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도 역사가 길어지면서 원로목사 후임교회와 장기목회자 후임이 점점 많아지는데 거기에 대한 신학교 교육이나 책이 없기 때문에 지식 부족에서 오는 많은 시행착오의 문제가 파생되는 것 같아 원로목사 후임지침서와  장기목회자 후임  참고서를 9회에 걸처 시리즈로 쓸것입니다.
웜로목사 후임들은(장기목회자 후임들도 같이) 참고하시고 취사선택을 바랍니다.

Ⅰ. 원로 목사와 후임과의 갈등과 평화

원로 목사 후임과 갈등, 또는 전쟁과  평화란 글을 쓰려고 하는데 동기는 원로 목사와 후임과의 관계가 교회에 갈등으로 비춰지는 것이 다수 교회이기 때문에 문제의 요인을 생각하여 보고 각자 참고하여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데서 이 글을 쓰는 목적이 있다.

필자는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정상적인 당회가 구성되어 있고 역사가 있는 교회에서 10년 이상 순탄하게 목회 하였으면 그 목사는 목회에 관한 한 "도사"가 된 분이라고 정의한다. % 따진다면 한국 교회 목사들을 총 망라하여 수만 명인데 통합 측 교회만 하더라도 목사가 1만6천명이 넘고 원로목사는 61명(2010년도)인데 한 교회에서 10년 이상 장기목회 한분이 몇%나 되겠는가? 통계가 나오지 않아 모르지만 일반 관점에서 볼 때에 (수백명?)그 수는 그리 많지않다고 추리된다.

인생이 전쟁이라면 목회도 전쟁이다. 칼빈은 교회를 전투하는 교회라하였다. 원로 목사란 한 교회에 부임하여 20년 이상 시무하고 교회의 동의를 얻어 추대 받은 백전노장의 장군이다. 원로 목사가 장기 목회를 하고 물러간 그 자리를 무난히 메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고로 20년 이상 목회 한 원로 목사의 그 자리를 매우려면 예의와 지혜와 목회 능력과 처신의 인간관계가 탁월하여야 가능하다.

어떤 목사라도 그 자리를 이어 받았다면 눈물과 피와 땀으로 절타 탁마의 인고의 세월을 경험한 자이거나 아니면 지금부터 절타 탁마를 견디어 낼수있는 자여야 전임의 목회를 연속 할 수 있다.
명장은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다. 당회가 구성된 교회에서 20년 이상 목회 하였다면 그는 명장이다. 그런고로 많은 시간과 난관을 거쳐 많은 수련을 쌓아야 원로의 자리를 무난히 매워 갈 수 있다. 수련을 쌓는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다. 타고난 달란트와 인격과 그릇이 커야한다.

우둔한 단기 목회의 종지기 그릇의 소양을 가진 목회자는 어떤 지혜를 공급 받아도 감당치 못하고 중도 패전하여 탈락할 것이다. 전쟁은 적을 알고 전술이 뛰어난 자가 승리한다. 상대를 먼저 알고 전쟁을 치르는 자가 승리하는데 종지기 그릇의 소양을 가진 자는 멀리, 넓게, 깊게, 높게 볼 관찰력이 없고 전략의 능력과 시력도 없고 좁은 소견에 인내력도 포용략도 부족하기 때문에 그 자리를 지탱 한다는 것은 불가능 하다.

그런고로 확실한 승리의 전술과 지식을 갖지않은 자는 노 하우를 배워서 가든지 아니면  그 자리에 아예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 그 자리에 들어가지 말아야 할 자가 들어앉으면 전쟁은 반드시 일어나고 교회는 시련을 격는다.
앞으로 원로 목사와 장기 목회자가 점점 많아지는 것이 현실이기에 “원로 후임과 전쟁과 평화”라는 글을 통하여 최소한 전쟁을 막아 보자.

