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치유력과 요법

공포의 아토피!! 아이를 더럽게 키워라 !!


[안종주의 '건강 사회'] 미생물의 건강학


10여 년 전의 일이다. 노인 사회 일본의 실태를 살피러 동료 기자들과 함께 도쿄, 나라 등지의 노인 요양원들을 둘러보았다. 나라 인근에 있는 '태양의 집'이란 한 노인 요양원을 방문했다. 숲이 있는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 잡은 요양원은 나무로 지은 2층 집이었다.

한데 재미있는 것은 울타리 하나 사이로 유치원이 있었다. 안내인에게 물어보니 이 지역에서는 이 유치원이 인기가 많아 매년 모집 때마다 엄마들이 앞 다퉈 신청을 한다는 것이다. 시 외곽에 자리 잡고 있어 아침이면 부모들이 자녀를 자동차로 이곳에 데려다주고 오후에 다시 데려간다고 한다.


마당과 약간의 경사가 있는 숲 속 언덕 곳곳에 수십 명의 어린이가 삼삼오오로 흙장난을 하며 놀고 있었다. 몇몇 젊은 유치원 여선생님들도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과 함께 흙장난이나 소꿉놀이 등을 하고 있었다. 바로 옆에서는 한 무리의 어린이들은 뛰어다니고 있었다.


호기심에 우리 일행은 유치원을 방문했다. 통나무집으로 된 언덕 위 유치원에는 피아노 한 대와 나무로 된 의자만이 있었고 아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안내인의 이야기를 들으니 이곳에서는 하루 종일 숲 속에서 뒹굴고 뛰어놀며 흙과 함께 지내는 것이 일과라고 한다. 비가 오거나 하면 유치원 안으로 들어가 피아노 연주 등 음악도 듣고 논다고 한다. 자연 속에서 노는 유치원인 셈이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대부분 아이들이 흙장난을 하면 손과 옷이 더러워지고 불결하다며 못하게 한다. 또 혹시나 흙에서 나쁜 병균이나 옮을까봐 야단을 치기까지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어린이들은 아파트 생활에다 포장도로 밖에 없어 흙이나 숲 속에서 뒹굴고 뛰어놀 기회조차 박탈당하고 있다.

심심찮게 신문, 방송에서 생활용품이나 생활환경에서 세균 검출 운운하는 보도를 들을 때마다 일본에서 보았던 이 유치원 생각이 나곤 한다. 유치원 운영자와 이곳에 아이들을 보내는 부모들은 세균이 득실거리는 흙장난을 주요 일과로 삼는, '불결한'(우리나라 부모들에게) 그런 곳을 좋아하는 것일까.


우리나라 신문, 방송들은 유독 세균이나 곰팡이 등 미생물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그래서 휴대전화나 공중전화, 쇼핑 카트, 컴퓨터 자판 등에 세균이 득실거린다는 보도를 시도 때도 없이 해댄다. 이런 보도를 본 독자와 시청자들은 우리 몸에 단 한 마리의 세균 침입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세균은 불결하며 위험한 존재로 각인된다. 박멸해야 할 대상이다. 생활용품뿐만 아니라 우리 입안과 피부, 옷, 집안 공기, 마룻바닥, 벽 등에서 세균이 검출되면 큰일이나 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항균 제품이 불티나게 팔리고 소독제가 가정 상비품이 돼버렸다.


