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월명상


동양과 서양철학 사이의 간격을 연결시키고자 하는 시도들 중에 하레 크리쉬나(Hare Krishna)와 초월명상의 시도가 있다. TM 이라고 불리는 초월명상(Transcendental Meditation)은 특별히 최근에 미국 전역에 퍼져있다. 그것은 많은 사람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한 주목을 받고 있다. 전에는 동양의 신비적인 의식에 대해서 전혀 모르던 사람들이 이제 TM 에 대한 자료를 찾고 있다. 


초월명상의 특성


초월명상의 표면적인 정의는 매일 두차례씩 20 분 동안 긴장완화를 위한 자연적인 운동이라고 묘사되었다. 이 과정 중에 만트라(Mantra)라는 한 단어가 반복하는데 이러한 리드미컬한 반복이 긴장완화의 노력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초월명상을 선전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생물학적, 심리학적 법칙에 근거한 과학적인 운동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모든 종류의 종교인들이 참여해서 많은 유익을 얻을 수 있는 비종교적인 활동이라고 반복해서 선전한다.


소정의 요금을 지불하고 초월명상에 가입한 후에 초월명상에 대한 세심한 지도를 받고나서 그 기법을 성실하게 사용하면 생활의 모든 영역 즉 신체적, 심리학적, 사회적 그리고 영적인 영역에서 거의 기적에 가까운 결과를 얻는다는 보고가 있다. 초월명상을 선전하는 사람들은 연구 결과라고 하는 것을 제시하며 정치가, 교육가, 운동가, 연극배우, 심지어는 종교지도자들로부터 수많은 증언을 제시하며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초월명상을 깊이 연구해 보면 그에 관한 모든 것이 표면에 나타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초월명상을 진지하게 조사한 결과 그것은 긴장완화의 도구 이상임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종교적인 활동이다.


초월명상은 그 뿌리를 힌두교에 두고 있다. 실존, 신, 사람, 구원에 관한 이의 모든 가르침은 힌두교의 경전인 베다(Vedas)에서 따온 것이다. 초월명상에 있어서 의식적 초입례의 포함과 은밀하게 만트라를 사용하여 동양의 사교에서 행하는 신비적인 의식과 맥을 같이 한다. 초월명상의 세계적인 지도자인 마하리쉬(Maharish)는 그 기법의 유익을 설명할 때 과학적 언어보다는 종교적인 언어를 사용한다. 그러므로 초월명상은 심리학적, 신학적, 사회학적인 면에서 의문이 생기게 한다. 이러한 의문들은 교회가 무시할 수 없는 도전으로서 교회에 제시되고있다. 


초월명상의 뿌리


초월명상은 기원상 종교적인 활동임에 틀림없다. 그것의 개념은 힌두교에까지 추적된다. 힌두교 예배에는 수백만의 신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중에 셋만이 특출하게 부각된다. 


첫째 브라마(Brahma)인데 모든 것의 창조자이다.

둘째가 쉬바(Shiva)인데 파괴, 질병 그리고 죽음의 신이며 또한 채소와 동물과 인간번식의 신이다. 인도사람의 생각에 죽음은 다시 태어나는 것의 전조일 뿐이다. 따라서 죽음의 신은 또한 생식의 신이기도 하다. 

셋째가 비쉬누(Vishnu)인데 사랑과 자비의 신이다. 그러나 이외에도 모든 곳에 퍼져있고 비인격적인 신적 능력을 가진 존재로서 브라만(Brahaman)이라고 불리우는 것이 있다. 초월명상의 문헌은 창조적지성(Creative Intelligence)으로서 브라만을 언급한다.


힌두교에서는 신들을 예배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제공한다. 이것들은 금욕주의 의식, 의례적인 헌신 그리고 명상 등을 포함한다. 명상은 수세기 동안 예배의 수단으로 주목 받아왔다. 모든 요가의 주된 특성은 명상이다. 힌두교의 전통에 있어서 명상은 신들이 신과 연합하여 탄생과 죽음 그리고 재탄생의 순환에서도 피하고자 할 때 그들에게도 필요한 것이다. 