2. 비범한 인성과 목회철학과 능력을 가진 자만이 원로 목사 자리 감당

1) “도사 기질”을 가진 자만이 원로 자리 무난히 연속 할 수 있다
목회 초보자라도 그 자리를 무사히 이어가는 목회자는 “도사”가 될 수 있는 소양을 가진 자이다.
그는 비범한 천부적 목회 달란트와 탁월한 적응력의 지혜와 그릇을 가진 자이다.
그렇지 않고 평범한 달란트를 가진 좁은 소양의 목회자가 설교 한번 잘하고 인물 좋고 학벌 좋고 "증" ? 하나로  부임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는 거기서 그 자리를 지탱하기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비범한 “도사” 기질과 뛰어난 적응력의 지혜와 그릇이 큰 자는 그 도사의 자리를 무난이 이어 갈 수 있다.

2) 원로목사  때문이란 용어를 입에 담지 말라.
근간에 원로 목사 후임들이 원로목사 간섭과 시집살이 때문에 목회가 힘들고 어렵다고 당사자들의 입과 그 교회를 통하여 곳곳에서 흘러나오고 있으며 그로 말미암아 원로목사 재도 반대운동까지 일어나고 있다. 헌법이 개정되기 전에는 반대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원로 목사는 장기간 그 교회를 사랑하고 키웟다. 그는  후임 목사가 목회를 잘하도록 도와야 되겠다는 마음에서 그 교회를 떠나지 않고 있거나 그리고 마땅히 갈 교회가 없기 때문에 그 교회에 출석하는 분도있다. 그 교회를 출석 않는다 하더라도 멀리서 교회를 살피고 어려움이 없기를 바라며 어려움이 있으면 돕는 마음을 갖고있다. 자기가 섬기든 교회를 해꼬지 하겠다는 목사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배은 망덕한 버릇없는 후임들이 원로목사를 귀찬케 여기는데 문제가있다.

후임에게는 원로만큼 부담스러운 존재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의 비중이 크고 시어머니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후임은 그분의 비중을 인정하고 들면 문제가 되지 않은데 그분의 비중을 인정 않을려는데 문제게있다.

원로후임은 그 원로목사가 없어도 다른 대상(장로)이 그 후임 에게 똑같은 비중의 부담스러운 존재가 된다는 사실도 알아야 된다.

속담과 같이 큰 말이 나가면 작은 말이 큰 말 행세 한다는 말이 잊지 않는가? 반드시 말의 무리 가운데는 지배하는 큰 말이 있기 마련이다. 인간 공동체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을 비 정상으로 볼것이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것이 인간 공동체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지금 후임이 원로가 되어도 마찬가지이고 원로장로가 되어도 마찬가지가 된다.

담임 목사는 큰말 탈수 있는 능력 자라야한다. 그리하여야 그 다음 큰 말도 탈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마찬가지로 바로 그분은 그 교회에 큰 공로자 이기에 큰 말이 되어 큰 말 위치에 있는 것이다.
그런고로 큰 말 탈수 없는 자는 자기가 큰 말을 탈 능력이 부족한 자로 알고 원로 목사 또는 장로 때문이란 그 용어를 입에 담지 말아야 한다.

3) 원로는 하나밖에 없는 은인 중 은인이다.
원로는 세상 말로 하면 기업을 만들어 물려준 은인이다.
교회가 아니라면 자식에게 물려줄 것이 아닌가? 어떤 분은 자식에게 물려주기도 하지만.
그런 원로목사의 뜻을 100% 수용한들 어떠하랴!
그런 분을 평생 상전으로 모신들 그 은혜를 갚을 수 있겠는가?
그 많은 목사 중에 내가 서도록 직간접으로 협조하신 분인데 얼마나 고마운가!
그분이 후임 결정에 권리가 없었다 하여도  뒤에서 반대 하였다면 과연 그 자리에 올수 있었겠는가?
그분이 후임 부임에 전혀 무관하다 하였을 지라도 그분이 이룩한 교회에 후임이다.
그분의 은혜도 모르고 약간의 부담스러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그분을 원망 불평하면 어떤 이유로든 그는 배은망덕 자가 아닐 수 없다.

