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령인' ....나이와 건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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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세 고개 넘으면… 

건강 관리법 완전히 새로 배워라.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서는 

최근 노인을 두 단계로

구분하려는 시도가 한창이다.


65~74세를

'준(準)고령인'이라 하고

75세 이상을 

'고령인'으로 하자는 내용이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전문가들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75세를 기준으로 제안한다.

 

일산 백병원 

가정의학과 양윤준 교수는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75세 이후로

 신체 기능이 급격히 떨어지고

 

80세 부터는 

앓는 질환이 갑자기 늘어난다"며 

"75세 전후로 

신체 상태와 건강 관리법이

확연히 다르다"고 말했다.


혈압·혈당 관리, 

75세 이후 '느슨하게'


65~74세 노인은 

혈압·혈당 목표를

중장년층과 비슷한 수준으로

강하게 잡는다. 

체중 감량, 운동 역시

강도 높게 하도록 권장한다. 


반면 

75세 이상은 

느슨하게 관리하도록 한다.

혈당 수치보다는 저혈당 등 

부작용을 예방하는 것이 우선이다. 


미국 당뇨병 학회 

가이드 라인에 따르면 

당화혈 색소

(3개월간 혈당 조절 정도를

나타내는 수치, 정상 6.5% 이하)를


▲건강한 노인은 6.5~7.0% 

▲쇠약한 노인은 8.5% 이하 

▲매우 쇠약한 노인은 9.0% 이하를

목표로 삼는다. 


분당 서울대 병원 

내분비내과 임수 교수는

"집안일·목욕 같은 일상생활을

 혼자서 무리 없이 한다면 건강한 노인, 


누군가의 도움이 

약간 필요하면 쇠약한 노인,


혼자서는 불가능하면 

매우 쇠약한 노인으로 구분한다"며 


"일상 생활 수행능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나이가

 75세 전후"라고 말했다. 


비교적 젊고 

건강한 75세 미만 노인은


살을 빼고 과식을 피해야 하지만

고령이면서 쇠약해진 75세 이상 노인은

고기 등 단백질을 되도록 많이 먹으면서

체중이 줄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 고혈압도 비슷하다. 

고령 환자의 적절한 

목표 혈압에 대한 결론은 

아직 확실히 나지 않았지만

진료 현장에서는 나이가 많을수록

목표 혈압을 높게 정하고 있다. 


65~74세는

140/90(㎜Hg)미만, 

75세 이상은 

150/90 또는 160/100 미만으로 

관리하는 식이다. 


서울시 보라매 병원

가정의학과 오범조 교수는

"고령 환자의 혈압을 

너무 강하게 관리하면 

저혈압 등 부작용으로 

더 위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콜레스테롤, 

나이 들어선 적절히 높게


이상 지질혈증의 경우

고령일수록 되려 유병률이 낮다.

 2016년 국민건강영양조사를 보면 

60~69세의 이상지질혈증 환자 비율은 

전체의 37.6%지만, 

70세 이상에선 23.9%다. 


섭취하는 음식이 바뀌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입맛이 바뀌고

치아가 나빠져 

고기 등 기름진 음식을 꺼린다.


75세 이후로 

콜레스테롤 수치가

떨어진다고 안심해선 안 된다.

 

오히려 

75세 이후엔 

콜레스테롤 수치를 적절히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 좋다. 

콜레스테롤은 혈관 벽의 주요 재료다. 


너무 줄어들면 

혈관 벽이 약해져 

뇌졸중·심근경색 위험이 높아진다. 


또한 콜레스테롤은 

호르몬의 주요 재료이기도 하다. 


나이 들어 각종 호르몬의 

분비량이 감소한 상태에서 

콜레스테롤 섭취마저 줄어들면 

신체 균형이 더 빠르게 무너진다.


나이 들수록 

과체중일 때 치매 위험 낮아져


이러한 이유로 의사들은 

75세 이후 부터는 

고기·과일 등을 충분히

먹으라고 권장하고 있다. 


75세 미만은 

체중이 적을수록, 

75세 이상은 

약간 과체중이어야 사망률이 낮다. 


임수 교수는 

"75세 이후의 과체중은 

신체 기능 저하로부터 

일종의 완충재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체질량지수(BMI) 기준

 23~25가 적당하다"고 말했다.


