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우주의 종말은 어떻게 될까?

빅뱅으로 우주가 탄생한 지 137억년이 지났다.
앞으로 수백억년, 수천억년, 수조년, 수경년, 수해년......,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이 지나면 우주는 어떻게 될까?
우주의 종말에 대하여는 몇 가지 이론이 있다.

- 종말은 없다. 우주는 영원히 존재한다. 정상우주론
- 영원히 죽음을 맞는다. 우주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우주내부의 모든 존재가 영원한 평형상태에 도달한다. 빅 프리즈(Big Freeze), 빅 립(Big Rip).
- 언젠가는 우주가 팽창을 멈추었다가 도로 수축한다. 그리고 한 점에 모여 붕괴한다. 빅 크런치(Big Crunch)
- 빅뱅과 빅 크런치가 영원히 반복된다. 진동우주론(振動宇宙論)

또한 우주의 끝이 있는가, 없는가, 즉 열린 우주냐, 닫힌 우주냐에 따라 우주의 종말을 둘로 나눈다.

1) 열린 우주의 종말

열린 우주는 공간곡률이 0 또는 음수인 공식에 의한다.
만일 우주가 끝없는 우주, 열린 우주라면 우주는 영원히 팽창하여 열사를 맞이한다. 열사(熱死)란 ‘열이 죽은 상태’, 곧 우주에 생명이나 활동을 이룰 수 있는 에너지가 완전히 고갈된 상태, 더 이상 변화될 수 없는 상태, 즉 엔트로피가 최대가 된 상태를 말한다. 모든 것이 분해되어 소립자들만 남은 ‘희미한 우주’가 된다는 뜻이다.
만일 우주가 열린 우주라면, 그래서 최종적으로 열사가 될 우주의 종말이 어떻게 진행될지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대략 다음과 같이 될 것으로 본다.

① 태양과 같이 작은 항성들은 적색거성을 거쳐 백색왜성으로 일생을 마친다. 그러나 거대한 항성들은 중성자별을 거쳐 초신성 폭발을 일으키며 우주공간에 물질들을 뿌린다. 더 큰 별은 블랙홀이 된다.
초신성으로부터 흩어진 물질들은 다시 항성을 이루고 세월이 지나 적색거성을 거쳐 백색왜성이 된다. 이런 식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백색왜성들과 블랙홀들만 남게 된다. 결국은 더 이상 항성이 생겨나지 않게 된다. 이러한 항성정지상태가 되기까지는 100,000,000,000,000 년(100조 년)이 걸릴 것이다.

② 블랙홀들은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며 성장한다. 백색왜성들도 결국은 블랙홀에 잡혀 빨려 들어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 블랙홀들이 서로 합쳐지고 거대한 은하들을 삼켜 결국은 거대 블랙홀만 남게 될 것이다. 블랙홀은 그 주위에 강착원반을 형성한다. 강착원반은 X선이나 감마선 같은 방사선을 방출하는데, 이 시기에 우주공간에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방사선만 관측된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1,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년(동그라미 30 개, 100양 년?)이 걸릴 것이다.
(천, 만, 억, 조, 경, 해, 자, 양, 구, 한, 정, 재, 극.......)

③ 블랙홀들은 은하단 규모로 만들어질 것이다. 하나의 블랙홀이 우주공간의 모든 은하들을 다 삼킬 수는 없고 가까이에 있는 은하계 수 십 개 정도, 즉 은하단을 삼키고는 성장을 중지할 것이다. 그런데 그 사이에 우주는 더욱 팽창한다. 은하와 은하 사이, 블랙홀과 블랙홀 사이가 더욱 멀어졌다는 뜻이다. 그런 다음 우주가 더욱 팽창하게 되면 블랙홀 사이의 간격도 더욱 멀어지고 그 멀어지는 속도는 점점 빨라져서 결국은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블랙홀들은 서로 멀어지게 될 것이다.

④ 우주는 결국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계속 끝없이 팽창한다. 우주공간에 남아있던 모든 열이 사라지고 온도가 계속 내려가면 블랙홀의 열이 계속 빠져나가며 질량을 잃게 된다. 결국 블랙홀이 질량을 잃고 점점 작아져 증발하게 된다.
우주는 지금 우주의 10,000,000,000,000,000,000 배(1천경 배)로 부피가 늘어난다.
작은 블랙홀이 증발하는 데는 1에 동그라미 67개를 붙인 년수가 걸리고 은하 규모의 거대블랙홀이 모두 증발하는 데는 1에 동그라미 100개(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년이 걸릴 것이다.