우리 몸은 순수한 인간 세포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태어나면서부터 우리 몸은 피부는 물론이고 장 등 몸 곳곳에 세균들이 공존한다. 학술적 용어로는 정상세균총(Normal flora)이라고 부르는 이들 미생물 무리들은 우리 몸의 일부분이요 일생을 함께 살아가는 식구다. 만약 세균이 사라진 몸을 지닌 인간이 있다면 그는 얼마가지 않아 병원성 미생물에 감염돼 죽고 말 것이다. 세균 범벅인 사람이 정상인이고 세균이 전혀 없는 사람은 비정상적인 사람이다. 세균이 없는 사람은 지구 역사상 단 한명도 없었다고 보면 된다. 수많은 종류와 셀 수 없이 많은 미생물로 이루어진 정상세균총은 우리의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귀한 존재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미생물만 보면 죄다 죽이고 싶어 안달일까? 왜 언론들은 세균을 무조건 피해야 할 존재로 보는 것일까? 이는 극히 일부이기는 하지만 미생물이 우리 몸에 치명적인 감염병(전염병)을 일으키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역시 극소수이기는 하지만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인유두종바이러스, B형간염바이러스 등 암을 일으키는 미생물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여기에 한몫을 하고 있을 것이다.

현대인들은 미생물을 건강과 관련해 유익한 놈과 나쁜 놈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앞서 이야기한 질병을 일으키는 나쁜 놈과 유산균이나 된장, 김치 등 발효미생물, 항생제를 우리에게 주는 미생물 등 좋은 놈으로 본다. 하지만 미생물은 이 두 가지 부류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유익하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은 놈들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좋은 놈이 아닌 것은 죄다 죽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들 미생물이 실은 알게 모르게 우리 몸을 보호하고 병원성 미생물의 보호막이가 되는데도 말이다.


미생물을 죽여야 할 대상으로 보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후반 프랑스 의학자 파스퇴르와 독일의 코흐가 미생물이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이라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밝혀내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과거 수많은 인간의 목숨을 빼앗았던 중세의 흑사병을 비롯한 역사적 전염병과 감염 등이 모두 이들 미생물 때문이라는 것이 드러나면서 세균 공포는 인간의 머릿속에 깊이 각인됐다. 인류 역사에서 결핵, 콜레라, 장티푸스, 이질, 매독, 디프테리아, 독감, 두창(천연두), 에이즈 등 악명 높은 감염병들이 우리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 21세기 들어와서도 신종플루와 사스 등 미생물에 의한 감염병은 지구촌 전체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

전염병 미생물 원인설이 확립된 이후 인간은 미생물을 박멸하고 미생물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최대한 없애는데 온 힘을 쏟았다. 청결과 위생 관리가 정부가 반드시 해야 할 역점 사업이 되었다. 과학자들은 미생물만 골라 죽이는 항생제와 각종 소독약품을 개발하는데 힘을 쏟았다. 그리고 현대인들은 값싸고 쉽게 이들 항생제와 소독약을 구입할 수 있게 됐다. '미생물은 우리가 멀리해야 할, 보는 족족 죽여야 할 적'이라는 믿음이 영구불변의 진리가 되어 인간의 뇌리 속에 너무나 깊이 박혔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가습기에 혹 서식할지 모를 세균 등을 죽이기 위해 물에다 살균제를 마구 섞어 사용한 것이다. 실제로 가습기 살균제에 치명적인 세균이 자라 우리를 위협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런데도 세균을 모조리 없애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폐에 독성을 지닌 살균제를, 그 위험성을 모르고 사용하다 현재까지 무려 112명이 숨진 것으로 드러났다. 세계 최초의 바이오사이드 집단 사망 사건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것이다. 이 사건의 1차적인 책임은 살균제를 개발 또는 수입, 판매한 회사에 있고 2차적인 책임은 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정부에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그 뿌리를 찾아가면 세균에 대한 우리들의 지나친 공포심이 자리 잡고 있지 않을까.

모든 살균제와 항균제, 항생제는 몸에 해롭거나 해로울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꼭 필요할 때만 사용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 화장실 청소, 집 유리와 가구 청소, 부엌 청소, 자동차 청소 등에 사용하는 살균제와 각종 항균 제품(옷이나 생활용품 등) 등도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 심각한 폐 질환을 유발해 약 100명 이상의 생명을 앗아간 가습기 살균제

좀 더러우면 어떤가. 병원성 미생물이 득실거리지만 않으면 된다. 때론 더러운 것이 몸에 좋다. 일본 '태양의 집' 유치원 어린이처럼 우리가 더럽다고 여기는 흙과 함께 뒹구는 것이 몸에 좋다. 흙은 결코 더러운 것이 아니다. 물론 파상풍균이나 화농성균 등이 흙에 있어 피부에 상처가 날 경우 감염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럴 경우 잘 소독하면 되고 파상풍에 걸릴 위험은 극히 낮다. 일본 태양의 집 유치원 설립자나 부모와 달리 구더기 무서워 장 담그지 못하는 사람은 파상풍균이나 흙속 병원균 존재 가능성 때문에 흙을 멀리할 수도 있겠다.