체중이 

치매에 미치는 영향도 

75세를 전후로 확연히 다르다.

 

75세 미만에선 과체중·비만이, 

75세 이후론 저체중이 

치매 위험을 높인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노인 68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60~69세의 경우 

비만일 때 치매 위험이 

정상 체중보다 70% 높았지만


70세 이상에선 오히려 3%, 


80세 이상에서는 

비만일 때 치매 위험이 

22%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65~74세는 팔·어깨 부상, 

75세 이상 다리·고관절 골절 주의


낙상(落傷)을 입더라도

65~74세는 손목·팔·어깨처럼

상체에 부상이 집중된다.


 75세 이상은 

다리·고관절 골절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건강보험 심사평가원의

자료를 보면, 

지난해 

어깨 관절 치환술을 받은 노인은 

65~74세가 3만3121명, 

75세 이상이 2만2621명이었다. 


반면 고관절치환술은

65~74세가 5287명, 

75세 이상이 1만3532명이었다. 


양윤준 교수는 

"75세 이상은 

근육량이 더 적고 

반응 속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넘어지면 손을 짚어 

몸을 보호하지 못하고 

엉덩방아를 찧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나이 들수록 

 골다공증이 더욱 심해져 

 같은 충격이라도 

 골절로 이어지는 경우가 

 더 많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암은 

75~80세에 발병률이 가장 높다. 

그러나 

75세 이전에 

많이 발생하는 암도 있다.


여성의 유방암·갑상선암이다.

 

국립암센터 

김열 암 관리사업부장은

 "이유는 모르지만 

한국·일본 등 동아시아에선

40~60대 젊은 유방암 환자가

많다"고 말했다.  


✔장마철에 

     더욱 건강 챙기세요〰️🎶

< 영지주의, 말시온주의, 몬타니즘 >


박해는 누가 보더라도 교회에 치명적인 해를 가져왔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박해는 교회 밖에서 왔으며, 복음을 드러내 놓고 반대하는 자들에 의해서 자행되었다. 박해보다 더 심각한 위협이 2세기 교회에 있었는데, 이는 복음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이라는 형태로 찾아왔다. 

3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영지주의, 말시온의 가르침, 몬타니즘

영지주의는 처음부터 완전한 이사상이었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독교의 가르침에 유입되었다. 말시온과 몬타누스는 교회에 속한 자들이었는데 이들의 가르침이 훗날 교회에 문제를 일으켰다.


<< 영지주의(gnosticism) >>

복음이 전해지자 세상은 구원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졌다. 철학은 지식인들의 마음에 만족을 주었지만, 대중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제국의 종교는 냉담했고, 성격상 종교적이기 보다는 제국 통치의 수단으로 이용될 뿐이었다. 자연종교는 제국에 살고 있는 시민들의 갈급한 마음을 넉넉하게 채워주지 못했다.

그래서 민간에 널리 퍼진 것이 신비종교들이다. 신과 연결시켜주는 비법을 알려준다며 사람들을 선동하였다.

2세기에 강력한 세력을 이루며 사람들에게 널리 퍼졌던 종교 사상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영지주의'(gnosticism)이다. 

이 용어는 신, 인간, 구원에 대한 참 지식을 제공해 준다는 뜻이다. 영지주의 사상은 인도, 바빌론, 페르시아 지역에서 유래했다. 이 사상은 그리스 철학의 기본 사상과 유사하다.

영지주의에 심취된 자들은 기독교에 굉장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특히 그 구속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흥미를 가졌다. 그들은 예수와 그분의 메시지를 자기들 종교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였다. 영지주의는 동양 종교, 그리스 사상, 기독교 사상을 혼합한 종교이다. 


1. 영지주의의 문제

그리스와 동양의 모든 종교들은 매우 크고 기본적인 문제를 하나 가지고 있다. 
이들은 신은 절대로 물질 세상과는 그 어떤 관련도 맺지 않는다고 믿었다.
악은 물질에서 나오는 것이며, 신은 선한 존재이기 때문에 모든 사물로 부터 멀떠 떠나 계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악한 물질과 관련되어 있는 인간이 어떻게 선한 신과 관계할 수 있을 것인가? 
신은 과연 누구인가? 
우리는 신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인간은 무엇인가? 
악은 무엇인가? 
신이 선할진대, 영적 세계에 무슨 잘못이 벌어져서, 신의 후손인 인간이 악하게 된 것일까? 
인간은 악에서 건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질문들은 영지주의자들이 물었던 것들이다.  

