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50) 천년을 하룻밤 같이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광야에서 25년을 행하게 하신 다음 이삭을 주셨으며 이삭의 기다림을 지나 야곱에 이르러 열 두 아들로 열 두 지파의 이스라엘 민족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열 두 아들 중에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부끄러운 죄를 범한 르우벤이나 잔혹한 만행을 저지른 시므온과 레위까지도 말입니다. 이들 열 두 지파로 나라를 이루게 하시었으며 유다의 계보를 통하여 마침내 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 이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부르심이요 택하심이요 은혜 베푸심이었습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부끄럽고 흠 많은 죄인들을 불러 십자가의 보혈로 정결케 하사 그리스도의 신부, 교회로 삼으시고 주님이 오시기까지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이제 야곱은 아들들을 축복하기를 마치고 자신의 시신을 가나안 땅에 메어다가 아브라함이 헷 사람에게서 산 막벨라 굴, 아브라함과 사라, 그리고 레아가 잠들어 있는 그 굴에 장사하라고 명합니다. 그리고 147년 일생을 하나님 앞에서 걸어온 발을 침상에 거두고 기운이 다 하여 그 열조에게로 돌아갑니다. 이제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 날까지, 그리스도께서 오시어 그 모든 잠든 자를 일으키실 먼 훗날, 그 날까지 긴 기다림 속으로 잠들게 될 것입니다.

야곱이 죽자 요셉은 아비 얼굴에 구푸려 울며 입을 맞추고 그 수종의사에게 명하여 향재료를 그 아비의 몸에 넣게 합니다. 사십일 동안 향재료를 넣고 애굽사람들은 칠십일 동안 곡을 하였으며 바로의 허락과 분부로 온 집안과 바로의 궁의 신하들과 장로들과 군사들로 거대한 무리를 이루어 야곱의 시신을 가나안 땅으로 옮겨 헤브론, 마므레 앞 막벨라 굴에 성대하게 장사합니다.

(그로부터 3,500년이 넘게 지난 오늘날 이 막벨라 굴 위에는 건물이 버티고 서 있습니다. 건물의 절반은 유대인들의 기도처소로, 절반은 무슬림들의 예배당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지하에는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 야곱과 레아의 무덤이 있습니다.)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기다림입니다.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기다림입니다. 아브라함은 광야를 행하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씨를 주시기까지 기다렸습니다. 이삭은 광야에서, 장막에서 기다렸습니다. 야곱은 일생 동안 하나님 앞에서 나그네길을 걸으며 기다렸습니다. 이스라엘 열 두 지파는 실로가 오시기까지 기다릴 것입니다. 교회도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기를 기다리는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 야곱과 레아는 막벨라 굴에서 지금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도 곧 그들과 함께 누워 그리스도를 기다리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까요? 그리스도는 언제나 다시 오실까요? 아무도 모릅니다. 그 때는 천사도 모르고 그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께서만 아십니다.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 야곱과 레아는 땅속에 누워 지금쯤 기다림에 지쳐 있을까요? 우리보다 앞서간 수많은 성도들도 기다리며 지루해 하고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죽은 자에게는 아무리 긴 시간도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수천 년, 수만 년이 지난다 해도 그리스도께서 일으키시는 순간, 마치 방금 잠들었다가 깨어나는 것처럼 아무리 긴 시간도 하룻밤처럼, 잠깐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기나긴 기다림의 시간은 우리의 생각, 우리 편에서 보는 기준일 뿐입니다. 하나님께는 천년이 하루같고 하루가 천년 같습니다. 우리에게는 길게 느껴지는 아득한 세월도 하나님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수십억 년, 수백억 년 우주의 역사 가운데 우리 인류의 역사는 하룻밤이요 순간일 뿐입니다. 시간을 지으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시간이란 다만 피조물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그 긴 시간을 지루하게 기다리시는 분이 아닙니다. 천년, 만년, 억년, 수십억년, 아무리 긴 시간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시면 그만입니다. 영생이란 우리 인간이 생각하는 수 만 년, 수 백 만년이 아닙니다. 수 백 억년 수 천 억년도 아닙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끝이 없는 영원이란 긴 시간입니다. 우리의 영생은 시간을 초월하시는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하는 것입니다.

