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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승우 집단의 교리와 예언 및 신유 사역의 문제점 ②
[ 긴급기고 ] 예장통합 총회장의 특별사면 선포에 대한 반론
2016년 09월 19일 (월) 10:27:24 허호익 교수 21benhur@hanmail.net

허호익 교수 / 대전신대 조직신학, 전 예장통합 이대위 전문위원, 전 한국조직신학회 회장


3. 무분별한 예언사역과 치유사역의 문제점

   
▲ 허호익 교수

1) 예언사역과 예언전도학교

변승우는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 요엘 선지자의 예언(요엘 2장 28~32)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단지 부분적으로만 이룬 것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만민에게’ 성령이 물 붓듯이 부어지는 날, 즉 오순절을 능가하는 더 큰 성령의 부어주심이 교회사의 마지막에 있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요엘의 예언은 이중적입니다. 요엘의 예언은 오순절에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날 부분적으로만 이루어졌습니다. 그 증거로 요엘은 만민에게 성령을 부어주실 것이라고 했는데 그날에는 단지 15개국 사람들에게만 성령이 부어졌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실제로 만민에게 성령이 부어질 날이 올 것입니다. 즉 오순절을 능가하는 더 큰 성령의 부어주심이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 날은 언제일까요? 그 날은 교회사의 중간이 아니라 마지막에 있게 될 것입니다.78)

나아가서 그는 “그날이 전 세계적으로 다가오고 있고, 우리 큰믿음교회에 다가오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 증거로 ‘표적과 기사와 이적’이 큰 믿음교회를 통해 나타날 것이라고 한다.

하나님이 행하실 그 다음단계는 바로 표적과 기사와 이적입니다. 우리는 이미 치유의 기적이 점점 더 증가하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실로 주의 권능의 날이 우리 교회에 심히 가까이 와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79)

서울큰믿음교회의 경우 전교인 중 50% 전후가 청년인 것에 대해 청년들을 불러 모으시는 까닭도 ‘주의 권능의 날’ 즉 ‘대 부흥과 대 추수의 때’가 도래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한다.80) 그리고 하나님께서 큰 새 일을 행하실 때가 도래했는데 낡은 가죽부대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예언을 멸시하고 성령을 소멸하고 심지어는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무서운 죄를 짓는 것이라고 경고한다.81)

이런 까닭으로 변승우는 요엘이 예언한 꿈, 환상, 예언, 입신 등 종말론적이고 성령론적인 은사로 여기고 이와 관련된 사역에 집중하는 목회를 과감하게 펼치고 있다.

현재 요엘이 예언한대로 꿈과 환상과 예언이 전 세계적으로 급증하고 있습니다(욜 2:28). 저는 입신 역시 이와 같은 추세로 급증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꿈과 환상과 예언의 증가와 더불어 반드시 입신의 증가를 보게 될 것입니다. 이미 우리는 밥 존스, 하이디 베이커, 릭 조이너, 타드 벤트리, 샨 볼츠의 사역에서 그것을 보고 있으며, 서울과 울산의 큰믿음교회에서도 그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82)

변승우는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는 책에서 꿈, 방언, 예언, 쓰러지는 현상, 입신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1) 꿈 역시 예언의 유형 중 하나이며, 하나님은 꿈을 통해 우리에게 영감을 불어 넣고, 꿈을 통해 개인뿐 아니라 나라 전체를 바꾸어 놓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꿈은 영혼 구원을 위한 강력한 도구라고 주장한다.83)

(2) 방언의 은사를 받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방언은 죄를 고백하는데 유익하고, 오랫동안 기도할 수 있고, 기도를 순결하게 하고, 영감을 받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데 유용하며, 개인의 덕을 세우고, 최상의 찬양의 도구이며, 영적 육적 활력소가 되고, 중보기도에 유용하며, 그리고 때로는 방언을 통해 우리를 극적으로 보호하며, 종종 영혼을 구원하는 극적인 계기를 마련해 주기 때문에 유익하다고 한다.84)

(3) 예언은 끝나지 않았고 오히려 더 빈번해지며, 예언이 중요하니 멸시하지 말아야 하며, 예언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예언의 내용이 성경적인지, 예언하는 자가 성령의 열매를 맺고 있는지, 예언의 내용이 소망을 주는지, 예언을 들을 때 심령에 와 닿는 지를 잘 분별하라고 한다. 예언이 땅에 떨어지지 않고 이루어지게 하려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예언을 기도의 제목으로 삼고 기도하고, 예언을 무기로 삼아 믿음의 싸움을 싸워야 한다고 권고한다.85)

(4) 쓰러지는 현상은 성경적인 이유를 “사울이 옷을 벗고 사무엘 앞에서 예언을 하며 종일 종야에 벌거벗은 몸으로 누웠더라”(삼상 19:23-24)는 구절과 사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었을 때 “땅에 엎드려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행 9:3-4)는 구절 등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86) 그리고 조나단 에드워즈를 비롯한 여러 신학자와 부흥사들의 견해를 제시하면 쓰러지는 현상의 신학적 근거를 제시한다. 그리고 이 쓰러짐은 회심, 관심 유발, 질병의 치유, 귀신으로부터 해방, 하나님의 임재에 잠김, 성령의 계시, 그리고 입신에 이르게 하는 데에 유용하다고 주장한다.87)

(5) 변승우는 환상과 입신을 구별한다. 성령의 감동을 받아 내 영이 몸을 떠나서 몸에서 빠져나오면 입신이고, 영이 몸 안에 있는 상태에서 무엇을 본다면 환상이라는 것이다. 영이 몸 안에 있으면서 천국과 지옥을 본다면 환상이고, 반면에 “영이 분명히 몸에서 빠져나왔다면 설사 천국이나 지옥을 보지 않았더라도 그것은 입신”이라고 한다.88)

따라서 입신을 통해 예수를 직접 만나 교제할 수 있으며, 앞서 간 성도들과 만나 교제할 수 있으며, 성경의 진리에 대한 큰 이해력을 얻을 수 있으며, 미래에 대한 놀라운 계시를 받을 수 있으며, 위에 것을 찾는 자로 변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89)

한 녹취록에 의하면 변승우는 꿈, 환상, 예언, 입신, 쓰러짐 외에도 “ ‘비명을 지르는 것’, ‘몸을 심하게 떠는 것’, ‘거룩한 웃음’, ‘기침’, ‘구역질’ 같은 현상들이 성령께서 교회 안에서 일어나게 하시는 일들”이라고 주장하였다고 한다.90)

그러나 우리말 성경(개역한글, 개역개정, 표준새번역)에는 입신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다. 종교학적으로는 의식이 전체 또는 부분적으로 정지되고, 자아가 신적 존재에 의해 인도되며 지배받는 샤만의 엑스타시 현상이 접신(接神) 상태에 익숙한 한국 기독교인들이 이를 기독교적인 개념으로 수용하여 성령에 사로잡힌 상태를 설명하는 용어로 ‘입신(入神)’이라는 말을 사용해 온 것으로 보인다.

큰믿음교회는 특이하게 예언전도학교와 예언사역자 훈련학교를 중심으로 예언사역을 집중적으로 시행하고 예언의 은사를 받을 사람들을 선발하여 이들에게 효과적으로 예언사역을 교육시키는 예외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모든 사람이 예언을 할 수 있다”(고린도전서 14:3-5)는 믿음을 강조하는 큰 믿음교회에서는 300여명의 예언사역자들이 선지자학교에서 매주 화요일 2시와 주일 8시에 예언사역을 통해 성도들을 세우고, 위로하고, 권면한다고 한다. 예언 사역을 받기 원하시는 분들은 선착순으로 안내위원들로부터 번호표를 수령하여 사역을 받아야 한다.91)

실제로 2008년 1월 1일이 예언집회에서는 예언사역자 10여명이 회중들 사이를 오가다가 손가락으로 특정 사람을 가리키며 공개 예언하기를 “성도님에게서 하나님을 향한 강한 열망이 뿜어져 나오는 것이 보입니다”, “성도님께서 하나님의 성품들에 대해서 더 많이 깨닫게 되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등과 같은 내용의 예언을 하였다고 한다. 약 30분간 10여 명의 신도들에게 공개예언이 진행된 후, 드디어 3부 개인예언 시간이 됐다. 예언사역자 72명이 동원되어 2인 1조(36개 예언팀)를 이루어 약 3시간동안 참석한 900여명의 신도들에게 일대일로 1인당 약 3분에서 5분정도의 개인예언을 쏟아내었다고 한다. 참석한 기자에게는 “직장에서나 어디에서 주변에 있는 분들 때문에 마음이 힘들어하는 부분이 감지됩니다. 주님 앞에 온전히 다 내려놓을 때 주님께서 평강을 주시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고 개인 예언을 하였단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겪는 평범한 일에 대한 것을 무슨 하나님의 특별한 예언인 것처럼 전해 준 것이다. 그리고 홍보영상을 통해 선지자학교에서는 누구에게나 ‘예언훈련’을 통해 정확한 주님의 음성을 꿈과 환상으로 보고 해석하는 방법을 가르친다”“고 알렸다고 한다.92)

또한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을 훈련하기 위해 예언사역훈련학교를 통해 매주 목요일 오후 2시와 8시에 예언 훈련을 시행하는 데, 예언에 대한 성경적 기초를 다지는 동시에 연습과 훈련을 통하여 예언 은사를 발전시켜나갈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한다. 현재는 예언사역팀원들에 한하여만 훈련 시간을 개방하고 있다.

이러한 변승우의 예언사역에 대하여 예장 통합 총회(2009)는‘신비주의적 사역’으로 규정하고 그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비판하였다.

