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속이기

 창세기 27장은 아버지를 속이는 자의 이야기입니다. 이삭이 나이 들고 눈이 멀어졌습니다. 죽기 전에 맏아들 에서를 축복하기로 마음먹고 에서에게 사냥한 고기로 별미를 만들어달라고 청합니다. 에서는 아버지의 축복을 받는다는 희망에 들떠 사냥을 나갑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이야기를 엿들은 어머니 리브가는 작은 아들 야곱을 불러 에서가 돌아오기 전에 아버지에게 들어가 아버지의 축복을 받으라고 말합니다. 야곱은 대답합니다. “형 에서는 털사람이요 나는 매끈매끈한 사람인데 형이라고 속이고 아버지에게 나아갔다가 축복은커녕 저주를 받을 겁니다.” 그러나 리브가는 저주는 자기가 받을 테니 너는 아버지에게 들어가 축복을 받으라고 합니다. 그리고 야곱에게 염소를 잡아오라고 시킵니다. 그 염소를 잡아 별미를 만들고 염소가죽으로 야곱의 매끈한 목덜미와 손등을 꾸미고 형 에서의 옷을 입혀서 아버지 이삭에게 들여보냅니다.

 야곱이 염소고기를 들고 아버지 이삭에게 들어갑니다. “내 아버지여.” “내가 여기 있노라. 네가 누구냐?”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별미를 가져왔나이다.” “어떻게 이같이 속히 잡았느냐? 내 아들아 가까이 오라. 과연 내 아들 에서인지 만져보자.” 아버지 이삭이 야곱의 손을 잡아봅니다. “음성은 야곱의 음성인데 손을 만져보니 에서의 손이로구나. 옷 냄새를 맡아보니 내 아들 에서가 분명하구나.” 금방이라도 탄로 날 것 같은 아슬아슬한 가운데 아버지 이삭은 결국 속아 넘어가서 에서인 줄 알고 야곱에게 축복을 하게 됩니다.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과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가 너의 것이요, 만민이 너를 섬기고 네게 굴복할 것이며, 너는 형제의 주가 되고,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을 것이라....” 그야말로 하늘과 땅의 온갖 좋은 것을 다 부어주는 축복을 합니다. 이렇게 야곱은 아버지 이삭을 속여서 축복을 받고 나갑니다.

 뒤늦게 사냥에서 돌아온 에서는 사냥한 고기로 별미를 만들어 가지고 아버지에게로 들어갑니다. “아버지, 이 별미를 잡수시고 마음껏 이 아들을 축복하소서.” 깜짝 놀란 아버지 이삭이 묻습니다. “너는 누구냐?” “저는 에서,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입니다.” 이삭이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말합니다. “아까 온 그는 누구였단 말인가? 내가 이미 축복을 하였으니 그가 복을 받을 것이다.” 에서는 땅을 치며 통곡을 합니다. “야곱이 속였습니다.” 아버지를 붙잡고 소리쳐 비통하게 웁니다. “아버지, 내게도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아버지의 빌 복이 그 뿐입니까?”

 우리는 이 장면을 읽으며 여러 가지 의문을 갖게도 됩니다. 어째서 하나님은 야곱을 이렇게 속임수를 통하여 축복 받게 하시고 야곱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이루신 것일까요? 하나님은 이렇게 속여서 축복 받은 자를 사랑하신 것일까요? 하나님은 불의를 허락하신 것일까요?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보여주는, 곧 예수님을 예표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성경은 그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여자의 후손을 약속하셨습니다. 여자의 후손이지 남자의 후손이 아닙니다. 후사를 정하는 것은 남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여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아들을 내어주시는 하나님의 고통과 함께 잉태의 고통을 당하며 아들을 낳는 여자, 생명의 유업을 담당하는 여자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라고 해서, 남편이라고 해서 어머니에게서 아내에게서 강제로 아들을 빼앗아 후사로 삼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여자에게서 여자의 뜻과 관계없이 강제로 아들을 빼앗아 그리스도의 계보로 삼으시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들의 자격이나 후사를 세우는 것은 여자에게 그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지한 이삭은 그것을 무시하고 제 마음대로 에서를 택하려 하였고 리브가는 계략으로 이를 저지하고 자신이 택한 야곱이 축북을 받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리브가의 계략의 편에 서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장면 자체가 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린양의 피로 죄를 가리고 주님의 의의 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모습 말입니다. 모사가 된 리브가는 성령님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알려주시고 비밀을 가르쳐 주시며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십니다. 애쓰고 힘써서 사냥하여 잡아오는 야생동물이 아니라 염소, 곧 어린양의 살과 피를 가지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맏아들의 이름, 곧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아갑니다. (그러고 보니 ‘에서’가 ‘예수’와 발음이 비슷하지 않습니까?) 어린양의 가죽으로 꾸며서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자는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야 합니다. 맏아들의 옷, 눈 보다 더 흰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고 나아갑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속아 주실 것입니다. 어루만져 주시고 끌어안아 주시고 하늘과 땅의 모든 좋은 축복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이삭은 모르고 속았지만 하나님은 다 알고 속아주실 것입니다.

 그러시려고 아들을 내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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