야곱은 지금도 잠 든 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또 우리도 곧 같은 약속 안에서 잠들어 기다리게 될 것입니다. 천년을 하룻밤같이 기다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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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은 은혜의 땅 19

 

한국에 나가서 돈 때문에 혼인신고를 하고 이민 수속을 시작한 것은 하나님 앞에 서 명백히 죄를 범한 것이라는 깨달음이었다. 나는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며 통사정을 했다. 이제 가난하게 사는 것이 지겹고 나도 좀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간절히 애원했다. 하나님 앞에서 불의를 가지고 그것을 용납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잘 알고 있었지만 그때는 그렇게라도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마음에 고통이 쌓여 갔다. 한국에서는 왜 빨리 이민 수속에 필요한 서류들을 보내지 않느냐고 매일 독촉을 해 왔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그냥 차일피일 핑계를 대면서 마음에 결정을 하지 못하고 이민 서류 보내는 일을 미루기만 했다. 그러면서 수개월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런데 얼마 후에 한국에서 소포 뭉치가 도착했다. 여자 쪽에서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서 다른 파트너(?)를 찾았으니 나와는 이혼 수속을 빨리 진행시킬 수 있도록 서류에 도장을 찍어 보내 달라는 편지와 함께 말이다.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어 돌려보낸 후에 마음이 오히려 홀가분해졌다. 그동안 위장 결혼 문제로 나의 양심을 찍어 누르고 있던 죄의식이 사라지고 이제는 다시 성령과 교통할 수 있는 마음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참 죄송합니다. 앞으로 다시는 그런 멍청한 죄를 짓지 않겠습니다." 
  
그때 나는 아직 20대의 나이였는데, 호적상으로는 벌써 세 번이나 이혼한 보기 드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시작하면서 나름대로 내가 하나님 앞에 서원한 작은 봉사가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강대상 꽃 봉사 였다. 당시 나는 적은 수입에 아파트비를 내고 나면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상황이 었다. 그러나 불과 몇 년 전에 잠잘 곳이 없어서 노숙자 신세로까지 전락했었던 나의 모습을 기억해 볼 때 지금의 나는 너무나도 충족하고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감사의 마음을 하나님께 작은 정성으로라도 표현하고 싶었고 그렇게 시작한 봉사가 주일 강단 꽃 당번이었다. 작은 개척 교회에서 누구 하나 주일 강단을 꾸미는 일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그 일을 맡겨 주셔서 기쁨으로 매주일 감당하게 하셨다. 토요일 아침이면 도매시장에 가서 꽃 장식에 사용할 꽃을 구입해서 교회 강단에 장식을 했다. 장식을 마치고 나면 일주일 동안 때 묻고 사회생활에 찌들었던 몸과 영혼이 다 씻김을 받고 꽃처럼 아름답게 변하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꽃을 어떻게 장식하는 줄 몰라서 그냥 눈에 좋은 대로 이리 저리 꽂으면서 엉성하게 장식을 하곤 했다. 그러나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꽃꽂이에도 일가견이 생겨서 주일 꽃 장식을 마치고 나면 여러 성도들이 마치 전문가가 해 놓은 것같이 아름답다고 칭찬을 해주기도 했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작은 부분으로나마 나의 마음과 정성을 드려서 봉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기뻤다.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느낌이 이렇게 행복한 것인 줄을 그때까지 깨 닫지 못했다. 
  
