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이 가진 천년왕국 사상은 역사적 전천년설
박수암 박사의 <요한계시록의 바른 해석을 위하여> 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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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daybox_top.gif 2015년 05월 11일 (월) 09:31:23 박수암 박사 btn_sendmail.gif webmaster@amennews.com newsdaybox_dn.gif

박수암 박사 / 장로회신학대학교 명예교수 신약학


IX. 천년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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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수암 박사

“천년왕국”은 요한계시록의 주제인 “현세의 심판과 교회의 승리” 중 “승리”의 주제를 보여주는 한 주제이다. 그리하여 요한계시록을 바르게 해석하기 위해서는 “천년왕국”을 보여주는 계시록 20:1-6의 본문을 바르게 해석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 구절을 바르게 해석하지 못할 때, 우리는 그것을 실현된 왕국 차원에서 해석하거나, 아니면 그것을 21:1-22:5에 나오는 “새 하늘과 새 땅” 차원에서 해석하는 우(愚)를 범하게 된다.

“천년왕국”은 “실현된 하나님의 나라”나 “미래적 하나님의 나라”와 동일시할 그런 나라가 아니라, 이미 온 하나님의 나라와 앞으로 올 하나님의 나라 사이에 있을 잠정적인 하나님의 나라이다.

“천년왕국설”(millenarianism)이란 계시록 20;4의 “천년”을 문자적으로(혹은 상징적으로) 해석하여, 현세와 내세 사이에 과도적인 중간시대가 있어, 인간의 이상향이(사 11:6-9, 65:18-25, 겔 37:24, 슥 8:12, 14:17-19, 암 9:13)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1천년간 변화된 지상에서 이루어진다고 믿는 하나의 학설이다.

이 학설에는 대체로 세 가지의 이견이 있다.

1) 무천년설 : 이는 본문의 “천년”을 상징적으로 해석하여, 그리스도의 승천부터 재림 시까지의 전 기간을 천년으로 생각하고, 교회를 통한 그리스도의 영적 통치를 그리스도의 왕국으로 보는 견해이다(Augustine, Luther, Calvin, A. Kuyper, Lenski, Berkhof, Vos, Warfield 등).

2) 후천년설 : 이는 천년왕국 후에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다는 전제하에 본문의 “천년”을 재림 직전 1000년으로 해석하는 견해이다;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 1000년 기간 동안에 복음이 효과적으로 전파되고, 교회가 왕성해지며,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나라에 해당된다는 것이다(C. H. Hodge, A. H. Strong, Hengstenberg 등).

3) 전천년설 : 이는 “천년”을 문자적이나 상징적으로 보면서, 천년왕국 전에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다고 보는 견해이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어 천년왕국을 이끄신다는 것이다(이 견해는 다시 두 종류의 견해로 나누어진다).

① 역사적 전천년설 : 이는 천년왕국 전에 그리스도의 재림이 지상 재림 한 번만 있고, 공중 재림과 지상 재림 두 번으로 있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교회는 유대인이나 불신자들과 함께 환난을 통과하며, 그 환난 후에 주께서 재림하시고 성도들은 그를 영접하기 위해 휴거되며 함께 지상에 내려와 이어 천년왕국이 어떤 변형된 세계에서 이루어질 것이라 본다. “천년”을 꼭 문자적으로 보지 않는다(Bengel, Godet, Hofmann, Bousett, Charles, Eerdman, Alford, Ellicott, Zahn 등);

② 세대론적 전천년설 : 이는 천년왕국 전에 그리스도께서 공중에 비밀 재림하시고, 그 때 신자들은 휴거되어 공중에서 7년간 혼인잔치를 하며, 그동안 지상에 남아 있는 유대인과 불신자는 7년 대 환난을 통과하며, 이 환난을 통해 유대인들은 대규모로 회개할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7년 대 환난은 다시 2분 되어, 복음 증거의 전3년 반과 종교박해의 후3년 반으로 나누어진다. 이 7년이 끝나면 주님은 성도들과 함께 지상 재림하여 천년왕국을 건설하신다. 이 견해는 “천년”을 꼭 문자적으로 본다(Scofield, Darby, Walvoord, Hal Lindsay, 이상근 등 세대주의 신학자들).

그럼, 이 견해들 중 어느 견해가 가장 옳으며 성경적인가?

1. 관련된 본문들 석의

천년왕국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신약성서에서의 관련된 본문들을 바르게 석의할 필요가 있다.

