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윤 교수 주장은 개혁교회가 이미 배격한 것
   

과거나 현재나 여전히 뜨거운 논쟁의 대상 가운데 하나가 바로 죄인이 의인되는 신학적 논의다. 정통신학은 죄인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하는 이신칭의가 종교개혁의 시작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이신칭의가 종교개혁의 산물인지? 아니면 사도 바울이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 이 주장을 후대의 신학자들이 잘못 이해하고 받아들였는지 한번쯤 다시 뒤돌아 볼 필요가 반드시 있다.

오늘날 현대신학은 정통교회의 이신칭의를 거부하고 있다. 그 이유는 교회가(성도들이)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한다고 하는 지적에서 거듭 주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칭의와 성도의 삶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현대신학이 계속 칭의를 논하면서 루터와 칼빈식의 칭의론이 바울이 가르쳤던 칭의와 다르다고 말한다. 그 대표자가 김세윤 교수다. 그는 자신의 책 <복음이란 무엇인가?>에서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오늘날의 교회도 신약 성경의 모범을 따라 복음을 다양하게 그리고 포괄적으로 선포하여야 합니다. 복음을 다양하게 선포하는 것은 교회가 처한 시대와 장소의 구체적 적합성을 잘 나타낼 수 있습니다. 복음을 포괄적으로 선포하는 것은 균형 있고 건전한 신앙생활을 유발시키는 것입니다.

성경에 무식하고 신학적 통찰력이 부족한 가운데 오로지 '보수'만을 외치는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시대와 처지를 물론하고 오로지 종교 개혁자들식으로만, 그러니까 바울의 '의인됨'의 범주로만, 그것도 포괄적으로 옳게 이해된 '의인됨'이 아니라 오직 '무죄 선언됨'의 측면으로만 이해된 '의인됨'의 범주로만 선포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역설적으로 그들이 '보수'한다는 성경의 많은 가르침을 무시해버리는 우를 범할 뿐 아니라, 복음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그리하여 복음이 가져다주는 구원이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큰 오류를 범하는 것입니다.

한국의 성도들의 성경과 신학에 대한 이해도 이제는 좀 더 성숙해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이 포괄적으로, 그러면서도 삶의 정황에 적합하게 선포되어야 하고, 그럼으로써 복음이 가져오는 구원이 개인과 사회의 삶에 첫 열매의 형태로나마 구체화되어 나타나게 해야 합니다“(김세윤 교수)

김세윤 교수는 정통교회가 단지 무죄 선언됨의 측면에서만 칭의를 주장하고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법정적 칭의는 오류를 포함한 칭의론이라고 하는 것이다. 과연 김 교수의 주장처럼 정통교회가 무죄선언의 측면에서만 이신칭의를 말하는 것인가? 하지만 오히려 김세윤 교수는 자신의 신학이 정당하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성경을 왜곡하고 있다. 왜 한국교회가 김세윤 신학을 비판하지 않는가? 어마어마한 직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성경을 왜곡하는 것은 거짓 교사일 뿐이다. 지금부터 김세윤 신학이 성경을 왜곡한다는 것을 밝히고자 한다.

복음(칭의)은 그 시대의 상황과 환경에 의해 변하지 않는다.

김세윤 교수는 복음을 다양하게 선포함으로 교회가 처한 시대와 장소의 구체적 적합성을 잘 나타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무죄 선언됨의 측면으로만 칭의를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복음은 인간의 상황과 환경에 의해 변하지 않는다. 복음이 담고 있는 모든 내용은 오로지 인간이 죄인이라고 하는 진리이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의에 이르지 못한다. 이 세상에 의인은 없다. 죄인이 믿음으로 의인이 된다고 하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이다. 율법과 인간의 행위로 의를 취득하지 못한다. 오직 하나님의 선언만이 죄인이 의인이 된다. 죄인이 의인이 되는 것은 믿음으로 된다.

하지만 이것도 하나님께서 죄인을 선택하여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려고 하는 선택보다 앞서지 못한다. 따라서 택자는 믿음을 선물로 받아 의롭다고 여김을 받는다. 여기에서도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김세윤 신학은 인간이 최선의 노력으로 거룩하게 살아가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의를 취득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이 죄인을 의롭게 한다고 하는 것을 믿어도 마지막 심판의 자리에 이르러서 선언하시는 그 선언만이 의인이 되는 것으로 가르친다. 마지막 심판의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하시는 의인이 되기 위해서는 삶속에서 거룩함이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

김세윤에 의하면 의롭다고 선언 받아도 거룩하게 살지 못하면 죄인이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를 믿어 의롭게 되어도 아직은 의인이 아니고 최종 심판의 자리에서 결정이 되기까지 유보된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가르침은 정통교회의 법정적 칭의는 반쪽짜리 칭의로 여기는 것이다.

이렇게 김세윤 교수가 일명 유보적 칭의를 주장하는 이유는 법정적 칭의의 개념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결과이다. 그는 법정적 칭의가 무죄 선언만 하는 칭의라고 본다. 그러나 법정적 칭의는 죄인이 의롭다고 하는 무죄 선언으로만 되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존 칼빈은 성경에서 말하는 칭의는 이중칭의라고 주장한다. 칭의와 성화가 동시에 일어나는 의인됨을 말했다. 죄인이 법정에서 일방적인 은혜로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죄판결을 받으면 죄인의 내면에서는 자신이 다시 죄를 지으면 안 된다고 하는 내면의 변화가 일어나고 의롭게 살려고 하는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다.