직장 동료 가운데 한국에 부인을 두고 먼저 미국에 정착하기 위해 왔다가 다른 여자와 동거하고 있던 친구가 있었다. 나는 그 친구를 전도하기 위해 오랫동안 기도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에게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기를 가로막고 있는 '불륜'이라는 큰 벽이 놓여 있었다. 나이도 나와 동갑이었던 그는 해서는 안 되는 외도를 하면서 한국에 두고 온 아내와 자식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거의 매일 술독에 빠져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성령님께서 나의 마음 가운데 그 친구에게 복음을 선포하라는 강한 감동을 주셨다. 물론 그 사이에도 전도를 위한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눴던 적은 있었지만 그 친구 형편 도 있고 해서 그렇게 강압적으로 권유하지는 않았다. 그것이 그 친구에게 또 다른 마음의 큰 부담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은 너무도 인간적인 발상이었다. 모든 일에 능통하신 하나님께 불가능한 것은 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사실을 현실에 적응하는 데는 어쩐지 거리감이 느껴졌다. 나는 내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불편한 느낌 때문에 그 친구를 강권적으로 주님 앞에 인도하는 일을 계속 보류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정규야,우리 이제부터라도 예수 잘 믿고 신앙생활 같이 한 번 잘 해 보자." 
  
"또 그 얘기냐. 제발 집어치워라." 
  
"그리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동거 생활은 청산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 
  
그 이야기가 나오자 그 친구는 곧바로 눈을 부릅뜨고 잡아먹을 듯이 말했다. 
  
"너는 속사정도 모르면서 남의 일이라고 그렇게 쉽게 이야기 하지 마라." 
  
"절대로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예수님이 나를 일방적으로 사랑하시는 것처럼 나도 너를 친구로서 사랑하기 때문에 너를 위해서 그리고 나의 영혼을 위해서 진심으로 하는 말이다. 불편하게 생각하지 말고 이해해주기 바란다." 
  
그렇게 말문을 열어 놓고 나는 곧바로 그 친구의 손을 잡고 큰 목소리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는 처음에는 얼떨결에 잡힌 손을 잡아 빼려고 움츠리기도 했으나 조금 지나자 그대로 손을 내게 맡겨놓은 채 내 기도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친구 정규를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 시간에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친구의 삶을 형통케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비록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르고 그렇게 무의미하게 살다가 가는 아침 이슬과 같이 허무한 것이지만, 예수님을 알게 하시고 예수님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맛보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이 시간에 친구 정규를 위해 기도하오니 하나님의 영을 넘치게 부어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어떤 잘못된 행실이 있었다면 회개하고 돌아올 수 있게 길을 열어 주시옵고 또한 남은 생애를 어떻게 살아가아 할 것인지 앞으로 가야 할 길을 밝히 보여주시옵소서. 우리들은 너무도 부족하지만 하나님은 강하고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우리 영혼을 들어 당신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얼마 동안을 그렇게 기도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열심히 기도하다 보니 언제부턴가 정규가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 마음에 덮여 있던 죄의 흔적들이 기도하는 가운데 드러나며 성령님께서 씻어주시고 치유하고 계셨던 것 이었다. 성령님의 놀라운 역사였다. 
  
나는 그날 성령님께서 왜 내게 정규를 다시 전도하라는 강한 감동을 주셨는지 그렇게 함께 기도하고 난 다음에 깨달을 수 있었다.  

 

출처: 김동욱 500/김태훈 목사

 



400만명이 가까운 사람들이 굶어죽었고, 800만이 넘는 사람들이 영양실조다. 정치범 수용소라는 곳에서는 감히 인간의 머리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잔인함과 혹독함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


말 그대로 인권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죽은 영이 지배하는 가련한 땅...


돈이 없어 기차가 제대로 운행도 못하고, 밤 10시가 되면 전기가 끊어져 암흑세계가 되는 등 전력난에 허덕일지언정 금으로 쏟아 부어 만든 4만 여개에 달하는 김일성ㆍ김정일 동상에는 밤새도록 불을 환히 밝혀 놓으며, 인간을 신(神)으로 만들어 섬기고 있는 이런 미친 짓이 행해지는 곳... 이곳이 바로 북한 땅이다.