(1) 계시록 20:1-6

이는 천년왕국설의 근거가 되는 본문으로서, 본문에 대한 객관적인 해석이 요구되는 본문이다. 먼저 1-3절은 사단의 결박과 무저갱에 갇힘이 나와 있다.

“일 천년 동안 결박하여”(2절) 천년동안 마귀는 결박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재세 시 마귀는 결박되었었다(막 3:27). 그러나 그 결박은 원리적인 것이고 잠정적인 것이었다. 이제 그 완전한 실현이 이때의 결박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무천년주의자들은 이를 그리스도의 초림 시에 있었던 결박으로 보나, 이는 그리스도가 아닌, 한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와 큰 쇠사슬을 가지고 내려와 잡은 용을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초림으로부터 시작되는 신약시대는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는 시대이지, 무저갱에 갇히어 있는 시기가 아니다.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4절). 2:26-27(“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3:21(”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4:10(”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의 약속이 이루어진 것이다. 여기 “보좌에 앉은 자들”은 그 다음에 설명이 되어 있는, 예수를 증거 하다가 순교하였거나, 황제 예배를 거부한 순교자들을 가리킨다.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은 계시록에 자주 나오는 표현으로(6:9, 12:17), 일반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킨다. 초대교회 시 그리스도인들은 모두가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자들이었고, 그럼으로 해서 순교하는 자들이었다.

“심판하는 권세”는 사단의 패배로 인해 오는 통치권을 의미한다. 다니엘 역시 네 짐승이 망하자 인자 같은 이가 보좌에 앉으신 이로부터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받음을 보았고, 천사는 이를 성도가 나라를 얻은 것으로 해석했다(단 7:13-14, 22). 성도들은 이 때 짐승과 그 모든 열왕들이 멸망했으므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왕국의 통치권에 함께 참여할 권리를 받은 것이다. 예수님도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성도가 이스라엘 열두지파를 심판할 것을 말씀하셨다(마 19:28. cf. 딤후 2:11-12, 계 5:10).

이는 확실히 지상의 “전투하는 교회”(church militant)가 아닌, 환난을 통과한 천상의 “승리하는 교회”(church triumphant)를 가리킨다.

“살아서”(ἔζησαν). 이는 5절의 ἔζησαν과 더불어, 영적인 부활이나 중생을 가리키지 않고 육적인 부활을 가리킨다. 순교까지 하는 성도들이라면 그들은 이미 영적인 부활을 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동안 왕 노릇하니. 천년왕국설의 결정적인 근거가 되는 구절이다.

(2) 고린도전서 15:23-26

이는 천년왕국설의 간접적인 근거가 되는 구절로, 바울이 부활의 순서를 말하면서 그리스도께서 천년왕국을 끝내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를 언급한 구절이다. 바울은 이 말씀에서 그리스도의 부활부터 나라를 아버지께 바칠 때까지 세 단계가 있음을 보인다.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붙은 자요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첫째는 그리스도의 부활, 다음은 성도의 부활, 그 다음은 불신자의 부활. 불신자의 부활 시 그리스도는 인류를 심판하시고 인류의 최후의 원수인 사망과 음부를 불못에 던지신다.

여기에 사용된 순서를 알리는 부사 “다음에는”(ἔπειτα)과 “그 후에는”(εἶτα)은 모두가 선후관계(sequence)를 나타내는 시간의 부사이며, “그 다음”(then)을 의미한다. 전자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신자의 부활 사이에, 후자는 신자들의 부활과 “나중”(τὸ τέλος) 사이에 시간적인 간격이 있음을 알린다. “나중”은 현 세대의 끝을 의미하기 보다, 이 세대에서 오는 세대로 이끌어가는 종말론적 대 파국(the close of the great eschatological finale)의 끝 즉 그리스도의 종말론적 통치의 극점(consummation-point)을 가리킨다(G. Vos)1). 이것이 사실이라면, 신자의 부활과 계시록 22:5(“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의 천년이 다 찬 후의 불신자의 부활 사이에는 최소한 천년의 시간적인 간격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왕 노릇하시리니.” 이 왕 노릇은 그리스도의 천년왕국 기간 동안의 왕 노릇을 가리킬 수 있다(마 19:28, .Weiss, Lietzmann, Bachmann, Meyer 등)2). 그리하여 우리는 그리스도가 부활인류인 성도들과 더불어 왕 노릇 하시는 천년왕국을 인정치 않을 수 없다. 이 천년왕국 이후 곡과 마곡의 멸망, 마귀의 멸망, 최후의 심판, 사망과 음부의 멸망(그리스도께서 그 모든 원수를 발아래 두시고 왕 노릇하는 일을 마치심)이 있게 되고, 영원한 신천신지가 있게 되는 것이다.