정의하자면 명상은 초월 혹은 신과의 연합을 경험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으로 초월명상에서 강조된다. 지금까지 초월명상의 마지막 부흥은 중세기에 있었다. 중세 힌두교의 가장 뛰어난 학자로서 상카라(Sankara)가 있는데 그는 힌두교의 뛰어난 옹호자였다. 동양의 명상술을 회복하기 위한 현대의 노력은 스와미브라마난다 스라스와티(Swami Brahmananda Saraswati)라는 사람과 더불어 가장 큰 추진력을 일으키고 있는데, 이 사람은 보통 구루 대브(Guru Dev)라고 하며 인도에 있는 4 명의 주요 종교지도자 중 하나이다. 그러나 초월명상의 대중적인 지도자는 마하리쉬 마헤쉬 요기(Maharish Mahesh Yogi)인데 구루 데브의 제자이다. 보고에 의하면 마하리쉬가 구루 데브의 명령을 받아 간단의 명상의 형식을 개발하였다고 한다. 히말라야에서 은둔한 후에 1955 년 초월명상을 소개하였다.


인도에서 사람들의 주의를 끌지 못하자 그는 그의 가르침을 영국에 수출하였다. 가장 괄목할만한 개종자 중에는 비틀즈(The Beatles)가 있다. 마하리쉬는 1959 에 미국에서 그의 일을 시작하였다. 그는 1973 년에 아이오와주의 페어필드에 초월명상의 교육적인 기관으로서 마하리쉬 국제 대학교(Maharish International University)를 설립하였다.


초월명상의 가르침


초월명상은 그 기법이 세워진 개념 때문에, 성격상 종교적인 것은 명약관화한 것이다. 그것의 신학적 전제는 힌두교의 그것이다. 


신에 대한 가르침
마하리쉬는 힌두교 신학의 전통에 따라서 신 혹은 창조적 지성(Creative Intelligence)은 영원하며, 무한하며, 알 수 없으며, 성이 없으며, 비인격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신은 속성, 질, 특성, 형태 등이 없다. 힌두교의 사상에서는 신과 그의 피조물 사이에 분명한 차이가 없다.

실재에 관한 가르침
마하리쉬는 모든 창조물이 신과 하나라고 주장한다. 그는 이런 범신론적인 관념을 버터가 우유에 스며들고 수액이 나무에 스며들 듯이 신이 모든 존재에 스며드는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설명한다. 기본적 실재(Basic reality)는 상대적인 것과 절대적인 것으로 되어 있으나, 그들은 단지 한 본질 안에 있는 두 개념이다. 상대적인 것은 신이 창조물 중에 그 자신을 나타내는 모습인 것이지만, 절대적인 것은 그 속성상 신의 개념이 나타나지 않은 채로 있는 것이다. 마하리쉬의 견해에 의하면 신은 그것이 실재를 구성하는 방법으로 모든 창조물 안에 내재한다. 나무의 줄기, 가지, 잎, 꽃 그리고 열매는 항상 변하지만 신과 같은 수액은 항상 동일하다. 이와같이 이 세상은 단지 환상일 뿐이다. 그것은 실제와 같이 보일 뿐이다. 

 사람에 관한 가르침
이와 같이 마하리쉬의 견해에 따르면 신은 창조물 중에서 여러 형태로 자신을 나타내기 때문에 그것은 모든 사람의 마음에 거한다. 사실 사람의 영혼은 브라만을 구성하는 거대한 바다 중 하나이다. 각 사람은 자신이 우주 전체의 생명의 일부인 것을 알아야 한다. 우주적인 생명과 그의 관계는 전체 몸에 대한 각각의 조직의 관계와 같다. 각 사람은 그가 자신에게 하는 것같이 창조물 안에 있는 모든 신들을 경험하기 위하여 나와야 한다. 

