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말 시리즈 ③ 하나님을 대적하는 말을 하지 말자

지난 해 10월, 이철호 목사가 인도하는 부흥성회가 "입술의 열매로 복과 행복을 누리고 삽시다(잠언 18:20-21)"라는 주제로 뉴욕과 뉴저지에서 열렸다. 10월 2일부터 3일간은 뉴저지 필그림교회에서, 16일부터 3일간은 뉴욕만나교회에 열렸다. 강사 이철호 목사는 예장 합신 총회장을 역임했으며, 강성장로교회 담임목사로 33년동안 목회를 하고 있다.

이철호 목사는 성회를 통해 저주 받는 말, 축복을 받는 말, 행복을 주는 말, 불행을 주는 말에 대해 설교하며, 신앙생활을 할때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선포해 나갔다. 이 목사는 성경적인 근거와 함께 자신의 경험을 숨김없이 나누어 큰 도전을 주었다. 이 목사는 우리들은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말을 하는데 ①판단하는 말 ②비방(비판)하는 말 ③대적하는(거스리는) 말 ④원망(불평)하는 말 등이 있다고 전했다. 신년에 사용하리라고 저장해 놓은 파일을 통해 4번에 걸쳐 신년 시리즈로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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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교회 성회에서 말씀을 전하는 이철호 목사

교회 지도자를 대적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
교회는 다수결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신본주의


민수기 16:1-3은 고라 이야기이다. 고라는 250명의 장로들을 규합해서 당을 지어 모세에 대적한다. 자신들도 같은 제사장 지파인데 왜 모세와 아론이 마음대로 하는가. 우리 의견도 반영하라는 이야기이다.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이만큼 많은 사람들이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위해 세력을 규합해서 모세앞에 나왔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 사건을 놓고 "너와 너의 무리가 다 모여서 여호와를 거스르는도다(민수기 16:11)"라며 "거스르다"라는 단어를 사용하신다. 그리고 이들을 멸하셨다.

교회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신본주의이다. 소수보다는 다수, 다수보다는 진리이다. 교회는 100명 가운데 99명이 이렇게 하자고 해서 하면 안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다수결 원칙에 의한다. 그러나 교회는 99명이 이렇게 하자고 해도 한 명이라도 진리가 아니라면 귀담아 들어야 한다. 그러니 항상 성경 말씀에 맞는가 하나님의 말씀에 맞는가를 확인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다수결로 하면 왜 문제인가. 다수가 진리편에 선 역사가 별로 없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는 것이 쉬운가 아니면 불순종하기가 쉬운가. 불순종은 하지말래도 자연스럽게 한다. 그런데 순종하려면 기를 쓰고 해야 한 번 순종할까 말까 한다.

그만큼 우리는 타락한 인간이기에 구조가 비뚤어져 있다. 우리는 이미 부패한 인생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진리의 길은 좁은 길이고 좁은 길은 찾는 자가 적다고 했다. 기독교 역사상 다수가 진리편에 서는 경우가 별로 없기에, 다수결로 하면 교회는 타락한다. 기독교 역사상 항상 소수가 진리를 선택했다. 고라의 사상은 다수결로 하자는 것이다. 자신들의 의견을 반영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셨고, 그것에 순종하라고 하셨다. 그런데 고라는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들의 의견이라며 이를 반영하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타락이다. 이것을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라고 표현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고 나온 것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너와 너의 무리가 다 모여서 여호와를 거스르는도다 아론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너희가 그를 원망하느냐(민수기 16:11)" 그러면서 결국 모세를 대적했는데, 여호와를 거스르다고 했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신데, 우리 의견대로 하자고 나오는 것이 오늘날 고라이다. 오늘날도 당을 짓는다. 자신들의 의견대로 교회가 가도록 하자고 한다. 그것이 바른 길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를 거스리는 자들은 엎으신다. "주께서 주의 큰 위엄으로 주를 거스르는 자를 엎으시니이다 주께서 진노를 발하시니 그 진노가 그들을 지푸라기 같이 사르니이다(출애굽기 15:7)" 그리고 진노를 하신다고 했는데, 무서운 이야기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40-50년해도 하나님의 축복에서 벗어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을 대적하면 하나님이 진노하신다.

진정한 교회의 개혁은 무엇인가?
어떤 개혁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가?


