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옥으로 가는 죄인들아,
주 예수께로 돌아오라! -

38년 전, 제가 20대 후반에 체험한 이야기입니다. 간혹 개인에게나 몇이 있는 자리에서는 간증을 했었지만 공개적으로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자랑거리도 아니요, 내세울 것도 없는 자의 개인적 체험이라서 나이가 들수록 말하기가 조심스럽더군요. 

제 신앙이력을 간략하게 적어봅니다. 

외조부의 영향으로 초등학교 때부터 예수님을 믿었지만 십오리 안에는 교회가 없었고 게다가 가족도 아무도 믿지 않아서 교회 출석을 못하고 있다가 중학교를 도회지에서 다니면서부터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었지요. 

믿음도 없이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좋아서 그렇게 고등학교 때까지 교회를 다녔습니다. 군대 가서 세례를 받았지만 믿음이 무엇인지 구원이 무엇인지 조차도 잘 몰랐습니다. 군대란 곳이 세례 실적 쌓기라도 하듯이 아무에게나 세례를 주더군요. 그 틈에 저도 세례를 받은 셈이지요. 그러니 교회 출석인들 제대로 했겠습니까. 

제대하고 서울 올라와서 직장생활을 하게 되었고, 마침 믿는 가정에서 하숙을 하게 됨에 따라, 
그동안 잘 나가지 않던 교회도 다니게 되었습니다만 간증서적들을 읽으면서,  '아! 하나님이 살아계신가 보구나'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 저를 주님은 불쌍히 여기셔서 큰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79년 10월20일 경, 그러니까 박정희 대통령이 흉탄에 쓰러지기 며칠 전이었지요. 새벽기도라고는 고등학교 때 두어 번 나가고(아, 군대서 한 번) 그 뒤로는 한 번도 안 나가던 제가 새벽기도를 다 나갔습니다. 

교회 정문이 모서리에 있었는데 양쪽 모서리 기둥보다 키가 더 큰 시커먼 두 놈이 서 있더군요. 
2미터도 넘어 보이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다가가니까 양쪽으로 부리나케 도망을 가는데 정말 바람처럼 사라지더군요. 발자욱 소리도 안 나고...좀 이상하다 싶긴 했지만 분별력이 없는 저로서는 그저 그런가보다 했습니다. 

새벽기도가 끝나고 작은 전구 하나만 켜놓고 어두컴컴한 가운데서 다들 열심히 개인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기도를 했지요. 

'주님, 저도 성령 주십시오!'
남들이 예수 믿으면 성령을 받아야 한다고 해서 무작정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아! 그런데 말입니다. 
저는 남들이 들을 새라 목소리도 작게 '주님 저도 성령 주십시오!' 라고 딱 한 번 기도했는데 그만 엄청난 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갑자기 빛이 나타났습니다. 어디서 비춰오는 빛이 아니었습니다. 온통 빛 천지였습니다. 저도 없고 다른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그야말로 빛만 보였습니다. 빛이 어찌나 밝은지 표현이 불가능합니다. 햇빛보다 만 배나 밝다고 해야 하나....
거기다가 그지없이 투명했습니다. 

빛을 보는 순간 저는 심장이 멎을 것같았습니다.
얼마나 엄위롭고 강렬하고 두려운지 지금도 필설로는 형언키 어렵습니다. 두려우면서도 경외감이 넘쳐흘렀습니다.(정확히 2초를 넘기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심장이 멎어 죽을 것 같은 마음이 드는 순간 그 빛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발걸음이 이상했습니다. 마치 구름 위를 걷는 것같더군요. 그 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은 빛이시라'는 말씀을 접하면서 그것이 하나님의 임재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고집 세고 더디 믿는 제게 그런 체험을 하게 하신 주님의 심정을 세월이 지나서야 헤아릴 수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대단한 존재인 줄로 착각했습니다. 저 같은 놈한테는 그런 강렬한 체험이 있어야 했기에 그러셨다는 걸 깨달은 것은 햇수가 좀 지났을 때였습니다. 

그 후로, 한 달이 채 안 되었을 때, 새벽기도 시간에 기도하는 중에 입에서 이상한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몇 마디 나오고는 그쳤습니다. 그것이 무슨 말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며칠 후 집에서 기도를 하는데 방언이 터졌습니다. 저는 그 당시 방언받기 위해서 (지금의 기억으로는) 별로(?) 기도한 적이 없었습니다. 무슨 특별한 사람들이나 하는 것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제가 다니던 교회는 방언에 대해 전혀 말하지 않던 교회였습니다. 