그런 이들을 위해 이른바 위생 가설(Hygiene hypothesis)을 소개하겠다. 나처럼 미생물, 보건학 전공자들은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아직 낯선 내용이다. 최근 한 공중파 방송에서 이 내용을 소개한 프로그램을 방영한 적이 있고 언론에서도 가끔 이 위생 가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 요즘에는 위생 가설이란 용어는 기억하지 못해도 '마구 키운 어린이가 더 건강할 수 있다'는 정도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위생 가설은 1989년 <영국의학저널>에 데이비드 스트라찬이 어떤 감염이 우리 몸속에서 일어나면 알레르기 발생 위험이 낮아진다는 논문을 처음 발표하면서 세상에 나왔다. 그는 알레르기 질환인 건초열과 습진이 한 자녀만을 둔 가족의 어린이보다 대가족 어린이에게서 적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설명하기 위해 이 위생 가설을 제시했다. 다시 말해 태어나면서부터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는 대가족 환경에서는 핵가족 환경보다 각종 세균에 더 많이 노출될 가능성이 높은데 이 때문에 알레르기 질환에 잘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 맨땅요법이 30여년 이상 앞선 유럽. 유럽의 맨땅공원들에서 노는 아이들 모습입니다. 맨발로 맨땅을 밟기에 좋은 다양한 코스들을 만들어 놓고 있으며 신발을 벗어 놓을 수 있는 신발장도 마련해 놓고 있다>


그 뒤 이 위생 가설은 면역학자나 역학자들이 알레르기 장해 연구를 하는데 중요한 이론적 틀거리(framework)를 제공하고 있다. 예를 들면 더 개발된 국가일수록 알레르기 질환 발병률이 높으며 산업화 이후 알레르기 질환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는데 위생 가설이 사용된다. 이 가설은 최근 미생물 감염체와 함께 공생세균, 기생충이 인체 면역 시스템 발달에 중요한 매개체 구실을 한다는 것으로까지 그 영역을 확장해가고 있다.


알레르기 질환은 해롭지 않은 항원에 대해 우리 몸이 부적절한 면역 반응을 일으킨 결과이다. 그런데 많은 종류의 세균과 바이러스는 인체가 이런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것을 줄여준다. 인류 진화 역사와 함께 감염체, 공생세균, 기생충이 우리 몸과 공존하며 균형 잡히고 조절된 면역 체계 발달에 기여해왔다.

하지만 근대 들어와 전염병 유행을 막기 위한 소독 등 위생 관리는 한편으로는 전염병을 줄이고 평균 수명을 늘리는데 일등공신 구실을 했지만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문제를 일으켰다. 광범위한 항생제 사용으로 병원균뿐만 아니라 비병원성 세균까지 죽어갔다. 어린이들은 위생 향상과 항생제 덕분으로 많은 질병의 위험에서 벗어나거나 위험이 줄어들었지만 아토피나 각종 알레르기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위생 가설은 우리가 약간 불결하다고 느끼는 환경에서 자란 어린이들이 다른 감염병이나 알레르기 질환에 잘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의학자들은 최근 몇몇 기생충을 이용해 자가 면역 질환인 크론병(유해한 박테리아에 지나치게 반응하는 면역 체계로 유발되는 만성적인 장 질환), 다발성경화증, 천식, 궤양성대장염 등의 질환을 치료하는, 이른바 기생충 치료법을 선보이고 있다고 한다. 난치병 치료에 위생 가설을 응용하고 있는 것이다.