교회에 문제가 있으면 비판하지 말라.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가 직접 나서지 말라는 것이다. 저는 4대째 믿으면서 문제있는 목사를 장로들이 쫓아내는 것을 보았고, 문제있는 장로를 젊은 집사들과 청년들이 쫓아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일에 앞장선 사람들이 잘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들은 다 똑 같은 이야기를 했다. 교회를 위해서, 개혁을 위해서, 교회를 정화시키기 위해서 한다고 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가. 이유가 있었다. 그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이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다.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로마서2:8-9)" 그래서 신약에서도 당을 짓지 말라고 하신다. 지기 의견을 관철하기 위해 당을 짓지 말라고 하신다. 당을 짓는 사람에게 진노와 분노, 환난과 곤고가 있다고 했다. 장로교이면 목사와 장로가 당회를 구성한다. 당회는 어떤 주제를 놓고 당회원들의 생각을 묻는 것이 아니라 항상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계속 묻고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도록 노력해야 하고, 드러나면 모든 성도들에게 우리가 이 문제를 놓고 기도하고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은 결과는 이것이라며 동조하며 같이 가자고 하는 것이 당회이다. 그래서 정말 당회는 기도를 열심히 해야 한다. 기도를 안하고 당회하면 꼭 시험에 들고 마귀에게 지게 되어 있다.

기도를 안하고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 자기 주관대로 주장하다 관철이 안되면 사람들을 규합해서 당을 짓는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이 진노하신다고 했다. 장로님들이 세워놓았다면 당회를 존중하라. 그리고 당회는 더욱 책임감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도록 결정해야 하고 성도들은 그것에 순종하라는 것이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히브리서 13:17)"

특히 인도하는 자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고 했다. 그리고 인도하는 자들이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고 한다. 목사와 장로가 여러분때문에 근심으로 목회를 하면 여러분에게 유익이 없다는 것이다. 지도자를 위해 기도할때 함께해서 감사하다는 기도가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유익이 없다. 하나님이 세우셨지만 여러분들이 장로를 세웠다. 인도자들이 즐거움으로 일하도록 여러분들이 도와주어야 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대적하지 말라고 한다. 성경은 말다툼을 하지말라고 한다. 교회에서 분쟁이 생기면 유익이 하나도 없다. 좀 바보가 되더라도 말다툼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교회에서 자기주장을 관철하겠다고 말다툼이 일어나면 그것을 보고 초신자들은 시험들고 실족하고 교회밖에서 안온다. 전도문이 막힌다. 그런 자리에 가지 말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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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교회 성가대

목사와 장로가 타락할 수 있다.
그들을 심판하시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


"왕이 좌우의 호위병에게 이르되 돌아가서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죽이라 그들도 다윗과 합력하였고 또 그들이 다윗이 도망한 것을 알고도 내게 알리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나 왕의 신하들이 손을 들어 여호와의 제사장들 죽이기를 싫어한지라(사무엘상 22:17)" 다윗을 도운 제사장들을 사울이 죽이려고 하자 신하들이 안나선다. 여호와의 제사장들 죽이기를 싫어했다고 나온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것이 왕의 명령을 어기는 것 보다 더 무서운 것이라는 것이다. 안나서니 이방인이 나서 다 죽인다.

"그리 한 후에 사울의 옷자락 벰으로 말미암아 다윗의 마음이 찔려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삼상 24:5-6)" 동굴에서 다윗은 사울을 죽일 기회가 있었으나 다윗은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셨다고 말한다. 악령이 든 왕이라도 하나님이 세우셨다면 자신이 손을 댈 수 없다며 말씀을 붙잡는다. 신앙은 다른 것이 아니라 말씀을 붙잡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니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 것은 성경적인 신앙이 아니다.

"다윗이 아비새에게 이르되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하고 다윗이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은 죽을 날이 이르거나 또는 전장에 나가서 망하리라(삼상 26:9-10)" 이번에는 완전히 포위가 되었는데 하나님께서 사울왕의 군대를 다 잠들게 하셨다. 다윗의 부하들은 하나님께서 죽이라는 뜻이라고 해석하나 다윗은 기름부음 받은 자는 타락한 왕이라도 내가 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심판하신다고 했다. 죽여도 망하게 하는 것도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에서도 적용할 수 있다. 오늘날 교회 지도자들이 타락할 수 있다. 목사와 장로가 타락할 수 있다. 그래도 그들을 심판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이다.

교회를 개혁한다고 나선다면 월권이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부정하는 것


그러면 이것이 기름부은 왕에게만 해당되는 것인가. 아니다. 성경은 악한 부자 나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나발은 심보가 비뚤어진 부자이다. 나발이 다윗 부하들을 짐승 취급을 하고 쫓아냈다. 그 소식을 들은 다윗이 그를 죽이려고 쫓아갔으나 나발의 부인이 음식을 준비하고 "왕이 될 사람이 악한 사람의 피를 뭍히면 되겠는가"라고 만류한다. 다윗은 그녀를 지혜롭다고 칭찬하며 직접 복수하는 것을 막았다고 말한다. "또 네 지혜를 칭찬할지며 또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오늘 내가 피를 흘릴 것과 친히 복수하는 것을 네가 막았느니라(삼상 25:33)" 결국 하나님이 치신다. "한 열흘 후에 여호와께서 나발을 치시매 그가 죽으니라(삼상 25:38)" 인생의 재판장은 하나님이시다. 여러분이 교회를 개혁한다고 나서면 그것은 이미 월권이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부정하는 것이고, 오늘도 심판자로 여러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부정하는 행위이다. 성경은 그것을 기록하고 있다.

