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가 비전을 앞서가야 합니다

정인수

목회자가 청빙을 받고 새로이 부임하면서 의욕적으로 교회 비전을 제시하고, 교회를 새롭게 변화시키려는 과감한 시도를 하게 된다. 이때에 교회가 새로운 발전의 전기를 맞이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갈등과 파국에 빠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새로운 담임 목사의 그 사역 철학과 비전이 즉각적으로 교인들에게 수용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 비전이 제대로 수용되기까지는 일정기간 목회자와 교인 간에 상호 신뢰를 쌓아나가는 과도기적인 시간이 요구된다. 교회내의 평신도 리더들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자신의 리더십과 영향력이 발휘되기 전까지는 리더와 추종자들의 감정적 교감의 정착기가 필요한 것이다. 목회자나 리더들의 목회 비전이 분명하고 미래지향적임에도 불구하고 그 비전을 현실화하는데 실패하게 되는 것도 그런 신뢰를 쌓아나가는 노력을 소홀히 하기 때문이다.

교인들과의 정서적인 연대감을 만들어 가고 있는가? 교인들이 새로 부임한 담임 목사 이해하고, 목회자의 성실성과 정직성을 인정하고 있는가? 흔히 리더가 범하기 쉬운 실수 중의 하나는 대의만 좋다면 사람들이 자동적으로 자신이 설정해 놓은 비전에 동참해 주리라 믿는 것이다. 그러나 리더십은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먼저 리더를 수용하고, 리더의 신뢰성을 인정한 후 그 다음 리더의 비전을 수용한다.

교회 성장학자에 따르면 보통 목회자가 한 교회에 5-6년 이상을 시무 할 때 그 시점을 계기로 목회의 생산성이 상승곡선을 긋는다고 한다. 목회의 생산성이 높아지는 그 시점은 바로 목회자와 교인간의 신뢰의 관계에 들어가는 때이기도 하다. 사실 교인들은 목회자가 어떠한 비전을 제시하느냐 보다는 그 목회자가 얼마나 성실성과 겸손함으로 목회 리더십을 드러내고 있는가에 더 관심을 갖는다. 그러므로 장기 목회를 통해 이러한 견고한 신뢰 관계를 정착시키는 목회자의 리더십은 시간이 흐르면서 어떠한 비전이든 교인들이 이를 기꺼이 수용하게 된다. 그러므로 장기 목회를 하는 목회자가 시무 하는 교회가 계속해서 성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흔히 장로, 혹은 중요한 교회 직책에 선출된 교회의 새로운 리더들이 너무나 짧은 시간에 자신들이 영향력을 발휘하려다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게 된다. 바로 이러한 신뢰의 법칙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초기 몇 년 동안은 새로운 리더십은 소위 신뢰를 검증 받는 기간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초기 리더십의 기간 중에는 오히려 사람들과의 신뢰관계를 맺고, 자신의 성실성을 인정받는 리더십의 경작기로 삼아야 한다. 리더십의 초기 단계에 지나친 자기 소리를 낸다든지, 무리한 리더십으로 자기 존재를 과시하려고 할 때 오히려 그 리더십에 많은 손상을 초래하게 된다.

비전이 구체화되기를 원한다면 먼저 교인들과 다른 리더들과 신뢰와 결속의 고리를 굳게 해야 한다. 교인들이 당신을 진정한 리더로서 수용하고 인정하지 않는다면 어떠한 비전을 제시해도 그 비전은 성취되지 않는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리더의 측면에서 비전은 중요하다. 비전이 없이는 사역을 해 나갈 수 없다. 그러므로 리더는 비전을 설정한 후 사람들에게 그 비전을 설득하게 된다. 그러나 교인들이나 팔로워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좋은 비전이라 할지라도 신뢰가 아직도 형성되지 않았다고 생각될 때 그 비전에 몸을 던지거나 희생하려 들지 않는다. 리더를 받아들이는 수용이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리더십이란 쉽지 않은 것이다. 더구나 영적인 리더십을 더욱 더 그러하다. 자신의 성실성, 자신의 정직성, 자신을 철저히 죽이는 그런 리더십만이 리더를 진정 리더로 수용하는 비전 제시의 선행 단계로 들어가게 된다.

리더가 교인에게나 팔로워에게 주는 선물은 비전이다, 그리고 교인들이나 팔로워가 리더에게 주는 선물은 그 비전의 성취이다. 이것이 하나님은 리더와 교인들을 하나로 묶으시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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