하숙집 집사님이 방언 받은 걸 축하해 주더군요. 
그래서 열심히 방언기도를 했습니다. 물론 개인기도 시간에만... 첨에는 유창한 방언이 아니고 마치 '가갸 거겨 고교 구규 그기....'하듯이 방언이 서툴게 나오더군요. 한마디가 두마디가 되고 세마디가 되고...그러면서 점차 방언이 익숙하게 나오더라구요.(제법 문장을 이루 듯이요) 

지금은 아주 유창한 방언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남들이 뭐라 하든 말든, 필자는 개인기도 시간에 (은밀히) 방언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도 또 특별한 체험을 했습니다. 목구멍에서 향기가 올라왔습니다. 달콤하기가 그지없고 무척 향기로웠습니다. 세상에서 그런 향기를 맡아본 적이 없습니다. 목에서 입으로 코로 은은한 향기가 퍼져나갔습니다. 참으로 신기했습니다. 한 보름 간 간헐적으로 향기가 나더니 그치더군요.(하루에 몇 번씩)

지금 생각해 보면, 죄인 살리는 생명의 향기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라는 예조(예언적 징조)가 아닌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1979년 10.26 사태 이후 어수선한 정국과 전두환 등이 그해 12월, 12.12 쿠데타를 일으키고 나서 80년 정초에 있었던 일입니다. 80년 1월 5일경, 밤 12시 30분까지 성경과 신앙서적을 읽다가 잠이 쏟아져서 잠시 기도하고는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자다가 오늘 밤 꼭 죽을 것만 같더군요.

 '이상하네? 아직 서른도 안 된 나이고 아주 건강한 내가 자다가 죽는다는 마음이 왜 자꾸 들까?' 

그런 마음이 들면서도 전혀 두렵지가 않더군요. 
이미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모셔 들였고, 나름대로 죄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함께 회개가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두렵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자꾸 자다가 죽을 것만 같아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잠은 억수같이 쏟아지는데도 말입니다. 

일어나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밤 제가 자다가 꼭 죽을 것만 같습니다. 죽으면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그러자 죽는다는 마음이 사라지면서 편히 잠이 들더군요.
 
아~~ 그런데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지옥이 보이더군요. 첨엔 그것이 지옥인지 몰랐습니다. 맨 앞쪽에 있는 것들이 머리가 있고 몸통과 팔 다리가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직감적으로 사람들이구나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광경은 실로 무시무시했습니다. 온통 시커멓고 붉은 불꽃만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다 내 쪽을 바라보면서 풀쩍풀쩍 뛰고 있었습니다. 가만히 제자리에 서 있는 자들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너무나 뜨거워서 견딜 수가 없어 한없이 고통스러워하면서 온 사지를 흔들며 풀쩍 풀쩍 뛰고 있더군요. 마치 나이트 클럽에 많은 사람이 빽빽히 들어차서 어두컴컴한 불빛 아래서 광란의 춤을 추듯이 말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불꽃 가운데서 고통을 당하는 자들의 숫자였습니다. 멀리 뒷 쪽을 보니까 사람들의 머리가 마치 바닷가 모래알처럼 보였습니다. 끝이 안 보였습니다. 지평선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좌우가 안 보였습니다. 너무 너무 많은 수의 사람들이 새까맣게 탄 모습으로 고통 가운데 울부짖으며 (소리는 안 들렸지만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옥에 있는 영혼들의 수가 수억, 수십억도 더 되는 것 같았습니다. 지옥에 대한 간증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고 성경을 통해서 지옥이 있다는 것만 알았지 지옥이 그런 곳인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데 지옥은, 어둠과 붉은 불꽃과 시커멓게 탄 영혼들의 절규하는 모습, 그 세 가지 이상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모래알 같이 수없이 많은 사람들 머리 위로 시뻘건 불꽃이 풀풀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그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좀 특이한 것은 지옥에 있는 자들과 저 사이에 빈 공간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지옥에 있는 자들은 그 공간을 전혀 침범치 못하고 마치 일렬횡대로 선 것같이 끝없이 좌우로 펼쳐져 보이더군요. 뒤로도 끝이 없이 사람들이 고통당하고 있었고....수많은 영혼들이 한결같은 고통 가운데 있는 것을 생생히 목도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아! 마침 어떤 젊은 여자(30대 초중반)가 지옥으로 떨어지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그 참혹한 광경을 목도한 저로서는 그 여자가 거기 빠지면 절대로 안 된다고 생각하고 그 여자의 팔을 붙들고 얼른 내 뒤로 제쳤습니다.

그 뒤 곧바로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눈에서는 눈물이 마구 쏟아졌습니다. '아 내가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면 저 지옥에 갈 것이 아닌가!' 엎드려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시계를 보니 12시 40분이었습니다. 기도하고 잠이 든 시각이 대략 12시 35분 경 이었는데, 그 5분 사이에 엄청난 일을 체험한 것이었습니다. 깨어나서도 그것이 생시 같았습니다. 얼마나 충격이 컸던지 그 충격이 장장 6개월이나 지속되었습니다. 

