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의 부활   


찬송 : 164장 예수 부활했으니

성경 : 고린도전서 15: 13~20

요절 :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세상의 삶 뿐

       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그러나 이

       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

       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19~20)

 

예전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인사를 나눌 때 "진지 잡수셨습니까?" 하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배고픈 시절, 한 끼의 밥이 그들에게 그만큼 소중했기 때문입니다. 그리

고 2천 년 전 초대 교회 교인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사셨습니

다."라고 인사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속에 예수님의 부활이 가장 크게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부

활은 기독교 신앙의 초석(礎石)이며 근본입니다.만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대신 죽

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영원한 삶(eternal life), 천국이 있는지도 모른채 여전히 죄 가운데서 허우적대며 덧없는

삶을 살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결과를 뻔히 아셨던 하나님은 우리를 그냥 두실 수 없

으셨습니다. 그래서 독생자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셨고,


우리의 죄와 허물을 대신해 죗값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

셨습니다.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만일 환

난과 시험을 극복하며 믿음으로 사는 사람에게 이 세상이 끝이라면 얼마나 불행하겠습니

까?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믿음도 헛되고, "예수님 믿으세요!"라고 전하

는 복음도 아무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나를 믿은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나를 믿은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


고 물으셨던 예수님은 직접 부활하심으로서 죽음 이후에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임을

보여 주셨습니다. 결국 기독교는 '십자가의 믿음'과 '부활 신앙'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죽

은 이후를 두려워하고 무서워합니다.


죽음 이후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은 사람들은 이미 모든 죄를 용

서받았기에 두여울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부활의 몸으로 주님과 함께 천국에서 살기에 죽

음 이후의 삶을 기다립니다.성도에게 죽음은 종말이 아닌 촉복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곧 나의 십자가이며, 예수님의 부활 역시 나의 부활입니다. 이 선명(鮮

明)한 전리를 붙잡은 만큼 ,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날마다 감사하며 믿음으로 나아가기 바

랍니다.


* 부활 신앙을 마음에 가득 품고 있습니까?


기도

하나님, 믿음으로 산다고 하지만 사는 일에 힘들고 지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십자가라는 가장 무거운 고통을 짊어지셨던 주님을 생각하며 인내할 수 있게 하옵소서.부

활하신 주님과 영원히 산다는 소망을 놓치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

다. 아멘.


                                                  최재화 감독  명암교회

북괴군 점령당시 민간인 학살숫자

서울.....1,383명
경기.....2,536명
충북........663명
충남.....3,680명
전북.....5,603명
전남...43,511명(72.5%)
경북....... 628명
경남....... 689명
강원.... 1,216명
제주........  23명
철경........  62명 / 총수..59,964명

당시 김일성은 전라도에서
30만명을 학살할 계획이었으나,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면서
미처 다 죽이지 못하고
부랴부랴 북으로 후퇴..

한국전 당시 북한의 점령기간 중에
벌어진 살육파티의 희생자 72.5%가
전라남도에서 발생.

전라도 지역은 6.25 전쟁중
전략적 포기지역으로 간주되다시피하여
전투도 거의 없었던 지역이다.

아직까지 북한군이 전라도에 대해
학살을 단행한 원인이나
이유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없다.

전라도의 경우에는 북한군의 남침에 대해 당시
상당히 우호적인 여론이 강했었고,
이 때문에 당시 북한군이 남하를 하는 가운데에서도
피난을 가거나 하는 행렬이
거의 존재도 하지 않았다.
물론 교전기록 자체도 존재하지 않는다.

일단 김일성이 전라도에서,
그것도 자신들의 남침에 상당히
우호적인 여론이 강했던 전라도에서
왜 이런 대학살극을 단행했는지에 대해서는
다음의 두가지의 경우로 예측이 가능하다.