변승우는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는 등의 저서와 설교들 통하여 천국을 갔다 온 입신의 경험, 개인의 미래에 대한 예언, 방언, 쓰러지는 현상 등 신비주의 형태의 목회를 활발히 펼치고 있다. 그의 저서에는 천국을 갔다 온 사람들의 간증이 많이 실려 있다. (가령, <정통의 탈을 쓴 짝퉁 기독교>pp.223-289를 보라.). 그는 집회 시간에 방언을 훈련시키고 있으며, <큰믿음교회> 내에는 예언 사역 팀, 방언 통변 팀, 신유 축사 팀 등 신비주의를 조장하는 목회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가 지난 2009년 7월 23일 150명의 죽은 자를 살렸다는 조세프 과지마의 집회광고 게재 문제로 국민일보, CBS를 비난한 것도 한 예이다.
이러한 변 씨의 신비주의적인 사역은 우리 주님께서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마 12:39, 16:4)고 하신 말씀과 배치된다. 또한 본 교단에서 엄히 경계하는 극단적인 신비주의 사역이라는 점에서 마땅히 배척되어야 한다.93)

큰믿음교회 변승우에 대한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의 연구보고서”(2011)에는 신비한 계시체험에 집중하는 사역은 교인들을 신비주의로 이끄는 그들의 세속적 감정에 영합하는 ‘영적 타락’의 경향이 있다고 규정하였다.

신비한 계시체험에 집중하여 성령사역의 목회를 하고 있다. 이른바 신사도개혁운동이라는 맥락에서 은사들을 훈련하는 과정을 두어 성도들을 신비체험으로 이끌고 있다는 사실이 목회의 본질에서 벗어난 일이요, 한편으로 극적인 체험을 열망하는 세속적이고 감정주의적인 신자들에게 영합하는 일로서 영적 타락을 심히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94)


2) 성형수술 및 신유사역과 중보기도학교

변승우는 <내가 원하는 교회>에서 “제가 꿈꾸어 온 교회는 복음서와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강력한 치유와 기적이 일어나는 교회”라고 밝히고 “성형외과가 대세인 요즘 주님이 성형의 기적들을 시작하셨다”고 주장한다.

교계신문 뿐만 아니라 ?조선일보?를 비롯한 여러 일간 지에 “큰믿음교회로 각종 중환자들을 데려오십시오! 지금 엄청난 치유의 기적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95)고도 광고하였다.

여러 치유의 기적과 함께 요즘 성형의 기적들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콧대가 높아지고, 큰 코가 작아지고, 삐뚫어진 코가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튀어나온 광대뼈가 들어가고, 초자연적으로 즉각 쌍꺼풀이 생겨났습니다. 목이나 얼굴의 잔주름이 사라지고, V라인 턱 선이 되고, 흉터와 수술자국이 사라졌습니다. 턱살이 빠지고 뱃살들이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팔자걸음이 고쳐지고, 오다리가 일자다리가 되고, 굽은 등들이 펴졌습니다. 흰머리가 검은 머리로 변하고…….96)

변 목사는 2011년 9월 23일에 410건이 넘는 성형 기적이 일어났고, 9월 21일에는 아주 짧은 30분간의 팀별 치유훈련시간에 206건의 성형 기적이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더구나 이런 기적들은 소수에게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 참석자의 70~90%에게 치유가 일어나고 있으며, 때로는 참석자 수보다 더 많은 건의 치유가 일어난다고도 한다.97)

큰믿음교회는 이러한 치유 사역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중보기도학교를 운영한다. 중보기도학교는 매주 평일 아침(오전 10:30부터 오후 1시)에는 변승우의 즉흥설교로 진실된 회개로 이끌고 있으며, 집중적으로 신유사역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매주 수요일 오후 2시와 선지자학교 사역 시간 (화요일 오후 2시, 주일 오후 8시)에 신유사역을 받기 원하는 분들은 사전에 예약문의를 통해 가능한 시간에 사역을 받게 한다. 신유사역을 받기 원하는 분들은 역시 안내위원으로부터 번호표를 받아야 한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철야기도회(저녁 9시부터 새벽 5시)에는 1,000여명이 모여 중보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또한 매주 평일 아침(오전 10:30부터 오후 1시)에는 변승우가 특별히 원고 없이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아 하는 전하는 즉흥설교와 중보 기도로 진실된 회개로 이끌고 있다고 한다.98) 중보기도학교에서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진정한 회개와 상한 심령으로부터 나오는 통곡과 자아의 죽음 그리고 주님의 진정한 신부로써 주님과 동행하기’라고 한다.


4. ‘사랑하는 교회’로 개명한 큰믿음교회의 이단성

앞서 언급한 것처럼 2015년 11월 6일 SBS 저녁 8시 뉴스에서 강남의 한 대형 마트에서 여성의 신체를 몰래 찍다가 경찰에 체포된 남자가 큰믿음교회의 부목사 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하였다. 이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키자 이미지 실추에 부담을 느낀 것인지, 송파구 위례성길에 위치한 ‘큰믿음교회’라는 명칭을 2015년 12월 29일 현재 ‘사랑하는교회’로 전격 변경하였다는 것이 보도되었다. 교회 간판과 주보와 교회가 운영하던 카페 이름도 모두 ‘사랑하는교회’ 란 이름으로 바꿨다고 한다. 포털사이트 다음(Daum)에 있는 ‘큰믿음교회측 카페’도 사랑하는교회로 명칭을 교체했다. 그러나 명칭을 바꾼 이유에 대한 공지는 되지 않았다. “큰믿음교회 부목사라는 사람이 몰카 사건으로 이미지가 실추돼 이름을 바꾼 것 같다”는 지적과 “이름 세탁을 통해 이단성을 감추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이 있었다고 한다.99)

예장통합 총회(2009)는 ‘큰믿음교회’를 이단으로 규정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변승우씨는 기성교회를 심하게 비판하여 교인들을 자신의 교회로 인도하는 부도덕한 목회행위, 직통계시에 근거하여 성경의 권위를 훼손시키는 잘못된 성경관과 계시론,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정통 구원관과 다른 구원론, 입신, 예언, 방언 등 극단적인 신비주의 신앙 형태 등을 갖고 있는 비성경적 기독교 이단이다. 따라서 본 교단 교인들은 변 씨의 집회에 참석을 엄히 금하는 것은 물론 그가 운영하는 인터넷 동영상이나 카페에 참여하지도 말아야 할 것이다.100)

이를 전후 하여 큰믿음교회(현 사랑하는 교회)는 약 8개 교단에서 이단 등으로 규정했다.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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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변승우, <대부흥이 오고 있다>, 240~241.
79) 변승우, <대부흥이 오고 있다>, 242-243.
80) 변승우, <대부흥이 오고 있다>, 253.
81) 변승우, <대부흥이 오고 있다>, 288.
82) 변승우,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297-298.
83) 변승우,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26-46.
84) 변승우,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84-102.
85) 변승우,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137-209.
86) 변승우,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224-225.
87) 변승우,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254-268.
88) 변승우,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301-302.; 전정희, “특별 은총 ‘입신’으로 천국·지옥 체험”, <교회와신앙> 2008. 11. 25.
89) 변승우,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309-328.
90) 전정희, “새로운 계시의 일부는 초성경적인 것”, <교회와신앙> 2008. 11. 13.
91) http://www.gfctv.org/ko/ministries.php (2016. 2. 3.)
92) 전정희, “주님 음성 해석법 가르친다는 ‘예언훈련’”, <교회와신앙> 2008. 1. 11.
93)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외 편, <종합 이단·사이비연구보고집>, 312.
94) 정윤석, “변승우 목사에 대한 기성측 연구 보고서”, <교회와신앙> 2011. 3. 8.
95) <조선일보> 2011. 10. 12.
96) 전정희, “큰믿음교회(변승우 목사)에 ‘성형’의 기름부음이?”, <교회와신앙> 2012. 5. 3.
97) 전정희, “큰믿음교회(변승우 목사)에 ‘성형’의 기름부음이?”
98) http://www.gfctv.org/ko/ministries2.php (2016. 2. 3.)
99) 정윤석, “큰믿음교회, 사랑하는교회로 명칭 변경”, <기독교포털뉴스> 2015. 12. 30.
100)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외 편, <종합 이단·사이비연구보고집>(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2011), 313.
101) 상현, “이단 교회 ‘간판 바꿔달기’ 조심!… ‘큰믿음교회’ 최근 ‘사랑하는교회’로 명칭 변경”, <국민일보> 2016. 1. 5.
102) “한국교회 교단 결의 내용”, <현대종교> (www.hdjongkyo.co.kr





http://www.ame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4711

 

출처: 영적분별력/진실

가져온 곳: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변승우 집단의 교리와 예언 및 신유 사역의 문제점 ①
[ 긴급기고 ] 예장통합 총회장의 특별사면 선포에 대한 반론
2016년 09월 18일 (일) 13:05:49 허호익 교수 21benhur@hanmail.net

허호익 교수 / 대전신대 조직신학, 전 예장통합 이대위 전문위원, 전 한국조직신학회 회장


1. 큰믿음교회(현 사랑하는 교회)의 연혁

   
▲ 허호익 교수

변승우에 대해서는 성결대학교 82학번으로 졸업한 것 외에는 자세한 인적 사항이 알려져 있지 않다. 1995년 울산큰믿음교회를 개척한 후 10년 넘게 목회하였으나 크게 성장하지 못했다고 한다. 2005년 3월 서울로 옮겨와 또 다시 서울큰믿음교회를 개척한 후 예언사역과 신유사역 그리고 변승우의 여러 저서의 출판 사역을 집중하여 교세가 급성장하였다.

2004년 저술한 <지옥에 가는 크리스챤들>을 통해 기독교의 근간인 ‘이신칭의’를 통째로 부정하는 구원관을 설교하여 한국교계에 물의를 일으켜 오던 중, 2009년 합동정통 교단(현 예장백석)에서 제명 출교되는 등 5개 교단에서 이단 등으로 규정되었다. 이에 변승우는 2009년 12월 ‘대한예수교장로회 부흥’교단을 만들었다.1) 2010년에는 성령신학교를 세워 학장에 취임하기도 하였다.

 

2016년 2월 현재 서울큰믿음교회를 중심으로 전국 11개의 도시에 130여개의 지교회가 세워져 있으며, 미국의 LA, 일본의 도쿄와 오사카, 캐나다의 밴쿠버, 인도네시아의 버까시, 그리고 중국의 북경에 지교회가 있다고 한다.