길을 가다가도 차를 타고 가다가도 밥을 먹을 때도 일을 할 때도.... 시도 때도 없이 그 광경이 선명히 눈앞에 펼쳐지곤 했습니다. 

(표현의 한계로 이 정도로 적지만 저는 그 당시 쇼크로 심장마비를 일으킬 뻔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 후 심장병이 생겨 십 수 년을 고생했습니다. 지금은 건강합니다.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기까지 주님은 불같은 시련의 용광로에서 저를 연단하시더군요) 

그 때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예수 안 믿으면 불 못에 간다'는 사실을... 

예수 믿지 않는 자들을 바라보는 저의 시각이 바뀌었습니다. 180도로 바뀌었습니다. 불쌍해서 미칠 지경이었다면 좀 과장된 표현이고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 뒤 한 보름 지났을 때,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고향집에 가고 싶었습니다. 예사로 생각하고 있는데 또 그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번에도 그 마음이 쓸데없는 생각이라 여겨 무시했습니다. 세 번째 그 마음이 들자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열흘 남짓이면 구정(당시는 설을 구정이라 했다)에 고향에 갈 터인데 지금 왜 가고 싶은 마음이 들까... 길이 천리인데...차비도 꽤 들고...그러나 마음은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3일 휴가계를 내었더니 물어보지도 않고 다녀오라고 하더군요. 고향에 계신 어머니와 남동생 여동생을 전도했습니다. 아버지는 돌아가셨기에 큰 아버지를 전도했습니다. 

워낙 완고하신 분이사라 목침에 맞을 각오로 마음을 굳게 먹고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성경도 선물하고 '예수님 영접기도문'도 적어드렸습니다. 

서울에 올라와서 한 열흘 뒤 구정(설)에 다시 고향집을 찾았습니다. 아! 놀랍게도 가족이 다 교회에 나갔다고 하더군요. 생긴 지 몇 해 안 되는 아랫마을 장로교에 출석한다고 하더군요. 

더 놀라운 사실은 큰 아버지의 말씀이었습니다. 
제가 적어드린 예수님 영접기도문을 읽는데 아무리 읽어도 이해가 안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계속 읽다가 보니까, '아 이것이 내가 살 길이구나' 하면서 믿어지면서 예수님을 영접하셨다는 것입니다. 

교회 문턱에는 가 본 일도 없는 분(지역에서는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로 좀 부정적인 면에서 유명한 분이었음)이 돌아오는 주일, 의관정제 하고 즉시로 교회에 나갔으니 온 동네와 아랫마을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두어 번 나가시다가 주변 시선이 좀 뭐해서 그랬던지 수 십리 밖에 있는 교회에 버스타고 다니셨다고 하더군요, 

설 쇠고 삼월달이 되었을 적에 그만 큰아버지는 돌아가셨습니다. 지병을 앓고 있었는데... 

전보를 받고 울고 있는 제게 성령님은 감동을 주시더라구요. '너희 큰아버지는 구원 받았느니라 그러니 슬퍼하지 말아라'는 마음이 강하게 들더군요.

저도 신앙이 어리고 잘 모르던 초신자 시절이라 장례식에 가서 동생들한테 임종 때의 상황을 물어보니까 임종하시기 두 시간 전까지 엄청난 고통 가운데서 몸부림치다가 임종 두 시간 전에 '내가 두 시간 뒤에는 잘 것이다'라고 하시면서 평온을 되찾고 편안히 숨을 쉬다가 두 시간 후에 잠을 자듯이 고요히 돌아가셨다고 하더군요. 

저는 그 때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복음은 그 어떤 죄인도 구원하는 능력이 있구나' 

그 이후로도 하나님은 예수님을 전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나를 구원하신 주님의 사랑 갚을 길이 없고 멸망으로 치닫는 영혼들이 너무나 불쌍해서 불타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전도지를 12만장 정도를 자비로 찍었습니다. 
A4 양면에 빼곡히 아주 구체적으로 복음을 소개했습니다. 예수님 영접기도문도 적었습니다. 
인쇄된 전도지를 붙들고 눈물로 적셨습니다. 땀으로 전도지를 범벅을 했습니다. 간절히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주여 이 전도지로 복음을 전하오니, 부디 이 전도지를 통하여 많은 영혼들이 구원받게 하소서' 

'저 영혼들을 제게 붙이지 않으시려면 차라리 저를 데려가소서' 

울부짖으며 정말 허리가 끊어질 정도로 간절히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루에 많게는 1500장, 적게는 300장 정도 돌렸습니다.
 
첨엔 좀 부끄러운 마음도 없잖아 있었으나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강권했습니다. 

담대히 외쳤습니다.

'여러분! 예수 믿고 구원받으십시오!' 

