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해문제 이대로 좋은가?

오는 4월 19일에는 뉴욕 타임 스퀘어와 런던 트라팔가 스퀘어에 바알 신전이 세워진다. 흥미로운 것은 바알의 신전이 세워지는 4월 19일은 이 날로부터 5월 1일까지 13일 동안 지속되는 벨테인 축제의 첫 날이기도 하다. 

 


뉴욕과 런던에 바알의 신전이 세워지는 4월 19일은 사탄 숭배자들이 인신제사를 드리는 날로 알려진 벨테인 축제의 첫날이기도 하다.


관련글>> 뉴욕과 전세계 주요 도시마다 바알의 사당이 세워질 예정이다.

벨테인 축제는 사탄숭배자들에게 매우 신성시 여겨지는 축제로 이 기간 동안 암암리에 “인신제사”가 드려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벨테인 축제의 마지막 날인 5월 1일은 May Day라고 해서 일루미나티의 창건일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보면 벨테인 축제를 전후로 한 4월 중순부터 ‘인신제가’가 의심되는 굵직한 사건들이 발생해왔다. 아래는 Vigilant Citizen이 4월 19일을 전후로 해서 발생한 의심스런 사건들을 소개한 것이다.

•April 19, 1993 – Waco Massacre(와코 대학살) : FBI가 다비드 종파의 시설물들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불이나 76명의 남자와 여자와 어린아이들의 죽었다.


•April 19, 1995 – Oklahoma City bombing(오클라호마 폭발) – 168명이 죽었다.


•April 20, 1999 – Columbine High School Massacre(콜롬바인 고등학교 학살) – 13명이 죽고 21명이 부상했다.


•April 16, 2007 – Virginia Tech Massacre(버지니아 공과대학 학살) – 32명이 죽고 17명이 부상했다.


•April 16, 2013 – Boston Marathon Explosions(보스톤 마라톤 폭발) – 3명이 죽고 107명이 부상하였다.


이 외에도 한국에서는 한국판 911이라고 하는 세월호 사건이 2014년 4월 16일에 발생하여 295명이 죽고 9명이 실종되는 참극이 벌어졌다.


관련글>> 세월호는 한국판 911 사건이다.


 

한국판 911로 알려진 세월호 사건도 세미라미스의 생일인 2014년 4월 16일에 발생하였다.


 


일루미나티(프리메이슨)의 Dualism을 상징하는 회색과 노란색이 대비된 전시안으로 만들어진 세월호 청문회 포스터


 

 

 의식이 치뤄지는 프리메이슨의 체크무늬 바닥처럼 회색과 노란색의 체크무늬로 장식된 세월호 청문회 현장 - 2014년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사건이 일루미나티가 기획한 의식(ritual,인신제사)임을 인증하고 있다.


사탄숭배자들이 인신제사를 드리는 벨테인 축제 기간에 맞춰 뉴욕과 런던 한복판에 바알의 신전이 세워지는 2016년 4월엔 과연 어떤 일들이 발생할 지 우려스럽다.


참고기사>> April 19: Temple Of Baal In New York Is Going Up Same Day The Blood Sacrifice To The Beast Begins


- 예레미야 -




천국은 어디에 있는가?

 

[질문]

그 동안 고민하면서도 누구와 상의하기 어려운 문제를 질문하겠습니다. 헌데 너무 원초적인 질문이라 답변이 곤란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고픈 질문은 "천국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답변이 가능할지요?  

 

[답변]박신목사

너무 원초적인 질문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 갖고 있는 의문입니다. 답변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만약 답변이 불가능하면 천국의 실재성(實在性)이 의심 받게 되는 결과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또 기독교 신자가 다른 종교의 신자와 확실히 다른 점 하나는 언제 죽어도 천국 갈 자신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천국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면서 갈 자신이 있다고 하면 벌써 그 구원의 확신에 대한 신빙성이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교회에서 예수를 믿으면 천국을 간다고만 했지 그 천국이 어떠한 곳인지 어디에 있는지 충분한 설명을 하지 않아 천국에 관해 체계적인 정리가 되어 있지 않는 분들이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천국이 어디 있는지 알려면 천국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 정의부터 분명해져야 합니다.

