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 자료는 미국 위키 백과(Wikipedia)와 이구한 선생이 엮은 청아출판사의 <이야기 미국사> 를 주로 했다.

1. 멕미 전쟁(The Mexican-American War)

보통 멕미 전쟁을 ‘멕시코전쟁(the Mexican War)’이라고도 하고, 아니면 ‘첫 아메리카의 중재(the First American Intervention)'라고 말한다.

미연방과 멕시코 간 1846년에 이 전쟁이 시작하여 1848년에 끝난다.
이 전쟁 발발 원인은 1845년 텍사스(The Republic of Texas)가 미연방에 합병되자 멕시코가  자극을 받으면서 전쟁이 일어난다.


[텍사스의 독립]


본래 텍사스는 1936년까지 멕시코 영토였다.
1936년 5월14일 벨라스코 조약(The Treaties of Velasco)이 성립되면서 텍사스는 멕시코로부터 해방되어 독립국이 된다.

그 전의 내용을 좀 소개해야 할 것 같다.
1820년대부터 미국 동부에서 건너기 힘든 미시시피(Mississippi) 강을 건너 서부로 이주가 한참 시작일 때의 이야기다. 그 당시 텍사스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멕시코 땅이었다.

1823년 이곳은 ‘텍사스의 아버지(The Father of Texas)'로 잘 알려진 스티븐 오스틴(Stephen F. Austin;1793.11.3.~1836.12.27)이 멕시코 정부로부터 개척지를 만들 수 있는 권리를 얻어낸 곳이었다.

 

서부개척시대 영화에도 이따금 나오는 이야기로 그저 땅에 줄만 치면 내 땅이라고 하던 그런 곳이었다.


대략 300여 명이 처음으로 도착했고 그 다음 연속적으로 목축업자들을 비롯해서 농민들이 모여들었다. 또 산타페(Santa Fe)에는 멕시코와 무역이 이뤄지면서 수많은 미국인들이 늘어났다.


1824년경에 80여 명의 미국 상인들이 25대의 포장마차와 150 필의 말을 타고 산타페에 나타나 3만 달러어치의 상품을 가지고 19만 달러의 멕시코 상품과 교환했다고 한다.


대단한 이득을 취할 수 있는 장사를 알고 사람들은 자꾸만 들끓었다.
처음에는 멕시코 정부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오는 미국인들을 환영을 했었다.


그러나 불과 3년 후인 1827년에는 멕시코인 한명에 미국인들이 열 명의 비율이 되자 멕시코 정부에서 이민자들을 더 이상 들어오지 못하게 막기 시작했다.


그래도 막무가내 들어오고 있었다. 1935년 텍사스의 미국인들은 대략 3만이나 되었다.
그래 멕시코 정부는 군대를 동원해서 막는가하면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하면서 강경정책을 쓰기 시작했다. 이에 미국인들은 1935년 텍사스혁명(Texas Revolution; 1835.10.2.~1836.4.21) 을 일으킨다.


텍사스의 미 국민들의 반란을 진압하기위해 멕시코는 대통령까지 직접 군대를 지휘하며 전쟁에 참여했다. 처음 알라모(Alamo)와 골리아드(Goliad) 전투에서는 승리를 했다.


그러나 미국인들도 당차게 덤벼들었다. 그들은 샘 휴스턴(Sam Houston; 1793.3.2.~1863.7.26.) 장군의 지휘아래 샌화킨토 전투(Battle of San Jacinto)에서 멕시코 군을 대파하면서 대통령도 생포한다.


그리고 벨라스코 조약(The Treaties of Velasco)을 성립 시킨다. 그래서 텍사스는 멕시코로부터 1936년 5월 14일 독립이 되는 것이다.

333px-Wpdms_republic_of_texas.svg.png
텍사스 공화국 일 당시 대략 10년 간 (from Wikipedia)


[멕미 전쟁]


그런 자기 땅이었던 텍사스가 미국으로 합병을 한다고 하니 멕시코 정부가 항의 성명을 내면서 미국 주재 멕시코 대사를 소환하고 공식적으로 국교를 끊는다.