주로 지하철 안에서, 2호선 1호선에서....
그리고 영등포역에서 많이 전했습니다. 
서울역 청량리역 강남터미널에서도 전했습니다.
경부선 호남선 경춘선 등등을 통해서 전도지가 전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어떻게 아냐구요? 주머니에 넣거나 가방에 넣는 모습을 수없이 봤거든요. 

제가 직접 돌린 전도지가 아마도 10만장 가까이 될 것입니다. 옆에서 조금 거들어 준 것까지 합하면요. '예수 믿고 구원 받으십시오'란 말은 얼추 20만 번 정도 했울 겁니다. 

1500장 정도 전도지를 돌릴 때는 입이 굳어져서 말이 안 나왔습니다. '예수..."하고는 전도지를 돌렸습니다. 전도지 준다고 다 받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두세 명에 한 명꼴로 받으니 20만 번 정도 '예수 믿고 구원 받으십시오' 라는 말을 한 셈이지요. 

놀라운 것은 그 전도지가 땅바닥에 버려지는 것이 백장에 한두 장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버리지 말고 집에 가지고 가서 가족들도 읽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는데 주님이 그것까지 세밀히 응답하시더군요. 

그리고 전도지를 읽고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들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어떤 자매님은 애를 업고서 음료수를 사다가 주시면서 고생하신다고 격려할 때는 참 힘이 났습니다.(그런 분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핍박도 많이 받았습니다. 욕도 많이 얻어먹었습니다. 청소하는 아주머니한테서 빗자루로 얻어맞기도 했습니다. 저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전도의 미련한 방법을 통해서
죄인 구원하기를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체험습니다. 

기도하고 성령을 의지하여 복음을 전하면 지금도 구원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주님의 마음을 품고 복음을 전해보십시오. 구원의 역사가 반드시 나타날 것입니다. 

복음 전함은 나의 소관이 아니라고 치부하지 마십시오. 전도는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주신 지상명령입니다. 

이 글을 읽으신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이 구령의 열정과 복음전함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전도하는 제게 하나님은 놀라운 기적 같은 응답을 여러 번 주셨습니다. 다음 기회에 간증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필자는 신비주의나 표적신앙을 쫓는 자가 아닙니다. 다만 위와 같은 채험을 제 의지와 상관 없이 했을뿐입니다. 그러니 다소 생각이 틀리더라도, '이런 경우도 있구나' 하고 너그럽게 받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부족한 저의 전도로 예수님을 영접한 분들이 많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복음을 전한다면 구원의 역사가 나타날 줄로 믿습니다.

한국교회도 역사가 길어지면서 원로목사 후임교회와 장기목회자 후임이 점점 많아지는데 거기에 대한 신학교 교육이나 책이 없기 때문에 지식 부족에서 오는 많은 시행착오의 문제가 파생되는 것 같아 원로목사 후임지침서와  장기목회자 후임  참고서를 9회에 걸처 시리즈로 쓸것입니다.
웜로목사 후임들은(장기목회자 후임들도 같이) 참고하시고 취사선택을 바랍니다.

Ⅰ. 원로 목사와 후임과의 갈등과 평화

원로 목사 후임과 갈등, 또는 전쟁과  평화란 글을 쓰려고 하는데 동기는 원로 목사와 후임과의 관계가 교회에 갈등으로 비춰지는 것이 다수 교회이기 때문에 문제의 요인을 생각하여 보고 각자 참고하여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데서 이 글을 쓰는 목적이 있다.

필자는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정상적인 당회가 구성되어 있고 역사가 있는 교회에서 10년 이상 순탄하게 목회 하였으면 그 목사는 목회에 관한 한 "도사"가 된 분이라고 정의한다. % 따진다면 한국 교회 목사들을 총 망라하여 수만 명인데 통합 측 교회만 하더라도 목사가 1만6천명이 넘고 원로목사는 61명(2010년도)인데 한 교회에서 10년 이상 장기목회 한분이 몇%나 되겠는가? 통계가 나오지 않아 모르지만 일반 관점에서 볼 때에 (수백명?)그 수는 그리 많지않다고 추리된다.

인생이 전쟁이라면 목회도 전쟁이다. 칼빈은 교회를 전투하는 교회라하였다. 원로 목사란 한 교회에 부임하여 20년 이상 시무하고 교회의 동의를 얻어 추대 받은 백전노장의 장군이다. 원로 목사가 장기 목회를 하고 물러간 그 자리를 무난히 메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고로 20년 이상 목회 한 원로 목사의 그 자리를 매우려면 예의와 지혜와 목회 능력과 처신의 인간관계가 탁월하여야 가능하다.

