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교황청의 프란치스코 교황이 외로운 투쟁에 나섰다. 교황청 내부의 뿌리 깊은 비리를 들춰내려 하자 반대파 추기경들과 고위 관리들이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교황이 파악한 비리의 핵심은 복자(福者)나 성인(聖人) 추존 시 거래되는 엄청난 돈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것. 교황청 고위 관리들 사이에 암암리에 퍼져 있는 비리의 실체는 세상에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이탈리아를 비롯한 서유럽 언론 보도에 따르면 프란치스코 교황 이전의 역대 교황 어느 누구도 부패 규모를 파헤치려 들지 않았다. 폭로한 사람도 없었기에 갖가지 유형의 스캔들은 그간 묻혀 왔다. 그러나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집사였던 파올로 가브리엘에 의해 하나둘 폭로되기 시작했다. 2012년 교황청 기밀문서가 처음 유출됐고, 이 사건으로 베네딕토 16세가 교황직에서 사임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같은 사실을 이탈리아 현지 언론이 세상에 알렸고, 교황청은 파올로 가브리엘 집사를 교회법에 따라 기소하기에 이르렀다. 

교황청 내부의 뿌리 깊은 비리를 들춰내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노력이 반대파들의 반발에 부딪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서방 언론들은 “비리를 밝혀내려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암살 위협 등에 시달리고 있다”고 전했다.
AP연합뉴스

교황에 오르지 못하고 죽은 성인을 추존하면서 오가는 헌금의 행방이 문제가 됐다. 통상 성인 1인을 추존하는 데 75만유로(약 10억원)가량의 비용이 소요된다. 그러나 이와 관련한 서류가 교황청에 남아있지 않았다.

실제로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황이었던 30여 년 동안 교황청은 1338명의 복자와 482명의 성인을 추존했다. 단순 계산해도 조 단위의 엄청난 돈이 교황청에 유입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로 인해 교황청은 ‘돈 많은 이들을 성인으로 찍어내는 공장’이라는 세간의 눈총을 받아왔다. 2014년엔 관련 은행계좌가 기록된 비밀 서류가 교황청 금고에서 사라지기도 했다.

교황청 소유 부동산도 어떤 기준으로 임대되고 기부되는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교황청 소속 사업 기구인 바티칸은행이 마피아의 돈세탁에 연루됐다는 뉴스도 나왔다. 전 세계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해 모으는 ‘베드로 성금’의 상당 부분이 교황청의 적자 해소에 쓰인다는 소문도 있다.

교황청 내부 성범죄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사제가 미성년자들을 성폭행한 사건은 수도 없이 많다. 바티칸 고위 관리와 줄을 댄 ‘동성애 로비단체’는 공공연히 활개를 치고 있다. 교황청 고위 성직자에게 맞춤형 성매매를 알선하고 그 대가로 안정적인 일자리와 알선료를 받고 있다는 것. 교황청은 이를 폭로한 이탈리아 언론인 잔루이지 누치(Gianluigi Nuzzi)와 에밀리아노 피티팔디(Emiliano Fittipaldi)에 대해 ‘정보 및 문서 유출’ 혐의로 기소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이같은 비리에 단호하게 대처하고 있다. 교황은 비밀리에 심복 관리들로 직속 감사단을 구성해 부패 고리 파악에 나섰다. 특별 기관을 만들고 기득권 세력의 은행 계좌를 동결시켰다. 특히 시복·시성 관련 돈줄을 차단하기 위해 ‘바티칸 최초’로 외부 회계감사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교황의 일련의 개혁 조치에 대한 기득권 세력의 반발도 시작됐다. 현재 교황은 암살 위협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탈리아 마피아 조직과 프리메이슨(비밀조직)으로부터 수차례 암살 협박을 받고 있다. 일부 반대파 추기경들은 교황을 비난하고 있다.

서방 언론들은 개혁에 나선 교황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언론들은 “ 프란치스코 교황의 도전에 바티칸의 미래, 나아가 가톨릭 교회 전체의 미래가 달려있다”면서 교황의 부패와의 전쟁을 주시하고 있다. 또 “개혁파 교황이 조만간 이들을 들춰내 단죄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내가 죽어야 예수가 산다"고 외쳤던 어떤 사람의 고백은 진정 그의 삶 속에서 뼈저리게 겪은 '자아'의 죽음을 향한 절박한 토로이며 권면임을 볼 수 있습니다.