"나발이 죽었다 함을 다윗이 듣고 이르되 나발에게 당한 나의 모욕을 갚아 주사 종으로 악한 일을 하지 않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나발의 악행을 그의 머리에 돌리셨도다 하니라 다윗이 아비가일을 자기 아내로 삼으려고 사람을 보내어 그에게 말하게 하매(삼상 25:39)" 다윗은 나발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중요한 고백을 한다. 종으로 악한 일을 하지 않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했다. 다윗은 친히 복수하는 것을 '악한 일'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자기에게 악한 일을 행한 사람을 직접 복수하고 원수를 갚는 것이 악한 일이라고 한 것이다. 베드로전서 3:9에도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오히려 축복해 주십시오. 그것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리도록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씀하고 있음을 기억하라.

앞장서 문제있는 교회 지도자를 쫓아내고
버려질 부지깽이로 사용되지 말라


제가 이 부분을 교회에서 자라면서 많이 보았다. 어느 교회 장로의 처신에 대한 상담을 받았다. 교회 담임목사가 심각한 사고를 친 것을 장로들이 알고 당회 장로들이 회의를 해서 사건이 드러나면 전도의 문도 막히기에 조용히 사고친 목사님을 다른 목회지로 가게하고 새로운 분을 담임목사로 모시자고 했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장로에게 "똥친 막대기 노릇하지 말라"고 말해 주었다. 시골에서 해가 넘어가면 엄마가 먼저 들어와 마당에 아이들과 동물들이 싼 똥을 치우는데 사용하는 막대기는 다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똥을 버리면서 같이 버린다.

구약에는 '부지깽이' 또는 '몽둥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스라엘이 타락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때리시는데 부지깽이로 이방나라를 들어 사용하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매를 들어 회개하게 하시고, 몽둥이와 부지깽이로 사용했던 이방민족을 멸망을 시키신다. 사용하고 벌하시는 것이다. 성경은 그들의 죄악이 차고 넘쳤다고 한다. 그 민족의 죄악이 차고 넘쳐서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시킬 민족 하나를 들어 사용하시고는 버리시는 것이다. 부지깽이는 아궁이 불을 피우는데 사용하는 것인데 사용하다 보면 점점 불이 붙어 짧아져 손이 뜨거우면 아궁이에 던져버린다. 쓰고 버려지는 것이 부지깽이이다. 그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분명히 잘못했지만 여러분들이 잘못한 것을 치우는 도구가 되면 안된다. 자기는 의롭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이 보실때는 버릴 사람을 한 번 들여 사용하시는 것이다. 가롯 유다는 제자로 부름을 받았지만 마귀가 들어가니 안좋은 역할을 맡았다.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기를 축복한다. 오늘도 사탄은 교회와 가정을 불행하게 만들기 위해 역사하고 있다. 그때 사탄의 도구가 되면 안된다. 깨어서 기도하기를 축복한다.

아버지의 간증이 주는 교훈
내가 가장 많이 교회를 생각한다고?