어떤 목사라도 그 자리를 이어 받았다면 눈물과 피와 땀으로 절타 탁마의 인고의 세월을 경험한 자이거나 아니면 지금부터 절타 탁마를 견디어 낼수있는 자여야 전임의 목회를 연속 할 수 있다.
명장은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다. 당회가 구성된 교회에서 20년 이상 목회 하였다면 그는 명장이다. 그런고로 많은 시간과 난관을 거쳐 많은 수련을 쌓아야 원로의 자리를 무난히 매워 갈 수 있다. 수련을 쌓는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다. 타고난 달란트와 인격과 그릇이 커야한다.

우둔한 단기 목회의 종지기 그릇의 소양을 가진 목회자는 어떤 지혜를 공급 받아도 감당치 못하고 중도 패전하여 탈락할 것이다. 전쟁은 적을 알고 전술이 뛰어난 자가 승리한다. 상대를 먼저 알고 전쟁을 치르는 자가 승리하는데 종지기 그릇의 소양을 가진 자는 멀리, 넓게, 깊게, 높게 볼 관찰력이 없고 전략의 능력과 시력도 없고 좁은 소견에 인내력도 포용략도 부족하기 때문에 그 자리를 지탱 한다는 것은 불가능 하다.

그런고로 확실한 승리의 전술과 지식을 갖지않은 자는 노 하우를 배워서 가든지 아니면  그 자리에 아예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 그 자리에 들어가지 말아야 할 자가 들어앉으면 전쟁은 반드시 일어나고 교회는 시련을 격는다.
앞으로 원로 목사와 장기 목회자가 점점 많아지는 것이 현실이기에 “원로 후임과 전쟁과 평화”라는 글을 통하여 최소한 전쟁을 막아 보자.

2. 비범한 인성과 목회철학과 능력을 가진 자만이 원로 목사 자리 감당

1) “도사 기질”을 가진 자만이 원로 자리 무난히 연속 할 수 있다
목회 초보자라도 그 자리를 무사히 이어가는 목회자는 “도사”가 될 수 있는 소양을 가진 자이다.
그는 비범한 천부적 목회 달란트와 탁월한 적응력의 지혜와 그릇을 가진 자이다.
그렇지 않고 평범한 달란트를 가진 좁은 소양의 목회자가 설교 한번 잘하고 인물 좋고 학벌 좋고 "증" ? 하나로  부임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는 거기서 그 자리를 지탱하기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비범한 “도사” 기질과 뛰어난 적응력의 지혜와 그릇이 큰 자는 그 도사의 자리를 무난이 이어 갈 수 있다.

2) 원로목사  때문이란 용어를 입에 담지 말라.
근간에 원로 목사 후임들이 원로목사 간섭과 시집살이 때문에 목회가 힘들고 어렵다고 당사자들의 입과 그 교회를 통하여 곳곳에서 흘러나오고 있으며 그로 말미암아 원로목사 재도 반대운동까지 일어나고 있다. 헌법이 개정되기 전에는 반대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원로 목사는 장기간 그 교회를 사랑하고 키웟다. 그는  후임 목사가 목회를 잘하도록 도와야 되겠다는 마음에서 그 교회를 떠나지 않고 있거나 그리고 마땅히 갈 교회가 없기 때문에 그 교회에 출석하는 분도있다. 그 교회를 출석 않는다 하더라도 멀리서 교회를 살피고 어려움이 없기를 바라며 어려움이 있으면 돕는 마음을 갖고있다. 자기가 섬기든 교회를 해꼬지 하겠다는 목사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배은 망덕한 버릇없는 후임들이 원로목사를 귀찬케 여기는데 문제가있다.

후임에게는 원로만큼 부담스러운 존재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의 비중이 크고 시어머니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후임은 그분의 비중을 인정하고 들면 문제가 되지 않은데 그분의 비중을 인정 않을려는데 문제게있다.

원로후임은 그 원로목사가 없어도 다른 대상(장로)이 그 후임 에게 똑같은 비중의 부담스러운 존재가 된다는 사실도 알아야 된다.

속담과 같이 큰 말이 나가면 작은 말이 큰 말 행세 한다는 말이 잊지 않는가? 반드시 말의 무리 가운데는 지배하는 큰 말이 있기 마련이다. 인간 공동체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을 비 정상으로 볼것이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것이 인간 공동체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지금 후임이 원로가 되어도 마찬가지이고 원로장로가 되어도 마찬가지가 된다.

담임 목사는 큰말 탈수 있는 능력 자라야한다. 그리하여야 그 다음 큰 말도 탈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마찬가지로 바로 그분은 그 교회에 큰 공로자 이기에 큰 말이 되어 큰 말 위치에 있는 것이다.
그런고로 큰 말 탈수 없는 자는 자기가 큰 말을 탈 능력이 부족한 자로 알고 원로 목사 또는 장로 때문이란 그 용어를 입에 담지 말아야 한다.

