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 오마르(Abu Omar, 보안상의 이유로 변경된 이름)는 수년 동안 종교 학자이자 중동에서 높은 존경을 받는 시민이었다. 그는 모스크와 이슬람 학교에서 코란(Koran), 하디스(Hadith)와 샤리아(Sharia) 법을 가르치고 설교했다.

 

이슬람 사원에서 저녁기도 후 그가 차를 탈 때 차창에 붙어있는 메모지를 발견했다. 그는 그것을 떼어 내고, 그의 차에 올라타 빛을 비추고 그것을 읽기 시작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6:23)“

 

그는 분노해서 그것을 구겨 버렸다. 그리고 총을 들고 그것을 붙인 사람을 찾았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그 종이를 던져 버렸다.

 

돌아 오는 길에 그는 쇼핑몰 앞에서 멈춰 섰다. 한 장의 종이가 그를 향해 날아가 그의 옷에 달라 붙었다 : 같은 성경 구절! 그는 그것을 찢어서 가장 가까운 쓰레기통에 넣었다.

 

쇼핑을 마치고 그는 차에 다시 와서 문을 열었을 때 쓰레기통에서 종이 조각이 튀어 나와서 찢어져 던져 버렸다. 그는 격분하여 그들을 모아 라이터로 태워버렸다.


그는 집으로 운전하다가 왼쪽 어깨에 뭔가를 느꼈다. 그는 그것을 꺼내 불에 탄 종이 한 장을 보았다. 그는 차를 멈추고 그것을 읽었다 : "죄의 삯은 사망이다." 끔찍한 공포가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아부는 두 명의 기록 천사를 믿었다. 하나는 선행을 기록하는 천사이고, 다른 하나는 악행을 기록하는 천사이다. 그는 자신의 모든 죄와 나쁜 행동을 기록하는 천사 'Atid'가 그의 왼쪽 어깨에 앉아 있다고 추정했다.

 

갑자기 그는 오른쪽 어깨에 뭔가를 느꼈다. 거기에서 그는 불에 탄 종이 조각을 또 발견했다. "하나님의 선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그는 선행을 기록하는 천사인 "Raqib"가 오른쪽 어깨에 머물렀다고 생각했다.

 

아부 오마르는 밤에 겨우 잠이 들수가 있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대해 계속 생각했다. 그러다 잠이 들었고 예수님께서 꿈속에 나타나서 말씀하셨다.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찌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1 : 17-18)”

 

아부 오마르 (Abu Omar)(못으로 인해서) 가운 데가 뚫린 손을 보았고 그가 예수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즉시 침대에서 일어나 자신 앞에 엎드렸다. 그가 머리를 들 용기를 찾았을 때, 예수님은 사라졌다. 그는 모스크에서 아침기도를 부탁 받았지만 가지 않았다.

 

그는 불에 탄 종이를 꺼내기 위해 차에 달려갔다. 그는 종이의 뒷면에서 전화번호를 찾았다. 그리고 복음을 들었고 예수님을 자신의 개인 구원자이자 주님으로 받아 들였다


출처: bibles4mideast https://goo.gl/p30hI3



가져온 곳: 갓톡

서머나 교회 감독 폴리캅의 순교사화 -

 

* 서머나 교회가 빌로멜리움(Philomelium) 교회에게 보낸 편지이다.

* 신약성경 밖에서 쓰인 기독교 순교사화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 명백하게 직접 목격한 사람들에 의해(15:1) 사건 후 오래되지 않아 기록되었다.

* 서머나 교회의 감독인 폴리캅(86)에 대한 박해, 체포, 심문, 그리고 처형을 기록하고 있다.

* 2세기 중엽의 박해받는 교회에 대한 설득력 있는 증언이다.