정녕 내가 내안에 주인되지 않아야만 내 '의'가 사라진 그 곳에, 주의 성령께서 사시고 역사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대 땅에 수많은 기적과 이적을 베푸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을 통하여 이루어진 그 일들을 드러내지 않으시고 서둘러 장소를 옮겨가시며 영광의 찬사를 아끼지 않으려는 이들의 목전에서 말씀하십니다.


"오직 선 하신 분은 단 한 분이시다 네가 어찌하여 나로 선하다 하느냐 오직 선하신 그 분은 하나님이시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마가복음 10:17)


그 당시 거룩하신 주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에 대하여 제자 중 한 사람이 피력하기를 "그 행하신 것을 다 기록하자면 바다를 먹물삼고 하늘을 두루마리 삼아도 모자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가 이 정도임에도, 당신을 드러내지 않으셨습니다. 


반면 우리는 우리가 한 일들에 대해 어떠한지요!

실로 모든 것이 무지랭이 같은 사람들, 곧 부족하고 미련한 것들을 세우셔서 주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위해 하시는 일임에도, 마치 내가 잘나서 한 것인양 공로심에 사로잡혀 나를 세우고 나를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저도 그와 같은 사악한 일을 했었고, 지금도 내 속에 은밀히 숨어 있는 그 모든 것이 다 드러나지 않았을지나 아직도 내 속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 때 저는 저 자신을 타이르며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내 간증을 통하여 성도님들 가정에 주님이 거룩히 구별하신 홈스쿨이 정착하고, 나그네 같은 우리의 삶을 통하여 많은 분들이 자신의 재산과 사랑했던 많은 것들을 내려놓고 주께 전혀 애쓰게 되시리라."


그러나 그 속에 움크리고 있었던 '나를 알아주길 바라고 나를 높여주길 원하는 사탄의 궤계'가 숨어있었음을 저는 애써 부인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내 '의'이며, 그것이 바로 사탄의 '의'이며, 결단코 그것으로는 천국에 들어갈 합당한 거룩함을 이뤄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사도행전 22장은 바울이 자신의 사도됨의 과정을 설명합니다. 과거의 포악했던 자신이 어떻게 유대인들을 잡아 옥에 넘기고 죽이기까지 하였는지, 그리고 자신은 율법에 정통한 자이며 대도시 길리기아 다소 출신이며, 이렇게 자기를 소개하면서 어떻게 자신이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는지를 설명합니다.


그렇게 자신의 회심 과정과 치부가 드러나니 이미 지나간 일임에도 사탄의 권을 받아먹은 시기와 질투 비방으로 얼룩진 청중들은 미쳐 날뛰며 말하기를 "이러한 놈은 세상에서 없이하자 살려둘 자가 아니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22:1~)


진정 그 과정 속에 주 하나님께서 우리로 깨닫게 하시려는 것은 무엇일까요?


저에게 알려주신 한 가지는 바로 "너의 너 된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니,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공포하거나 드러내지 말고 네 안에서 하나님께 감사한 충만함으로 자신을 채워 그 기름이 닳지 않도록 삶 속에서 감사로 겸손히 행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피흘려 돌아가신 예수님께서도 자신의 한 일에 대하여 보상받기를 거부하시고 그 자리를 떠나시며 '너의 병 나은 것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하셨는데, 어찌 우리는 나와 내 지경의 사람들에게 인정과 답례와 보답을 받길 원하며 살고 있는 것입니까! 진정 그것이 하나님의 뜻일까요?


예루살렘에 모여 오순절의 기적을 경험한 사도들과 수많은 제자들이 급기야 도시와 마을들에 행한 일들로 인하여 존경과 칭찬을 듣고 있을 때,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는지요?


그 후 하나님께서 예루살렘과 유대 변방에 흥왕케 된 당신의 교회들에게 핍박을 허락하시고 이방과 세계로 흩으신 역사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런 핍박을 받으면서도, 팔레스틴을 지나 소아시아와 마케도냐까지, 그리고 세계로 복음이 급속히 퍼져나가도록 하나님은 역사해 주셨습니다.)


"너희에게 오는 영광을 모두 나 하나님에게 돌리고 너희는 그 영광을 취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기업의 번영이요, 그분의 '의' 즉 거룩하신 아버지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삼가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합니다. 

  내 사업이, 내 교회가, 내 뜻이 잘 진행되고 있다고 믿어질 때, 자신을 면밀히 살피고 또 돌아보아 "내가 진정 하나님의 영광을 취하고, 천국에서 받을 상을 이미 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지요!