 구원에 관한 가르침 
마하리쉬에 의하면 이상과 같은 사실을 인간이 무시함으로써 인간의 모든 문제가 생긴다고 한다. 그는 환상과 무지의 세계에 묶이게 된다고 한다. 창조물이 실제라고 잘못 생각함으로써 그는 신과 동일함을 깨닫지 못한다. 그가 이러한 무지함 속에 있는 한, “업”(Karma)의 생명에 묶이게 되는데 여기서 업은 탄생, 죽음 그리고 재탄생의 순환을 끝없이 반복하게 하는 활동이다. 사람의 구원은 생명의 환상을 아는 것과 사람이 신과 하나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또한 사람이 지금 어떤 형편에 처해 있든지 그것은 그의 업(Karma) 혹은 그의 전생에 있어서의 활동의 결과이다. 혼이 지식에 있어서 창조적 지성(Creative Intelligence)과 합하지 않는 한, 각 사람은 개인으로서 지속될 것이며 전 생애 업(Karma)의 열매를 계속 받게 될 것이다. 모든 고난은 사람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자신 안으로 뛰어드는 방법에 대한 지식의 결핍은 인간의 생명 안에 있는 모든 질병의 뿌리이다. 그러한 경험이 없이는 사람에게 힘과 지성이 부족하게 된다. 그는 피곤하고, 염려하고 긴장하게된다. 물론 우리 안에 있는 신적 의식을 접촉하기 위한 마하리쉬의 기술은 초월명상이다. 

초월명상의 방법

초월명상이 긴장완화의 기술 이상의 것임은 보다 확실하다. 왜냐하면 그것의 전제가 종교적일뿐 아니라 그것의 방법도 종교적이기 때문이다. 마하리쉬는 그의 명상술 자체를 사람 안에 있는 신을 드러나게 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명상의 기술
마하리쉬는 명상이라는 용어에 대한 그 자신의 정의를 조심스럽게 보여 준다. 명상은 집중하는 것과 혼동되어서는 안된다. 정신집중은 그의 기법이 요구하는 것과는 정반대이다. 명상에 있어서 마음은 전적으로 소극적(Passive)이어야 한다. 어떤 의식적인 노력도 하지 말아야 한다. 그 마음은 창조적지성의 거대한 바다에 자연스럽게 뛰어 들도록 단지 허용되어야 한다. 인간지식의 내용물인 인간 사고의 모든 활동은 절대가 아닌 실제의 상대적 영역 안에 있다. 따라서 명상 안에 그 마음은 무의식적으로 신의 능력이 주입되어진다. 성공적인 삶을 살리려 계속적으로 그러한 능력을 받아야 한다. 

신과의 일체감을 얻기 위해서는 사고의 중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마하리쉬는 그의 윤리학에 관한 토론에서 설명하고 있다. 그는 세계의 각 종교마다 윤리의 규약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들은 그 시대의 문화를 변화시키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이와같이 거기에는 옳은 것과 그른 것에 대한 성문화된 절대적 기준이 없다. 초월명상을 통하여 창조적 지성에 의해 영향을 받은 마음만이 불변하는 윤리와 더불어 행동을 결정할 수 있다. 

 초입례(Initiation Ceremony)
초월명상에서 초입례는 성격상 분명히 종교적이다. 그것은 전통적인 힌두교의 예배의식 혹은 푸자(Puja)로 되어있다. 그 의식에서 초월명상의 초보자는 6 개의 꽃과 3 개의 싱싱한 과일과 하나의 하얀 손수건으로 된 제물을 가져온다. 교사는 이것을 구루 데브의 사진 앞 제단에 놓는다. 촛불과 향의 분위기 아래서 교사는 산스크리트(Sanskrit)로 떠나간 힌두 교사들에 대한 감사의 노래를 부른다. 그는 형상이 없는 브라만의 현현으로서 브라마, 비쉬누 그리고 쉬바의 힌두 트리무르티(Trimurti)를 예배한다. 그러나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구루 데브에 대해서인데 그는 작고한 마하리쉬의 교사이다. 그의 사진의 출현은 실제로 예배의 대상으로서 우상의 개념을 암시한다. 

 만트라
초입례의 마지막 행동으로서 초월명상 교사는 개종자의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그를 위하여 선택한 비밀 만트라를 반복하기 시작한다. 초월명상을 선전하는 사람들은 만트라는 최면적인 유익을 얻기 위하여 선택한 무해하며 의미없는 단어라고 선언하지만 그것은 여러 힌두 신들의 도움을 요청하기 위하여 전통적으로 사용되어 온 베다(Vedas)에서 따온 단어이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의미없는 말이 될른지 모르지만 만트라는 힌두교 개념에서 분명한 종교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초월명상의 문제점
이러한 사실을 진지하게 생각한 결과 초월명상은 심리학, 신학, 사회학적인 면에서 문제를 야기시킨다. 