3) 원로는 하나밖에 없는 은인 중 은인이다.
원로는 세상 말로 하면 기업을 만들어 물려준 은인이다.
교회가 아니라면 자식에게 물려줄 것이 아닌가? 어떤 분은 자식에게 물려주기도 하지만.
그런 원로목사의 뜻을 100% 수용한들 어떠하랴!
그런 분을 평생 상전으로 모신들 그 은혜를 갚을 수 있겠는가?
그 많은 목사 중에 내가 서도록 직간접으로 협조하신 분인데 얼마나 고마운가!
그분이 후임 결정에 권리가 없었다 하여도  뒤에서 반대 하였다면 과연 그 자리에 올수 있었겠는가?
그분이 후임 부임에 전혀 무관하다 하였을 지라도 그분이 이룩한 교회에 후임이다.
그분의 은혜도 모르고 약간의 부담스러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그분을 원망 불평하면 어떤 이유로든 그는 배은망덕 자가 아닐 수 없다.

한국교회 목사들에게 속된말로 평생토록 원로목사 종노릇하여도 후임되겠다는 목사가 99.999999%가 될것이다. 그도 그런 마음으로 그 교회에 부임하였을 것이다.

원로에 배은망덕 자는 하나님의 은혜도 인간의 은혜도 모르는 저질이며 진정한 의미에서 목회자로서의 섬기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종의 자격이 없는자며 먹고살기 위한 직업인의 차원을 넘지 못한 지극히 세상적인 사고 자라고 생각한다.

부임 전에는 원로 목사나 장로에게 손발을 비비며 내가 부임하면 잘 섬기고 잘 하겠습니다 하는 마음으로 부임하지 않았는가? 그런 생각않고 부임한 목사가 과연 있는가? 실제로 그렇게 빌고 부임하는 목회자도있다.

그리고서 부임 한 후에는 딴 짓거리를 하는 고얀ㄴㄴㄴㄴㄴ-많다.

일부 중직 자들에게 원로목사에 대한 장기간 쌓여진 불만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이 정상이다. 후임에게는 그런 불만자가 앞으로 없겠는가? 그것을 생각 못하는 목사는 석두 목사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불만 그룹들과 연대하여 원로에게 도전하는 것은 부도덕 중 부도덕이며 있을 수 없는 배은망덕 행위이다. 배은 망덕의 행위를 하였을 때에 교회는 혼란하여 지고 그 그 교회에서  목회하기가 심히 어려운 지경에 처하게되며 교인들을 골탕 먹이게 된다. (천호동 ? 교회!!!)
후임 목사들은 자기에게는 반대 그룹이 형성되지 않는다고  착각하지 말라. 착각자는 석두이다.

그분은 그대에게 한 분 밖에 없는 은인이다. 그 은혜를 잊지 않고 선배에 대한 예우를 깍듯이 하는 것이 목회에 기본 도리이며 하나님께도 인정받고 교인들에게도 인정받고 축복받을 일이며 원로에게도 많은 도움을 받고 사랑받을 조건이다. 장기목회에 실증자와 불만자가 많아도 50%이상이 그의 폔임을 알아야한다.

그런고로 원로목사 때문에 힘들다는 말은 입 밖에 내지말라.

4) 원로목사 때문이란 불평하는 자는 그 교회를 담을 그릇이 못되는 자가 부임 하였다. 원로목사 후임의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원망하며 물러가는 그 목회자가 원로 목사 없는 그 만한 규모와 역사를 가지고 당회가 구성되어 있는 어떤 교회에 부임 하였어도 그 사고가 승화되지 않는 이상 그 목사는 원로없는 그런 교회를 감당 할 수 없는 자이다.

목사는 자기 그릇 이상의 양을 담을 수가 없다.
목회 학에서 교회는 목사만큼 자란다고 한다.
그 교회를 담을 그릇이 못되는 자가 그 교회에 후임이 되어 고통하고 갈등한다면 잘난척 거만 떨지말고 자신의 그릇에 대하여 깊이 자각하고 반성하고 부족을 시인하고 낮아져서 섬기는 종이 되어야 한다.

비범한 목회철학을 갖지 못한 자는 20년 이상의 그 “거대하고 광활한 자리를” 물려받았다 할지라도 지탱할 수 없다.

원로목사 후임 자리를 잘 지탱하며 연속하는 후임자는 그릇이 크며 첫째 선배에 대한 예의가 바른 비범한 목회자이다. 요즈음 젊은 후임들은 선배 원로에 대하여 무례하며 예의가 부족한데서  선배를 섭섭게하며 많은 문제를 야기하는 것 같다.
귀찬 스러운 존제, 간섭하는 존제, 안보이는 존제가 되었으면!!!!!!!!!!!!!. 이는 배은 망덕 자이다.

