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장 동성연애

남자이건여자이건 간에 동성연애 행위는 국가적인 도덕기준의 심각한 침식을 반영하는 영역이다. 동성연애자들이 요구하고 있는 것을 보면 전례없는 대담성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탈선에 연루된 것을 부인하는 다른 사람들이 이제는 이러한 사람들의 옹호자가 되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크리스찬들이 깊이 관심을 가지는 한 가지 이유는 동성연애를 국가적으로 용인하느냐 안하느냐 하는 것이 바로 그 국가의 영적 상태의 한 표시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으로부터 표류하였을 때, 그 민족은 남색(sodomy)을 포함하여 여러 가지 악을 용납하였다.(왕상14:24)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돌아왔을 때 동성연애는 용인되지 아니하였다.(왕상15:12)

하나님의 성회는 모든 믿음과 행위는 성서에 근거하여 평가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성경은 동성연애 문제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기 때문에 권위있는 법에 의하여 그 입장이 확립되도록 고려해야 한다.

동성연애는 죄이다.


때때로 인간적인 이유는 동성연애를 심리학적인 문제이거나, 육체적인 상태 혹은 생활방식의 신중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성경은 이것은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죄라고 한다. 이 문제에 관한 교회의 관심은 소수 그룹에 대한 차별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도덕적인 문제이다. 성경은 이것에 대하여 명확하게 말씀한다.


1. 동성연애는 하나님이 태초에 제정하신 성의 원리에 반대되기 때문에 죄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창1:27) 하나님이 남자를 창조하신 후에 하나님은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하셨다(창2:18) 이러한 이유로 하나님은 남자에게 적합한 배필을 창조하셨다.(창2:18) 남자의 외로움은 다른 남자를 창조함으로써 제거된 것이 아니라 여자를 창조함으로써 제거되었다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


하나님이 여자를 그에게 데려왔을 때 아담음 “이 내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 즉 여자라 칭하리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2:23,24)라고 하였다.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은 성의원리를 제정하셨는데 이 원리에 의하여 인간이 번식하게 되었다. 심리학적으로 이러한 관계는 건전하였다. 육체적으로 이 관계는 자연스러웠다. 사회학적으로 이상적인 가정 단위를 세웠다. 성경적인 개념은 인간의 성이란 이성적으로 일부일처적 관계가 이상적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동성연애를 택할 때 그들은 하나님의 성의 원리를 거부하는 것이다.그들의 탈선한 성행위는 하나님이 제정하신 성의 특성에 대한 죄를 유발하는 것이다.(롬1:27) 그리고 그들은 남자가 부모를 떠나 아내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
라는 하나님의 가르침에 반대되는 사회적 단위를 구성하는 것이다.(창2:24) 바리새인들과의 토론에서 예수님은 태초에 하나님이 제정하신 성의 원리를 반복하셨다(마19:4-9) 그는 이성 간에 결혼을 제외한 유일한 생활방식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독신생활임을 지적하셨다.


2. 동성연애는 성경이 악하다고 하기 때문에 죄이다.


하나님이 독특한 의미로 이스라엘을 그의 나라로 부르셨을 때 하나님은 애굽의 압제로부터 기적적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이상의 일을 하셨다. 하나님은 모든 행동을 안내하며 지시하는 한 율법을 주셨다. 도덕에
관계되는 율법 가운데 동성연애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이 있다.


레18:22에서 하나님은 “너는 여자와 교합함 같이 남자와 교합 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고 하셨다. 그리고 레20:13에서는 이것을 위반한 사람에 대한 가혹한 형벌을 명령함으로써 이 하나님의 명령을 보강하고 있다. 즉 “누구든지 여인과 교합하듯 남자와 교합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고 말씀하셨다.


이러한 금지는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롬1:21-27에서 바울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창조주보다 창조물을 섬기며 경배하는 사람들의 생활에서 따라오는 결과들을 기록하였다. 그들은 그들 사이에서 자기들의 몸을 부끄럽게 하였다. 그들은 성을 순리대로 쓸 것은 바꾸어 역리로 썼다. 그들은 불의, 음행, 악의, 탐욕, 악독이 가득하였다. 그들은 부정한 자요, 원통함을 풀지 않은 자요, 무자비한 자였다.


바울의 시대에 고린도는 부도덕으로 유명하였다. 이 도시는 상업 뿐만 아니라. 악폐와 부도덕의 중심지였다. 교회가 이 도시에 세워졌기 때문에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모든 종류의 부도덕을 어떻게 보시는지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였다.
그 기록은 매우 뚜렷하다. 바울은 기록하기를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의 유업을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리고 계속하기를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하나님의 나라의 유업을 받지 못하리라”(고전6:9,10)고 하였다. 바레트(C. K. Barrett)는 그의 주석 “고린도전서”(The first Epistle to the Corinthians)에서 탐색은 미동을 상대로 하는 남색을 의미한다고 지적하였다. 여기서 탐색과 남색은 남자 동성애 관계에서 하나는 소극적이고, 하나는 적극적인 상대를 지칭하는 표현이다.


바울은 디모데전서에서 기록하기를 법은 “불법한 자와 순종치 아니하는 자며,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며,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며, 아비를 치는 자와 어미를 치는 자며, 살인하는 자며, 음행하는 자며, 남색하는 자”를 위하여 만들어졌다고 하였다.(딤전1:9,10) 이 사람들은 의롭다고 묘사되는 사람과는 대조적으로 경건치 않은 자들이라고 하였다.


3. 동성연애는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죄이다.


