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장
도박에 대한 성경적인 관점

도박이 합법적이든 불법이든 전례없이 용인되고 있는 것이 한 현상이다. 도박이 널리 성행하고 있기 때문에 크리스찬은 이러한 활동에 대한 윤리적, 도덕적 의미를 결정하기 위하여 살펴보아야 한다.

도박의 정의

도박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활동을 모험이 따르는 다른 사업들과 같은 범주에 놓으려고 애쓴다. 그들은 농사, 보험 심지어 투자에 이르기까지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없고 때로는 손해를 보기 때문에 도박이라고 설명한다. 이리하여 그들은 도박에 합법적인 사업과 같은 지위를 부여하기를 원한다.

스탈키(L. M. Starkey Jr.)는 다름과 같이 도움이 될만한 관찰을 하였다. “인생에서 사람이 믿음과 용기로 받아들어야 할 일상적인 모험이 있다. 이러한 일상적인 모험들은 운에 맡기는 게임에 있어서 모험과는 결코 같지 않다. 도박과 시간과 돈과 기술의 투자가 정당화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얻고자 하는 희망으로 된 인위적인 모험이다. 도박에 있어서 기회는 농부나, 증권투자가가 그의 정신과 돈과 육체적인 노력을 투자하는데 필요한 창조적인 노력과는 관계가 없다.”
도박을 합법적인 사업과 구분하기 위해서 도박에 필수적인 세가지 요소를 이해하려면 도움이 될 것이다.

①돈 혹은 상품으로 구성된 자극이 제공된다. ②그 상금은 주로 운에 따라서 얻어진다. ③주어진 운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돈이나 다른보수를 지불해야 한다.

도박은 주로 운과 도박자의 모험에 따라서 재물의 주인이 바뀌는 활동으로 이해된다. 창조적 노력, 유용한 기술 및 책임있는 투자는 필수요소가 아니다. 도박이 여러 형태로 존재하며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도박의 유혹에 직면하기
때문에 책임있는 크리스찬은 그것의 적절한 모양에 관해서 여론을 형성해야 한다. 정부에 의한 도박의 합법화나 어느 종교단체에 의한 도박의 용납이 평가기준이 될 수는 없다. 크리스찬의 차세는 성경의 원리에 의해서 결정되어져야 한다.

도박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

성경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도박으로 크게 유혹받은 것 같지는 않다. 그 악습은 이스라엘이 이방국가에 의해서 통치 받았을 때만 나타났던 것 같다. 도박이 있었을 때 하나님은 그것에 대한 자신의 자세를 명백히 보여주셨다.
바벨론 포로시기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도박하는 사람들의 영향아래 있었다. 그 결과로 포로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연류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사람들에 대하여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셨다. “오직 나 여호와를 버리며 나의
성산을 잊고 갓에게 상을 베풀어 놓으며 므니에게 섞은 술을 가득히 붓는 너희여”(사64:11) 여기서 갓과 므니는 이상신들의 이름으로써 갓은 좋은 운수를 주는 신이고 므니는 나쁜 운수를 주는 신이었다. 제임스 모팻은 이사야 65:11을 다음
과 같이 번역하였다. “오직 영원하신 분을 버리며 그의 성산을 잊고 좋은 운수에게 상을 베풀어 놓으며 나쁜 운명에게 술을 붓는 너희여 내가 너희의 운명을 칼에 붙이리라.”

웰스(Wells)대학의 학장이었던 고 플럼트리(E. H. Plumptre)는 갓은 좋은 운수를 주는 큰 행운으로 예배 드려졌고, 므니는 보다 작은 행운으로서 예배드려졌다고 지적하였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고대사 교수로 봉직했던 로우린슨(George
Rawlinson)은 므니라는 이름이 “사람들의 운명을 그들에게 나누어주는 지정된 신”이라고 지적하였다.

몇몇 이스라엘 사람들이 정죄받는 죄는 하나님보다 운수를 의지하는 것이었다. 이사야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과는 운수를 의지하는 것은 공존할 수 없음을 분명하게 말했다. 만일 사람들이 운수를 의지한다면 그들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이사야는 도박을 의지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을 버린 자” 라고 묘사하였다.(사65:11)

성경적 원리

성경을 주의깊게 읽어보면 도박은 피해야 할 악임을 지적하는 수많은 성경적인 원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할 때 그들은 도박이 악이라고 하는 원리를 존중할 것이다.

