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절대로' 절망할 수 없는 이유
김일성 가문의 재산으로 태어나 버림받던 백성들은 공포와 궁핍과 저주에서 해방케 될 것이다.

1. ‘대한민국은 여기까지인가?’ 세월호 참사 이후 자조적 탄식이 번진다. 절망과 우울을 넘어 희망(希望)과 소망(所望)을 그려본다. 
  
  희망과 소망의 원천은 죽은 자를 살리신 주님에 대한 절대적 신앙에 있다. ‘오직 예수’의 믿음을 통해 민족의 사명(使命)과 백성의 비전(vision)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부패(腐敗)와 음란(淫亂)을 넘어 주님이 주신 꿈을 향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놀랍도록 달콤한 문명의 빛이 가장 참혹한 시절에 잉태되었다. 주님은 그러한 분이다. 칠흑 같은 밤에 부흥의 씨앗이 심겨졌다. 
   
  1910년~1945년 사이 일제(日帝) 통치는 한민족 최악의 시련기였다.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오죽하면 나라가 망하게 됐을까? 
  
2. 구한말. 관직을 사고파는 매관매직(賣官賣職), 부정부패(不正腐敗)는 극에 달했다. ‘썩음’은 향락(享樂)과 음란(淫亂)을 부른다. 지배층인 양반들은 빼앗았고, 피지배층 백성들은 빼앗겼다. 없는 자는 살기 위해 딸들을 팔았고, 가진 자는 축첩(蓄妾)으로 여러 여인을 거느렸다. 개화기 신문·잡지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적었다. “나라가 망하게 된 원인이 문란한 성도덕에 있었다” “음풍(淫風)이 크게 떨쳐 집마다 마을마다 음부(淫婦)가 아닌 여자가 드믈다” 금수강산은 죽음의 비만 내리는 악취 나는 쓰레기장이 되고 만다. 
  
  희망이 사라진 시대에 미신(迷信)이 판친다. 감기만 걸려도 굿을 했고 무당이 감기에 걸리면 친구 무당이 또 다시 굿을 했다. 이런 식으로 역병(疫病)이 동네를 휩쓸면 마을은 황량한 폐허로 변했다. 5000년 우상숭배는 구한 말 한민족을 용광로 속으로 밀어 넣었다. 
   
3. 형통(亨通)이 반드시 축복은 아니요, 고난(苦難)이 꼭 저주는 아니다. 주님은 우리의 겉사람을 죽이고 속사람을 살리기 위해 고난을 주신다. 사도 바울이 어느 날 살 소망까지 끊어져 버렸다. 왜 일까? 왜 이런 고통과 환란을 겪어야 했을까? 그는 말한다. “우리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고후 1:9)”
  
  한민족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치욕의 채찍을 맞으며 부르짖을 때, 주님은 자신의 종들을 통해 ‘오직 예수’ 믿음의 씨앗을 심었다. 일제시대 ‘평양대부흥운동’ 조력자 중 하나인 선교사 메티 노블은 자신의 책 ‘조선회상’에서 나라가 망하던 ‘절망적’ 모습을 놀라운 ‘희망적’ 언어로 적었다. 
  
   “1907년 1월2일 성령의 나타나심 : 성령이 강한 권능으로 평양 교회들과 여러 다른 지역에 임하였다. 그 결과 웨일즈 지방의 大부흥에 관해 읽은 내용과 흡사한 위대하고 영광스런 흥분상태가 나타났다. 사람들은 죄에 대해 통회하고....우리 선교사들은 이 민족과 우리 자신이 성령 충만하여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쓰임 받을 수 있도록 기도했다”
  
  메티 노블은 무당, 기생, 과부 등 당시 버려진 자들에게 생명을 전했다. 에스겔의 마른 뼈 같은 조선백성들은 ‘예수가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복음을 듣고 생기를 받는다. 피눈물은 신바람이 돼 민족의 영혼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한일합방이 있던 1910년, 조선교회는 ‘백만인 구령운동’을 시작했다. 그 해 2월23일 메티노블은 “숱한 경이로운 일들이 그칠 새 없이 일어나고 있다. 올해 최고의 사건은 백만인 구령운동이다”이라며 무당 출신 한 여성의 간증을 이렇게 적었다. “한 부인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오고 있어요. 백만 인이 오고 있어요. 너무 행복해요. 이 생에서 제 가장 큰 소망과 염원은 백만 성도를 목도하는 거예요”
   
