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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말 시리즈 ① 판단하는 말을 하지 말자

지난 해 10월, 이철호 목사가 인도하는 부흥성회가 "입술의 열매로 복과 행복을 누리고 삽시다(잠언 18:20-21)"라는 주제로 뉴욕과 뉴저지에서 열렸다. 10월 2일부터 3일간은 뉴저지 필그림교회에서, 16일부터 3일간은 뉴욕만나교회에 열렸다. 강사 이철호 목사는 예장 합신 총회장을 역임했으며, 강성장로교회 담임목사로 33년동안 목회를 하고 있다.

이철호 목사는 성회를 통해 저주 받는 말, 축복을 받는 말, 행복을 주는 말, 불행을 주는 말에 대해 설교하며, 신앙생활을 할때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선포해 나갔다. 이 목사는 성경적인 근거와 함께 자신의 경험을 숨김없이 나누어 큰 도전을 주었다. 이 목사는 우리들은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말을 하는데 ①판단하는 말 ②비방(비판)하는 말 ③대적하는(거스리는) 말 ④원망(불평)하는 말 등이 있다고 전했다. 신년에 사용하리라고 저장해 놓은 파일을 이제야 풀며, 4번에 걸쳐 신년 시리즈로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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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교회 성회에서 말씀을 전하는 이철호 목사

복받는 대신 저주를 받게하고, 행복대신 불행하게 만들고, 사명자가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게 만들기위해 마귀가 우리를 공격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말이다. 모세의 예를 들면 40년을 충성하고도 무엇때문에 가나안의 축복을 못받았는가. 시편 106편에는 재난이 모세에게 임했는데 모세가 그의 입술로 망령되이 말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모세가 홧김에 한마디를 한 것으로 인해서 40년을 충성하고도 재난이 모세에게 임했다고 했다. 말 한마디가 평생 신앙생활을 하는데 구원은 받지만 상이 없는 인생을 만들어 버린다.

그런데 악한 말이 무엇인가? 인생의 바퀴를 불태워 하루아침에 인생을 곤두박질하게 만드는 말이 무엇인가. 마귀가 우리 인생을 저주받게 하는 말을 하게 한다. 대표적으로 모세도 그렇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원망하다가 결국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었다. 그리고 민수기 14:28-29에 나오는대로 입술의 열매가 맺혀지는, 말하면 그대로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 말을 듣고 그대로 만드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그렇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말을 하면 저주가 그냥 들어온다. 마귀는 우리가 하나님을 대적하게 만든다. 사탄은 에덴동산에서 아담에게 하나님를 대적하라고 한다.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의 말을 듣지 말고 네가 인생의 주인이 되라고 한다. 이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대적하면 저주가 그냥 오는 것을 마귀가 알기에 우리를 속이는 것이다. 하나님을 대적하라고 아담을 속였던 것 처럼 오늘날도 하나님을 대적하라고 우리를 속인다. 그런데 여러분은 하나님을 대적한다는 생각을 꿈에도 안한다. 말에 대한 설교를 준비하다가 제가 깨진 사람이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말 ①판단하는 말

저주를 받게 하는 말중에 가장 먼저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말이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말중 첫번째는 판단하는 말이다.

유다서 1:8-10 "그러한데 꿈꾸는 이 사람들도 그와 같이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비방하는도다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비방하는 판결을 내리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을 보면 하나님이 천사장 미가엘이 사탄에게 조차 판결의 말을 하지 못하고, 다만 하나님이 너를 꾸짖지기를 원하신다 정도만 말했다. 판결의 말은 왜 하나님의 권위를 업신여기고 하나님의 영광을 훼방하는 것인가. 뭔지도 모르고 하나님의 권위를 업신여기고 하나님의 영광을 훼방하니 망한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를 알아야 한다. 배드로후서 2:10-11도 "특별히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는 형벌할 줄 아시느니라 이들은 당돌하고 자긍하며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들을 비방하거니와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들도 주 앞에서 그들을 거슬러 비방하는 고발을 하지 아니하느니라"라는 말씀이 나온다.