1. 도박은 책임있는 청지기직을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잘못되었다.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시24:1)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사람은 자기에게 맡겨진 모든 것에 대하여 적절하게 관리해야 하는 청지기 위치에 있다.

이러한 청지기직을 충성스럽게 감당하기 위한 첫 단계는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신자는 자신이 자기의 것이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고전6:19) 그는 은이나 금이 아니라 예수의 보배로운 피로 값을 주고 구속된 것이다.(벧전1:18,19) 마게도냐 교회는 “먼저 자신을 주께 드렸을 때”(고후8:5) 개인적인 헌신의 귀중한 모범을 남겨 놓았다. 새명은 그것과 관련되는 모든 것과 함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관리되어야 할 청지기직이다.

정직하게 자신을 하나님께 바친 사람들은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을 청지기로써 관리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달란트의 비유는(마25:14-30) 착하고 충성된 종이 자기에게 맡겨진 달란트를 주인이 기뻐하는대로 관리해야
함을 지적한다. 악하고 게으른 종은 관리에 실패하였으며 그에 해당하는 결말을 겪었다.

사람들은 그들의 청지기직의 책임을 인정한다면 그들은 어떤 형태의 도박도 하나님이 주신 자원과 시간과 능력에 대한 적절한 관리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 세상의 윤리조차도 자신에게 맡겨진 자원을 가지고 도박하는 사람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크리스찬의 책임은 모든 다른 책임을 능가하기 때문에 크리스찬에게 있어서 도박은 잘못된 것이다. 도박은 청지기직의 원리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왕국 확장을 위해 사용하라고 하나님이 주신 자신에 대한 퇴폐행위이다.

2. 도박은 다른 사람의 손해와 고통을 담보로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다.

도박의 속성은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보기 때문에 한 사람이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적인 이익은 극소수에게 돌아간다. 재정적인 손해는 보통 그것을 감당하기 어려운 많은 사람이 입는다. 도박에 관련된 사람들은 보통 그 행정주들
(promotors)이 인격을 손상시키는 말로 부르는 것을 볼 때 그들의 격하된 신분을 알 수 있다. 재정적인 손해가 크든지 작든지 도박자는 기본적으로 잃은 자이며 도박장 경영자는 따는 사람이다.

도박으로 인하여 겪는 고통은 사랑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과 전격적으로 위배된다. 크리스찬은 사랑할 만한 사람분아니라 원수가지도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의 이웃을 그들 자신들처럼 사랑해야 한다. 사랑의 원리는 크리스찬으로 하여금 주정부나 어느 단체가 인간의 약점에 근거하여 사회를 타락시키는 도박활동을 합법화하려는 노력에 대하여 반대하게 할 것이다.

켄터베리 대주교인 템플(William Temple)은 크리스찬의 위치를 다음과 같이 잘 설명하고 있다.

“도박은 기독교 교회가 유지하고 확장하고자 하는 생명에 대한 견해에 도전한다. 도박이 단순한 운수를 추앙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자연의 질서를 부정하는 것이다. 돈을 되는대로 운수에 맡기는 것은 모든 소유물이 인간에게 위탁된 것이며 인간은 그것들을 사용함에 있어서 하나님께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산 믿음에 대한 교회의 주장을 무시하는 것이다. 탐욕을 끊임없이 부추기는 것은 근본적으로 예수와 신약 전체가 가르치는 이타주의에 반대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손해와 고통 가운데서 이득을 취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우리 주님이 주장하시는 이웃사랑과 정면으로 반되대는 것이다.

3. 도박은 성경의 노동윤리와 모순되기 때문에 잘못되었다.

전체 성경을 통하여 먹는 것에 관계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 구약은 우리에게 “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거니와”(잠12:11)라고 상기시켜 준다.

