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서정에 대한 새로운 고찰

 

한국개혁신학회 제65회 정기학술발표회



한국개혁신학회(회장 정일웅·총무 안명준)는 지난 9월 2일 총신대학교 사당동 종합관 520호에서 제65회 정기학술발표회를 가졌다. 이날 ‘구원의 서정에 대한 새로운 고찰’이라는 주제로 발표한 백석대학교 권호덕 교수는 “구원이란 우리가 육신의 정욕대로 살면서 성령의 도움을 모르는 ‘비참한 상태’에 있다가 ‘빛의 상태’, 성령의 추진을 받는 ‘주안의 상태’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라며 “우리는 이 사건을 소명의 시각으로, 중생의 시각으로, 회심의 시각으로, 칭의의 시각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권 교수는 또 “우리는 구원 문제를 ‘소명, 중생, 회심…’의 순서로 이루어진다고 사변하기보다는 나와 삼위일체 하나님과 관계를 중심으로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체험하는 것이 오히려 큰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이날 참가자들의 열띤 호응과 논란을 일으킨 권호덕 교수 발표의 전문을 싣는다.


서 론


인류의 시조가 범죄하고 타락한 이후 인간은 그 마음속에 지니고 있는 종교성으로 인해 자기 구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몸부림쳐 왔다. 이런 사실은 그동안 인류의 역사는 물론이거니와 현재 우리 눈앞에 벌어지는 인간들의 종교 활동이 뒷받침해 준다. 문제는 그런 자연인의 이런 시도가 자기 구원을 위해 성공을 거두었는가 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그 모든 종교들이 각기 고안해 낸 구원방법이 인간의 소원을 성취하는데 도움을 주었는가 하는 것이다.


개혁파 신학은 죄 때문에 타고난 그대로는 영적인 인식기관에 문제가 생겨 진리를 바로 인식할 수 없음을 가르친다.

따라서 개혁신학은 특별은총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특별은총으로 주어진 성경에 계시된 구원의 방법을 성도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열거함을 통해 교회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 사실 기독교신학은 역사 속에서 여러 단계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하나님께서 설정하신 만물의 원리와 그의 뜻을 바로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진리를 규명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는 것이다. 진리도 아닌 것을 진리로 착각하고 거기에 절대성을 부여할 때 이데올로기적인 신학이 형성되는 것이다.

일종의 구원의 적용방법인 ‘구원의 서정’이라는 용어가 생겨난 문제도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어 놓으신 구원을 죄인들에게 어떻게 적용하여 구원을 이룰 수 있을까? 신학 작업은 결국 바른 방법을 규명하는 데로 수렴되는 것이다. 어쩌면 구원론이라는 것은 죄인을 구원하고 치유하는 하나님의 영적인 처방법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질문은 지금까지 한국교회에 가르쳐진 ‘구원의 서정’은 과연 성경적인가 하는 것이다.


1. 문제제기

지금 많은 교회에서 ‘구원의 서정’에 대해 가르칠 때 “소명, 중생, 회개, 믿음, 칭의, 입양, 성화, 견인, 영화”를 중심으로 가르친다. 이런 구원의 서정은 어디에서 유래할까? 이것이 과연 성경적인가? 사실 성경 어디에도 이런 내용을 뒷받침할 만한 성경 구절이 없다. 로마서 8:30은 “예정, 소명, 칭의, 영화”만을 다룬다.

칼빈은 그의 로마서 주석에서 이 구절을 ‘구원의 서정’의 시각으로 주석하지 않았다. 칼빈은 여기서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비하 상태의 모습과 일치해야 하는 문제와 연관하여 이 구절을 해석한다. 즉 그는 소명, 칭의, 영화를 십자가에 참여하는 문제와 연관시킨다. John Murray는 전형적인 ‘구원의 서정’론의 옹호자이다.

그는 로마서 8:30절에 나오는 소명, 칭의, 영화 등에 몇 가지 요소를 논리적으로 추론하여 부가해서 전통적인 ‘구원의 서정’을 고안했다. “소명, 중생, 믿음과 회심, 칭의, 입양, 성화, 견인, 그리스도와 신비한 연합, 영화” 그는 이 각각은 하나님의 활동과 은혜 속에서 그 고유의 특징적인 의미, 기능 그리고 목적을 지닌다고 주장한다.

머레이에 의하면,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구원 사역은 어떤 질서 안에서 일어난다고 한다.(ibid. 80) 머레이의 논지가 과연 성경과 종교 개혁자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까? 또 종교개혁신학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가? 아니면 그 방법이 인간을 변화시키고 영적인 것을 치유하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바른 처방법이 가르쳐지고 적용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인은 절망에 빠진 나머지 매우 비판적이 될 것이다.

가져온 곳 : 
블로그 >생명나무 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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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둥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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