아버지는 어느 교회에서 초대 장로가 되고 같은 교회에서 장로로 은퇴하셨다. 어느 날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신다. 초대 장로가 되면서 앞으로 3년은 당회에 참여해서 듣고 배우겠다고 기도했다. 당시 담임목사는 아버지보다 10살이 젊었다. 당회에서 목사가 안건을 내놓고 두 장로의 생각을 물어보면, 아버지는 목사님 생각을 먼저 물어보고 목사님 생각대로 하면 좋겠다는 자세였기에 항상 목사님 생각대로 일이 진행됐다. 속으로는 저렇게 목사님 생각대로 하면 이런 문제가 생길텐데 걱정도 되었지만 3년간은 말하지 않기로 했으니 말을 안했다. 아버지가 예상했던 문제가 생길때도 있었다. 그런데 일이 진행될때 가만히 보니 아버지가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되어가는 것을 체험했다. 아버지는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자신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아버지는 직장에서 일을 해야 하니 하루종일 얼마나 교회생각과 교인생각을 하겠는가. 사업과 직장은 주님이 맡긴 사명으로 그것에 신경이 많이 쓰는 것이 정상이다. 장로가 하루종일 자기의 직업에는 신경을 안쓰고 교회를 걱정하고 하나님 말씀을 묵상한다면 그것은 안된다. 하루종일 교회와 말씀을 생각하는 사람은 빨리 신학교가서 목사하실 분이다. 장로는 하나님이 주신 직업에 충실해야 하고, 하루에 한두시간 교인과 교회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반면 목사는 생활이 계속 교회를 생각하는 것이다. 하루종일 교회를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는 목사와 두가지 일을 동시에 해야 하는 장로중 누가 하나님의 뜻을 더깊이 깨닫겠는가. 아버지가 경험하신 것이다. 아버지는 자신보다 젊은 목사가 자신이 생각하지 못한 생각을 하고 그것이 되어지는 것이 반복되게 보면서 하나님이 하시는 방법은 다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목사가 자신보다 더 훨씬 교회를 깊이 생각하고 자신이 못보는 하나님의 뜻을 보았다는 것을 획신하고, 3년이 아니라 은퇴까지 아니라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그날 울었는데 그 다음 말 때문에 울었다. 평생 아니라고 하지 않은 이유가 또 있었다. 인생은 심은대로 거두는데, 내가 목사에게 아니요 하면 내 자녀들 인생에서 아니요가 나올까 싶어서 그렀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울었다. 우리 교회 당회에는 장로 21분이 있는데 당회에서 아니요가 없었다. 저는 제가 목회를 잘해서 그런줄 알았다. 아버지 말씀을 듣고 눈물이 흘렀다. 우리 아버지가 심었구나.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아니라고 할 것 없다. 내가 정말 담임목사보다 더 교회를 깊이 생각하고 있고 더 많은 시간을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고 있다면 아니라고 하라. 그러나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는 사람이라면 성령은 하나님과 통하게 되어 있다. 내 생각을 이야기하지 말라. 그것처럼 교회가 위험한 것이 없다. 묵상하고 기도한 다음에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것을 서로 고민하고 같이 이야기하는 것이 당회이고 제직회이다. 그렇게 가기를 축복한다.

ⓒ 아멘넷 뉴스(USAamen.net)

(창 45) 해후

 

양식을 사러 온 형제들을 짐짓 모르는 체 하면서 아버지의 안부를 묻고, 동생 베냐민을 데리고 오게 하고, 은잔을 자루에 숨겨 넣었다 적발하는 방법으로 베냐민을 돌려보내려 하지 않은 요셉, 그 요셉의 속마음은 어땠을까요? 자기를 죽인 거나 마찬가지인 형제들을 용서할 수 없는 미움과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동생 베냐민을 향한 사랑.... 그 가슴은 얼마나 격한 감정들로 소용돌이 쳤을까요? 그러나 요셉은 냉정하게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드디어 요셉의 가슴은 더 이상 견뎌내지 못 하고 터져버리고 맙니다. 요셉이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그 격정을 억제하지 못 하여 물러가라고 소리치고 형제들 앞에서 방성대곡을 합니다.

무엇이 그토록 억제하고 눌러왔던 요셉의 가슴을 터뜨렸습니까? 그것은 유다가 요셉에게 들려준 아버지 야곱의 이야기, 아버지의 사랑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낳은 두 아들 중 형을 잃어버리고 남은 막내아들을 생명처럼 아끼는 아버지의 이야기였습니다. 아버지의 생명과 아들의 생명이 결탁되어 하나가 되었고 그 아들을 데리고 가지 못 하면 아버지는 죽을 것이라는 그 애절한 아버지의 사랑이었습니다. 그 아버지의 마음 앞에, 그 사랑 앞에 어찌 울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요셉의 가슴은 아버지로 의하여 터져버린 것입니다.

요셉이 형제들이게 모든 것을 밝힙니다.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나이까?” 형들이 놀라서 뭐라고 대답을 못 합니다. “내게 가까이 오소서.” 형들이 가까이 가니 말합니다.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앞서 보내셨나이다.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 그리고 요셉은 아직 흉년이 오년이나 더 남아 있으니 속히 가나안으로 올라가 아버지 야곱과 모든 식솔들을 모셔오라고 말합니다. 베냐민의 목을 끌어안고 웁니다. 또 형제들과 입 맞추며 안고 웁니다.

