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계 19:7~9)



예수님의 혼인잔치에 참석하는 신부들이 입는 옷은

예복(마 22장) 또는 세마포(계 19:8)다.


만약 신부가 세마포 옷을 입지 않고

혼인잔치에 참석하면 쫓겨날 것이다.


세마포가 무엇이길래

신부의 필수적인 지참물이 되었을까?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일까?

세마포 옷은 누가 준비하는 것일까?


세마포 옷을

왜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하였을까??

이 비밀을 풀어 보려고 한다?.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다.

세마포 옷은 자신이 준비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수의로 사용했던 세마포는 모시의 종류였을 것이다.


계시록에 나오는 신부의 옷인 세마포는

모시보다 더 고급섬유인 실크로 이해한다.

결혼예복으로 모시원단을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실크는 누에의 고치에서 뽑아내는 원료다.


어렸을 때 집에서 누에를 키워 본적이 있는데

누에는 몇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누에는 특이하게 뽕잎만을 먹는다.

다른 것은 일체 먹지 않는다.

둘째, 지정된 자기 집을 벗어나지 않는다.


만약 수천마리의 누에벌레가

온 집안을 마음대로 돌아다니면 곤란할텐데

신기하게도 지정된 장소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셋째, 누에는 흰색의 고치를 만들어낸다.

고치에서 실을 뽑아낸 것이 실크다.


누에를 신부와 비교한다면

누에가 뽕잎만을 양식으로 삼는 것처럼,

신부도 하나님의 말씀만을 양식으로 삼아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마 4:4)


누에가 뽕잎만을 먹었기 때문에

흰색의 고치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신부들이 만약

이런저런 양식(TV,게임,유흥,중독,사상)을 섭취한다면

그도 깨끗하고 흰색의 세마포 옷을 만들어 낼 수 없을 것이다.


무엇을 먹느냐? 양식의 종류가 중요한 것이다?.


누에가 자기 공간에 머무는 것처럼

신부들도 언제나 거룩한 공간에서 살아야 한다.


가지 말아야 할 장소에 가면 안되는 것이고,

마땅히 들어가야 할 기도골방에 들어가야 하며,

내가 머무는 장소는 언제나 거룩한 공기로 감싸져 있어야 한다.

 


세마포 옷을 만드는 데 숨겨진 교훈

 

실크를 한 올, 한 올 직조하여 세마포 옷을 만든다.

직조하는 제조방식은 수직과 수평의 실이 교차하는 것이다.


십자가 

수직과 수평의 직교는 십자가를 의미한다.

인성과 신성의 조화다.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을 향한 신부의 사랑이 만나는 것이다.

삶의 목적과 방향이 일관되고 하나님의 성품과 성숙된 인격의 조화다.

수직 : 하나님과의 바른관계, 성령, 말씀, 기도, 보혈, 은혜

수평 : 사람들과의 바른관계, 옳은 행실, 거룩한 행실

 

 심령

정사각형은 흠 잡을데 없이 반듯한 거듭나고 거룩한 심령을 상징한다.

또한 하루라는 시간 단위에서 행하는 거룩한 삶의 조각이다.

정사각형의 심령을 지닌 신부가 거주할 예루살렘성도 흠없는 정사각형이다 .

 

 삶

거룩한 정사각형의 조각이 모여 과정이 되고 한 인생의 삶이 되고 세마포 옷이 완성된다.

모든 조각들은 하나님을 경외한 삶의 흔적이다.

에녹은 120년을 동행함으로 완성하였다?.

옳은 행실로 결집된 삶이 세마포 옷이다.

점과 티가 없는 흰옷이다?.

매일의 삶이 거룩하고 온전해야 깨끗하고 빛나는 세마포 옷이 만들어진다.

 


어떤 신자는 주일 하루만 거룩하게 산다.


1년 중 52일만 거룩하게 산다면

빛나는 세마포 옷을 완성할 수 없다.


매일 말씀과 기도로 양식을 삼지 않거나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는다면 다른 종류의 옷을 만들 가능성이 있다.


심령에 분노나 분쟁이나 비방이나 교만으로 차 있다면

정사각형의 반듯한 세마포 옷이 완성할 수 없을 것이다.


세마포 옷은 한결같고 지속적으로 동행하는 삶의 결집이다.

오염되고 왜곡된 진리가 사람들의 머리에 가득하다면

이상하고 괴이한 옷을 직조할 것이다.


엄중한 말씀이 완곡한 단어들로 희석되다 보면

말씀대로 사는 삶이 각자 만들어진 소견대로 살게 된다.


그리스도인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격려하기 보다 분쟁하고 비방에 능한 이유다.


그런 이유로 자신을 말씀에 투영하고 기도로 검증 받아야 한다.