그들은 구원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졌던 자들이다. 
인간이 어떻게 다시 신과 교제할 수 있을까? 
인간은 어떻게 하면 순수한 영혼들의 세상으로 복귀할 수 있을까? 
이런 물질적 실재에서 벗어나려면 무슨 일을 해야만 하는가? 

기독교는 구원의 종교이다. 영지주의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많은 요소들이 기독교 안에 존재한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영지주의자들은 특별히 좋아했다. 그분과 그분의 행적을 영지주의자들은 매우 중요시하였다. 
영지주의자들은 이방세계의 사상과 기독교적인 요소를 혼합시켰다.
영지주의는 무엇을 가르쳤는가? 영지주의자들이 말하는 구원은 도대체 어떤 의미인가? 영지주의가 복음에 지극히 해로운 이유는 무엇인가?

그 답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 인간, 악, 그리고 구원에 대한 그들의 사상을 알아보자.

영지주의는 확신한 것으로 한가지만을 받아들인다. 그들은 어떤 것이 영적인 세계를 악하게 만든 것이 틀림없다고 믿는다. 

사람들의 영혼들이 그들의 순수한 영적 존재로 부터 타락하여 물질에 갇히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묻고 답한다. 인간 타락의 원인에 대해서, 그리고 인간의 자유를 위하여 마련된 것에 대하여 묻고 답한다.

영적 세계에 관련하여 하나의 그노시스(gnosis,지식)을 제시한다. 부조화한 곳에 그노시스가 들어와서, 조화를 회복하고, 회복된 조화의 결과로 인간이 구원된다는 것이다.

이 지식은 영적 세계에서 온 계시이며,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에게 주어진다. 이 비밀스런 그노시스에서, 영지주의란 이름이 생겼다.
이 지식, 곧 그노시스를 다른 말로 하면, 신화이다. 


2. 플레로마(Pleroma)

- 영지주의는 원래 혼자 존재한 유일신을 믿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 그는 '알려지지 않는 아버지'(Unknown Father), 아비스(Abyss), 태어나지 않은 자(Unbegotten)라고 다양하게 불렸다. 
- 때로 그는 Silence라는 여성을 동반자로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 그는 혼자 남아 있는 것을 원하지 않아서 Mind와 Truth라고 불리는 존귀한 남자와 여자,이 두 Aeons(신적존재들)을 생산한다. 
- 이들은 다른 두 커플을 생산한다. Word-Life와 Man-Church를 말이다. 
- 이들이 보이지 않는 아버지(Silence는 함께 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함)와 같이 플레로마(Pleroma), 혹은 신적 존재들이 거하는 Fullness를 만든다. 
- 그들은 그곳에서 연이어 생산을 한다. Word-Life는 다른 10명의 Aeons을 생산한다. 그래서 총 18명이 된다.
- Man-Church가 12명의 Aeons를 낳는다. 그래서 총수가 30이 된다. 
- 영지주의자들은 30명의 Aeons에 대한 가르침을 신약성경에서 따왔다. 
- 포도원에 보낸 일꾼들의 비유에서, 어던 이는 첫 시간에 보내지고, 다른이들은 삼시에, 나머지는, 육시, 아홉시, 열한시에 보내진다. 
- 이들 숫자를 더하면 삽십이 된다. 더우기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신 나이가 삽십세이시다. 이런 우화적인 성경적용은 많은 그리스도인에서 매우 심오한 것으로 인상을 남겼다.
- Man-Church에게서 태어난 마지막 Aeon은 Wisdom이라고 이름한 여성이다. 
- 그녀는 알지못하는 아버지를 사모하였다. 그를 아는 것이 불가능하자, 그녀는 매우 낙심하게 된다. 
- 그녀는 근심하는 가운데, 그녀의 남성 파트너의 도움이 없이, 불확실이라는 뜻을 가진 Achamoth라는 이름의 자식을 낳는다. 
- Achamoth는 Pleroma에 남아 있을 수 없었다. 그곳에서 떨어져 나온다. 
- Wisdom은 자기가 한일을 보고, 심히 슬퍼했고, 극도로 불안해 졌다. 다른 모든 Aeons도 그녀와 함께 슬퍼했고 급거 그들은 Mind와 Truth에게 그녀를 도와달라고 청한다. 
- 그러자 두 명의 다른 Aeons를 생산해 냈는데, 그 이름은 Christ와 Holy Spirit이다. 이 둘은 Wisdom을 슬픔에서 구해준다. 
- 이렇게 해서, 플레로마에 조화가 회복되었다. 이를 감사하여, 모든 Aeons 30명이 함께 또 다른 Aeon을 생산하여 그 이름을 Jesus라고 하였다. 
- 이런 일이 플레로마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또한 플레로마 밖인, 자연계에도 사건을 일으켰다.