 

2015년 11월 6일 SBS 저녁 8시 뉴스에서 강남의 한 대형 마트에서 여성의 신체를 몰래 찍다가 경찰에 체포된 남자가 큰믿음교회의 부목사 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하였다. 이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키자 이미지 실추에 부담을 느낀 것인지, 12월 말경에 큰믿음교회를 ‘사랑하는 교회’로 명칭 변경하였다.2)2016년 2월 4일 현재 큰믿음교회 인터넷TV 사이트 (www.gfctv.org)는 종전대로이나, ‘큰믿음교회’의 한국어 공식 사이트(www.greatfaithchurch.org)는 영어 등 외국어 사이트로 전용되었고, 한글 공식사이트는 ‘사랑하는 교회’(www.belovedc.com)로 대폭 개편 중에 있다. 이전의 공식 사이트에는 최신 설교를 시청하거나 음성파일로 다운받을 수 있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그리고 인터넷 생방송으로 매주 수요예배와 금요 영성집회(저녁 7시30분)를 방영하고 있다.

큰믿음교회는 ‘사도적 선지자적 교회’를 표방하면서 3대 사역으로 예언사역, 신유사역, 그리고 큰믿음츨판사 사역을 강조한다는 것을 공식 사이트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3) 큰믿음출판사 사역은 변승우가 계시를 받아 저술한 저서 50권 이상을 출판 보급하고 있으며, 그리고 선지자학교와 예언사역학교의 예언사역과 중보기도학교의 신유 사역에 관해 자세히 안내하고 있다.

변승우의 여러 저서에 드러나는 교리의 문제와 큰믿음교회의 예언 및 신유 사역의 문제점들을 자세히 살펴보려고 한다.


2. 변승우의 주요 교리

1) 사도적 선지자적 교회의 배타성

큰믿음교회의 성격에 대해 공식 사이트는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다.

‘큰믿음교회’는 사도적 선지자적 교회입니다. 큰믿음교회는 대부흥과 대추수를 위한 그리스도의 신부와 용사로 준비되고 그를 위해 참된 회개와 하나님의 진리로 나아가도록 부름을 받은 교회입니다.4)

사도적 교회를 지향하는 변승우는 사도는 교회의 터를 닦는 사람이고, 하나님이 보내신 영적 지도자이다. 그러나 “사도적 사역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들 중 하나는 영적 아버지의 역할을 하는 것”이므로 “사도는 아버지”라고 한다.5) 따라서 변승우는 1세기의 사도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될 오늘날의 사도이고, 큰 믿음교회는 오늘날의 사도적 선지자적 교회라는 것이다.

(1) 이런 의미에서 폴 키스 데이비스(Paul Kieth Davis) 목사가 큰믿음교회 집회에서 공개적으로 변승우가 ‘아버지 부재 시대’의 영적 아버지가 되어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한 것처럼 많은 축복을 영적 자녀들에게 물려 줄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그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변목사님께서 예언적인 영역의 성취를 위하여 많이 수고해 오셨지만 하나님께서 변목사님을 위해 예비하신 것은 훨씬 더 높은 부르심에 관한 것입니다. 변목사님에게 사도의 부르심이 임하였습니다. 사도바울에게 허락하신 것 같은 사도적 부르심이 있습니다. … 변목사님은 주님의 뜻을 아는 사람이며 의로운 분을 볼 수 있는 사람입니다. 직접적인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체험하고 나누실 수 있는 사람입니다.…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목사님은 단지 가르치는 스승이 아니라 아버지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 변목사님은 아버지로서 영적 자녀들에게 축복을 전이시켜주는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처럼 변목사님은 많은 사람들의 ‘아버지’가 될 것입니다.6)

그리고 아르헨티나 대부흥의 주역인 에도 실보소 목사는 영적 지도자 변승우를 통해 큰믿음교회의 대부흥이 일어날 것이라고 다음과 같이 예언하였다고 한다.

큰 믿음교회는 구원에 관한 대낮과 같은 진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또 다시 주님은 큰 믿음교회를 중심으로 또 하나의 대부흥을 일으키실 것입니다.7)

큰믿음교회의 사이트에 ‘대부흥과 대추수를 위한 그리스도의 신부와 용사로 준비하는 교회’라는 것을 명시한 까닭도 이와 관련이 있다고 보인다. 사도들이 당시에 교회를 크게 부흥시킨 것처럼 이시대의 사도인 변승우를 통해 큰 부흥을 일으켜 세울 것이라는 예언을 이루는 것을 교회의 목표로 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 변승우는 2004년 5월 출판한 저서 <지옥에 가는 크리스챤들>에서 전통적인 칭의론을 부정하고 믿음의 행함과 참된 회개가 없으면 지옥에 간다고 주장하여 비판을 받으면서 이단성 논란이 촉발되었다.8) 그는 <정통의 탈을 쓴 짝퉁기독교>, <가짜는 진짜를 핍박한다>는 도발적인 제목의 저서를 통해 “진짜는 진짜이기 때문에 핍박을 받고, 가짜는 가짜이기 때문에 진짜를 핍박한다”고 적극 항변하였다.9)

심지어 자신을 비판하는 자들에 대하여 “이단 사냥꾼”, “정통의 탈을 쓴 짝퉁 기독교”, “바리새파 사람들” 심지어 “영적 기생충”이라고 공격한다.10)

예수님을 대적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정통의 탈을 쓰고 있었지만 참된 유대교가 아니었던 것처럼, 이들 역시 기독교의 정통의 탈을 쓰고 있지만 성경적인 참된 기독교가 아닙니다.11)

(3) 한편으로 큰믿음교회가 <그 시에 주시는 말을 하라>,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와 같은 저서와 그의 즉흥설교 및 예언 사역이 신사도 운동과 유사하게 직통계시를 주장하고 성경의 권위를 부정한다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그러자 그는 성경의 권위만 주장하는 이들은 “은사중단론에 미혹되어 ‘말씀 말씀’하면서 은사와 계시를 전면 부정하는 자들”이며, 이들은 ‘성경교 목사요 성경교 신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비판하였다.12)

신약시대에도 90%이상이 거짓 선지자들이듯이 오늘날의 목사들도 대부분 거짓 선지자라고 비난한다.

신약시대 때도 여러분! 90% 이상의 거짓선지자들은 목사들입니다. ··· 교회 밖의 사이비들, 이단들 속에 있는 것이 아니에요. 대부분의 거짓선지자들은 오늘날 교회 안에서 목사라는 직함을 가지고 목사라는 양의 옷을 입고, 목자로 위장하고 사람들을 어디로 이끌어요?(‘거짓선지자들을 삼가라’, 2006년 5월 26일 설교).13)

그리고 “성령시대인 지금 정통의 탈을 쓴 많은 교단과 교회와 목사와 신자들이 성령님이 오셨는데 그것이 성령이시라는 것을 알아보지 못”하고 “성령이 임하시므로 나타나게 되는 계시와 기적 그리고 영적인 현상을 보고 ‘광신자다’, ‘극단적인 신비주의다’, ‘사이비다’, ‘귀신의 역사다’, ‘직통계시 이단이다’라고 끊임없이 허튼소리”를 하는 것은 “역시 참된 기독교의 모습”이 아니라고 반박한다.14) 기성교회가 영의 세계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교리와 전통으로 생사람 잡는 것은 <위조 영분별>이라고 공격하였다.15)

(4)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를 비판하는 이들을 향해 ‘이단 사냥꾼, ‘성경교 신자’, ‘사탄교’, ‘마귀의 하수인’, ‘사탄의 충견’, ‘사탄의 사냥개’, ‘영적 기생충’ 등의 독설을 퍼부으며 성령을 무시하지 말라고 비난하였다.16)

교회 안에도 사탄교가 있습니다. 즉 정통의 탈을 쓰고 있지만 사탄을 따르고 사탄에게 복종하고 사탄을 위해 충성하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 바로 이단 사냥꾼들입니다. 그들은 현대판 사탄의 회요, 교회 안에 존재하는 사탄교입니다.17)

심지어 큰믿음교회를 비난하고 대적하고 핍박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범죄라고 함으로써 기성교회의 신학적 비판을 하나님에 대한 적대행위로 규정한다.

큰믿음교회에 대한 음해와 핍박은 모두 이런 가짜들에게서 나옵니다. …큰믿음교회를 비난하고 대적함으로 하나님께 범죄하고 있습니다.18)

심지어 예수가 말씀한 그대로 가르친 “그것이 이단이라면 예수님도 이단”19)이라고 하였다.20)

(5) 예장 통합 총회(2009)는 이처럼 변승우씨가 기성교회를 비판하는 것은 자신을 정당화시키려는 의도이며, 기성교회 교인들을 자신의 교회로 오게 하려고 “본인이 목회하는 교회만이 참된 교회라고 주장”하려는 의도라고 비판하였다.21)

한국교회의 많은 이단들 중에 기성교회에 대해 <정통의 탈을 쓴 짝퉁기독교>, <가짜는 진짜를 핍박한다>, <위조 영분별>과 같은 도발적인 제목을 저서를 통해 한국의 보편적 교회를 공격하고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대부분의 정통적인 한국의 공교회를 이단으로 매도하는 사례는 큰믿음교회에서만 찾아 볼 수 있는 예외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배타적인 교회론은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를 부인하는 교회론적 이단의 전형적인 형태가 아닐 수 없다.

2) 직접 계시와 즉흥 설교

선지자의 교회를 지향하는 변승우는 교사와 선지자를 엄격하게 구분한다. 그 차이에 대해서 교사는 성경 저자의 의도를 설명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면, 선지자는 자신이 성령으로부터 직접 들은 말씀을 성경에 을 빗대어 설명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변승우는 ‘말이나, 설명이나, 개념이 아닌 그런 계시 즉, 하나님과 우리 자신에 대한 계시’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말이 아닌 계시가 필요합니다. 개념이 아닌 계시가 필요합니다. 설명이 아닌 계시가 필요합니다. … 주님의 계시가 필요합니다. 주님에 대한 계시와 우리 자신에 대한 계시가 필요합니다.22)

(1) 계시가 필요한 자신에게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각각 변승우에게 직접 말씀하신 내용이 그의 저서 도처에 기록되어 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모두 그에게 직접 계시를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당당하게 주장한다.