특별히 질문자께서 궁금하신 내용 중의 하나가 틀림 없이 신자가 죽은 후에 가는 천국이 이 우주 가운데 공간적으로 어떤 물리적 장소를 점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리라 믿기에 더더욱 천국에 관한 정의를 확실히 해 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1.천국의 정의(定意)

1.1. 두 가지 천국

천국에 관해 적용된 용어와 그 의미는 교회사적으로 시대 상황에 따라 조금씩 변천해 와 한 마디로 정의하기 힘듭니다. 지금 여기서 그것을 일일이 알아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시간과 지면 상의 제약이 있어서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사 복음서에 천국에 관해 비유(마13장 참조)와 설교로 다 말씀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하신 모든 가르침의 주제는 천국이었습니다. 흔히 성도들의 실천적인 윤리에 관한 교훈이라고 알고 있는 산상수훈의 주제도 천국에 관한 것입니다.  

 

성경에 우리말로는 천국이라는 한가지 표현뿐이지만 사실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흔히 말하는 천국(Heaven) 즉 구원을 얻은 영혼이 죽은 후에 가서 하나님을 영원토록 찬양과 경배로 섬길 곳입니다. 예수님이 잡히시기 직전 제자들에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요14:1,2) 간다고 하신 바로 그 곳입니다.

 

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천당이나 극락과 같은 의미입니다만 기독교를 제외한 모든 종교는 죽은 후에 가 봐야 인간의 영원한 운명이 결정 된다고 가르칩니다. 살아서는 어떻게 하든 최선을 다해 자기들 신의 노여움을 풀고 그 마음에 들도록 해야 하는 것이 신앙 생활의 전부입니다. 그래서 정성, 치성, 헌금, 희생 등을 가능한 많이 갖다 바쳐야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이 땅에서의 삶의 목적은 남이야 어떻게 되었든 오직 자기 자신의 성적표만 잘 관리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의 선행과 구제는 진정한 선이라기보다 죽은 후 평가를 잘 받기 위해 이 땅에서 자기 공적을 쌓는 정도의 의미밖에 없습니다.

둘째는 주님의 거룩한 통치가 실현되는 영역으로서의 “하나님의 왕국 혹은 주님의 나라 (the Kingdom of Heaven, 혹은 the Kingdom of the Lord)”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사역을 시작하시면서 가장 먼저 전하신 메시지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마4:17)였습니다. 주님은 곧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하심으로 이 땅에 편만해 있던 사단의 왕국을 친히 물리치시고 죄악과 사망의 사슬에 묶여 있는 죄인들을 구원 하심으로써 인간의 삶 속에 천국을 실제적, 현재적으로 도래시키겠다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는 기독교만이 갖는 천국에 관한 특유의 의미입니다. 구원의 확신을 얻은 신자가 이미 이 땅에서 주님의 통치를 받는 삶 전체를 말합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의에 미치지 못하는 죄인으로 죄의 삯인 사망의 형벌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십자가 공로를 통해 하나님께서 택한 자에게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고 당신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베풀었습니다. 신자는 중생 이후 그 분의 선하신 인도하심을 받아 자기 모든 삶을 바쳐 오직 그분의 뜻대로 살게 됩니다.

신자에게는 더 이상 정죄함이 없기에 자신의 성적표만 관리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대신에 주님의 거룩한 통치가 이 땅에 더욱 많이 펼쳐지도록 헌신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로 바뀌게 됩니다. 따라서 신자의 모든 선행은 주님 대신 이 땅에 천국을 실현시키는 것이자 다른 이들을 더욱 주님께로 인도해 자기가 받은 은혜를 동일하게 받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1.2. 천국의 현재성과 미래성