3. 창조, 악, 그리고 구원

- Achamoth는 Demiurge(그리스어로, 일꾼이란 뜻, 특별히 세상을 만든, 창조자를 가리킴)라 이름하는 후손을 낳았다.
- Achamoh는 모든 만물의 어머니이다. 그녀의 열등한 기원과 무가치한 특성 때문에, 물질은 악하다. 
- Demiurge는 이 물질에 형태와 모양을 주었다. 그는 그러므로 적합한 창조자이다. 그로 부터 또한 인간들의 영혼들이 나왔다. 
- Demiurge가 Achamoth를 통하여 Wisdom과 관계를 맺은 이래, 그녀는 비록 Demiurge가 이것을 모르고 있지만, 플레로마로 부터 Demiurge를 조정한다. 
- Wisdom의 영향력으로 Demiurges는 선이라는 영적 요소들을 가진 존재로 인간들을 창조한다. 
- Wisdom은 또한 Aeon Jesus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도록 하였다.
- 예수가 사는 날동안 그는 이런 지식을 그가 선택하신 자들에게 밝히 보여 주었다. 
- 그의 가르침을 받은 자들에 의해서 선한 사람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그가 살았던 지상의 몸에서 격리되어 천상의 Aeon이 떨어져 나갔기 때문에 Aeon Jesus는 실제로 십자가에 달리지 않았다.
- 이런 지식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선택된 사람들인데, 죽음으로써, 그들은 몸에 포함되어 있는 악한 물질로 부터 자유롭게 될 것이다. 
- 그들은 자기들에게 영적 존재를 부여했던 플레로마로 되돌아가게 될 것이다. 모든 물질은 마침내 무질서와 멸망에 굴복하게 된다.
- 이는 매우 단순화 시킨 그림 언어로서, 부조화가 어떻게 플레로마에 들어왔는지, 그 결과 땅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어떻게 원래 조화가 마침내 회복되는지 보여준다. 
- 이것은 로마에서 가르치다가 160년경에 죽은 대표적인 영지주의자 발렌티누스(Valentinus)의 가르침이다. 이처럼 영지주의자들은 기독교 사상과 그리스 사상, 그리고 동양 사상을 혼합시켰다.


4. 영지주의와 기독교

교회는 영지주의를 거부한다.

A. 지존하신 하나님을 알며, 그분과 교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가르치기 때문에.
B. 세상의 창조는 열등한 신적 존재의 행위라고 가르치기 때문에
C. 물질계는 악하다고 가르치기 때문에
D. 구속자는 하나님도 인간도 아니라고 가르치기 때문에. 그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으셨고, 죽음에서 부활하지도 않으셨다고 가르친다. 그는 인간처럼 보일 뿐, 실제 인간은 아니다.
E. 오직 영적인 존재로 태어난 일부 사람만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치기 때문에
F. 부활이 없이 때문에

영지주의는 2세기 중반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가 사그러들었다. 이레니우스와 터툴리안의 저술들은 영지주의의 쇠퇴에 공헌하였다. 

교회의 조직이 강하지 않았을 때, 감독들은 오직 지역에서만 그 권위가 인정되었다. 아직 교회에서 성경이 정경으로 인정되지 않은 때였다. 교회의 교리도 아직 공유되지 못했다. 

영지주의의 위협으로 인하여 교회의 정치, 성경의 정경화, 교리의 정립이 시급해 졌다.