판결의 말이 무엇인가? 야고보서 4:11-12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을 보면 형제를 비방하지 말고 판단하지 말라고 한다. 그렇게 하는 자는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라 재판관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니 누군가를 비판하고 판단하면 내가 지금 재판장 노릇을 하는 것인데 재판장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다. 네가 무엇인데 판단하느냐는 것이다. 누구를 판결하는 말은 스스로 재판장이라는 것이다. 마귀는 우리를 교만하게 만든다. 선악과 사건은 하나님 자리에 서라는 것이다. 하나님과 동등한 자리에 서라는 것이다. 사탄은 아담에게도 시켰고 오늘도 우리에게 하나님 자리에 서라고 시킨다.

로마서 14:10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우리들은 누가 어떻고, 어느 교회가 어떻고 너무 쉽게 판단을 한다. 그리고 판결을 내가 내린다. 저는 이것이 죄인줄 몰랐다. 성경을 읽다가 이 부분이 너무 회개가 되었다.

고린도 전서 4: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는 주님이 오실때 까지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는 심판하러 오신다. 재판장으로 오시는 것이다. 주님이 오셔서 하시니 우리가 심판장과 재판장 노릇을 하지말라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권위를 업신여기는 것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훼방하는 것이고 죄가 되기에 하나님이 너를 형벌하실 수밖에 없기에 겁없이 판단하다가 망한다는 것이다.

칼춤이 특기인 목사가 새벽에 만난 하나님

84년에 교회개척을 했다. 개척해서 2-3년지나고 김창인 목사가 퇴계로에 있던 충현교회를 강남에 옮기면서 백 억을 들여 예배당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100억은 지금 1,500억보다 큰 돈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교인들에게 "유럽을 보라. 200년 걸려 수많은 돈을 들여 예배당을 지어 지금 어떻게 되었는가. 관광지로 레스트랑으로 공연장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무슨 예배당을 짓는데 그렇게 돈을 많이 들이는가. 그런 돈이 있으면 선교나 하시지"라고 말했다. 맞는 말인가 틀린 말인가?

그때만해도 천막을 치고 개척하는 교회가 가끔 있었다. 저는 상가에서 개척을 했는데, 천막을 치고 교회를 개척한 사람이 우리 동네에 있었다. 천막앞에 교회간판을 달았는데 옆에 신학교 간판도 같이 붙어있었다. 우리동네 천막 개척교회가 신학교까지 하는 것이다. 알아보니 신학박사라는데 6개월만에 목사가 되어 무인가 신학교를 세워 놓은 것이다. 무자격 목사가 무인가 신학교를 만들어 무자격 목사를 양산해 내면 한국교회 어떻게 되겠는가. 큰일나겠다고 생각했다.

1998년 새벽에 하나님이 내가 그동안 판단했던 말들을 하나씩 생각나게 하셨다. 당시 저는 30대 목사로서 주특기가 칼춤이었다. 성경본문을 가지고 우리의 문제가 무엇인가를 찾았다. 한국교회는 이것이 문제이고, 선배목사들은 이것이 문제이고, 장로들은 이것이 문제라고 비판하는 주특기가 칼춤이었다. 4대째 믿는 집안의 장로 아들로 태어나서 자라면서 부모님에게서 날마다 교회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한국교회가 왜 이렇게 썩어 냄새를 피우는지, 왜 거친 돌을 만들어 놓아 사람을 실족하게 하는지를 비판했다. 그런데 새벽기도를 하는데 하나님께서 환상은 아닌데 선명히 보여주셨다. 어떤분들이 산 하나를 깍아내는 것이다. 힘들어 하면서 혹은 죽어가면서 꼭갱이질과 삽질을 하며 큰 산 하나를 깍았다. 그런데 웅덩이에는 물이 섞어 냄새가 나고, 남겨진 돌멩이에 걸려 사람이 넘어진다. 그런데 옆에서 팔짱을 끼고 '이게 무엇이야, 한국교회가 왜 이 모양이야' 하고 있는 제 모습을 보았다.