신자가 죽은 후에 가는 천국도 당연히 하나님의 거룩한 통치가 전적으로 이뤄지는 곳입니다. 그래서 천국이 장소적으로 어디 있는가를 따지기 위해선 신자가 죽기 전에 이 땅에서 누리는 ‘하나님의 나라’와 죽은 후에 가는 ‘천국’을 각각 구별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 신자가 누리는 ‘하나님의 왕국’에는 현재 임재한 나라와 미래에 도래할 나라라는 이중적 성격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장래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도록 기도하라고 했습니다.(마6:10) 나아가 당신께서 재림하셔서 새롭게 이루실 새 하늘과 새 땅에 관해 계시하시고 신자더러 영육간의 완전한 부활을 소망하라고 하셨습니다.(마16:28, 계19-22장, 계22:12,20) 종말론적인 의미로 예수님 재림 시에 완성될 하나님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또 이미 우리 가운데 임해 있는 하나님 나라에 관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느냐는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대해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1)고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지상 사역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가 우리 가운데 뿌리 내렸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씨 뿌리는 비유(마13:3-23)에서 보듯이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좋은 땅에 ‘하나님의 나라’라는 씨앗을 이미 뿌려 놓으셨습니다.(마13:11, 23) 구원 받아 천국의 비밀을 소유한 하나님의 자녀들끼리 사랑하고 섬기는 공동체 안에 하나님나라가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1.3. 천국의 구성 요소  

 

하나님 나라가 구체적으로 어디 있는지 알려면 천국이 무엇으로 구성되는지도 살펴 보아야 합니다. 한 나라를 구성하려면 주권, 국민, 영토 반드시 이 세가지가 있어야 하는데 천국도 예외는 아닙니다.

 

먼저 주권이란 그 나라를 통치하는 권력이 누구에게서 나오며 누구에 의해 집행되는지를 의미합니다. 국민들의 정치참여로 권력구조가 결정되는 나라는 민주 국가이고, 일인 독재자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어 있으면 전제 국가이며, 세습왕조에 의하면 왕정국가가 됩니다. 따라서 통치권의 원천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와 그 분이 집행하며 궁극적인 결과도 그 분이 책임져야만 하나님의 나라가 됩니다.

 

또 나라가 성립되기 위해선 그 나라의 주권에 순종하여 국민으로서 모든 의무를 다하고 그 나라가 부여하는 특권을 제대로 누리는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왕만 있고 국민이 없으면 나라라고 할 수 없습니다. 반면에 공산전제 국가의 체제를 도저히 인정 못해 정치적 망명을 신청하는 자는 이미 그 나라의 국민이라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삶과 인생의 안전과 결과를 궁극적으로 책임지시는 분이 하나님임을 인정하여 그 분의 뜻대로 살며 그 분이 베푸시는 은혜와 축복을 누리는 자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됩니다. 구원의 확신이 있어 이 땅에서부터 주님의 통치에 자신의 삶을 내어 맡긴 주의 자녀가 반드시 한 명 이상 있어야만 하나님 나라가 구성됩니다. 

 

마지막으로 반드시 공간적인 위치를 점하는 영토가 있어야 합니다. 국경으로 경계선을 지을 수 있는 영토, 영해, 영공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물리적 지리적으로는 세상의 나라들과 그 영토가 겹칩니다. 또 죽어서 가는 천국은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는지 잘 알 수 없습니다.  

 

2. 천국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2.1. 하나님 나라(The Kingdom of the Lord) – 이 땅에서의 천국

 

2.1.1. 교회가 하나님 나라인가?

먼저 이 땅에서의 하나님 나라의 영토는 세상 나라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인 곳이면 바로 그곳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꼭 어떤 입법, 행정, 사법적 기관을 구비해 제도적인 조직의 모습으로 드러나야만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 모두 전적으로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에 속했기 때문입니다. 또 그 분의 통치는 성령을 통해 신자의 영혼과 교통하는 불가시적인 것이므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 가시적인 조직체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혹자는 이 세상에 도래한 하나님의 나라가 교회라고 추정하거나 주장합니다. 물론 교회 안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 교회의 머리 되시는 예수님의 통치를 받습니다만 교회 자체가 하나님의 나라는 아닙니다. 중생하여 구원의 확신을 가진 참된 성도만이 하나님 나라의 구성원이 되며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있는데 조직체로서의 교회 안에는 가라지와 같은 교인도 있기 때문입니다.(마13:24-30) 따라서 교회는 어디까지나 하나님 나라의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2.1.2. 각 자의 마음 속에 천국이 존재하는가?

