님 여호와는 슬픔의 길을 걸어 보았다.

 이 길에는 나를 깜짝 놀라게 할 요소들이 아무것도 없단다."


나는 성경책 가장 자리에 "2010년 10월 슬픔의 여정이 시작됨"

이라고 표시했다. 여호수아서의 그 말씀을 기념비로 삼고

수시로 읽기로 마음먹었다. 그때 작고 고요한 음성이 내 마음에 속삭였다

"젠, 나는 네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잘 지나갈 수 있도록 이끄는

 너의 전속 여행 안내원이야, 나와 함께하면 너와 네 모든 삶이 안전하단다."


나는 평온한 확신을 얻고 침대로 돌아가 아침까지 곤히 잘 수 있었다.

당시에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치유의 여정이 시작된 것이었다.

처음으로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이 내 상실의 고통과 슬픔을 이기고

역사해주신 일이었다.


나는 내가 어디로 가든지 함께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을

내 영에 뚜렷하게 새겼고,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힘을 얻었으며,

기쁨이 회복될 것을 바라보게 되었다.

모든 상한 심령에 대한 궁극적인 예후(prognosis)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견뎌낼 수 있도록 도우실 뿐 아니라, 우리가 잘 성장할 수 있다는

매우 실제적인 소망을 내놓으신다는 진리이다.


나에게 폭풍이 왔다./ 잰 해리슨


펌글/이웃 블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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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상 뒤에 따라오는 영상들은 목양연가의 신학사조와 다른 부분입니다, 그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교리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하는 설교를 듣다. / 박영돈 목사

 

 

교리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하는 설교를 듣다.

잘 알려진 목사의 설교를 들었다. 그는 복음을 교리로 믿어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성경은 분명히 예수를 믿으면 죄를 안 짓게 된다고 했는데 왜 우리는 그렇게 살지 못하는가? 그것은 복음을 교리로 믿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의 설교를 들으면서 나는 오히려 교리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그의 설교는 부실한 교리적 골재로 형성된 설교가 얼마나 듣는 이에게 오해와 혼란과 의문을 야기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의 말 대로 과연 성경은 예수 믿으면 죄를 안 짓게 된다고 가르치는가? 성경과 교회역사 속에 그렇게 산 이가 한 명이라도 있었는가? 그렇다면 역사 속의 모든 성도들이 복음을 교리로 잘못 믿어서 그런 것인가? 그런 주장은 오히려 그 목사가 성경의 가르침에 담긴 논리적이고 교리적인 함의를 전혀 성찰하지 못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 목사는 아마 요한 일서에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범죄하지 않는다는 말이나 신자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말씀에 근거해서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말씀이 요한 일서와 로마서의 전체 문맥과 성경의 총괄적인 가르침의 맥락에서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설교자는 분명히 파악해야 한다. 거기에서 성화론이라는 교리적인 성찰이 필요하게 된다.

신자는 죄의 지배에서는 결정적으로 자유했으나 신자 안에 죄성은 완전히 소멸되지 않았다. 신자 안에 성령과 육신의 끊임없는 갈등과 싸움이 있으며 신자는 자주 쓰러진다. 그래서 신앙생활에 신음과 탄식이 있는 것이다. 성화의 과정은 대개의 경우 시행착오의 연속이다. 그래서 신자는 하루도 죄용서함의 은혜와 회개가 필요치 않는 날을 이 땅 위에서는 맞이하지 못한다. 그는 매일 매 순간 십자가의 공로만 의지하고 주님 앞에 설 수 있다. 그러면서 신자는 서서히 죄의 질병에서 자유하게 된다. 성경은 예수 믿으면 확실히 죄를 안 짓게 된다고 말씀하는데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은 복음을 잘못 믿는 것이라고 설교하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을 심각하게 왜곡하는 것이며 죄를 안 지으려고 몸부림쳐도 그렇게 살지 못해 자괴감을 느끼는 신자들을 더욱 곤혹스럽게 만드는 메시지이다. 설교자들이여 교리 공부 좀 합시다.

 

 

출처: 개혁주의마을

가져온 곳 : 
블로그 >생명나무 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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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한아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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