회충이나 촌충, 요충, 십이지장충 등의 기생충 가운데 적어도 하나 이상을 몸에 지니고 자라났던 지금의 50대 이상 중장년층과 노인들은 이런 기생충뿐만 아니라 대부분 어릴 때 7~8명 이상 한 지붕 아래서 생활하는 대가족 환경 속에서 지냈다. 또 자치기, 돼지불알 놀이, 구슬치기, 딱지치기, 고무줄놀이. 소꿉놀이 등 학교 운동장이나 집 밖 흙속에서 뒹굴며 지냈다.

그래서인지 1950~70년대에는 천식을 앓거나 아토피, 알레르기 질환으로 고생을 하는 사람을 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우리 어린이들이 천식과 아토피 등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우리 어린이 건강을 위협하는 주범들이다. 여기에는 1980년대 이후 환경오염 악화 등의 까닭도 한몫을 하기는 하지만 그 이유를 잘 설명해주는 것이 바로 위생 가설이다.

지금부터 우리가 명심해야 할 일은 미생물은 우리의 적인 동시에 친구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무조건 미생물을 멀리하고 두려워하고 박멸하려 할 것이 아니라 적과 아군을 잘 구분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독감이나 치명적인 감염병이 유행할 때는 손 씻기와 소독에 신경을 써야겠지만 평소에는 무해한 세균에 대해서 무덤덤해야 한다.

언론도 불필요하게 세균 공포를 조장하는 세균 검출 보도를 자제하거나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 조금은 더러워야 건강해진다는, 매우 역설적인 이야기가 필요한 때가 바로 지금이다. 쓸데없이 세균 잡으려다 되레 당신의 건강을 해친다. 너무 깔끔 떨지 말자. 소독하느라 돈 들고 시간 들고 건강마저 해칠 수 있다. 건강한 몸과 건강한 사회는 약간의 더러움과 동행한다.


글 출처 : [안종주의 '건강 사회'] 미생물의 건강학


* 맨발로 맨땅을 밟는 맨땅요법이 아토피 치유에 효과가 있는데 미생물에 의한 효과도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토리야마 보육원 역시 맨땅요법을 주 교육테마로 해서 아이들을 천재적인 교육으로 키우기도 하지만 이 보육원 아이들 역시 아토피가 없어졌다고 합니다.

 


정말 멋지고 아름다운 사진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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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사고와 원어라는 말에 현혹되지 마십시오!

 

어느 목사님께서 “히브리사고 *** ** 세미나”를 한다는 광고의 이메일을 반복적으로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인을 히브리인이라고 하고 그들의 언어가 히브리어이며 성경이 히브리어로 기록되었기에 히브리사고로 성경을 보아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가 다 충분히 인정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러한 전제와 더불어 도대체 얼마나 값지고 중요한 세미나이기에 이리도 반복적으로 보내주시는가 싶은 마음에 그 내용을 좀 더 유심히 살펴보기 위하여 그곳과 연관된 이런 저런 정보들을 검색하여 보았습니다.

 

거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성경은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기록되었으며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기록된 것이기에, 성경 속에 기록된 하나님의 뜻과 목적과 계획을 바로 알고 정확히 파악하려면, 먼저 성경원어인 히브리 언어의 구조적 원리를 알아야 하고, 본문의 구조를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이 그 기록한 말씀 속에 이미 해답과 결론을 말씀하셨기 때문에 본문 속에서 이미 기록된 말씀으로 해석해야 진리의 말씀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이상의 내용은 그 누구라도 충분히 동의하고 공감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진행되는 그곳의 강의는 어떠한가 하여 그곳 아카데미과정에서 공개한 창세기12장의 아카데미강의영상을 시청해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강의를 듣다보니 어떻게 이런 수준의 강의를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성경 아카데미라 할 수 있겠으며, 그 미천한 실력의 부끄러움을 모르고 공개 영상으로까지 올려놓았을까 하는 심히 큰 안타까움과 황당함이 밀려왔습니다.