온 맘 다해 사랑합니다 수없이 고백하다 보면 마음이 울컥해진다.


말씀대로 진실하고 정직하게 살며

힘써 기도하면 올바른 삶과 평강의 길이 열린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길을 열어주시는 것이다.


오늘 하루

거룩한 생각, 거룩한 마음, 거룩한 행실, 거룩한 삶을 산다.


그러면 한 올, 한 올,

옳은 행실로 직조된 세마포 옷이 완성될 것이다.


신부의 옷, 세마포의 비밀은

한 순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닌

신부의 전체 삶이 결집된 결과물이라는 의미다.



글쓴이: 카이로스님

 

'은혜의 단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휴거후 남겨진 사람들(3)  (0) 2017.01.14
휴거후 남은 사람들(2)  (0) 2017.01.14
위대한 예수교의 힘, 예수의 사랑  (0) 2017.01.08
영화, 사도요한의 요한계시록  (0) 2017.01.08
영화 - 사도 바울(2편)  (0) 2017.01.07

쉐마와 쉐키나의 하나님

 

 

쉐마와 쉐키나의 신앙으로 코람데오의 길을 걸어가자

 

그리스도인, 우리들의 삶이 자꾸만 피폐해가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동떨어진 삶을 살기 때문이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를 외면하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사람의 탈을 쓰고 살면서 땅의 것만 추구하는 삶을 사는 이상은 변화될 것도 갱신 될 것도 없습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의 음성을 다시 한 번 듣고 깨달음과 실천하는 삶의 길을 걷기 위해 아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실천하는 방법으로서의 쉐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계속해서 던지신 가르침은 “쉐마”( ???)였습니다. “쉐마”는 “들으라”라는 가르침입니다. “쉐마”( ???)는 “듣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동사 “샤마”의 명령형입니다. 대표 성경구절은 신명기 6장 4~9절이며 “쉐마 이스라엘(이스라엘아 들으라)”로 시작됩니다.

 

"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6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영 표를 삼고 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하지니라."

 

여호와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 그 분의 말씀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하면서 들으라는 것이요.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쳐 듣게 하라는 것이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강론하여 듣게 하라는 것입니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하여 들으며 실천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전통에 의하면 “쉐마”는 구약시대부터 하루에 아침저녁에 암송하도록 되어있어 이스라엘의 의식구조와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신앙고백으로 알려졌습니다. 결국 “세마”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함으로써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을 제시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삶으로서의 “쉐키나”

 

“쉐키나”( ?????)는 문자적 뜻은 “거주” 또는 “임재”로서 하나님의 영광이 자기 백성과 함께 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약성경에서 성막의 언약궤(민 10:35~36)와 솔로몬의 성전(왕상 8:29)은 하나님이 거주하시는 처소로서 소개됩니다. “쉐키나”( ?????)는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를 나타냅니다.

 

언약궤에 쉐키나 하신 하나님

 

"35 궤가 떠날 때에는 모세가 말하되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가 주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하였고 36 궤가 쉴 때에는 말하되 여호와여 이스라엘 종족들에게로 돌아오서서 하였더라."(민 10:35-36)

 

성전에 쉐키나 하신 하나님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하신 곳 이 성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시오며 주의 종이 이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왕상 8:29)

 

하나님이 자기 임재를 나타내는 일반적인 형태는 “주의 천사”, “하나님의 얼굴”, “구름기둥”, “불기둥” 같은 것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신약에는 임마누엘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쉐키나”입니다(마 1:23).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살피시고 인도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성막을 지으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거기 거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쉐키나’ 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갈 바를 알지 못하여 우왕좌왕할 때 하님은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것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거하시는 ‘쉐키나’ 입니다. 신약에 와서 하나님은 교회 공동체를 세우시고 그 가운데 ‘쉐키나’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 후에는 성령님을 보내시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 곧 ‘쉐키나’의 하나님이 되신 것입니다. 성령님 주도적인 삶이란 우리 속에 임재하신 ‘쉐키나’ 즉 하나님의 임재로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하나님 주도적인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개혁주의의 모토인 코람 데오(Coram Deo) 신앙사상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면전에서 하라는 가르침인 것입니다. 이는 성령으로의 거듭남과 점진적 성화를 통하여 나타나게 됩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쉐마( ???)의 신앙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를 몸소 체험하는 쉐키나( ?????)의 신앙이 또한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신앙적 삶을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공동체로서의 삶 속에서 나타내 보임으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만일 내 안에 쉐마의 하나님이 계신다면 항상 말씀을 순종하는 사람으로 살아야 할 것이며, 만일 내 안에 쉐키나의 하나님이 계신다면 내 몸을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영광이 선포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석봉 목사

  가져온 곳: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