그런데 이런 북한에 대해 한국교회와 크리스챤들은 침묵한다.

고통당하는 북한 주민들의 비참한 상황과 인권 유린에 대해서는 정치적인 사안이라고 애써 외면하면서 오히려 '사랑의 하나님'을 핑계로 북한 정권을 감싸고 옹호하며, 북한이 주장하는대로 '대화'를 통해 '평화'를 지켜야 한다며, 또 다시 돈과 식량을 북한에 제공하자고 외치는 앵무새들만 있을 뿐이다.


그렇게 '사랑'을 좋아하면서도 정작 핍박당하고, 잔인하게 죽어가는 정치범 수용소의 사람들과 지금도 북한 곳처의 지하교회에서 목숨걸고 예배드리며, 오직 악랄한 북한 정권으로부터 해방될 구원의 날만 기다리는 가련한 북한 성도들에 대해서는 침묵과 외면으로 일관한다.


아무데나 '하나님의 사랑' 운운하며, 무조건 사랑으로 감싸야 평화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가장 비겁하고 비열한 자기 합리화라는 생각은 안해 봤는가?


지금까지 한국 교회가 민간단체 차원으로 시행했던 북한에 대한 지원... 그 수많은 돈과 식량은 결과적으로는 북한의 독재 체제를 연장시키는 수단이 되고 있다.


가련하고 불쌍한 북한 주민들, 특히 북한의 지하교회 크리스챤들은 더욱 핍박받고, 비참하게 처형당하며 죽어가고 있으며, 이것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그러나 북한은 그 댓가로 대한민국에게 핵과 미사일로 보답(?)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미국과 온 세계를 향해 협박과 위협을 가하고 있는 중이다.


어디 그 뿐인가? 북한의 특권층 자녀들만이 다니고 있는 북한 유일의 사립대인 평양과학기술대학은 한국 교회가 설립했으며, 지금까지 한국 교회의 400억 원이 넘는 돈이 여기로 흘러 들어갔다.


북한 주민들이 굶어 죽어갈 때... 북한 내의 크리스챤들이 잔인하게 죽음당할 때... 평양과학기술대학의 특권층 자녀들은 한국 교회가 보내 준 돈으로 이곳 기숙사에서 삼시 세끼 아주 잘 먹고 잘 지냈다.


너무 아이러니하지 아니한가?

한국 교회가 북한 선교의 명목으로 가져다 준 수많은 돈이 되려 북한 정권의 독재 체제를 더욱 더 강화, 유지, 연장시켜주는 결과를 가져온 반면, 70여년 가까이 자유의 날만 기다려 온 북한 내에 숨어있던 크리스챤들은 오히려 정치범 수용소에 갇혀 이전보다 더 비참하고 고통스럽게 죽어가고 있으니...


북한으로 들어갔다던 돈이 공식적으로 알려진 수치가 400억원 정도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 열 배, 그 스무 배가 더 될런지 어찌 알겠는가? 또한 북한 선교의 목적으로 보내졌다는 돈이 1500억 원을 들인 김정은 별장을 짓는데 사용되지 않았다고 그 누가,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는가? 그들이 행하려는 나눔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나눔이고, 누구에 대한 사랑의 서약인 것인가?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도 하지만 동시에 '심판의 하나님'이시기도 하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는(히 9:27) 말씀처럼 이 세상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게 바로 하나님의 심판이다.


따라서 인간이라면 개돼지가 아닌 정말 인간이라면 무엇보다 진리와 정의 위에 바로 서야 하며, 사랑만을 앞세워 진리와 정의되신 하나님을 왜곡해서는 안된다.