 

‘건강하게 신앙생활 잘 하던 일반 성도님들이 이런 황당한 강의에 노출될 경우 그런 분들에게 얼마나 많은 혼란들이 생겨나게 될까’라는 우려도 생겼습니다.

 

구약의 창세기 12장을 본문으로 하는 그 아카데미과정의 강의영상 중간에, 그 아카데미의 수준과 질이 어느 정도인지를 능히 짐작케 하는 매우 황당한 내용들이 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그 부분을 가능한 한 있는 그대로 녹취하여 아래에 인용해 봅니다.

 

-아 래-

 

(서두 생략) 히브리사고의 전치사는... 히브리동사에서 전치사는 약 20개 정도 되는데.... 목사님들은 히브리 원어를 볼 줄 알아야 되고... 성경에 나오는 중요한 단어는 원어로 보아서 자세히 잘 설명해 주어야 하는데... 중요한 내용들은 제가 다 찾아서 정리해 놓았어요. 요 정도만 원어해도요 절대 부족함이 없어요. 성경에 나오는 중요 단어들은 뜻풀이까지 다 해 놓았으니까... 너무 부담 갖지 마시고... 교인들에게는 한글로...

 

따라서 합시다 “토브”, “토브” 좋은 겁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좋았더라” 그러니까 모세도요 “모세가 장성하여”라고 할 때 그 “장성하여”라는 단어가 “토브”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어요. 그 “장성했다”라는 단어의 원어가 “토브”입니다. “토브” “좋았더라”는 거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성경을 모르면 번역이 그냥 보시기에 “장성하여” 그게 원어가 그런 게 아니에요.

 

예를 들어서 “복음을 위하여 자녀나 전토나 아비를 버린 자~” 그래 되겠지요? 그렇지요? 그럼 생각해 보세요. ‘목사님 목회를 위해서 아버지와 자식을 다 버립니까? 버린 자가 복을 받는데 그러면 다 갔다 버려야 되지요?’ 해석이 잘못된 거에요. 그런 버린다는 뜻이 버린다는 그런 버린다는 뜻이 아니고요 따라서 합시다. “하나님께, 하나님께 바친다.” 그런 뜻이에요.

 

그 번역이 잘못 돼 가지고 그게 본문에 그렇게 되어있으니까. 야 성경을 읽다가요, 근심이 되요. ‘이거 내가 아버지하고 단절해야 되나?, 절교해야 되나?, 버려야 되나?,’ 그게 해석이 잘못 돼 가, 원어에 그렇게 되어 있다니까... 이게요, 본문 읽어가지고 교인들 보니까, ‘여러분 복음을 위하여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본토와 친척을 다 버려라~’ 그런 뜻이 아니에요. 근데 모르면 당할 수밖에 없는 거에요.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원할 때, 여러분 그게 원어가요. 그 말이 맞느냐? 아니에요. “네 영혼의 믿음의” 따라서 합시다. “믿음의 분량대로” (믿음의 분량대로) 그렇다면 우리가요,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한다.” 원래 원어의 뜻은 그게 아닙니다. 모르면 용감해질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우리가 원어의 정확한 의미를 알아서 본문을 잘 바로 전해주고 본문이 사실 원어의 동사의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해야 교인들이 그걸 이해를 하기 쉬운데 자기 생각대로 생각하고 알고 그렇게 우리의 그 사고방식으로 교인들은 생각합니다. 왜? 정리를 안 해주면.. 그런 게 꼭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런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 상-

 