이 소식이 바로와 바로의 신하들에게 전해지자 그들도 기뻐합니다. 바로는 수레와 노새들과 양식과 온갖 좋은 것으로 준비하여 아버지와 식솔들을 모셔오라고 명합니다. 그리하여 형제들은 가나안으로 올라가 아버지에게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있고 애굽 땅 총리가 되어 있더라고 말합니다. 아버지 야곱은 이 황당한 말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아버지 야곱을 태우려고 보낸 수레를 보고서야 기운이 소생합니다. “족하도다. 내 아들 요셉이 지금까지 살았으니 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

눈물을 금할 수 없는 감격적인 해후입니다. 아버지 야곱은 아들 요셉이 죽은 줄로만 알고 얼마나 오랫동안 슬퍼하며 지냈습니까? 또 남은 베냐민마저 잃어버리는 줄 알고 얼마나 애를 태웠습니까? 형들은 요셉을 애굽으로 팔아버리고 나서 얼마나 양심의 가책을 받으며 아버지 야곱을 속이고 살며 또 얼마나 죄책감에 시달렸겠습니까? 요셉은 또 미움과 그리움과 고통의 긴 세월을 살며 아버지 야곱이 살아계시리라고 꿈엔들 믿었겠습니까? 이 모든 것들이, 모든 고통과 슬픔이 한꺼번에 녹아내리고 사라지는 것 같은 감격적인 해후!
아, 우리가 보혈의 공로로 모든 죄악과 고통을 벗고 하나님 아버지 앞에, 우리를 구하신 주님 앞에 나아갈 때도 이처럼, 아니 이보다 더욱 감격적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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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이민 행정명령에 중동권 美 선교사들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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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 퍼거슨 워싱턴 주 검찰총장이 시애틀 연방법원의 트럼프 대통령 행정명령 중단 결정에 환영하고 있다. 

     

    미국 反이민 행정명령이 기독교 선교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행정명령 대상국인 이라크, 시리아, 리비아 등 이슬람권 7개 국가가 속해 있는 중동 지역 민심이 악화되면서 현지에서 활동하는 미국 선교사들의 신변에 적색경보가 켜진 상태다. 

     

    중동 사람들은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전체 무슬림 혐오로 받아들여 미국인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특히 백인 선교사들은 아이에스(IS) 등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스트들에게 직접적인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흘러나오고 있다. 미국 선교단체들은 소속 선교사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사람 많은 곳에 다니지 말 것‘과, ’눈에 띄는 행동을 자제할 것‘ 등 지침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전세계적으로 논란이 뜨거운 트럼프 대통령의 反이민 행정명령은 최근 시애틀 연방 지방법원이 잠정 중단 결정을 내려, 효력이 정지된 상태다.

     

    백악관은 대법원에 상고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운 명령 작성을 포함한 다른 옵션을 갖고 있다고 말한 만큼 우회적 방법으로라도 이민 규제를 지속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한연희 ⓒ 데일리굿뉴스

     가져온 곳: USA 아멘넷

    최홍준 목사 "구별되어야 하는 목사의 위치와 권위"

     

    17회 목양장로 사역 컨퍼런스가 10월 1일부터 2일간 뉴저지 한소망교회에서 열렸습니다. 목양장로란 무엇입니까? "목사와 장로의 행복한 동행"이라는 모토에서 보듯이 권위적인 장로의 형태가 아니라 장로가 목회자와 같이 목양사역을 나누어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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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양장로 전도자 최홍준 목사

    컨퍼런스의 마지막 강의는 목양장로를 전파하고 있는 최홍준 목사가 했는데 그 강의제목이 "구별되어야 하는 목사의 위치와 권위"이었습니다. 그 강의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목양장로의 특성상 마지막에 그 강의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역시나 컨퍼런스를 마치며 소감을 밝힌 한 장로의 발언에서 그것이 나타났습니다. 그 장로는 강의를 들으며 장로가 목양사역을 하니 장로와 목사가 같은 계급이구나 하고 상당히 고무가 되었는데, 마지막 강의에서 목사와 장로의 틀린 점에 대한 내용을 들으니 혼돈이 된다는 발언이었습니다. 물론 농담도 포함된 발언이었지만, 목양장로란 장로의 본질을 회복하자는 것이지 결코 또 다른 계급은 아닙니다.