⑤ 결국 우주는 무한하게 팽창하고 블랙홀들도 모두 증발되고 우주에는 블랙홀들이 방출한 광자만이 남게 된다. 우주가 무한히 팽창하게 되므로 온도도 절대온도 영(零)도에 무한히 가깝게 냉각된다. 이 극저온상태를 빅 프리즈, 또는 빅 칠(Big Freeze, Big Chill)이라고 부른다.
우주물리학의 대통일이론에 따르면 중입자(바리온)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양성자도 붕괴하게 된다. 결국 모든 물질이 다 흩어져 사라지게 되는 셈이다.
이렇게 우주는 종말을 맞게 된다.
영원의 너머로 영원히 아득히........

2) 닫힌 우주의 종말

닫힌 우주는 공간의 곡률이 양수라는 가정에 의한다. 즉 공간이 유한하다는 가정이다. 공간이 유한하기 때문에 우주가 무한히 팽창할 수는 없고 따라서 언젠가는 팽창을 멈추었다가 점점 수축하게 될 것이다. 벅색왜성과 초신성폭발, 블랙홀의 생성은 일어나겠지만 그들은 이합집산을 거쳐 결국 한 데 모이게 되고 결국은 빅 크런치(Big Crunch)로 끝나게 될 것이다.

3) 우주는 그렇게 끝날 것인가?

우리는 짧게나마 우주가 어떻게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인가를 살펴보았다.
우주는 그렇게 끝날 것인가?
겨우 80년 살다 갈 인간이 뭐 그런 생각할 필요 있느냐고?
아무튼......,
그러나 우주의 종말에 관하여 우리는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우선 인간의 한계, 과학기술의 한계이다.
우주과학자들이 지금 끝없는 우주를 관측하고 있지만 그 관측은 사실 지금의 것이 아니다.

우주과학자들은 적색편이현상을 관측하고 다시 10년이 지난 다음 재차 관측하여 우주의 팽창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말하지만 100억 광년이 넘는 우주의 반대편을 관측하였다면 그 관측은 어쨌든 100억 년 전의 일이다. 그 100억년이 흐른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 사실 우리는 모른다.

또 기억해야 할 것은 우주의 종말에 관한 이러한 모든 예측과 이론과 계산은 시간과 공간이 영원불변, 절대적인 것이라는 전제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간과 공간이 원래부터 영원 전부터 존재하고 있었고 또한 영원히 계속될 절대적인 것이라면 이러한 지구의 종말예상은 맞아 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시공이 절대적인 것이었다면 빅뱅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하였을 것이라는 것을 이 대장쟁이는 지적하고 싶다.
어째서 과학자들은 시간과 공간을 우주의 출발, 즉 빅뱅 쪽으로는 닫아놓고 종말 쪽으로는 열어놓는가?
우주물리학자들은 논리적 모순에 빠져 있다.
빅뱅에 대하여는 시간과 공간이 그 때 시작되었다고 말하고, 우주의 종말에 대하여는 시간과 공간이 영원절대불변하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모순이요 무책임한 편의주의이다.

시간과 공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임이 분명하다.
빅뱅이론이 맞다면. 과학자들도 인정하듯이 시간과 공간이 그 때에 시작되었다면 그것은 창조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다면 그 시간과 공간은 그것들을 지으신 하나님의 주관 하에 있을 것이며, 그것들이 유한하든지 혹은 무한하든지도 하나님의 주관 하에 있을 것을 믿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정하실 수도 있다.
우주가 팽창한다 해도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공간의 한계까지만 가능할 것이요 영원히 팽창하려고 해도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까지만 가능하지 않겠는가?
시간과 공간의 출발로 이루어진 우주를 시간과 공간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어찌 그 뜻대로 주관하지 못 하시겠는가?

우주과학자들은 동그라미를 수 십 개씩 그려 넣어서 우주가 종말을 맞이한다 말하고 또 동그라미를 100 개씩이나 그려 넣어서 우주를 뭉개고 있다.
피조물임에 분명한 시간과 공간에다 영원절대성을 부여하여 그것들을 하나님의 위에다 올려놓고 그것으로 우주를 찢고 뭉개는 우주물리학자들은 어쩌면 하나님조차 그렇게 찢고 뭉개버리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겠다.
마음에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것이 모든 죄인들의 속성이기에.......