이상의 강의를 듣던 저는 너무도 황당함과 당혹감을 느껴야 했습니다. 모름지기 신학교에서 정식으로 신학공부를 하고 필수과목인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이수한 목회자라고 한다면 당연히 성경의 원어를 알아야 하고, 성경원어에 입각한 정확한 설교를 해야 한다는 강사의 대전제는 당연히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강의하시는 그분의 수준을 보아하니, 제가 보기에 히브리어 원어의 중요성과 의미를 그토록 강조하며 이 강의를 진행하는 강사 자신이 오히려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거의 모르시는 수준이시기 때문입니다. 단지 히브리어와 헬라어의 알파벳과 단어읽기 정도의 수준에 머무르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그 정도의 수준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분이, <“모세가 ‘장성하여’”에서 “장성하여”라고 할 때 그 “장성하여”라는 단어가 “토브(b/f)”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고, 그 “장성했다”라는 단어의 원어가 “토브”이기에 “장성하여”라는 번역이 잘못된 것이고, 원어가 그런 게 아니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분이 말씀하고 있는 원어성경이란 것이 도대체 어떤 원어성경인지가 사뭇 궁금합니다.

 

맛소라 본문(M.T)에 의거한 히브리어성경 BHS로 출애굽기 2:11 “모세가 장성한 후”를 확인해본 결과 그분의 말씀대로 “토브(b/f)”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토브”도 아니었습니다.

 

“토브”와는 전혀 연관성이 없는 “성장하다, 크게 되다, 커지다, 강해지다, 찬양하다.”라는 뜻의 가달(ld'G:)이었습니다. 혹시 모세가 아닌 다른 사람과 혼동하여 인용한 것일 수도 있기에 다른 사람과 연관하여 찾아보았으나, 실제로 “토브”라는 단어가 “장성하여”라고 쓰여진 예나 그렇게 잘못 번역되어진 예는 성경전체에 단 한 구절도 없었습니다.

 

<“복음을 위하여 자녀나 전토나 아비를 버린 자~”(막 10:29)도 번역과 해석이 잘못된 것이고, 버린다가 “하나님께 바친다.”라는 뜻이라>고 하셨는데, 정말 그런 것일까요? 물론 삶의 실제적인 적용을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을 버린다’는 이야기는 ‘하나님께 ~을 바친다.’는 의미입니다.”라고 설명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복음을 위하여 ~을 버린 자”라는 번역과 해석이 잘못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여기에서 “버린다”로 번역된 헬라어는 “아피에미(ajfivhmi)”로 “내보내다, 버려두다, 용서하다.”라는 기본의미를 가지고 있고, 신약성경에서 약 143회 나오며, '가게하다, 보내버리다, 포기하다, 취소하다, 탕감하다, 용서하다, 버리다, 버려두다'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었지 “하나님께 바친다.”로 사용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번역과 해석이 결코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강사는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요삼1:2) 원할 때, 원어로는 원래 그런 뜻이 아니고 ‘네 영혼의 믿음의 분량대로’라는 의미”>라고 주장하였는데, 그 강사가 말하는 원어는 도대체 어떤 원어를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누구나가 인정하는 신약공인원전인 Stephens와 Nestle판 모두가 공히 “peri; pavntwn eu[comaiv se eujodou'sqai kai; uJgiaivnein, kaqw;" eujodou'taiv sou hJ yuchv."로 되어있습니다.

 

헬라어를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하여, 이 구절의 단어들을 원어순서대로 배치하면 “~에 대하여. 범사. 내가 간구하노라. 네가. 잘 되기를. 그리고. 강건하기를, ~처럼. 잘 되는 것. 너의. 그. (영)혼이”로 “너의 (영)혼이 잘 되는 것처럼 네가 잘 되기를 그리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입니다.

 

개역개정의 번역만으로도 거의 흠잡을 데 없는 좋은 번역입니다. 성경원어 그 어디에도 “네 영혼의 ‘믿음의 분량대로’”라는 의미는 나오지 않습니다.

 

도대체 어떤 단어가 “믿음의 분량대로”를 뜻하는 것인지 참으로 황당합니다. 모르면 용감해질 수밖에 없다는 그분 자신의 말처럼 그분 자신이야말로 원어를 몰라도 너무 모르기에 그토록 황당한 발언을 그토록 용감하게 발설할 수 있는 것일까요?