(3) 계시록 20:7-10

천년왕국이 어떠한 성격의 나라인가를 알기 위해 “천년왕국” 환상 다음에 “곡과 마곡”이 사단과 함께 멸망하는 환상이 나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곡과 마곡의 이야기는 구약 에스겔서 38-39장에 나오는 바, 거기서는 이스라엘의 회복과(36-37장) 이상적인 성전(40-48장) 사이에 나와 있다. 이 경우, 곡과 마곡은 이스라엘 백성을 최후로 괴롭히는 현세에서의 마지막 세력이 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곡과 마곡의 환상이 계시록에서는 천년왕국 환상과(20:1-6) 신천신지 환상(21:1-22:5) 사이에 나와 있다. 이는 이 천년왕국이 지상에서의 일시적인 왕국임을 보인다. 그러므로 천년왕국과 신천신지를 동일한 것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4) 계시록 11:11-12

천년왕국이 어떠한 성격의 나라인가를 알기 위해 계시록 11:11-12를 고찰할 필요가 있다. 이 본문은 교회가 환난을 당한 후 휴거하는 것을 보여주는 구절이다. “삼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그들 속에 들어가매 그들이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그들이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그들의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여기 “삼일 반”은3.5일로서, 한 이레의 절반이 되는 수이다. 한 이레는 7일이고, 7의 절반은 완전수의 파열수로서, 불안정하고 짧은 기간을 나타낸다. 이의 배경은 다니엘서 9:27로서, 다니엘은 “한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하며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을 예언한 것이다.

그것은 다시 말해 종교박해가 일어나는 기간이란 것이다. 그런데 계시록은 다니엘의 하루를 1년으로 상징화하여, 한 이레(7일)를 7년으로 보고, 그 절반인 3.5년 즉 42개월, 1260일을 복음 증거의 기간(11:3) 혹은 박해의 기간(12:6)으로 보고 있다. 이런 가운데서 세대주의 해석자들은 7년을 문자적으로 보고, 소위 “7년 대환난설”을 주장하며, 이 환난은 휴거 받지 못한 유대인들이 받는 것으로, 계시록 6장에서 18장까지에 그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고 본다. 이러한 것은 계시록의 원래 의도를 벗어난 것으로, 계시록을 그리스도인을 위한 책이 아닌, 유대인들을 위한 책으로 만드는 잘못이 있다. 성경 어디에도 “7년 대 환난”이란 개념은 발견할 수 없으며, 신약 어디에도 유대인만 환난을 당한다는 말이 없다.

다니엘서 9:27의 “절반에”란 부사는 יצִחִ(‘하치’)란 히브리어로서, 이는 “절반에”란 뜻도 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동안에”(불특정한 시발점)란 뜻도 있어(출 12:29, 24:6, 삿 16:3, 룻 3:8, 삼하 10:4), 시간적인 의미로 해석하기보다 국면(aspect)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1260일은 복음증거의 기간도 되지만, 박해의 기간도 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신약시대가 복음을 증거하는 시대이며 동시에 박해를 받을 시기임을 말씀하셨다(막 13:9-10, 눅 22:36).

그러므로 한 이레, 3일 반, 1260일, 42개월, 한 때 두 때 반 때는 모두 동일한 실체를 가리키는 다른 표현들로서, 신약시대를 가리키는 상징적인 표현인 것이며, 한 이레의 절반은 신약시대에 있을 두 국면을 가리키는 표현인 것이다. 신약시대(“한 이레”)는 한 적그리스도적 왕이 자기의 때로 정했다는 점에서 전체가 환난의 시대요, 복음을 전하는 시대라는 점에서 전체가 증거의 시대인 것이다. 그러나 복음을 증거한 후 환난이 온다는 점에서 신약의 절반인 것이다. 신약시대는 처음부터 복음을 전했던 시대이며, 처음부터 환난을 당했던 시대이다. 그것은 크게 보면 7일간의 환난기간이요, 좀 더 상세히 보면 3.5일 간의 환난기간이다(계 12:6과 12:14 비교).

