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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 지는 쓸쓸한 가을이 우리에게 오히려 감사한 것은
풍성한 추수 때문일 것입니다.
황금빛 들판을 바라보는 농부는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고
곳간을 채워 겨우살이 준비를 하는 손길에는 즐거움과 기쁨이 넘칩니다.
 
그런데 만일 애써 키워 한여름 무성하던 작물과 나무들이 아무 곡식과 열매 없이 잎이 떨어지고 시들어 버린다면 농부들은 얼마나 슬프고 허망할까요?
더욱 슬프고 허망한 것은 열매 없이 끝나는 인생일 것입니다.
인생이 무엇인지, 왜 사는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방황하다 빈 쭉정이로 세상을 떠나는 것일 것입니다.

그 슬픔과 허망함은 아무리 술을 부어넣고 노래를 불어넣고 춤을 추고 통곡의 눈물을 쏟아 넣어도 결코 채워질 수 없는 것일 것입니다.
돈도 재물도 지식도 명예도 가족 친지도 다 인생의 지는 이파리일 뿐입니다.
그것들은 아무리 무성하여도 다 시들고 지는 것들이요, 결국은 두고 떠나야 할 것들입니다.
인생을 마치고 떠날 때 가지고 갈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영원한 생명의 믿음, 예수님의 생명의 씨뿐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농부라고 말씀합니다.
드넓은 우주공간 가운데 이 지구 위에다 아들의 씨, 아들의 피를 뿌리고 열매를 거두시려는 농부 말입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을 포도나무와 감람나무(올리브)라 하고,
세상은 밭이요, 거두어질 영혼들은 알곡이요, 천사들은 추숫군이요, 천국을 곳간이라고도 말씀합니다.
세상의 마지막 때에 이한 낫을 가진 추수꾼을 보내실 것이라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마음을 천국복음이 뿌려지는 땅에 비유하셨고, 잎만 무성하고 열매 없는 무화과를 저주하셨으며, 아름다운 열매 맺지 못 하는 나무와 쭉정이는 불에 던지워질 것이라 하셨고,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붙어 있으면 열매를 많이 맺으리라 하셨습니다.

이 낙엽 지는 가을에 내가 과연 거두어질 열매인지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가슴 안에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 그 영생의 씨앗, 열매가 맺어져 있는지요.
아들의 피를 뿌렸는데도 열매 없는 쭉정이들은 진노의 불에 던지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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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심판 

영원한 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성회 입장을 하나님의 성회의 “근본진리 선언”에 나와 있는데 다음과 같다. 

제 15항, 마지막 심판 : 

악한 죽은 자들이 살아나서 그들의 행한 대로 심판받는 마지막 심판이 있을 것이다.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누구든지 마귀와 그 사자들 그리고 짐승과 거짓 선지자와 함께 영원한 심판으로 불과 유황이 타는 못 에 던져질 것인데 이것이 둘째 사망이다.(마25:46, 막9:43-48, 계19:20, 20:11-15, 21:8) 여기서 우리는 심판이 마귀와 그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이며, 둘째 사망이라 불 리는 불못에 있는 것임을 주목한다. 

이 장에서는 이러한 점에 대하여 더욱 자세히 정의하고 설명을 하고자 한다. 

악한 자는 사단과 운명을 같이 나눈다. 

성경은 불못이 사람을 위해 예배된 것이 아니라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해 예비 되었다고 말씀한다.(마25:41)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은 항상 선하셨다. 
첫 번째 하늘과 땅은 좋게 창조되었다.(창1:31). 율법은 사람에게 혜택을 주기 위하 여 주어졌다.(신6:24) 하나님은 누구도 멸망당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벧후 3:9) 사실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고 그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사람들의 궁극적인 선을 위하여 모든 일에서 역사하신다.(롬8:28) 그렇지만 하나님은 사단이 앞으로 다가올 새 하늘과 새 땅을 더럽히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은 불못에 그를 가두러 놓으실 것이다. 사단을 따르는 사람들은 사단의 운명을 같이 나눌 것이다.(요16:8,11)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의 아버지로 하나님을 모시지 않고 사단을 받아 들였기 때문이다.(요8:44) 


사단이 받는 벌을 함께 받는 사람들은 “악인”이라고 한다.(마13:49,50) 이것은 그 행동이 악하고 가치 없는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말이다. 그들은 두려워하는 자이며(믿음이 부족하여 비겁하게 행한다), 믿지 아니하는 자 들이며, 흉악한 자들이며(혐오스럽고 진저리나는 사람), 살인자들이며, 행음자들이며, 술객들이며(마술을 사용하는 사람과 마약을 쓰는 사람), 우상 숭배자들이 며,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이다.(계21:8, 마8:12, 13:41,42, 22:13, 23:15, 25:30,33, 눅13:27, 계21:27, 22:15 참조) 바울은 이것을 구원에 관한 개인적인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 와 복음을 계속적으로 순종치 아니하는 모든 자라고 요약하고 있다.(살후1:8) 

악한 자의 심판은 끝이 없다. 