 

또 어떤 종교에선 천국은 사람의 마음 속에 있고 각자가 생각하기에 달린 것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천국이란 여러 가지 죄를 스스로 반성하고 염려와 불안을 정신 수양을 통해 없애고 도덕적 훈련을 통해 인격의 도야를 얻어 평강을 찾는다는 의미입니다. 말하자면 세상의 걱정이 더 이상 자신의 자아를 흔들지 못한다는 뜻에서만 천국입니다.

그러나 이는 천국이 아닙니다. 하나님이라는 분명한 주권자의 통치를 받은 적이 없고 그 분의 인도와 보호 아래 자신을 내어 맡긴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자기의 의지적 결단과 반복되는 수련으로 얻은 일시적인 정서적 안정을 천국이라고 오해한 것입니다. 주권자도 자기요, 백성도 자기요, 영토도 자기의 지정의적 능력이 미치는 부분 안에서만 그친 것입니다. 말 그대로 자기 혼자서 왕과 백성을 겸하는 일인(一人)  왕국이자 왕 마음대로 하는 독재 국가입니다.

그 왕국은 자신의 생각과 기분대로 천국을 하루에도 몇 번씩 지었다 허무는 자기 구원입니다. 아무리 오랜 수련을 거쳐도 그 결과는 허무로 끝나고 실제 천국의 문턱에도 못 가 봅니다. 자연인의 지정의 능력은 너무나 제한되고 무능하며 그 영혼은 부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간섭이 없는 상태로는 살아 계신 주님을 대면할 수도 없어 그 분의 의로운 통치를 받는다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직접적인 통치를 받지 않고는 아무리 염려 불안이 없고 세상적으로 형통하고 도덕적으로 고상해 보여도 여전히 그것은 인간의 왕국, 세상의 왕국에 불과합니다.

 

대신에 기독교의 경우는 다릅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3:16) 성령 세례를 받은 참 신자 안에는 분명히 성삼위 하나님의 한 분이신 성령 하나님께서 임재해 계시고 성도가 천국 갈 때까지 떠나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주권자이신 하나님이 성도에게 와 계시고 성도는 백성으로 그 분의 인도를 받습니다. 따라서 기독교 신자의 경우는 혼자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조건을 완전히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 본 교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성도 자신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구원 받은 신자라도 자기의 정욕과 남아 있는 죄의 본성에 이끌리거나 심지어 사탄의 시험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 신자가 자신의 의지만으로 정서적, 인격적, 도덕적, 종교적 훈련을 통해 얻은 평강은 절대 천국이 될 수 없습니다. 신자가 진심으로 기도하여 성령님의 세미한 음성을 분명히 듣고 그대로 순종하고 주님의 뜻을 삶에서 실천할 때 만이 혼자라도 천국이 되며 하나님 나라가 자신에게 도래하는 것입니다. 

 

2.1.3 천국을 실현시켜야 할 성도의 삶

다른 말로 해서 성도의 이 땅에서의 삶은 천국을 간헐적으로 맛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성도의 신앙생활의 목표는 이 땅에서 얼마나 천국을 지속적으로 오래 풍부하게 나아가 더 많은 다른 성도와 함께 맛볼 수 있는가의 싸움에 두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하며 바로 그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 되는 까닭입니다.(살전5:17.18) 

반면에 성도가 죽은 후 천국에 들어가고 나아가 부활하여 주님의 새 하늘과 새 땅의 통치에 참여할 때는 더 이상 죄와 사탄의 방해가 없습니다. 항상 삼위 하나님과의 완전한 교제와 인도와 통치가 가능해집니다. 미래에 도래할 하나님 나라는 영원한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천국의 현재성은 가변적이지만 미래성은 불변이라는 이중적 성격을 내포하게 됩니다.    

