六曹 거리 광화문

★조선의 상징적 거리 광화문 앞 6조(六曹)거리★

임금이 계시는

정전의 정문인 광화문을 중심으로 하여

동쪽에

의정부(議政府=현재의 국무총리실)

이조(吏曹= 지금의 내무부)

한성부(漢城府 =지금의 서울 시청)

호조(戶曹 =지금의 재정경제원)가 차례로 있었고

서쪽에

예조(禮曹= 지금의 외무부,교육부)

병조(兵曹= 지금의 국방부)

형조(刑曹 =지금의법무부)

공조(工曹= 지금의 건설부)가 차례로 있었다.

그 복판으로난 길이라 해서 6조(六曹)거리라 했다

조광조가

도학정치를 펴다가 모함을 받고서 옥에 갇히자

성균관을 비릇한 장안의 유생들이

이 六曹(육조 = 여섯개의 관청= 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거리로 쏟아져 나와

대궐문을 밀치고 난입

궐병(궁궐수비대 병사)들과 싸우는 바람에 유혈이 낭자했다.

옛 六曹 거리는

민심의 공감이 분출되는 시위의 현장이였으며

정부에 항의하는 4.19와 6.3의 학생데모가

이곳에서 벌어졌음도 우연이 아니다.

6조 거리엔

큰 구경꺼리가 있었는데 만인산(萬人傘) 행열이었다.

시골의 현감과 군수들이

자신의 치적들을 六曹의 벼슬아치 들에게

과시 하고자 벌이는 헤프닝인 것으로

커다란 양산에 수령의 치적을 적은 베 나부랭이를

주렁주렁 매어 달고

이를 성장한(화려하게 차려입은) 기생에게 들려 말을 태운 후

<아무개 고을 마무개의 만인산 나들이요!> 하며

삼현육각을 앞세워 이 6조거리를 수십차례 왕복했다고 한다.

1892년의 광화문 육조거리를 묘사한 그림

지금의 서울 시청격인 한성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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