“근본진리의 선언”에서 주어진 첫 번째 성경 인용문인 마25:46에서 “영(헬라 어, anonion)벌”이라는 구절을 사용하였다. 어떤 사람은 이것이 절대적으로 끝이 나지 않는다는 뜻으로 영원하다는 것을 부인한다. 그러나 같은 구절에서 예수께서 똑같은 말을 “영(헬라어, aionion)생” 이라는 말에서 사용하는데 여기서 이것은 직접적이면서도 정확하게 전자와 병행을 이루고 있다. 다시 말하면 그 생명 이 영원한 것처럼 그 벌도 영원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후에 악인을 회복시켜 주 겠다는 어떤 여지를 남겨놓고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마25:41에서 그 벌은 “영원한(헬라어, anionion)불”로 정의하고 있다. 
예수께서 악인이 죽은 후에 가는 중간상태를 하나의 불로서 특정짓고 있다. (Hades, hell, 눅16:23,24) 그러나 이것은 영원히 있을 불과 구분해야 한다. 눅 16장에서 예수의 말씀은 악인이 의식이 있는 상태이며, 자신의 상태를 알고 있 으며, 그리고 그들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알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 영원한 불 은 예수께서 게헨나 혹은 “불의 게헨나”라고 부르셨던 것과 같은 것이다.(마 5:22,29,30, 10:28, 18:8,9, 23:15, 막9:43,45,47, 눅12:5) 이 불은 영원할 뿐만 아니라 또한 꺼지지 않는 특성을 가졌다. 이것은 그 불이나 벌이 끝날 수 있는 가 능성이 전혀 없음을 가르친다. 그 형벌은 불과 마찬가지로 영원하다. 만일에 불 이 악인을 소멸시켜 버리는 것이라면 불이 영원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예수께서 는 같은 불을 “풀무불”이라고 말씀하셨는데(마13:42,50),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가는 비참한 후회는 “멸망의 자식”으로서 영원한 파멸에서 자신을 구하지 못하였다.(요17:12, 행1:16-20) 예수께서는 이렇게 울며 이를 가는 것을 “바깥 어두 운데서” 일어나는 것으로 동일시하고 있다.(마8:12, 22:13, 25:30) 이 어두움은 최종적인 하나님과의 분리이며, 새 예루살렘의 빛이신 어린 양과의 분리를 가리 키는 것이다.(계21:23) 


또 다른 신약성경 구절은 영원한 벌은 영원한 심판으로 언급한다. 즉 영원토록 유효한 심판이라는 뜻이다.(히6:2) 여전히 다른 구절은 “침륜”(문자적으로 파괴, 사망, 분리를 의미함) 그리고 “멸망”(영원한 사망) 이라고 말한다.(딤전6:9) 이러 한 “영원한 멸망”(혹은 분리)은 “주님의 존전으로부터” 그리고 “그의 능력의 영 광으로부터”의 분리이다.(살후1:9) 이러한 구절들에서 “사망”이라는 단어는 영 적 사망 혹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된다. 죄인은 현재도 죄와 허물로 죽은 상태이며, 그리스도와 분리되었거나 그리스도가 없는 자이다. (엡2:1,12) 영원한 심판은 최종적으로 영원히 하나님과 그리스도로부터 분리를 가져오는 것이다. 

둘째사망 
성경은 이렇게 최종적으로 분리되는 것을 “둘째사망”이라고 부른다. 요한계시록에서 불못이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계20:14)

예수께서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게헨나 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10:28, 눅12:4,5)고 경고하셨을 때 예수께서 는 게헨나를 둘째 사망과 동일시하였다. 


이것은 확실히 육체적인 죽음 후에 또 다른 죽음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이 죽음은 상태나 종류에 있어서 판이 하게 다르다. 육체적인 죽음 후에 또 다른 죽음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육체적인 죽음이 몸에서와 우리의 생활환경에서의 분리라고 한다면, 둘째 사망은 하나님으로부터와 새 창조에서 맛보게 될 생명으로부터 최종적이고 영원한 분리이다. 이 둘째 사망에 던져지는 사람 중에는 짐승의 표를 받은 모든 사람들이 있다. (계14:9-11) 이 사람들은 천사들과 그리스도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을 것이다. 즉 봇물에 갇혀서 새로운 창조물과 격리되어 있지만 나사로가 음부 (Hades)와 아브라함 몸 사이에 있는 깊은 구렁을 건너서 볼 수 있었던 것처럼 그들은 그들이 거부한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볼 수 있을 것이다.(눅16:23) 그들은 결코 타 없어지지 아니할 것이다. 왜냐하면“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 다....그들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로다.”(계14:11)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기 때 문이다. 이들은 영원히 성도들에게 약속된 안식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구절 중 어느 것도 최종적인 심판이 선언된 뒤에 복구시키거나 회복시키는 것을 약속하는 암시를 보여주고 있지 않다. 볼못이나 게헨나와 관련하여 신성한 기관은 나타나 있지 않다. 불은 막9:44,48의 구더기와 병행하고 있다. 그것은 깨끗한 것으로서가 아니라 형벌로서의 붙인 것이다. 거기에는 또 다른 기회가 없다. 이러한 사실은 교회를 흔들어 깨워“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하며 외치게 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한다.(고후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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