한국교회가 문제있다고 생각하고 총신을 다니다가 합신에 간 사람이다. 한국교회를 개혁하자고 간 사람이다. 선배 목사들이 교권주의, 세속화되어 있고, 돈 밖에 모른다고 비판했다. 당시 합신 출신이 대부분 다 그랬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판단쟁이 목사가 본 자신의 모습

그런데 기도하는데 내가 팔짱끼고 '왜 그래' 하는 모습이 선명하게 잘 보였다. 그런데 성령께서 내 안에서 "철호야, 5천년 무속사상에 찌든 이 민족에게 불교와 유교사상이 찌든 이 민족에게 복음이 들어왔고, 그 복음의 힘으로 산 하나를 깍아낸 사람들이 다 너희 선배목사들 장로들 성도들이다. 그들은 순교하면서 그것을 다 깍아냈다. 그런데 웅덩이와 돌맹이 남아있고, 웅덩이에 물이 섞어서 냄새나고 돌맹이때문에 넘어지는 사람이 나오지. 그런데 네가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순교했겠냐. 처자식 다 포기하고 희생시키면서 순교를 했겠냐"고 말씀했다. 제가 그 아침에 통곡을 안할 수 없었다. "네가 그 시대에 있었으면 순교했겠느냐. 처자식 다 희생하면서 산하나 없앴겠는가. 선배들이 그렇게 했다. 남은 것은 이제 네 몫이다. 네가 이제 웅덩이 메꾸고 돌맹이를 치우고 기초하나 잘 파놓고 너는 끝내고, 이후에는 후배들이 건강하게 세우는 것이 내 뜻이 아니겠니!"

비판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책임을 지고 사는 것은 절대 쉽지 않다. 박윤선 박사는 신학교에서 우리들을 가르칠때 날마다 말씀하신 것이 있다. 박윤선 박사는 "개혁은 다른 사람을 개혁시키는 것이 아니라 나를 개혁하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앞에 사도 바울이 고백한 것같이 날마다 나를 쳐서 복종시키는 것이 개혁"이라고 했다. 비판은 쉽다. 그런데 비판이 무서운 죄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새벽에 하나님이 하나하나 생각나게 하시는데, 충현교회 김충인 목사님을 비판한 것이 생각났다. 상가에서 개척한 젊은 목사도 교회가 조금식 성장하니 나도 예배당을 지었다. 나도 두 번 지었다. 규모의 차이이지 나도 1만명 모이면 천억짜리 예배당을 지을 것이다. 문제는 내가 목회해 보니 나도 예배당 지었다. 내가 충현교회 김창인 목사를 비판했던 것이 떠 오르자 마자 잘못했다고 회개했다.

그런데 무인가 신학교 세웠던 그 목사가 생각나는데 성령께서 "네가 무엇인데 그 사람이 자격없다고 하니"라고 물으시자 "그래도 주님 좀 문제가 있잖아요. 그것은 문제가 있잖아요. 그것은 아니잖아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기준이 무엇이냐"라고 성령님이 물으셔서 "어떻게 6개월만에 목사가 되요"라고 하니 "그런데 기준이 무엇인가. 무슨 기준으로 네가 자격없다고 이야기 하니"라고 물으셨다. 그래서 "그래도 그것은 아니잖아요"라고 말하니 "그러면 기준을 말해 봐. 그 기준이 너희나라 정부가 기준이냐, 아니면 총회법이 기준이냐. 무슨 기준으로 너는 자격있고 그는 자격없다고 하는가"라고 물으셨다. 그래도 그것만은 쉽게 항복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래도 주님, 그것은 아닌 것 같아요"라고 하며 나도 버텼다. 이번에는 주님게서 내 안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내가 바울처럼 그 시대에 가장 학벌을 가진 사람도 사용했고, 베드로 처럼 평생 고기를 잡던 사람도 불러 제자로 사용했다." 찬스였다. 그래서 "주님, 그때는 초대교회 시대이잖아요.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6개월만에 목사가 되요"라고 나도 버틸만큼 버텼다. 그랬더니 성령님이 "그래, 근대사에도 있다. 요한 웨슬리처럼 영국 최고 명문대 출신도 사용했고, 무디처럼 초등학교 중퇴한 사람도 사용했다"고 말씀했다. 그래도 나는 항복이 안되었다. 그래서 "그래도 주님, 그것은 아닌데요"라고 했는데, 마지막 주님의 한마디에 항복을 하고 주님앞에서 울었다.

"그래... 그러면 너는 자격이 있니?"