My Top Ten 청교도 저자들[1] (1부)

 

 

 

 

저자: 조엘 비키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총장 및 조직신학 & 설교학 교수)

번역: 태동열 (미국 칼빈 신학교 조직신학 박사과정 중)

 

 

지난 40여년간 필자가 청교도 문학 애호가들로부터 받아온 가장 일반적인 질문은,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청교도 저자들은 누군가?”이다. 여기에 필자의 대답이 있다.   

 

 

1. 안토니 벌기스(Anthony Burgess, 1664년 사망). 필자가 특히 좋아하는 청교도는 최근 읽어온 안토니 벌기스다. 그는 1635년에서 1662년까지 셔튼 콜드필드(Sutton Coldfield) 시의 교구목사였다. 필자의 생각에 그는 지금껏 가장 저평가된 청교도다. 한때 나는 이안 머레이(Iain Murray)에게 왜 벌기스의 이름이 최고의 청교도 작품들에 대한 19세기 전집들에 들어있지 않았는 지에 관해 물어 보았다. 그는 대답하기를 벌기스가 그 재발행본들에서 가장 극명하게 누락된 경우라고 했다.

 

         15년(1646-1661)이란 시간에 걸쳐 벌기스는 주로 자신의 설교와 강의에 기초한 책들을 적어도 12권 이상 썼다. 그의 작품들은 아리스토텔레스, 세네카, 어거스틴, 토마스, 루터, 그리고 칼빈 등에 대해 그가 학문적으로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는 적절하게 헬라어와 라틴어 인용문들을 사용하면서도 청교도 설교의 특징인 간결한 문체로 추론했다. 그는 교양 있는 학자였고, 빈틈없고 따뜻하며 경건한 작품들을 창작한 경험적 설교자였다.  

 

         벌기스의 가장 뛰어나고 가장 방대한 작품인 『영적 정련: 참된 회심과 거짓된 회심에 대한 면밀한 분석 (Spiritual Refining: The Anatomy of True and False Conversion)』 (1652-1654) ? 두 권의 책이고 1,100쪽 분량 ? 은 “경험적 종교에 대한 가장 탁월한 분석”이라 불리운다. 『은혜와 확신에 관한 논문 (A Treatise of Grace and Assurance)』 이란 부제(副題)가 붙여진 첫 권은 120편의 설교들을 담고 있고; 『죄, 그 원인들, 차이점들, 완화들, 그리고 악화들에 대한 논문 (A Treatise of Sin, with its Causes, Differences, Mitigations and Aggravations)』은 42편의 설교들을 담고 있다.

 

         벌기스는 시편 4:6-8에 대한 열 세 편의 설교에 기초한 『경건한 사람의 선택 (The Godly Man’s Choice)』이란 책에서 귀한 것들을 천한 것들에게서 능숙하게 분리한다. 요한복음 17장에 대한 145편의 설교에서의 세밀한 주해, 고린도전서 3장에 대한 300쪽 분량의 주석, 그리고 고린도후서 1장에 대한 700쪽 분량의 주석은 마음을 따뜻하게 해준다. 벌기스의 주요 작품들 중 몇 가지는 논쟁적이다. 런던에 있던 로렌스-쥬리(Lawrence-Jewry) 교회에서 행해졌던 29번의 강의에 기초한 그의 첫 번째 주요 논문인 『판결 법 (Vindiciae Legis)』(1646)은 로마가톨릭, 알미니안, 소시니안, 그리고 반율법주의자들에 반대하여 도덕법과 행위언약과 은혜에 대한 청교도 견해를 변호했다. 2년 후, 벌기스는 칭의에 관한 그의 첫 번째 책에서 백스터(Baxter)가 추가된 그 동일한 논적들을 반대하는 글을 썼다. 그가 백스터의 저작을 비판한 이유는 그것이 신적 은혜가 인간의 행위와 협력(cooperation)한다는 내용을 포함하는 칭의의 과정을 주장함에 있어서 알미니안적 경향성을 띠기 때문이다. 6년 후(1654)에 나타나는 칭의에 대한 그의 두 번째 책은 하나님의 본래적 의와 전가된 그리스도의 의를 논한다. 그 두 권의 책은 75편의 설교를 담고 있다. 555쪽 분량의 그의 저서, 『원죄의 교리 (Doctrine of Original Sin)』(1659)는 재세례론자들을 논쟁의 장으로 끌어들였다.