서울에서 3일간 체류했지만,
기대했던 전라도의 봉기는 없었다.
빨치산을 비롯해서  박헌영이 좌익사범을
가장 많이 양성했던 지역으로 손 꼽히는
지역이 전라도였다.

전세계 모든 공산주의가 마찬가지이지만,
노동자와 농민을 그 대상으로 하여 세력을
확장을 하고 있었는데, 이는 해방 후
전라도에서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공업시설은
거의 전무하다시피하였고,
북한지역에 공업시설이 집중되어져 있었기
때문에(해방후에 남한의 전기도
북한에서 공급을 받았다.)
북한 노동자 세력의 대부분은
공산주의 세력이 되어 있었다.

남한에서는 북한보다
공업화가 덜 되었기 때문에 노동자세력을
공산주의로 끌어들일 수는 없었고,
농민이 그 대상이었는데, 전라도가
농업이 가장 왕성했던 지역이었기 때문에
박헌영이 주 무대로
활동을 했었던 지역이기도 하다.

박헌영은 전라도에서
엄청나게 많은 공산주의자들을
남로당에 가입을 시켰으며, 이들중 일부를
무장봉기 세력으로 양성을 했다.
소위 알려진 남부군, 즉 빨치산이다.

이들 농민세력으로부터
할당받은 식량을 기반으로 새로운 회원들을
계속해서 증원시켜 나갔는데,
어느 정도 세력이 구축이 되자,
월북하여 김일성에게 "남침할 것"을
요청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헌영이 김일성에게 남침을 요구하면서 했던
주장은 "내려가서 서울만 점령하고 있으면,
나머지 지역에서
알아서 봉기가 일어나서 적극적으로
동조를 해줄 것이기 때문에 큰 피 흘릴 일 없이 쉽게
적화가 가능할 것이다" 라는 논리에서였다.
그 지역이 바로 전라도였던 것이다.

당시 남한 정규군이 대략 십만여명 이었는데,
빨치산의 규모가 2만명정도였으니,
박헌영이가 하는 말이 결코 틀린 말은 아니었던 것이다.

김일성 역시도 박헌영의 계략이 옳다 여겨
기습남침을 감행하고 계획했던 대로
서울을 단일에 점령을 하고(일부 동부전선에서
우리군 저지로 조금 늦어진것도 있었지만)
핵심은 서울완벽 점령 3일동안 남한내부에서의
궐기를 기다렸지만,
기대했던 봉기가 일어나지 않았음을 보고
김일성은 대단히 당혹스러워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김일성은
남침을 계속해서 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를 두고
대단히 고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두고 KBS역사 스폐셜에서는
"왜 3일동안 서울에서 머물렀나?"라는 주제로
북한군이 3일동안 서울에서
체류한 것을 두고 여러가지 의혹을 제시하기도
했지만,대부분이 핵심적인 요소는
지나간 방송이었다.

김일성은 전라도에서 일어나야 할
봉기가 발생하지 않자,이에 대한 앙갚음으로
전라도에서만 대대적으로
학살극을 단행했다고 하는 설이
현재 가장 신빙성이 높다.

(나중에 쏘련측
자료에서 3일동안 서울에 머무른건
전라도쪽 봉기를 기다린것으로 나옴,
북한총리 강산성의 사위인 강명도 역시
탈북하고 방송에서 이렇게 증언함)

즉 전라도에서만 봉기를
해주었다고 한다면 남한은 벌서
적화통일을 시켰을 것인데,
전라도에서 봉기를 하지 않아
(국부 이승만이 사전에 농지개혁을 해버려서
전라도쪽 소작농들 불평불만을
해소해버림 이승만 농지개혁의 최고 수혜자가
사실상 농지가 최고 많은 전라도)
그것이 성사되지 못했고, 낙동강 저지선을
마지노선으로 배수진을 친 연합군을
더 이상 침공해 들어가지 못해,
그 앙갚음을 더더욱 잔인하고 악랄하게
전라도에서 학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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