* 기독교인들의 국가관을 아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 그리고 이것을 기록하게 된 데에는 매년 열리는 순교기념일에 참석하게 하려는 특별한 목적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 폴리캅의 순교의 신앙은 311년과 313(밀라노 칙령)의 관용의 칙령들과 교회에 승리를 가져올 때까지 많은 신자들에게 모범이 되었다.

* 불행하게도 그리스어 사본으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것이 10세기경의 것으로 유세비우스가 전하는 내용과 조금 다르다.

- 후기 사본은 폴리캅의 죽음을 예수의 죽음과 대조시켜놓은 내용을 싣고 있다.

 

1. 폴리캅의 순교 시기 - 두 가지 견해

1) 내적인 증거 : 21장과 폴리캅 순교사화의 내적 자료에 따를 시기

폴리캅은 산티쿠스(Xanthicus) 달의 첫 번째 부분의 둘째 날, 3월 달 전 7일째 날, 큰 안식일 오후 2경에 순교했다. 그는 트랄레스의 필립이 스타티우스 쿠아드라투스의 지방 총독직의 재임 기간 동안 대제사장이었을 때...,“

 

* 스타티우스 쿠아드라투스(Statius Quadratus)의 지방 총독직의 재임 기간을 근거로 156222, 아니면 아마 23일로 채택해 왔다.

* 이 시기는 폴리캅이 체포되기 직전에 로마의 감독 아니세투스 감독을 방문했다는 사실과 잘 일치한다.

 

2) 유세비우스의 증거 : 역사가 유세비우스의 기록에 의한 시기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베루스(Marcus Aurelius verus)의 통치기간으로 보아 167년경으로 보는 견해.

이 무렵 피우스(Pious)라는 성을 가진 안토닌(Antonine)황제는 22년간의 통치를 끝으로 아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베루스(Marcus Aurelius verus)에게 양위하였다. 베루스 역시 그의 형 루시우스(Lucius)와 함께 안토니누스(Antoninus)라고 불리었다.”

* 쇠델은 21, 22장을 후대의 첨가물로 보고 유세비우스의 견해를 지지, 155-160년경임을 주장한다.

 

2. 폴리캅의 인물 관

1) 폴리캅(Polycarp)

A.D 80년에 태어나 165년경에 86세로 순교한 서머나 교회의 감독이다.

신약시대 이후 널리 알려진 첫 순교자들 중의 한 사람이다.

사도들에 의해 아시아의 서머나(Smyrna)교회의 감독으로 임명받았다.

폴리캅은 사랑의 사도 요한의 수하에서 공부했기에 예수님을 육체적으로 만난 사람과 그 후 세대를 연결해주는 사람이다.

그가 어떻게, 언제 기독교인이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2세기경 그는 서머나에서 열심히 목회하고 있었으며 노예들과, 지방 호족들, 총독의 관리들이 한 데로 잘 조화되어 구성된 교회였다.

50년 동안 감독으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는 온유하였고 사람들에 대해서도..., 겸손의 귀감이 되었다.”

그는 비록 요한의 제자였지만 자신을 사도들과 동등시 하지 않았다. “형제들이여, 나는 이 편지를 자랑함으로서가 아니라 여러분이 요청했기 때문에 쓰는 것입니다. 나는 바울처럼 진리의 말씀을 능력 있고 감동적으로 전할 수 있는 지혜를 얻지 못 했습니다.”

2) 폴리캅의 신학적 입장

불신자들에 대한 전도에 너무 열심이었으므로 그는 무신론자, 우리 신들의 파괴자, 소아시아의 선생등으로 비판을 받았다.”

사도요한에게 들은 예수의 기적과 교훈에 대한 그의 설교와 저술들은 사람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저서 중 유일하게 현존하는 작품은 빌립보교회에 보낸 편지이다.

- 이 편지의 핵심은 = ‘그리스도론이다.

그리스도는 주님이시고 그는 현재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며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 그에게 굴복한다.”

 

3) 폴리캅 순교의 의의

신약시대 이후 널리 알려진 첫 순교자들 중의 한 사람이다.