이 땅에서의 하나님 나라는 참다운 성도가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고 그분의 뜻이 드러나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있습니다. 특별한 공간적 경계선이 따로 없습니다. 성도라면 누구라도 자기가 속한 가정, 직장, 사회, 민족, 국가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고 확장하는 일에 삶의 모든 것을 다 바쳐야 합니다.

그러나 다시 강조하건대 하나님 나라는 반드시 주권자, 백성, 영토 셋이 다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절대 잊어선 안 됩니다. 예를 들자면 교회가 성전을 짓고 어떤 자선 행사를 한다고 해서 하나님 나라가 꼭 실현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 전 가족이 교회를 나가고 자식이 부모를 공경하며 형제 간에 서로 사랑하고 화목하여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해서 그 가정에 천국이 이뤄졌다고 무조건 단정 지어서도 안 됩니다. 

 

어떤 일을 할 때에는 하나님의 분명한 인도하심이 먼저 있어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그 일에 참여하는 모든 자가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있어야만 비로소 하나님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전을 짓는 일이 담임 목사의 욕심과 고집으로 진행되고 교인들도 불평 불만을 갖거나 의무감으로 참여한다면 아무리 종교적으로 거룩하고 위대한 일을 한 것처럼 보여도 그곳에 하나님 나라가 실현된 것이 아닌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가정에서 아이들이 부모의 강요로 교회에 억지로 나가거나 단순히 윤리 도덕적으로 서로 화목하고 섬겨선 하나님의 통치가 없다는 점에서 천국이 아닌 것입니다.

천국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 안에 완전히 들어 온 사람을 통해 실현되는 것이지 하는 일의 선한 동기나 종교적 취지와 관계 없습니다. 가정과 직장과 교회 어디에서든 각 개인이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되어서 성령님을 통해 서로 교통하고 주님을 머리로 하여 하나가 될 때에 비로소 천국이 실현됩니다. 가정에서도 자녀에게 종교적인 의무를 강요하기 앞서 각 자녀가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일 대 일로 만나 거듭나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자발적으로 서로 사랑하고 섬기게 되며 주님의 뜻이 가장 우선되는 가정으로 변화되며 그 안에 천국이 실현됩니다. 

천국은 항상 사람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의 사람으로 먼저 변화되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르며 그 분께 자신을 바쳐야만 시작됩니다. 기독교적 조직체를 만들어 그 조직 전체가 선하고 거창한 기독교적 일을 한다고 실현되지 않습니다. 조직체의 구성원 각자가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제자가 되어 자기가 소속한 세상 조직으로 돌아가 그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할 때만이 하나님 나라가 실현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남아 있는 성도들에게 마지막 지상명령(the Great Commision)으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2.2. 천국(Heaven) – 죽어서 가는 천국

2.2.1. 어느 별에 천국이 있을까?

이제 마지막으로 성도가 죽은 이후에 가는 천국이 어디에 있는가를 따질 차레입니다. 스스로 천국을 갔다 왔다고 주장하며 시한부 종말론을 믿는 한 미국의 이단 목사가 지은 책에서 천국이 오리온 성좌 곁에 있는 어떤 별이었다고 기록해 놓은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과연 천국이 우주 천체들의 좌표 상에 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을까요?

천국은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거하는 곳입니다. 그럼 하나님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을 알기 위해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먼저 아셔야 합니다.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딤전1:17)이라고 했습니다.