 심리학적인 문제
심리학적 문제의 가능성은 초월명상에 있어서 정신적인 소극적 자세를 강조하는 데 있다. 이 기법은 명상하는 동안 사람의 마음이 완전 방임 상태에 놓이게 되는 것을 요구한다. 일상적인 생각도 함께 초월하게 된다. 초월명상에서 배출되는 것은 지성적인 이해의 도를 넘게 된다. 크리스찬에게 초월명상의 방법은 역사를 통해 주기적으로 나타났던 침묵 의식의 회복이 아니다. 그 기법은 지식이나 이성과 동떨어진 신비적인 경험을 유발한다. 이와같이 초월명상은 우상숭배 이상으로 해로운 것이다. 성경시대에 귀신은 우상숭배와 관련이 있었다.(신 32:17, 고전 10:19,20)

초월명상의 또 다른 심리학적인 문제점은 근본적인 문제해결보다는 염려에 대한 빠르고 쉬운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가능한 심리학적 스트레스의 원인을 무시하고 오직 임시변통만을 제공할 뿐이다. 초월명상에 대한 외부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초월명상으로부터 얻어지는 유익은 단기간에 그칠 뿐이었다. 

 신학적 문제
초월명상이 가져다주는 신학적 문제는 다양하다. 마하리쉬는 그의 신학적 가르침을 창조적 지성의 과학(Science of Creative Intelligence) 혹은 SCI 라고 불렀다. SCI 가 가르치는 신, 실재, 사람, 구원에 관한 모든 것은 성경의 가르침을 거스리고 있다. 그것은 인격적 신을 부인한다. 성경은 하나님이 인격적인 분임을 보여 준다. 그는 아시고(마 6:8,32) , 사랑하시고(요 3:16), 뜻하시고(마 6:10) 그리고 활동하신다.(창 1:1) 더구나 SCI 는 성경 계시에서 근본적인 창조자-창조물의 구분을 부인한다. 신은 모든 것이며, 모든 것이 신이라고 하는 SCI 의 범신론적인 전제와는 반대로 하나님은 그의 창조물과 구분된다. 창조물은 하나님의 작품에 지나지 않는다.(시 19:1) 하나님은 창조물과 혼동함으로써 SCI 는 옛날 사람들의 죄를 반복하고 있다.(롬 1:23,25).

SCI 는 자신을 계시하지 않은 신이라고 한다. 하나님은 자신을 자연에서, 양심, 역사, 기적, 예언, 성경, 그리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계시하신다는 것을 성경은 확실하게 말한다. 마하리쉬는 인간을 하나님의 심판에서 자신을 구원할 능력이 없는 죄인으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신성을 경험할 수 있는 존재로 보고 있다. SCI 의 교리는 인간이 중보자가 필요로 한다는 개념을 제시하지 않는다.

사람은 단지 초월명상을 행함으로써 자신의 구세주가 될 수 있다. SCI 에서는 회개라는 말이 없다. 업(Karma)에 의하면 죄에는 반드시 형벌이 따른다. 거기에는 자비나 은혜를 위한 공간이 없다. 사람의 현재 상태는 그의 업혹은 과거의 행동에 의하여 결정된 것이다. 따라서 그는 현재 상태를 운명적으로 받아들인다. 

그 가르침들이 기독교의 가르침과 이렇게 다름에도 불구하고 마하리쉬는 기독교인들이나 어느 종교 추종자도 아무런 갈등 없이 초월명상을 행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가 그의 신학에 있어서 수만의 선하고 악한 신들을 수용하는 힌두의 배경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신을 더 받아들이는 것이그에게는 문제될 것이 없다. 그는 말하기를 자기의 종교에 무슨 이름을 붙이든지, 교회나, 절이나 , 모스크나 사원에서 어떤 예식을 따르던지 별로 관계없다고 한다. 

힌두교는 그의 거대한 우상으로 세계의 종교를 덮고 있다는 것이 마하리쉬의 관점이다. 따라서 힌두교는 지상에 있는 모든 사람에 대하여 종교적으로 가장 관대하다고 한다. 그에게 있어서는 베다는 가장 오래된 경전이다. 세계의 신성한 책들이 포함하고 있는 진리는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베다에 이미 처음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이 한 종교의 기본적 진리는 모든 다른 종교의 기본적 진리라고 한다. 