이 한마디에 그날 새벽에 더이상은 버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주님 저도 죄인입니다"라고 회개했다.

교회다운 교회가 없다고요?

어떤 분이 강남 유명교회를 다니다가 부평으로 이사와서 우리교회에 등록하고 면담을 하는데 이 동네에 이사온지 1년되었고, 지난 1년동안 동네 교회들을 다녀보아도 교회다운 교회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우리교회에 등록하는 것은 우리교회는 그나마 동네에서 교회다운 교회라는 것이다. 듣는 목사는 기분이 좋을 수도 있지만, 나는 하나님께 배운 것이 있다. 그래서 "집사님, 기준이 무엇이예요. 교회다운 교회의 기준의 뭐예요"라고 물었다.

이것은 다 다르다. 기준이 다르다. 성경을 해석하고 보는 관점이 다 다르다. 그래서 신학도 다르고 교단도 다르다. 합동신학교대학원만 제대로 된 신대원인가?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시고 신묘막측하다고 하셨다. 세계 70억 인구중 같은 사람이 없다. 이것은 창조의 다양성이다. 하나님은 기가 막히게 창조하셨다. 그러면 이렇게 다양하게 만든 인생들을 불러 모으신 교회들중에 똑같은 교회가 있겠는가. 없다.

사람은 크게 나누면 지적인 사람, 정적인 사람, 의지적인 사람으로 나눈다. 기질에 따라 세밀하게 46가지로 나누기도 한다. 지적인 사람은 언제 은혜가 되는가. 지적인 분은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면 은혜가 되고 받아들인다. 정적인 분은 논리적으로 접근하면 머리가 아프다고 하고, 정적인 분들은 필이 꽃혀야 한다. 가슴이 뭔가 찡하고 감동이 되면 은혜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의지적인 사람은 필이 꽃혀도 소용이 없다. 의지적인 행동을 강조한다. 사회가 이렇게 썩어가는데 앉아서 성경공부하고 설교듣고 은혜받았고만 하고 구경만 하는 것이 무슨 신앙이냐며 행동을 해야 한다고 한다. 의지적인 사람은 행위를 강조한다. 지적인 사람은 장로교, 정적인 사람은 순복음교단, 의지적인 사람은 감리교나 기장을 좋아한다. 그런데 어느 교단이 제대로 된 교단인가?

어떤 분이 옷을 입었는데 너무 멋있다. 그래서 다른 분이 그 옷을 사 입었는데 정말 아니다. 그러면 사람이 문제가 있는 것인가 옷이 문제인가. 나하고 안어울리는 옷을 입었다고 내가 문제있는 사람인가. 그것은 아니다. 문제있는 것이 아니고 안어울리는 것이고 안맞는 것이다.

당회에서 하는 일이 무엇인가?

우리교회에는 장로가 21분이 있는데 당회에서 어떤 안건을 내놓으면 항상 이야기하는 것이 있다. 당회는 어떤 안건을 놓고 내 생각을 말하는 데가 아니다. 그러면 분리가 된다. 생각은 누구나 다 다르다. 21분의 장로가 각자 다르다. 그렇다고 다수결로 하면 소수는 불만이 생긴다. 우리교회 당회는 다수결로 해 본 적이 없다. 그런것은 일반회사나 사회에서 하는 것이지 교회는 그런데가 아니다.

당회는 어떤 안건이 나오면, 이 안건에 대해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실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성경적인 원리가 무엇인가 질문하고 우리끼리 답을 찾는 곳이다. 어떤 안건이 생기면 그것에 대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가를 우리가 먼저 고민하고 기도하고 묵상하고 찾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면 가부논쟁을 중단하고 순종하는 것이다. 이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생각대로 가면 교회는 타락이다. 그러니 항상 교회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우리들의 최대 관심사는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가를 물어야 한다.

한국교회 상당수가 주식회사로 바뀌고 있는 이유

저는 한국교회 상당수가 주식회사로 바뀌고 있다고 표현한다. 교인들이 헌금한 것이 자기의도대로 사용되지 않으면 난리가 난다. 그렇다면 이미 하나님이 주인이 아니시다. 예를 들면 예산을 세우는데 금년 예산이 10억이라고 하자. 다음해 예산은 교인 증가율을 따져 5%, 인플레율 5% 해서 금년 예산에서 10%가 늘어난 11억을 내년 예산으로 세운다. 그리고 11억의 범위에서 이런 일 저런 일을 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방식은 일반회사에서나 하는 일이다. 교회는 아니다.