화학적 분자 구조를 가진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은 반드시 썩게 마련입니다. 썩지 아니한다는 것은 물질이 아니라는 것이며 썩지 않기에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보이지 아니한다는 것은 인간의 육안으로 볼 수 없다는 뜻입니다. 물질은 반드시 보입니다. 아무리 미세한 것도 현미경으로 볼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은  물질이 아니라 영이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홀로 하나라는 것은 그 존재의 생성 근원과 그 존재가 계속적으로 존재할 수 있게 하는 동력이 스스로에게 있다는 뜻입니다. 만물의 창조주이자 운행자로서 영원히 계신 분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은 영으로써 물질계가 아닌 영계에 세세토록 계시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육안으로 보이는 오리온좌 같은 별은 벌써 물질계입니다. 천국이 그런 곳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 곳은 여전히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세계로 화성이나 태양 같은 하나의 별일 뿐입니다. “두렵건대 네가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일월 성신 하늘 위의 군중 곧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천하 만민을 위하여 분정하신 것을 보고 미혹하여 그것에 경배하며 섬길까 하노라.”(신4:19)

 

영계는 지구상에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넘어섭니다. 가로 세로 높이의 입체적인 3 D(Dimension)에다 시간을 합한 4 D와도 다른 차원입니다. 말하자면 인간의 육안과 지정의로 측량하여 분석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쉽게 말해 인간으로선 천국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절대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인간의 말로 표현할 수도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천국의 삼층천까지 직접 갔다 온 영적 체험을 한 바울 사도가 이렇게 기술했습니다.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고후12:3,4)

 

인간의 죽음이란 영혼이 생물학적 육체를 벗는 것을 말합니다. 썩어 없어질 육체는 이 땅에 남겨두고 썩지 않는 영만 영계로 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육체는 나쁘고 영혼은 선한 것이라 영만 천국에 간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또 신자의 존재 자체가 완전히 소멸되어 멸절(滅切)되는 것이 아닙니다. 존재는 계속해서 존재하지만 존재의 형태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물질로 이뤄진 지구상의 분자구조와는 다른 구조의 존재가 되어 영원히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 체험을 한 바울 사도가 부활에 대해서 이렇게 기술하고 있는 것을 주목하셔야 합니다.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고전15:40-49참조) 이 구절은 일차적으로는 예수님의 재림 때에 있을 성도들의 완전한 영육간의 부활을 묘사하고 있지만 천국에서의 우리의 존재 형태가 이 땅에서의 것과는 전혀 다른 신령한 형체가 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천국이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곳이라면 영계에서 존재할 수 있는 형체가 되어야만 가능합니다. 물질로는 영계에 들어 갈 수 없습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본체를 본 자는 바로 죽는다고 합니다.(삿 13:22) 이는 죄악으로 부패한 인간이 너무나 거룩하고 절대적으로 선하신 하나님과는 공존할 수가 없으므로 인간이 하나님의 본체를 직접 대면하는 순간 소멸하신 불 앞에 바로 타 없어져 버린다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본질적으로 물질로 이뤄진 존재와 영으로 된 존재가 동일한 공간 안에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독생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위해선 인간의 모습을 취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빌2:6-8) 역으로 생각하면 인간이 천국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육신을 벗고 영혼만 더 정확하게는 천국에 합당한 형체가 가야 함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2.2.2. 천국의 실체

그렇다면 영들만 있는 천국에서 어떻게 24장로들과 천사들과 구원 받은 성도들이 찬양할 수 있습니까?(계시록 4장) 장로들이 흰 옷을 입었고 보좌가 있고 그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바다가 있으며 밤낮 쉬지 않고 찬양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땅의 물질계와 동일한 모습인 것 같습니다.

