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아브람을 처음 불러내셨을 때, 아브람에게 믿음이 얼마나 있었을까요? 아비집을 떠나기는 했는데 아버지 데라를 모시고 하란으로 갔다가 다시 하란을 떠나 가나안 땅에 가기는 했는데..., 기근이 들자 굶어죽을까봐 '하나님의 지시하신 곳'을 떠나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갈대아 우르가 가까웠다면 아마 갈대아 우르로 돌아오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 곳에서 사람들이 자기를 죽일까봐 두려워 아내를 누이라고 했습니다. 도저히 하나님을 의뢰하는 사람의 행동이라 할 수 없습니다. 비겁하고 가련하고 한심한 사내의 모습입니다. 그 비겁함으로 아내를 빼앗겼습니다. 아내 사라가 바로왕에게 시집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바로의 집에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그 재앙이 얼마나 크고 무서웠던지 바로가 놀라서 사라를 돌려주고 그들을 빨리 떠나 보내려고 금과 은, 육축과 노비를 아브람에게 잔뜩 안겨주고 잔뜩 지워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지요. 하나님은 이 믿음 없는 아브람에게 한 마디 꾸중도 안 하셨습니다. 아브람에게 믿음이 없는 것을 아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일을 통하여 아브람의 믿음이 조금 자랍니다. 그래서 조카에게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리라,' 하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조카 롯이 붙잡혀갔을 때 318인 거느리고 쫓아가 찾아오는 대단한 용감성도 발휘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그 믿음은 연약하기만 하였습니다. 15장을 보십시오. 그돌라오멜을 쳐부수고도 아브람은 두려워합니다. 두려워하는 아브람에게 하나님께서 오셔서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하나님이 계시는데 무엇이 부족하며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그러나 아브람은 여전히 두려워하였습니다. 자식 없이 죽는 것이 더욱 두려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직 제게 씨를 안 주셨습니다. 이 하인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 저의 후사입니다, 씨를 안 주시니 할 수 없지 않습니까?” 아니, 하나님이 자식보다 못 하단 말입니까? 그런 믿음 없는 아브람에게 하나님은 한 마디 꾸지람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밤하늘의 별을 보여 주셨습니다.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그런데 여기에서 아브람이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것 참 희한한 일입니다.
밤하늘의 별을 보여주니까 믿었다니 말입니다. 그리고 더 희한한 것은 밤하늘의 별을 보고 믿은 아브람을 하나님께서 의로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로라.”

밤하늘 별을 보고 믿은 것이 어째서 의가 되는 것일까요? 갈라디아서 3장을 찾아봅시다.
(갈3:16)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이 약속의 자손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지요.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요8:56)

하나님께서 그 날 밤 밤하늘 별을 보여 주실 때 하나님은 "네 자손들"이라고 복수형으로 말씀하지 않으시고 "네 자손"이라고 단수형으로 말씀하셨답니다. 아브라함은 "아니, 하나님. 후손들이라고 하셔야 맞잖아요. 하나님은 문법도 모르십니까?" 하고 따지지 않았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히브리어 문법을 잘 모르셔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아닙니다. 그 날 밤 아브람에게 밤하늘 별을 가리키면서 하나님은 아브람의 자손 가운데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신 것이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별을 가리키신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저렇게 하늘 가득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늘 가득한 예수 그리스도....
그것이 산산히 부서져 흩어질 그리스도의 피와 살을 의미하는 것인지, 그 생명으로 구원 받을 수많은 성도들,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하는 것인지, 온 우주 가득한 그리스도의 영광과 찬송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아브람은 그 말씀을 그대로 그냥 믿었습니다. 그러니 아브람은 예수님을 믿은 것이 되고 후손으로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린 것이 되는 것입니다.
 
아브람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참 이상하다 싶습니다. 아니, 웃긴다 싶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하시는 것을 보면 믿음 없는 아브람을 불러내셔서 믿음 없는 아브람에게 억지로 믿음을 주시고 억지춘향으로 그 믿음을 의로 여기시니 말입니다. 아브람에게 복을 주시려고 작정하시고 억지로 끌고 나와 억지로 입을 벌려 믿음을 먹이시는 것처럼 하시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런데 그러고 보니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어 마땅한 죄인이 억지로 이끌려 나와 억지로 먹이시는 믿음을 받아먹고 하나님의 영광의 자녀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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