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빙크, 벌코프 그리고 박형룡
이상웅 | 조회 76 | 05.12.31 16:45 http://cafe.daum.net/profchung/1brN/353
 
 

헤르만 바빙크(1854-1920), 네덜란드 개혁교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서 레이든 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고 잠시 목회를 하고 나서 깜뻔 신학교에서 교의학 교수로 20여년 ,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에서 20여년 교의학을 가르치다. 그의 주저는 1906년-1911년 사이에 간행된 [개혁교의학 Gereformeerde Dogmatiek] 제2판, 전4권(Kampen:Kok)이 있다.

 

루이스 벌코프(1873-1957)는 네덜란드에서 태어났으나 미국으로 이민가서 귀화하다. 그랜드 래피즈에 소재한 칼빈신학교에서 공부하고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공부하다. 그는 명예박사학위 조차도 받은 적이 없다. 목회를 하다가 모교에서 신학을 가르치기 시작한 벌코프는 초기에는 신약학을 가르쳤고, 후기는 조직신학을 가르쳤다. 그는 바빙크의 [개혁교의학]과 게할더스 보스의 신학에 많은 영향을 입었다. 1941년에 증보된 [조직신학]과 [신학서론]이 그의 주저이다.

 

박형룡(1897-1978)은 압록강변에서 대주가의 아들로 태어나 자수성가한 인물이다. 평양 숭실전문 졸업후 남경 금릉대학에서 학사학위를 마치고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에 가서 신학사와 신학석사학위를 받았고, 루이빌에 있는 남침례신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귀국하여 평양신학교 변증학 교수가 되다. 평양에서 학위논문을 마쳤고 Ph.D.학위를 취득하였다. 만주에서 처음으로 조직신학을 가르치기 시작해서 1972년 총신대학교를 은퇴하기까지 30여년 동안 교의신학 7권을 비롯하여 조직신학의 제분야에 대해서 가르쳤고 저작전집 20권을 남겼다.

 

이상은 세 사람의 간략한 프로필 소개였습니다.

 

그러면 이 세 사람의 신학적인 관계가 무엇일까요? 벌코프는 프린스턴을 방문한 헤르만 바빙크를 직접 만난 적이 있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못읽어봤습니다. 그러나 박형룡 박사는 1954년에 미국 방문시 만년의 벌코프 교수를 한 번 만나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세 사람은 한 자리에 만난 적이 없지만 주저를 통해서 바빙크는 벌코프에게 심원한 영향을 주었고, 벌코프는 또한 박형룡 박사의 신학적 틀을 만들고 살을 채우는 일에 크게 기여를 했습니다. 박형룡 박사는 후에 바빙크의 저술들 중 영역본으로 간행된 Our Reasonable Faith이나 The Doctrine of God 을 직접 읽었습니다.

 

그러나 벌코프는 바빙크를 단순히 요약하는 수준에서 그친 것이 아니고 미국의 구 프린스턴 신학자들(하지 부자와 워필드,보스)이나 남장로교 신학자들(쉐드, 댑니)의 글들을 소화하여 자기 나름의 조직신학서를 저술했습니다. 물론 벌코프는 바빙크의 [개혁교의학]이 화란어라는 아주 제한된 언어의 울타리 안에 갇혀있는 것을 안타까워해서 액면 그대로 영어권에 소개하고 싶은 소망을 품었습니다. 그의 소망은 후세대에 이르러서 결실을 맺게 되는 것입니다. 현재 바빙크의 개혁교의학은 영어로 번역은 끝난 상태로 있고, 출판은 1,2년 내에 완결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벌코프의 조직신학은 바빙크의 주저 보다는 읽기에 간편한 느낌을 줍니다. 아무래도 바빙크의 책은 유럽피언 스타일이다 보니 간편하다기 보다는 심원하다고 할 것입니다. 한 자리에 앉아서 장시간 읽고 고민해야 하는 책이지요.

 

박형룡 박사 역시도 벌코프의 조직신학을 근간으로 해서 교의신학 7권을 썼지만 벌코프를 무조건 수용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박박사의 신앙과 신학의 기초는 구 프린스턴신학도 벌코프를 통한 화란 개혁주의 신학도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의 신학의 근본적 기초는 미국 선교사들이 한국에서 전하여준 선교사들의 신학, 자신의 용어로 하자면 청교도 개혁신학이었습니다. 이 기초 위에서 그는 구프린스턴신학도 읽었고, 어거스트 스트롱의 침례교 신학도 읽었으며, 벌코프의 조직신학서도 수용했던 것입니다.

 

바빙크나 벌코프는 자신의 주저를 대중들에게 읽기 쉽도록 대중화하는 일을 하였지만 박형룡 박사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아마도 오늘날 바빙크와 벌코프의 책은 그럭저럭 인기를 잃지 아니하고 읽히는 반면 박형룡 박사의 교의신학은 별로 인기가 없는 이유중 하나일 것입니다.

  - 헤르만 바빙크는 [개혁교의학]을 대중적인 필치로 간결하게 쓴 [하나님의 큰 일]을 1909년에 출판한 후에, 보다 더 간결한 형태의 개요서인 Handleiding bij het on derwijs in den Christelijken Godsdienst를 1913년에 출간했습니다.  

 - 벌코프는 자신의 주저 [조직신학]을 대학생들이 읽을 수 있도록 만든 Manual of Christian Doctrine (기독교신학개론)를 1933년에 출판하고, 이보다 더 쉽고 간결하게 줄여서 고등학생들이 읽을 수 있도록 Summary of Christian Doctrine를 1938년에 출판하였습니다. 1991년을 기준으로 할 때 이상의 벌코프의 저서들(원서들)은 총 25만권 팔렸다고 합니다.

 - 박형룡 박사의 경우 난해한 중국어 용어들이 많은데다가 방대하기 때문에 신학도들이나 목회자들이 읽기를 꺼려합니다. 만일 현대화시켜서 그의 신학을 쉽게 요약해서 소개하는 입문서를 출간해 주었더라면 그에 대한 거부감은 많이 줄였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 이상은 저물어가는 2005년 세모에 생각나는대로 술술술 써보았습니다.

 

출처: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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