한국교회 목사들에게 속된말로 평생토록 원로목사 종노릇하여도 후임되겠다는 목사가 99.999999%가 될것이다. 그도 그런 마음으로 그 교회에 부임하였을 것이다.

원로에 배은망덕 자는 하나님의 은혜도 인간의 은혜도 모르는 저질이며 진정한 의미에서 목회자로서의 섬기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종의 자격이 없는자며 먹고살기 위한 직업인의 차원을 넘지 못한 지극히 세상적인 사고 자라고 생각한다.

부임 전에는 원로 목사나 장로에게 손발을 비비며 내가 부임하면 잘 섬기고 잘 하겠습니다 하는 마음으로 부임하지 않았는가? 그런 생각않고 부임한 목사가 과연 있는가? 실제로 그렇게 빌고 부임하는 목회자도있다.

그리고서 부임 한 후에는 딴 짓거리를 하는 고얀ㄴㄴㄴㄴㄴ-많다.

일부 중직 자들에게 원로목사에 대한 장기간 쌓여진 불만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이 정상이다. 후임에게는 그런 불만자가 앞으로 없겠는가? 그것을 생각 못하는 목사는 석두 목사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불만 그룹들과 연대하여 원로에게 도전하는 것은 부도덕 중 부도덕이며 있을 수 없는 배은망덕 행위이다. 배은 망덕의 행위를 하였을 때에 교회는 혼란하여 지고 그 그 교회에서  목회하기가 심히 어려운 지경에 처하게되며 교인들을 골탕 먹이게 된다. (천호동 ? 교회!!!)
후임 목사들은 자기에게는 반대 그룹이 형성되지 않는다고  착각하지 말라. 착각자는 석두이다.

그분은 그대에게 한 분 밖에 없는 은인이다. 그 은혜를 잊지 않고 선배에 대한 예우를 깍듯이 하는 것이 목회에 기본 도리이며 하나님께도 인정받고 교인들에게도 인정받고 축복받을 일이며 원로에게도 많은 도움을 받고 사랑받을 조건이다. 장기목회에 실증자와 불만자가 많아도 50%이상이 그의 폔임을 알아야한다.

그런고로 원로목사 때문에 힘들다는 말은 입 밖에 내지말라.

4) 원로목사 때문이란 불평하는 자는 그 교회를 담을 그릇이 못되는 자가 부임 하였다. 원로목사 후임의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원망하며 물러가는 그 목회자가 원로 목사 없는 그 만한 규모와 역사를 가지고 당회가 구성되어 있는 어떤 교회에 부임 하였어도 그 사고가 승화되지 않는 이상 그 목사는 원로없는 그런 교회를 감당 할 수 없는 자이다.

목사는 자기 그릇 이상의 양을 담을 수가 없다.
목회 학에서 교회는 목사만큼 자란다고 한다.
그 교회를 담을 그릇이 못되는 자가 그 교회에 후임이 되어 고통하고 갈등한다면 잘난척 거만 떨지말고 자신의 그릇에 대하여 깊이 자각하고 반성하고 부족을 시인하고 낮아져서 섬기는 종이 되어야 한다.

비범한 목회철학을 갖지 못한 자는 20년 이상의 그 “거대하고 광활한 자리를” 물려받았다 할지라도 지탱할 수 없다.

원로목사 후임 자리를 잘 지탱하며 연속하는 후임자는 그릇이 크며 첫째 선배에 대한 예의가 바른 비범한 목회자이다. 요즈음 젊은 후임들은 선배 원로에 대하여 무례하며 예의가 부족한데서  선배를 섭섭게하며 많은 문제를 야기하는 것 같다.
귀찬 스러운 존제, 간섭하는 존제, 안보이는 존제가 되었으면!!!!!!!!!!!!!. 이는 배은 망덕 자이다.

앞으로 필자는 원로목사에 대해서만 아니고 장로와의 인간관게 예의 범절에 대하여도 심도있게 다루려고 한다.

 

출처: USA 아멘넷/장달윤 목사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