미국의 제임스 포크(James K. Polk;1795.11.2.~1849.6.15. 제11대 1845~1849) 대통령도 최악의 사태가 발생할 것으로 판단하여 재커리 테일러(Zachary Taylor;1784.11.24.~1850.7.9. 후일 미국 제12대 대통령(1849~1850)) 장군을 멕시코로 급파하면서 존 슬라이델(John Slidell; 1793~1871.7.9.)을 특명대사로 보냈다.

 

이는 텍사스를 비롯하여 뉴멕시코(New Mexico) 그리고 캘리포니아(California)까지 매수하겠다는 뜻을 전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멕시코 정부는 미국 대표를 만나주지 않았다.


그래서 포크 대통령은테일러 장군에게 지시하여 멕시코 국경에 있는 리오그란데(Rio Grande) 강의 진지를 점령하라고 한다.

동시에 멕시코와 선전포고 교서를 의회에 보내려할 때 국무장관 제임스 뷰캐넌(James Buchanan;1791.4.23.~1871.7.9. 후일 제15대 미국 대통령(1857~1861))이 의안을 제시한다.


멕시코에서 먼저 침략을 걸어올 때까지 기다리도록 조언을 한다.
마침내 1846년 4월 멕시코 군의 제1선 부대가 리오그란데 강을 건너 미군 진지를 강타하고 만다.
포크 대통령은 즉각 의회에 교서를 전달한다.

그리고 미 의회는 1846년 5월 12일 선전포고를 한다. 그리고 곧 전쟁은 시작되었다.
전쟁 초기부터 멕시코는 밀렸다.
더군다나 캘리포니아 미국인들이 탐험가이자 군인인 존 플레몽(John C . Flemont;1813.1.21.~1890.7.13.)을 앞장세워 일대 반란을 일으켰다.


또 한편으로 포크 대통령은 윈필드 스콧(Winfield Scott;1786.6.13.~1866.5.29.)장군을 멕시코시티(Mexico City)로 진격을 명한다. 그리고 멕시코시티를 함락한다.


멕시코는 전력도 약했지만 통치가 문제점이 들어나면서 와해되기 시작한다.
가장 두드러진 전쟁은 1846년 7월 7일 교전을 한 몬터레이 해상전투(Battle of Monterey)에서 멕시코는 크게 지고 말았다. 또 1847년 2월 22~23일 부에나 비스타 전투(Battle of Buena Vista)에서 대패하였다.


사실 전쟁은 1년 반 정도에 끝이 났다. 서로간의 타협점을 찾기까지 걸린 시간이 있었을 뿐이지만 그 사이 소규모 분쟁은 수시로 있었다고 한다.

1848년 2월2일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The Treaty of Guadalupe Hidalgo)이 체결된다.
미국은 멕시코로 1800만 달러를 지불하기로 하고, 멕시코 정부가 미국 민간인들에게 지고 있는 빚까지 탕감해 주기로 결정하는 조항이 들어가 있다.


그러니 현재 캘리포니아와 뉴 멕시코 땅은 미국이 매수한 것이나 다름없는 땅으로 보아도 된다.
그래서 1848년에 캘리포니아는 미국 땅으로 되고 1850년 9월9일 서른한 번째로 미국 연방에 편입한다. 뉴 멕시코는 1912년 1월6일에 마흔 일곱 번째로 미국연방에 가입한다.


그래서 지금도 텍사스와 멕시코 경계는 리오그란데 강을 사이에 두고 있게 된 것이다.

* 이 글 속에도 지명이나 단어에 따라 사건들이 수없이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래서 역사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Battle_of_Veracruz.jpg
멕미 전쟁. 베라크루즈(Veracruz) 전투를 묘사. (Wikipedida)

Mexico_nebel.jpg
미국이 멕시코 시티를 점령하다.

Gabriel.S Oboe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