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역사 속에 나타나는 공통점 하나를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곧 신을 찾는 인간의 모습이다. 어느 민족이건 그들의 문화 속에, 물론, 그 정도나 형태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신을 섬긴 흔적을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이다. 그것은 인간의 마음속에 신에게 되돌아가고자 하는 마음, 귀소본능(歸巢本能)이 잠재해 있다는 것이고 그 출발점은 저 에덴동산,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하나님 앞에서 좇겨난 때부터가 아닐까 유추해 볼 수 있다. 죄를 짓고 하나님께로부터 쫓겨난 아담과 하와는 쫓겨난 그 하나님께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마음, 신에게 되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다.
 
그 귀소본능(歸巢本能)을 유전으로 물려받은 아담과 하와의 후손은 가는 곳마다 신을 찾으려하고 신을 숭배하는 제사를 드림으로써 위로 받으려하는 모습을 연출해 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인간 속에 잠재해 있는 이 귀소본능(歸巢本能) 부분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상태, 다시 말해, 영적 무지(無知) 상태의 귀소본능(歸巢本能)은 오히려 여러 가지 형태의 신들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자신들이 만들어 낸 그 신을 섬기기도 한다는 것이 필자가 본 견해이다. 참 하나님을 만나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하나님을 믿느냐?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보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견해들:
 
1.이방인들의 하나님:
바울이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행 17장 22절 하)”라고 지적한 것처럼 세상 모든 사람에게는 종교성이 많고, 특히 우리나라 사람은 다른 그 어느 국민보다 더 종교성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아테네인들은 알지 못하는 신까지 섬겼다고(행 17: 23절)바울 사도가 지적하듯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모든 만물이 다 신이다. 산에는 산신령, 돌, 나무, 폭포수, 물에는 용왕님, 하늘에는 일월성신님, 부엌에는 삼신님, 심지어 우리가 먹는 된장 간장독마저 모두 신이 관장한다고 믿을 정도였으니 우리나라 국민의 종교성이란 두말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2.기독교인들의 하나님:
세상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성도들이 교회를 다닌다고는 하나 막상 “당신이 믿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냐?”라고 물어보면 정작 “내가 믿는 하나님은 이렇습니다.”라고 정확하게 대답하는 사람이 극히 드물다는 것을 알고 놀라게 된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그저 맹목적 신앙을 추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고 믿는 사람들을 기독교 안에서 잠시 분류해
보면:
 
a.하나님을 추상적으로 믿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에 대한 이런 사람들의 개념은 막연하다. 하나님이란 하늘 공중 어딘가에 있을 것이고 그 하나님은 우리가 죽은 후에나 만나볼 수 있는 염라대왕쯤으로 착각하고 있다. 죽은 후에 천당이 있으면 다행이고 없으면 그뿐이니 이 땅 위에 있는 동안에 '천국보험'을 들어 두는 심경이라고나 할까?
 
b. 하나님을 변덕스러운 늙은이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기복신앙가들에게서 흔히 찾아볼 수 있고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같은 유형의 사람들이라 보면 틀림 없다. 이들의 하나님은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내가 착한 일을 많이 하면 기분이 좋아진 하나님이 복을 한 아름 안겨다 준다. 그러나 내가 신앙생활 하는 것이 좀 시원치 않으면 화가 난 하나님은 당장에 매를 때리기도 하고 병을 주기도 하며 또 물질에 큰 손해를 끼치게도 한다고 착각한다.
 
이런 사람들은 정죄하기를 잘한다. 다른 이들이 어려움을 당하거나 몸에 큰 질병이라도 들면, 그것을 저주받은 것이라고 손가락질하기도 하고 성도가 물질에 어려움을 당하는 것은 십일조를 내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잘못된 하나님을 믿는 것에 길든 성도들은 몸이 아프기라도 하면 하나님께 매를 맞는 것이란 불안과 함께 이중고를 겪어야 한다. 이렇게 자기 자신의 부족했음을 아는 상태에서 병이라도 들면 불안하고 두렵다. 이런 틈을 타 자칫 신령하다는 자들의 안수기도를 받으면 뭔가 해결될 것같다는 심리를 이용하는 사이비 치유사역자들이 활개를 칠 수 있도록 원인을 제공하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하나니님을 믿어야 하는가?
 
하나님의 속성으로서: 영원하시고, 불변하시고, 전지전능 하시고, 편재하신 하나님이시다. 도덕적 속성으로서: 거룩하시고, 의로우시고, 자비하시고, 사랑이 한이 없으시며, 신실과 공의가 완전하신 분, 우주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며 운행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외에도 많이 있지만 짧은 지면에 다 말씀을 드릴 수 없고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나하고 어떤 관계가 있는가? 하는 것 정도는 확실히 알고 하나님을 믿어도 믿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야 하는가? 그것은 오직 성경이 계시해 주고 있는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어떤 하나님으로 계시해 주고 있는가? 그것은 많지만, 한마디로 요약하면, ‘ 주 예수 그리스도’다.
 