앞으로 필자는 원로목사에 대해서만 아니고 장로와의 인간관게 예의 범절에 대하여도 심도있게 다루려고 한다.

 

출처: USA 아멘넷/장달윤 목사

(창세기 43장) 잃게 되면 잃으리라.

“애증(愛憎)”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랑과 증오”라는 말이지요. 한 사람이 또 다른 한 사람에게 견딜 수 없이 불타오르는 사랑과 또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증오의 감정을 동시에 가졌다면, 마음속에 그 서로 다른 두 가지의 감정이 격렬하게 소용돌이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이러한 주제를 다룬 소설이나 영화도 많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막히게 잘 만든 소설이나 영화라도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애증의 스토리, 그 참혹한 십자가의 피로 클라이막스를 이루는 성경에 비길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죄인이 된 인간을 얼마나 미워하셨는지, 그러나 또한 얼마나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셨기에 아들을 내어 주셨는지, 이보다 처절한 애증의 스토리가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만일 당신이 요셉이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은가요? 열일곱 살 앳된 나이,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브엘세바에서 세겜, 그리고 다시 도단까지, 그 먼 길을 형들을 찾아갔는데 그 형들이 자기를 죽이려고 하고, 옷을 벗기고 구덩이에 던져 넣고, 그리고는 노예로 팔아버린 그 일을 어찌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울부짖는 동생에게 잔혹하게 그 일을 해치운 형들, 그리하여 아버지를 영영 다시 볼 수없는 먼 곳에서 비참한 노예생활과 옥살이를 해야 했던 긴 세월, 그렇게 꽃다운 나이를 캄캄한 어둠 속에서 보내야 했던 그 일이 어찌 잊어질 수 있겠습니까?
 
요셉은 그 형들을 다그쳐 정탐일 것이라고 하면서 붙잡아 삼일동안 가두었지만 그 정도로 그 사무친 원한이 풀릴 리는 없었을 것입니다. 시므온을 다시 잡아 결박하여 가둔다고 마음이 가벼워지거나 위로가 될 리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에게는 아버지와 동생 베냐민을 향한 불타는 그리움과 사랑이 더욱 회오리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그렇게 원망스럽고 미운 형들이라 할지라도 한 핏줄이요 지금 기근으로 고통 받으며 식량을 구하러 온 그들을 매몰차게 내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요셉은 혼자 방에 들어가 남모르게 울며 고통스러워합니다. 그리고 시므온을 남겨두게 하고 나머지 형제들에게는 말째 동생을 데리고 다시 돌아오라 하면서 그 속에 그들이 가지고 온 돈뭉치와 식량을 채운 자루들을 지워 가나안으로 돌아가게 합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너희가 말째 동생을 데리고 오지 아니하면 내 얼굴을 보지 못 하리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아버지 야곱은 베냐민을 결코 보내려고 하지 않고 형들은 식량을 구하러 내려오지를 못 합니다.
 
말째 동생을 데리고 오라는 것, 숨겨놓은 가장 귀한 것, 가장 아끼는 것을 내어놓으라는 요셉의 요구는 요셉이 당한 고통, 요셉이 겪은 배신과 버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지도 모릅니다. 야곱의 베냐민에 대한 집착은 가장 귀한 것은 내어놓지 않으려는 죄인 된 인간의 심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도 가장 귀한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 주님의 얼굴을 보지 못 할 것입니다. 주님은 아버지의 품을 떠나 요셉보다 더욱 낮은 곳으로 내려오셨고 요셉에 비할 바 아닌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의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장 귀한 것, 가장 아까운 것만은 숨기고 내어놓지 못 하고 포기하지 못 하면서 헛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가장 아까운 것을 포기하지 못 한다면, 주님 앞에 내어놓지 못 한다면 생명을 얻지 못 할 것입니다. 다시 애굽에서 가져온 식량마저 떨어져 갑니다. 그러나 야곱은 베냐민을 포기하지 못 합니다. 보다 못 한 유다가 말합니다. “아버지, 베냐민을 포기하세요, 지체하지 않았더라면 두 번 갔다 왔으리다.” 그렇습니다. 주님 앞에 온전히 포기해야 삽니다. 그 포기와 내려놓음은 일찍 할수록 좋습니다. 미루면 미룰수록 고통만 더 할 뿐입니다.
 
계속되는 기근으로 목숨이 위태로워지고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되자 결국 야곱은 베냐민을 붙잡고 있는 것을 포기합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하라. 그리고 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준비하라.” 그들은 유향(myrrh), 꿀, 향품, 몰약, 비자(피스타치오 너트), 파단행(아몬드) 같은 가나안 땅의 소산과 귀한 선물을 준비하고 돈(은)도 배나 준비해서 다시 애굽으로 향하게 됩니다. 야곱은 모릅니다, 그 아들들도 모릅니다, 그들이 이렇게 하여 동방박사들이 아기예수님, 곧 구세주에게 드린 예물과 비슷한 예물을 준비하였다는 사실을. 야곱은 베냐민을 데리고 가라 하면서 말합니다, “네 아우도 데리고 가라. 잃게 되면 잃으리라.”