불쌍한 북한 주민들의 비참함은 아예 모른체 하면서 여전히 북한 독재정권을 정당화하고, 사랑과 평화라는 이름으로 옹호하고 감싸는 자들이 만일 이 나라의 정권을 잡고, 또 그들이 한반도 통일의 주축세력이 된다면 이 나라의 운명은 어찌될까? 생각만으로도 소름끼친다.


선악을 분별해야 한다. 선한 것에는 선하다고 인정하고, 악한 것에는 당당하게 대항할 줄 아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침묵했고, 지금까지 외면했으면 충분하다.


아름다운 대한민국의 완성, 한반도의 자유통일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악랄한 북한 정권의 궤멸이다. 김정은 정권은 심판과 척결의 대상이지 결코 대화와 평화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그래야만 불쌍한 북한 주민들을 하루 속히 구원해 낼 수 있다.


그리고 그리했을 때만이 비로소 한반도에 진정한 '자유통일'과 '평화'가 도래할 수 있다. 절대 잊으면 안된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땅,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자유는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바쳐 죽어간 수많은 분들이 흘리신 고귀한 핏 값임을...


'자유'는 결코 공짜가 아니며, '평화' 역시 '힘'이 있을 때에만 지킬 수 있다.


대한민국의 운명은 지금 풍전등화의 위기에 몰렸다. 지구상에서 영원히 자취를 감추었던 자유월남이 지금의 대한민국과 너무나도 닮은 그 모습에 자칫하면 대한민국도 제2의 자유월남이 되어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서글픔과 두려움에 매일 밤 숨이 막혀 온다.


그런데 지금 나라가 무너지고 있는게 뻔히 보이는데... 대한민국이 침몰하고 있는 게 보이는데...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의 앞날이 피바다가 된다는 게 보이는데... 다른 사람들 눈에는 정말 안 보이는걸까?


오히려 사람들은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아무 일도 없을 것처럼 평온하게만 보인다.


특히, 아직도 침묵하고 있는 한국교회와 크리스챤들... 그들은 더 '샬롬'하다. 난 이게 너무 끔찍하고 소름끼친다.




글 출처: Jaehee Kim님 페이스북




무엇을 회개하며 기도해야 하는가!


국가를 위해 회개한다 말하면서 무엇을 회개할 지 난망한 이들이 많다.


간단하다.

거짓 평화-가짜 평화, 이기적 안락에 빠져 북한 주체사상 정권-우상숭배 체제를 지지-지원-강화해 온 죄.


세계적인 대북압박 분위기 속에서도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을 재개하고 북한을 돕자며 핵 개발의 동지가 되려는 죄.


일제시대 신사참배로 배도했고 wcc를 통해 배도하며 나아가 한국 상당수 교단이 "김일성이 신"이라는 봉수-칠골교회와 연합-연대-동행하자며 결의해 온 죄.


한국 대다수 교단이 북한인권 문제에 철저히 침묵해 온 죄.


온갖 수용소와 거리에서 동족들이 죽어가는 데도 주체정권-우상체제 종식을 위해 기도하지도 행동하지도 않은 죄.


그 결과 복음파가 아닌 NLPDR(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 주사파가 한국의 정치적 대세로 굳어져 혼란과 심판과 재앙을 자초케 한 죄.


빛과 어둠의 분별을 잃어 북한 주체정권과 남한 주사파를 악이라 말하지 않은 죄.


복음통일, 선교하는 제사장 나라의 비전을 잊고 음란과 죄악, 안일 속에 절망해 버린 죄.


한국 교회가 유물론 사회주의 세계관에서 복음주의 세계관으로 회복될 때 이 땅에 부흥이 다시 임할 것이다.


* 국가적 위기의 원인과 절박한 기도의 제목을 외면한 채 애매하고 모호한 방향으로 교회를 인도하는 것이 미혹이다. 사탄은 기도의 우선순위를 바꾸어 버린다.


"저희가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히 3:8)



- 김성욱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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