 

 

2. 토마스 굿윈 (Thomas Goodwin, 1600-1679). 20여년간 필자가 각별히 좋아하는 청교도 작가는 토마스 굿윈이었다. 가장 최근에 Reformation Heritage 출판사에 의해 (12권으로) 재판된 굿윈의 12권의 저작들은 체험적 개혁주의 신학의 감춰진 보물(treasure trove)이다.

 

         굿윈의 성경주석은 방대하다. 그는 성경의 곳곳을 샅샅이 훑는다. 그의 저서에 대한 첫 번째 편집자들은 그의 저작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는 자신이 자주 표현했던 것처럼, ‘그 주제들을 철저히 연구하기 위하여’ 논점들의 밑바닥으로 뛰어 들어가는 천재적 소질을 지녔고, 문제의 심층부로 파고듦이 없이는 피상적인 지식으로 자신의 논리를 펴지 않았다.” 굿윈의 저작을 읽기 위해서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하지만, 심오함과 장황함과 더불어, 그는 따뜻하고 체험적인 놀라운 지각을 제공해 준다. 독자의 인내심은 충분히 보상받게 될 것이다.

 

야고보서 1:1-5에 관한 네 편의 설교를 담고 있는 『인내와 그 온전한 역사 (Patience and Its Perfect Work)』와 같은, 굿윈의 더 짧고 더 실천적인 저작들 중 어떤 것을 읽는 것으로 시작하라. 이 책은 굿윈의 개인 서재의 대부분이 불타버린 후에 쓰여졌다 (굿윈 전집, 제2권 429-467쪽). 그것은 순종의 정신에 대한 많은 실천적 교훈을 담고 있다. 그 다음에, 영적인 고통가운데 있는 성도들을 향한 굿윈의 목회적 관심을 보여주는 세 경험적 논문들을 제공해 주는 『영적 문제가 해소된 어떤 선별된 사례들 (Certain Select Cases Resolved)』을 읽으라. 각각의 논문은 신자의 영혼 속에 있는 특별한 영적전투들을 다룬다: (a) “어둠 속을 걷고 있는 빛의 자녀 (A Child of Light Walking in Darkness)”는 이사야 50:10-11 말씀에 근거해서 영적으로 침체된 이들을 격려한다 (굿윈 전집, 제3권 241-350). 그 부제(副題)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들을 양심의 고통가운데 남겨 두시는 이유들과 사례들과 목적들을,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떻게 걸어가야 하는가에 대한 지침들과 함께, 보여주는 논문 (A Treatise Shewing The Causes by which, the Cases wherein, and the Ends for which, God Leaves His Children to Distress of Conscience, Together with Directions How to Walk so as to Come Forth of Such a Condition).”는 그 내용을 요약하고 있다. (b) 시편 85:8에 기초한 “기도의 회복 (The Return of Prayers)”은 독특하게 실천적인 작품이다. 그것은 “우리의 기도들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들”을 확인하는 데 도움을 준다 (제3권 353-429). (c) 요한복음 15:1-2에 근거한 “그리스도인의 영적성숙에 대한 심리(審理) (The Trial of a Christian’s Growth)”(제3권 433-506)는 성화, 특히 옛 본성의 죽임(mortification)과 새 본성의 살아남(vivification)에 중심을 두고 있다. 이것은 영적 성숙에 관한 작은 고전(mini-classic)이다.    

 

 

3. 존 오웬 (John Owen, 1616-1683). 이 저자의 16권의 저작들, 7권의 히브리서 주석, 그리고 『성경 신학 (Biblical Theology)』이라는 제목의 책은 학문적인 서재를 구성한다. 1850-1855년에 재판(Goold 판)된 16권의 전집은 다음과 같은 것을 담고 있다:

 

교의적(1-5권). 이 다섯 권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들은 『그리스도의 인격과 영광에 대하여 (On the Person and Glory of Christ)』 (제1권), 하나님과의 교제 (Communion with God)』 (제2권), 『성령론 (Discourse on the Holy Spirit)』 (제3권), 그리고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 (Justification by Faith)』 (제5권)이다.  