<< 말시온주의 >>

약 140년경에 말시온(Marcion)이라는 한 그리스도인이 소아시아 북쪽에 위치한 해안도시, 시노페(Sinope)에서 로마로 왔다. 그는 부유한 선박 건조업자였고, 종교심이 깊은 자였으며, 신학적 재능이 있던 자였다. 로마에서 그는 Cerdo라는 영지주의자의 영향을 받았다. 

이레니우스(Irenaes)에 따르면, Cerdo의 주요 교리는 이러하다.

율법과 선지자가 선포한 하나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가 아니시다. 하나님은 알려졌지만, 그리스도의 아버지는 알려지지 않으셨다. 한 분은 또한 의롭고, 다른 한 분은 자비롭다.

말시온은 구약과 신약을 이런 가르침에 따라서 읽었다. 말시온은 영지주의와 관계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는 교회는 근본적으로 유대교를 따라가는 종교라고 믿었다. 말시온은 영지주의가 교회에 위험한 것이란 매우 좋은 예가 된다. 


1. 구약과 신약

말시온의 신학에는 이온들(Aeons)이 신적 존재에서부터 나왔다는 식의 영지주의적 신화를 설명하는 대목은 없다. 말시온의 전체 가르침은 구약과 신약에 기초한다. 그러나 이 두 언약에 대하여 그는 독특한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하나님에 대한 말시온의 관점이 특이하다. 구약의 율법과 선지자들은 Cerdor가 말한 것처럼 열등한 하나님이 영감을 하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편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선하신 알려지지 않은 아버지(Unknown Father)의 계시이시다. 

말시온에 따르면 신약에는 그리스도에 관한 순수한 가르침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신약에는 너무 많은 유대인들의 사상들과 영향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자기 자신의 신약 정경을 만들었다. 그것은 누가복음과 디모데서와 디도서를 뺀 바울의 서신들로 구성되었다. 그는 이 서신들이 기록자들에 의해서 직접 쓰여진 것이 아니라 여기 저기에서 편집된 것이라고 하였다. 이레니우스는 이렇게 적고 있다.

…그가 바울의 서신들을 빼버린 것은,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을 그 사도가 존경한다고 했기 때문이라며 그와 관련된 모든 내용들을 삭제한 것인데, 창조에 관여한 하나님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사도가 예언서에서 인용한 구절들 또한 삭제했는데, 그가 삭제한 내용은 주님의 도래에 대하여 미리 예언자들이 말한 내용들이다.

비슷한 편집 과정이 누가복음에도 적용되었다. 말시온이 자기만의 경전에 몇 가지 책들을 선정한 이유는 분명하다. 바울은 율법의 행위에 의한 구원을 거절하였고, 오로지 은혜로 말미암은 구원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말시온은 세상을 창조하고 율법을 주신 열등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엄격하게 구분하였다. 

열등한 하나님은 의롭고, 복수심에 불타며, 불완전하기 때문에, 그런 하나님은 실수를 하신다. 그래서 그 열등한 하나님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가르쳤다. 

반면에 선한 하나님은 자비, 용서, 그리고 사랑을 가르치며 실행하신다. 

이들 두 하나님은 말시온의 가르침에는 완전히 구별된다. 두 하나님 사이에는 관련성이 없다. 말시온은 두 하나님 사이에 어떤 관계도 설정해 보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구약과 신약, 율법과 복음, 이스라엘과 교회는 완전히 분립되어 있다. 구약, 율법, 그리고 이스라엘은 창조자 하나님에게서 나왔다. 신약, 복음, 그리고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선한 하나님에게서 나왔다.


2. 말시온의 그리스도

말시온의 그리스도는 하나님에 대한 그의 사상과 상응한다. 그는 티베리우스(주후 29년) 황제 15년에 갑자기 등장하셨다. 그는 그 당시까지 알려지지 않은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계시하기 위하여 오셨다. 그의 육체는 물질이 아니고, 겉으로 그렇게 보였을 뿐이다. 그는 하늘에서 직접 오셨고, 인간의 역사나 부모를 가지지 아니한다. 

그의 선하고 의로운 삶에도 불구하고, 창조자 하나님은 그를 십자가에 달리게 하였다. 그의 몸은 사실 물질 혹 신체가 아니기 때문에, 그는 고통을 받지 아니하였다. 창조자 하나님은 십자가에 의로운 그리스도를 달리게 함으로써 그가 자기 자신의 구약 율법을 깨뜨려 버리게 된 것을 부인 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부당한 일에 대한 대가로, 그는 그리스도에게 구원받아야 하는 사람들의 영혼을 주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그들의 구원을 위해 값을 지불하신 것이 분명하다. 