“그들이.” 이는 유대인들을 가리키지 않고, 앞에서 말했던 두 증인, 두 감람나무, 두 촛대 즉 교회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 즉 교회가 고난을 받지, 유대인들이 고난을 받는 것이 아니다.

“하늘로 올라가니.” 교회의 휴거를 가리킨다. 세대론자들은 4:1의 “이리로 올라 오라”를 교회의 휴거로 해석하나, 그것은 요한더러 하는 말이고 교회더러 하는 말이 아니다. 즉 요한의 영혼이 하늘로 올라오라는 것이다(spiritual exaltation). 지상에서 고난당한 교회는 주님의 재림 시 공중으로 휴거를 당할 것이다(살전 4:17). 교회의 휴거는 환난 전에 있는 것이 아니고, 환난 후에 있는 것이다.

2. 가장 성경적인 견해로서의 역사적 전천년설

이상의 본문 석의는 우리로 하여금 역사적 전천년설이 가장 성경적인 견해라 보게 한다.

(1) 저자의 의도에서 볼 때

요한 계시록은 박해 중에 있는 교회(ecclesia pressa)를 위로. 격려하기 위해 기록되었다. 당시 소아시아 일곱 교회는 로마제국으로부터 황제예배 강요를 받고 있었고, 내적으로는 황제예배를 부추기는 영지주의 이단(니골라 당, 발람의 교훈, 이세벨)의 위협 하에 있었다. 그리하여 당시 교회는 말할 수 없는 박해에 직면하고 있었다. 그들은 슬픔과 낙담과 순교와 타협의 기로에 있었다. 본서는 이런 상황에 있는 교회를 격려하고 위로하며 궁극적인 미래의 승리를 바라보고 신앙의 절개를 지킬 것을 교훈하기 위하여 기록된 것이다. 이런 저자의 의도(exegesis)에서 볼 때 천년왕국의 약속은 교회에게 소망을 주기에 좋은 약속이었으며, 그런 면에서 볼 때 고난 받는 성도에게 왕 노릇함을 약속하는 역사적 전천년설이 가장 올바른 견해라고 보여진다.

(2) 계시록의 구조에서 볼 때

천년왕국(20:4-6)은 그리스도의 재림(19:11-21), 짐승 의 멸망(19:17-21), 사단의 결박(20:1-3)을 전(前) 계시로 가지고, 사단의 멸망(20:7-10), 전 인류의 심판, 사망과 음부의 멸망(20:11-15), 신천신지(21:1-22:5)를 후(後) 계시로 가지면서 그 맨 중앙에 위치하여, 이들 전 후 계시들과 상호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이 부분에 기록된 사건들은 서로 다른 사건들로서, 상호연대적인 선후 관계에 있으며, 그 어느 하나도 한 사건의 다른 표현(변이 : variant)으로 볼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런 가운데서 천년왕국 계시는 인접한 다른 계시들과 더불어 계시록에서 마지막 부분에 나타나 있다. 나선형의 점진적 반복 구조에서 볼 때도, 천지상호작용의 구조에서 볼 때도, 본경과 삽경의 상호교차적인 구조에서 볼 때도, 교차대구법적인 구조에서 볼 때도 천년왕국 계시는 계시록의 제일 마지막 정점에 나와 있다. 이것은 천년왕국이 땅의 사건이 아닌, 하늘의 사건이며, 영혼과 육신의 구원이 함께 아우르지는 사건이며, 구원의 절정으로 인도하는 사건임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이를 영적 부활이나(무천년설), 고난과 관계없는 사건이나(세대론적 전천년설), 재림 직전 이 지상에서의 사건으로(후천년설) 보는 것은 맞지 않는다.

(3) 경고적 설교문 구조에서 볼 때

천년왕국은 계시록을 경고적 설교문으로 볼 때, 권면(2-3장)과 이유(4-22장)의 구조 가운데 “이유”를 나타내는 가장 마지막 부분에 있다. 위의 통일성에서 논한 대로, 이 부분엔 2-3장의 약속들의 성취들이 나와 있다. 그 성취들 가운데 하나가 천년왕국이다. 고난당한 교회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소망을 주려면, 고난당한 교회가 장차 왕 노릇한다는 역사적 전 천년설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 역사적 전 천년설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했고(이사야, 에스겔, 스가랴, 아모스), 재세시의 예수께서도 미리 말씀하셨으며(마 19:28), 부활하신 후에도 일곱 교회 사자들에게 말씀하신(계 2:26, 3:21) 약속의 성취를 보여주기에 합당한 견해이다. 무천년설이나 세대론적 전천년설, 후천년설은 이 성취를 보여주지 못한다.