 

실천적(6-9권). 여기서는 『죄 죽임, 유혹, 시편130편 주해 (Mortification of Sin, Temptation, Exposition of Psalm 130)』 (제6권)과 『영적-마음자세 (Spiritual Mindedness)』 (제7권)이 특별히 가치 있다. 8권과 9권은 설교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책들은 교양 있는 평신도에게 적합하고 광대한 실천적 적용들을 담고 있다.

 

논쟁적(10-16권).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의 죽음의 죽음 (The Death of Death in the Death of Christ)』과 『하나님의 공의 (Divine Justice)』 (제10권), 『성도의 견인 교리 (The Doctrine of the Saints’ Perseverance』 (제11권), 『복음적 교회의 참된 본질 (True Nature of a Gospel Church)』과 『성경의 신적 기원 (The Divine Original of the Scriptures』 (제16권)이 주목할 만하다. 이 부문에 있는 몇몇 책들(특히 알미니안주의와 소시니안주의에 반대해 쓰여진 책들)은 역사적 중요성을 지니지만 신학자가 아닌 사람에겐 지루하기 쉽다.  

 

오웬의 광범위한 주제들, 통찰력 있는 글, 철저한 교리적 연구, 심오한 신학, 그리고 마음에서 우러나는 경건한 접근법은 왜 필자와 수많은 다른 이들이 그의 작품을 그처럼 높게 평가하는 지에 대한 이유를 말해준다. 오웬은 가끔씩 장황하기도 하지만 결코 메마르지는 않다. 그의 작품들은 종종 “청교도의 왕자 (Prince of the Puritans)”라 불리우는 이에 의해 남겨진 부유한 유산을 탐구하기 원하는 모든 이들에게 헤아릴 수 없는 가치가 있다.

  

확신(assurance)에 관한 오웬의 견해를 연구하면서 1985년 여름을 보내고 있었을 때, 필자는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 필자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두 권의 책은 시편 130편(특히 4절)에 대한 오웬의 주해와, 신자와 삼위일체의 개별적 위격들 사이의 체험적 교제에 초점을 맞춘 그의 탁월한 『하나님과의 교제 (Communion with God)』였다.

 

 


[1] 헤리티지 개혁교단 (Heritage Reformed Congregations)에서 발행하는 공식 교단 매거진 The Banner of Sovereign Grace Truth, vol. 24, no 1 (January/February 2016): 4-6에 실린 내용으로 번역 및 게재 허락을 맡고 게시 합니다. 저작권은 The Banner of Sovereign Grace Truth와 저자에게 있습니다.

 

 

http://reformedjr.com/board05_02/3998

 

출처: 영적분별력/진실

가져온 곳: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My Top Ten 청교도 저자들 (2부)

 

 

 

 

저자: 조엘 비키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총장 및 조직신학 & 설교학 교수)

번역: 태동열 (미국 칼빈 신학교 조직신학 박사과정 중)

 

 

 

4. 조나단 에드워즈 (Jonathan Edwards, 1703-1758). 1983년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셈 로건(Sam Logan) 교수가 가르쳤던 한 수업은 필자로 하여금 두 권 분량의 에드워즈의 책 대부분을 읽게끔 만들었다. 에드워즈의 설교문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확신과 위로를 필자에게 주었다. 에드워즈는 정말 탁월한 명문장가이다!

 

 

여섯 권 이상 분량인 에드워즈의 글들은 지난 오십 년 동안에 출판되었다. 그의 저서들 중 필자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두 권의 책은, 영적 삶에 관한 미국 역사에서 탁월한 고전으로 자주 주목받는 『신앙감정론 (Religious Affections)』과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에 대한 에드워즈의 설교들이다. 초기에 필자는 『데이빗 브레이너드의 생애와 일기 (The Life and Diary of David Brainerd)』에 큰 영향을 받았다.

 

필자는 에드워즈의 글들 도처에 나타나는 “적합성 (fittedness)”에 대한 에드워즈의 생각에 감명을 받았고 그 생각이 리더십과 의사결정을 위한 훌륭한 도구라는 점을 발견했다. 에드워즈는 이 적합성에 대한 자신의 사고의 토대를 하나님께 두었다: 항상 적합하신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들이 삶의 매 순간 그분께 가장 큰 영광을 돌리기 위해 적합한 것을 행하길 원하도록 인도하실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반드시 다음과 같은 질문을 우리가 겪는 모든 결정과정에서 해 보아야 한다: 성경말씀에 입각한 하나님의 견지에서 볼 때, 무엇이 가장 적합할까? 무엇이 하나님께 가장 큰 영광을 돌릴 수 있을까?