고대 소돔이라는 도시는 동성연애에 대한 동이어가 되었다.(영어로 sodom 사람은 남자 동서연애자를 의미한다:역자주) 다른 악한 것들이 이 사회에 존재하는 동안 동성연애도 현저하게 되었다. 소돔의 동성연애자들은 매우 타락하여 자기들의 동네에 찾아온 손님들을 욕보이려고 위협하였다. 역사적인 기록은 그들이 난폭해져서 롯이 손님들을 맞아들인 그 집의 문을 부수려고 하였던 것을 보여준다. 오직 하나님의 간섭으로 롯과 그의 가족은 악한 의도에서 건짐을 받았다.
이 사람들은 너무 타락하여 하나님이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지 않으면 안되었다.(창19:4-11,24,25) 이 도시들에 대한 심판의 가혹한 정도는 너무 강렬하여 베드로와(벧후2:6) 유다(유7)가 하나님의 심판을 설명하는데 사용하였다.


동성연애자들도 구원받을 수 있다.?


성경이 동성연애는 죄이며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을 명확히 하고 있지만 또한 동성연애자도 구원받을 수 있음을 가르친다. 동성연애는 도덕적인 문제이며 오직 하나님만이 그 죄인을 도우실 수 있다.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것
이 없다.


고린도에 있는 교회 안에는 하나님의 은혜로 죄의 권세에서 구원받는 이전의 동성연애자들이 있었다. 고전6:9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수 없는 자 중에 동성연애자를 포함시켰다. 그리고 11절에서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라고 기록하였다. 이것은 과거시제이다. 그들은 동성연애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 죄로부터 구원받았다.


성경은 속죄의 효력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제한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제거할 수 없을 만큼 어두운 죄의 자국은 없다. 세례 요한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을 보라”(요1:29)고 했다. 바울은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 ”(고후5:21)고 기록했다. 요한도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라”(요일1:9)고 기록했다.


성령의 거듭나게 하시는 능력을 통해 사람들은 그들의 죄의 본질과 관계없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다(고후5:17)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누구에게나 동일하다. 죄의 심판과 권세로부터 구원받기를 원하는 동성연애자들도 다른 죄인들이 하나님께 나아오는 똑같은 방식으로 하나님께 나아와야 한다.

구원받기 위해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행위는 회개와 믿음 두 가지를 다 포함한다.


예수를 주시요, 구세주로서 영접해야만 한다. 이러한 회심의 개념들은 순서적이기보다는 동시적이요(회개가 먼저 오고 그 다음에 믿음이 오는 순서적인 것 보다는 회개와 믿음이 동시에 있을 때 회심의 역사가 있다는 의미이다.:역자주),이 둘이 다 포함된다는 것을 성경은 분명하게 증거한다. 예수는 그의 승천에 앞서 제자들에게 주었던 교훈 속에서 회개와 죄사함이 반드시 전파되어야 할 것을 말씀하셨다.(눅24:47) 회개는 죄로부터 돌아서는 시점에서 마음이 변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는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해야 한다. 이는 그리스도를 거부했던 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가르침에 반하는 다른 자세들과 행위들도 포함된다.


구원받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물었던 빌립보 감옥의 간수처럼 구원을 소원하는 사람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행16:30,31) 곧 그가 죄의 심판뿐만 아니라 죄의 권세로부터도 구원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회개와 마찬가지로 순종하는 믿음도 구원의 조건이다.


동성연애자에 대한 크리스찬의 자세

크리스찬은 동성연애에 대하여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습관에 관계된 사람들에 대해 크리스찬이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하여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어떤 죄들은 타락한 자와 초신자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에 다른 죄보다 더 책망 받아야 한다고 본다. 이런 이유로 크리스찬은 동성연애자들에 대하여 성경의 가르침과 조화를 이루는 자세를 갖도록 확인해야 한다.

그들은 이러한 행위를 용인하게 하는 감상주의적인 경솔함을 피해야 하며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기를 원하는 자들을 도울 수 있는 기회를 간과해서도 안된다. 증언을 위한 기회가 전개될 때 주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신자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정직하게 원하는 사람들과 하나의 또 다른 생활방식으로서 동성연애에 대한 동정심을 구하는 사람들을 분별할 수 있기 위해 성령의 인도를 따르도록 성령을 의지해야 한다.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를 인하여(5절에 언급된 부도덕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엡5:6)라고 성경은 신자들에게 경고하고 있다. 계속해서 성경은 신자들이 열매없는 어두움의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고 경고하고 있다. (엡5:11) 하나님께서 정죄하는 것을 교회가 너그럽게 봐줄 수 없다. 만일 동성연애자들이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제안을 거부한다면,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이들을 하나님 나라의 영역 밖에 놓아 둘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러한 이유로 그들은 교회의 교제 안으로 들어올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동성연애 도착증에 빠진 사람들이 진심으로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기는 구한다면 크리스찬은 도울 수 있는 모든 것을 행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이 신자의 마음에 널리 뿌려진 것처럼 이 사랑이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날 것이다. 하나님처럼 신자들도 죄를 미워하면서 죄인을 사랑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신자들은 동성연애자들로 하여금 그들이 행하는 길이 죄의 길임을 깨닫도록 돕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대해 신실해야 한다. 그들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을 때 누리는 하나님의 변화시키는 능력과 풍성한 생명에 대해 증거해야 한다. 그들은 동성연애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며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의 축복을 원하는 사람들을 돕기 위하여 모든 것을 해야 한다. 그럴때 그들은 “죄인을 미혹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을 아는 만족을 누리게 될 것이다.(약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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