앞에서 말씀 드린 대로 성도가 천국 갈 때에는 그 존재가 멸절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형체의 존재로 바뀌어 계속해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천국에서 존재 가능한 신령한 형체로 바뀌어진 것이지 영만 천국 간다고 해서 아무 의식도 없는 단순히 안개 같은 존재들이 구름처럼 떼로 몰려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말하자면 천국에도 분명히 성도가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으며 감정적 의식과 그 존재가 스스로 움직임이 가능한 3D 적인 차원의 영역이 있다는 것입니다. 단지 지구상에 지금 우리가 측정하고 분석 가능한 물질의 형태와 시공간의 차원과는 다른 우리가 알 수 없는 신비하고도 새로운 형태와 시공간의 차원이 분명히 천국에도 존재하는 것입니다. 표현이 이상하지만 천국 특유의 썩지 않는 신령한 물질계(보고 듣고 감각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가 그곳에도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은 인간의 말로는 절대 표현하지 못합니다. 환상으로 자세하게 천국을 본 요한 사도마저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등으로 이 땅의 비슷한 형체에 갖다 대어 비유만 했지 딱 집어서 이렇다 저렇다라고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천국의 구조와 모습은 지상의 것과는 도저히 비교조차 못합니다. 사람이 죽어 봐야만 알 수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신자가 천국의 실체에 관해 관심을 갖고 소망으로 기대해야 할 부분은 천국의 물리적, 공간적, 형체적 모습과 위치가 아닙니다. 천국의 가장 중요한 본질은 ‘더 이상 죄가 존재하지 않는 곳(free from the presence of sin)’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이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계22:3,4)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은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계21:3,4)

하나님과 함께 거할지라도 더 이상 인간이 불에 타 소멸되지 않는 곳이 천국입니다. 성도는 이미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필터를 통과했기 때문에 그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어 하나님 앞에 영원히 용서 받은 죄인으로서 의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이 땅에서 갖고 있던 죄의 본성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미쳐 이르지 못했던 부분들도 어린 양이 다 대속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신자가 천국에 들어 오는 순간 이땅에서의 더러운 것은 다 벗어버리게 하고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요한이 계시 받은  그대로 세세토록 주님을 친히 바라보며 그 분의 영광을 찬양하면서 나아가 주님을 섬기는(성도가 천국에서도 따로 할 일이 있음) 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시는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3:17,18)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사실이며 크나큰 은혜입니까?  

3. 결론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여 하나님의 뜻대로 살며 주님의 영광을 증거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존재합니다. 심지어 신자 혼자서라도 천국을 맛볼 수 있습니다. 죽어서 가는 천국은 분명히 실재하지만 인간이 측정하고 이해하는 시공간의 범위상으로는 어디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물질은 영계에 들어갈 수 없지만 인간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재하듯이 영은 물질계에 들어 올 수 있습니다. 천국은 비록 그 차원과 형체는 다르지만 인간이 알 수 있는 물질계 영역 안 어디엔가 소재 할 수 있는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구원 받은 신자는 이미 우리 눈에 안 보이지만 성령의 임재로 말미암아 영계로 들어가는 천국행 기차를 탔습니다. 더 이상 그 기차에서 내려지지 않으며 방향도 바뀌지 않습니다. 신자가 오직 할 일은 이 땅에서 자기의 삶과 인생과 존재를 통해서 소속한 세상 조직에서 더 많이 하나님 나라를 누리고 실현하고 확장하는 길 뿐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http://whyjesusonly.com/

개혁주의 마을/Grace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삼위일체 교리는 그리스도인의 인격적인 경험 속에서 맛이 나는 교리다. 오웬은 내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라는 것을 논할 수 있지만 거기서 내 마음속에 어떤 맛이나 달콤함이 없다면, 그분이 내 영혼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이라는 것이 내게 더 좋은 것이 무엇이겠는가?”라고 말했다.

패커의 요약이다. “오웬에 따르면, 우리가 묵상, 기도, 적절히 규제된 생활 속에서 신격의 세 인격과 규칙적인 교제를 갖는 패턴이 되어야 한다. 우리를 향하신 각 인격의 특별한 자비와 사역을 유념하고, 특별히 각 인격과의 사랑 및 교제에 대해 적절한 반응을 보여야 한다. 이렇게 우리는 하나님과의 충분한 교제를 유지해야 한다.”

