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십년간 사회심리학 연구에 의하면,

보통 사람들은 사람 관점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착한 일을 하는 이유는,

그 사람이 착하기 때문이고,

악한 일을 하는 이유는,

그 사람이 악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연구에 의하면,

사람의 행동은 그가 처한 상황에 의해

결정된다는 상황 관점이다.


만일 상황이 원인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는 누구나 예외 없이

악을 저질러야 하고

어떤 상황에서는 누구나 예외 없이

선을 행해야 하는데

우리 주변에서 악을 행하는 사람은 소수이고,

선을 행하는 사람도 소수라는 것이다.


그런 류의 사람만이

그런 행동을 한다는 사람 프레임이

설득력을 가지게 된다.


미국 미시간 대학에는

오랜 전통으로 내려오는 학생들의 연례행사가 있는데

'누드 마일' 또는 '네이키드 마일'이라고 불리는 행사로

매년 마지막 수업날 밤 12시에 학생들이

옷을 벗은 채로 1마일을 뛰는 것이다.


자발적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많은 학생들이 이 행사에 참가한다.


혼자서는 절대 하지 않을 이런 행동을

그들은 왜 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군중이라는 상황의 힘 때문이다.


평소에는 자제하던 행동들을

군중 속에 들어가면 충동적이고

비윤리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다.


정답을 알 수 있는 많은 실험에서

다수가 오답을 선택하면

오답을 따라간다는 실험결과도 많다.


중국인들이 집단으로 사드를 반대하고

보복을 하는 모습을 보면

매우 수준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공격용 핵을 만든 북한에 대해서는 침묵하더니

방어용 사드를 도입하는 것에는 보복까지 하면서

반대하는 모양새가 우습게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외국에서는 볼 때

한국인의 집단 행동도

중국인과 크게 다르지 않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광우병 때문에 미국 소고기를 집단으로 반대한 것이나

해상교통사고인 세월호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이나,

법치로 판결하기 전에 촛불을 드는 행위나

뇌물을 받은 증거가 없음에도 판결이 나기도 전에

구속수사를 하는 모습들이 바로 그렇다.


성경은 상황관점을 무죄라고 하지 않는다.


베드로는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큰소리 쳤지만,

상황논리에 몰리자 세번이나 부인하였고,

가룻유다는 영원히 돌이키지도 못하였다​​ .


히틀러의 치하에서 많은 독일 시민들이

히틀러를 지지하고 그 정책에 참여했지만,

끝까지 히틀러를 반대하며 옥에서 죽은 의인들도 있다.


일본의 기독교 박해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일런스(침묵) 영화에서는

고난의 순간에 침묵하시는 신에게 질문한다.


신자들을 위해 배교할 것인가?


성경은 한번도 이런 상황 논리에서

배교를 선택해도 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만약 이런 상황논리가 허용된다면

적그리스도 치하에서 가족을 위해

짐승의 표를 받는 것도 용납될 것이다.


그러나 인본주의 가치관은

상황논리를 적극적으로 선호한다.

어둠이 빛으로 선포된다.



요한은 증언하기를

참 빛이 세상에 오셔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고

신자들은 세상의 빛이라 하셨다.


빛의 자녀들은 세상에서 빛이 되어야 하고,

이 빛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참 빛이 근원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의 신자들도

다른 빛을 따르기 시작하였는데,

예를 들어 촛불은 참빛에 기인한 것이 아니었으며,

대중의 상황관점이라는 인본주의 촛불에서 발원한 빛이었다.


신자들이 서 있는 장소와

상대해야 할 대상은 세상의 상황이다.


그 곳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대신에

대중의 상황논리와 군중심리가 지배한다.


군중이 이해하는 정의도

성경적 가치관과 다른 세상의 가치관에 기인한 것이다.


문제는 신자들이 성경적 가치관보다

이런 세상적 가치관을 따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어둠이 빛으로 선포되고, 빛으로 둔갑하였고

많은 신자들이 거짓의 빛에 미혹되었다.


광우병 반대를 외치며 거리로 나갔던 사람들도

당시엔 그것이 옳은 일이고 진실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나고보니 거짓으로 밝혀졌다.


이렇게 군중과 상황의 논리를 따라가다보면,

거짓에 선동당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신자는 세상의 가치관에 속지 않기 위해,

언제나 하나님의 관점과 성경적 관점으로 봐야 하는 것이다.




출처: 카이로스 / 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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