    강의는 흥미로웠습니다. 강의에 대한 시각을 바꾸어 보았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교회분쟁의 이유중 특히 목사에게 분쟁의 책임이 클때 어떻게 장로와 평신도들이 성경적으로 대처해야 하는지 강의에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최홍준 목사는 오늘날 교회분쟁의 90%는 목사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한 평생 목회를 하며 그동안의 경험한 바에 의하면 교회내 영적 질서만큼은 절대로 바로 세워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두 말씀은 상반된 내용입니다. 하지만 수없이 일어나는 교회분쟁속에서도 어떻게하든지 바른 방향으로 성경적으로 교회를 끌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 목사가 잘못해서 교회에서 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최홍준 목사는 멘토인 고 옥한흠 목사가 평신도에 대한 책을 인용하여 "교역자가 문제를 일으킨다고 해서 평신도가 교역자의 이런 행동때문에 상처를 입었다고 해도 그것이 교직제도로 걸고 하는 것까지 발전한다면 그들의 행동 역시 교권주의와 다를바 없고 최고의 법전인 성경앞에서 절대로 성숙할수 없을 것"이라는 발언을 소개했습니다. 또 목사직은 엄연히 그리스도께서 그의 교회에 허락하신 직분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목사가 문제를 일으켰다고 할지라도 그것에 대한 반응으로 장로들이 지나친 행동을 함으로 해서 교회에 혼란이 일어났다고 한다면 그 책임은 목사뿐만 아니라 장로들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최홍준 목사는 한평생 목회하면서 훌륭한 목사를 많이 만났지만 한 분도 온전한 분을 만나지 못했으며, 하나님을 제외하고 '온전한 사람'이란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사랑의교회 초기 부교역자로 사역하면서 한국교회의 투명성과 정직의 상징같은 옥한흠 목사와의 일화를 전했습니다.

    옥한흠 목사 같은 분도 부부싸움을 하여 갑자기 수요예배에 오지 않아 최홍준 목사가 대신 설교를 하기도 했습니다. 최 목사는 옥한흠 목사는 참 훌륭한 분이었지만 예수님만이 온전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온전하지 못하다 해도 목사는 하나님이 세우셨기에 하나님을 보고 그 권위에 순종하고 복종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잘못을 한 목사는 누가 책벌하는가 하는 궁금증이 들 것입니다. 최홍준 목사는 그것은 장로가 해야 할 역할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최 목사는 하나님의 역할과 인간의 역할을 구분하여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즉 심판하고 복수하고 다스리는 것은 하나님의 영역이고, 사랑하고 기도하는 것만 우리의 영역임을 알아야 한다고 전했습니다.

    최홍준 목사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많은 교회들의 분쟁은 교회 안에는 하나님을 대신하는 자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마치 하나님인듯이 인위적인 행동을 하는 목사, 그리고 자신이 재판관이 되어 목사의 잘못을 확대 생산하는 장로들을 일컫는 말일것입니다.

    최홍준 목사는 현실적으로 물론 목사의 잘못을 있어도 그와 같은 문제는 노회 총회에서 제도적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더 나아가 이에 대해 당신의 자녀에게 조언한 말씀을 소개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교회에서 목사의 불의한 것을 본다면 권위에 도전하기 보다는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도저히 교회가 시끄럽고 문제가 있어 은혜가 안되어서 견딜수 없다면 조용히 교회를 옮길지라도 다투고 싸우지말라고 했습니다.

    최홍준 목사는 강의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최 목사가 청소년 때 부흥회에 참석하면 부흥사는 바뀌지만 공통점은 주님의 종을 섬기면 복을 받는다고 말하는 것이어서 늘상 담임목사님과 짜고치는 고스톱같은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최 목사는 내가 주님을 만나고 난후 성경을 보면서 그러한 나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았다고 했습니다.

    어떻습니까. 시니컬한 평신도는 최홍준 목사도 다른 목사들과 같이 짜고 고스톱을 친다고 생각할수 있을 것입니다. 최홍준 목사는 이 강의에서는 그렇게 접근할수 밖에 없었다고 믿습니다. 만약 목사를 대상으로 하는 목회자 세미나였다면 주님처럼 후배 목회자들을 강하게 탓했을 것입니다. 그러한 어려운 점이 있어서인지 최홍준 목사는 강의를 시작하며 이 강의는 조심스럽게 하는 강의이라고 했습니다.

    다음은 목사의 독특한 위치에 대한 성경말씀을 중심으로 한 강의요약입니다.

    목사와 장로의 관계정립

    주님의 몸된 교회, 주님의 피값으로 산 교회가 영적질서가 흩어지면 사탄이 난장판을 만들어 버린다. 한 평생 목회를 하며 그동안의 경험한 바에 의하면 영적 질서만큼은 절대로 바로 세워져야 한다. 이에 대해 성경이 어떻게 말하고 있으며 종교개혁자가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에베소서 4:11-12)"

    성경은 교직은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직분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칼빈은 "성직의 중요성은 교인들을 하나로 규합시키는 중요한 열쇠로 교회를 보호하는 역할로 주님 자신이 현림하시는 제도로 보고 있다. 그러므로 성직자체를 반대하는 행위는 용납할수 없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교역자에게 평신도와 다른 귄위가 있는가 하는 질문에 루터는 "목사와 다른 신자사이에 어떤 차이 특히 신분상의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특별한 명령으로 목사의 직분은 다른 것과 확실히 구별된 직분이다"고 말했다, 칼빈도 "목사는 단순히 교회에 고용된 직원처럼 취급을 당해서는 안될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으로서 사람들의 변덕에 이리 저리 끌려 다니지 않는 하나님의 종으로 인정을 받아야 할것이다"라며 동일한 이야기를 했다.

