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주변의 사람들이 목사 임직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특별한 선물 같은 것은 해주지 못하지만 카드 장이라도 하나님 말씀과 함께 격려와 축하의 말을 담아 기도하는 마음으로 건네준다.

목사가 되지 말고 목자가 되어 달라라는 말로 시작하면서

다들 의미를 알아서 그런지, 아직 뜻이 무엇이냐고 물어온 사람은 없다.

알고 있는 것과 아는 바를 삶에 적용하며 산다는 것은, 더구나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의 삶일진대, 너무나 거리가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한다.

얼마전 필라목회연구원에서 교회의 목사의 강의를 들으며, 그래도 아직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고자 하는 목회자가 있구나 하는 것을 생각하며 내심 하나님에게 감사하며 부끄럽기도 했다.


목사가 되면 많은 성도들이 출석하는 교회로 성장시키고픈 마음은  누구나 동일할 것이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대형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사를 본받아 목소리와 행동거지를 비슷하게 했던 그러던 적이 십년 전에 있었다.


목사 자신도 교회 성장이라는 목적을 두고 나름 대형교회를 찾아다니며 배우곤 했다면서 방향이 조금 잘못되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깨닫게 되었다 한다.

나름 목회에 성공했다는 교회와 목사를 찾아 다녔지만, 그보다 진실하고 신실되이 살아갔던 목회자들을 찾아다녔어야 했다.” 현재 어떤 위치, 어느 자리에 있는 것보다 하나님 앞에서 어떤 자세로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그의 마음을 읽으며, 하나님께서 얼마나 마음을 기뻐하실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위하여 통장을 가지지 않고, 또한 교회 부흥을 위하여 교회 버스도 운행하지 않겠다는 신선한 고백을 들려준다. 멀리 있는 성도를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 가까운 교회를 찾아 섬기라고 권면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내보내실 때에 “너희 전대에 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10:9-10)고 하셨다.

하지만, 지금 세대는 어떠한가?


호화로운 집에서 풍족한 사례를 받으며 살고 있는 목회자들이 많다. 그들의 그러한 삶(능력?), 그리고 그러지 못한 사람들의 못남(?)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보다 더 우리들 삶에 적용시켜 보면서 정말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할까?”라는 것을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주기도문에 예수님 말씀하신 것처럼 일용할 양식 주심을 구하는 우리들의 삶은 실제 생활 속에서는 없다.  모두가 다 한결같이 1년 후를 걱정하고 자녀들 장래까지도 염려하며 아름 아름 다 챙겨놓는다. 몇 십년 후 내가 죽은 뒤 까지도….


그래도 내가 받는 사례가 적으니 더 받아야겠다고 하는 목회자도 있다. 분명한 것은 교회의 진정한 목적까지도 잊어버리고 있는 지 모르겠다. 성경 수많은 곳에서 말씀하는 우리의 손길이 필요한 이웃은 넘쳐나지만, 사마리안 손길은 없다.


목회자가 된다는 것은 대형교회를 이루고자 하는 것도, 이 모양 저 모양 자신의 뜻을 관철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가진 것이 조금 더 많고, 내가 배운 것이 조금 더 낫고, 내가 하는 일이 조금 더 많고 하는 문제도 아니다.  주어진 삶에서 어떠한 자세로 살아가고 있고, 그 분의 뜻대로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하나님 앞에서의 삶이 더 중요할 것이다.


목사가 되지 말고 목자가 되어 달라라는 말은 목사는 직업이요, 목자는 사명이다.”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지금 목회를 하는 것이 삶을 위한 것인지, 사명으로 감당하고 있는 것인지 돌아보자. 지금 내가 무엇을 가지고 살아가고, 어떠한 위치에 있는가 하는 것보다 어떠한 자세로 나에게 주어진 삶을 말씀안에서 살고 있는가에 더 관심을 갖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글: 차문환 목사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