하나: 하나님을 개인의 주(The Lord)로 믿어야 한다.
'주(主)'님이란, 원어로 '아도나이'(ynda)다. 그 뜻은'주권자', 인간의 또는 신적인 '통제자', '주인', '소유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대명사'다. 하나님은 죽어서나 만나보는 그런 염라대왕이 아니다. 지금도 살아 계셔서 현재 내 삶에 주인이 되심을 믿어야 한다. 개념적으로 아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삶에서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는 삶을 말하며, 이런 자세를 '청지기 자세'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지난 번에도 잠시 말씀드린 대로, 청지기란 자기의 것이 없다. 내가 누리는 것 중에 내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내게 있는 것은 모두 주인의 것이다. 내 건강, 내 생명, 내 자녀, 내 물질, 모두 주인의 것이며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잠시 받아 누린다는 개념이다.(시 24: 1절) 따라서 이런 사람이 십일조를 내는 것은 복 받으려고 내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 것을 그동안 받아 누렸으니 그 은혜 감사하는 마음으로 십 분의 일을 드린다. 내가 가진 모든 것 주님의 것인데 십일조뿐 아니라 내 재산 모두 드려야 마땅하지만 십 분의 일이라도 바치오니 받아 주시옵소서…이런 자세가 선한 청지기의 올바른 물질관이다.
 
둘: 하나님을 예수님(Jesus)으로 믿어야 한다.
예수님의 뜻은 구원자란 뜻입니다(마1: 21절 참조).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요, 그분만이 우리의 구속자이심을 믿어야 한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4: 12절 말씀)” 그렇다. 석가도, 공자도, 여호와 증인 창시자 럿셀도, 모하멧도, 문선명도.. 그들 중 그 누구도 우리의 구원자가 될 수 없음은 그들은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어준 사람이 아니며 또 죽어줄 수도 없는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죄인, 자기의 죄로 인하여 저주(요 3: 36절 참조) 아래 놓여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와 꼭 같은 신세일 뿐이다. 이 세상에 “내가 하나님이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어 주노라”라고 말씀하셨고 실행하신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밖에 없다. 그런고로, 예수님만 우리의 구원자가 되심을 믿어야 한다! 이것이 올바른 구원관이다.
 
셋: 하나님을 그리스도(Christ)로 믿어야 한다.
여기에서 그리스도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겠다. 그리스도란 "기름 부음을 받은 자"란 뜻이다, 구약 성경에서 기름 부음 받은 사람은 1. 선지자 2. 제사장 3. 왕 이다. 따라서 우리가 주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할 때 다음 세 가지 의미 “당신은 나의 선지자요, 제사장이요, 왕이시니이다.”하는 뜻이 함축돼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선지자란, 하나님 편에서 하늘의 소식을 인간에게 전해 주는 사람이다. 제사장이란, 사람 편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주는 사람이다. 왕이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통치자다. 육신 적으로는 국가를 통치하는 군주, 영적으로는 그의 백성된 나 개인을 통치하시는 왕이시다. 이런 사실 하나만 정확하게 알고 바로 믿으면, 결코 이단에게 속아 넘어갈 일도 없고 미혹의 영에 이끌려 탈선할 일도 없다고 믿는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추상적인 하나님도 아니며 우리가 죽어서나 만나 보는 염라대왕도 아니다. 변덕 많고 괴팍한 하나님은 더더욱 아니다. 우리가 이런 잘못된 개념에서 탈피하지 않는 한, 각종 이단 사설, 하나님은 다 같은 하늘의 신, 하늘님이라고 믿는 다신교나 여러 혼합종교의 유혹에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에 대해 무엇이라 말씀하고 있는가? 성령의 조명하심으로 재 정립해 보아야 할 것이다. 당신과 내가 믿고 섬겨야 할 하나님은 우리를 구하기 위해서 창세 때부터 구원을 계획하신 성부 하나님,그 구원의 계획을 십자가 위에서 자기 몸으로 성취하신 성자 하나님, 그 구원의 완성을 위해 지금도 우리 마음속에 찾아와 내주하고 계시며 도우시는 성령 하나님,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십니다!!! 이 신앙이 올바른 신관이다.
 
고로, “당신의 하나님은?” 하고 묻는다면, 내가 믿는 나의 하나님은 “주 예수 그리스도시다."라고 답하고 그대로 믿는다면, 그 속에 성도가 지녀야할 올바른 물질관, 구원관, 신관이 함축되어 있으므로 가장 올바른 정답이 된다!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화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대상 29: 11- 12절 말씀)”



출처: USA아멘넷/별똥별 최송연의 신앙칼럼


아멘넷/별똥별/최송연의 신앙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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