그 실례로 “주님, 저는 아무것도 아니고 너무나 부족한데 왜 저를 쓰시고 우리 교회에 부흥을 주십니까?”라고 질문한 것에 대하여 예수께서 변승우에게 직접 말씀하신 내용을 길게 적고 있다.23)

너[변승우]는 실제적으로 아무것도 아니지만 너가 성도들이 필요로 하는 전부이기 때문에 성도들이 만족을 얻을 것이고, 그로 인해 교회는 부흥할 것이고, 그것으로 대부흥이 일어날 것이고, 그것으로 세계를 진동시킬 것이고, 그것으로 도시와 나라를 변화시킬 것이고 열방을 만지게 될 것이다.24)

그가 성령께서 하신 말씀을 직통 계시로 받은 사례 중 일부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25)

너[변승우]의 장점, 은사, 재능 때문에 너의 탁월한 능력 때문에 성공한 것이 아니다. 시기와 우연을 주장하시는 하나님께서 네게 성공을 주실 것이다. … 하나님께서 너를 높혀 주시고, 너를 드러나게 하시고, 교회를 성장하게 하시고, 사역이 크게 하시고, 많은 영혼들을 살리게 하신 것이다.26)

이로서 변승우는 자신이 예수와 성령과 더불어 직접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는 특별한 사이라는 것을 과시하고 있다.

(2) 변승우는 “하나님께로부터 듣지 않으면 설교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제 설교의 좌우명입니다”27)라고 선언한다. 성서에 기록된 과거의 계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금 말씀하시는 직통계시만을 설교한다는 것이다.

설교가 깊이가 있고 꼭 전해야할 가치가 있는 설교가 되려면 지식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계시가 필요합니다. ··· 성경적인 것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반드시 계시적이라야 합니다. 설교는 하나님이 과거에 이렇게 말씀하셨다가 아니라 지금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28)

그는 구약의 선지자나 초대교회 사도들처럼 “성령께서 저에게 설교하라고 레마로 주시는 말씀들을 설교합니다. 제가 설교의 주제나 내용을 자의로 선택하지 않습니다.”29)라고 하였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요 10:27)라고 말씀하셨으므로, 직통 계시를 통해 “주의 음성을 듣고 개인적으로 인도 받는 것은 성경에 반하는 것이 아니며 성경적”이라고 주장한다.30) 그러므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말씀이 현재에 직접 계시되는 것을 수용하지 않는 한국교회의 ‘강해설교나 제자훈련은 희망이 없다’(“말씀 병에서 치유되지 않으면”, 2007년 7월 24일 설교)고 진단한다.31)그런데 “많은 개신교 및 개혁파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사실상 금지”하고 있다고 비판한다.32)

이런 까닭은 큰믿음교회는 스스로 ‘사도적 선지자적 교회’라고 주장함으로서 직통계시를 부정하는 정통적인 교회에 대해 배타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3) 변승우는 실제로 설교 할 때 대부분 성경 본문도 설교 제목도 미리 준비하지 않은 채 강단에 올라가 계시를 받은 데로 시행하는 ‘즉흥설교’라고 한다.

중보기도 시간에는 ‘즉흥설교’를 합니다. 즉흥설교란 전혀 준비하지 않은 설교를 뜻합니다. 제 설교는 모두 즉흥설교에서 나옵니다.33)

그리고 “부흥회 때에는 거의 100% 영감으로 온 설교”만 하며, “이런 설교는 대개 새롭고 영적인 비밀”을 담고 있으므로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34)

큰믿음교회 홈페이지에는 변승우의 ‘즉흥설교’ 총 357편의 VOD가 수록되어 있다.35) 그리고 “즉흥설교 중 성령께서 설교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을 원고로 써서 주일날 설교”하고 그리고 “그 설교 중 성령께서 책으로 만들라고 지시하시는 것으로 책으로 만든다”고 하였다.36) 그래서 자신은 저술에 힘을 쏟고 있으며 50권 이상의 책을 저술하였다고 한다.37)

(4)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변승우가 설교와 저술을 하는동안 천사가 함께한다고 주장한다. 샨 볼츠 목사는 영동제일교회 집회에 참여하여 설교를 하는 변승우에 대해 “이 시간 기록을 담당하고 있는 천사 중 직위가 높고 강력한 한 천사가 변승우 목사님 곁에 와 있습니다. 바울이 서신서들을 저술할 때에 바울과 함께 있었던 바로 그 천사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어서 “변 목사님에게 나타난 그 천사는 지금까지 제가 천사의 나타남을 본 것 중 가장 강력한 것입니다’ 여러분 놀랍지 않습니까?”라고 공언하였다.38)

질 오스틴 목사 역시 천사들이 하늘나라에서 계시와 메시지를 가져와 변승우가 책을 쓰는 것을 도와주며, 그의 저서는 천국도서관에 따로 보관되어 있다고 하였다.

천사들이 목사님[변승우] 곁에 둘러싸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그 천사들은 기록하는 천사들입니다. 하늘나라에서 계시와 메시지를 가져와 책을 쓰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 기록하는 천사들이 목사님 곁에 있습니다.
천국의 도서관이 보이는데 거기에 목사님의 책들이 꽂혀 있고, 목사님의 책들을 꽂기 위한 섹션이 따로 있는 것이 보입니다.39)

실제로 예언사역과 신유사역과 더불어 큰믿음교회의 3대 사역 중에 하나인 큰믿음출판사 사역에 대한 공식 사이트의 소개 글에는 큰믿음출판사는 “정말 중요한 책들은 사도와 선지자들에 의해 쓰여진다는 견고한 믿음 때문”에 주로 검증된 사도와 선지자들의 책을 출판한다고 홍보한다. 변승우는 구내서점을 ‘천국의 도서관’이라고 명하였고, 출판사를 세우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으므로 큰믿음출판사를 세워 이윤추구가 목적이 아니라 진리를 보급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고 한다.40)

변승우는 자신의 저서가 천국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암시하지만, 20세기 최고의 신학자 칼 바르트는 그의 방대한 저서 ‘<교회교회학> 13권을 짊어지고 천국에 가면 천사들이 비웃을 것’이라고 한 적이 있다.

(5) 변승우는 자신이 새로운 계시를 직접 받을 뿐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해석하는 ‘다림줄’(암 7:7-8)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가 “주의 은혜로 다림줄(성경의 바른 이해)을 손에 들고 있다는 또 다른 증거”는 다람줄 사역의 열매인데, 자신이 바로 “12번째 책을 쓰고 있으며, 그리고 회원 14,500명이 넘는 대형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고 있으니 다림줄을 지닌 자의 사역에 합당한 열매를 맺은 증거라고 논증한다.41) 심지어는 성령께서 “그[변승우]가 성경을 해석하는 것은 틀린 것이 없을 것이며, 내가 직접하는 말과 같은 것이라고 하였다”고 주장한다.42)

그는 한국교회의 ‘거의 대부분의 주석과 강해집과 설교들이 사실상은 다림줄’이 아니며, 사실 눈대중에 불과’하므로 불완전한 과정에서 탄생 된 것이라고 한다.

충격적이지만 진실을 말씀드리자면 대부분의 주석과 신학서적, 대부분의 강해설교집과 성경공부 교재, 그리고 대부분의 설교자들의 설교와 심지어는 대형 교회 목사님들의 설교에 이르기까지 이런 불완전한 과정을 통해서 탄생되었습니다.43)

‘여호와께서 손에 잡고 있던’ 그 다림줄을 통해 변승우 자신만이 성경을 100% 정확하게 똑바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서 말씀의 다림줄에 따라 성경말씀을 100%로 완전하게 전해야만 한국교회의 회복과 부흥이 가능해 진다고 역설한다.

영적인 다림줄인 말씀이 성경 그대로의 의미대로 회복이 되어야 교회가 주님이 의도하신 대로 반듯하게 다시 건축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바로 회복과 부흥입니다. ···교회를 제대로 회복시키려면 다림줄인 말씀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손에 다림줄을 가지고 있는 자를 찾고 계십니다. 바로 그런 사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44)

(6) 변승우는 <지옥에 가는 크리스챤들>(2009)의 수정증보판을 홍보하면서 “5년 전 책을 쓸 때 성령께서 ‘이 책은 너의 책이 아니다. 나의 책이다.’ 라고 말씀하셨다”고 하였다. <다림줄>이라는 책에서는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성경 저자들이 성경을 쓸 때에 임했던 그런 영감을 준 사람은 이 종 하나뿐이다”45)고 하였다. 마치 자신의 저서가 성경과 동등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동등한 권위를 가진 것으로 주장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이와 더불어 그가 예언사역과 신유사역을 강조하면서 이러한 초자연적인 사역은 ‘초성경적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였다.46)

새로운 계시는 성경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며 이전에 교회에 알려지지 않았을지라도 교리와는 달리 단순히 문자적으로가 아니라 정신에 있어서 철저하게 성경적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귀 있는 자는 그것을 들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 일부는 비성경적인 것은 아닐지라도 ‘초성경적인 것’이 될 것입니다.47)

이러한 변승우의 주장들은 직통 계시를 받아 전하는 자신의 설교나 저서에 초월적인 권위를 부여하고, 계시를 받지 못한 기성교회의 목사들의 설교와 자신의 설교 사이의 영적 차별성을 강조하는 효과를 노리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성경과 동등한 새로운 직통 계시를 주장하고, 자신의 성경 해석만이 다림줄처럼 완전하다는 배타적 성서해석을 고집하는 것 은 결과적으로 성서의 권위를 부정하는 성서관과 계시관의 현저한 왜곡이 아닐 수 없다.48)

그래서 예장 통합 총회(2009)는 변승우의 성경관과 계시관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훼손시키는 비성경적 기독교 이단”이라고 규정하였다.49) 성경 이외의 새로운 계시나 직통 계시를 주장하는 경우 그 신학적 문제점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① 대한예수교장로회 헌법 중 신조 1조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니 신앙과 행위에 대하여 유일무이한 법칙”이라고 고백한다. 따라서 다른 새로운 계시를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요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법칙’인 성경의 권위를 부정하는 성경론적 이단에 해당한다.

② 웨스트민스트 신앙고백 제 1장 1조에는 “그러나 하나님이 자기의 뜻을 자기 백성에게 계시해 주시던 이전 방법은 현재 중지되어 버렸다”(히 1:1­2)고 했으며, 6조에서는 “이 성경에 대하여 어느 때를 막론하고 성령의 새로운 계시로서나, 인간의 전통으로서도 더 첨가할 수 없다”(딤후 3:15­17, 갈 1:8­9, 살후 2:2)고 하였다. 따라서 변승우의 특별 계시 주장은 성경이 완결된 후에는 어떤 형태의 직통 계시나 새로운 계시가 불필요하다는 정통적인 교리에 위배된다.