  저주받던 삶을 살던 무당, 기생 출신 여성들은 돈과 물질을 달라는 세속적 바람을 읊은 게 아니다. 대신 “이 민족과 우리 자신이 성령 충만하여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쓰임 받을 수 있도록 기도했다” 땅을 진동케 할 부흥, 지옥을 텅 비게 할 부흥을 바랬다. 부흥 아니면 주님의 진노가 또 다시 임하게 될 것임을 알기에 베옷을 입고 재를 뿌리며 “원컨대 주님은 하늘을 가르고 강림해 달라(사 64:1)”고 외쳤다.
  
4. 화려한 연꽃은 더러운 진창에서 피어난다. 조선이 그랬다. 복음을 듣고 새롭게 태어난 이들은 자신의 영혼을 살리신 주님이 이 나라도 살려줄 것임을 믿었다. 그렇게 믿었던 예표(豫表)적 인물이 있었다. 30여 년 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 된 이승만이다. 
  
  그는 19세기 말 당시 조정(朝政)에 반대한 대가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한성감옥에서 죽음을 기다리던 순간. 그는 선교사가 건네준 성경을 읽었다. 성령이 강하게 임했다. 감옥 안이 빛으로 가득 차는 체험을 하였고 말할 수 없는 평안과 기쁨을 느꼈다. 이때 입술에서 터져 나온 첫 기도가 있었다. ‘save my soul, save my country’ 나의 영혼을 구하신 주님이 민족과 나라를 구해달라는 간구였다.
  
  상황과 환경과 처지가 어떠하건, 주님을 만나면 그 어디나 하늘나라임을 깨닫는다. 시편 23편 다윗의 고백처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여호와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것. 그것이 곧 행복의 길이니 그 행복을 전하러 나섰다. 이승만은 감옥 안의 양반 출신 청년들을 전도했고 1902년 12월28일 역사 상 감옥 안의 첫 예배를 주님께 올린다. 감옥의 이름도 스스로 복당(福堂. The House of Blessing)으로 바꿔 부른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벋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찬송은 현실이 되었다.
  
  사형수 이승만은 6년 여 감옥 생활 끝에 극적으로 출소한다. 이후 명 연설가, 문장가로 서울과 지방을 누빈다. 
  
  이승만의 열정도 조선의 멸망은 막지 못했다. 1910년, 결국 나라가 망했다. 그러나 그는 더욱 놀라운 미래를 말한다. 요셉처럼 꿈꾸는 자가 된 이승만은 출소 직후 쓴 ‘독립정신’에서 한민족이 언젠가는 “일류국가(一流國家)”가 될 것이라 적었다. 이승만이 지금으로부터 101년 전인 1913년에 쓴 ‘한국교회핍박’은 더욱 구체적 형태로 다가올 ‘승리(勝利)’를 말한다. 인용해보자. 
   
  “청년 애국운동가들이 삼삼오오 경향(京鄕)에 나타나고 소리 높여 전도하는 말이 ‘우리는 나라도 없고 아무 것도 없지만 천국(天國)을 먼저 구하면 모든 것이 다 따라 생기리라’였다. 태극기 사용이 금지된 후로 매 경축일에는 적십자기를 교회당에 높이 달았으며 애국가 부르는 것이 금지된 후로는 찬송가를 대신 사용해 ‘믿는 사람들아 군병 같으니 앞에 가신 주를 따라가 가자!’는 곡조를 높은 소리로 기운차게 불렀다. 이에 순검, 병정과 비밀요원들이 틈틈이 찾아들어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감시하게 되었다” 
   
  교회는 불 속에서 크는 법이다. 일제 핍박 속에서 한국 교회는 애국가 대신 찬송가를 불렀고 ‘땅의 나라’가 없어진 상태니 ‘하늘의 나라’를 구했다. ‘오직 주님만 믿으면, 아니 주님만 믿어야 살 길이 생긴다’ 그렇게 믿었다. 절대적 신앙, 절대적 믿음, 절대적 예수의 세대가 지옥의 불에서 생겨난 셈이다. 
   