 사회적인 문제
창조적 지성의 과한(SCI)을 퍼뜨리기 위한 마하리쉬의 대담한 계획으로 인하여 초월명상과 관련된 사회적인 문제가 있다. 그는 그의 교리를 세계의 모든 질병들 즉 신체적, 심리학적, 영적,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그리고 환경적인 질병에 대한 치유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1972 년에 마하리쉬는 SCI 와 초월명상 프로그램을 지상의 모든 사람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세계적 계획을 시작하였다. 그는 매 천명당 SCI 의 교사가 한 명이 있으면 이 계획을 이루는데 충분하다고 계산하였다. 이 사업을 위한 3600 개의 세계적 계획 센터(World Plan Center)를 짓는 프로그램이 진행 중에 있다. 마하리쉬 국제대학, 비디오 테입 프로그램 그리고 초월명상이 소유하고 있는 텔레비전 방송국들이 이 계획을 위해서 쓰여질 것이다. 

대학 외에도 4 개의 다른 기관이 세계적 계획의 가지들로서 형성되었다. 학생들의 국제 사회(Student's International Society)는 젊은이들과 함께 일한다. 국제 명상학회(The International Meditution Society)는 폭넓게 장년층에게 환심을 사고 있다. 영적 갱생 운동(The Spiritual Regeneration Movement)은 생활에 대한 영적 접근에 관심을 가진 사람 중 특히 은퇴한 사람들을 위한 모임이다.

창조적 지성의 과학은 위한 재단(The Foundation for thew Science for Creative Intelligence)은 사업가와 전문인을 위하여 기획되었다. 초월명상을 선전하는 사람들은 개인의 건강과 행복 이상의 것에 관심이 있다고 선언한다. 그들의 야망은 사회제도를 변화시키는 것 이상의 고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마하리쉬는 주어진 시간에 사회에서 인기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사용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것은 종교 혹은 교육 혹은 정치일 수도 있다. 

이 세대에 초월명상을 진전시키기 위한 도구로서 무엇이 가장 적합하겟는가?
마하리쉬에 의하면 그것은 정치이다. 이와같이 그는 정부기관을 통하여 초월명상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일에 그의 정력을 쏟고 있다. 이미 실험적인 조건으로 초월명상에 대한 가르침이 정부의 경비로 미국의 어떤 학교들 안에서 행해지고 있다. SCI 와 초월명상(TM)학과가 일리노이, 뉴욕 매사추세스, 플로리다 그리고 캘리포니아 주의 공립학교에서 합법적으로 개설 될 수 있게 되었다. 어느 지역에서는 염려하는 시민들이 그러한 계획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적절한 것인지에 관하여 법적 질문을 하고 있다. 

초월명상의 도전
초월명상은 3 가지 면에서 교회에 도전하고 있다. 
첫째는 교리의 정확성에 대한 새로운 강조에 관한 것이다. 교리와 실천은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것의 신학적 잘못을 보고 초월명상 기법을 사용하고자 하는 유혹을 피할 수 있다. 
둘째로 교회는 신자의 생활에서 성령의 역사를 새롭게 하는 일을 강조해야 한다
초월명상은 순수하고 성경에 근거한 성령의 경험에 대하여 믿을 수 없는 대치물에 지나지 않는다. 
셋째로 교회는 성경의 시작부터 가르쳐 온 안식일, 안식의 위대한 원리를 다시 선포해야 한다. 일과 놀이에 미친 현대인들은 점점 안식일의 원리를 범하고 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칠일 중에 하루는 쉬고 예배함으로써 신체적, 정신적, 그리고 영적인 쇄신을 가져다주는 적합한 도구를 인간에게 주셨다. 초월명상을 주장하는 사람들 밖에서 행해진 어떤 사람들의 연구는 그들의 기술은 아무런 신체적 유익을 주지 못한다고 했다. 사람의 원기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원래 계획을 따른다면 크리스찬은 초월명상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시 1:2 는 신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라고 권한다. 이것이야말로 순수한 명상의 참된 내용이다. 이러한 묵상의 유익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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