김세윤 교수가 성경에서 가르쳐주는 칭의를 종교개혁자들이 무죄선언만 하는 칭의로 가르쳤다고 하는데, 그것은 김세윤 교수가 종교개혁자들의 책과 글들을 전혀 읽지 않고 말하는 무식한 말이다. 성경에서 예수를 믿으면 무죄하다고 가르친 곳이 어디에 있는가? 종교개혁자들이 예수를 믿으면 죄가 없다고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다.

성경은 예수를 구주로 믿어도 여전히 죄인이라고 가르친다. 바울도, 어거스틴도, 그리고 루터와 칼빈도 그렇게 가르쳤다. 김세윤의 주장대로라면 오늘날 종교개혁에서 가르치는 칭의는 마치 구원파가 가르치는 칭의와 같다. 성경에서 말씀하여 주시는 칭의는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으면 그 아들의 피가 우리의 죄를 씻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죄를 덮어 주시는 칭의이다. 구약에서부터 모형으로 계시된 어린양의 피 제사가 바로 그것이었고, 신약에서 어린양이신 예수께서 자신의 피를 흘리시므로 누구든지 아들을 믿으면 하나님이 그 피를 자기 백성들에게 뿌려주시는 것이라고 말씀하여 주시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예수를 믿으면 예수의 피가 그 사람에게 뿌려지는 것이다. 결국 죄를 덮어주신다. 시온좌에 동물의 피를 뿌려 덮어주시는 것과 같다.

법정적 칭의 개념이 바로 이것이다. 그런데 김세윤 교수는 이 칭의를 바울이 말한 칭의가 아니라고 한다. 여기에서 김세윤 교수의 잘못된 신학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건과 칭의를 연관시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성도는 법정적으로 의롭다고 일컬음을 받아도 여전히 죄인이다. 그래서 성도는 날마다 그리스도께로 나간다. 자신에게 의로운 것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가서 죄 용서를 구하고 사죄의 은총을 받아 기쁨을 누린다.

그 과정에서 성화가 계속 점진적으로 어떤 사람은 빨리, 또 어떤 사람은 느리게 나타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성화가 어떤 물질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성화를 표준으로 만들 수 없는 것이다. 성화되었다고 해도 계속 성화되어 가는 것이 의롭다고 칭함 받은 성도의 삶인 것이다.

그러므로 칭의는 인간의 환경에 의해 변화되거나 상황 때문에 바뀌는 것이 아니다. 언제나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의 피를 믿는 자들에게 의롭다고 선언하여 주시는 은혜인 것이다. 이 사죄의 확신으로 성도는 오늘 그 자리에서 자신이 주 예수를 믿어 자신의 죄를 용서 받고 구원 받았다고 하는 확신으로 산다.

김세윤 교수가 말하는 칭의는 구원의 확신을 성도에게서 빼앗고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하게 하는 왜곡된 칭의론이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로 이루신 구속의 사건을 완전히 인정하지 못하게 하는 거짓 가르침이다.

최근에 김세윤 교수는 한 언론 매체에 한국교회의 칭의론에 대하여 새로운 칭의론 정립을 주장하였다. ‘칭의와 성화를 병행’하는 칭의를 말했으나 사실 이것은 그의 독창적인 주장이 아니다. 이미 칼빈은 이중칭의를 통해 칭의와 성화를 함께 말하였고, 개혁교회가 그것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세윤 교수가 말하는 칭의는 결국 성화가 없으면 의인이 될 수 없다고 하는 성화중심의 칭의이다. 인간의 행위가 하나님의 칭의를 이끌어내기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의 주권을 상실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은 오직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선포되고 이루어지고 있다. 죄인이 의롭다고 일컬음을 받는 길은 사람의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고 성경은 말씀한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마암아 산다”는 이 말씀의 바른 해석은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는 산다”이다. 성령께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하는 것을 말씀하여 주시고 있고, 의롭게 된 자는 믿음 안에서 계속 자신을 부인하며 거룩하게 사는 것이다. 이것이 바울이, 그리고 종교개혁자들이 가르쳐준 칭의다.

 

 

 

임진남 목사는
임진남 목사는 총신신대원(M.Div)에서 공부한 합동교단 소속 목회자이다. 2012년에 김제예본교회를 개척하여 담임하고 있고, 칼빈주의 개혁교회를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와 종교개혁의 위대한 유산인 신앙고백서들 가지고 성도들을 온전하게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개혁신학 연구에 특별한 관심과 소명이 있어 서철원 박사와 함께 신학연구 모임을 진행하는 ‘한국개혁신학연구원’의 총무로 섬기고 있고, 저서로는 설교집 <다니엘이 증거한 복음>, <엘리야가 증거한 복음>이 있다.

 

 

 

 

http://www.ctimes.or.kr/

 

출처: 영적분별력/진실

가져온 곳: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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