③ 칼빈은 성경 66권에는 ‘구원에 관한 모든 부분의 모든 지식이 완전히 계시되어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성경 외에 다른 직통계시를 주장하는 것은 성경의 신적 권위와 성경의 완결성, 충족성, 최종성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성경론적 계시론적 이단에 해당한다.

④ 직통 계시 받은 내용이 대부분 허위로 판명되었고 직통계시 받은 자의 신앙의 착각과 가식과 교만이 드러났다. 예를 들면 이장림(다미선교회)의 경우 1992년 10월 휴거설을 주장하기 위해, 어린 종’들을 중심으로 한 40여 명의 아이들이 ‘직통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였으나 결국 허위로 판명나자 다미선교회는 1992년 11월 2일자로 해체되고 만 것이다.

3) 믿음의 행위 및 참된 회개와 구원론의 문제점

변승우는 어렸을 때부터 유달리 구원론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50) 행함으로 의롭게 되느냐 믿음으로 의롭게 되느냐는 ‘신앙과 행위’에 관한 나름대로 성찰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에 대해 챨스 피니의 <생명의 길>과 조나단 에드워드의 <기독교의 중심>을 읽고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한다.51)

(1) 그는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받고, 믿기만 하면 ‘행함이 없이 죄 가운데 산다 할지라도 적어도 부끄러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거부한다.52) ‘부끄러운 구원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따라서 구원파 박옥수처럼 ‘죄사함과 거듭남의 비밀’을 깨달아 믿으면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가 용서받고, 그 후로는 죄를 자백하거나 회개할 필요가 없으며, 어떻게 살든 천국에 간다고 가르치는 것은 “무율법주의로 명백한 이단사상”이라고 비판한다.53) 거듭남에서 중요한 것은 시간이 아니라 상태이다. 비록 거듭난 시간을 모른다 해도 현재의 상태가 거듭난 자의 상태라면 그는 거듭난 것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다.54)

(2) 변승우는 이런 관점에서 ‘율법의 행위’과 ‘믿음의 행함’을 엄격히 구분한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할 육체가 없다”(롬 3:2)는 바울의 말은 ‘율법의 행위’를 부정해서 하는 말이고, 야고보가 말하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것은 ‘믿음의 행함’을 긍정하는 것으로 구분한다.55)

전자는 구원 받기 전에 나타나는 행위이고 후자는 구원받은 자에게 나타나는 행함이고, 전자는 실현불가능하고, 후자는 실현가능하며, 전자는 인간의 공로가 될 수 있으나 후자는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56)

전자는 자기 힘으로 구원 얻으려는 것이고, 후자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으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단순히 부끄러운 상급을 받는 것이 아니라 아예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이 된다고 한다.57)

그러므로 믿음에는 반듯이 행함이 따르고 순종의 열매가 있어야 한다. ‘구원은 단순히 죄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새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죄에서 벗어나는 것이 칭의라면, 새사람이 되는 것이 중생이므로 “구원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한 면은 칭의이고 다른 면은 중생이다.”고 주장한다.58) 따라서 “칭의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 속에서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중생은 내면에서 실제적으로 [행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한다.59)

이런 까닭에 칭의와 중생의 관계에 있어서 “중생이 먼저”이며, “중생 없는 칭의는 비성경적”이라고 한다. 구원을 얻으려면 궁국적으로 믿음으로 거듭나야 하기 때문이다.

(3) 그러나 믿고 “거듭난 자라도 때로 범죄”하는 것이 믿는 자들의 현실이다. 그러므로 거듭난 자라도 ‘죄가 그를 주관하지 못하게’ 해야 하는데, 습관적인 죄를 참으로 회개하지 않은 경우 죄가 남아 있기 때문에 “예수를 믿어도 천국가지 못하게 된다”고 단언한다.60)

여기서 변승우는 ‘회개와 자백’를 구분하고 양자는 전혀 다르다고 한다. “회개는 습관적인 죄를 대상으로 하고 자백은 우발적인 범죄를 대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회개는 불신자가 하는 것이고 자백은 신자가 하는 것”이라고 한다.61) “회개는 단순히 죄를 뉘우치거나 자백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끊는 것”이기 때문이다.62) 따라서 “회개해야 할 습관적인 죄가 있다면, 다시 말해서 아직도 끊어버리지 못한 죄가 있다면 그 사람은 회개치 않은 사람이요 지옥에 간다”는 주장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죄가 없어야 천국에 가는 것이기 때문에 구원은 참된 회개에 달려 있는 것이 되고 회개하지 않으면 지옥 간다고 단언한다.63)

그러므로 천국에 가려면 이 말씀 그대로 회개할 것이 없어야 합니다. 단 한 가지라도 회개할 죄가 남아 있으면 안 됩니다. 모든 죄를 다 회개했어야만 합니다. 그런 사람만이 참으로 회개한 사람이요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64)

(4) 예수를 믿는다고 할지라도 습관적인 죄를 완전히 회개하여 죄를 없이 해야 천국에 가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 변승우는 역으로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종교개혁자 루터와 칼빈의 칭의론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와 부정에 이르게 된다. 예수께서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했으니 구원의 조건에서 ‘회개’를 배제하고 ‘칭의’만을 주장하는 것은 잘 못이라는 생각이라는 것이다.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요? 대부분 이 질문에 ‘오직 믿음’이라고 대답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온전한 대답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구원의 조건으로 믿음뿐 아니라 회개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65)

그리고 “회개한 사람이 죽을 때는 천사가 마중 나오고 회개하지 않은 사람이 죽을 때는 귀신들이 그를 잡아가려고 온다”고 한다.66) 그러므로 ‘예수 믿고’ 지옥가지 말고 ‘제대로 예수 믿고’ 꼭 천국에 가야 한다는 것이다.67) 이런 까닭에 “거듭나지 않은 죄인은 천국에 가더라도 천국의 참된 즐거움을 기뻐할 줄 모른다. 그가 사악한 죄인인 경우 “천국 한 복판에서도 지옥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68)

따라서 “십자가의 공로를 믿고 의지하면 무조건 죄에서 용서받고 구원받는다는 것은 진리가 아니며 잘못된 가르침”이며, “십자가를 믿고 의지한다고 무조건 죄 용서를 받지는 않는다”69)고 한다.

그러므로 마르틴 루터가 ‘오직 믿음’이라는 슬로건으로 종교를 개혁했는데, 공로도 있지만 이것은 ‘교회에 미혹’을 가져왔고, 칼빈은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미혹’을 정착시켰다고 비난하며 칭의와 견인의 교리를 부인한다.70) 마침내 “예수를 믿고 입으로 고백하면 구원받는다는 것은 본래 이단 사설이며”, 이러한 “이단사상이 이제는 교회 안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들어와 가지고 거짓선지자들의 입술을 통해서 번지고”(“거짓선지자들을 삼가라” 2006년 5월 26일 설교)71)있으며, 주의 진리 대적하고 있다고 과감한 주장을 하였다.

‘오직 믿음’이니 ‘은혜로 받는 구원’이니 하면서 사실은 자기들이 사용하는 단어들의 의미조차 제대로 모르면서 주의 진리를 대적합니다.72)

(5) 그러므로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5:20)는 말씀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는 말씀처럼 “우리 안에 의가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73)

마치 십자가를 신뢰하기만 하면 죄에서 돌아서는 회개나 행함이 따르는 참 믿음이나 예수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새로 지음 받는 거듭남이 없이도 죄 용서 받고 천국에 갈 수 있는 양 가르치고, 자신들만이 정통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74)

이상에서 길게 분석한 변승우의 구원론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① 일반교회가 말하는 믿음은 거짓 믿음이다.
②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자체가 잘못된 가르침이다.
③ 믿음과 회개를 분리시켜, 회개로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④ 그가 말하는 “행함”이란 결국 회개와 율법의 지킴, 순종등 사람의 의지적인 것을 가르킨다.
⑤ 종교개혁자들의 이신칭의라는 교리 자체를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큰믿음교회의 사이트에는 “참된 회개와 진리로 나가도록 부름을 받은 교회”라고 명시하고 있다. 주로 이 일을 중보기도학교 사역을 통해 진행된다.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행하라 (행 26:20)는 말씀에 따라 ‘진정한 회개’를 위해 ‘상한 심령’(시 51:17)으로부터 나오는 ‘통곡 기도’를 하여 ‘자아의 죽이고'(마 10:23), ‘주님의 진정한 신부로써 주님과 동행’(고후 11:2)하도록 사역하는 것이라고 한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철야기도회(저녁 9시부터 새벽 5시)에는 1,000여명이 모여 주님의 얼굴을 구하며, 가족과 나라와 민족 그리고 세계 열방을 위해 주님과 함께 울며 중보하는 시간을 가진다고 한다.

앞에서 살펴본 변승우의 주장과 큰믿음교회의 활동에 대해 예장 합동측은 이단사이비피해대책조사 연구위원회는 보고서(2009)를 통해 다음과 같이 비판하였다.

(변승우 목사는)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성경적인 신앙을 인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믿음은 선행을 수반하지 않는다면 구원받을 수 없다고 논리를 펴 주장한다”며 “변승우 씨의 주장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 성경적 구원관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알미니안주의 혹은 신율법주의를 따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75)

예장 통합 총회(2009) 역시 변승우의 구원론적 주장에 대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구원론”으로서 구원론적 이단으로 규정하였다.

이렇게 변 씨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이외에도 회개와 선한 일을 행해야 한다고 하며, 구원받은 사람도 헌신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고 강조함으로 성령의 선물로 인한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반대하고 행위와 공덕에 의한 구원을 강조한다. 이러한 구원관은 성경적 구원관이나 우리 개혁교회의 구원관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으로, 본 교단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위험한 구원론이다.76)

온전한 구원은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의지하고 본 받으며, 성령의 감화로 거룩하게 하심과 영원한 영광을 믿는 것이다.(예장 통합 신조 9) 따라서 예수의 가르침을 개념적으로 요약하면 “나를 믿으라”(칭의), “나를 따르라”(성화), “나를 기다려라”(영화)는 것이다. 따라서 온전한 구원은 과거에 이미 ‘마음으로 믿어 얻은’(롬 10:9) 구원(칭의), 현재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루어야 할’(빌 2:12) 구원(성화), 그리고 “현재의 고난과 족히 비교할 수 없는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롬 8:18)을 ‘소망 중에 기다라는’(롬 13:11) 영원한 구원(영화)이라는 세 차원으로 되어 있다.