​스스로 말하길 "내가 주님의 일에 어느 정도 충성되고 이렇게 큰 주님의 기업을 이끌어가니 이 정도면 주님께서도 내게 오는 이런 유익들은 허락하실거야..."라고 생각하시는 분 이 있다면 더욱 더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거룩은 결코 '내가' 드러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거룩을 이루게 하심의 목적은, 내 안에 거룩하신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모든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 속에 있는 사탄의 화전을 소멸하시고, 새로운 피조물이 된 그들을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주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며 하나님께 겸비히 무익한 종으로써 경배 드리는 것... 바로 이것입니다.    ​


주께서 전하라 하신 그것, 그 범위를 벗어나 치우치지 않으며, 주께서 우리를 통하여 뿌리신 씨의 돌보심과 열매를 맺으심의 과정을 기쁨으로 지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오직 주님의 일하심을 통해 그렇게 행하여 가시는 주님을 기대하며 기뻐해야 합니다.


하나님... 이제 저의 범죄와 우리의 허물과 죄를 사하여 주소서! 부디 기억치 마시옵소서! 저와 우리의 회개로, 나와 내 지경과 세계가 주께로 돌이키길 원하오니 우리의 범과를 도말해 주시고 우리로 다시 새 사람의 모습을 회복한 그대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출처: 예수님을 따르는 아가페 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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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가며 배운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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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를 쌓는 데는 여러 해가 걸려도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라는 것. 

인생은 무엇을
우리의 매력이라는 것은
15분을 넘지 못하고 그다음은
무엇을 알고 있느냐가 문제임도 배웠고
또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나를 사랑하게 만들 수 없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되는 것뿐이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선택이다.

내가 아무리 마음을 쏟아 다른 사람을 돌보아도
그들은 때로 보답도 반응도 하지 않는다는 것
다른 사람의 최대치에 나 자신을 비교하기 보다는
내 자신의 최대치에 나를 비교해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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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나는 배웠다.
인생은 무슨 사건이 일어났는가에 달린 것이 아니라
일어난 사건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무엇이 아무리 얇게 배어난다 해도
거기에는 언제나 양면이 있으며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사랑의 말을 남겨 놓아야 한다는 것을 나는 배웠고
어느 한 순간이 우리의 마지막의 만남이 될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 

해야 할 일을 하면서도 그 결과에 대해서는
마음을 비우는 자들이 진정한 영웅이며
사랑을 가슴속에 넘치게 담고 있으면서도
이를 나타낼 줄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음을

나에게도 분노할 권리는 있으나
타인에 대해 몰인정하고 잔인하게 대할 권리는
없다는 것도 나는 배웠다. 

우리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진정한 우정은 끊임없이 두터워진다는 것을 배웠고,
그리고 사랑도 이와 같다는 것을... 

내가 바라는 방식대로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해서
내 모든 것을 다해 다른 이를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는 것이 아님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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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나는 배웠다.
좋은 친구가 때때로 나를 아프게 한다 해도
그들을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타인으로부터
용서를 받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고
때론 내가 자신을 용서해야 한다는 것
아무리 내 마음이 아프다 해도
이 세상은 내 슬픔 때문에
운행을 중단하지 않는다는 것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해도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는가는
오로지 나 자신의 책임인 것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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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나는 배웠다.
우리 둘이 서로 다툰다 해서
서로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님을...
밖으로 드러나는 행위보다 인간 자신이 먼저임을

두 사람이 한 가지 사물을 보더라도
보는 관점이 다르다는 것도 

그리고 앞과 뒤를 계산하지 않고
자신에게 정직한 사람이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데서 앞선다는 것을...

내가 알지도 보지도 못한 사람에 의해
내 인생의 진로가 바뀔 수 있다는 것

이제는 더 이상
친구를 도울 힘이 없다고 생각할 때도
친구가 울면서 내게 매달린다면
여전히 그를 도울 힘이 내게 남아 있음을 배웠고

글을 쓰는 일이 대화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 마음의 아픔을 덜어 준다는 것

내가 너무 아끼는 사람이 먼저
이 세상을 빨리 떠난다는 것

타인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는 것과
나의 믿는바 입장을 분명히 한다는 것
이 두 가지 일은 엄격히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

또 사랑하는 것과 사랑받는 것의
모두를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 오마르 워싱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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