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마태복음 10장

5.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보내시며 명하여 이르시되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6.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7.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8.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9.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10.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을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

11. 어떤 성이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가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12.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13.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14.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고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이 열둘을 '내보내시며'- 예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사도란 보내심을 받은 자란 뜻입니다.
'~부터 보내다'가 그 어원입니다. 그런데 그냥 빈손으로 내보내지 않습니다. 천국 복음과 함께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고 '문둥병'을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는' 권능을 주셔서 보내십니다.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는 것을 전부로 삼지 않고 그에 따르는 권능을 주셔서 보내신 것이지요.

위에 열거한 네 가지 능력은 하나님 나라가 도래했음을 나타내는 회복, 곧 재창조 역사의 한 단면입니다.

창조- 타락- 회복,
그런데 단순한 회복이 아니라 새 창조역사로서의 회복입니다. 이를 바르게 알려면 원 창조의 목적과 타락이 가져온 결과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창세기 3장의 기록을 보면,
만물을 다스려야 할 아담이 범죄함으로써 만물이 저주 아래 놓이게 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회복이란 단순히 아담과 그 후손을 구원하는데 그치지 않습니다. 그 구원이 가져올 회복은 전 피조계에 효력을 미쳐서 만물을 새롭게 하는 것으로 신약(특히 계시록)은 증거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복음을 선포하고 위 네 가지의 권능을 부여받았다는 사실은 장차 새로운 인류 즉 마지막 아담 예수님으로 말미암는 그 분의 백성이 복음으로 생육번성하여 온 땅을 (장차 도래할 새 하늘과 새 땅을 목표로 하는) 다스릴 것이란 사실을 나타내는 표호-사인입니다.

병든 자를 고치며- 구원이란 단순히 영혼의 구원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죽어서만 천국'은 성경이 말하는 온전한 복음이 아닙니다.

죽은 자를 살리며- 복음은 죽음도 정복합니다. 지금까지는 사망이 왕노릇했지만 이제 생명이 사망을 삼키는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문둥병자를 깨끗하게 하며-
정결케 되어야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있습니다.

귀신을 쫓아내며- 하나님을 닮은 사람을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사탄(마귀)을 쫓아낸다는 것은 천국이 임했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결정적인 표적입니다.

예수님이 귀신의 왕 사탄을 이기셨기에 그 졸개들이 쫓겨나는 것이지요.

예수님 당시에는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그 당시 사회의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외쳤지만, 지금은 천국이 도래해서 힘차게 땅끝까지 전진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복음을 받아들이고 천국에
들어가고자 애쓰면(침노하는 자들은) 그 나라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존재했던 그 어떤 왕국도 흥망성쇠를 거듭했지만 우리가 속한 천국(하나님의 나라)은 시작은 비록 미약했을지라도 (표면적으로는) 지금은 거대한 왕국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가 완성되면 필설로는 형언키 어려운 엄청난 영광의 나라로 나타날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과 성도들의 부활과 함께 살아서 믿고 있는 자들이 들림받음으로써 그 나라는 완성될 것입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댓가를 바라고 복음을 전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특히 능력을 베풀고 돈을 받는 행위는 엄격히 금해야 합니다.

필자는 30년 전에 자비량 목회를 서원하고 기도한 이래로 개인적으로 사례비를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같습니다.

처음에는 바울을 본받겠다고 겁(?)도 없이 나섰다가 세월이 지나면서 후회도 여러 번 했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주님! 취소합니다'라는 기도도 해봤습니다.

그런데 응답치 않으시더군요.

주님께서 저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증거를 여러 번 보여주시더군요.

어떻게 보면 창피하고 부끄러운 면도 있지만 이왕 커밍 아웃하는 마당에 그동안 필자가 해왔던 일들을 적어봅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벌써 30년도 더 된 세월을 살아오면서 이야기 보따리를 풀자면 밤을 세워도 부족할 것입니다. 고난이 무엇인지 아픔이 무엇인지 고통은 무엇인지 가난은 또 무엇인지...

할 말 다하고 사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습니까.

변화하는 목회 환경에 후진들이 능동적으로 대처하는데 작은 참고라도 되었으면 해서 용기를 내어 적어봅니다.

초대교회 당시 순회전도자들은 말씀을 전한 지역교회에서 숙식과 함께 다음 행선지로 가는데 필요한 여행경비를 제공받았습니다. 요즘에는 그런 경우가 더물지요.

대개가 한 지역에 세워진 교회를 담당해서 목회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임사역을 하는 목회자에게 적절한 사례비를 주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저와 같이 돌출행동(?)을 하는 경우는 예외입니다. 오해없으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현대에, 목회를 하면서 돈을 버는 일을 하는 목회자들이 많습니다. 소위 말하는 사이드
잡이지요. 안정된 생활을 하는 목회자만 봐서 그렇지 사실 미자립교회 목회자나 사모들의 경제활동은 눈물겨울 정도입니다.