5. 20세기 초 이승만은 21세기 한국의 미래를 놀라울 정도로 정확히 예측했다. 이승만은 ‘한국교회핍박’에서 “하나님이 한국 백성을 이스라엘 백성 같이 특별히 택하여 동양에 처음 기독교 국가를 만들어 아시아에 기독교 문명을 발전시킬 책임을 맡긴 것”이라고 적었다. 
  
  이어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벌써 제주도와 북간도, 만주, 블라디보스토크 등지와 북경에 이르기까지 선교사를 파송하여 활발히 선교활동을 전개하고 있다”며 “하나님께서 특별히 한국인들을 택하사 아시아에 기독교 문명의 기초를 잡게 하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한국이 “교회의 일에만 전력하면 한국인들이 일본과 중국을 모두 기독교로 인도할 것”이라고도 썼다. 일본이 칼로 일어나 동양을 집어삼킬 때 이승만은 기독교로 동양을 발전시킬 구상을 한 것이다. 또 “이대로 얼마동안만 계속하면 한국 백성의 장래 문명, 자유, 복락을 손꼽고 기다릴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이승만과 같은 선각자들은 어둠 속에서 빛을 보며, 무덤 속에서 부활을 꿈꿨다. 지옥의 비가 그친 뒤 새롭게 태어날 민족의 미래는, 중국은 물론 자신을 침략한 일본마저 기독교로 인도할 것이라 말했다. 아시아 전역에 기독교 문명을 전하는 ‘제사장 나라’의 사명을 적은 셈이다.
  
6. 이승만 혼자만이 아니었다. 광복 직후 정동제일교회에 모인 김구와 김규식 선생도 각각 “경찰서 10개를 만드는 것 보다 교회 하나를 세워야 한다” “성경 위에 나라를 만들어야 침략 받지 않는 강대국이 된다”고 말했던 것이 이를 반증한다.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민족이 살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밖에 없음을 체험한 탓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건너며 야훼만 믿게 되었던 것처럼, 동방의 이스라엘로 불리던 한민족 지도층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어야 한다는 이들이 나왔다. 피와 땀과 눈물은 가슴 저민 고통이었지만 그 가운데 숨겨진 주님의 사랑은 신비로웠다. 
  
7. 이승만처럼 ‘제사장 나라’의 꿈을 꾸던 이들의 믿음은 1948년 건국으로 열매를 맺었다. 35년 쌓인 기도는 같은 해 5월31일 기도를 하면서 나라를 여는 힘이 되었다. 이 기도는 ‘하나님께 바치는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문’으로 국회속기록 맨 앞에 실리게 된다. 당시 국회의원 중 기독교인이 10%도 안 되는 척박한 상황이었지만, 198명의 초대의원 모두 순전한 핍박의 신앙에 경의를 표하며 “아멘”으로 화답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35년 고난 속에서 잉태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민족이 탄생한 것이다. 대한민국은 친일파가 세운 ‘잘 못 태어난 나라’가 아니다. 땅의 나라 없던 시절 하늘의 나라를 구했던 수많은 이들의 눈물 어린 기도의 결과다.
   
  새것이 된 백성과 주님의 언약(言約)관계도 시작됐다. 하나님께 바치는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문’에 실린 “민생복락(民生福樂)” “남북통일(南北統一)” “세계평화(世界平和)”를 달라는 간구는 35년 죽음을 오가며 외쳤던 기도의 제목이었다. 주님이 민생의 복락을 주시면, 통일된 한국이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며 평화를 이루어 내겠다는 담대한 ‘제사장 나라’의 선언이었다. 
  
8. 주님은 이 언약을 현실로 만들어 주셨다. 우선 민생복락을 주시어 세계에서 성장스피드 최고인 나라를 만들게 하셨다. 우리 힘이 아닌 주님의 힘이다. 일제(日帝) 핍박 속에서 “살려 달라” 부르짖던 선조들의 기도와 6·25, 4·19, 5·16, 유신과 5·18, 6·29 등으로 이어진 격랑 속에서도 “민족복음화”를 외치며 산기도와 철야기도, 여의도 광장을 메웠던 기도의 힘이다. 
  