 

 

5. 윌리엄 퍼킨스 (William Perkins, 1558-1602). 그의 지성, 경건, 저술, 영적 상담, 그리고 의사소통 기술들과 결합된 교회개혁에 관한 퍼킨스의 비전은, 개혁주의적이고 경험적인 진리와 자기성찰을 강조하는 17세기 청교도의 분위기와, 로마 카톨릭과 알미니안주의에 반대하는 청교도의 주장을 위한 분위기가 조성되도록 도왔다. 수사학자, 해석자, 신학자, 그리고 목회자로서의 퍼킨스는 청교도 운동의 원리를 수립한 인물이 되었다. 퍼킨스가 죽을 무렵 영국에서는, 그의 책들의 판매량이 칼빈, 베자, 그리고 불링거의 책들을 합한 판매량보다 많았다. 포터(H.C. Porter)는 퍼킨스가 “전국민의 경건을 주조했다”고 말했다. 그러기에 퍼킨스가 청교도주의의 아버지로 자주 불려지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퍼킨스가 필자에게 최초로 영향을 준 때는 필자가 박사논문을 위해 신앙의 확신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을 때였다. 그후 십 년 뒤, 청교도 신학생들을 위한 짧은 설교 교과서였던 그의 『설교의 기술 (Art of Prophesying)』은 필자가 청중들의 다양한 마음의 상태에 따라 어떻게 메시지를 전해야 할지를 가르쳐 주었다. 퍼킨스를 향한 필자의 고마움은 해가 갈수록 더해갔다. 필자는 이번에 출판되는 두 권을 포함하는 열 권 분량의 퍼킨스 전집 재발행에 데렉 토마스(Derek Thomas)와 더불어 편집장 역할을 감당하면서 그의 작품들을 읽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6. 토마스 왓슨 (Thomas Watson, 1620-1686). 왓슨은 필자가 십대 중반에 회심한 이후 매우 좋아했던 청교도였다. 필자는 그의 『신학의 주요주제들 (A Body of Divinity)』을 매일의 경건생활로 읽었다. 그의 『선을 위한 모든 것들 (All Things for Good)』은 1980년대 초반 심한 고통의 시간을 보내던 필자의 불안한 영혼에 굉장한 위로가 되었다. 그의 매력적인 글들은 깊은 교리, 명료한 표현, 마음에서 우러나는 영성, 적절한 적용, 그리고 다채로운 예화들을 담고 있다. 필자는 그의 간결하고 인용할 가치가 있는 작문 스타일을 매우 좋아한다.

 

 

7. 토마스 브룩스 (Thomas Brooks, 1608-1680). 브룩스는 필자가 십대 후반 때 특히 좋아하던 청교도였다. 그의 저서들, 『사탄의 간계에 맞서는 귀중한 방지책 (Precious Remedies Against Satan’s Devices)』, 『아픈 지팡이 아래 있는 무언의 그리스도인 (The Mute Christian Under the Smarting Rod)』, 『지상에서의 천국: 확신에 대한 논문 (Heaven on Earth: A Treatise on Assurance)』, “헤아릴 수 없는 그리스도의 부요함 (The Unsearchable Riches of Christ)” (제3권), “기독교의 면류관과 영광 (The Crown and Glory of Christianity)” (제4권) ? 히브리서 12:14절에 관한 58편의 설교로 구성된 ‘거룩’에 대한 고전 ? 모두가 필자를 돌봐 주었다. 브룩스의 저서들은 정말 책장 넘기기가 바쁠 정도로 흥미진진한 책들이다. 그를 통해 필자는 그리스도 인한 기쁨의 눈물과 죄로 인한 슬픔의 눈물을 종종 흘렸다. 그의 글은 영적인 생명력과 힘을 발산한다.

 

 

8. 존 플레블 (John Flavel, 1628-1691). 조나단 에드워즈를 제외하면, 그 어떤 청교도 목회자나 신학자도 설교를 준비하는 젊은 사역자로서의 필자를 위해 플레블보다 더 큰 도움이 된 이는 없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한 그의 설교 또한 필자의 영혼에 크나큰 은혜를 끼쳤다. 청교도 문학의 애호가 중 플레블의 걸작들인 『섭리의 신비 (The Mystery of Providence)』, 『마음 지키기 (Keeping the Heart)』, 『삶의 원천 (The Fountain of Life)』,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는 그리스도 (Christ Knocking at the Door of the Heart)』, 그리고 『은혜의 방법 (The Method of Grace)』을 통해 은혜를 입지 않은 이가 있을까?

