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순종(靈的 純種)과 남은 자”
                                                                                                                                           백 봉 태 목사


  제가 자주 방문하는 중국 연길에 있는 고아원인 희망의 집에는 ‘번개’라는 이름을 가진 진돗개가 있는데, 희망의 집 원장의 말로는 그 ‘번개’가 ‘순종 진돗개’라고 합니다. 어떤 경로를 통해서 한국 토종견인 진돗개가 그곳까지 가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그 번개의 하는 행동들을 보면 일반적인 개들과는 다른 점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흔히 개를 비롯한  동물들을 순종과 잡종으로 구분합니다. 거기서 순종이라는 말은 순수한 혈통을 간직한 개나 동물들을 가리키는 것이며, 반면에 다른 혈통과 섞인 것들을 잡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이 땅에 사는 하나님 백성들 가운데서도 순종과 잡종이 섞여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하나님 백성으로서 갖추어야 할 특징들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켜 영적인 순종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을 믿노라 하지만 세상과 연합하여 살아가며 세상의 모습을 더 닮아 있는 사람들은 영적인 잡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이런 영적 순종들을 가리키는 표현이 있는데, 그것이 ‘남은 자’(the remnant)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이 ‘남은 자 사상’으로 집약이 된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택하신 민족이요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구약 이스라엘의 백성들은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순수성을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이방 나라들과 혼합되었으며 그들의 신앙은 여호와에 대한 신앙과 각종 우상 숭배가 혼합이 된 혼합신앙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말하자면 잡종들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원래는 열방에 하나님의 영광을 비추라고 만들어진 이스라엘은 오히려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민족이 되고 말았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이스라엘을 심판하고 마십니다. 즉 이방 나라인 앗수르와 바벨론을 끌어들여 잡종이 되어 버린 이스라엘을 심판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이스라엘의 실패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비록 한 동안은 이스라엘이 심판을 당하여 세상에서 끊어져버린 듯해도 언젠가는 그들이 회복될 것을 하나님은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그러한 희망을 선지자들에 보여주시며 예언하도록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대해서 소망을 가지시며 기대를 버리지 않으시는 까닭은 이스라엘 모두가 범죄하고 잡종들이 되어버린 것 같은 현실 속에서도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는 영적 순종의 적은 무리들을 보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런 소수의 영적 순종에 속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리켜서 ‘남은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남은 자의 사상을 잘 보여주는 예언의 말씀이 이사야서 6장에 나옵니다.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운 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사 6:13) 여기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큰 산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 산에는 밤나무, 상수리나무 등 여러 가지 나무들이 많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산의 수많은 나무들이 베임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원래 있었던 나무의 십분의 일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 남은 나무들마저 모두 베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그 산이 언젠가는 다시금 울창한 산림으로 뒤덮이고 회복되는 날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모든 나무들이 베임을 받아 황폐하게 된 가운데서도 나무를 잘라내고 남은 그루터기들 때문입니다. 언젠가 때가 되면 그 그루터기들로부터 새 순이 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연한 순들이 큰 나무들로 자라고, 마침내 그 산은 푸른 나무들로 빽빽한 생명력 있는 산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그루터기와 같은 사람들을 가리켜서 거룩한 씨, 남은 자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소수의 사람들을 그루터기처럼 사용하셔서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역사와 부흥의 역사를 다시 이루어 나가실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 '남은 자'들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이루어가는 ‘창조적 소수’라고도 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구약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이런 그루터기와 같은 영적 순종들을 사용하셨으며, 2,000년 기독교 역사 속에서도 이런 영적 순종들을 통하여 생명력을 상실해 가는 교회를 다시금 회복하고 부흥하게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 이 땅의 교회들이 세속화되어가고 또 수많은 교인들이 잡종들처럼 되어갈지라도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비록 우리들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을지라도 어딘가에는 이 그루터기와 같은 남은 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엘리야의 이야기를 잘 압니다. 그는 그야말로 악한 시대에 홀로 우상숭배자들과 맞서서 싸웠던 순종 중의 순종입니다. 그러나 그는 바알의 선지자들과 싸워서 승리를 거둔 후에 극심한 영적 탈진을 경험합니다. 그가 얼마나 깊이 침체되었든지 차라리 지금 자기 생명을 취하여 달라고 하나님께 호소를 합니다. 그러면서 그가 하는 말이 무어냐 하면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히 특심하건만,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하는 볼멘 소리였습니다(왕상 19:10). 그의 말은 자기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순수한 마음으로 신앙을 지키는 자가 자기 하나밖에는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자, 즉 영적인 순결성을 지키고 있는 남은 자들이 칠천 명이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호렙 산에서 엘리야를 만나주시고 소명을 다시금 주신 후에, 그는 남은 생애를 선지 생도들을 양육하며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일에 힘씁니다. 그리고 그가 그처럼 선지 학교를 설립한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어두운 시대를 극복하고 이길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한국교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한국교회의 현실을 바라보며 실망이 될 때가 많습니다. 교회 안에 들어온 세속적인 사상과 방법론들,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웃기는 이야기와 재담과 처세술로 대치된 설교들, 경제 논리와 크기의 논리에 철저히 종속되어 가고 있는 교회의 목회 철학들......이 모든 것들이 엘리야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바알 숭배와 다를 것이 무엇입니까? 그래도 저는 이 땅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고 주님의 교회가 다시 생명력 있는 모습으로 부활할 것을 기대해 봅니다. 그리고 그런 진정한 부흥의 역사는 오직 혼잡되지 않은 순전한 말씀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공급되어 그들을 영적 순종으로,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남은 자들로 양육하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2008년 8월. 망원동 일각에서.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눅 12:32)


(이 글은 제가 2008년에 은혜와 진리를 집필하기 시작하면서 당시 저의 심경을 글로 썼던 내용입니다. 즉 구속사적 성경연구인 은혜와 진리를 집필하게 된 동기에 대한 설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출처: 물과피와성령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