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데살로니가 교회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왜 서로 사랑하였는가.
그리고 우리는 왜 서로 사랑하지 못하는가.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예수님께서 완벽하셨듯이 예수님의 복음의 말씀은 온전한데
복음 자체는 순전(純全)한데
복음이 전파되기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혼잡하게(corrupt)하여
변경시켰고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데살로니가에 복음을 전한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For we are not as many, which corrupt the word of God:
but as of sincerity, but as of God, in the sight of God speak
we in Christ. 고린도 후서 2:17]
그가 전한 복음은 불순물이 없는 순전함으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 같이, in the sight of God speak
we in Christ,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였다.

우리가 믿음이라 믿는 고정관념과 전통에는
우리를 성장케 하여 순종하고 우리의 힘이 되었던 헌신의 실체인 ‘믿음’은
믿음이라 믿고 우기던 믿음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혼잡케 한
불순물이 있었다.
시대마다 굴절된 신학으로 사상으로 포장된 믿음이 있었고
시대마다 변절된 신앙의 공동체라는 교권을 추구하는 교회가 있었으며
시대마다 신앙을 의식(儀式)화 한 종교가 된 의식이 있었기에
이를 보지 못하면 영적인 장님이 되어 분별력을 잃어버리기에
흔히 말하는 영안의 눈을 뜨려면
성경을 읽으며 묵상하고 성령님께서 인도하기를 간청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가슴에 도장을 새기듯이 그 사랑으로 인치고
하나님 앞에서 서듯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말하고 실천하는 믿음의 눈을 떠야 한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
Open thou mine eyes, that I may behold wondrous things out of
thy law  시편 119:18]

누구든 복음을 소식을 듣기 전 까지 맹인이었기에
예수님의 말씀을 더 듣고 더 묵상할수록 눈이 밝아지기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의 눈을 고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씻으라” 
씻고 밝은 눈이 된 맹인처럼 
불안과 어려움 더하여 절망하는 어두운 시간에 머물더라도 잠시인 것을,
그로 인하여 연단되어 소망을 알게 되고 현실의 소망이 됨을
눈이 밝아지면 보인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시기전 하신 말씀처럼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As long as I am in the world, I am the light of the world.
요한복음 9:5]
빛으로 오셔서 빛을 보여 주시고 빛이라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다면
빛이 된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Ye are the light of the world.
A city that is set on an hill cannot be hid. 마태복음 5:14]
빛의 자녀가 되면
자기 자신의 교만과 자랑의 수치가 밝게 보여서
자신의 믿음의 불순물을 떨쳐버리고
더하여 세상을 분별하여 바라볼 수 있어
세상이 보이는 만큼 분별력이 생기면
세상의 음모론에 빠지지 아니하고 오히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고
더하여 고국의 교회와 이민 교회를 바라보면
믿음으로 성(城)을 쌓았던 성은, 굳고 단단하여 견고(堅固)하게 보이였던
성은 무너지고 황폐하여진 모습이 보이면
예레미야의 심정이 될 수밖에 없다.
[내 눈이 눈물에 상하며 내 창자가 끊어지며 내 간이 땅에 쏟아졌으니
이는 딸 내 백성이 패망하여 어린 자녀와 젖 먹는 아이들이 성급 길거리에
기절함이로다.  예레미야 애가 2:11
딸 내 백성의 파멸로 말미암아 내 눈에는 눈물이 시내처럼 흐르도다. 3:49]
예레미야의 눈물
그 같은 눈물을 흘리지 않는 다면 당신은 아직 눈을 덜 씻었기에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그 물음에 오늘도 여전 하시며
그 대답을 오늘도 요구하신다.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라.
말씀의 시작은 ‘청함’ 이었고 청함의 선포는 ‘천국’의 선포로 비롯되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천국’을
종말에 이룰 ‘종말론’ 만으로
해석하는 신학자와 선생들이 교회사의 시대마다 수 없이 많았고
지금도 셀 수 없이 수없이 많지만 옳게 보이는가.
이 세상은 단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시험대 인가?
이 세상과 천국은 인간의 시간의 개념으로는 분명히 분리되었지만
믿음으로 바라보면 분리가 아닌 사건일 뿐이며
영원하시고 영원하실 하나님은
사람과 영원히 함께 하시길 위하여 태초에 계획하셨다.
그러기에 창세기의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기에
모세에게 이스라엘에게 전하게 하신 하나님은
“거룩한 백성이 되게, a kingdom of priests
거룩한 나라가 되게, an holy nation”
거룩한 백성이 되어 거룩한 나라를 이루는
그래서 “주께서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는 거룩한 뜻이
땅위에 이루어지고 이루려는 공동체가 천국의 모형이라서
순전하고 온전한 나라가 올 때 까지
거룩한 백성이 되게
거룩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시기에,
구원을 받은 자들은 이미 거룩한 나라의 백성이며
하나님 나라의 자녀이며
이 세상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시험대가 아니며
죽음마저도 이 세상 생과 분리가 아니라서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이사 가는 장소의 개념이 아니라
인간의 시간의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연속적인 우리의 사건이며 연속된 영원의 개념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Our friend Lazarus sleepeth; but I go,
that I may awake him out of sleep.  요한복음 11:11]
같이 영원히 함께 할  ‘우리 친구’ 라 하셨으며
죽음을 ‘잠들었도다.’ 하셨다.

그래서 시편저자는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 라 했다.
복음은 놀라운 것을 보게 하는 힘이며 능력이라서
성령님과 함께 하는
능력(the power of the Holy Spirit)이며
권능(power of charity)이라서
그리스도의 사랑 ‘charity, 가 얼마나 마음의 중심에 간직하였는지
그리스도의 사랑 ‘charity, 가 얼마나 가슴에 박혔는지
그 분량만큼, 그리스도의 사랑의 분량만큼이, 믿음의 분량이고
그 분량만큼, 상대를 사랑할 수밖에 없고
그 분량만큼, 보이고, 분별할 수밖에 없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서로 사랑하는 만큼
그 만큼, 세상 사람들이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인 줄 알기에
그 분량만큼이 이 세상을 움직이는 그리스도인들의 힘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And from the days of John the Baptist until now the kingdom of heaven suffereth violence, and the violent take it by force.  마태복음 11:12]
침노(侵擄)는 개인과 개인의 침노를 의미하지 아니하며
다른 나라를 불법적인 힘을 사용하여 쳐들어간다는 뜻으로
전쟁이라 할 수 있으며 세상을 향한 놀라운 의미로 혁명(revolution)이라 할 수 있고 그리스도인들의 능력이고 권능이며
성령님께서 주시는 공동체의 동력(動力)이기에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이렇게 놀라운 소식인 복음을 전해주었고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 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For if we believe that Jesus died and rose again,
even so them also which sleep in Jesus will God bring with him.
데살로니가 전서 4:14]
이 복음의 놀라운 소식을 들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그리스도 주 예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성령님께서 주시는
권능(power of charity)을 받고 하나님 나라를 보았으며
하나님 나라, 천국의 모형을 데살로니가에 세웠으며
성령의 능력(the power of the Holy Spirit)으로 서로 사랑하여
주위에 소문이 나서 데살로니가와 주위까지 천국의 침노를 당하게 하였기에
세상을 바꾸는 힘과 능력의 복음을 간직한 성도들 이었기에
데살로니가 교회는
데살로니가에서 이룬 천국의 모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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