폴리캅의 순교의 결과는 기독교의 깨끗한 승리였다.

서머나 교회는 지도자를 잃었으나 비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인들을 크게 두려워하게 되었다.

용기없는 기독교인들에게 커다란 신앙을 북돋아 주었다.

폴리캅의 순교로 아시아에서 박해에 종지부를 찍었다.

 

4) 폴리캅 순교의 특이점

폴리캅은 처음에는 피신하였다는 것이다.”

* 이 사실은 오히려 순교의 진실성을 보여주며, 거짓 순교자와의 차이점을 보여 준다.

* 거짓 순교자 : 당시에는 자발적으로 재판정에 나아가 순교의 기회를 찾았던 거짓 순교자들이 있었다.

물론 자발적으로 나섰던 참된 순교자들도 있었다.

 

5) 초대교회 성도들의 순교에 대한 이해

순교는 초대교회 신자들에게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니며, 순교는 인간들이 선택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에게 주시는 특권으로 생각했다.

순교는 그리스도의 용기와 격려로서 끝까지 충성할 수 있다고 믿었으며, 따라서 이 용기는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특별히 주신 것으로 이해했다.

순교자야말로 진정한 그리스도의 제자,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하나님의 운동선수, 신앙의 수호자, 사탄과의 투쟁자, 신앙의 옹호자, 그리스도인의 삶의 완성자 등으로 불리었다.

순교자는 피의 세례를 받기 때문에 죄를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고 믿었다. 그래서 순교를 앞둔 사람이 감옥에 갇히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그 사람에게 죄 사함을 받는 기도를 부탁했다.

순교하는 것은 곧 신자의 특권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일부러 순교를 하는 자발적 순교’(voluntary martydom)라는 말이 나왔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영광의 면류관이요, 구원의 지름길이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빨리 이루기 위해서 무리를 지어 로마 총독에게 가서 우리는 기독교인이니 처형해 달라고 했다.

- 교부들은 이러한 자발적인 순교를 일종의 자살 행위로 보고 이를 말렸다.

 

6) 폴리캅의 교회사적 중요성

폴리캅은 로마에서 말시온과 영지주의자들인 발렌티누스 추종자들을 정통주의로 회심시키는 도구로 쓰임 받았다.

* 폴리캅이 로마에 간 이유 - 부활절 논쟁을 위하여.

* 논쟁 과정

- 동방교회는 유대교력에 의해 유월절인 닛산월 14일에 부활절을 지킴.

- 162년 로마의 감독 아니케투스(Anicetus)는 닛산월 14일 다음에 오는 주일로 지켜야 할 것을 주장함.

- 폴리캅이 로마 방문 - 닛산월 14일에 부활절을 지킬 것 주장함. - 무시됨.

- 190년 로마 감독 빅톨이 폴리캅의 의견에 반대해 - 아시아의 교회를 파문.

-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서방교회 견해를 채택함. - 교회분열을 가져옴.

클레멘트이그나티우스보다 공관복음과 사도행전을 잘 알고 있었다.

믿음으로 의로움을 받는다는 성서적 칭의론을 말하고 있다.

폴리캅은 실천적인 인물이었다.

 

3. 역사와의 대화

1). 폴리갑을 통해 본 초대교회 신앙관

순교자(martyr)는 어원적으로 증거하다’(to testify), 신앙을 증거하는 사람이었지만 오늘날에 와서 순교하다는 말로 바뀌었다. 초대교회는 약 280년 동안 박해를 받으면서 수많은 순교자가 생겼는데, 그러면서 싹튼 것이 순교의 신앙이다. 박해기간 동안 순교자는 진정한 그리스도의 제자, 그리스도를 본받은 자, 신앙의 수호자, 사탄과의 투쟁 자, 그리스도인의 삶의 완성자 등으로 불리었으며, 기독교의 신앙을 존속하게 하였다.

