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처럼 주저 앉을 김일성 우상들!


언론을 보라. 방송을 보라. 인터넷을 열어보라. 북한 정권의 ‘무너짐’은 불가능한 상상이다. 트럼프의 북폭만이 구원처럼 느껴진다. 대륙과 초원을 뻗어갈 선교의 나라, 제사장 국가의 사명은 오지 않을 신기루다.


남한사회의 ‘살아남’도 공상처럼 여겨진다. 하나님이 아닌 돈과 물질, 육신이 삶의 기준이 되어 버렸다. 못 견딜 재앙과 혹독한 심판만이 마지막 은혜이다! 두려움이 몰려온다. 믿음은 무너져 버린다. 저주, 저주, 저주만이 판을 친다. 어둠은 기세를 잡았다. 이제 너희의 시대다.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겔 37:11)”

 

에스겔은 통곡했다. 이 땅 역시 통곡한다. 한국의 뼈들이 말랐고 한국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이 민족이 다 멸절되었다! 전쟁이 아니면 경제적 쇠락의 남미식 몰락이 남았을 뿐이다. 한국은 볼리비아, 에콰도르, 필리핀이 될지도 모른다. 75년 적화된 월남이 될 수도 있는가?

 

북한은 이미 에스겔의 마른 뼈다. 한국이 에스겔의 마른 뼈가 되고 있다. 다음세대 여린뼈도 말라간다. 인간적인 희망이란 좀 더 약삭빠른 능력자가 되는 정도이다. 적자생존 피 말리는 죽기 살기 경쟁이다.


내가 살려면 남을 밟아라. 혼자 할 수 없다면 모여 싸워라. 빨간 띠를 매고 구호를 외쳐라. 투쟁! 투쟁! 재벌을 없애고 부자를 족쳐라. 권력과 탐욕 앞에 촛불을 들어라. 미움, 증오, 분노, 광기가 광장을 메우고 담장을 넘어 교회를 향한다.


세상은 바뀌지 않고 정의의 슬로건 아래서 약자의 절규만 커진다. 삐딱한 지식인 집단이 외치는 살 떨린 구호가 섬광처럼 번득일 뿐 퍽퍽한 내 삶은 바뀌지 않는다. 이상한 엘리스 속 토끼가 돼 마른 뼈가 되어 간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生氣)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生氣)를 두리니 너희가 살리라. 또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 (겔 37:5, 6)”

 

벼랑 끝 사망과 죽음. 마른 뼈 앞에서 유일한 희망은 오직 주님의 생기(生氣)다. 오로지 예수다. 그 분의 사랑이다. 정의로 회칠한 미움과 증오와 판단과 정죄의 광기는 마귀의 밥이다. 주여! 생기로 우리게 임하옵소서. 영혼이 말라 가는 한국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어 주소서.


‘찬양합니다. 경배합니다. 이천 여 년 전 주가 십자가에 달리시어 우리 안에 성령님을 보내주심을 감사합니다. 주님이 이미 우리 안에 오셨다. 주님의 생기가 이미 우리 안에 오셨다. 더 강력한 능력으로, 권능으로, 빛으로 임하옵소서.’

 

모세는 불타는 떨기나무 속 주님을 만나고 그 음성을 듣고서 유대의 구원에 나섰다. 이미 우리 안에 오신 주님과 연합할 때 민족의 역사는 반전될 것이다. 마른 뼈는 일어나 살아날 것이다. ‘남과 북의 백성들은 서로 연합하여 하나가 될 것이다. 기도자의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될 것이다 (겔 37:17)’

 

10가지 재앙이 바로(Pharaoh)의 강고한 진을 깨뜨린 것처럼, 한 명의 모세가 나오는 날 백성의 앞날을 막아 온 사탄의 진이 부서질 것이다. 피와 개구리, 이와 파리, 악질과 독종, 우박과 메뚜기, 흑암과 사망이 덮치며 사라질 것이다.


북한의 우상숭배 체제는 무너지고 정치범수용소는 무너지며 수많은 죽음과 살육과 피바람 소리는 그쳐질 것이다. 북한 전역에 세워진 김일성 동상 3만8천 개가 무너지고 그 자리엔 주님을 찬양할 성전이 세워질 것이다.

 

형제여. 자매여. 현실에 낙담치 마소서. 낙심치 마소서. 문제를 보지 마소서. 오직 예수를 보소서. 예수 안의 영광과 승리와 성취를 보소서. 빛을 보소서.



- 리버티헤럴드 / 김성욱 대표

 

 

어느날 백보좌 심판을 보게 되었다!


심판대에 앉아계시는 우리 주님


내가 눈을 들어 공중을 바라보니 마치 공중의 뜬곳에 흰옷 입은 분이 앉아계시고 뒤에도 흰옷 입은 분들이 마치 재판소에 가면 재판장들이 앉아있는 것처럼 끝없이 긴 홀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사람 같은 물체가 수없이 떠오르며 저 끝에서 이곳까지 오는데 걸어오는게 아니라 마치 날아오는것 같았다. 그리고 이 심판대에 가까이 오자마자 그 순간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구별이 되어 오른쪽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들어가자마자 순간 광채를 받아서 희게 되어 버렸다.


오른쪽으로 구별되어진 사람들은 희게 되자마자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서 어쩔 줄 몰라했으나 왼쪽으로 돌아서는 사람은 허공속의 캄캄하고 무시무시해 보이는 큰 소용돌이로 빨려 내려가는데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대부분이 모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더욱 자세히 내려다보니 그 소용돌이 밑에 내가 본 이루말할 수 없이 큰 규모의 지옥이 그 밑에 자리잡고 있었다. 내려갈 때는 하나로 내려가지만은 얼마후엔 갈라져서 각자 갈길로 분리되어 빨려가는 듯 했다.


어떤 사람은 심판대까지 온후 왼쪽으로 돌아서면서 주님을 말없이 쳐다보던 그 얼굴을 볼때 이 세상에서 가장 처참하고 실망에 찬 얼굴이었다. 아! 주님을 믿는다하며 살아왔던 그가 설마 내가 이리로 가게 될지 몰랐다는 그런 눈치의 얼굴이었다. 나는 그분이 어떤 분인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그분은 심판대에 계신 분이 누군지 알고 또 자기가 가게 될 곳이 어딘가 알기 때문에 그토록 처절한 실망의 얼굴이었으리라.


나는 이 상황을 보고 절실히 느끼는 것이 있었다.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든지 믿고 찾아오기를 바라시지만 이미 수없이 많은 기회를 주었음에도 진리되신 예수님을 영접치 않아 때를 놓쳐버린 사람들에게 백보좌 심판대에 좌정하고 계시던 우리 주님은 생각할 수 없이 엄하셨고 정말 냉정하셨다.


그토록 주님 말씀에 귀기울이지 않고 순종치 않던 사람들이 그렇게 간절히 애타게 주님을 향하여 애걸하며 쳐다보지만 그 순간의 우리 주님은 정말 엄숙하고도 냉정한 주님이셨다. 백보좌 심판대에 앉으신 우리 주님은 그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어떠한 양보도 하지 않으셨다. 그때는 이미 모든 상황이 늦어버렸기 때문이었다.


나는 뒤에서 그것을 보고 난 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사랑과 인자와 용서의 주님이시지만 언제까지나 용서하고, 언제까지나 기다리고, 언제까지나 봐주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라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심판대에 계신 권세의 주님께서는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에 행해온 각자의 행위대로 엄하게 심판하신다는 것을 깨달아 알게 되었다.



출처: 김웅삼 목사님의 "이 처절한 지옥의 고통"중에서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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