 

나아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경험은 삼위일체 교리를 믿는 믿음을 확증하고 강화시킨다. 오웬의 말이다. “이것이 모든 복음 진리의 본질이고, 그것들은 믿는 영혼이 경험하는 데 적합하고 합당하다. 은혜로운 영혼이 그 모든 것 속에서 탁월함, 실재, 능력, 효능을 경험하는 것만큼 --- 장엄하고 웅대한 것은 없다. 항상 은혜로운 삼위일체 교리만큼 고귀하고 영광스럽고 신비로운 것이 또 어디에 있을까? 묵상할 때 성부의 영원한 사랑 안에서, 중보와 구속 사역에 있어서 성자의 크신 역사 속에서, 영혼 속에 은혜와 위로를 창조하시는 성령의 전능하신 사역을 통해 주님이 얼마나 은혜로우신 분인지를 맛본 신자가 되고, 그 모든 것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거룩하심과 능력을 경험해 보라. 그러면 그는 일천 명의 논쟁가가 단지 마음속에 그 관념만 갖고 있는 것보다 이 신비로운 진리를 더 견고한 확신을 갖고 붙들고, 몇 마디 평범한 증언의 말씀만으로도 그 진리 속에 들어가, 그 진리를 확증하게 될 것이다.”

 

한편 오웬은 그리스도인의 하나님에 대한 경험은 하나님의 삼위일체 자기 계시에 따라 형성된다고 하였다.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성경적 교리가 왜 그토록 기독교적 경험에 중요할까?

첫째, 삼위일체 교리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예배를 규제하기 때문이다. 삼위 하나님과의 교제, 이것이 우리의 영적 예배다. “이는 그(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2:18) 오웬은 경고했다. “만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예배에 나아오지 않거나 예배가 성령의 힘으로 진행되지 않거나 예배 속에서 아버지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예배의 모든 규칙을 위반하게 될 것이다.”

 

둘째, 삼위일체적인 영성이 유일하게 참된 복음적 영성이기 때문이다. 구원의 경륜은 성자가 유일하게 성육신하신 중보자로 오셨기 때문에 성부, 성자, 성령 사이의 상호 작용을 직접 드러낸다. 오웬의 말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인격들은 창조와 섭리 사역에서 반드시 협력하시지만, 삼위일체적인 관계들이 외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구원의 복음의 경우, 그리스도의 중보자로서의 직분은 삼위일체를 계시하고, 삼위일체에 따라 복음에 반응하도록 우리를 규제한다. 우리는 성자로 말미암아 성령의 능력을 통하지 않으면 성부께 나아갈 수 없다.” 삼위일체가 없는 영성은 복음이 없는 영성으로, 단순한 자연 종교에 불과하다.

 

셋째, 삼위일체 교리는 영성을 심원하게 관계적인 것으로 만들고, 영성이 비인격적 신격, 아니 심지어는 범신론적 신격에 대한 신비적 경험이 되지 않도록 방비하기 때문이다. 이 세 인격 안의 한 하나님 교리는 우리의 하나님과의 관계를 심원하게 인격적인 것으로 만든다. 이것은 참된 교제에 본질적이다. 왜냐하면 오웬은 교제를 서로 연합하는 인격들 간에 선하고 즐거운 것을 공유하는 것으로 정의했기 때문이다. 오웬의 신적 교제 교리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 간의 상호 관계를 강조한다. 이 상호 관계 속에서 주권적인 주님이 이끌면 신자들은 이에 반응한다. 하지만 하나님과 사람들이 인격적 조우 속에 함께 들어간다. 웬의 삼위일체적인 교제 교리는 우리에게 풍요롭고 따스하게 성경적이고, 교리적이고, 경험적이고, 실천적인 개혁파 기독교의 훌륭한 모델을 제공한다.

 

오웬의 언약 신학은 하나님과의 정서적 상호 관계로 충만하다. 오웬의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계시된 것 가운데 거룩하신 삼위일체의 신비나 동일한 신적 본성의 단일성 속에 존재하는 세 인격의 위격에 대한 신비보다 더 영광스러운 신비는 없었다. 그리고 이 계시는 우리의 지성이 이에 대한 관념을 소유하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향유하도록 하나님 안에 신뢰를 두는 법,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위해 사는 법, 하나님과의 교제를 얻고 행하는 법을 올바로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 조엘 비키, 마크 존스, 청교도 신학의 모든 것, pp 141-143

 

출처: 청교도 아카데미/강대식

 

가져온 곳: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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