 

또한 이 시기에 순교는 신자의 특권이라고 믿었고, 그래서 일부러 순교를 하는 자발적 순교’(voluntary martydom)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순교를 영광의 면류관이요, 구원의 지름길이요, 그리스도와의 연합하는 행동으로 이해되었다.

 

오리겐은 "만일 세례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신비적으로 참여하는 시작이라면, 순교는 그의 죽음과 부활에 완전히 연합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러나 순교의 신앙은 큰 변화를 맞게 된다. 콘스탄틴 황제 이후 기독교가 로마의 지지와 비호를 받게 되면서 자연히 순교할 일이 없어지게 되고, 교회가 대중화 되어감에 따라 점점 완화되었다. 하지만 순교의 신앙은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수도원 운동으로 이어졌고, 순교 정신, 순교 신앙은 자신의 경건한 생활에서 찾으려고 했다

 

순교의 신앙은 초대교회 박해시대의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사실 순교의 신앙은 그리스도적 전통이며, 2,000년의 기독교 선교의 역사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계속 이어져서 교회를 교회되도록 하였으며 신자를 신자되게 하는 신앙적인 기초가 되어왔다.

오리겐은 영적인 순교’(spiritual mantyrdom)라는 말을 통해 꼭 피를 흘리는 것만이 순교가 아니라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 괴로움을 당한다면 그것 자체가 순교라고 할 수 있다.”는 순교 신앙을 보편적으로 이해하였다.

 

오리겐의 주장은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삶을 추구하는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순교 신앙은 오늘날까지도 매우 중요할 뿐만 아니라 시대를 뛰어 넘어 기독자의 삶의 자리에서 이어 가야 할 소중한 신앙의 유산임을 교훈하여 주고 있다.

사실 한국교회의 신앙의 뿌리는 순교의 신앙에 토대를 두고 있다. 한국교회의 역사는 이 사실을 명백하게 입증하여 주고 있다. 또한 21세기 새로운 종교개혁교회의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서 반드시 서 있어야 할 자리역시 순교 신앙이어야 함을 동시에 말해 준다.

 

2). 폴리갑 순교와 의미

속사도 교부시대에 밀어 닥친 아시아교회의 박해와 순교신앙이 발생되었으며 그중에 하나인 폴리캅의 순교의 역사적 배경에는 청년 게르마니쿠스(Germanicus)의 용기있는 순교가 있었고 폴리캅의 순교 이후 아시아교회에서는 순교기념일을 지키며 순교자 적 신앙으로의 훈련을 하였고 순교의 역사는 계속 이어져갔다.

폴리캅의 순교사화는 유세비우스의 교회사와 비교해 볼 때 후대로 전승되면서 약간의 첨삭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3). 적 용

무기력한 한국교회를 바로 세울 수 있는 영적인 토대를 제공한다.

교회와 사회와의 관계성을 바르게 하여 준다.

물량주의화 된 한국교회를 새롭게 변화시킬 수있는 신앙의 모범을 제공한다.

오늘날 교회개혁에 대한 요구가 늘어가고 있다. 우리는 젊은 교역자로서 개혁에 주도적인 참여자가 되어야 할 것인데 우리의 방향에 순교자적 신앙으로의 무장은 개혁을 더욱 힘있고 능력있게 할 것이다.

선교전략에 있어서 순교자적 신앙은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이미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 선교사들이 파송되어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이슬람 교권 국가들에서의 선교활동은 극히 제한적이며 은밀한 중에 진행되고 있다. 사실 성과가 거의 없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어떻게 이슬람교권을 복음화 시킬 것인가? 순교하는 것이 최상의 선교전략이 될 것이다. 순교적 신앙은 오늘날에도 요청 되고 있다.

폴리캅 순교사화는 우리에게 순교적 신앙으로 초대하고 있다.

순교는 부활을 현세에서 미리 맛보는 것이다” (오리겐)


 
빛과 흑암의 역사/진리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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