  풍요(豊饒)는 그 어머니 경건(敬虔)을 잡아먹는다 했던가? 정작 ‘민생의 복락’을 선물 받은 뒤 우리는 영안(靈眼)이 닫혀져 버렸다. 
  
  남북통일의 사명도, 세계평화의 비전도 희미해졌다. 80년대 이후 현세적 욕망과 이기(利己)의 기도가 판치며 제단의 불도 쇠잔해졌다. ‘민생의 복락’은 선교한국의 조건부 축복일 뿐인데, 꿈을 잊어버리니 백성은 부패와 음란에 빠져 갔다. 썩어간 사회에 사고가 끊이지 않았고, 끔찍한 재앙이 터졌다. 모두 우리 탓이다. 꿈을 잊은 우리 교회 탓이다. 
  
9. 세상이 어둡다. 조국에 혼란이 덮친다. 교회는 피 묻지 않은 검을 든 채 잠에 빠져 버렸다. 
  
  영적 지각변동을 준비할 때이다. 우선 지난 60년 성장의 그림자, 부패와 음란에 대해 철저히 회개하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요(요한일서 1:9)” 우리가 이 땅의 부패와 음란을 회개할 때 미쁘신 주님은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실 것이다. 
  
10. 회개만큼 중요한 것은 정체성(正體性)의 회복이다. 우리가 누구인가? 주님이 왜 이 나라를 만들고, 자라게 해 주셨는지 깨닫는 것이다. 
  
  주님이 세상의 끝에서 민족을 살리신 이유는 사명 탓이다. 공포의 심연에 빠져 헤매던 백성을 구하신 이유는 비전 탓이다. 그것은 이승만의 100년 전 기도처럼 일본, 중국을 너머 온 나라에 복음을 전하는 통일한국(統一韓國), 선교한국(宣敎韓國)의 꿈이다. 
  
  내가 이 글에서 전하고 싶은 것은 위기가 아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사명과 비전의 성취다. 한국의 현재는 어두워 보여도 그리고 시련이 있어 보여도 사명과 비전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낙심치 말고 낙망도 말자.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로운 것(고후4:16)”이다. 죄에서 돌이킨 우리는 낙심과 낙망이 아니요 사명과 비전을 깨닫는 길로 가자. ‘남북통일’과 ‘세계평화’, 통일한국(統一韓國), 선교한국(宣敎韓國)의 꿈을 향해 전진하자. 
  
11. 사명과 비전을 향해 기도하자. 지난 100년 ‘오직 예수’의 신앙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망국(亡國)과 가난(家難)의 시련을 이겨낼 수 있었듯, 지금도 기도하는 사람들이 나온다면 분단과 불안과 갈등의 시련을 이겨낼 것이다. 자기를 의뢰치 않고 오직 하나님만 의뢰하게 될 때, 기도의 영성을 회복할 때, 바로 그때 지난 60년 이 나라에 임했던 기적은 통일한국에 몇 곱절 강력히 임하게 될 것이다. 
  
  평양, 남포, 원산, 의주, 갑산, 영변, 장진 모든 산골짜기 자유(自由). 自由. 自由가 퍼지게 날 까지 부르짖고 기도하자. 自由가 모든 계곡을 메우는 날, 절망의 산(山)은 깎여 희망의 돌이 만들어 질 것이다. 김일성 가문의 재산으로 태어나 버림받던 백성들은 공포와 궁핍과 저주에서 해방케 될 것이다. 기회, 희망, 꿈이 없다 투덜대던 청년들도 소망을 꿈꾸며 초원과 대륙을 달려갈 것이다. 남북의 백성, 영남과 호남, 서로 다른 생각으로 산산이 갈라진 7천만은 함께 일하고, 함께 놀고, 함께 싸우며 영혼의 자유를 땅 끝까지 전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세대가 나오는 그 날을 꿈꾼다. 사명을 위해 생명을 건 세대, 거룩·성결·사랑·용기의 성령으로 가득 찬 그 세대가 나올 때 북한도 살고 남한도 살아날 것이다. 세상은 어두워 보여도 주님이 이 땅에 남기신 남은 자들을 곳곳에서 만난다. 때가 차면 이들이 일어나 나팔을 불 것이고 교회는 깨어나 미스바로 모여들 것이다. 그 때가 바로 이때라! 잠에서 깨어나 나팔을 불 때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