말시온의 다른 가르침에 있어서도 그 같은 관점으로 일관된다. 물질은 악한 것이기에, 그리스도인들은 금욕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구약에 약속된 메시야는 여전히 오실 것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없을 것이며, 죽은 자의 부활도 없다. 그리스도, 선한 하나님과의 교제만이 여기서 사는 동안 순전히 영적인 것이다. 창조된 세상이 회복되는 일이란 결코 없다. 


3. 말시온의 영향

말시온은 교회가 창조주 하나님과 구속주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연구할 필요가 있게 했다. 이들로 인하여 창조주와 구원주는 하나이시며, 꼭 같은 하나님이시란 진리가 선언되었다. 이 하나님은 사랑과 정의의 하나님이시다. 이런 하나님의 속성은 창조주시며 구속자이신 하나님이 성육신 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되어 있다.

말시온은 로마 교회에 의해서 출교를 당했다. 그는 그 자신의 공동체를 형성하였는데, 2세기에는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무리들의 숫자가 상당하였다. 그 세력이 7세기까지 지속되다가 이후로는 사라지게 되었다.



<< 몬타니즘(Montanism) >>

몬타니즘이라고 불리던 운동이 기독교 내부에 있었다. 교회의 신조에 따라 창조주 하나님과 구속자 그리스도를 믿었다. 영지주의와 말시온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그렇지만 이 종교 운동은 교회가 수용하지 않았다. 몬타니즘은 성령의 사역에 대하여 이해하는 바가 달랐기 때문이다. 

1. 초기 역사

몬타니즘은 소아시아 중심부인 프리기야(Phrygia)에서 주후 156년에 일어났다. 이 사상은 황홀경을 가져오는 소위 “영적인 것”을 강조한다. “황홀경”(ecstasy)은 문자적으로 정신이 육체를 벗어난 상태를 가리킨다. 즉 몸과 정신이 분리되는 경험을 말한다. 이런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 이교도 제사장은 금식, 고행, 춤, 환상, 그리고 예언을 한다. 몬타누스(Montanus)란 사람은 그런 프리기야 지방에서 이교도 사제 출신이다. 

그리스도인이 되면서, 그는 이방종교를 포기했지만, 그는 자기가 받아들인 새로운 종교를 옛 종교의 방식으로 표현하였다. 그런 그가 성령의 사역을 강조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의 방식은 보편적 교회의 것과는 사뭇 달랐다. 그는 두 여인과 연합했는데, 막시밀라(Maximilla)와 프리스킬라(Priscilla)였다. 이 들은 몬타누스를 돕기 위해 자기 남편들을 떠났다. 처음에 이들은 보편 교회 안에서 일했으나, 곧 그들의 가르침에 문제가 생기자 교회 조직에서 이탈하게 되었다.


2. 가르침

몬다누스는 자기를 통해서 파라클레토스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가르쳤다. 훗날 그는 예언자인 몬타누스와 자기를 돕던 두 여인을 통해서 파라클레토스가 오셨다고 말했다. “새로운 예언”은 이제 실제가 되었다. 새 예루살렘은 곧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페푸자(Pepuza)라고 불리는 도시 근교에 세워지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금식할 것이며, 자기들의 세상 직업을 버릴 것이고, 종말을 기다리기 위하여 페푸자에 가서 살아야 한다고 하였다. 몬타니즘이 확장되면서, 여타 교리와 실행 지침이 첨가되었다. 사람은 오직 한번만 결혼할 것이며, 영적인 이유로 인하여 결혼을 포기하는 것이 허용되었다. 모든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영적 은사들을 인지하고 있어야만 한다. 순교를 장려했으며, 순교하지 않으려 한다면 그것은 죄라고 하였다. 세 명의 지도적인 예언자들인 몬타누스와 두 여인은 죄들을 사해 줄 수 있고, 영적으로 높은 경지에 이른 사람도 그렇게 할 수 있다. 여자도 교회에서 직분을 맡을 수 있다.