‘잃게 되면 잃으리라’는 야곱의 말은 ‘죽으면 죽으리라’ 하며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았던 에스더의 말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것은 나의 생명을 포기하고 온전히 맡기는 일입니다. 이러한 결단 없이는 아무도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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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정책 '잘못' 7차례 사용, 존경 표하면서도 혹평
냉랭한 美-獨관계, 순탄하지 않은 美-EU관계 전망도

(베를린=연합뉴스) 고형규 특파원 = 냉전 시기 미국 데탕트 외교와 국제질서 대변화를 주도한 '외교의 달인'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어느 순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미국 대통령이) 유럽과 대화하고 싶을 때 누구에게 전화해야 하는가?"

유럽 최대 발행 부수를 자랑하는 독일 대중지 빌트가 영국 일간지 더타임스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을 그의 뉴욕사무실에서 합동 인터뷰할 때 카이 디크만 빌트 발행인이 키신저 전 장관의 이 말을 옮기며 트럼프 당선인에게 물었다.

16일(현지시간) 자 빌트에 실린 문답을 보면, 디크만 발행인이 "누구 전화번호로 전화하겠는가"라고 묻자 트럼프 당선인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라는 대답을 기대한 질문임을 눈치채고는 메르켈 총리와 유럽연합(EU)에 대한 자기 생각을 가감 없이 밝힌다.

트럼프 당선인은 "나는 메르켈이 (세계의) 가장 중요한 정부수반들 중에서도 현저하게 중요한 한 사람이라고 말하겠다"고 답하고서 묻지도 않은 EU로 화제를 돌려 "영국을 보라, 그리고 EU를 보라"면서 "EU는 독일이다. EU는 독일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그러고는 영국의 EU 탈퇴를 뜻하는 브렉시트를 "현명한 결정"이라고 보는 자신의 관점을 적극적으로 방어하고 재차 브렉시트 결정 이후의 상황을 두고 "잘 돼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디크만 발행인에게 "메르켈 총리는 잘 지내고 있느냐"라고 안부를 묻는 걸 잊지 않은 트럼프 당선인이지만, 이미 메르켈 총리의 '레거시'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개방적 난민정책에 대해서는 혹평을 쏟아냈다.

임기말 고별 방문지로 베를린을 찾아 총리직 4연임 도전에 나선 메르켈 총리를 만나서 "나라면 메르켈 총리에게 한 표를 던지겠다"고 했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미국의 차기 대통령 트럼프 당선인이었다.

트럼프 당선인은 "당신도 오바마처럼 메르켈에게 표를 주겠느냐"라는 질문에 "글쎄, 일단 나는 (오는 9월 독일 총선에서) 메르켈의 경쟁자가 누구인지 모르고, 또한 메르켈 역시 모를 뿐 아니라 그를 만난 적도 없다"고 운을 뗐다.

이어 "그가 훌륭한 지도자라는 느낌이 있지만, 그러나 그는 최악의 재앙적 실수를 했다"고 말하고 "모든 불법자를 독일로 유입되도록 허용한 것"이라며 메르켈표 난민정책에 대한 평소 생각을 밝혔다.

조부가 독일 출신인 트럼프 당선인은 그러면서도 앞서 문답에서 독일을 자랑스럽게 여긴다거나, 독일은 자신에게 전적으로 특별한 그 무엇이라고 말한 것처럼 메르켈 총리에 대해서도 "존경하고, 좋아한다"라고 호감을 거듭 표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그러나 어디 출신인지 아무도 모르는 난민을 받아들인 것은 "큰 실수였다"고 또 지적하는 등 모두 7차례 '실수(잘못·mistake)'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는 특히, "사람들이란 실수를 하는 것이지만, 그건 아주 큰 실수였다고 나는 생각한다"고도 말하고 독일로 가장 많은 난민 유입 부담을 안긴 시리아에 '안보(안전) 구역'을 둬 난민 문제에 대응했어야 대가를 덜 치렀을 것이라는 견해도 내놓았다.

트럼프 당선인은 "당신에게 전형적인 독일다움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고는 "나는 '질서정연함'(orderliness)을 선호하고, 힘(strength)을 좋아한다"고 답했다.

앞서 일요신문 빌트암존탁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니트를 통해 조사한 결과로는 응답자의 68%가 트럼프 취임이 미-독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리라 전망했다. 반대로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 쪽은 16%에 불과했다.

un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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