(4) 종합적 해석법에서 볼 때

계시록을 주후 1세기 로마제국과 교회와의 투쟁의 시각에서 시대사적으로 해석하며, 미래에 일어날 일은 종국사적으로 해석하는 종합적 해석법에서 볼 때, 천년왕국은 미래에 일어날 일에 속하며, 천년왕국을 현세의 영적인 부활로 보는 무천년의 견해는 맞지 않는다.

(5) 관련 본문들 석의에서 볼 때

천년왕국과 관련된 본문들을 석의해본 결과는 역사적 전천년설이 가장 성경적인 천년왕국설임을 보여준다. 이 천년왕국은 특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를 인하여 목 베임을 당했거나, 짐승의 우상에게 절하지 아니하고 그 이마와 손에 짐승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에게 주시는 특별한 상급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것은 세대론적인 전천년설의 천년왕국과도 다르고, 무천년설의 천년왕국과도 다르며, 후천년설의 천년왕국과도 다르고, 신천신지와도 다르다.

교회는 환난 전에 휴거하는 것이 아니라, 환난을 통과하며, 문자적 7년 대환난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신약시대의 환난이 있는 것이며, 그 신약시대를 계시록은 3일 반, 3년 반(1260일, 42개월), 한 때 두때 반 때로 표현하며, 이 때는 교회가 복음을 증거하며 세상으로부터 환난과 박해를 당하는 때인 것이다.

결 론

이상에서 우리는 계시록의 저자 요한이 가졌던 천년왕국 사상이 역사적 전천년설이었음을 보았다. 이는 사도 요한의 제자 폴리갑, 파피아스, 폴리갑과 동시대 교부이었던 져스틴 마터, 폴리갑의 제자 이레니우스, 이레니우스의 제자 히폴리투스 등이 역사적 전천년설을 주장했던 것으로 보아서도 확증된다. 그것은 오늘날 릴예(Lilje), 스위트(Swete), 군드리(Gundry), 래드(Ladd), 벡위드(Beckwith), 뵈허(Böcher), 크라프트(Kraft), 비슬레이-머레이(Beasley-Murray), 마운스(Mounce) 월(Wall), 오온(Aune) 등 많은 학자들을 통해 받아드려지고 있다3). 이 사상은 한국교회의 경우 박형용 박사, 박윤선 박사 등을 통해 오늘까지 내려오고 있다.

무천년설은 사단이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두루 찾아다니는 현세를 사단이 무저갱에 결박된 채로 갇혀 있는 세대라고 할 수 없는 점이 큰 약점이고, 후천년설은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무서운 박해와 환난이 따른다는 것이 성경의 사상인데, 어떻게 재림 직전 1000년 동안 사단이 무저갱에 결박된 채 갇히어 있으며, 복음이 효과적으로 전파되는 시기가 있는지가 의문이다. 세대론적 전천년설은 일곱 교회는 4:1에서 휴거해버리고 고난을 당치 않으며, 6-18장까지는 휴거되지 못한 유대인들이 당할 운명(7년 대환난)을 기록한 것으로 보는 것이 큰 잘못이다. 고난과 위기를 맞이한 교회를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기록된 글이 계시록이라면, 역사적 전천년설이 가장 적합한 견해라 보여진다.

과연 한국교회가 일제의 신사참배와 극렬한 박해에 순교로 맞설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초기 한국교회의 천년왕국 신앙이었고, 그 중에서도 특별히 계시록에서 한국교회의 수난을 읽는 역사적 전천년주의였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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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G. Vos, Pauline Eschatology, Grand Rapids, 1979, 244.
2) J. Weiss, Der erste Korunthian Brief, Göttingen, 1910, 358-359; H. Lietzmann, An die Korinther, Tübingen, 1923, 81-82; P. Bachmann, Der erste Brief des Paulus and die korinther, Leipzig, 1910; H. A. W. Meyer, Critical and Exegetical Handbook to the Epistle to the Corinthians, II, Edinburgh, 1881-1883, 59-63.
3) H. Lilje, The Last Book of the Bible, Philadelphia, 1957; H. B. Swete, The Apocalypse of St. John, Grand Rapids, 1957; R. H. Gundry, The Church and the Tribulation,, Grand Rapids, 1973; H. Kraft, Die Offenbarung des Johannes, Tübingen,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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