3. 몬타니즘과 보편교회

교회의 지도자들은 몬타니즘을 반대하였다. 예언과 영적 은사를 강조하자 그런 것을 소유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과연 그리스도인인가 의심하였다. 세 지도자가 죄를 용서하고, 성령을 소유한 여타 사람들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가르침이 감독들을 심히도 자극했다. 그들은 교회를 자기들의 권한 아래 두고자 하였다. 몬타누스의 추종자들은 세상과 온전히 구별될 것을 가르쳤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교회가 세상을 향하여 가능하면 열리기를 원했다. 그런데 공식적으로 몬타니즘을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몬타니즘은 급속히 퍼져갔다. 소아시아를 휩쓸고, 유럽과 북아프리카까지 들어갔다. 박해에 처한 많은 사람들이 종말의 표로써 몬타니즘을 환영하였다. 교회의 삶이 세속화가 되면 될수록 몬타니즘은 더욱 받아들여졌다. 몬타니즘은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엄격한 모습으로 되돌아 가자는 하나의 상징이었다. 이들 가운데는 북아프리카의 위대한 신학자인, 터툴리안(Tertullian)도 속해 있었는데, 그는 207년 경에 몬타누스 추종자가 되었다.


4. 쇠퇴

시간에 흘러, 몬타누스가 설교하기 시작한지 50년 정도 지났을 때, 몬타니즘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새 예루살렘이 페프자에 내려오지 않았다. 상당히 많은 예언들이 불발되었다. 초기와는 달리 세력이 많이 약화되었다. 몬타누스, 막시밀라, 그리고 프리스킬라가 죽었다. 

초창기 몬타니즘은 엄력한 그리스도인의 삶, 금식, 세상과의 분리, 매일 매일 그리스도께 죄를 고백함, 믿음으로 인한 고난을 기꺼이 감수하였다. 207년 터툴리안이 몬타누스 교회에 가입했을 때만 해도 그러했다. 작은 교회들이 세워지면서, 그 강력한 운동은 멈추게 되었다. 보편 교회 안에 존재하는 보수적인 모임들과 별반 다른 것이 없었다. 그 결과 몬타누스 교회가 계속해서 남아있을 이유가 없었다. 점차 숫자가 줄어들다가 550년경 이후에는 자취를 감췄다.


5. 영향

영지주의와 말시온 주의같이, 몬타니즘은 보편교회에 영향을 미쳤다. 교회는 결국 예언을 장려하지 않았고, 비상식적인 영적인 능력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이로 인하여 교권이 더욱 강화되었다. 교회의 치리와 신생하는 모든 신앙 운동들에 대한 판단을 위해 성경의 정경화가 더욱 요청되었다. 몬타니즘은 교회에서 영적 은사의 남용에 대한 하나의 경고이다. 한편 교회 안에서 성령의 역사에 대한 열린 마음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 신약성경의 정경화 >>

사도들의 죽음으로 무엇이 복음이며, 무엇이 아닌지에 대한 살아있는 권위의 목소리가 사라지게 되었다. 그들의 가르침은 이제 구전과 기록된 전승에 살아 있었다. 영지주의와 말시온주의자들이 이런 전승에 등장하였다. 약 140년경에, 말시온은 그 전승을 확증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는 바울만을 오로지 참 사도적 권위를 가진 사람으로 받아 들였다. 구원의 수단으로 율법을 사용하는 것을 반대한 바울의 가르침은 말시온의 가르침에 아주 적합한 듯이 보인다. 그는 자기의 신학적 입지를 견고히 하기 위하여 신약 성경을 마련하였다. 이것은 신약 정경화를 위한 첫번째 시도로 알려져 있다. “정경”(canon)이란 그리스어로 ‘표준’ 또는 ‘잣대’란 의미이다. 당시 캐논은 진리라고 여겨지는 경건한 서신들의 모음이란 뜻으로 사용되었다. 말시온이 정경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어떤 책들과 서신들을 복음을 위해서 권위있는 책으로 받아들여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속 사도들이 인용한 많은 글들과 참조 문헌들이 오늘날 정경화가 완료된 신약성경에서 발견되고 있다. 하지만 구약 성경과 같이 ‘경전’이라고 불릴 수 있는 그리스도인의 문헌이 당시에 완벽하게 수집되지 못했다.