구원의 세 요소인 칭의(稱義), 성화(聖化), 영화(榮化) 중 어느 하나를 극단적으로 주장하고 다른 것을 배제하는 것도 구원론의 왜곡이며 구원론적 이단이다.77)         <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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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윤석, “변승우 목사, 어쩌다 출교당한 이단 됐는가”, <교회와신앙> 2009. 10. 9.
2) 정윤석, “큰믿음교회, 사랑하는교회로 명칭 변경”, <기독교포털뉴스> 2015. 12. 30.
3) http://www.gfctv.org/ko/index.htm (2016. 2. 3.)
4) http://www.gfctv.org/ko/index.htm (2016. 2. 3.)
5) 변승우, <1세기의 사도와 오늘날의 사도>(서울: 큰믿음출판사, 2010), 127.
6) 변승우, <1세기의 사도와 오늘날의 사도>, 125-126.
7) 변승우, <지옥에 가는 크리스챤들>(서울: 큰믿음출판사, 2004), 131.
8) 정윤석, “변승우 목사의 이상한 구원론-‘참 구원받은 사람도 진짜 버림받을 수 있다’”, <교회와신앙> 2004. 12. 8.
9) 변승우, <가짜는 진짜를 핍박한다>(서울: 큰믿음출판사, 2008), 목차 참고
10)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외 편, <종합 이단·사이비연구보고집>(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2011), 308.
11) 변승우, <정통의 탈을 쓴 짝퉁기독교>(서울: 큰믿음출판사, 2009), 88.
12) 변승우, <정통의 탈을 쓴 짝퉁기독교>, 91.
13)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외 편, <종합 이단·사이비연구보고집>, 311.
14) 변승우, <정통의 탈을 쓴 짝퉁기독교>, 87.
15) 변승우, <사도와 선지자들을 잡는 위조 영분별>(서울: 큰믿음출판사, 2008), 109-113.
16)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외 편, <종합 이단·사이비연구보고집>(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2011), 308.
17) 변승우, <정통의 탈을 쓴 짝퉁기독교>, 160.
18) 변승우, <정통의 탈을 쓴 짝퉁기독교>, 25-26.
19) 변승우, <정통의 탈을 쓴 짝퉁기독교>, 74.
20) 전정희, “바리새주의 정통교회가 가장 사악한 이단”, <교회와신앙> 2008. 10. 28.
21)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외 편, <종합 이단·사이비연구보고집>, 309.
22) 변승우, <그 시에 주시는 그 말을 하라>(서울: 큰믿음출판사, 2009), 255-256.
23) 변승우, <그 시에 주시는 그 말을 하라>, 187-192.
24) 변승우, <그 시에 주시는 그 말을 하라>, 188-189.
25) 변승우, <그 시에 주시는 그 말을 하라>, 292-299.
26) 변승우, <그 시에 주시는 그 말을 하라>, 294.
27) 변승우, <계시와 지혜의 영>(서울: 큰믿음출판사, 2007), 9.
28) 변승우, <지혜와 계시의 영>, 9~11.
29) 변승우, <명목상의 교인인가? 미성숙한 신자인가?>(서울: 큰믿음출판사, 2009), 11.
30) 변승우,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서울: 큰믿음출판사, 2008), 10.
31) 전정희, “[이단성 핵심체크] 변승우(큰믿음교회)”, <교회와신앙> 2010. 2. 26.
32) 변승우,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서울: 큰믿음출판사, 2008), 10.
33) 변승우, <그 시에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머리말.
34) 변승우, <대부흥이 오고 있다>(서울: 큰믿음출판사, 2006), 237-238,
35) http://www.gfctv.org/category.php?cateId=100010007 (2016. 2. 3.)
36) 변승우, <그 시에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머리말.
37) <교회가 변하면 세상이 변한다!>, <지옥에 가는 크리스챤들(수정증보판)>, <구원에 이르는 지혜>, <명목상의 교인인가? 미성숙한 신자인가?>, <다림줄>, <정통의 탈을 쓴 짝퉁 기독교>, <말씀 말씀 하지만 성경에서 벗어난 제자 훈련>, <진짜 구원받은 사람도 진짜 버림받을 수 있다!>,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예수빵>,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 <그 시에 주시는 그 말을 하라!(1, 2, 3권)>, <실전 영분별>, <주의 음성을 네가 들으니!> 등 50여권의 책을 저술하였다.
38) 변승우, <다림줄>((서울: 큰믿음출판사, 2013), 25-26.
39) 변승우,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서울: 큰믿음출판사, 2008), 10-11.
40) http://www.gfctv.org/ko/ministries4.php (2016. 2. 3.)
41) 변승우, <다림줄>, 27.
42) 변승우, <다림줄>, 26.
43) 변승우, <다림줄>, 60.
44) 변승우, <다림줄>, 103-104.
45) 변승우, <다림줄>, 25.
46) 전정희, “새로운 계시의 일부는 초성경적인 것” <교회와신앙> 2008. 11. 13.
47) 변승우,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275.
48)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외 편, <종합 이단·사이비연구보고집>, 309. “외국의 사역자들의 추천사를 책 앞에 배치시키는데, 그 추천사에는 거의 예외 없이 변승우 씨가 받은 계시가 성령의 계시라고 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49)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외 편, <종합 이단·사이비연구보고집>, 310, 313.
50) 변승우, <지옥에 가는 크리스챤들>, 99.
51) 변승우, <지옥에 가는 크리스챤들>, 105-123.
52) 변승우, <지옥에 가는 크리스챤들>, 185.
53) 변승우, <지옥에 가는 크리스챤들>, 186.
54) 변승우, <지옥에 가는 크리스챤들>, 187.
55) 변승우, <지옥에 가는 크리스챤들>, 104.
56) 변승우, <지옥에 가는 크리스챤들>, 104.
57) 변승우, <지옥에 가는 크리스챤들>, 104.
58) 변승우, <지옥에 가는 크리스챤들>, 164.
59) 변승우, <지옥에 가는 크리스챤들>, 115.
60) 변승우, <지옥에 가는 크리스챤들>, 161.
61) 변승우, <지옥에 가는 크리스챤들>, 28.
62) 변승우, <지옥에 가는 크리스챤들>, 25.
63) 변승우, <지옥에 가는 크리스챤들>, 24, 43.
64) 변승우, <지옥에 가는 크리스챤들>, 28.
65) 변승우, <지옥에 가는 크리스챤들>, 36.
66) 변승우, <지옥에 가는 크리스챤들>, 35.
67) 변승우, <지옥에 가는 크리스챤들>, 머리말.
68) 변승우, <지옥에 가는 크리스챤들>, 177.
69) 변승우, <주 달려 죽은 십자가>(서울: 큰믿음출판사, 2007), 65.
70) 전정희, “큰믿음교회(변승우 목사)에 ‘성형’의 기름부음이?” <교회와신앙> 2012. 5. 3.
71) 전정희, “바리새주의 정통교회가 가장 사악한 이단”, <교회와신앙> 2008. 10. 28.
72) 변승우,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서울: 큰믿음출판사, 2005), 87-88.
73) 변승우, <지옥에 가는 크리스챤들>, 166.
74) 변승우, <주 달려 죽은 십자가>, 59.
75) “합동측 “변승우 목사 주장은 신율법주의”···참석금지 규정”, <교회와신앙> 2009. 9. 25.
76)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외 편, <종합 이단·사이비연구보고집>, 312.
77) 허호익, “구원론의 통전적 이해”, <현대 조직신학의 이해>(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3), 347-348.



http://www.ame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4707

출처: 영적분별력/진실

가져온 곳: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이 글은 동성애를 용인하고 묵인하는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쓴 글이다.

동성애 합법화의 저지선은 대개 관습적, 생물의학적, 심리학적, 법학적, 신학적 단계로 형성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했던 심리학적 저지선이 무너짐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각종 친동성애 법안 개정과 발효에(동성애 결혼법, 차별금지법 등) 가속도가 붙은 상태가 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마지막 저지선은 교회와 신학일텐데, 도리어 일부 목회자와 신학자들은 마치 영혼이라도 팔아먹은 듯 상황주의적 윤리로써 동성애 옹호에 나서고 있어 그 저지선마저도 붕괴 위기에 직면해 있다.

그리하여 이 글을 마련하였다. 이 글의 원안은 본래 10여 년 전에 작성했던 것인데, 지난 2014 퀴어문화축제 당시 하도 해괴하여 다시 꺼내 손을 봐서 게시했었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도리어 친동성애 정권이 들어섬에 따라 더욱 위중한 시기임을 직시하고 내용을 좀 더 보강해 배포하는 바이다.

동성애 옹호자들이 성서 해석을 어떻게 그릇되게 하는지, 그리고 세속법의 상황주의적 변화와는 별개로 우리의 불변한 기준은 무엇인지를 명확히 하였다. 공유할 만할 것이다.


이영진 기호와 해석
▲이영진 교수. ⓒ크리스천투데이 DB

동성애자 축제인 '퀴어문화축제' 행렬 앞에 가서 드러눕다시피 하는 기독교인의 열정을 지지한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오늘날의 친동성애자들은 성경을 적극 인용해 가면서 변증을 펼친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 신학적 마지노선이란 사실상 성서적 저지선을 말한다.


그렇기에 중요한 것이 성서의 해석이다. 그들 역시 성서를 해석하고 그것을 자신들의 행위의 근거로 삼기 때문이다. 그러한 그릇된 해석을 압도하는 주석이어야 기준(canon)을 빼앗기지 않을 것 아닌가?

그럼에도 반(反) 동성애 입장의 전통적 기독교인은 단지, '동성애자는 무조건 죽이라고 (성경에서) 말했다'는 식의 주석 수준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우선 동성애 옹호 신학에서 단골로 끌어다 쓰는 성서 인용과 해석을 우선 나열하고, 그리고 그것에 대한 반박과 교정을 담되, 최소한 성경으로는 더 이상의 논박이 없도록 당대 사회적 배경과 함께 입체적 주석으로 정리해 놓을 것이다.