 

 

9. 존 번연 (John Bunyan, 1628-1688). 필자가 아홉 살이었고 처음으로 죄에 대한 확신의 시기를 보냈을 때, 필자는 번연의 『악인씨의 삶과 죽음 (The Life and Death of Mr. Badman)』을 읽었다. 필자의 부친의 책장에서 그 책을 처음 보았을 때, 필자는 그런 악한 마음을 필자 자신이 가지고 있었기에 그 책은 필자를 위한 것임에 틀림 없다고 생각했다.

 

더 중요한 사실은 필자의 부친이 매 주일 저녁에 번연의 『천로(天路)역정 (Pilgrim’s Progress)』을 우리에게 읽어 주셨다는 것이다. 그 책을 다 읽으면 처음부터 다시 읽어 주셨다. 필자는 그 책을 분명 열 다섯 번 들었다. 열 네 살 때부터 필자는 어떻게 성령께서 영혼 가운데 역사하시는 가에 대해, ‘수다장이씨’와 ‘쇠우리에 갇혀 있는 사람’과 ‘해석자의 집’과 수 십 명의 다른 인물들과 사건들에 대한 질문들을 던졌다. 필자의 부친은 질문들에 답해주면서 종종 눈물을 흘리곤 했다. 필자가 사역자가 되었을 때, 필자는 그 기간들이 참으로 소중한 은혜였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사십 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번연의 이 탁월한 작품 속에 있는 예화들이 필자가 설교하는 중 여전히 마음에 떠오른다.

 

 

10. 토마스 빈센트 (Thomas Vincent, 1634-1678). 우리가 차갑고 냉담해진 자신을 발견할 때, 빈센트는 우리 마음 속에 사랑의 불이 타오를 수 있도록 돕는다. 만약 천국의 은혜에 사로잡힌 정서나 그리스도를 더욱 사랑하길 갈망함이 당신에게 결핍되어 있다면,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를 향한 참된 그리스도인의 사랑 (The True Christian’s Love to the Unseen Christ)』(1677)을 꼭 읽어보라. 이 책이 당신의 상시적인 안내서가 되게 하라.

 

단지 소수의 빈센트 작품들이 지금까지 출판되었고 그것들 중 여섯 권만이 지난 오십여 년 간 재판되었다.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를 향한 참된 그리스도인의 사랑』 외에도, 빈센트는 젊은이들과 어린이들에게 매우 유익한 책인 『성경에 의해 해석된 소요리문답 (The Shorter Catechism Explained from Scripture)』(1673)과, 젊은이들에게 어떻게 하나님이 죄인들을 구원하시고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그들을 지키시는 지를 설명해 주는 책인 『시작된 선한 일 (The Good Work Begun)』(1673)을 썼다. 세 권의 추가적인 그의 저서들은 더 장중한 작품들이다. 그 책들은, 런던 대화재와 대역병에 대한 증인으로서의 설명이자 어떻게 하나님께서 어떤 도시에 있는 악을 심판하시는 지에 대한 분석인 『도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두려운 목소리 (God’s Terrible Voice in the City)』(1667); 런던 대화재 후에 또한 쓰여졌고 크고 두려운 주의 날을 대비해 죄인들을 준비시키기 위해 구상된 『심판을 위한 그리스도의 확실하고 갑작스러운 출현 (Christ’s Certain and Sudden Appearance to Judgment』(1667); 그리고 죄인들에게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고 경고하기 위해 쓰여진 『화재와 지옥의 불 (Fire and Brimstone)』(1670)이다. 소요리문답을 제외한, 이러한 제목들을 가진 그의 모든 작품들은 1991년부터 2001년 사이에 솔리 데오 그로리아 출판사(Soli Deo Gloria Publications)에 의해 재판되었다.

 

빈센트의 작품들은 정말 참신하다. 그는 영어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을 뒤흔들기 위해 매혹적인 방법으로 구사한다. 빈센트의 작품들이 18세기에 베스트셀러였다는 사실은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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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영적분별력/진실

가져온 곳: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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