    하나님이 세운 종들을 존중하고 있는가?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로마서 13:1-2)"

    목사가 문제를 일으켰다고 할지라도 그것에 대한 반응으로 장로들이 지나친 반응을 벌임으로 해서 교회에 혼란이 일어났다고 한다면 그 책임은 목사뿐만 아니라 장로들도 져야 한다. 주님은 과거를 묻지 않으시고 현재를 중요시 하신다. 바로 알고 바로 하겠다는 자세를 가지면 기뻐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세운 권위에 대해 도전하는 것을 조심하라고 본문은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은 용서받지 못한다. 이런 안목을 가지고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함으로 하나님이 분노하심을 많이 볼 수 있다.

    민수기 12장에는 모세가 이방 여자인 구스 여인을 취하자 이를 비방하는 미리암에게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시는 내용이 나온다. 하나님은 모세를 지도자 세우시고 권위가 모세에 있다고 확실히 말씀하시고 진노하셨다. 왜 이런 사건이 기록되어서 오늘날 읽혀지는가. 하나님이 주신 권위에 대해 존중하라는 것이다. 그 권위를 존중하지 않고 도전하면 하나님은 당신을 향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용납하지 않으신다.

    사무엘상 2:30(...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구원받은 우리가 하나님을 존중하지 않고 무시하는 자가 어디 있겠는가. 여기에는 하나님이 세운 사람, 하나님이 세운 권위에 대해 무시하고 멸시하는 것을 하나님에 대해 경멸하는 것으로 본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히브리서 13:17(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인도하는 자에게 순종만 바라는 것이 아니라 복종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손해본다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세운 주의 종들이 성도들을 위해 얼마나 애를 쓰는가. 그러니 순종하고 복종하라는 것이다. 유익이 없다는 것은 손해본다는 말이다. 하나님이 특별히 관리하고 있는 대상, 그래서 영적인 질서를 잡기위함이 아닌가 생각한다.

    목회자를 귀히 여겨라

    목회자를 귀히 여기라고 하면 베드로전서 2:9(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을 들어 반박할수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셨을때 지성소에 휘장이 찢기면서 제사장을 통해서 하나님을 찾았던 사람들이 직접 하나님을 향하여 아버지라고 부를수 있는 특권을 가짐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그런데 여기에 무슨 차별이 있는가 반문한다. 할아버지가 예수믿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아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손자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한다면 이들은 다 같은가. 가정에는 질서가 있다. 우리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다.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을 하나님이 용납하지 않으신다. 영적질서가 교회에 섰을때 그 교회에 어둠의 세력이 침범할수 없다.

    나이가 어린 담임목사가 부임하는 경우도 있다. 40대 초반 부임했던 교회에서 13-15살 나이가 많은 장로님이 "목사님은 제 동생과 나이가 같습니다"라고 기를 죽였다. 그런데 그 연소함을 업신여김을 받지 않도록 하라고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했듯이 하나님이 주신 권위가 그 교회 질서를 바로 세운다. 영적질서가 잡혀있지 못한 교회는 메말라간다. 성경에 그런 극단적인 이야기가 많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명을 받고 처참하게 가난한 사르밧 과부의 집으로 가게 된다. 그 과부는 마지막 남은 음식을 엘리아에게 먼저 줌으로서 기적을 보게 된다. 정상적인 사람은 절대 할 수 없는 순종이다. 왜 이런 만화같은 기사가 성경에 적혀있는가. 만약 하나님의 사자에 대한 각별한 예우가 기적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하나님의 은혜이다. 나와 상관없다고 한다면 비성경적이다.

    한평생 목회하면서 훌륭한 목사를 많이 만났지만 한 분도 온전한 분을 만나지 못했다. 하나님을 제외하고 '온전한 분'은 없다. 온전하지 못하다 해도 목사는 하나님이 세우셨다. 하나님을 보고 그 권위에 순종하고 복종해야 한다. 그것이 다윗과 사울의 관계이다. 사울에게 쫓기던 다윗은 사울을 제거할 절호의 기회를 잡지만 사울을 죽이지 않았다. 다윗이 귀를 기울인 것은 주위의 여론이나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에 말씀이었다. 사울이 '하나님의 기름 부우심을 받는 자'라는게 이유였다. 그런 다윗을 하나님께서는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오직 칭함을 하셨다.