교회는 당회부터 제직회가 "하나님, 내년에는 우리교회를 통해 어떤 일을 하기를 원하십니까"를 기도하고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기를 원하시는데, 그것을 하려고 하니 예산이 20억이 든다. 그런데 한계를 넘어간다. 12억이면 해보겠는데 20억은 안된다고 하면 그 교회는 하나님이 존재의미가 없는 집단이 되어 버린다. 교회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는데 20억이 든다면 20억을 예산으로 세워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20억을 여러분을 축복하시든지 누구를 통해 그일을 하신다. 그것이 교회이다. 주식회사를 만들지 말라. 우리가 헌금한 돈 우리가 마음대로 쓴다가 절대 아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생각할 것은 내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틀리다고 말하면 안된다. 그 집사님에게 교회다운 교회가 없다고 하는 기준을 물으니 대답을 못한다. 내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교회가 문제있다고 하면 안된다. 생각은 다 다르다. 부부지간에도 생각이 다르고, 내 배에서 난 자식도 다르다.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다른 것을 인정하고 존중하라. 그것이 겸손이고 사랑이다.

ⓒ 아멘넷 뉴스(USAamen.net)
세계적인화산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라는 유명한 희곡을 쓴 
테네시 윌리암스는 아래와 같은 명언을 남겼습니다.
"돈 없이 젊은 시절을 보낼 수는 있지만 돈 없이 노후를 
보낼 수는 없다." 


늙어서 돈은 신분입니다. 지위이고 계급장입니다. 
돈이 없으면 모두에게 냉대와 무시를 당합니다. 
그러나 돈이 전부는 아닙니다. 
돈이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줄 수는 없습니다.



97살 까지 산 "첼로의 성자" 파블로 카잘스는
"선생님께서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첼로리스트로 손꼽히시는데 
아직도 하루에 여섯 시간씩 
연습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라는 기자의 질문에 의욕이 가득 찬 
즐거운 나날을 보냅시다.



"나는 지금도 연습을 통하여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네."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96세에 세상을 떠난 유명한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타계 직전까지 집필을 계속했는데 



"아직도 공부하시냐?"는 질문에 
"인간은 호기심을 잃는 순간 늙는다.
"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청춘은 인생의 어느 기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가짐에 있다.>
라는 사무엘 울만의 詩와 프랭크 
시나트라의 My Way'라는 팝송은 
우리의 心琴을 울리는 名詩이며 노래입니다. 



돈은 넘쳐 나는데 그것을 어디에 써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아니 돈이 많은 사람일수록 그것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모릅니다. 온갖 고생과 근면 절약을 하여 
어렵사리 돈을 벌었기 때문에 돈 버는 것 외에는
아무 것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젊은 시절 취미 생활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것이지요.
옛 양반들은 鄕里에 전답이 있어 먹고 사는 데는 
문제가 없으니까 적당한 시기가 되면 벼슬을 
고사하고 아무 것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文, 史, 哲 즉 文學과 
歷史와 哲學을 論하고 서로 지은 詩, 
書, 畵를 품평하고 樂, 歌, 舞를 즐기며 
인생의 완성을 추구하였다 합니다.



여기에 射(요즘 말하면 골프?)와 御(말을 
다루는 것이니 요즘은 車)도 즐겼습니다. 




은퇴하고 나면 30년, Golden Age를 
열정과 취미 생활을 즐기면 늙지 않습니다. 
열정을 가지면 마음이 늙지 않고 마음이 늙지 
않으면 육체도 건강해 집니다.



<居室 男>, <파자마 맨>, <停年 미아>, 
<三食 이>, 이 되면 
순식간에 늙어버리고 맙니다. 
만나보면 금방 얼굴에 쓰여 있습니다.
분명히 은퇴 후 제2의 인생은 있습니다. 



흔히 "앙코르 인생"이라고도 하고 
은퇴 후 생을 마감할 때 까지는
8만 시간이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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