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 후크마 - 성화에 있어서 하나님과 그의 백성
개혁주의 신학 2014. 6. 3. 05:45성화에 있어서 하나님과 그의 백성 / 안토니 후크마의 '개혁주의 구원론'에서 발췌
성화는 누구의 사역인가? 성화의 모형에서 관찰한 바와 같이 우리는 성화가 하나님의 사역이며, 또한 그의 백성의 책임이라는 점을 숙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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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명백하게 하나님이 성화의 주체이시라고 교훈한다. 성화의 사역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가 공히 담당하신다고 묘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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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의 두번째 분이신 그리스도는 "물로 씻어 말씀으로" 교회를 깨끗하게 하시는 성화의 주체자로 계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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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하나님 역시 우리 성화의 주체가 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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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는 우리가 우리 스스로, 우리 자신의 노력으로, 그리고 우리 자신의 능력으로 이룩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깨닫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다. 결국 성화는 인간의 노력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화는 역시 우리의 책임있는 참여를 포함한다. 고로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진..."(고전1:2)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게 하자"(고후7:1)고 권면한다. 앞에 있는 구절에서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고후6:16)고 언급된 위대한 계약은 이미 상세하게 구현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계약의 백성이기 때문에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는 의무의식을 가진다. 그 백성인 우리들은 진심으로 죄와 투쟁해서 승리해야 한다. 여기 "온전히"라고 번역된 그리스어 에피텔룬은 명사 텔로스(끝 또는 목적)에서 유래되었다. 그리고 이 낱말의 뜻은 "점진적으로 정해진 목적에 도달한다"이다. 보통 우리가 하나님의 사역으로 생각하는 것이 여기서는 명백하게 신자들의 의무로 묘사되었다. 즉 성도들은 정해진 목적에 이르도록 분투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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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기자는 다음과 같이 거룩하라고 말한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12:14). 여기서 성화는 우리가 계속적으로 추구해야 되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그러므로 성경에 따르면 성화는 근본적으로 우리 내부에서의 하나님의 역사이지만 우리가 수동적으로 가만히 있는 상태에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노력하는 가운데 이루어진다.
J.C 라일은 이 점을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성화는...모든 신자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다. 만일 신자들이 거룩하지 않는다면 그 책임은 그 자신에게 있지 않는가? 만일 성도들이 성화되지 않는다면 그 잘못을 누구에게 돌리겠는가? 그 자신의 잘못이 아닌가? 성도들에게 은혜와 새 마음 그리고 새로운 본성을 주신 하나님은 만일 성도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지 않는다면 그들에게서 모든 관용을 거두실 것이다.(J.C. Ryle)
성화에 대한 이 두가지 관점은 다음의 주목할 만한 구절에서 언급되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항상 복종하여...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느니라"(빌2:12~13). 바울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했기 때문에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명령은 구원받지 않은 사람을 향한 복음의 적용으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 이 명령은 믿는 성도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바울은 그의 독자들에게, 행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계속 "이루라"고 요구한다. "이루라"고 번역된 단어는 어떤 사본에서 일반적으로 농부가 땅에서 경작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의 권면을 "하나님이 너희에게 주신 구원을 계속적으로 경작하라"는 의미로 의역할 수 있다. 신자들은 그들이 이미 받은 구원을 계속적으로 삶의 모든 영역에 적용시키고, 모든 활동 속에서 분명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달리 표현해서 12절은 거룩하게 살아야될 책임이 신자들에게 있다고 묘사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13절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우리 구원의 완성이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있지 않다고 하는 사실이다. 바울은 놀라웁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너희 안에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우리 성화의 전체적 과정을 주관하신다. 즉 하나님은 기쁘신 뜻을 가지시고 우리를 성화시켜 나가신다. 우리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때마다 우리는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더욱 의존하게 된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와 우리의 노력과의 관계를 어떻게 묘사할 것인가? 누군가 주장했듯이(Berkhof.) 성화는 성도의 협력을 포함한 하나님의 사역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러나 이 교리에 대하여 이렇게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과 우리가 서로 성화의 어떤 부분을 맡아 수행한다고 하는 잘못된 생각이다. 존 머레이는 그 상관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은 우리가 노력하기 때문에 중지하지 않으시며, 또 하나님이 역사하기 ?문에 우리의 노력을 포기해서도 안된다. 그 관계는 마치 하나님이 자기의 부분을 담당하시고 우리는 우리의 부분을 담당하는 것처럼 엄밀하게 구별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 속에서 역사하신다. 그리고 우리 역시 노력한다. 그러나 그 관계는 하나님이 역사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노력할 수 있다는 것이다.(John Murray.)
결론적으로 우리는 성화란 성도의 노력을 포함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거룩해지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욱 우리에게 노력할 수 있게끔 해주는 강력한 능력이 하나님의 능력임을 확신하게 될 것이다.
안토니 후크마의 '개혁주의 구원론'에서 발췌(327~33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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