1. 초기 모음들

2세기에 일련의 모음글들이 존재하였다. 영지주의에 대한 답변과 부분적으로 말시온에 대한 대답을 담은 문헌이 상당수 존재했다. 후에 신약성경이 된 모음들이 점차 증가했고, 교회들에 널리 퍼졌다. 사실 처음에 여러 개의 문헌들로 존재하던 모음들이 오늘날 신약성경이라고 불리는 한 묶음의 성경이 되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그 모음들이 앞부분에 복음서가, 그런 다음 사도행전과 바울의 서신들이, 일반서신들과 계시록의 순으로 묶여졌다. 이런 발전 과정에서 신약성경에 현재 존재하는 책들 대다수가 이미 초기 때부터 모두 교회에 의해서 받아들여 졌다. 일부는 몇 몇 교회에서는 받아들여졌지만, 다른 곳에서는 의심을 받았다. 몇 책은 처음에는 받아들여졌지만, 후에 거절된 것도 있다. 

신약성경의 가장 초기의 목차는 무라토리안 프라그멘트 (Muratorian Fragment)라고 알려진 고대 사본의 조각에 포함되어 있다. 이탈리안 학자인 루도피코 무라토리(Ludovico Muratori)가 이것을 발견하였다. 1740년에 그는 8세기 기독교 신학 문서에서 그 조각을 발견하였다. 이 조각은 170년 경에 쓰여진 것인데 4복음서, 사도행전, 바울서신들, 요한 1서, 요한 2서, 유다서, 그리고 계시록이었다.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 전후서, 요한 3서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 대신 베드로 묵시록 (Apoclypse of Peter)와 후기에 거절된  한 권의 예언서가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의 신약 성경에 있는 대다수의 책들을 포함하고 있는 것 외에도, 다른 모음집들이 있었다. 허메(Hermas)의 목자서, 바나바 서신서, 디다케, 히브리인의 복음서, 솔로몬의 지혜서, 바울 행전 등 다양한 목차가 수록되어 있었다.


2. 정경의 권위

200년까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약성경의 대부분이 초대교회에서 정경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a. 어떤 책이 정경인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표준은 “사도성”(apostolicity)이었다. 사도들이 썼든지, 아니면 사도와 가까운 사람이 쓴 책이어야 했다. 마가복음(마가는 베드로의 조력자였다), 누가복음(누가는 바울의 조력자였다)이 그러기 때문에 정경에 포함되었다. 같은 이유로,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후서, 요한3서, 유다서 그리고 계시록은 그 책에 대한 사도들의 저작권이 확실치 않아서 정경으로 인정하는데 지체되었다. 바나바의 서신, 허마의 목자서, 솔로몬의 지혜서 등 은 사도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정경에서 제외 되었다.

b. 오늘날 우리가 가진 신약성경의 전목록을 처음으로 확립한 사람은 367년에 아다나시우스(Athanasius)이다. Augustine의 지도하에 북아프리카의 힙포 레기우스(Hippo Regius, 393)과 Carthage(397)에서 개최된 두 번의 공의회(synods)에서 현존하는 신약성경과 흡사한 공식적 정경하가 이루어졌다. 동방과 서방의 교회는 아프리카의 예를 따랐다. 

c. 정경은 근 3백년동안 논쟁을 거듭해야 했다. 이는 최종적으로 입증된 책들만 모든 교회가 수용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정경은 아다나시우스의 공적인 선언이나, 중요한 공의회의 결정에 의한 결과로 확정된 것이 아니다. 이들 공식적인 선언은 단지 교회가 이 책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오랜 동안 받아 들이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한 것뿐이다. 신약 성경의 책들이 정해지고 교회가 그것을 정경으로 받아들인 것은 전적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 

d. 정경을 가지고 교회는 믿음과 설교의 기초의 근거로 삼았다. 교회의 신앙에 대해 이단들이 도전을 해왔기 때문에 정경화가 이루어 졌다. 그 성경상 사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권위를 가진다. 성령께서 오랜 세월 동안 성경의 완전성을 말씀해 오셨고, 성경의 영적인 탁월성과 적절성을 증거해 오셨기 때문에 긴 세월도 충분히 견딜 수 있었다.


출처: http://kcm.kr/dic_view.php?nid=38202%BF%A1%BC%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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