    하나님의 영역과 우리의 영역이 다르다. 하나님의 영역은 심판하고 복수하고 다스리는 것이다. 우리의 영역은 사랑하고 기도하고 배려하는 것이다. 그럴때 하나님이 대신해 주신다. 이와같은 영역을 잘지킨 사람이 요셉이다. 요셉은 애굽에 팔려가도 형이나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형들은 요셉이 복수할까 두려워 요셉을 찾아가 엎드렸을때 요셉은 형들에게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라고 했다.

    요셉은 하나님의 역할과 인간의 역할을 분명히 알았다. 심판하고 복수하고 다스리는 것은 하나님의 영역이고, 사랑하고 기도하는 것만 우리의 일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 정말 나의 아버지요, 내 인생을 주관하시고 나와 함께 하셔서 축복을 하신다고 믿는다면 그분의 영역을 침범하지 말아야 한다.

    세상을 사는데 우리는 믿음으로 산다. 주님을 의지하면서 말씀에 순종하며 살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이다. 교회안에 영적 질서를 세우는데 장로와 목사가 중심을 잡고 교회를 건강하게 영적질서를 잡아갈때 성령님이 함께 하실 것이다.

    ⓒ 아멘넷 뉴스(USAamen.net)

    Clergy Tax

      '주머니의 돈이 쌈지돈'이란 의미는 쌈지에 든 돈이나 주머니에 있는 돈이나 다 한가지란 뜻으로 그 돈이 그 돈이라서 구별할 필요가 없는 즉 공동의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머니의 돈이 쌈지돈'이라는 말을 개인의 비상금과 같은 뜻으로 알고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큰 교회 목사님들은 교회의 헌금을 마치 하나님이 목사에게 비상금으로 주신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목사는 헌금으로 '황제 골프'를 쳤다고 자랑합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오늘은 Clergy Tax 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미국인들은 법 앞에 기본적으로 모두 평등합니다. 세금내는데 목사나 장로나 집사나 구별하지 않고 기본적으로 똑 같이 IRS에서 개인 소득세에 대한 세금을 최소한 거두어 갑니다.

      개인 소득세가 $118,000 미만이면 연방 세금 15% 정도, 주 정부 세금 5% 정도, 그리고 노후 보장제도로 Social Security and Medicare Tax 가 있습니다. Tax 법은 전문적인 지식이 없으면 이해하기가 좀 복잡합니다.

      FICA는 고용주가 7.65% 를 부담하고, 고용인이 7.65%를 개인의 소득에서 공제하여 IRS에 15.3%를 세금으로 내는 것입니다. 고용주와 고용인이 반반으로 부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목사님들은 'dual status' 로 교회의 장이면서 고용인으로 볼 수 있습니다. 목사님들은 Self-employment Tax 를 내야합니다. 이것이 Clergy Tax 인데 FICA 와 비교하여 SECA 라 말합니다. 목사님들은 고용주이면서 고용인이기 때문에 15.3%를 IRS에서 세금으로 징수합니다.

      기업체의 사장은 영업 수입에서 지불하면 되지만 , 교회는 사업체가 아니기 때문에 결국은 교회가 헌금 수입에서 목사님들에게 15.3%를 Benefit 으로 지불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런 연유로 교회가 목사님들을 청빙할 때 목사님들의 Salary 와 Benefit 을 명확히 약정해 드려야 합니다.

      많은 교회가 목사님들의 은사비, 활동비, 사택비를 책정하여 은사비만 소득으로 생각하여 연방세금, 주정부 세금, CECA 나 FICA 15.3% 를 세금으로 내고 있는 줄 압니다. 그러나 목사님들의 SECA 는 '은사비 + 사택비' 의 15.3% 를 IRS 에 내야합니다.

      또한 많은 교회가 목사님들에게 활동비 명목으로 지출내역도 없이 고정적인 지급을 하면서 세금을 안내는데 불법입니다. 더 전문적인 내용은 회계사와 꼭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나가면서 결론은 교회 Tax 나 한국정치 문제가 많습니다.  특히 한국 정치는 문재인이 문제입니다. 대선주자 문재인씨가 쓴 안경은 한국산이 아니라 덴마크 린드버그 사의 명품안경입니다. 최소 아주 제일 싼게 60만원 이상입니다. 그래봤자 정치인의 색안경일 뿐이지 말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대통령이 국가발전의 기회를 매처럼 민첩하게 낚아채는 안목과 분열된 사회를 하나로 봉합하는 혜안을 지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http://www.freechurchaccounting.com/clergytax.html

      출처: USA 아멘넷/Cler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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