1. 동성애 옹호자들의 그듯된 성서 해석에 대한 교정

동성애자를 혐오하는 전통적 기독교인은 대부분 레위기 18장 22절, "누구든지 여인과 교합하듯 남자와 교합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혹은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창 19장) 또는 그와 유사한 한 레위인의 첩 이야기(삿 19장) 등을 토대로 해서 동성애를 다룰 것이다. 과거에는 "봐라! '죽이라!'고 했다!" 하면 사회에 먹혀 들어갔다. 아니 그렇게 선언하고 덮으면 됐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구절들에 대한 동성애 옹호 입장의 변증은 이미 오래 전에 다 고안된 상태이다. 기독교 윤리학 대가인 퍼니쉬(V.P. Furnish)는 이 같은 금지법이 '동성애 금지법'이 아닌 '성결법'으로 보아야 한다면서 동성애의 보호막이 돼 주었다.

보수적인 기독교인이 들으면 눈 가리고 아웅하는 해석으로 들리겠지만, 법의 프레임을 넓게 변화를 주거나 각도를 옮겨줌으로써 동성애 관련 기독교 윤리의 시대적 변화 가능성을 모색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는 그들이 '남자'를 끌어내라고 한 것이 아니라 '천사'에 대한 음욕이었다는 식으로, 한 레위인의 첩 이야기(삿 19) 역시 특별히 동성애를 겨냥한 심판이 아니라 기브아인의 비열함이나 잔인함에 대한 심판이었다는 식으로 그 동성애 경계를 무력화시켰다. 벌써 30여 년 전에 이런 신학적 타진은 끝낸 상태이고, 지금은 일반적 이해가 돼 버렸다.

이와 같은 그릇된 성서 해석들을 모아보면 아래와 같다.

동성결혼
▲ⓒ이영진 교수 제공


※ 위 목록들에 대한 반박이다.

1) 소돔이 범했던 죄는 명백히 동성애의 죄였다

'알다(ידע)'는 모든 경우에 성관계 은유를 표현하는 단어는 아니지만, 창세기에서만 무려 120여 회 사용된 중에 거의가 성관계를 암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특히 롯이 자기 두 딸을 손님 대신 내어주면서 남자를 '안' 적이 없다는 용례는 결정적으로 '성적으로 아는 것'을 의미한다(창 19:8).

게다가 '알다'는 '사악한 일'과 동등선상에 놓여 있다(7절). 소돔 사람의 관심이 성적인 게 아니었다면 왜 소돔인을 달래기 위해 처녀인 두 딸을 제공해야 했겠는가? 자기 딸을 내어주는 문화도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이 대목은 본질적으로 손님 접대(Hospitality) 라는 고대의 전통을 강조하는 대목임을 유의해서 읽어야 한다.

소돔으로 오기 직전 이 손님들에게 접대의 전통(Hospitality)이 아브라함에 의해 극진하게 베풀어진 것과의 비교 맥락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 전통은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히 13:2)"는 말씀의 기원이 된 맥락이다

2) 소돔의 죄인 이기심은 동성애와 연결되어 있다

동성애자들의 퀴어축제 행렬을 따라 다니며 성찬을 베풀어주는 '무지개 목사'들의 경우, 다음 구절을 인용한 피켓을 드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

"네 아우 소돔의 죄악은 이러하니 그와 딸들에게 교만함과 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있음이며 또 그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주지 아니하며(겔 16:49)".

이 본문을 통해 소돔과 고모라는 동성애 범죄가 아니라,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돕지 않은 죄'였다는 주장이다. 그것은 아마도 저기서 지적하는 소돔의 범죄는 '동성애'가 아닌 '교만'인데다, 소수(의 약)자라 일컫는 동성애자를 배격하는 반 동성애 기독교인들이 마치 소돔 자신이라는 모션인 것 같다.

에스겔이 소돔뿐 아니라 사마리아와 심지어 예루살렘까지 연대된 죄로 놓고 있기에(겔 16:46, 49) 유다도 피할 수 없던 이 죄는(50절), 동성애가 아닌 가난한 자를 돌보지 않은 죄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창세기 19장의 전통적인 동성애 죄 견해에 대한 균열을 공략하려는 것 같다. 실제로 이런 주장을 한 학자는 대표적으로 월터 짐멀리(Walther Zimmerli) 같은 사람일 것이다.

그렇지만 에스겔의 소돔에 대한 일련의 언급들은 가난한 자를 돕지 않았을 뿐 아니라, 동성애 죄를 같이 갖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 정설이다(Norman Geisler). 비틀어 풀 하등의 이유가 없다. 동성애란 가난한 자들에게 발생하는 죄가 아니라, 주로 가난하지 않은 사람에게서 발생하는 죄이기 때문이다.

물론 현존하는 동성애자 중에는 가난한 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트렌드로 창궐한 뒤의 일반화이고 문제는 진원지인데, 에이즈(AIDS)가 동성애에서 다발로 발생하는 것처럼 동성애의 시원 지점은 절대 부유함이다. 가난한 자는 먹고 사는 생계 문제 때문에 성에 탐닉할 겨를이 없다.

그리고 그들은 대개 부자가 되려는 꿈에 대한 기대를 안고 살아가기 때문에, 행여 그 꿈이 깨질까봐 고도의 쾌락 같은 것은 들여놓지 않으려는 다소의 면역체계를 구축하고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심령이 가난하라고 했던 것이다. 니체는 이것을 '노예의 도덕'이라고 불렀다.

이제 아래에서 보면 알겠지만 역사적으로 노예들에게도 동성애가 있었는데, 그것 역시 대부분 부자, 즉 주인의 유린과 착취의 형태를 띠고 일어났다. (동성애로 성적 결정권이 유린당한 것이다. 오늘날은 거꾸로 동성애가 자기 결정권이라고 한다. 스스로 노예이면서.) 따라서 '동성애'와 '가난한 자를 돌보지 않은 죄'를 동일선상에서 보지 않는 이 자들은 참으로 옹색한 주석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소돔이 범했던 죄는 접대 전통의 소홀함·불친절만이 아니었다. 이기심의 죄도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위의 피켓에 적힌 구절 바로 다음 절인 50절에 나오는("거만하여 가증한 일을 내 앞에서 행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보고 곧 그들을 없이 하였느니라"), '가증함'은 앞서 동성애 죄를 적시했던 레위기 18장 22절("남자와 교합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에 나오는 '가증함'과 동의어이다. 소돔의 죄인 이기심은 동성애와 연결돼 있다.

3) 레위기 율법은 현대에도 적용될 수 있는 법이다

고대의 제사법이 개정되거나 철폐된 사례를 들어 동성애에 대한 조항의 현대적 개정 가능성을 타진하지만, 제사 및 의식법을 그렇게 동성애와 묶어서는 안된다. 구약에 정해신 식사 의례는 변경됐지만(마 7:18; 행 10:12) 동성애를 하지 말라는 도덕 명령은 신약에서도 거듭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롬 1:26-27; 고전 6:9; 딤전 1:10; 유 7).

4) 불임에 관한 유대 정서와 동성애는 전혀 별개의 것이다.

불임은 동성애가 나쁘다는 이유가 당초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독신자를 죄인이라고 해야 할텐데 그렇지 않다(cf. 마 19:11-12; 고전 7:8).

"어머니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마 19:11-12)"

"내가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과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고전 7:8)"

5) 이성간 사랑이 동성애자에게 비정상적이라는 주장은 궤변이다.

로마서 1장 26절에 나오는 '역리'는 범죄 용어가 아니라, 단지 '비정상'이라는 상대적 개념어라는 논리인데, 그렇지 않다. 동성애자들은 동성애가 순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 잘 안다. 그래서 떳떳하지 못해 숨어지내는 것이다.

오히려 친 동성애 신학에서조차 어찌 하지 못하는 가장 강력한 반동성애 코드가(레위기 법전이나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가 아닌) 바로 바울의 이 로마서 1장 18-32절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챕터와 결론에 가서 자세히 정리할 것이다.

6) 다윗과 요나단은 동성애가 아니라 친구애였다

요나단이 다윗 앞에서 옷을 벗었다는 것는 갑옷과 예복을 벗었다는 의미이며(삼상 18:4), 특히 그것은 세습 왕권의 포기와 권력 이양을 상징한다. 아울러 당대 남성들의 인사법은 입맞춤이었고, 과연 "다윗이 곧 바위의 남쪽 편에서 일어나 땅에 엎드려 세 번 절한 후에 피차 입맞추고 같이 울되(삼상 20:41)"라는 문맥이 성적 뉘앙스인지 의아하며, 게다가 다윗은 밧세바를 향한 강력한 이성애 욕에 휩싸인 바도 있다. 다윗과 요나단에 관한 구체적 변증은 다음 글을 참조할 것.

다윗과 요나단은 동성애가 아니야  

바울
▲사도 바울 동상. Statue of Saint Paul by Giuseppe De Fabris 1840 in front of St. Peters Basilica, Rome. ⓒ이영진 교수 제공


자, 다음은 동성애의 죄상에 관한 사회적 배경이다. 그것은 앞서 언급한 로마서 1장 18-32절과 맞물려 있다. 바울이 구약성경의 '동성애자는 죽이라'는 강력한 율법이 있음에도, 도리어 그런 율법 조문은 사용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유념할 것이다. 당시 이런 배경 때문이다.


2. 로마의 동성애

로마에 동성애가 만연했지만, 공식적으로 드러내 놓고 수용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공화정 당시에는 노예와의 관계 안에서만 성행하였고 연장자가 소년을 성추행하면 처벌을 받는 등 공식적으로는 다소 제한적이었다.

게다가 과도기까지 이어진 동성애는 제정 말기에 이르러 부부애가 강조됨에 따라 점차적으로 동성애가 위축 되었고, 스토아주의(금욕주의)에 의한 성윤리가 확산된 이후로는 출산 목적의 성관계만 허용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당시 많은 이교도들로 구성된 기독교 공동체에 있어 개종자들의 성 정체성은 복음 윤리와의 접목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다고 보고된다(W. Neil).

죄의식 없이 문란한 이 같은 성 정체성은 천민계급뿐 아니라 거의 모든 계급에 퍼져 있었는데, 초기 15대에 이르는 로마 황제 가운데 14명이 동성연애자였다고 전한다(W. Barclay). 심지어 동성애란 그리스인이나 로마인만 독점한 게 아니라 셈족에게도 흔한 일이었다는 보고도 있다.