앞으로 다불과 십년 안에 목회 환경은 크게 변할 것입니다. 특히 개척교회를 섬기는 분들, 젊은 목회자들은 미리 대비하는 것이 지혜로운 행동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면 먹고 안 주시면 굶겠다고 하면 누가 말리겠습니까마는 그런 분들은 대개 중도에 목회를 포기하고 무임목회자의 대열에 들어서더군요.

본문 연속강해의 진도가 늦어진 이유도 이 글을 쓰게 하시려는 성령님의 뜻이 있으신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각설하고,

제가 받은 대표적인 기도응답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일평생 고난이 제게서 떠나지 않게 해 주십시오'라는 기도였습니다. 이 기도도 30여년 전에 올린 기도였지요. 응답받았습니다. 지금까지 확실하게 응답해주시니 참 감사할 따름입니다(?)

두 번째로는 사례비 받지않겠다는 서원기도를 올린대로 지금까지 그렇게 살도록 해주시더군요.

그런 기도를 하고 난 뒤, 사역을 하면서 너무나 철저하게 응답을 하셔서 저도 놀랬습니다.
(기도 함부로 하지마십시오. 제 경험상 그렇습니다)

3박4일 부흥회를 인도했던 적이 그 시발점이었습니다. 물론 가난한 개척교회였었지요. 저도 형편이 어려웠지만 매시간 헌금을 하면서 집회를 인도했습니다. 집에서 버스타고 오가면서... 밥 여섯끼, 선물(케익) 하나가 전부였습니다.

그 뒤로도 일일집회나 초청을 받아서 주일 오후 예배 설교(몇 달 했음) 등... 밥 한끼가 전부였습니다. 교통비도 없었구요. 혹 사례비를 주면 그 자리에서 감사기도와 축복기도를 하고 도로 헌금하고 온 경우는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외에도 전도사, 부교역자 시절에 사례비 한 푼 못 받았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런데만 골라서 보내시더군요.

때로는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기도응답이란 걸 알았기에 괘념치 않고 사역을 이어올 수가 있었습니다.

며칠 전에도 막노동을 하고 왔는데 몸은 고달파도 마음은 참 편하더군요. 노가다(?) 경력 20년이라 해봤자 실제로 일한 날수는 600일 정도밖에는 안될 겁니다. 처음 나갔을 적엔 게으름도 피우고 요령도 좀 부렸지만 요즘은 일머리도 알고, 책임자가 보든 안 보든 열심히 하니까 계속 나오라는 현장도 많습니다. 체력이 딸리고 하기가 싫어서 안 나갈뿐이지요.

식당 보조 및 설거지 1년, 야간 택배상하차, 온갖 잡역부, 자잘한 사업, 정치판 기웃거리기 등등.. 먹고살기 위해서 목회를 이어가기 위해서 참으로 안 해본 게 없었던 지난 세월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지하실에서 목회와 살림을 겸해서 지낸 6년의 세월은 좀 힘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네 번째 개척교회를 하고 있습니다. 중증장애인 재활병원에서 장소를 제공해주어서 2년 동안 자비량 목회를 했던 것이 그나마 보람이 있었던 것같습니다. 그외는 반듯한 목회를 해보지 못했습니다. 맨날 개척교회 수준이었지요

지금도 장애인을 돌보는 일에 작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만 여전히 아쉬울 따름입니다.

삼십 몇 년 전, 서울 강남의 아파트며 좋은 직장도 버리고 이 길을 왔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멉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많이 어려울 적에 남에게 손벌리는 것을 주님은 아주 싫어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열심히 일해서 돈버는 것은 아무 말씀도 안 하시면서요. ㅎ

지금까지 한 번도 굶거나 할벗지 않았습니다.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모든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심장병을 십여년 앓으면서 힘든 육체노동을 할 적엔 정말 울고싶더군요. 그런데 주님이 보너스로 심장병도 낫게 해주시더라고요.

어릴적부터 여러 가지 병을 앓아왔었는데 심장병이 제일 힘들더군요. 계단을 올라가기도 힘들 정도였습니다. 지금은 또 다른 병을 안고 살아갑니다. 주변에서는 왜 보험 안 드냐고 성화지만 필자는 이미 하나님께 보험을 들었기에 그럴 마음이 현재로서는 전혀 없습니다.

쓸데없는 말이 길어져서 송구합니다만 이런 목회자도 있구나 하고 너그럽게 받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독자 제현의 건승을 기원하오며,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샬롬!

*위 본문으로 강해가 이어집니다.

글: 구자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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