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틴 루터(1) - "나는 농부의 아들"

마틴 루터 2017. 1. 15. 02:07

마르틴 루터, "나는 농부의 아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길을 따라(1)

 

시대적인 상황

 

중세시대 1,000년을 타락하고 부패한 암흑기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여러 가지 신학적, 교회적, 윤리적 악습들이 난무하고 진리가 어두워지고 교회가 타락한 시대였기 때문이다. 교황이 온 유럽을 다스리고 있던 중세시대는 교황의 권세가 대단했다. 당시 교황권의 지배를 받던 모든 사람들이 교황 제도와 교황의 부당한 요구에 대해 불평했다. 독일 교회도 교황의 통치 아래서 결코 편안함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독일 사람들은 교황제도로부터 자유와 독립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기를 원했다. 이처럼 중세는 교회의 부패와 교황의 권위로 가득했지만 어두움을 물리칠만한 구원의 빛은 보이지 않았다. 하나님은 이제 어두운 중세시대를 마무리하시기 위해 독일의 한 젊은이를 부르셨다.  루터는 로마 가톨릭 교회가 지배하는 세상에 태어났다. 개혁시대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어디선가 큰 빛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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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슬레벤의 루터 생가  ⓒ뉴스파워 김현배

 

루터 생가 - 아이슬레벤

 

구워 먹을 수 없는 백조가 탄생한 곳, 루터 생가이다. 16세기의 중심 인물이 된 루터는 (Martin Luther, 1483-1546) 1483년 11월 10일, 과거 동독의 작센 지역인 아이슬레벤(Eisleben)이라고 하는 작은 마을에서 첫째 아들(혹은 둘째)로 태어났다. 마르틴 루터는 그 시대의 관습에 따라 출생 다음날인 11월 11일 성 베드로- 바울교회에서 유아세례를 받았다. 그가 세례 받은 날이 교회력으로 ‘마르틴’ 성자를 기르는 날이어서 세례명으로 마르틴(Martin) 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성 베드로-바울교회는 루터가 유아세례를 받은 세례대가 원형으로 보존되어 있다.

 

루터가 태어난 지 6개월 쯤 되어 루터의 부모는 약간의 돈과 재산을 가지고 고향을 떠나 큰 광산지역인 만스펠트(Mansfeld)로 이사하여 정착하였다. 루터의 어린 시절은 혹독한 가난과 싸우던 시기였다. 그의 부모는 교육받지 못한 하급 신분으로 경제적 여건이 좋지는 않았지만 정직하고 부지런하며 경건한 사람들이었다. 루터는 촌스러운 자신의 배경을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며, 평소 “나는 농부의 아들이며 (ich bin eins Bauern), 나의 아버지, 할아버지, 그리고 선조들은 모두 정직한 농민들이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곤 했다. 하지만 그는 일생동안 농민들의 사상과 감정과는 대립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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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터의 부모     ⓒ뉴스파워 김현배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은 젊은 루터 

 

종교개혁을 위한 루터의 훈련은 엄격한 부모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당시 교육 기술의 주요 수단은 체벌이었으며 루터의 부모도 매우 엄격한 훈육으로 교육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의 부모는 루터가 약간만 잘못했어도 혹독한 체벌을 했기 때문에 루터는 힘겨운 젊은 시절을 보냈다. 또한 학교에서도 교사들은 어린이들을 구타하면서 라틴어 초급 문법을 가르쳤다. 루터도 학교에서 매를 맞으며 교육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아무리 루터의 어린 시절이 혹독했다 할지라도 그는 부모의 훈육이 오직 사랑 안에서 행해졌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경건한 기독교인 어머니 마가레테(Margarete)는 그를 어릴 적부터 철저한 신앙생활을 가르쳤는데, 교육에 관심이 많았던 소년 루터는 요리문답, 십계명, 사도신경, 주기도문과 그리고 라틴 문법과 독일어 찬송을 배웠다.

 

한편 아버지 한스(Hans Luther)는 루터가 법학을 공부하여 만스펠트 백작의 법률고문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교육에 집념이 강한 아버지는 어린 루터를 라틴어 학교에 입학 시켰다. 그리고 루터가 14살이 되었을 때 부친은 그를 아이젠나흐에 있는 라틴어 학교로 전학시켰다. 그 학교에서 루터는 종교, 도덕, 정확한 문법, 라틴어, 논리학, 웅변술, 시, 음악 등을 배웠다. 이런 과목들은 장래 루터가 신학자로서 활동과 종교개혁을 수행하는데 효과적인 기본 도구들이 되었다. 초등학교 교육을 만스펠트, 막데부르크(Magdeburg), 그리고 아이제나흐(Eisenach) 등지에서 받았다.

 

1501년, 학문에 대한 열정이 점점 뜨거워진 18살의 루터는 당시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명문 에르푸르트(Erfurt) 대학교에 입학했다. 이곳 대학에는 스콜라 철학자들과 인문주의 학문의 권위자들로 존경받는 학자들이 많이 있었다. 라틴어 실력이 탁월한 루터는 고전 라틴 작품들, 중세 철학, 스콜라 철학, 논리학, 변증법, 수사학, 물리학, 형이상학, 라틴어 성경, 고대의 고전에 대한 연구, 그리고 자신이 원하던 문학을 공부하였다. 특히 루터는 언어를 성령의 검을 보관하는 칼집으로 여겼으며, 대학 도서관에서 라틴어 성경 전체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루터는 열의를 다하여 공부를 했고 좋은 성과를 얻었는데 4년 후인 1502년에는 인문학 학사학위를 받고, 1505년에는 인문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루터는 그의 아버지의 큰 기대에 따라 법률가가 되기 위해 에르푸르트 대학교의 법률대학원에서 법률 공부를 하게 되었다. 드디어 아버지의 꿈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그의 부친은 루터가 세속 법률 교육을 받도록 학비를 계속 지원했고, 심지어는 턱 없이 비싼 책인 법전까지 사 주었다. 루터는 1505년 부활절부터 법학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하지만 루터는 갑자기 법률 공부를 그만 두었다. 신기하게도 루터에게 돌연한 방향 전환이 생겼다. 루터는 같은 해 7월 17일에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 (Augustinerkloster) 의 문을 두드렸다. 루터는 신학으로 기울어졌다.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새로운 그의 인생의 길을 열어 놓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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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터의 생가(박물관)     ⓒ뉴스파워 김현배

 

*김현배 목사는 총신대 신대원을 졸업하고 영국에서 영국 부흥운동사를 공부했다. 현재 유럽성시화운동본부 상임회장 겸 독일 성시화운동본부 대표회장을 맡아 유럽 재복음화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뉴스파워 유럽 본부장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영국 부흥의 주역들>이 있다.

 

김현배  ⓒ 뉴스파워

가져온 곳: USA아멘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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