신약성경에서도 같은 원리를 아주 힘있게 강조하고 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라고 썼다.(살후3:10) 성경은 생활의 필요를 위하여 사람이 일해야 할 것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불로소득과 일확천금의 사고방식에 대하여 경고한다. “속히 부하고자 하는 자는 형벌을 면치 못하리라”

(잠28:20) “악한 눈이 있는 자는 재물을 얻기에만 급하고 빈궁이 자기에게로 임할 줄은 알지 못하느니라”(잠28:22) “망령되이 얻는 재물은 줄어가고 손으로 모은 것은 늘어가느니라"(잠13:11) 하나님의 지혜로 사람은 타락하기 이전부터 에덴동산에서 일하게 되어있었다. (창2:15) 비록 죄의 결과로 노동의 성격이 변하기는 하였지만(창3:17,19), 일의
책임은 취소되지 않았다. 사람이 아무리 성경의 노동윤리를 회피하려고 노력하여도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 급히 부를 축적하려고 하는지 혹은 상 위에 밥을 올려놓고자 하든지 간에 도박은 노동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과 모순된다.

4. 도박은 습관성이 되기 때문에 나쁘다.

도박은 다른 악과 같이 중독되는 경향이 있다. 술이나 마약 중독자의 경우처럼 도박에 중독된 자는 돈 뿐만이 아니라 인생에 있어서 의미있는 모든 것을 걸 정도로 도박의 지배를 받는다 그들은 자신을 절재하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상태는 성경의 가르침에 반대된다. 하나님의 말슴은 크리스찬이 가한 것 일지라도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고전6:12) 성령께서 거하는 사람은 온유 혹은 절제라는 특징을 갖는다.(갈5:23) 도박중독에 대하여 연구한 사람들은 도박 중독자에게 특징적인 여섯가지 증상이 있다고 동의하는 것 같다.

①그 활동이 주기적으로 반복된다. ②그것은 가정을 포함한 모든 다른 흥미들을 방해할 정도로 광적이 된다. ③이전에 잃었던 경험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능력 대신에 병적인 낙관주의가 마음을 차지한다. ④이기고 있는(따고 있는) 상태에서 그만 두는 능력이 없다. ⑤어느정도까지만 도박 하겠다는 처음의 결심에도 불구하고 도박 중독자는 변함없이 너무 많이 도박을 한다. ⑥그 활동은 아픔과 기쁨으로 구성된 즐길 수 있는 긴장을 만들어 내는 것 같다.

습관적으로 도박하는 사람은 도박 충동의 지배 아래 있음이 분명하다. 하나님의 종이 되기보다는 스스로 다룰 수 없는 욕망의 종이 되어 버린다. 바울은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롬6:16)고 하면서 그 상태를 묘사하였다. 중독증상의 악화 가능성 때문에 도박은 악이라고 보아야 한다.

도박에 대한 크리스찬의 책임

여러 가지의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에 비추어 볼 때 크리스찬은 도박에 대하여 중립적인 입장을 가질 수가 없다. 신자가 지나쳐서는 안되는 책임이 있다.

성경이 신자들에게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고 가르칠 때 그것은 틀림없이 도박을 막는 말씀이다. 사람들이 주님께 의지하기 보다는 운수를 의지할 때 하나님은 영광 받으실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5:22)고 가르치실 때 그것은 도박을 막고 있다. 한 습관이 청지기, 타인에 대한 고려 및 정직한 노동의 품위에 관한 하나님 말씀의 원리를 위반할 때 그것은 악이 아닌 다른 것
으로 고려할 여지는 전혀 없다.

성경에 따라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어떤 형태의 도박이든지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 세상의 소금으로서(마5:13) 그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권한 안에서 자선이나, 교회나, 주정부를 위한 모금일지라도 도박의 합법화를 저지하기 위하여 힘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 L. M. Starkey, Jr., Money, Mania, and Morals (Abingdon Press, 1964)
ⓑ Virgil W. Peterson, "Obstacles to Enforcement of Gambling Laws," The
Annals of the American Academy of Political and Social Science(May.
1950)
ⓒ William Temple, "Gambling and Ethics, "issued by The Churches"
Committee on Gambling, 215 Abbey House, 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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