다음은 몇 가지 구체적 사료들이다.

1) 세네카

네로 황제의 가정교사이자 AD 49년경 집정관을 지낸 세네카(Seneca, 4 BC-AD 65)의 「Moral Epistles」에는 당시의 사치하고 방탕한 사람들의 노예 착취에 대한 상황을 다음과 같이 개탄스럽게 묘사하고 있다.

"...술 시중을 드는 노예는 여장을 해야 하고 나이가 든 남자도 소년처럼 행동해야 하는 괴로움이 있다.... 그는 마치 여자처럼 수염을 기르지 못하고 머리를 이쁘게 빗어 묶어야 한다. 그는 밤을 새워가면서 주인이 술이 취해 골아 떨어질 때가지 술시중을 들면서 그의 주인의 성욕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성의 놀이개가 되어야만 한다."

또 네로는 동성애뿐 아니라 생모 소 아그리피나와의 불륜 의혹에 이어 결국 그녀를 참살하고 처 옥타비아와 이혼한 다음, 포파이아와 결혼하기 위해 옥타비아를 간통죄로 살해하는 등 성적으로 가정 부도덕한 황제로 알려져 있다.

2) 플루타크

아테네의 사정을 잘 알 뿐 아니라 이집트 여행을 한 적도 있고 로마에서 강연도 하였다고 알려진 전기 작가 플루타크(Plutarch, AD 46-120)는 그의 「Dialogue on Love」라는 저서에 등장하는 한 화자의 대사에서 다음과 같은 대목을 포함시키고 있다.

"...만일 남성들과의 연합이 애인의 부드러움을 파괴하지 않는다면 남녀간의 사랑은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므로 합리적인 것이고 또 사랑에서 우정이 발전할 수 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 남성들과의 결합은...(사랑과 생식을 관장하는 헬라의 여신인) 아프로디테의 총애를 잃고 미움을 받을 것이다. ..."

3) 크리소스톰(Dio Chrysostom, AD 40-112)

도미티안 황제 통치 초기에 로마로 추방당했던 Dio는 그의 저서에서 "비록 여성들이 많지만 이 남성들은 음탕함과 불법을 통하여 남성들로부터 만들어진 여성들을 갖기 원하여 남성들을 거세하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불행한 종(Breed)의 인간은 여성 보다도 더 연약하고 더 여성다웠다"라고 전한다.

다른 곳에서는 좀 더 구체적이고 유명한 사례로서 AD 67년에 네로는 그의 두 번째 아내 포파이아(Poppaea Sabina)가 죽은 후 그의 남자 애인 Sporus를 거세시켜 그의 이름을 Sabina라고 고치고 그와 정식 결혼을 했다고 전하고 있다.

앞서 구약성서의 동성애 관련 구절들을 '성결법'이나 '학대금지'로 시계를 흐렸던 퍼니쉬(V.P. Furnish)는 세네카나 플루타크의 이 같은 동성애에 관한 평가를 단지 '착취'나 '자연스럽지 않은 것'에 대한 전형적인 금욕주의적(스토익) 반감이라고 표명하지만, 그러면서도 이런 문구를 남기고 있다.

"그래서 이런 남성들은 좀처럼 정복하기 어려운 남성들을 자기 성욕을 충족시킬 대상으로 삼고 싶어한다. 이런 남성들은 젊은 남자들과 좀처럼 접근하기 어려운 남성들과의 성적 유희를 즐기려고 한다. ..."

이상과 같이 로마의 보편적 문화였던 동성애는 말 그대로 보편적이었지만, 그것은 억제된 정당성 속에 성행했다는 점에서 우리 시대와 같은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 시대의 선진국 로마에 그같은 성 풍속과 성 관념은 왜 유행되었던 것일까?

그것은 그리스의 문화를 그대로 받았던 로마로서는 자연스런 문화유입이었다.

▲Liberal MP calls for referendum on same-sex marriage after Ireland vote. ⓒ이영진 교수 제공

그렇다면 그리스의 동성애는 어떤 것이었나?


3. 그리스의 동성애

그리스 시대의 동성애는 사회 일반적으로 보편화되어 있었다. 그들이 동성애에 관한 보편성을 갖기까지는 신화적 관념 속에 깊이 탑재되어 있었다.

이를테면 일찍이 플라톤은 아프로디테를 천상과 지상에 각각 존재하는 둘로 규정하고, 어머니 없이 우라노스에게서 나온 천상의 아프로디테는 오직 남성적 요소만 갖고 있는데 그것이 소년에 대한 사랑이며, 지상의 아프로디테는 여성과 남성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순수하지 못한 사랑으로 여긴 바 있다.

그런가 하면 철학적 사상 구조의 측면도 있었다.

단편적이긴 하지만 이들의 철학적 이해에 따르면 여자와의 사랑은 '아기를 낳는다'는 불순한 목적이 있는 사랑이지만, 소년애는 순수한 사랑, 그야말로 사랑을 위한 사랑(l'amour pour l'amour)이기 때문이라고 정의한다.

이러한 관조적 개념은 자웅양성으로 불리던 혼합적 존재가 반으로 나뉘어 남자 혹은 여자가 되어 간통과 같은 천한 죄를 범하는 부류가 된다는 사상의 근거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자웅양성의 혼합적 존재가 아닌) 순전한 성을 가진 사람들만이 동성애를 하게 되는 것이라면서 소년애를 특별한 남성다움으로 제시하였다.

결국 이러한 개념은 "여자들을 좋아하고 아기를 낳고 싶으면 아내에게로 가라. 여자와 자고 싶으면 노예나 창녀에게로 가라. 진정한 사랑을 하고 싶다면 미소년에게로 가라"는 철학적 멋스러움으로 작용했고 이것이 곧 그리스인들의 성관념이 되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그들의 사회적 구조가 그와 같은 하류의 신화와 철학을 그렇게 자연스럽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있다.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지위가 낮고 천했던 가사 여성은 한낱 생산의 도구였던 까닭에, 그리스의 어머니들에게는 자기의 자식을 가르칠 만한 지식이 없었다.

따라서 그리스 성인 남성들은 폴리스의 유지를 위해 어린 소년들을 훈련시켜야 하는 교육 과제를 안고 있었고, 이러한 관계 속에서 소년들은 필요한 그들의 지혜와 경험과 노하우를 성인 남성들로부터 전수받고 자신들이 장차 자라나 폴리스의 공직을 맡는 데 지장이 없도록 보호받는 대가로 자신들의 몸을 허락하던 것, 그것이 바로 그리스의 동성애였던 것이다.

이와 같은 뿌리를 지닌 사회에 유대교의 율법을 던진다 한들, 누가 귀담아 들었겠는가?


4. 바울과 동성애

그와 같은 상황 속에서 바로 이 명문이 선포된 것이다.

"19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25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26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27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32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ㅡ로마서 1:18-32"

이 같은 상황에서 바울은 동성애를 윤리로 다룰 때 우리처럼 레위기 법전 같은 고강도 텍스트를 사용하지 않고, 대신 난데없이 '양심'이라는 일반적인 도덕률을 끄집어낸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결국에는 그 양심을 통해 율법까지 포섭해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의 테크닉, 아니 주석 능력을 이 시대 기독교인은 배울 필요가 있는 것이다.

[양심이라는 술어는 신약성서에서 일종의 파라클레토스이다. cf. https://www.facebook.com/pentalogia/posts/776004379098650] 그것은 위와 같은 사회 배경에서 살폈듯 이방인에게 제 아무리 "레위기에서 (동성애자를) 죽이라"고 했다며 성경책을 펼쳐보였다 한들 무위에 지나지 않았던, 이 시대의 경우와 결코 다르지 않았던 상황에 적확한 대응이었던 것이다. 특히 저기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바로 이것이다.

"그들이 마음(ἐπιγνώσει)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νοῦν)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28절)

우리 인간에게는 두 가지 마음이 있다. 하나는 에피그노시스(ἐπιγνώσις), 지식소. 지식이 들어가는 마음이다.
다른 하나는 누스(νους), 인식소. 인식이 들어차는 마음이다.

지식소인 전자의 마음에는 '안 된다' 혹은 '된다'는 기준으로서의 지식을 집어 넣는 것인데, 넣기가 싫은 것이다. 그냥 싫은 마음이다.

후자의 마음은 말 그대로 상실된 마음, 버려진 마음이다. 그 교정/개정의 여지를 거부하니깐 자신의 인식이 그만 버림을 받은 것이다. 이러한 인식 구조의 원리를 토대로 우리에게는 마비가 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더러움과(v.24) 부끄러움과(v.26) 상실한 마음대로(v.28) "내어버려 둠(v. 24, 26, 28)"을 당하게 되고 그 내어버려둠의 결국에 맞이하게 되는 것이 바로 순리를 역리로 바꿔 쓰는 여성 동성애(v.26)와 남성 동성애(v.27)라는 최종 귀결에 이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이해하고 있는, 또한 우리가 이해해야 할 동성애이다. 동성애는 심판의 요인이 아니라 심판의 결국인 셈이다.

그렇지만 역으로 이 인식의 구조 덕택에 우리 모두는 진정한 심판의 국면에 섰을 때, "핑계치 못하게"ㅡ도 되는 것이다. 인식이 모른 척 했을 뿐이기에.

다시 말하거니와, 동성애 하면 벌 받는 게 아니라 동성애가 곧 형벌이다.


에필로그

따라서 우선 그리스도인들은 동성애는 생물의학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것임에 확신을 가져야 한다.

아울러 바울의 논거처럼 아닌 것을 아니지 않다고 하는 세상, 그리고 또 그렇게 그대로 되는 세상에서는 양심이 그 율법을 대신한다는 사실도 재확인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구약 보다는 바울 텍스트가 더 적절하다.

그럼에도 긍휼히 여김의 끈은 놓지 않기를.


이영진 교수
호서대학교 평생교육원 신학 전공 주임교수이다. 그는 다양한 인문학 지평 간의 융합 속에서 각 분야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도, 매우 보수적인 성서 테제들을 유지해 혼합주의에 배타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신학자로, 일반적인 융·복합이나 통섭과는 차별화된 연구를 지향하고 있다. <자본적 교회(대장간)>,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홍성사)> 등의 저서를 갖고 있다.


원문 출처: http://www.christiantoday.co.kr/news/300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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