 

그 강사의 주장처럼, 목회자들은 성경원어의 정확한 의미를 알아서 성경본문의 정확한 의미들을 성도들에게 바로 잘 전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히브리사고의 관점을 잘 이해하고 적용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신학대학과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생들이 피나는 노력으로 히브리어, 헬라어, 고대근동문학, 예수시대의 예루살렘 등등 올바른 성경의 해석과 적용을 위한 여러 분야들을 공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히브리사고와 히브리어, 헬라어의 중요성을 그토록 강조하고, 또 히브리사고 성경세미나와 아카데미 등을 운용하고 있는 그곳의 강사가 성경원어를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여러 목회자들과 순진한 성도들을 모아놓고, 이상과 같은 전혀 엉뚱한 주장들을 그토록 용감하게 펼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하도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그리고 혹여라도 그런 것에 현혹되시는 분들이 안계셨으면 하는 마음에 이런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 글은 히브리사고와 성경원어와 연관된 모든 곳들이 무조건 다 잘못되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다만 본교회의 담임목회자를 통하여 객관적으로 검증받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저런 곳들에 함부로 다니는 위험성을 경계해야 함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입니다.

 

정말 본교회의 담임목회자가 검증하여 객관적으로 인정할 만한 건전한 히브리사고와 성경원어연구라고 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저를 위시하여 목회현장에서 힘들게 힘들게 전도하여 성도들을 양육하는 목회자들에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황당함과 어려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 가운데 하나가, 전도하여 복음으로 양육한 후 착실하게 신앙생활을 성실하게 잘하던 성도가 어느 날 갑자기 눈빛이 변하고 교회출석을 등한히 하다가 교회를 떠나가게 되어 그 원인을 알아보니, “히브리식사고 성경공부”가 어떻다느니, “성경원어의 의미”가 어떻다느니 하면서 엉뚱한 소리들을 한다는 것입니다.

 

자세히 알아보면 정말로 그 성도가 성경의 원어를 제대로 잘 알게 되었고, 본교회의 목회자가 메시지를 잘못 전해서가 아니라, 이상에 소개한 것처럼, 기존의 한글성경의 번역이 잘못되었다느니, 해석이 잘못되었다느니, 원어의 의미는 그렇지 않다느니 하는 식의 과장되거나 근거 없는 주장들에 현혹이 되어, 그런 곳에서만 정확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는 착각과 미혹에 빠져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 교회를 개척하여 목회하고 있는 담임목사의 한 사람으로,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성도님들께 진지하게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요즈음 우리 주변에 히브리사고가 어떻다느니, 성경원어가 어떻다느니 하는 식의 그럴듯한 말들에 현혹되지 마시고, 개역개정, 새번역, 현대인의 성경 등등 여러 우리말 성경번역들만으로도 얼마든지 건강하고 복된 신앙생활을 하기에 충분하니, 우리말로 번역된 성경들부터 열심히 읽으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혹여라도 좀 더 깊고 정확한 의미들을 알고 싶은 부분들이 생기신다면 본교회의 담임목사님께 정중하게 여쭈시라는 것입니다. 적어도 담임목회를 하실 정도의 목사님들이시라면 성도님들께서 여쭙는 부분에 대하여 충분히 설명해주실 수 있는 기본들을 충분히 갖추신 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설혹 만의 하나라도 담임목사님께서 직접 모르시는 부분이 있을지라도, 배고파하는 자식이 생기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식의 배고픔을 해결해주고 마는 부모님처럼, 담임목사님의 주변 동역자들이나 신학교 스승님들께 정식으로 도움을 요청해서라도 그러한 문제들을 충분히 해결해 주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부디 교회 밖에서 이렇게 저렇게 진행되는 히브리사고와 성경원어라는 그럴 듯한 말들에 너무 쉽게 현혹되는 일들은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성경원어'라는 말에 현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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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병천 카페 [성령전인치유목회] 원문보기   글쓴이: 이병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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